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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내란역사 공소장 요약 (진리tr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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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진리true 작성일18-07-08 01:42 조회1,36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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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joins.com/article/1543862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history&no=1735630

 

<피고인 김대중>
(1) 1945년 8윌15일 해방직후, 동년 9월경 건국준비위원회의 선전책

(2) 남로당 선전책(임영춘)의 권유- 동 위원회 목포시 지부가입, 목포청년동맹 활동, 

(3) 목포청년동맹 해체

(4) 신민당(후에 공산당·인민당과 합쳐 남로당이 됨) 목포시 당위원장 활동 

(5) 남로당부위원장, 위원장으로 암약

(6) 신민당(이채헌 권유)에 입당, 조직부장 활동

(7) 민주청년동맹(공산계열의 행동전위대원 집단)  목포시 지부가입, 부위원장 활동

(8) 1946년10월 1일 위지부원 등이 목포경찰서 남교동 파출소를 습격, 경찰관 살해

(9) 파출소방화 폭동사건의 배후조종 혐의로 구속조사

(10) 한민당 목포시당 부위원장(전처 망 차용수)의 망부 차보륜의 신원보증으로 석방
(11) 1949년 1월경 보도연맹 목포시 지부 가입, 운영위원 활동 

(12) 남로당 섭외부원겸 민주주의 민족전선 부위원장(전남 신안군 임자면 출신) 유재식

     활동자금 제공 

(13) 전남도 경찰국에 체포 10여 일 간 구속조사

(14) 해군 목포 헌병대장 박성걸(현 김대중 경호담당차장)의 신원보증 석방

(15) 북괴지령자 정태묵(임자도 고정간첩)과 2회 접촉 - 김대중 당선지원 지령문

* 정태묵 - 1972·12·8·대법원 간첩죄로 사형판결선고/ 집행된 자

* 1967년 5월 제7대 국회의원 선거 지령을 받고 남파 =  임자도 거점 간첩

* 목포 산정초등 학교에서 교사로 종사하던 위 정태묵의 처의 동료교사- 임자도 출신

 성명 미상을 운동원으로 소개받고 동 선거전략에 따라 선거운동 당선,

(16) 제7대 대통령후보 지명(1970년 9월29일 신민당 전당대회) - 지방대도시 순회연설

 (북괴의 위장평화 통일선전활동에 동조연설)

* 정부비판 - 남북 간의 군사적 우열에만 집착, 의도적으로 위기의식을 조장

* 향토예비군 조직비판 - 수백만 국민을 정치적 군사조직으로 묶어놓음
* 남북간 긴장완화 주장 - 김일성과 대담할 용의

(17) 1971년 대선실패

(18) 1972년 10월11일 지병인 관절염치료구실 - 도일체류

(19) 박정희 정권 7/ l7- 10월 유신 선포

* 반한여론 선전, 정권전복 목표수립, 귀국포기로 해외 반정부 투쟁 

(20) 미국과 일본 왕래(5회) - 1973년 8월 귀국시까지  반한활동

* 각종 강연과 출판 또는 기자회견 - 국제적으로 반한 여론조성
* 1972년 11월10일 동경외신구락부 연설 - 공산주의를 선택하게 될 것

* 1973년 2월23일「뉴욕·타임스」회견

- 남한은 자유도 빵도 없는데 반해, 북한은 비록 자유는 없다해도 빵이 보장

-  나의 이러한 입장은 북한 공산주의자들도 인정

*  동년3월21일 일본「하꼬네」개최 민족통일협의회  -

   소위「베트콩」파단체간부들의 입관법 연수회 강연

- 나의 통일관은 공산당을 죽이는 그러한 반공통일도 승공통일도 아니다. 

- 이북에 김일성 주석을 중심으로 한 엄연한 정권을 인정해야 한다. 

* 동년 4월24일 미국「시애틀」소재「워싱턴」대학 강연

* 1973년 7월6일 미국「워싱턴」소재 「메이플라워· 호텔」개최된

   한국민주회복 통일촉진국민회의 발기대회 강연

- 괴뢰, 괴뢰 하는데 무슨 놈의 괴뢰. 공산주의란 기정사실을 우리는 27년 간이나 무시

- 이북은 공산당으로 안정, 이남은 민주체제도 불안정- 혼란과 불안, 민생고만 극심

- 김일성이 주체성 등을 확립시킨 것은 잘한 일이 아니냐?

- 한국의 6·23 평화통일 외교선언 - 동·서독처럼 남북분단을 영구화하는 것

* 동년 5월18일 미국「샌프란시스코」국제학생회관 강연

- 남북 연방체와 대중경제를 실시

- 경제원조의 부정사용에 대하여 백악관에 이를 협의하여 중단하도록 주장

* 동년 5월21일 재미교포신문「크리아·저널」지 및 동년 7월1일 「한민신보」 대담

- 남북은 한반도에서의 외군철수, 쌍방정권의 인정, 정치·경제분야의 전면적 교류

- 급속한 동질성을 회복, 연방제롤 만들고 통일후의 5년 간은 거국정부를 세워야 한다

* 동년 7월경 일본발간「독재와 나의 투쟁」책자

- 민족의 숙원인 통일을 위해서는 연방제 실시

- 북한주장 남북평화공존과 교류, 민족화해주장 등은 나의 통일관과 일맥상통

- 각종 기자회견·시국강연·책자출판 등을 통하여 북괴의 통일전선과 선전선동에 동조 찬양

* 1973년 7월6일 메이플라워· 호텔회의실 - 재미 반한교포 결성

- 재미 반한 교포 임창영·안범국·동원모·김성동·정기용 등 30여명

한국민주회복 통일촉진 국민회의 미국본부」결성, 명예회장

- 일본(북괴 및 조총련의 지원을 받아 활동하는 반한 세력 준동지)을 집권투쟁지로 선택


<남파간첩과 2회에 걸쳐 접촉>

1. 북한 공산집단 - 정부를 참칭, 국가를 변란할 목적으로 구성된 반국가 단체

가. 재일 조선인 총연합

- 북한공산집단의 지령, 대남 적화통일을 기본목표로 설정 - 반 국가단체

나. 한민통 결성시도 - 1973년7월8일 한국민주회복 통일촉진국민회의 일본본부

 - 미국에서 도일- 한민통 결성준비

* 배동호 - 1971년1월31일경 조총련 지령으로 일본유학생 이동일 포섭, 시도실패

- 동년 7월경 민단에서 제명

* 1972년8월2일 7·4남북공동성명

* 조총련과 야합, 민족통일협의회 결성- 수석의장 활동

-「베트콩」파 단체들을 규합, 반 국가·민단파괴 활동주도

* 김재화 - 1967년5월경 제7대 국회의원 선거시 신민당 전국구후보

- 조총련 자금 반입혐의로 구속조사

- 조총련과 공동으로 한일회담 및 월남파병 반대

* 곽동의 - 김재화의 사위

- 1971년 8윌경 동 김상현으로부터 조총련의 배후조종을 받아 활동한다는 사실

- 1972년 2월경 방일시 주일한국대사관 성명 미상직원으로부터

    북한에 왕래한 사실과 사상적 불순자로 접촉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은 사실이 있는 자

* 정재준 -「베트콩」파 조직자금 지원자

- 민단구 동경본부 단장- 반 국가활동 및 민단파괴공작을 주도

-  7·4공동성명 이후 조총련 동경본부 위원장 한익수와 연계 활동한자

김종충·조활준·김은택·김군부 - 조총련 지령으로 재일 거류민단 조직을 파괴

- 북괴선전활동 정체탄로, 1971년7월경 민단에서 축출된 소위「베트콩」파 등과 일원

- 7·4공동성명 이후 8·15광복절 3·1절 등 국경일과 신년하례행사 등을 조총련과 공동개최

* 조총련 자금제공받아 한민통 결성

- 배동호·김재화·곽동의·정재준 등이 모금한 일화1천7백40만「엔」

* 민족시보 - 배동호가 의장인 민족통일협의회의 기관지

- 북괴선전, 『개정된 북괴헌법 전문』재개로  북괴정치 노선을 선전·찬양

- 한국의 6·23외교선언 비난 -『남북분단 고정화에 절대 반대』라는 북괴노선을 지지

-『고려 연방공화국으로』라는 제하에 김일성 사진과 연설내용을 일면 기재

- 민단활동과 대한민국 정부 시책을 극렬히 비판보도

-  민족시보를 한민통의 기관지로 채택할 것을 결의

* 외환거래법 위반 - 미화 1만「달러」취득 미교부

- 1973년7월13일 동경 소재 「프라자·호텔」피고인의 처남 이성호로부터 취득

 

2. 1973년 8월13일 귀국 - 반정부투쟁 강화

가. 『민주구국 선언문』발표(1976년 3월1일)

* 문익환·이문영·서남동 및 공소 외 윤보선·함석헌 등과 야합

* 명동성당 『정부축출, 3·1운동과 4·19에 쳐들었던 횃불을 다시 쳐들어야 한다』

* 1977년 3월23일 대법원 - 징역5년·자격정지 5년 선고복역

- 1978년 12월27일 형행 정지결정 석방 


나. 국민연합 공동의장 취임 - 시국선언

* 정부비판 - 대정부 불신감 조장과 반 정부의식을 고취

* 1979년3월4일 명동사건 관련자 중심

- 재야 정치인·종교인·해직교수·제적학생 등 반정부 투쟁의식이 강한 자들을 규합선동

 

3. 10·26사태 발생 - 정국불안에 민주회복을 기회로 판단

가. 정권장악 조직구축

* 사조직으로 피고인 예춘호 및 공소외 박성철 비서실 조직

* 이문영주도 정책연구실 운영-  월급 및 운영비 8백만원 지급

* 민주연합 청년동지회조직 - 장남 김홍일 주도 1980년3월18일

- 송창달·권혁중·배기선 등 간부 청년비밀결사 - 운영비1백50만원 지급

* 한국 정치문화연구소」조직

- 동년 3월 중순 피고인 김상현 청년정치지망생 규합 - 금1백50만 원 지급, 

* 민주 헌정 동지회 조직개편 - 예춘호, 김운식, 김종완 등을 공동대표 전국조직 확대정비

 - 김종완에게 운영비 2회 금 50만 원 지급

 

<반 국가단체인 한민통에 간여>

가. 신민당내 복권투쟁 위원회 구성 - 국회의원 박경록·이용휘 및 신민당 부총재 조윤형

* 동월 29일 복권 - 동년3월 초부터 신민당에 복귀,

- 차기 대통령 후보출마 당권쟁취에 주력

- 예춘호에 금1천만 원, 전시 이용희에 금5백만 원 지급

- 신민당 국회의원과 77개 지구당 위원장들의 성분분석 및 포섭공작

나. 동년 2월20일10시경 자가 - 정치활동 강화

*  부마사태는 학생·시민들의 영웅적인 거사

- 10·26사태는 부마사태의 연장선상에서 일어났다.

- 3대 민중운동을 꼽는다면,  동학혁명, 4·19의 의거·부마사태다』

- 『행동하는 양심 김대중』이 새겨진「볼펜」·사진·책자를 준 후 기념촬영


* 동월 20일 18시경 자가 - 반정부의식 고취,  허가없는 정치적 집회

 - 이호철, 한승헌, 공소외 정을병, 양성우, 김병걸 등 문인 20여명과 회합,

- 문인들도 정치에 적극 참여해달라고 권유

다. 동년 3월1일· 복권 기자발표

*『유신체제의 주역들이 과거를 합리화시켜 기득권을 계속 유지시키는 일에 총력』

『심지어는 그들이 계속 집권하지 않으면 중태사태가 발생할 것이라고

  국민 여러분을 협박하기에 이르렀다』

『민주발전을 저해하는 세력이 아직도 있다고 볼 때 우리들은 힘을 합쳐

  그들의 기도를 봉쇄하여야 한다.』

『80년대는 국민여러분이 참으로 나라의 모든 것을 기꺼이 바칠 것을

  다시 한번 다짐하는 바이다』라는 등 국민선동


라. 1980년 3월21일 21시경 자가 - 고은태에 50 만원 지급(문교부 요직 약속)

* 중앙대 총장갈이 데모투쟁 선동지원

* YWCA 수요강좌시간에 「민족혼」강연원고 작성청탁

-『민족혼은 전투적·적극적 의거의 경험에서 과시된다. 억압자와 싸워야 한다.

    침략자와 싸워야 한다. 모순과 싸워야 한다』

 - 동월 26일 19시5분경 YWCA(서울중구명동1가1) 정기 수요강좌

-『민주주의 나무는 국민의 피를 먹고 자란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피와 땀과 눈물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말은 결코

하나의「슬로건」이 아니라 진실인 것이다』

 

마. 동년 4윌7일 신민당 입당 포기

* 신현확 국무총리의 유신비호발언, 정부의 이원집 정부제구상설, 계엄의 장기화

* 대통령후보지명을 위한 김영삼과의 표 대결시 열세판단

* 국민연합과 동 연합의 조종을 받는 복학생단체인 민주청년협의회(민청협) 세력동원

- 학생시위를 폭력시위로 조정,

- 일반국민 가세, 폭력으로 국헌문란, 정부전복 추진

 

 <허가도 없이 정치집회>

가, 1980년 4월10일 17시경 윤보선 자택(종로구안국동8의1)

* 신민당 입당 포기선언 발표

- 윤보선·상 피고인 문익환·예춘호·이문영·고은태· 공소의 심재권 등과 회합

- 김영삼(신민당총재)은 재야인사 영입 문호개방 금지, 시국관 차이 

- 국민연합에 복귀 - 민주회복 투쟁에 전념선언

나, 국민연합의 규약개정, 기구개편 보강

(1) 동일 20시부터 북악「파크·호텔」(종로구 평창동131의1  501호실)

*  문익환, 예춘호, 이문영, 고은태, 김종완, 한완상, 공소의 심재권 등 10여명과 재차 회합

(2) 규약개정 - 3인 공동의장단 중심제에서 중앙상임위원회 중심제로

(계엄령해체, 정부주도 개헌포기, 유신잔당 퇴진, 정치일정 단축, 구속자 석방·복권, 학원자유,

 자유언론실천 등을 실현) - 투쟁전열 정비 강화

(3) 조직확대- 

* 복학생 이현배를 총무국장, 장기표를 조직국장, 심재권을 홍보국장에 각 입명

*  3 인에게 학원 시위 선동임무 부여 - 활동비 조로 매월 금20만원씩 지급합의

* 민주 헌정동지회, 한국정치문화연구소 등의 조직을 확대 강화

* 민주화 운동을 내세워 학생시위 분위기 고조,

* 교외로 유도하여 시민의 호응을 촉구- 대대적인 본격적 시위를 전개

* 우선 조직을 통하여 전국적 여론을 환기시켜  반정부 투쟁의 시기를 고취

 

 <복학생 동원 폭력시위 유도>

 가. 대전「가톨릭」농민회관(1980년4월11일14시15분) - 민주농정 강연

유신 체제 하에서, 신부·목사·재야인사가 감옥에 가서 국민의 인권, 농민의 권리를 위해

기도했기 때문에 10·26사태가 발생했다』

『정치범을 즉각 석방하고 복권시켜야 하며 김지하· 양순직 동지 등이 감옥에 있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나. 한국신학대학(1980년4월16일 11시40분경, 도봉구 수유리 산129)

(1)『도덕정치의 구현』강연

* 사조직-한국정치문화연구소· 민주헌정동지회· 민주연합 청년동지회원 등에게

 강연선전 전단 10만 매를 대학가 및 시내중심지에 살포청탁

* 3만여 명의 청중을 모아 옥외 확성기 설치, 상 피고인 김상현으로 하여금 정혜원 등

  소위 박수부대를 동원- 반정부 투쟁의식을 고취

『박정권은 빨갱이로 몰고 민주인사들을 나라사랑, 자유 사랑한 죄로 공산당으로 만들었다.

특권층은 수억 혹은 수십억 원 이상의 호화주택에 살며,

기천만 원짜리 비단잉어를 기르고 고래수염으로 이쑤시개를 한다.

독재 하에서 감옥에 가고, 고문·연금·공민권 박탈을 당하고,

학원·직장에서 추방되었던 사람들이 새로운 민주정부의 횃불이 되고 중심이 되어야 마땅하다』 

 

다. 크리스천·아카데미·하우스 (도봉구 수유동 소재)

(1) 집권준비 조직구성 모의 - 한국민주제도 연구소』설립추진

* 문익환, 동 예춘호, 동 이문영, 동 고은태, 동 한승헌, 동 김총완 등과 회합

 (2) 동일 17시30분경 귀로에 기독교회관 회합 

* 예춘호, 고은태, 문익환, 한승헌, 김종원, 양심범 가족협의회 회원 조정하 등 15명

 

 [출처: 중앙일보] 김대중 등 24명 공소장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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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최규하 임시정부와 계엄사 군법 결심심판

    1980년 9월11일 결심 공판에서,

    군검찰은 김대중 피고인에게 사형을 다른 피고인에게는 7년에서 20년 사이를 구형했다.

    9월17일 1심 선고 공판에서,

    재판부는 김대중에게는 내란 음모, 국가보안법, 반공법, 계엄법, 외국환 관리법위반죄를 적용하여

    사형을 선고했고

    나머지에 대해서는 징역2년에서 20년을 선고했다.

     

    김대중(55,정치인 사형) 문익환(62,목사 15년) 이문영(53,교수 20년)

    예춘호(52,전국회의원 12년) 고은태(47,시인 15년) 김상현(45, 정치인 10년)

    이신법(30,학생 12년) 이해찬(27,학생 10년) 조성우(30,학생 15년)

    이석표(27,학생, 7년) 송기원(32,학생 10년) 설훈(27,학생 10년)

    김종환(47,정치인 4년) 심재철(22,학생 5년) 서남동(62,교수 2.5년)

    한승헌(45,변호사 3년) 이해동(45,목사 4년) 한완상(44,교수 2.5년)

    송건호(52,전동아일보편집국장 2년) 유인호(54,교수 2년) 이호철(36, 소설가 3.5년)

    김윤식(66.정치인 집행유예) 이택문(45,전국회의원 집유) 김녹영(56,전국회의원 집유) 
     

    2. 전두환 정권의 등장과 일차 감형

    1981년 1월7일 김대중 등 12명은 대법원에 상고했으나 81년1월23일 대법원은

    상고를 기각했다.

    하지만 전두환 대통령은 국민 화합을 위해 김대중을 무기 징역으로 감행하고

    피고인 12명 전원에 감형조치를 취했다.

    3.
     미국 방문조건과  빅딜사면  

    국내에서는 그를 즉각 사형시키자는 여론과 재야세력의 끈질긴 구명운동이 한동안

    팽팽히 맞섰지만, 사형시키자는 쪽이 매우 우세했다.

    그러나 전두환은 1980년 레이건 대통령을 만난다는 조건으로 그를 사형하지 않기로

    미국과 약속했다.

    그 결과 그는 82년2월에 20년으로 감형되었고, 82년12월 형집행정지로 풀려나,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때 옥중에 있던 김대중은 전두환에게 최고의 존칭을 써가면서

    다시는 정치활동을 하지 않을 것이고 국가안보를 허무는 일을 하지 않을 테니  

    신병치료를 위해 미국으로 보내 달라 앙청하는 자필 편지를 보냈다.   

                        전두환 대통령 각하 

    국사에 전념하신 가운데 각하의 존체 더욱 건승하심을 앙축하나이다.

    각하께서도 아시다시피 본인은 교도소 생활이 2년 반에 이르렀사온데

    본래의 지병인 고관절변형증과 이명 등으로 고초를 겪고 있으며,

    전문의에 의한 충분한 치료를 받고자 갈망하고 있습니다.

    본인은 각하께서 출국허가만 해주신다면

    미국에 가서 2 3년간 체류하면서 완전한 치료를 받고자 희망하온데

    허가하여 주시면 감사천만이겠습니다.

    아울러 말씀드릴 것은 본인은 앞으로 국내외를 막론하고 일체 정치활동을 하지 않겠으며

    일방 국가의 안보와 치안의 안정을 해하는 행위를 하지 않겠음을 약속드리면서

    각하의 선처를 앙망하옵니다.

                                                                                         1982년12월13일  김대중

     

    4. 정치재개의 반역정신 회귀

    일단 풀려나자 그는 약속을 뒤집었다.

    83년 7월, 재미 한국인권문제연구소를 개설하여 반정부 활동을 계속한 것이다.

    그 결과 85년 2월 귀국과 동시에 가택 연금을 당하게 됐고,

    가택연금 상태에서도 그는 85년 3월 민주화추진협의회를 만들어

    김영삼과 공동의장에 취임했다.

    87년 5월에는 사면복권이 됐고,  이어서 87년 11월 평민당(평화민주당)을 창당하여

    총재로 취임한 후 제13대 대통령 후보에서 3위로 낙선했다(최신글에서)

     

    광주 5/18 반란혁명에서 생존한 김대중은 18 년후, 제 15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후, 전두환은 김대중-호남민족에게 철천지 원수로, 탄압받는 존재로 전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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