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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7화, 한국당-태극기 좌익이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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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0-02-01 22:49 조회5,43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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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7, 한국당-태극기 좌익이 삼켰다

 

한국당 공천위: 김형오, 김영환, 정채근 장기표

자유통일당:김문수, 차명진, 이재오, 서경석, 임명진, 김진홍, 조갑제, . .

 

판단은 각자의 몫, 단지 팩트는 알고 판단하라

 

                 김문수 족적

 

부부가 위장취업자: 민노총은 도시산업선교회가 공산혁명 수행을 실천하기 위해 길러 낸 폭력집단. 1964년 빨갱이 목사 300명이 도산(도시산업선교회)를 만들고, 대학생들을 위장취업자로 양성하여 기업에 보냈다. 인명진이 그 원흉 중의 하나. 위장취업자 제1기가 손학규, 그 뒤를 이어 김문수 탄생. 이들은 기업에 위장 취업하여 가장 어리고, 가장 순진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을 찍어서 6개월 정도에 걸쳐 의식화 교육을 시켜, 기존 노조를 분쇄한 후 기업을 도산시켰다. 김문수는 부부가 다 위장취업자 1970~780년대 [도산]은 공포, 인간불화살 전태일 등 18

 

 

2010.8.31. 김문수 발언: 경기도 제2청사 간부 회의,

남북 관계가 미묘하고 북·중 관계도 심상치 않은 시점이지만 남북이 공생할 수 있는 사업은 필요하다. 남북관계의 기본은 유무상통(有無相通)으로, 있는 것을 서로 나누는 게 바람직하다

며 인도적 차원의 대북 쌀 지원 필요성을 거듭 제기.

 

20101011일과 12일에 걸쳐 아래와 같은 요지의 말들을 했다.

 

헌법이 북한 주민을 우리 국민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에 있는 주민은 우리가 먹여 살려야 한다. 탈북자들도 한국으로 넘어오면 주택 사주고 생계비를 지원해주지 않느냐, 북한에서 미처 탈북하지 못한 북한의 주민들에게도 쌀 정도는 지원해 주는 것이 헌법에 부합되는 일이 아닌가. 북한은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쉽게 붕괴되지도 않는다. 그래도 우리는 북한 주민을 먹여 살려야 한다. 남북관계에서 쌀을 빼면 아무 것도 할 것이 없기 때문에 군량미로 쓰인다 해도 주어야 한다.” 

 

 20101011일 발언 


2010.10.11. 세종호텔에서 열린 세종포럼 초청 강연에서 김문수는 이래와 같은 발언을 했다.

"자유민주주의를 얘기하면서 북한이 비핵화하기 전에는 무조건 쌀을 줘선 안 된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는 가능하지 않다. 남북관계의 실천적 전략을 고려할 때 대북 쌀 지원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봐야 한다"

"북한이 쌀을 군량미로 쓸 것이란 시각도 있지만 그렇게 치면 남북관계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견해차는 있겠지만 그 정도는 자연스러운 지원으로 본다"

"북한은 ''를 빙자한 세습 독재체제일 뿐이다. 남북한처럼 특이한 이념 대립관계에 있는 나라가 또 어딨겠나. 자유민주주의를 인식은 하되 북한에 대한 실천적 전략을 가져야 한다"

자회담을 통해서도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시간은 북한과 중국 편이다. 탈북자들이 매일 넘어오지만 북한 체제는 그리 간단히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나도 좌파운동을 해봤지만 인간의 생각이란 게 무섭다. 북한이 3대 세습을 해도 아무도 들고일어나질 않는다. 인간이 언제 저항하고 복종하는지 제대로 공부해야 한다"

"중국은 사회과학연구원에서 당과 국가의 미래전략을 짜는데 우리는 국가 장기전략을 고민하는 연구소가 없다"

 

 1012일에 한 김문수 발언

 

이어서 다음 날인 12, 그는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이래와 같이 말했다.

정세에 따라 남북관계가 천안함 사건이나 군사적인 정세, 여러 가지 변화가 있지만 현재는 일부 문제가 있다. 우리 헌법에도 북한이 우리 대한민국으로 돼 있는데 북한이 대한민국의 일부이고 국민들도 탈북자가 우리나라에 오더라도 국적 취득은 자동으로 된 것으로 본다. 남한에 정착하는 주택을 드린다든지 생계비 지원을 하는 것만 하지 않더라도 우리 국민으로 보는데 그만큼 북한 주민이 우리 국민의 일부이기 때문에 당연히 여러 가지 인도적 지원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특히 쌀을 지원한다는 것은 사람이 먹어서 생존을 유지하는 문제기 때문에 다른 개성공단처럼 돈을 번다든지 또 금강산처럼 관광을 한다는 것하고 밥을 먹는다는 것 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북한주민도 우리 대한민국 국민의 일부라는 점을 생각할 때 수해를 입고 어려운 북한 주민을 우리가 남아도는 쌀로 도와주는 것은 이상할 게 없다.”

 

 2009년에 행한 김문수 지사의 대북지원  


20098월 초, 경기도는 민간단체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에 경기도 예산 10억원을 주었고,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은 경기도 지원금에 자체 모금액을 더해 중국에서 옥수수 4,200t91일에 북한에 주었다. 경기도는 2007년부터 식량 지원을 포함해 양묘장, 접경지역 말라리아 공동방역 등 대북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남북 관계가 경색된 그동안에도 식량을 제외한 양묘, 의약품을 지원해 왔다. 연합뉴스에 의하면 경기도는 2009년 대북사업 예산으로 60억 원 가량을 편성해 놓고 있다 한다.

경기도민은 땀 흘려 세금을 냈고, 91일 그 세금을 북한에 지원해 주었다. 그리고 95일 북한으로부터 물 폭탄 세례를 맞고 6명이 생명을 잃고 수억 원대의 피해를 보았다. 경기 지사는 피 같은 국민의 세금을 북한에 주었고, 그 세금을 낸 경기도민은 이렇게 처절하게 당했다. 그래도 김문수는 북한에 대해 원망 한 마디 안 했다.

 

2012714, "박정희 정권 시절 자동차 공장, 포항제철 설립,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반대한 것은 그때 내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고 '고해성사'를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박정희에 대해 독재자인 것은 틀림없다"고 못 박았다. "516은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박정희 당시 장군을 비롯한 군인들이 권력을 빼앗은 역사적 사건이다

 

2009.8.19. "우리 김대중 대통령께서는 대통령이기 이전에 우리나라 민주화의 상징이고 선도자이셨다. 김 전 대통령은 세계적 지도자 가운데 한 분으로 남북통일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셨고 대통령으로서도 훌륭한 업적을 남기신 분이었다. 김 전 대통령의 민주화에 대한 염원과 남북통일에 대한 의지를 국민 모두 마음에 새기고 잘 실천해야 할 때이다. 특히 지난해 1027일 중국 선양에서 김 전 대통령을 만났던 때를 떠올리며 김 전 대통령이 당시 "통일은 북한의 경제적 자립과 점진적인 개방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던 말을 떠올리며 "아주 분명하고 확고한 어조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해 줄 것을 주문하던 김 전 대통령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출처 : 업코리아(http://www.upkorea.net)

김문수 후보,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 참배

 

                청년시절의 족적 


 완전히 행동하는 운동권으로 변신한 그는 대학 2학년 때 교련 반대, 한일조약 반대 등에 적극 참여했다가 끝내 제적됐다.

박정희 대통령이 전국적으로 190명의 대학생을 짤랐는데, 거기에 내 이름이 낀 거예요. 고학년은 다 빼주고 저학년 위주로 제적시켰어요. 그때 난 장티푸스에 걸려 시골 가서 40도가 넘는 고열에 연일 피를 쏟고 누워있는데 제적이 된 거에요. 설상가상으로 곧바로 '징집영장'까지 나왔어요. 몸이 아파 사경을 헤매는데 학교는 짤리고, 영장까지 나오니 정말 막막하더군요.”그는 앓아 누워 있던 집에서 국군보안대 요원들에 의해 강제로 차에 태워져 국군통합병원으로 끌려갔다. 반송장 상태였던 그에게 군의관이 물었다. “아픈데 없지.” 초췌한 모습의 김문수가 답했다. “아이고, 장티푸스에 중이염까지 걸려서 죽겠습니다.” 김 지사의 하소연에 군의관이 정밀 진단 결정을 내렸고 징집 면제 판정을 받고 풀려났다. 이 점은 검증이 필요한 부분이다.

 김근태 구로공단취업 주선청계천 등에서 근로자 의식화 교육

 

학교에서 제적당한 김문수는 고향에서 야학과 농민운동을 하면서 소일했다. 그러나 한계가 많았다. 겨우 21살의 청년이 동네 어른들을 상대로 농촌계몽운동을 하니, 아예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였고 결국 서울로 올라왔다. 김문수는 이후 우여곡절을 거쳐 두 번의 제적과 두 번 투옥되었다가 25년 만에 대학을 졸업했다. 노동운동은 김근태와 안병직 교수의 영향이 컸다. 안 교수는 김문수가 진로를 고민하면 너 대학이 중요하냐, 대학 보다 더 중요한 게 사회, 나라를 바로 잡는 것이라며 노동운동을 권했고 김근태는 구로공단 취직을 주선했다. 청계천도 그의 활동무대였다. 청계천 노조 간부들에게 노동법을 가르치면서 노동현장 분위기를 익혔다. 그는 청계천의 한 미싱공장에 취직했다가 74년 복학했다.

 

청계천이 정말 힘든 곳이었습니다. 본래는 복학하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엄마와 형님이 서울에 올라와서 뭘해도 좋으니까 학교는 들어가서 졸업하라고 애걸복걸하더군요. 나도 데모만 했지, 제대로 못 다닌 것 같아 복학해서 학교 운동권의 핵심으로 활약했습니다.”

 

안병직 교수는 물론 유인태 전 의원, 신철영 경실련 전 총장, 박재완 청와대 수석, 김병곤 전 민청련 의장 등이 당시 김 지사와 함께 활동한 사람들이다. 75년 면도칼과 지퍼 생산업체인 한일공업 보일러공으로 위장취업해 꼬박 6년을 작업했다.

 

                     차명진과의 만남 


한편, 1979년 서울대 정치학과에 들어간 차명진은 경제철학회라는 이념 서클에 들어가 의식화 공부에 빠졌다. 그해 10월 박정희 대통령의 18년 장기 집권이 끝났고 이듬해엔 5공 신군부의 한파가 서울의 봄을 덮쳤다. 차명진은 정보부에 끌려갔고 강제 징집되어 강원도 산골짜기 부대로 갔다. 제대하고 복학한 후 차명진은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현장에서 활동하다 보니 김문수라는 지도자의 이름이 들렸다고 한다. 차는 김을 찾아가 당신은 나의 지도자다. 당신을 따라 노동운동을 하겠다고 했다. 그때부터 차는 김의 그림자가 되었고 위장취업 투쟁을 시작했다. 부천철탑공장, 주안공단의 전선제조업체, 구로공단의 대한광학 등에서 그는 노동자를 조직하고 파업을 지원했다.

 

김문수가 서울노동운동연합(서노련)을 결성하자 차명진도 조직원이 되었다. 서노련은 8653일 노회찬등과 함께 인천에서 폭동을 주도했다. 폭도시위대는 5공 독재 타도와 노동권 쟁취를 외쳤고, 집권 민정당 지구당사와 경찰차량이 불에 탔다. 김문수가 잡혀가자 심상정이 서노련을 이끌었으며 차명진은 중앙위원이 됐다. 차명진은 서노련의 해고자복직투쟁위에서 지금의 부인을 만났다. 부인은 서울대 출신으로 위장취업 3년 선배였으며 지금은 사회복지사가 되어 노인요양시설에서 일한다. 차명진은 간첩단이 만든 민중당 간부(구로갑지구당 사무국장)였고, 위장취업자였고 김문수 의원 보좌관을 했다.

 

                     장기표 


김대중은 4.10, 5.1, 5.103회에 걸쳐 북악파크에서 문익환, 예춘호, 장기표, 심재권 등 이른바 김대중내란음모 집단을 이끌고 전국 폭력시위에 의한 국가전복 계획을 수립하고 김대중의 혁명내각을 구성했다. 이어서 5.1217:00, 국민회의 지도부, 김대중, 문익환, 예춘호, 이문열, 한완상, 한승현, 서남동, 이해동, 심재권, 장기표, 이헌배, 계훈제 등이 북악파크호텔에서 또 다시 회동하여 투쟁방향을 논의했다.

 

장기표-심재권의 보고내용: 전국 26개 대학의 학생회장단 45명이 5.11.15:00시부터 5.12.09:00시까지 서울대 학생회관에서 철야회의를 통하여 계엄령해제와 정치일정의 명백한 발표를 촉구하고, 학원사태 해결을 위해 국무총리 면담을 촉구한다는 사항을 결의하였으며, 이어 5.16. 전국대학학생회장단은 이화여대에서 회의를 열어 새로운 투쟁방법을 협의키로 하였는데 앞으로 학원시위가 확산될 것이 전망됩니다

 

김대중: 과도정부를 장악하고 있는 유신잔당들이 민주화에 역행하여 정권을 계속 잡으려는 음모를 하고 있다. 민주화운동의 목표는 민주정부를 수립하는데 있다. 서울대, 연대, 고대 등 명문대학의 동정을 잘 살펴보라

 

장기표: 각 대학이 일정한 날을 정하여 동시에 각목과 화염병을 사용하는 폭력시위를 과격하게 벌여 희생을 각오하면서 민중의 호응을 얻어 정부중요부서를 점령하게 되면 4.19와 같은 무정부상태가 되는 데 이를 계기로 민주세력의 구심인물인 김대중 선생을 사태수습인물로 내세워 학생과 민중을 설득하면 정권장악이 가능합니다. 저는 심재권과 함께 각 대학 학생회장단에 영향력이 있는 복학생들을 규합, 학생폭력시위를 주도하겠으니, 선생께서는 이문영에게 과도정부 구상을 미리 시켜주시기 바랍니다.”

 

김대중: 알았다

 

515일은 서울역에 10만 시위대가 모여 버스로 경찰을 깔아 죽이는 정도에 이르렀다, 이 장면을 본 국민, 언론, 군인들은 계엄을 물계엄이라 비아냥거렸다. 대통령, 국방장관, 계엄사령관, 보안사령관, 대부분의 군 지휘관들은 514일 및 15일 양일간의 소요가 극렬함의 정도로 보나 규모로 보아 경찰력의 한계를 훨씬 넘어서는 것이라 판단했다. 서울역시위에 극도로 고무된 김대중은 516, 2차 민주화촉진국민선언문을 발표했다. 522일을 기하여 군인, 경찰을 포함한 전국의 무든 국민은 검은 리본을 달고 전국적으로 봉기하여 정부를 전복할 것이라는 최후통첩이었던 것이다. 522일로 계획돼 있는 소요는 국민연합 등 소위 재야정치 단체들과 전국 59개 총학생회장단회의의 연대 하에 이루어지는 대대적인 민중봉기요 사실상의 정부전복 기도로 보았기 때문에 마지막 보루인 계엄군에 의한 대대적인 대책이 절실하다고 생각했다.

 

           강삼재 기조 실장의 권유로 여당 입문'"학생운동권 멤버들이 추천" 


서노련 활동이 쇠락하면서 김문수와 차명진은 노동운동의 한계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장기표 등과 함께 89년 빨갱이정당 민중당을 창당했다. 92년 총선에서 민중당은 처절한 참패를 겪은 후 안병직 교수의 조언으로 두 사람의 극렬좌익빨갱이들은 자본주의 정당민자당(한나라당의 전신)으로 화려한 변신에 성공, 지금 그 당에서 지사와 의원이 되어 있다. 차는 김의 지역구(부천 소사)를 물려받았다. 96년 총선은 당시 여당이던 민주자유당이 공천 물갈이와 함께 각계의 전문가들을 대거 영입하던 시기였다. 김영삼 대통령 쪽에서 김문수에게도 제안이 왔다. 강삼재 기조 실장이 접촉 창구였다.

 

2011624일자 동아일보에는 김문수와의 인터뷰 기사가 났다.

 

나를 아직도 빨갱이로 의심박정희 같은 처지” “나는 고 박정희 전 대통령과 비슷한 처지다. 남로당 출신의 박 전 대통령은 집권 중 야당으로부터 빨갱이 근성을 버리지 못했다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현재 내가 그 꼴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산업화뿐만 아니라 의료보험과 산재보험 등을 도입한 지도자로 보편적 복지는 다했다. 나처럼 무한 돌봄 사업 등 밑바닥과 소통한 사람이 누가 있느냐. 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흑백논리에 갇혀 있고 사고가 단세포적이라 좌우를 아우르는 나 같은 사람의 컬러풀한 사고를 이해 못한다.”

 

  북한에 바친 김문수의 사랑 시  

다음은 2007년 정월 초하루 새벽 1230, 임진강 자유로를 달리며 지었다는 저 캄캄한 곳으로라는 제목의 시.

 

제야의 종

임진각 평화의 종을 치고 돌아오는 자유로

임진강 너머에는 불빛이 없네

요란한 비보이

한국가요 대전의 화려한 무대

밤하늘을 수놓는 폭죽이 화려하건만

임진강 너머 저 곳에는 캄캄한 어둠뿐이네

인기척도 없네

저 캄캄한 곳으로 나는 가고 싶네

저 캄캄한 곳을 생각하면 내 눈에는 눈물이 흐르네

저 캄캄한 곳 사람들

나는 손잡고 싶네

깡마른 절망의 가슴

따뜻이 안아주고 싶네. 

 

  2010.4.22. 김동길 교수가 김문수에 바친 용비어천가

 

326일에 다한 천암함 폭침, 온 국민이 울면서 국민을 의심하고 있을 때인 422, 김동길 교수는 김문수를 에 용비어천가를 바쳤다.

“80여 년을 살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내가 만난 그 다양한 인물들 중에 항상 기억될 만큼 깊은 인상을 남긴 사람은 몇 되지 않습니다. . . 김문수,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자리에서 그는 서슴지 않고 이런 말을 했습니다. ‘무슨 부탁이라도 있으면 가져오세요. 그러나 돈만은 가져오지 마세요.’ - 그렇게 말한 어느 도의 도지사가 있습니다. 나는 그가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는 날을 학수고대합니다. 그의 이름은 김문수!” 


                      정태근 족적 


1. 정태근은 고진화, 김민석, 허인회(부여간첩접선)와 함께 삼민투 운동전개

2. 미문화원 점거(3년징역)

3. 박종철 고문사건과 연루, 수사대상에 올라

4. 일심회 간첩 손정목과 운동 동기

5. 친북단체인 민가협의 간사

6. 그 외 수개의 친북 단체에 관여

2000년 총선 당시,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가 사상이 불순한 386 3인을 영입.  

원희룡(서울대 82학번)

고진화(성균관대 총학생회장 82, 삼민투위원장)

정태근(연세대 총학생회장 82학번, 이명박 서울시장 당시 서울시 정무부시장)

  정태근은 누구인가? 

정태근은 1964년생으로 연세대 총학생회장이었으며 그의 부인 역시 이대 총학생회장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19855.23일 서울 미문화원 점거 농성 사건의 주역으로 김민석(서울대), 허인회(고려대), 고진화(성균관대 삼민투위원장)와 함께 감옥에 간 바 있다. 또한 정태근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당시 고진화와 함께 경찰의 수사대상에 올라있던 운동권이었다.

 

그는 자신이 가장 친한 교우라고 밝힌 고진화 한나라당 국회의원을 비롯, 김민석 전 민주당 의원, 허인회 열린우리당 전국청년위원장 등과 함께 삼민투활동을 하다가 85미문화원 점거농성 사건과 관련해 3년간 복역하기도 했다. 앞서 언급한 손정목 씨와 함께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구속된 이정훈 전 민노당 중앙위원도 고려대 삼민투위원장을 지냈다. 그는 이후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간사로 활동했다. 민가협은 현재 대표적 친북단체인 통일연대 소속 단체이다.

 

이와 함께 20016.15공동선언 1주년을 맞아 청년 200여명의 방북을 추진했던 '6.15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남북청년교류 추진위원회(추진위)'에 참여한 단체인 한국의미래 제3의힘운영위원을 지내기도 했다. 이적단체로 규정된 범민련(조국통일범민족연합) 소속단체인 한국청년단체협의회추진위에 함께 참여한 단체이다. 정씨는 현재(2005) 열린우리당 김성곤 의원이 이사장으로 있는 ()한민족평화통일연대 이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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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정무부시장에 정태근씨 


[한겨레 2005-09-05 18:57]

[한겨레] 서울시는 5일 이춘식 정무부시장 후임으로 정태근(41) 한나라당 성북갑 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을 임명했다. 신임 정 부시장은 1985년 연세대 총학생회장을 지냈으며, 허인회 고려대 총학생회장 과 김민석 서울대 총학생회장과 함께 전국학생연합을 결성하였고 삼민투를 조직하기도 했다. 민주화운동으로 3년 가까이 옥살이를 한 대표적 386세대이다. 2000년 한나라당 성북갑 지구당위원장을 맡아 정계에 입문한 뒤, 20024월 서울시장 선거 때 인터넷본부장을 지냈다.

  '일심회' 주축은 '삼민투' 출신

[중앙일보] 20061030()

 

[중앙일보 이철재] 고정간첩 혐의를 받고 있는 장민호(44)씨가 결성했다는 '일심회'에는 과거 '삼민투(민족통일.민주쟁취.민중해방 투쟁위원회)' 멤버들이 포함됐다.1980년대 학생운동은 84년 총학생회가 부활되면서 조직화 양상을 띠게 됐다. 85년 출범한 대중조직인 전학련(전국학생총연합)과 전학련의 전위조직 성격인 삼민투가 대표적이다. 삼민투는 85523일 미 문화원 점거농성을 주도하며 일반인들에게 알려졌다.

 

장민호에게 포섭된 이정훈(43.사진) 전 민노당 중앙위원은 85년 고려대 삼민투 위원장을 지내면서 미 문화원 점거농성 사건에 적극 참여했다. 이정훈씨를 장민호씨에게 소개해 준 것으로 알려진 허인회(42) 전 열린우리당 전국청년위원장은 85년 고려대 총학생회장으로 전국 삼민투 위원장을 맡았다. 이정훈씨(사학과)와 허인회씨(정치외교학과)는 고려대 82학번 동기이며 둘 다 미 문화원 사건으로 구속됐다. 삼민투는 내부 노선대립으로 86년 민족해방을 내세운 자민투(반미자주화 반파쇼민주화 투쟁위.NL계열)와 민중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민민투(반제 반파쇼 민족민주 투쟁위.PD계열)로 갈라졌다.

 

PD계열이 90년대 동구권의 몰락으로 세력을 잃었지만 NL계열은 민족.통일 문제 해결을 내세우며 학생운동 진영을 이끌어왔다. 특히 NL계열이 80년대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90년대 이후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등 대중 조직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NL계열 중에서도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주사파가 핵심 세력으로 자리 잡았다. 이번에 구속된 최기영 민노당 사무부총장은 전대협 사무국장 출신이다

             

김문수 후보,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 참배    

 
  2018/04/12 10:30 송고    

http://news1.kr/photos/view/?3058347

김문수 후보,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 참배


분단뒤 첫 남북 공동모내기 “통일의 알곡을 심었다”

 

등록 :2006-06-05 13:54


http://www.hani.co.kr/arti/politics/defense/129511.html

지난 3일 손학규 경기도지사와 100여명의 남북교류협력 대표단이 북한을 방문해 분단이후 최초로 ‘남북공동모내기’를 벌였다.  〈한겨레〉

대표단은 63일 아침 아시아나항공 전세기를 타고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해 곧바로 평양시 강남군 당곡리로 이동해 남북공동 모내기 행사를 가진 후 근처 들녘에서 점심을 함께 했다. 이 자리에서 손학규 지사는 오늘 우리가 흘린 땀이 통일의 알곡을 여물게 할 것이라며 경기도는 앞으로도 서두르지 않고 벼농사 협력사업, 북한농촌 현대화사업과 같은 실질적인 일들을 찾아 작은 통일들을 일구어갈 예정이라고 소감을 밝혔고, 김영일 당곡리 관리위원장도 이곳은 남과 북이 힘을 모아 벼농사를 짓고, 농로를 포장하고, 새 지붕을 올리며 화해와 협력의 터전이 되고 있다고 화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시대에 균형 발전이 될 말인가"

 조규석 (언론인) 시사저널 승인 2007.06.11


경기도는 남북 경협에 열심인데 북한의 태도로 보아 그렇게 할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다.
남북 관계에 긴장이 오면 가장 피해를 입는 사람들은 파주·김포·연천 사람들이다. 그래서 경기도로서는 원만한 남북 관계를 원한다. 얼마 전 북한 지역에 모내기를 다녀왔다. 한 도의원은 “지난해에는 평양군 주민들과 접촉을 못하게 했는데 올해는 북한 주민 30명과 같이 만나서 대화도 했다. 우리에 대한 신뢰도도 높아졌으며 나름으로 진전이 있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경기도는 쌀을 주는 것이 아니라 볍씨를 주고 영농 기술을 가르친다. 경기도는 돼지 부분에서 전국 1위이다. 돼지 부분을 도와주겠다. 산에 나무도 심어주고 연탄도 지원하고 말라리아 퇴치 작업도 도와주려고 한다.


2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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