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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통령, 5.18의 임 윤상원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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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만토스 작성일16-05-14 08:32 조회3,83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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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통령, 5.18의 임 윤상원을 확실하게 공부하십시오


최근 더민주당의 원내대표이자 전설적인 운동권 투사였던 우상호 의원이 청와대에서 대통령과 회동에서 5.18의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을 기념식 제창하자고 요청했다고 한다. 참으로 기가 막히는 국가적 재앙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그 노랫말 속의 임은 바로 5.18폭동의 주모자 한 사람인 윤상원을 뜻하며, 그는 1980 5.18을 기획하고 계엄군에 맞서 광주를 해방시키겠다고 끝까지 맞서 싸우다 스스로 수류탄으로 자폭했던 공산주의 혁명조직 남민전의 전사였기 때문입니다.
 

 

그런 자를 임으로 추앙하는 노래를 부르자는 야당의 주장에 박근혜 대통령이 만약 승인한다면, 대한민국은 상징적으로 북한이 원하는 대남적화통일이 사상적으로 완성되었음을 암시할 뿐만 아니라,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북한 식 민족민주주의 혹은 인민민주주의로 변질되어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시간이 갈수록 국가관에 혼란을 불러 일으켜 이승만이 건국한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은 사라지게 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허가 하기 전에 윤상원이란 인물을 먼저 확실하게 알아 보아야 할 것입니다. 

 

1. 빨치산 박현채의 후예, 공산주의혁명조직 남민전 전사 윤상원 

1980 5 21일 전남도청을 점령한 후, 5.18윤상원이 이끌었던 빨갱이 남민전의 조직 명이 민주구국투쟁위원회였으며, 그것을 5.18측에서는 전남민국혹은 광주공화국이라고 불렀고 3일 천하로 끝난 그곳이 바로 대한민국 통치를 벗어난 임시혁명정부 조직이었으며, 그들이 말하는 광주정신의 열매였다. 그 흉악한 반란의 정신이 바로 광주정신이며, 그 반역음모의 정신을 감추고 마치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민주화 정신이라도 되는 듯이 아직도 5.18세력과 정치판의 무식한 기생충들이 광주정신을 함부로 지껄이고 있다 

 

5.18광주정신은 빨치산의 민족민주 정신이요, 김일성의 대남적화통일을 위한 민족민주 정신이었다. 5.18민족민주, 빨치산 민족민주, 김일성 민족민주가 손발이 척척 맞아 떨어지는 발언들을 맞추어 본다. 

민족민주 운동은 자기 나름의 요구를 가지고 그것을 확고히 지키고 대응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만이 민족민주 운동을 보다 큰 정치세력으로 키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원조빨치산 박현채, 1993, 88)

 

민족민주화 횃불 대행진을 하는 것은 중략- 우리민족의 함성을 수습하여 남북통일을 이룩하자는 뜻이며….” (광주매일, 正史 5.18, 박관현의 민족민주화 발언, 1995, 122) 

광주정신은 민주와 통일에 대한 광주인민봉기자들의 열망으로 수령 김일성을 통일조국에 모시고 그 따사로운 품속에 안기려는 숭고한 열망으로 굽이쳤다.” (주체의 기치에 따라 나아가는 남조선인민들의 투쟁, 조국통일사, 1982, 65) 

“5.18은 자주와 민주, 평화통일을 상징한다” (2005 6.15민족통일대축전, 광주에서 김영대 북한측 단장의 발언) 

 

2. 북한특수군, 빨치산, 남민전 합동의 무장투쟁, 5.18 폭동반란 

1980년 최규하 과도정부 퇴진을 압박하며 전국적 무력시위를 예고함으로써 전국계엄 선포를 유도했고, 계엄하에서 시위를 하는 것부터 불법이었는데 광주 시위는 처음부터 계엄을 인정하지도 않았다. 그럴 때 정부는 무슨 조치를 취해야 하는가? 정부가 항복하고 김대중 세력에게 권력을 이양해야 하는가 아니면 계엄을 선포하여 시위를 진압해야 하는가? 당연히 전국계엄을 선포하고 계엄법에 따라 시위를 진압하는 것이다. 

 

5.18폭동반란이 그렇게 시작되었는데, 5.18세력은 이제 와서 국군(계엄군)의 잔인한 시위진압을 그들의 불법시위를 합리화 하기 위한 최우선 구실로 내세운다. 계엄군에 맞서 총기로 무장하고 전투를 벌였던 5.18폭도들은 사활을 건 국군과의 전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518일부터 21일까지 전남도청을 포기하고 목숨을 건 탈출을 보였던 경찰과 계엄군을 5.18반역세력과 종북세력 그리고 비겁한 언론들은 그저 앵무새처럼 잔인한 살인마 계엄군이라고 읊어댄다. 과학은 사라지고 유언비어와 카더라 통신에 전염되어 혼이 사라져 마치 좀비들의 음산한 지옥으로 변해버린 듯한 대한민국이다 

 

3. 무자비한 폭도들의 경찰납치, 화염병, 火攻, 放火, 경찰 살해 만행 

“518 4시경 우리는 다시 법원 쪽으로 갔다. 산수동으로 가는 도로에 경찰차 1대가 서있었다. 파출소를 깨부순 기세로 우리는 쫓아가 돌맹이와 각목으로 두들겼다. 그 안에 타고 있던 10-15명의 경찰들을 인질로 붙잡았다.” (윤기권, 1989) 

“18일에 이미 시위대는 화염병, 보도블럭조각, 식칼, 각목 및 쇠파이프 등을 무기로 사용하였다.” (광주매일. <正史 5.18>, 1995, 146, 180) 

“519, 어떤 청년이 가톨릭센터 차고에서 승용차4대를 끌어다가 차 내부의 의자에 기름을 붓고 불을 붙여서 군과 경찰의 바리케이드를 향해 시동을 건채 밀어 붙였다.” (황석영, 5월 민중항쟁의 기록, 1985, 62-63) 

나는 가두시위에 참여하면서 19일부터 윤상원 선배와 함께 화염병 제작을 위해 시외로 나가 휘발유를 구해오고 녹두서점 뒷방에서 화염병을 만들었다. MBC방송국이 불타던 20일 밤에는 화염병을 가슴에 숨겨 시위대에 전달해 주기도 했다.” (윤경자, 1991, 169) 

함평경찰서 소속 강정웅 경장, 박기웅, 이세홍, 정충길 순경 등 4명의 경찰이 시위대의 차량공격으로 현장에서 숨지고 5명이 중경상을 입었다는 MBC 뉴스가 있는 후, 520일 밤 9시 그 방송국에 시위대가 불을 질렀다.” (김대령, 역사로서의 5.18-2, 10) 

 

4. 계엄군을 무자비하게 살해했던 윤상원과 남민전, 북한군, 광주시민들

갑자기 시위대가 공격해 나오자 상대적으로 적은 공수대원들은 기겁을 하면서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들 중 한 명이 무리에서 떨어져 광주천변을 따라 양림교 쪽으로 도주했는데, 분노에 치가 떨린 시민들이 그를 끝까지 쫓아갔다. 공수대원은 양림교를 지나서 다급한 김에 광주천으로 뛰어내렸다. 바짝 뒤쫓던 시민들이 던진 돌에 정통으로 뒤통수를 맞은 공수대원은 앞으로 푹 고꾸라졌고, 시민들이 던진 분노의 돌맹이가 무수하게 내리 꼿혔다.” (황석영, 5월 광주 민중항쟁의 기록, 1985, 65-66)

 

1250분 갓 지나 난동청년, 탈취한 장갑차로 군 저지선으로 돌진, 계엄군 2명 깔려 사망 장갑차 위 청년 맞아 숨짐.” (한국일보, 1980년 광주사태일지)

 

 

5. 경찰들의 목숨을 건 광주탈출

 

“521일 오후3시가 지나자 승패는 결정지어지는 듯했다. 일부 공수부대는 도청안으로 들어가 장비를 싸는 등 철수할 준비를 하느라 부산했다. 점점 좁혀 오는 시민군의 총성은 공수부대의 M16 총성보다도 더 무섭고 두려움을 주었다. 경찰병력 4천여 명은 몸을 떨며 도청 안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 고심하고 있던 중 경찰국장이 혼자서 헬기를 타고 도망간 것을 알게 되었다. –중략- 나는 무조건 도청뒤 민간인 집으로 들어갔다. 대부분 집들은 사람들이 대피하고 비어있었다. 이미 장롱 등은 헤쳐져 내가 입을 만한 옷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이상한 바지에 와이샤츠, 여자트레이닝을 걸치고, 함께 있던 졸병 한명은 여자 스웨터를 입고 구두에 가방까지 들고 기막힌 변장으로 골목으로 빠져 나왔다.” (박시훈, 1989)

 

 

6. 계엄군 공포에 떨며 도청포기 광주탈출, 윤상원과 북한군이 원했던 광주해방

 

“521: 대대는 일단 조선대에서 철수할 것을 결정하고 차량제대와 육로철수제대로 구분하여 준비한 후 19시부터 1차 차량 제대가 정문을 출발하여 화순방향으로 철수하기 시작했다. 철수 중 2km 지점 건물 지역에 무장폭도가 집중 점거하여 차량대열에 무참히 사격을 가해 대대는 5명의 광통상 입는 등 부상자가 발생했다. – 중략 실종되었던 운전병 1명은 폭도들에게 잡혀 광주 사직공원에서 온몸이 찢겨진 채 변사체로 발견됐다.” (월간조선 2006 5월호, 김일옥 7공수 35연대대장의 체험기에서)

 

 

1980 5.18에 대해 5.18세력과 개념 없는 정치 사기꾼들은 아무 생각 없이 계엄군의 광주학살이라고 떠든다. 5.18경찰과 계엄군의 조준사격은 없었다. 총기에 의한 사망은 대부분 시민군에 의한 총기사용 미숙과 오인사격, 광주침투 북한특수군의 총격에 의한 것이었다. 경찰복과 계엄군 복장까지 갖춘 폭도들이 탈취한 온갖 총기에 의해 발생한 희생자들의 죽음을 계엄군에 뒤집어 씌우는 것 또한 용서할 수 없는 범죄행위다. 

 

 

전국계엄 하에서 계엄군에 맞서 전쟁을 치른 5.18광주 폭도들의 진압에 실패하고 공포에 질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비참한 몰골로 거지 같은 광주탈출을 보였던 대한민국 경찰과 국군(계엄군)을 향해 虐殺者라고 떠드는 인간들은, 이제 더 이상과 殘忍 無道했던 광주폭도들의 만행을 용서해서는 안 된다. 맞아 죽고 차에 치어 죽고 총에 맞아 죽어간 경찰과 계엄군은 대한민국의 비참한 패잔병이었다. 국군에 누명을 씌우지 말라.

 

 

7. 남민전 전사 윤상원은 광주해방을 위해 80만 광주시민을 인질로 잡았다

 

526일 밤 1150, 계엄군의 도청 탈환작전을 감지한 윤상원의 꼭두각시 시민군수습위원장 김종배가 중앙청 상황실을 불러 긴급하게 협박한다. “만약 계엄군이 들어오면 우리는 다이너마이트로 자폭한다”(황석영 1985, 236).

 

그날 낮에 정시채 부지사가 허규정과 나를 불러 계엄군이 곧 진주 할 텐데 내가 미리 귀띰을 해 줄 테니까 학생들은 모두 빠져 나가라고 했다. ‘만약 계엄군이 진주하면 도청 지하실에 있는 폭약을 폭파시키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도청 지하실 폭약은 계엄군 프락치에 의해 이미 뇌관이 제거된 상태였다”(김종배, 1989)

 

 

윤상원은 도청에 계엄군이 재진입 한다는 정보를 듣고는 26일 밤 늦게 도청 사수를 위해 남아 있는 고등학생들에게 카빈 소총과 수류탄을 직접 지급하여 무장시킨다. 27일 새벽 3시경 도청 지하실에 장치한 TNT의 뇌관이 모두 제거된 사실을 알고는 늘 강조했던 수류탄 자폭 의지를 더욱 굳히게 되고 학생들에게 자폭정신을 강조했다.

 

“27일 새벽2시 가까운 시간이었다. 도청 안에 비상을 걸고 박영순(. 송원전문대)과 이경희(, 목포전문대) 두 여학생을 데모진압용 가스차에 태워 시민들에게 방송하도록 시켰다. 계엄군 진입을 알리는 두 여학생의 가두방송이 나가자마자 총성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때가 215분이었다고 기억한다. 우리는 수류탄과 실탄을 새로 지급하고 학생, 시민들을 도청 곳곳에 배치시켰다.” (김종배 1989, 참조: 월간조선특별취재반, 1988)

 

 

8. 윤상원은 계엄군이 죽이지 않았고, 수류탄으로 자폭 사망했다

 

“527일 아침 전남도청 뒤뜰에서 윤상원의 부검이 실시되었고, 이 검시에는 광주지방검찰청 검사 김기준, 조선대학교병리학교실 의사 박규호와 배학연, 경찰관 박경호 순경, 군검찰관 김이수 중위, 그리고 군의관 박동철 대위 등이 참여했다. 이때 작성된 검시 내용에는 사인이 우측 하복부 자상 및 하악골 우흉부 등 3도 화상이었다.” (김대령, 임을 위한 행진곡, 250)

 

그의 檢屍 에는 자상과 화상, 그리고 탈장이라고 밝히고 있으며 그의 시신 또한 검게 그을려 있었다.” (김영택 1996, 217) 

 

윤상원은 도청 사수를 결정하고 고등학생들에게 수류탄을 나누어 주며 자폭을 다짐했었는데, 그 수류탄을 윤상원도 오른쪽에 항상 차고 있었고, 그는 폭동기간 동안의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로 도청에서의 시민군 총격 소리에 놀라 졸도하였으며, 동시에 자신이 차고 있던 수류탄을 터뜨려 자폭을 시도했었다는 것이 이상과 같은 기록에서 명확하게 드러난 셈이다. 용서 받지 못할 어둠의 세력이 국민들에게 감추는 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상원이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사망했다고 떠들어 대는 좀비들의 외침은 과학적 사실을 외면한 무당들의 굿판에서 외치는 주문(呪文)일 뿐이다 

 

거짓과 유언비어 그리고 선전선동이 몸에 밴 5.18어둠의 세력은, 공산주의 빨치산의 혁명과 테러리즘으로 생애를 마친 윤상원을 5.18의 임으로 만들어 놓고, 그의 죽음마저도 계엄군의 총격에 의해 희생되었다고 역사적 사실을 왜곡날조하고 있다. 부처님 오신 날, 저 몹쓸 5.18중생들도 혹시 절간을 찾아 두 손 모을까? 상상을 말자이상.

2016. 5. 14. 만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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