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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진술(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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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0-01-30 21:46 조회1,83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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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 후 진 술  

사건 2016고단2095

 

이 사건은 5개 사건이 병합된 사건입니다. 첫 공판이 시작된 지 무려 37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심리를 종결할 수 있을 만큼 방대한 사건입니다. 이 큰 사건을 공정하게 관리해 주신 여러 재판장님들께 먼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재판과정에서 경계해야 할 점은 [선입견]을 배제하는 하는 것이라 들었습니다. 특히 5.18에 대해서는 증명되지 않은 선입견들이 널리 확산돼 있습니다. 따라서 핵심쟁점에 대해 말씀 드리기 전에 선입견들에 대한 정리를 간단하게라도 정리하는 것이 피고인에 유리할 것으로 생각돼 먼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역사규명이냐 역사분쟁이냐

 

5.18 광주시위대와 계엄군 사이에 벌어졌던 10일간의 무력충돌사건이었습니다. 1980518일은 서릿발 같은 계엄령이 선포되어 무자비한 예비검속이 시작된 날입니다. 그런데 매우 놀랍게도 이날 오전 9:30, 대학생으로 위장한 250여명의 어깨들이 전남대에 진주한 공수부대를 찾아가 감히 가방에 숨겨온 돌멩이를 던지는 이변이 발생했습니다. 5.18은 바로 이 순간에 촉발되었고, 열흘만인 5270523분에 종료되었습니다. 1980년의 대법원이 5.18사건을 재판했습니다. 김대중이 죄인이었습니다. 이렇게 종결된 재판이 1996년 재심절차 없이 다시 열렸습니다. 전두환이 죄인이었습니다. 세월이 변하니 역적과 충신이 뒤바뀐 것입니다. 이처럼 권력이 쓴 역사는 승복력을 상실합니다. 그래서 역사는 객관성이 보장된 공론의 장에서 다투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후 5.18에 대한 표현은 이해집단에 의해 철저하게 봉쇄돼 왔습니다. 5.18 성역화로 이익을 보는 집단이 5.18을 마치 광주의 배타적 권리증이나 되는 것처럼 법 위에 군림해왔습니다. 피고인이 지금까지 받아온 수많은 소송과 집단폭력들이 여기에 속할 것입니다.

 

          5.18이 민주화운동이라는 말은 과학의 결과가 아니라 정치인들의 흥정물


"광주사태" 광주민주화운동으로 표현하도록 당국차원에서 처음으로 허용한 존재는 노태우 정권이었습니다. 1989년 당시 노태우 정권은 여소야대였습니다. 위기를 느낀 노태우는 19901, 3당 합당을 추진했습니다. 합당에 응하는 김영삼과 김종필은 차기의 대통령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 걸림돌이 정호용이었습니다. 정호용을 제거하기 위한 흥정이 진행됐습니다. 정호용을 제거하는 데에는 명분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정호용에 뒤집어씌운 것이 그가 민주화운동을 탄압한 원흉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 과정에서 광주사태의 성격이 광주민주화운동으로 바뀌어졌습니다. 연구결과를 반영해준 것이 아니라 정치인들이 흥정한 것입니다.

 

            대법원도 역대 진상규명위원회도 북한군개입 취급한 적 없습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북한군개입이 없었다는 것은 이미 1997년의 대법원에 의해 판결됐고, 여러 차례의 진상규명 절차를 통해 밝혀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주장은 다 낭설입니다. 1997의 대법원은 전두환의 내란죄를 판결했을 뿐, 북한군 개입에 관한 판결은 하지 않았습니다. 대법원은 [판시사항]에 대해서만 판단합니다. 그런데 1997년의 대법원판결서 [판시사항]에는 북한군 사항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사회에는 이 낭설이 진실인 것으로 알려져 사회적 편견을 형성해왔습니다. ‘북한군개입이 없었다는 것이 수많은 진상규명과정을 통해 이미 규명되었다는 말도 낭설입니다. 그동안의 모든 진상규명 과정에서 [북한군 개입][규명항목]으로 설정된 적이 없었습니다. 역사상 처음으로 북한군개입이 규명항목으로 지정된 곳은 2018.3.13.에 법제화된 [5.18진상규명법] 36항입니다. 36항은 [북한군개입여부]를 규명하라는 살아있는 명령입니다. 두 말 할 나위 없이 이 조항은 피고인으로 인해 반영된 것입니다. 그런데 위 두 개의 낭설을 믿는 여야 의원들과 5.18 성역화를 수호하는 사람들이 합세하여 한국당 지분의 상임위원으로 내정돼 있던 피고인을 제외시키는 자가당착을 범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북한군개입 여부를 규명하라는 명령을 내려놓고,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군 개입을 연구한 유일한 사람을 배제시키는 것은 논리의 일탈행위일 것입니다.

 

                    북한군 개입 여부에 대한 판단권한에 대하여

 

북한군개입여부에 대한 판단은 국방부의 배타적 업무영역입니다. 가장 최근인 2019.2.12. 국방부가 공식적으로 밝혔습니다. 지금까지 국방부는 [북한군개입여부]에 대해 판단한 바 없고, 앞으로 진상규명위가 밝혀야 할 사안이라 밝혔습니다. 따라서 최근 이 사건 관련한 민사사건들에서 광주법원이 북한군개입이 없었다고 판결한 것은 분명 월권일 것입니다.

 

                        광주 스스로도 북한군 개입 인정

 

광주시장 윤장현과 5.18기념재단 상임이사 김양래는 북한군 개입을 입증하는 증언들을 했습니다. 윤장현은 광주시민이 광주교도소를 절대로 공격하지 않았다고 공표했습니다. 그런데 1997년 대법원 판결서에는 1) 교도소에는 간첩수 170명이 포함돼 있었다는 사실 2) 광주교도소는 제3공수여단이 방어하고 있었다는 사실 3) 무장한 광주시위대가 5차례에 걸쳐 교도소를 공격했다는 사실이 기재돼 있습니다. 결국 윤장현 등은 교도소공격을 북한군이 했다는 사실을 논리적으로 증명해 준 것입니다.

 

5.18기념재단 공식 홈페이지에는 [1980522일 오후 3:08분 서울서 온 대학생 500여명 환영행사 거행]이라는 글이 기록돼 있습니다. 역사기념물인 대형 석조 조형물에도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5.18기념재단 상임이사 김양래는 20181012일 이 법정 증언에서 서울학생 500여명의 실체에 대해 [5월단체들은 규명한 바 없다]고 답했습니다.

 

다시 그에게 광주현장 사진 12개를 보여주며, 단련된 몸매에 총기를 자유자재로 다루고 무전기들을 들고 유니폼을 입고 지휘체계가 갖추어지고 조직화돼 있는 현장 주역들이 광주시민이냐고 물었더니, 그는 광주시민이 아니라고 답했습니다. 그 현장주역들이 전두환이 투입시킨 편의대(게릴라)인지 앞으로 연구하겠다고 답했습니다.

 

                    통일부 [주간북한동향보고서] 내용

 

통일부가 매주 발간하는 [주간북한동향보고서]에는 해마다 5월이 되면 북한은 북한 전역의 시--도시 단위에서 5.18기념행사를 성대하게 거행한다는 사실이 반복 기재돼있습니다. 남한의 5.18행사는 광주에서만 하루 열리지만, 북한의 5.18기념행사는 북한 전역에서 여러 날 동안 거행됩니다. 북한에서 최고인 것들에는 영예의 상징으로 5.18글자를 상으로 수여한다는 사실도 기록돼 있습니다. “5.18청년호”, “5.18단조공장” “5.18영화연구소”, 등이 있습니다.

 

통일부 북한자료센터에 가면 김일성이 1989년부터 3년에 걸쳐 제작한 5.18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를 관람할 수 있습니다. 황석영으로 하여금 영화 시나리오를 쓰게 했고, 윤이상으로 하여금 배경음악을 작곡하게 했습니다. 그 주제곡이 님을 위한 행진곡입니다. 그 대가로 김일성은 황석영에게는 당시 화폐로 25만 달러를 주었고, 윤이상에게는 15층짜리 [윤이상 음악당]과 호화주택을 주었습니다. 137에는 조선영화사가 제작한 5.18기록영상이 있습니다. 광주에서 475명이 무리죽음(떼죽음) 당했고 이에 대한 한을 풀어야 한다는 내용이 강조돼 있습니다. 이 어마어마한 몇 개의 사실들만 보더라도 5.18에 북한이 개입되지 않았다고 주장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사건의 핵심쟁점에 대하여

 

사건의 핵심 쟁점에 대해서는 피고인이 수백 쪽에 이르는 답변서들을 이미 제출하였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강조드리고 싶은 내용들을 간단히 정리하고자 합니다.

 

첫째, 탈북자 장철현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장철현은 한국사회에서 장진성으로 통하며 최고의 애국시인으로 추앙받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유명한 탈북자가 노숙자담요에 의해 제382광수로 지목되었습니다. 피고인도 놀랐습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노숙자담요의 분석이 매우 합리적이라 판단하여 인터넷과 출판물을 통해 발표했습니다. 노숙자담요와 피고인은 장진성 한 사람만 광수로 지정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무려 60명 정도의 탈북자들을 광수로 지정하여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2015.10.29. 그때까지 발굴된 30여명의 탈북자들을 간첩혐의자로 국정원에 신고하고 신고필증을 받았습니다. 피고인이 광수로 발표한 60여명의 탈북자들 중에서 고소를 한 사람은 오로지 장철현 뿐입니다. 1960년대 이 나라 최고의 애국자는 탈북자 이수근이었고, 1980년대의 최고 애국자 역시 탈북자 신중철 대위였지만 그들은 간첩으로 종결되었습니다. 장철현 역시 이 나라 최고의 애국시인으로 주가를 올리고 있었습니다. 국정원을 비롯한 정보부서들에서 근무했던 한 사람으로서 이유 있는 의혹을 제기한 일련의 행위를 놓고, 오로지 장철현만의 명예를 훼손하기 위한 고의적 범행이라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장철현은 ‘9살짜리 특수군이 어디 있느냐, 지만원이 미쳤다는 말로 자기 얼굴이 제382광수의 얼굴일 수가 없고, 자기는 위장탈북자가 아니라는 요지로 고소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법정에서 이루어진 무려 4시간 반 동안의 증인신문 과정을 통해 장철현은 위장탈북자였음이 충분히 증명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핵심 이력인 김일성 종합대학을 졸업했다는 말도 거짓이었고, 대남공작 부서인 통일전선부에 근무했다는 것도 거짓이었고 그가 탈북자동지회에 연재한 탈북스토리와 그의 탈북수기 [시를 품고 강을 넘다]라는 책 내용도 거짓이었고, 그의 본명이 장철현이라는 것도 거짓이었습니다. 노숙자담요는 장철현의 얼굴이 왜 제382광수의 얼굴인가를 증명하기 위해 A4사이즈로 제작된 [5.18영상고발] 화보집에서 4개 쪽에 걸쳐 전문가다운 솜씨로 세밀하게 분석을 했지만, 장철현은 피고인을 향해 저 인간 미쳤다며 고성을 질렀을 뿐, 얼굴의 어느 부위가 틀렸다는 등의 논리적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이 부분에서도 피고인에게는 죄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상해혐의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2016.5.19.는 이 사건 첫 공판기일이었습니다. 이 사건 소송을 주도한 김양래가 50여명에 이르는 오월단체 회원들을 인솔해 와 재판정 출입문을 나가는 순간에서부터 피고인에게 집단폭력을 가했습니다. 서초경찰 강력반이 광주에까지 출동하여 8명의 가해자를 특정하여 검찰에 제출했지만 검찰은 그들이 5.18유공자이거나 또는 그 가족들이라는 이유로 불기소처분을 내린 반면, 적반하장으로, 몰매를 맞은 피고인을 상해혐의로 입건하였습니다. 피고인은 베트남전 44개월 참전한 결과 두 가지 국가유공자증을 소지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무공훈장이고 다른 하나는 고엽제로 인한 상이6급 유공자증입니다. 국가유공자는 천대받고 5.18유공자는 법 위에 군림하는 참으로 기막힌 현상이 전개된 것입니다.

 

이 재판부는 폭력현장을 촬영한 동영상을 6차례나 반복하여 살폈습니다. 하지만 피고인이 맞는 장면만 있지 공격한 장면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피고인으로부터 왼쪽 가슴을 맞았다는 백종환은 오른쪽 5번째 늑골에 금이 갔다는 진단서를 제출했습니다. 왼쪽 가슴에 충격을 가하면 오른쪽 겨드랑이 부근에 위치한 5번 늑골에 금이 간다는 황당한 이론인 것입니다. 동영상을 여러 차례 정지해 가면서 신문을 했지만 피고인으로부터 상해를 입었다는 데 대한 그의 설명은 앞뒤가 맞지 않았습니다. 피고인에게 양쪽 어깨와 정강이 그리고 얼굴을 맞았다는 광주여성 추혜성은 동영상에 나타난 바와 같이 피고인을 가장 현저하게 가격하고 소리치고 상욕을 가해놓고도 아무런 증거 없이 피고인으로부터 가격당했다고 주장했고, 검찰은 피고인이 피고인석에서 일어서면서 방청객들을 향해 일괄적으로 광주조폭 빨갱이가 똑같은 배지를 차고 재판정에 다 있구나라는 긴 발언을 해서 폭행을 유도했다고 기소하였습니다. 피고인은 기습공격을 당하기 전까지 공판정을 가득 채운 사람들이 광주사람인 줄도 몰랐으며 그들이 배지를 달고 있는지 살필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습니다. 추혜성이 입었다는 상처는 마지막 증인으로 출석했던 정상훈씨를 5층 복도에서 집단폭행하는 과정에서 생긴 것일 수는 있어도 공안요원의 겨드랑이 속에 보호되고 있던 피고인과는 무관합니다. 설사 50여명 집단으로부터 몰매를 맞는 입장에서 피고인의 몸부림이 있었고, 그로부터 얼마간의 상해가 있었다 하더라도 이는 형법 제21조가 규정하는 정당방위에 해당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이 상해사건 고소행위는 위계행위라 아니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셋째, 전 광주시장 윤장현의 고소사건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사건은 오히려 피고인의 입장을 유리하게 해준 국면이 있습니다. 광주교도소 공격은 절대로 광주시민의 소행이 아니었다는 그의 주장을 1997. 대법원 판결서 내용과 대조해 보면 교도소를 공격한 존재는 오로지 북한군이었다는 결론이 도출됩니다. 이 결론이 뒤집히지 않는 한, 피고인의 북한군개입 주장은 범죄행위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넷째, 광주신부들 이름으로 고소한 사건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고소사건을 주도한 사람은 김양래입니다. 김양래는 4명의 신부를 고소인 명단에 올렸지만 그 중 이영선 신부는 고소자격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1987년 학생신분이었던 사람을 신부였다고 속여서 소송에 가담시킨 이 행위는 위계입니다. 결정적인 위계행위는 1982년에 북한이 살포한 삐라에 게재된 5명의 시체얼굴이 김양래가 1987년에 발행한 화보책 [오월 그날이 다시오면]에 게재돼 있다는 사실에 나타나 있습니다. 피고인측은 이 법정에서, 인터넷도 없던 시대에 북한이 1982년에 삐라에 사용했던 시체얼굴을 어떻게 광주정평위가 획득할 수 있었느냐 물었습니다. 하지만 5명의 고소인들은 함구했습니다. 5구의 시체 사진은 북한으로부터 획득된 것이라고 밖에 달리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화보집에 있는 시체들이 광주시민들이라면 그들에 대한 검안보고서가 제출되어야 합니다. 5.18당시 광주에서 사망한 154명의 명단과 영정사진이 바로 김양래가 관리하던 5.18기념재단 홈페이지에 수록돼 있습니다. 피고인측은 김양래에게 15구의 얼굴이 154명 중 누구들에 해당하는가를 대조해 보았느냐고 물었지만 김양래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엉뚱한 말로 답하였습니다. 결론적으로 공수부대를 비방하기 위해 사용된 시체얼굴들은 광주의 얼굴이 아니라 북한의 얼굴이라는 논리적 결론에 도달합니다. 김양래가 주도한 이 부분 고소행위는 분명 위계행위일 것입니다.

 

다섯째 광수 관련사건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상상을 초월한 억지요 위계였습니다. 이에 대한 정황을 간단히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영화감독 강상우가 제1광수를 찾아내기 위해 만4년 동안 서남지역을 뒤졌습니다. 그 수소문 과정이 2019.5. 개봉된 영화 [김군]에 담겨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5.18의 로고인물인 제1광수를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김군]이라 명명하였습니다. 하지만 제1광수를 보았다는 증언은 있었습니다. 막걸리집 딸로 당시 21세였던 [주옥]이라는 여성이 나타나 상세하게 증언했습니다. 1광수는 7~8명 단위로 광주천변 다리 밑에 천막을 치고 양아치로 생활했다는 점, 차량 위에 있는 제1광수에게 자신이 음료수와 주먹밥을 건네주었다는 점 그리고 사태가 종결되자 흔적 없이 모두 사라졌다는 점을 증언했습니다. 결국 북한군은 남들로부터 의심받지 않는 양아치 신분으로 위장하여 자유롭게 지형정찰을 한 후 작전을 지휘했을 것이라는 그간의 합리적 의혹을 더욱 강화시켜 주었습니다. 더욱 해학적인 것은 5.18유공자가 5,801명이나 되는데 그 중에 제1광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사건 소송에 나선 15명 중에도 자신을 제1광수라고 주장한 사람이 없습니다.

 

광수가 속속 발표되고 이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자 2015.10.부터 6개월 동안 광주시청과 오월단체들이 나섰습니다. 번화한 공간들에 광수사진들을 크게 확대해 놓고 현장의 주역들은 제발 나서달라고 찾았지만 나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고안해 낸 것이 위계에 의한 소송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이 제출한 검찰진술조서를 보면 5.18기념재단이 고소인 한 사람씩 접촉했습니다. ‘이 얼굴이 당신 얼굴 같은 데 소송에 나서라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나선 고소인들이 15명인 것입니다. 위계소송을 주도한 존재도 [5.18기념재단]이었고, 피고인으로부터 24천만 원의 배상금을 지급받은 계좌도 [5.18기념재단] 명의의 계좌였습니다.

 

광수 주장자들 가운데 상징적으로 몇 사람의 예를 간략하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언어소통이 어려운 70대 중반의 해남 여성 심복례가 있습니다. 이 여성은 집총한 수십 명의 어깨들 한 가운데 서 있는 제62광수가 자기 얼굴이라 주장했습니다. 광주법원 이창한 부장판사님은 이를 인용해 주었습니다. 그로부터 약 20일 후 이어진 또 다른 사건에서 심복례는 입장을 바꾸었습니다. 자기는 62광수가 아니라 139광수라 주장하였습니다. 광주의 김동규 부장판사님은 이것도 옳다고 인용해주었습니다. 기록을 보면 심복례가 광주에 올라와 남편의 시신을 확인한 날짜가 1980.5.30.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심복례는 그보다 1주일 전인 1980.5.23.에 촬영된 제139광수가 자기라 주장하였습니다. 광주법원 재판부들은 이 사실을 인지하고, 광주측 변호인들에 심복례는 알리바이가 맞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런데도 막상 판결문에는 그 여인의 주장 모두가 합리적이라고 판결하였습니다.

 

박남선은 71광수가 황장엽이 아니라 자기인데, 피고인이 얼굴을 황장엽 얼굴과 비슷하게 창작해가지고 합성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피고인측은 원본사진이 실려 있는 모 언론사 파일의 위치와 찾아가는 경로를 광주법정에 제출하였고, 광주재판부는 이 경로를 찾아가 확인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광주 재판부는 박남선의 모든 주장이 옳다고 판결했습니다.

 

80대 후반의 노파 김진순이 그 아들 이용충(교도소공격)의 사망사실을 인지한 첫 순간은 1980.6.30.입니다. 경찰서에 진열된 사진과 유품을 보고 자기 아들이 사망한 사실을 처음 안 것입니다. 그런데 그녀는 그보다 무려 37일전인 1980.5.23.에 촬영된 제62광수가 자기라고 주장합니다. 80대 노파는 증인으로 출석하지도 않았습니다.

 

박철은 흔들려서 윤곽조차 알아볼 수 없는 사진들을 내놓고 이 얼굴이 광수얼굴이다이렇게 주장합니다. 어느 곳이 닮았느냐 했더니 장발이 닮지 않았느냐고 했습니다. 박철의 이 흔들리는 사진들은 이 사건 제4회 공판에서 재판장님에 의해 대표적 케이스로 지적된 바 있습니다.

 

이렇듯 광수얼굴과 전혀 닮지 않은 얼굴 사진을 내놓고, 상황적 알리바이도 시간적 알리바이도 증명하지 못하면서 자기가 광수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모두가 위계소송이며, 이 위계 소송은 김양래의 지휘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번에 병합된 사건(2019고단8398)에서 자기가 제73광수라고 주장한 지용의 주장 역시 위계라는 점을 답변서에서 밝혔습니다. 그가 그라고 주장한 제73광수는 광주시민들의 양팔을 꺾어 도청 안으로 연행해가 사살시키는 체포조의 일원이었습니다. 피해자 지용이 이런 체포조의 조원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노숙자담요는 지용의 얼굴이 제73광수일 수 없다고 과학적 매너로 분석하였습니다. 조금 전 신문과정에서 살폈듯이 인중이 다르고, 눈썹이 다르고, 구렛나루가 다르고, 콧대가 판이하게 다릅니다.

 

피고인측은 영상분석을 성의 있게 과학적 매너로 제시한 반면 고소인들이 내놓은 것은 육안으로만 보아도 누구든 내가 제 몇 광수인지를 알 수 있다. 내가 내 얼굴 모르겠느냐?이 하나의 주장뿐이었습니다. 자기가 왜 광수에 해당하는지에 대해 아무런 증거나 논리를 내놓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황당한 주장을 잣대로 하여 작성된 공소장은 기각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피고인은 광수부분에 대한 판결의 잣대가 이 사건 제4회 공판기록에 들어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재판장님은 검사님에게 사진 속 인물들이 공소장의 피해자로 적시된 인물들과 동일인임을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를 제출하여 입증해 줄 것을 촉구하셨고, 아울러 피고인은 사진 속 인물이 북한군이라 했고, 고소인들의 얼굴은 광수얼굴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는데, 검찰은 무슨 근거로 피고인의 이 주장을 허위사실의 적시로 판단한 공소장을 썼는지, 그 판단논리를 제출해 달라 [촉구]’하신 것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하지만 검찰측은 이 시각까지 이 중요한 핵심 쟁점에 대해 아무런 답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여섯째, 마지막으로 [택시운전사] 김사복에 대한 사건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영화는 201782일에 방영됐고 김사복에 대한 정체는 오리무중이다가 2018.5.10. 광주가 주최한 ‘5.18영창 특별전에 김승필이 내놓은 사진들로 인해 완전히 밝혀졌습니다. 그 결과 김사복과 힌츠페터는 1973. 김대중이 결성한 한민통 울타리 안에서 활동했다는 해석이 가능해졌습니다. 여기에 더해 4권짜리 5.18역사책(역사로서의 5.18)을 저술한 재미학자 김대령 박사는 피고인이 문제의 글을 쓰기 이전에 김사복을 한민통 계열의 간첩이라는 논리를 공개했습니다. 이런 사실들에 비추어보면 더러는 그를 간첩이라 한다는 피고인의 표현이 근거 없는 허위사실이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명예훼손죄는 범의가 전제돼야

 

명예훼손죄는 범의가 전제돼야 성립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노숙자담요와 피고인이 15명의 명예를 훼손시킬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허위사실인 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허위사실을 적시한 점이 증명됐을 경우에 성립하는 범죄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먼저 노숙자담요가 이들 15명의 존재를 알고 있어야 했고, 이들의 명예를 훼손시킬 이유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중국에 있는 노숙자담요나 수도권에서 생활하는 피고인이, 5.18때 구두닦이를 하고, 중국음식점에서 배달을 하던 10대의 고소인들을 어찌 알 수 있을 것이며 그들의 명예를 훼손해야 하겠다고 마음먹을 이유가 어찌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또한 15명의 명예만 훼손시키려면 15명의 얼굴만 분석할 일이지 무엇 때문이 4년여에 걸쳐 무려 661명의 광수를 분석해 냈겠습니까? 그 목적이 오로지 15명의 명예를 훼손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궁예의 관심법을 연상케 합니다.

 

                    마무리 말씀

 

이제 마무리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이제부터 말씀드리는 부분은 이 사건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어느 정도 기여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나라에는 5.18에 대해 두 개의 대법원판결이 공존합니다. 하나는 1980년의 판결이고 다른 하나는 1997년의 판결입니다. 피고인은 충무로 사무실에서 20021980년 대법원 판결의 요지를 표현하였다가 광주로 연행돼 갔습니다. 30세 전후의 광주 경찰들이 구두를 신고 처와 두 자식이 있는 거실로 들어와 피고인의 팔을 뒤로 꺾어 수갑을 등 뒤로 채웠습니다. 6시간 동안 아들 벌되는 경찰관들에 머리와 뺨을 쉴 새 없이 쥐어 박히고 온갖 언어폭력을 당했습니다. 이때 피고인은 광주가 민주화의 고장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광주법원 1,2심에서 징역 10월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출소하자 피고인은 전두환측 변호인단으로부터 18만 쪽의 수사/재판기록을 트럭으로 빌려왔습니다. 그 내용을 1,720쪽 분량의 4권짜리 다큐 책 [수사기록으로 본 12.125.18]에 정리하는데 꼬박 6년이 걸렸습니다. 책이 발간되자 5월 단체들이 또 고소를 했습니다. 재판을 받던 2010.10.29. 광주의 폭력집단이 2대의 버스를 타고 안양지원에 들어와 방청객들에 폭력을 가했습니다. 창문을 바라보고 있는 한 여성을 뒤로부터 공격해 귀걸이에 귀가 찢어지는 바람에 선혈이 낭자했습니다. 이들의 방해로 재판이 4차례나 휴정되었습니다. 안양법원은 재판 2년 만에 피고인에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피고인의 책이 누구의 명예를 훼손하기 위해 쓴 책이 아니라고 판시했습니다. 5월단체는 [집단표시에 의한 명예훼손 판례]에 의해 피해자 적격이 될 수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고등법원에 이어 대법원도 이 판결을 확정했습니다. 2012.12.27.이었습니다. 표현의 구체성이 약한 [북한군] 표현에 대해 광주가 재판을 하니 징역10월의 중형이 되었고, 표현의 구체성이 강한 [북한군] 표현에 대해, 타 지역이 재판을 하니 무죄가 된 것입니다.

 

무죄판결이 SNS에 이슈로 등장했습니다. 채널ATV조선이 피고인에 출연을 요청했습니다. 피고인은 증거자료들을 한 아름 가지고 나가 1980.5.21. 상황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20사단 차량부대를 기습한 행위, 아시아자동차 공장에 어깨부대 600명이 침입하여 신형장갑차와 군용트럭을 탈취한 행위, 그것들을 몰고 불과 4시간 만에 전남 17개 시군에 위장돼있는 무기고 44개를 턴 행위 등을 말해주었습니다. 남녀진행자들이 피고인보다 더 흥분하면서 그것은 북한군의 소행일 수밖에 없다고 방송했습니다. 이런 방송은 20135월까지 지속되었습니다. 515일 드디어 실제로 광주작전에 실제로 투입됐었다는 탈북자 가명 김명국이 얼굴을 가리고 채널A에 출연했습니다. 이에 5.18은 북한군 소행이라는 여론이 더욱 확산됐습니다.

 

광주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2013.5.24. 광주단체 338개와 변호인들이 광주시장을 중심으로 뭉쳐 ‘[5.18역사왜곡대책위]를 구성했습니다. 이들로 인해 호남출신 의원들이 일어섰습니다. 그 결과 양개 방송국 간부 8명이 중징계를 받고 대국민 사과를 하였습니다. 이것이 5.18의 세도였습니다. 2013610, 광주집단이 상경하여 양개 방송국을 흉기로 공격하고 경찰을 향해 계란과 밀가루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그런 물리적 폭력은 2016.5.19. 바로 이 법원에서도 있었습니다. 이 사건 재판이 열릴 때마다 피고인은 회원들로부터 그리고 경찰과 법원 보안요원들로부터 신변보호를 받아 왔습니다. 피고인에 대한 공격은 여기가 끝이 아니었습니다. 201928일 국회에서 5.18공청회가 열렸고, 피고인은 4시간 반 동안 연구결과를 발표하였습니다. 이 내용이 허위라며 국회의원 설훈, 민병두, 최경환, 5월 단체 등 390여명이 고발을 했고 거의 모든 언론들이 피고인과 3명의 한국당 의원들을 [망언자]자로 멍석말이 하였습니다. 이어서 5.18 특급 유공자 김종배가 피고인을 상대로 기부금품법위반, 업무상횡령 등 혐의로 고발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 두 가지 고발사건은 지난해 12월 무혐의로 처분되었습니다. 피고인의 입을 봉하려는 전략적 봉쇄소송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피고인에게는 풀리지 않는 불가사이가 있습니다. 광주는, ‘5.181215년 영국의 마그나카르타와 동등한 역사의 기념탑이라 주장합니다. 그렇게 훌륭한 역사를 창조했다는 그 광주가 어째서 그들과 다른 견해를 가진 국민을 향해 이토록 비문명적인 폭력을 행사해야 하는 것인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광주시민에게는 북한군을 통제하거나 감시할 능력도 없고 의무도 없습니다. 북한군이 광주시민 몰래 개입했다면 이는 북한의 불명예이고 이를 막지 못한 국가의 불명예일 것인데, 어째서 광주의 불명예가 된다는 것인지 피고인은 이 또한 알지 못합니다. 광주에 정말로 불명예가 되는 사실들이 여러 개 있습니다. 이동 중인 정규사단을 습격한 행위, 44개 무기고를 털어 계엄군을 향해 발사한 행위, 광주교도소를 5회씩이나 공격한 행위, 도청 내에 2,100발의 TNT 폭탄을 조립해 놓은 행위, 총상사망자 116명 중 80명을 시민군이 소지한 총으로 사살한 행위, 사망자의 80%가 계엄군이 없는 곳들에서 사망한 사실 등입니다.

 

이것들은 분명 광주의 불명예입니다. 그런데 피고인은 17년의 연구를 통해 이 불명예스러운 행위들을 북한군이 와서 저질렀다는 사실을 밝혀주었습니다. 그렇다면 피고인은 광주로부터 고맙다는 인사와 박수를 받아야 마땅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광주는 이런 불명예를 감수해가면서까지, 북한의 침략행위를 저토록 감싸주는 것인지 참으로 알기 어렵습니다. 결론적으로 피고인은 광주의 명예를 고양시켜준 사람이지 광주의 명예를 훼손시킨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재판부에 간청드립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 땅에 [역사연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공론의 공간]을 마련해 주시기 간절히 바랍니다. 긴 내용 경청해 주셔서 매우 감사합니다.

 

 2020.1.30.

피고인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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