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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광주, 좌파의 뿌리를 캐라 (만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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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만토스 작성일10-07-08 08:54 조회22,66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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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광주, 좌파의 뿌리를 캐라

 

7.28 재보선을 앞두고 좌파 야당의 각개전투가 심상치 않다. MBC PD수첩이 애써 기획한 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직원 이인규가 공무원이 아닌 김종익이라는 사람을 불법사찰 했다는 프로그램을 터뜨린 후, 이것이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과정이 과거 있지도 않았던 미국소 광우병이라는 왜곡 날조 방송 후에 발생했던 촛불폭동 국가 마비사태와 닮아 간다. 역시 PD수첩이 반정부 활동에는 항상 앞장을 서고 김종익이라는 사람이 노사모이고 민족문제연구소에 관여한 전력뿐 아니라, 그의 서가에 꽂힌 책들이 또한 스스로의 이념적 성향을 입증하고 있어, 여야의 정치적 이념적 공방이 뜨거워 지고 있다.

 

김종익에 대한 불법사찰과 어울려 최근에 일어나는 좌파 쪽에 두각을 나타내는 화두들 역시 좌파의 전 방위에 걸친 이념전이 되살아 나는 것 같다. 한명숙 재판에서 검찰과의 배짱 두둑한 對峙, 김대중과 노무현 시절 잘 나갔던 연예인 김미화의 KBS를 향한 블랙리스트 타령, 김대중의 날개였던 권노갑의 김대중 테러에 대한 회상이라는 왜곡 날조 회상타령 등 일련의 잡음들이 사실은 잘 짜여진 각개전투 방식으로써, 동시다발적인 좌파세력 투쟁으로 보이는 것이며, 이러한 투쟁들이 천안함 46명의 장병들의 희생도 남의 일처럼 여기면서 국회의 대북규탄결의문마저 반대한 민주당의 잔 가지들로 보이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어쩌면 당연히 해야 할 불순세력에 대한 조사를 국정원이나 검찰을 통해 제대로 하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총리실 쪽에서 사찰하는 실수를 저질러 좌파 야당으로부터 매를 사서 얻어 맞고 있다. 불법 사찰자는 당연히 응분의 벌을 받아 마땅하지만, 그렇다고 피 사찰자의 모든 친북 반정부적 활동과 현직 대통령에 대한 근거 없는 비방과 명예훼손마저 말도 못 꺼내게 될지 두고 볼 일이다. 이인규라는 사람이 처벌 받는 것과 김종익이라는 사람에 대한 또 다른 민 형사상 법적 적용은 분명히 별개의 사안이다. 중도실용과 무 이념을 외쳤던 이명박 정부의 사건에 대한 인식과 대처가 걱정된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 가야겠다. 실은 이상과 같은 좌파세력의 투쟁들이 결국은 반 대한민국 활동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면, 좌파 반 대한민국 세력에 대한 싸움은 처음부터 지고 들어가는 게임이 되는 것이다. 지난 15년 간의 문민과 좌파정부 하에서 저질러진 대한민국 정체성 훼손은 엄밀하게 따지면 모두 김영삼의 “5.18특별법에 의한 광주민주화 운동의 탄생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헌법을 무시하고 자신의 정치적 입지강화를 위해 저질러졌던 5.18광주사태에 대한 잘못된 판결이 대한민국 좌파 반역자들에게는 최고의 영양분을 공급하는 든든한 뿌리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민주당의 배경이 바로 광주와 전라도인 것은, 그들이 항상 자랑 삼아 주장하는 민주화 운동의 뿌리가 광주5.18사태라는 사실과 일맥상통한다. 우리의 주적인 김정일 집단과 그 집단을 지지하는 중국과 소련을 제외한 세계 모두가 인정한 천안함 폭침사태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들의 국민이 희생된 것도 아랑곳하지 않는 무리들은, 주적 김정일 집단보다 훨씬 저주 받을 내부의 적임에 틀림없다. 그런 내부의 적이 뿌리를 내린 곳이 광주의 성역 ‘5.18묘지가 되는 것이면, 대한민국이 저 무리들의 기를 꺾기 위해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해야 가장 효과적인 대처인가는 더 이상 설명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눈 앞의 적을 두고도 어떻게든 싸움을 피하고 숨을 곳만 찾는 무 이념과 중도실용의 이명박 정부와 집권여당 한나라당에 그런 엄청난 과제를 말해봐야 그야말로 소 귀에 경읽기가 되고 말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대한민국을 지키겠다는 사람은 줄어 들고 반 대한민국 세력 좌파무리들만 늘어 나는 피눈물 나는 현실에, 목숨 걸고 탈북하여 자유를 찾아 온 탈북자단체가 울분을 참지 못하고, 또 다시 이 땅에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어처구니 없는 모습의 결정체가 바로 지난 2006년 서슬 퍼런 좌파정권 하에서의 광주5.18사태에 대한 기자회견 내용이며, 광주5.18단체들에 대한 목숨 건 투쟁임을 상기해야 한다.

 

그들은 광주5.18사태는 처음부터 끝까지 대남적화통일을 위한 전략으로 김일성이 기획하고 마무리했던 폭동반란 극이라고 당당하게 주장하며, 5.18민주유공자유족회,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5.18구속부상자회 등의 5.18관련단체와의 어떠한 토론도 법적 싸움도 불사하겠다고 단호하게 주장하고 있다. “자유북한군인연합(대표 임천용)”에게는 일체 입을 다문 광주5.18단체들이 또 다른 원조 대한민국 정체성 지킴이이자 현 시스템클럽 대표 지만원 박사의 5.18역사 바로 세우기 활동에는 야비한 탄압을 일삼았다. 탈북군인들을 법정에 세우면 북한특수군 개입 사실이 탄로날까 두려워서였을까?

 

이제 자유북한군인연합 측에서 제공한 광주5.18에서의 북한군 개입에 대한 자료를 이곳에 옮겨 보겠다. 이 자료를 읽고서도 5.18광주를 민주화의 성지라고 떠드는 사람들은 모두 북한의 김정일 집단과 함께 대한민국을 적으로 여기는 반역자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반역의 뿌리를 캐내서 제거하면 민주, 민노당은 땡볕에 말라 죽을 나무일 뿐이다.


5.18
광주봉기 전후의 북한 수뇌부 상황자료


1979
10월 한국의 박정희 대통령 피살사건과 12.12 전두환 정권 수립으로 남한에 복잡한 상황이 조성되자 김일성은 오랫동안 대남 공작을 총괄하다 퇴임하여 당시 조선중앙통신사 사장직을 수행하고 있던 현 북한노동당 비서 김중린을 개별적으로 불러 한국내의 현 정세를 이용하여 비밀공작 조직을 더욱 활발히 움직일 데 대한 구체적인 지시를 주었다.

한편 김일성은 표면상으로는 1980년 초(26)에 남북한 총리회담개최. 남북 간의 직통전화 개설 등의 평화제스처를 취하는 한편 남한 내의 혼란스런 정세를 이용하여 내부 교란작전을 구상하였다.


당시 김일성은 한국내의 비밀공작 조직들을 통해 광주에서 대규모 항쟁이 준비되고 있다는 정보를 보고 받고 김중린을 불러 광주항쟁에 대비한 북한군의 지원 작전을 지시하였고 김중린은 북한 정찰국 및 특전사부대들을 광주봉기에 투입할 것을 당시 북한군 정찰국장으로 있던 장성우와 정찰국 5부장 이하일에게 추체적인 지시를 하달하였다.


1980 5월 초. 김일성은 루마니아 대통령의 초청으로 루마니아방문이 예정되어 있었고 5월 말까지 루마니아에 이어 구라파 방문일정을 소화하게 되어있었다. 루마니아 방문 출발 직전에 김일성은 김정일과 김중린을 불러 장차 한국에서 벌어질 수 있는 사태에 대응할 구체적인 지시를 주었다.(김중린의 증언을 사적인자리에서 직접 청취하였음)


김일성은 광주사태로 인한 향후 한반도의 정세변화에 대비하여 5월말까지 예정 되었던 루마니아 방문일정을 단축하고 5 13일 귀국하였다. 광주에 투입된 북한 특수부대들의 실무 작전에 대한 기록은 현재까지 공개되지 않고 있으며 510일 북한군 정찰국 소속의 황해북도 신천군 주둔 제1321부대(일명 신천복수대대)의 인원 300명이 폭풍명령을 받고 남포시 와우도 인근 지역에 집결하였다.


 
신천보구여단 300명을 포함하여 남파된 특수부대인원 총600명이 남포에서 출발하였다고 부분적으로 기록이 있으나 광주에 침투되었던 증인들의 자료에 따르면 신천복수연단 외 타 여단들에서 차출된300명의 인원은 동해안의 루트를 이용했으며 함경남도 신포시 마양도 잠수함기지에서 출발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남포에 집결한 전투인원들을 환송하는 연회장에 김정일을 배동하여 김중린.이하일이 참가했으며 김정일은 당시 전투원들과 기년사진을 찍고 그들을 고무하였다. 이날 환송에서 김정일은 군인들과 기념사진을 찍었으며 그 자료는 현재 평양시 룡성구역 룡추2동 대남 사적관 지하전시실 2관에 보관되어있다. 환송회를 마친 남파 인원들은 1천의 대형 뜨랄선에 승선하여 남포항을 출발하였다.


 
당시부터 남파된 부대의 전체 지휘는 정찰국 5부장 이하일에 의해서 주도되었다. 남포루트를 통해 침투되었던 당사자들은 공해상에서 탄광복같은 민간인 복장을 하고 남한 서해안의 백암이라는 지명으로 불리는 지역으로 들어갔다고 증언하였다. 당시 총책 이하일은 공해상에서 광주현장에 침투된 무장인원들을 지휘하였다.


현장을 총괄 지휘하던 이하일은 계엄군에 의해서 광주정세가 역전되자 인원들의 철수를 지시했으며 1980525. 부상인원을 포함한 약 400명 정도의 남파되었던 인원들이 1차로 남포항으로 도착했고 나머지 인원70여명은 광주에서 죽은40여명의 시신에서 일부 부위만을 채취하여 중부전선인강원도 철원군 상요리 일대의 전선을 넘어 귀대하였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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