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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관 교수의 위험한 이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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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0-07-01 12:11 조회23,71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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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영관 교수의 위험한 이념관


서울대 윤영관 교수가 7월 1일 자 조선일보에 “이념 과잉의 시대를 개탄한다”는 제목으로 아침논단을 썼다. “ 美·中을 함께 품고 北을 원칙 있게 포용하자는 필자는 보수인가? 진보인가?”라는 표현으로 말문을 연 윤교수의 핵심 다음 표현에 담겨 있다. 


                        윤교수의 아침논단에 있는 글 


모든 사람이 평등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사회주의도 원래 좋은 이념이었다. 그러나 그 이념을 실현하겠다고 혁명까지 했는데 지내놓고 보니 결과는 참담했다. 경제는 망가지고 독재자들의 손에 수천만의 무고한 인민이 목숨을 잃었다. 모두 함께 못살게 되었다는 점에서 평등해지기는 했는데 결국 무의미한 평등이 되어버렸다.1991년 소련이 붕괴하고 모든 동구권 국가들이 사회주의를 버렸을 때, 세상은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승리했다고 환호했다. 그러나 2008년부터 시작된 세계 금융위기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마저도 방종으로 흐를 때 파국을 초래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인간이 만든 모든 이념은 완벽하지 않다. 그 완벽하지 않은 이념을 지나치게 지고의 선(善)으로 간주하고 숭배할 때 그 사회는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다. 심지어 월(Wall)가의 성공적인 투자가 조지 소로스마저도 시장 메커니즘이 모든 것을 알아서 해준다는 맹신이 위험한 생각이라고 경고해왔다. 그의 스승인 저명한 사상가 칼 포퍼는 어떤 이념이 되었든, 이념에 대한 집착이 '열린 사회의 최대의 적'임을 갈파했다. 그런데 오늘날의 한국 사회는 이념 과잉이 위험수위를 치닫고 있다. 보수냐, 진보냐 하는 이념 갈등이 격화되고 상호 간에 증오의 열기가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차가운 논리로 당면 과제에 대해 구체적 해법을 모색하려는 노력은 정작 실종되고, 사회는 끝없이 표류한다.


우리 사회의 보수·진보 논쟁은 과연 그렇게 목숨 걸고 싸울 정도로 의미가 있는 것일까. 필자는 한국 사회의 정치·경제·사회 영역의 권력이 집중되지 않고 분산되어 상호 견제하는 메커니즘이 정착되어야 한다고 믿어왔다. 1987년 민주항쟁 이후 대통령을 직접 뽑는 절차적인 민주화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권력분산과 상호견제가 제도화되지 않아 정경유착이 극심했고 경제부문에 도덕적 해이가 만연하여 결국 IMF 위기를 겪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내정치 개혁이 필요한데 북한처럼 불안정한 이웃과 함께하는 상황에서 개혁에 성공하려면 안정적인 외교가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믿어왔다. 그렇다면 필자는 보수인가, 진보인가?


북한 문제를 풀어 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북한이 핵을 개발하고 미사일을 쏘고 천안함을 공격하고 하는 모든 문제의 근본 원인은 북한이 냉전 종결 이후 세계정세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거나 그럴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이들이 세계사의 흐름에 제대로 적응하게 하는 해법은 결국 이들을 포용해서 국제사회로 끌어내고 외부와의 접촉의 면을 넓혀 점진적으로 변화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을 포용은 하되, 시장원리나 비핵화, 인권과 같은 세계사회의 보편적 가치를 점진적으로 수용하도록 촉구 유도한다는 '원칙'이 있어야 할 것이다. 문제는 이런 '포용'과 '원칙' 간의 조화와 균형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모색할 것인가 하는 점인데 이렇게 생각하는 필자는 보수인가, 진보인가? (윤교수의 글 끝)


                              필자가 느낀 점들


윤교수는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의 죤스홉킨스 대학에서 국제정치학 박사를 따고 노무현의 부름을 받아 2003년 3월 1일부터 정확히 10개월 동안 외교통상부 장관을 하다가 다시 학교로 복귀한 사람으로 프로필을 보면 화려한 편에 속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오늘 아침 그가 조선일보에 기고한 “이념 과잉의 시대를 개탄한다”는 제목이 눈에 띄어 읽어보니 필자의 생각과 상당한 괴리가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 괴리는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기에 필자의 생각을 정리하고자 한다.


“이념 과잉의 시대를 개탄한다”는 말에 윤교수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요지가 다 들어 있다. 좌와 우가 첨예하게 싸우는 지금을 이념의 과잉시대로 정의했고, 과도한 이념투쟁이 국가발전에 걸림돌이 된다는 의미가 들어 있는 것이다. 윤교수는 사회주의도 나쁜 제도가 아니고, 민주주의도 만능의 제도가 아니기 때문에 사회주의를 숭상하는 진보와 민주주의를 숭상하는 보수가 서로 자기네 정치철학이 옳다고 싸우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한다. 


국가파괴에 혈안이 된 빨치산들에 유럽식 사회주의 모자를 씌워 미화해 주다니!


여기에 윤교수가 크게 오해하거나 간과한 매우 중요한 함정들이 들어있다. 윤교수가 유럽의 교수이고, 이 나라가 유럽 국가 중의 하나라고 한다면 윤교수의 주장이 타당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의 진보는 분배와 평등을 중시하는 유럽식 사회주의 정치철학을 신봉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반드시 점령하고야 말겠다는 김정일 정권의 전위대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다.


눈만 뜨면 이 나라를 파괴하고 전복할 생각만 하는 사람들이며, 민족의 정통성이 북한에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은 태어나서는 안 될 더러운 정권이라는 관념이 뼈에 사무쳐 있는 사람들이며, 미국 때문에, 맥아더 때문에 적화통일의 기회를 놓쳤다며 미국을 증오하고 맥아더 동상을 철거하려 하는 이단자들이며, 천안함 폭침행위를 미국이 저질렀다고 억지를 쓰는 반골-반역의 인간들이다. 윤영관 교수는 구가의 세포를 파먹는 위험한 암적 존재들에게 유럽식 사회주의자들이 쓰고 있는 근사해 보이는 모자를 씌워주며 미화하고 있다. 와이텐뉴스 등 좌파매체들이 문근영 외조부 류낙진을 통일운동가로 미화하듯이 윤교수 역시 종북 빨치산들을 유럽식 사회주의자로 미화시키는 것이다.     


                     윤교수와 황장엽씨의 주장 비슷해


그 다음 윤교수는 사회주의가 제도는 훌륭한 것인데 운용을 잘못해서 실패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마치 황장엽씨가 공산주의와 주체사상은 훌륭한 것인데 김일성은 이를 훌륭하게 운용했고, 김정일은 이를 나쁘게 운용하여 좋지 못한 결과를 가져왔다고 주장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두 개가 아니라 동전의 앞뒤를 형성하는 하나다. 정치와 경제 모두가 시장 메커니즘에 의해 운용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독재가 들어설 여지가 없는 제도다. 민주주의란 공공의 선을 극대화하기 위해 아이디어도 시장에서 다투고 상품도 시장에서 다투는 제도인 것이다.


반면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다 같이 정치와 경제를 능력 있는 소수에 의해 인위적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는 제도다. 사람은 각기 능력과 재주가 다른데 능력 있는 사람이 번 돈을 능력 없는 사람들과 똑같이 나누어 주려면 능력 있는 소수가 행정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아이디어들이 각축할 수 있는 공론화의 시장도 없고, 상품들이 다툴 수 있는 시장도 없다. 여기에 스탈린-모택동식 독재와 김일성식 수령주의가 끼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회주의-공산주의가 좋은가, 민주주의-시장경제 시스템이 좋은가를 놓고 이론적으로만 비교해 보아도 논리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민주주의가 좋다 할 것이다. 그런데 윤교수는 이런 논리를 부정하고 있다.


                민주주의, 사회주의의 의미 아직도 혼돈 


마지막으로 윤교수는 민주주의 제도에도 문제가 많고, 사회주의 제도에도 문제가 많으니 어느 것을 일방적으로 좋다 할 성격의 것이 아니라 양쪽의 장점을 절충해가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두 가지 제도 중 그 어느 것도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를 보면 윤교수는 미국사회에 존재하는 연구군단들의 의미를 음미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정책 개발, 리더십 개발, 시스템 개발을 목적으로 하는 분석 학문이 세계에서 가장 발달돼 있는 곳이 미국이다. 미국에는 분석가들이 내놓은 수많은 제언들이 범람하면서 백가쟁명하고 있다. 그것이 사회상식을 업그레이드 시키고 미국을 발전시키고 있다.


수많은 연구결과와 지혜들 중에서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는 정치인들의 감각과 안목에 달려 있다. 훌륭한 안목을 가진 정치인은 국가를 발전시킬 것이고, 그 반대의 정치가는 국가를 후퇴시키는 것이다. 이런 성격의 것을 놓고 윤교수는 미국이 일시적으로 겪은 시행착오 하나를 가지고 민주주의도 만능이 아니라 주장한다.


그의 말대로 민주주의는 만능이 아니다. 그래서 민주주의를 선택한 후에도 정책과 리더십과 시스템을 업그레이드 시켜야 계속 발전한다. 미국은 이를 위해 엄청난 예산을 사용한다. 그러나 사회주의-공산주의에서는 아이디어들이 백가쟁명할 수 있는 시장공간 자체가 없다. 그래서 사회주의-공산주의는 그것을 선택하는 그 순간부터 사회를 퇴보시키는 것이다. 윤교수는 이 중요한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2010.7.1. 지만원 
http://systemclu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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