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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대에 선 박남선, 심복례, 5.18사기극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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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7-07-10 22:46 조회4,35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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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증언대에 선 박남선, 심복례, 5.18사기극


2017.7.7.
광주 지법 손해배상 청구소송 마지막 증인신문공판에 섰다. 그는 재판부 판사들 앞에서 가오를 세우려는 듯 막무기내로 내가 시민군 대장이었다고 허세를 부렸다. 그리고는 제71광수가 들었던 M16 유탄발사기와 무전기에 대해 우리측 변호인이 묻자 전혀 아는 바가 없다는 요지의 답을 했다. 유탄발사기의 용도도 몰랐고, 방아쇠가 몇 개인지 조준용 가늠쇠가 몇 개인지 전혀 몰랐다. 무전기에 대해서는 일체 기억이 없다 답했다.  

우리 변호인은 심복례에게 체포돼 가는 자기 남편 김인태의 사진, 그녀와 함께 찍은 가족사진, 영정사진 등을 보여주면서 이 얼굴들이 당신의 남편 얼굴인가에 대해 물었다. 그런데 76세의 그녀는 이런 식으로 말했다. 몰라유, 난 아무 것도 모른당께요. 눈도 안 보여요. 난 글을 읽을 줄도 모른당께유 

세상과 담을 쌓고 사는 광주 판사들, 이런 증인신문 자료를 놓고 무슨 판결문을 쓸 것인가? 판결문을 쓰는 것은 광주판사들의 독점적 자유다. 하지만 어느 날 그 판사들은 국회청문회에 반드시 불려나와 국민으로부터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아래는 5.18이 광주시민들에 의해 주도된 민주화운동이 아니라는 것을 광주신문 스스로가 증명한 결정적 증거다. 박남선(당시 25세의 골재채취화물차 운전수)은 5.25. 밤중에 형성된 '시민학생수습대책위원회의 상황실장'이었다는 사실,시민군은 광주사람이 도깨비 부대(북한군)를 부르는 이름이었고, 박남선 등은  5월 25일 밤 늦게 형성된 '시민학생수습대책위원회'  멤버였다는 사실이 아래 두개(5.18광주항쟁사의  제75~76회에 여실히 드러나 있다. .

 

5.18 광주항쟁사 - 광주일보

http://heartbreakhotel.tistory.com/242

 

                                  제 75회 무기반납

Historical If. 즉 역사적 가정을 해보자. 5.18 당시 시민군이 계엄군에 무기를 반납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인명피해를 줄이고 항쟁을 평화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을까. 아니면 무방비상태에서 더욱 철저히 당했을까. 23일 오후 1시께 도청상황실 시민수습대책위. "만약 우리가 무기를 자진 반납하지 않으면 계엄군이 시내로 들어오고 광주시민 전체가 몰살당해 피바다가 될 것이다. 한시라도 빨리 무기를 반납하자" "우리의 요구사항이 전혀 관철되지 않는 상황에서 무기를 반납하는 것은 시민들의 피를 팔아먹는 행위다. 무기반납을 절대 불가능하다무기반납 문제를 두고 강경파와 온건파가 팽팽히 맞서고 있다. 

양측 모두 계엄군 철수후 시민군이 총기를 휴대하고 다니는데 대해 상당수 시민들이 불안해 할뿐 아니라 총기사고등 위험부담이 크기 때문에 총기를 회수하자는 데는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었다. 그러나 회수한 총기를 반납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서로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온건파들은 잘 훈련된 계엄군과 결전을 벌이는 것은 대량의 인명피해만 야기할뿐이고 많은 시민들이 이미 지쳐있으며 계엄군으로부터 더 이상의 양보를 얻어낼 수 없는 상황에서 실익을 챙기는 것이 오히려 효과적이라는 논리를 폈다반면 강경파는 회수된 무기를 반납하는 것은 완전투항을 의미할뿐 이제까지의 희생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맞섰다. 

장휴동등 시민수습위측과 김창길 학생수습위원장은 무기반납에 찬성, 김종배(현 국회의원) 학생수습위 부위원장등은 무기반납 반대의 입장에 섰다. "나는 그때 무기를 버리고 평화적인 시위를 하자는 쪽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끝까지 싸우는 것이 옳겠지만 그때 당시는 너무나 많은 인명피해를 봤기 때문에 사태를 수습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같은 입장에 대해 김종배등 학생수습위원들은 "시민이 납득할 수 있는 최소한의 요구조건이 관철된 상태에서 반납이 고려돼야 한다"며 무기반납에 제동을 걸었다경파가 요구하는 최소한의 조건은 대략 4가지.  

희생자에 대한 장례식은 시민장으로 한다 광주항쟁으로 인한 구속자는 전원석방해야 한다 광주항쟁을 폭동으로 보도하고 있는 언론은 공개사과하라 피해자 보상은 철저히 해야 한다 등이다. 

논쟁을 계속하던 지도부는 문제가 타결되지 않자 그렇다면 회수된 무기중 일부를 전교사에 반납, 계엄군의 반응을 본 뒤 결정짓자고 의견을 모았다.수습위는 이같은 방침에 따라 우선 8개항의 요구조건을 결정했다.  

공수부대의 지나친 과잉진압을 인정하라 연행자를 석방하라 계엄군의 시가지 투입을 금지하라 시민.학생의 처벌 및 보복을 금지하라 사망자.부상자의 피해를 보상하라 방송재개 및 사실보도를 촉구한다 자극적인 어휘사용을 금지하라 시외통로를 열어라.  

요구조건을 결정한 김창길씨등 수습위 대표들은 23일 오후 그동안 회수된 무기중 2백여정을 갖고 계엄사를 방문했다. 이들은 "계엄사측에서 요구조건에 대해 확실한 보장만 해준다면 목숨을 걸고 무기를 회수하겠다"며 계엄사의 입장변화를 촉구하지만 계엄사는 묵묵부답이었다. 계엄군측은 위의 요구사항은 상부에 보고해야할 사항이지 자체적으로 결정할 일이 아니라면서 확답을 회피하며 연행자 34명을 석방했다. 

수습위 협상대표는 34명의 연행자 석방이란 전리품(?)을 가지고 도청으로 돌아왔으나 수습위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온건파들은 협상이후 무기회수에 박차를 가했지만 강경파들은 요구조건을 하나도 들어주지 않은 상태에서 34명을 석방한 것은 기만책에 불과하다며 강경투쟁으로 선회했다이를 계기로 입장을 달리한 수습위는 분열하고 새로운 항쟁지도부가 등장하려는 조짐이 일기 시작했다. 

한편 도청 수습위가 무기회수에 적극 나섰을 때 광주일원에서는 상반된 활동이 계속됐다. 이미 22일 오후부터 전남도청을 중심으로 무기회수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데도 영암등 광주인근지역에서는 다량의 무기탈취가 계속됐다지도부를 믿지 못하는 일부 시민군들이 광주외곽지역에서 계엄군의 만행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자위를 위한 무기가 더 필요하다며 추가로 무기확보에 나선 것이다23일 오전 10시 영암군 도포에서는 도포지서에 보관하다 급하게 운반중이던 카빈소총과 실탄 214백여발이 시민군들에 의해 탈취되는등 화순.나주.영암 등지에서 무기확보투쟁이 오히려 치열하게 전개됐다. 

도청내에서도 일부 시민군이 이미 무기를 반납하고 떠난 것과는 달리 무기회수 및 반납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광주 외곽지역 방위대를 구성하는가 하면 무기를 추가지급하는 등 결사항전의 의지를 다진다심지어 수습위의 결정에 반발, 회수된 무기를 다시 지급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무기반납을 하느냐 마느냐는 선택사항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무기를 반납했다면 최소한 인명피해는 줄일 수 있었겠지요. 그러나 계엄군이 광주외곽에서 민간인 살상을 서슴치 않는 상황에서 무기반납이란 우리의 생명을 버리는 것과 같았습니다당시 새로운 항쟁지도부 위원장으로 선출된 김종배씨는 당시의 상황이 '선택이 아닌 필수'이었다고 회고했다무기반납을 둘러싼 논쟁은 단순히 무기반납문제에만 그치지 않고 결국 지도부를 개편, 새로운 항쟁지도부를 태동케 한다.

 

                           제 76회 항쟁지도부

무기반납편에서 언급한대로 무기반납에 관련된 논쟁은 새로운 항쟁지도부를 탄생케 한다광주시민이 전남도청을 장악한 뒤 도청을 무대로 활약한 지도부는 대략 4개 그룹.  

먼저 시민수습대책위원회. 장휴동.최한영(독립운동가).박윤종씨(시장)등 민관합동으로 구성된 15인수습위 그룹은 22일부터 24일까지 전교사측과 협상을 주도하는등 나름대로 수습활동을 폈으나 22일 오후 시민궐기대회를 기점으로 투항주의로 몰린후 지도력에 큰 상처를 입고 25일부터는 활동을 중단했다. 

두 번째 그룹은 양심적 재야명망가를 중심으로 한 '남동성당'수습위. 홍남순.조아라.이애신.송기숙.명노훈.이기홍씨.김성용신부 등을 중심으로 한 이들은 도청시민수습위가 투항주의로 흐르고 있다며 도청수습위에 참여를 기피했던 세력

세 번째는 학생수습위. 명노훈.송기숙교수를 고문으로 하고 위원장 김창길, 부위원장 김종배, 총무 정해민, 대변인 양원식.허규정 등 15명을 중심으로 결성돼 23일 오전부터 장례.차량통제 등 실질적인 질서유지를 담당하는 등 항쟁 전반기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네 번째는 도청에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지만 윤상원.정상용(국회의원).김영철.정현애 등 학생운동 그룹. 이들은 항쟁초기에는 녹두서점과 YWCA를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학생수습위원회를 지원하는 한편 잠적해 있던 학생운동권을 규합하는데 주력했다. 항쟁후반부 학생수습위를 장악하고 명실상부한 항쟁지도부를 결성, 광주항쟁을 이끈다. 

22일 오후 시민 궐기대회에서 무조건 무기를 반납하자는 주장으로 시민들에게 배척당했던 시민수습대책위원회는 23일 위원중 5명이 사퇴함에 따라 전남대.조선대생 10명씩을 추가, 30명으로 확대개편됐다남동수습위도 23일 도청 수습위에 합류키로 하고 도청을 방문했으나 세부적인 문제에 대한 이견으로 완전 합류에는 이르지 못했다

5.18 당시 활동했던 제세력을 통합하는데 걸림돌은 물론 무기반납문제24일 밤 9시 실질적으로 항쟁을 주도했던 학생수습위가 도청에서 열렸다. 위원장 김창길이 "이날 오후 2백여정의 총을 반납하고 34명의 연행자를 석방케한 협상결과를 이유로 서둘러 무기를 반납하자"고 주장하자 부위원장 김종배는 "지금 이 시점에서 무기를 무조건 반납하는 것은 시민의 피를 팔아먹는 행위다. 계엄군이 피해자 보상등 이미 제시한 4개항의 요구조건을 들어주어야 한다"고 맞섰다

심지어 일부 강령론자들은 의자를 집어던지며 "차라리 이런식으로 무기를 반납하자고 주장한다면 도청을 폭파하고 자폭하겠다"고 완강히 버텼다회의는 자정을 넘어서까지 계속됐다. 25일 새벽에는 학생수습위원들중 일부가 상호의견 충돌로 조직을 이탈하기도 했다. 김창길을 중심으로 한 온건파와 김종배를 중심으로 한 강경파의 의견이 좁혀질줄 몰랐다. 급기야 강경파들이 온건파의 투항주의를 비판하며 새로운 집행부를 구성할 것을 검토하게 된다

이에 앞서 24일 오후2시 전남도청앞에서 열린 제2차 범시민 궐기대회에 참여한 10만여명의 시민들이 보여준 투쟁열기는 강경파의 입지를 넓히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날 도청앞에 모였던 시민들은 이구동성으로 투항주의로 흐르는 수습위를 성토하면서 끝까지 투쟁할 것을 지도부에 요구했다 

김종배는 25일 새벽 윤상원과 논의한 끝에 유인물제작 등 주로 선전활동에 주력하며 YWCA를 무대로 활하고 있던 정상용.윤강옥 등 운동권 출신 1백여명을 도청으로 합류시켰다김창길은 김종배에게 "도대체 당신은 광주를 피바다로 만들 작정인가"라며 거칠게 항의했다한참동안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으나 결국 김창길은 자신의 주장이 더 이상 먹혀들지 않자 학생수습위원장직을 내놓고 도청을 빠져나갔다이렇게 해서 온건파는 도청을 모두 빠져나가고 강경파가 도청을 장악했다. 명실상부한 항쟁지도부가 탄생한 것이다. 

위원장 김종배, 내무위원장 허규정, 외무위원장 정상용, 대변인 윤상원, 상황실장 김남선, 기획위원 윤강옥.이양현 등이 임원으로 선출됐다"수많은 시민들이 민주화를 부르짖다 숨져갔고 목숨을 걸고 도청으로부터 계엄군을 물리쳤는데 아무런 조건없이 무기를 반납하자는 것은 투항이었습니다. 당시 학생수습위에서 숨진 영령들을 시민장으로 하고 피해자에게 보상해 달라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닙니까. 계엄사측이 최소한의 요구를 수용할 기미가 없자 학생수습위 일부와 시민군들이 목숨을 걸고 끝까지 싸우자고 결의한 겁니다. 그래서 새로운 항쟁지도부가 결성된 것이지요. 지금도 그 당시 숨졌던 동지들을 금남로에서 시민장으로 치르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으로 남아 있습니다"  

당시 항쟁지도부 위원장 김종배씨의 회고다. 항쟁지도부는 전교사측과 어떠한 협상도 거부키로 하고 계엄군과의 최후의 결전을 준비했다옥쇄의 결의를 다진 이들은 각 동별 예비군을 동원, 시민군 조직을 강화하는 한편 부패돼 가는 사체를 그대로 방치할 수 없어 29일 장례식을 치르기로 하고 준비를 서둘렀다26일 도청내 시민군들 사이에서도 상당한 동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됐다. 계엄사 측으로부터 "이제 더 이상 기다릴수 없다"는 최후의 통첩이 여러차례 왔기 때문이다이날 오후4시께 마지막 협상차 전교사를 방문했던 조비오신부 조아라여사 등이 항쟁지도부에 들러 "계엄사에서 도저히 요구사항을 들어줄수 없다며 오늘밤 군을 투입한다는데 어쩌면 좋으냐"며 눈물로 협상결과를 설명했다

긴급회의가 소집됐다. "모두 죽더라도 도청에서 죽자"는 결의를 재확인했지만 상당수의 시민군이 도청을 빠져 나갔다. 3백여명의 시민군만이 도청에 남아 27일 새벽을 맞는다.당시 도청을 사수했던 윤강옥씨(47.5항동 회장)"25일 항쟁지도부결성은 처음으로 총을 들었던 시민군과 지도부의 뜻이 일치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도청을 접수한다는 최후통첩이 왔어도 피하지 않고 목숨을 내던졌던 그 자체가 광주항쟁 정신과 모든 것을 같이합니다"라고 도청 마지막날의 그 비장했던 분위기를 전했다. 

 

2017.7.10.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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