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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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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09-12-14 19:17 조회20,00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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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2 요약 


12월 12일, 오후 6시30분, 전두환은 수사국장 이학봉을 대동하고 국무총리 공관에서 집무하고 있던 최규하 대통령에 가서 정승화 연행에 대한 재가를 요청했다. 당시는 정승화에 대한 의혹이 사회적으로 확산돼 있었고, 이러한 것은 극비사항이기 때문에 곧바로 대통령에게 가져갔다. 전두환은 재가가 쉽게 나리라 생각하고 무조건 7시에 정승화를 체포하라는 사전각본을 짰다. 그런데 의외에도 최규하는 국방장관을 앉힌 자리에서 재가할 것을 고집했다.


정승화를 체포하는 일은 원체 큰일이라 전두환은 평소 군에서 여론을 이끌 수 있는 9명의 장군을 보안사 정문 맞은편에 있는 수경사30단으로 초청하여 재가가 끝나는 대로 체포의 당위성에 대해 설명하려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승화와 가까운 장태완, 정병주(특전사령관), 김진기(헌병감)에게도 따로 설명해줄 요량으로 신촌만찬을 준비했다.


한편 허삼수와 우경윤 등은 4명의 보안사 서빙고 수사관들을 태우고 7시05분에 정승화총장 공관으로 갔다. 서빙고로 가자는 대령들의 권고를 받은 정승화는 순순히 응하지 않고 소리를 지르며 저항했고, 이로 인해 그의 부하들과 수사관들 사이에 총격전이 유발됐고 그의 부하들과 범수대 대령이 중상을 입었다. 그 자신이 한 때 보안부대장을 했으면 저항해야 피해만 발생한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을 터인데도 불필요한 저항을 하다가 부하들을 다치게 한 것이다. 결국 박 수사관이 응접실의 유리창을 깨고 들어가 M-16소총으로 위협하고서야 순순히 체포에 응했다.


한편 국방장관 노재현은 대통령이 빨리 오라는 호출명령을 받고도 이리 저리 피해 다녔고, 피해 다니는 동안 군에는 지휘공백이 발생하여 정승화 군벌과 30단 군벌 사이에 불필요한 긴장이 유발됐다. 긴장이 일자 불길한 생각이 든 5명의 장군은 밤 9시 반에 대통령에 가서 정중히 인사를 하고 사태의 심각성을 설명하면서 재가를 빨리 해달라고 간청했지만 대통령은 ‘장관 오면 해줄게’ 하고 담소들을 나누었다. 3군사령관 이건영, 특전사령관 정병주, 수경사령관 장태완, 총장 권한 대행인 윤성민 참모차장 등 수도권 실세들이 나서서 30단에 모인 장군들을 무조건 반란군이라 규정하면서 병력을 동원하고, 30단과 청와대 지역을 전차포와 야포로 융단공격하려 하고, 상대방 장교들을 체포 구금함은 물론 장교들의 이름을 지정하여 사살명령까지 내리고, 대통령을 납치하여 정승화를 구하고, 무장헬기로 정승화를 구출하자는 막다른 단계에까지 이르다가 전두환에 의해 진압되고 체포되기에 이른다. 


이리저리 숨어만 다이면서 대통령의 호출에 불응한 노재현은 새벽 1시, 제1공수여단과 국방부 옥상에 배치됐던 수경사 병력 사이에 발생한 총소리에 겁을 먹고 부관과 함께 국방부 건물 지하 1층 어두운 계단에 숨어 있었다. 대통령과 함께 하루 밤을 새운 신현확 총리는 참다못해 자기가 나서서 노재현을 찾아오겠다며 국방부로 향했고, 이에 공수대원들이 국방부 건물을 샅샅이 뒤지다가 새벽 3시50분에 계단 밑에 숨은 장관을 발견한다. 총구를 겨눴던 병사들은 “나 장관이다”하는 말에 경례를 한 후 장관실로 모셔온다. 신현확은 장관과 이희성과 국방차관 김용휴를 태우고 총리공관으로 갔다. 노재현은 보안사에 들려 재가문서에 스스로 결재를 한 후 대통령에 가서 꾸중을 듣고 재가를 얻었다. 4시30분에서 05시 10분 사이였다. 최규하는 서명란에 05:10분이라 쓰고 서명을 했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1996-97년에 진행된 역사바로세우기 재판에서는 전두환이 죄 없는 정승화를 체포하고 정식 지휘계통에 있던 윤성민-장태완이 정승화를 풀어주라는 명령에 불복하면서 5명의 장군을 보내 대통령을 협박하고, 공관 주변을 경계하는 병사들에 의해 대통령에 겁을 주면서 새벽 5시에 재가를 강요했고, 무단으로 병력을 동원했기 때문에 군사반란이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1996.7.1. 제18회 재판정에 나온 신현확 전 총리는 장군들은 예의바르게 인사를 했고 정중하게 건의를 한 후 돌아갔으며, 대통령과 하루 밤을 새우는 동안 공관 경비병을 의식한 적은 전혀 없다고 증언했다. 12.12가 없었다면 시국은 정승화-김재규가 주도한 쿠데타 세상으로 연결됐을 것이다.  


역사바로세우기 재판부는 12.12를 군사반란으로 규정했다. 하나회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가 권력을 잡기 위해 무력시위로 대통령을 협박하여 대통령의 기능을 불가능하게 하면서 30경비단에 반란군 지휘부를 설치해놓고, 윤성민-장태완이 이끄는 정식 지휘계통을 와해시키고, 병력을 선제 동원하여 군사반란(쿠데타)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제2심 판결문 10쪽에는 "제 법률 위에 헌법이 있고, 헌법 위에 자연법이 있다"는 대목이 있다. 자연법이란 사회 인식법이고, 사회적 여론이 곧 자연법이라는 뜻이었다. 필자는 이 구절에서 ‘역사바로세우기재판은 곧 여론재판이었다’는 뜻을 읽는다.    


필자는 위 판결내용에 동의하지 않는다. 신군부는 하나회로 구성되어 있지도 않았으며, 대통령을 도와준 사람들은 윤성민-장태완이 아니라 오히려 신군부였다. 윤성민-장태완 계열의 군부는 최규하 대통령을 납치까지 하여 정승화를 풀어주려 기도했지만 전두환 등은 대통령 납치계획을 차단시키고 대통령을 보호했다. 대통령에 상황보고 조차 하지 않고 대통령을 납치하려던 군인들을 놓고는 정식지휘계통이요 충신이라 하고, 대통령을 호위한 전두환 등을 반란군이라 규정한 것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다.

대통령을 호위한 것이 어째서 반란이라는 말인가? 국가가 비상상황을 맞이하여 대통령에 대한 경호를 최고수위로 강화하는 것은 대통령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 대통령에 겁을 주려는 조치가 아니다. 비상계엄 시에 군이 대통령을 삼엄하게 경비하지 않는 나라는 없을 것이며, 이를 놓고 대통령에 겁을 주려 한 행위라 판결하는 나라도 대한민국 말고는 없을 것 같다. 그런데 매우 황당하게도 대한민국의 검찰과 재판부는 이를 대통령에게 공포감을 주어 정승화 체포에 대한 재가를 얻어내려는 폭력인 것으로 단죄했다. 보안사령관으로부터 초대를 받고 30경비단에 안내된 장군들이 그들도 예측하지 못했던 위험한 상황을 맞아 사태수습을 위해 노력한 것을 놓고 반란행위라 규정한 것 역시 군 상식에 비추어 보나 자료들에 비추어보나 억지로 보였다. 육군본부로부터 혼란스러운 명령을 받은 1공수여단 부여단장이 명령의 참뜻을 알아내기 위해 참모 두 사람을 지프차에 태우고 나선 것을 보고 지레 놀라 정식 지휘본부인 육군본부 벙커를 버리고 수소를 이탈하여 체신도 없이 수경사로 도망간 장군들을 가리켜 정식 지휘계통에 있었던 장군들이라 한 것도 군 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정식 지휘본부를 버리고 도망간 체신없는  장군들을 누가 따르려 할 것인가?


재판부는 일사부재리를 규정한 헌법을 유린하고 유죄판결을 받은 정승화에 재심 절차 없이 무죄 판결을 내렸다. 전두환이 죄 없는 정승화를 끌어다가 고문을 가하여 죄를 뒤집어씌우고 대통령에 겁을 주어 재가를 받아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 자료들을 분석해 보면 이 판결에는 많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필자가 보기에는 정승화에는 죄가 있었고, 전두환이 대통령에 정중했다는 증거는 있어도 협박을 했다는 증거는 없다. 만일 정승화를 그냥 두었다면 무슨 일이 발생했을까? 당시 정승화는 김재규 사람이었고, 군에는 정승화와 김재규가 심은 군벌이 기라성 같이 포진해 있었다. 정승화를 체포하지 않았다면 당시의 대한민국은 김재규-정승화가 이끄는 혁명위원회 치하에 들어가 지독한 독재를 당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승화를 체포한 것을 놓고 군사반란이라 규정하는 것은 김재규-정승화에 의한 새로운 쿠데타 정권이 발생하도록 방치했어야 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재판부는 정승화에 대해서는 일사부재리 원칙을 무시하고 기존의 판단력(기판력)을 뒤집은 반면, 김대중내란음모 사건에 대해서는 1980년의 기판력을 그대로 존중했다. 정승화가 받은 내란방조죄를 그대로 놔두면 12.12는 정당한 것이 된다. 내란방조죄라는 큰 죄를 범한 범인을 체포하여 법정에 세운 것을 놓고, 어째서 사전재가를 받지 않았느니, 영장발부를 왜 늦게 발부받았느니 하는 등의 사소한 시비는 시비를 위한 시비에 불과한 것이 된다. 따라서 12.12를 반란죄로 몰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승화에 무죄를 내려야 했을 것이고, 그래서 정승화에 대해서는 일사부재리 원칙을 무시하고 1980년의 유죄를 무죄로 뒤집었어야 했다. 역사바로세우기 재판에서 정승화와 김대중 모두에 대해 기판력을 뒤집으면 사회적 충격이 유발되고 비난이 거세질 것으로 염려한 나머지 정승화 한 사람에 대해서만 일사부재리 원칙을 유린했을 것으로 짐작이 간다. 그러나 여기에는 상당한 문제가 있어 보인다.

역사바로세우기 재판부가 본 사건 판결을 내린 시점에서 보면 김대중내란음모사건에 대한 1980년의 판결과 역사바로세우기사건에 대한 1996년의 판결이 양립한 것이다. 즉 5.18은 김대중이 내란목적으로 일으킨 음모이기도 하고, 동시에 헌법을 수호하기 위해 결집한 광주시위대의 정당한 국민저항권이기도 한 것이다. 1997년 4월 17일 대법원 판결 시점에 이 두 개를 놓고 연결해보면 “김대중이 내란목적으로 일으킨 5.18은 헌법을 수호하기 위해 결집된 광주시위대의 정당한 국민저항권”이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김대중은 1980년에 내란목적으로 5.18 시위를 일으켰는데, 그 내란을 1997년 4월 17일 시점에서 보면 국가헌법을 지키기 위한 정당한 행위였다.”는 기막힌 말이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김대중의 내란행위가 성공했어야 옳았다는 말이 되는 셈이다. 재판부가 국가의 정체성을 바꾸는 매우 중요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쿠데타? 정승화를 연행한 것은 하나회와는 아무 관계없는 이학봉 수사1국장의 반복된 건의에 의해 이루어졌고, 연행에 참여한 인원들도 총을 가진 전투부대원들이 아니라 수사요원들이었다. 7명의 수사요원을 가지고 시작하는 쿠데타는 세상에 없다. 쿠데타를 일으키려 했다면 대통령 재가를 받을 필요가 없었으며, 윤성민과 장태완이 병력을 출동시키고 난동을 부릴 때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초저녁에 병력을 동원하여 주요 전략목표들을 장악하고, 저항이 예상되는 세력들을 잡아들였을 것이다. 신촌만찬장에 있었던 장태완, 정병주, 김진기 등 반대 세력을 잡아가야 했을 것이다. 쿠데타의 주모자라면 대통령부터 체포해야지 어째서 대통령에 두 차례씩이나 가서 예절을 갖추면서 재가를 요청하고, 대통령과 함께 노재현 장관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대통령과 마주 앉아 시국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새벽 5시까지 노재현 장관이 나타나기를 초조하게 기다리는가? 참으로 희한한 쿠데타도 다 있다는 생각이 든다. 


더욱 황당한 판결은 이학봉과 전두환이 사전에 쿠데타를 모의했다는 판결이다. 이학봉은 전두환의 부하다. 이학봉은 전두환에게 정총장의 연행조사를 여러 차례 건의했고, 전두환의 명령에 의해 연행계획을 수립했다. 정당한 업무관계로 결재판을 들고 왔다 갔다 한 것을 놓고 재판부는 전두환과 이학봉이 쿠데타를 위해 사전 모의를 했다고 판결했다. 9명의 장군들은 멋모르고 보안사에 초대되어 왔다가 30경비단으로 옮겨가 예기치 않은 상황을 맞이하여 문제를 수습하려 했던 장군들에 불과했다. 이를 놓고 반란군 사령부라 하는 것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12월 12일 당시 최규하와 함께 밤을 샜던 신현확 총리는 장군들이 대통령 앞에서 예의를 깍듯이 갖추었다고 진술했다. 그런데 판결문에는 장군들이 대통령을 예의 없게 대했다고 되어 있다. 신현확은 본인이나 대통령이 공관을 지키는 무장 경비 병력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고 했는데도 판결문에는 대통령이 무장경비병들로부터 공포감을 가졌다고 되어있다.

노재현과 신현확 그리고 이희성은 대통령이 스스로 판단하여 재가를 했다고 증언했지만 판결문에는 공포감을 주고 협박하여 재가를 받아냈다고 되어 있다. 국방장관 노재현은 그가 국방부 청사 1층 계단에서 병사들에게 발견되었을 때 병사들이 경례를 했고, 그 스스로 국방장관실로 갔다고 진술했는데도 판결문에는 병사들이 체포하여 장관실로 연행했다고 되어 있다. 윤성민 참모차장이 전두환에게 “총장을 원위치 시키라”는 명령을 한 바 없는데 판결문에는 전두환이 윤성민 차장의 명령을 거역했다고 되어 있다.      


윤성민 차장이 비상을 발령했을 때 경복궁에 있던 장군들은 너나없이 부대에 전화를 걸어 이상 유무를 확인하고 부대장악을 잘하고 있으라 당부했다. 이는 지휘관들의 생리요 의무다. 또한 ‘진돗개 하나’는 대간첩작전에서 최고 수위의 비상수준이며 그 자체가 출동준비명령이었다. 이를 놓고 재판부는 경복궁 장군들이 쿠데타를 위해 출동준비명령을 내렸다고 덮어씌웠다. 쿠데타를 위해 출동을 계획했다면 30경비단에 모였던 장군들은 그 자리에 모여 있을 것이 아니라 각자의 부대에서 출동준비를 갖추게 한 다음 약속한 신호에 따라 출동했어야 말이 된다. 자료들을 보면 정승화가 전두환을 보안사령관에서 해임하자고 노재현 장관에게 넌지시 던져봤던 날짜는 12월 9일이고, 전두환이 이학봉에게 총장을 연행하라고 지시한 날짜는 그보다 3일 전인 12월 6일이다.

그런데도 재판부는 전두환이 12월 9일에 처음으로 장관과 총장 사이에서만 발설됐던 경질소문을 듣고 선수를 쳐서 정승화를 연행했다고 판결했다. 전두환이 무당처럼 12월 9일에 장관과 정승화 사이에 그런 말이 나올 줄 미리 알고 3일 전인 12월 6일에 체포를 계획했다는 것이다. 재판에 귀신이 등장한 것이다. 12.12와 하나회는 아무런 연관이 없었다. 9명의 장군 중 하나회는 3명뿐이었다. 그런데 재판부는 하나회가 12.12를 주도했다고 판결했다. 검찰실에서나 법정에서 검찰이 한 결 같이 묻는 질문은 “그 때 권총을 찼었느냐”였다. 이 몇 가지만 보아도 판결의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는 솔직히 전두환 장군이 아니었다면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다른 모양으로 존재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47세의 2성 장군으로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순발력과 결단력을 발휘하여 김재규-정승화에 의한 쿠데타를 미연에 방지한 고마운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다.


2009.12.1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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