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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원TV]제207화, 정세균 대구 떠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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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0-03-04 22:02 조회3,43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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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원TV]207, 정세균 대구 떠나라

https://www.youtube.com/watch?v=DcAVfqmcyY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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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 정세균 대구 떠나라

1) 약국에서 팔면 되는데 주민등록별 정보 일원화 돼 있는 시스템 활용

2) 정세균은 옥상 옥 걸림돌 방해만 돼

3) 차단 및 치료 일선은 일선 전문가팀에, 행정인력은 군수지원에 올인 

 대구 간 의사 쓴소리 "총리 왜 와있나, 마스크 줄 보니 피눈물"

확진자 4293명 늘어5621명 사망33

마스크 어디 숨었나 했더니···창고 열자 449만개가 쏟아졌다

'' 하나로 마스크 대란 잠재운 대만···민관협력이란 이런 것

유엔 회원국 절반이 한국에 빗장한국입국 제한 92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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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4일 페이스북에 올린 마스크 뺏긴 서러움이란 제목의 글

저는 마스크 구매를 위해 오늘 아침 신촌 하나로마트로 나갔다. 마스크 사려는 시민들이 오전 5시부터 찬바람을 견디며 줄서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시민들은 마스크를 구하지 못한다. 저도 오랜 기다림 끝에 번호표만 받았다. 마스크를 구하지 못한 시민들의 서러움을 현장에서 함께 한다

 

"방호복·순환펌프 아껴쓰라" 주문에 대구 의료진 '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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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시집

 

제목: 사랑의 엘레지 

 

목차

1. 마주앙

2. 치킨 한 봉지

3. 해변의 밤

4. 은하수의 속삭임

5. 옹 달 샘

6. 외기러기

7. 가을 마음

8. 하모니카 추억

9. 비 내리는 오두막

10. 임종의 종소리

11. 헤밍웨이의 노인

12. 고 목

13. 인생은 꿈의 산물

14. 카사비앙카를 향하여

15. 사랑은 조각품

16. 사랑의 엘레지

17. 아늑한 공간

18. 창작만 하면 됐지 뭘 또 바래

19. 독서가 선진민족 만들어

20. 하직이 남기는 여운

21. 날개 꺾인 자유

22. 여보 미안해

23. 용암이 된 눈물

24. 펑펑 흘러라 눈물아

25. 놓아 주세요 이젠

26. 악마 소굴에 던져진 소년  

27. 밤에 입은 비단옷

28. 답 변 서

29. 선고

 

사랑의 엘레지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장년의 건장한 사진작가와

순수하고 착한 가정주부 사이에

잠시 설레는 핑크빛 꿈이 피었다

하지만 그 사랑은 영원히 절제됐다

중년 러브스토리의 한 장면이다.

 

타이타닉호의 사랑

인습과 통념의 거미줄로 꽁꽁 묶인

상류사회의 한 처녀 로-즈의 억압된 영혼을

자유분방한 영혼을 가진 잭 도슨이

해방시켜주면서 펼치는 애틋한 사랑의 순간들이

수많은 가슴을 울렸다

정춘 러브스토리의 한 장면이다.

 

나에겐 고교 2년 사진이 한 장 있다

이 한 장 사진에

사랑의 엘레지가 담겨있다

 

가정교사로 고학을 하던 내가

갑자기 잘 곳을 잃었다

나를 지켜보던 28세 여인

내가 밥과 학비는 대 줄 수 있어도

잠은 안 된다

오늘 어디 가 잘래

감사합니다 걱정 마세요

학교 교실에 선배들이 밤 세우니까

거기서 자면 돼요

 

미나리밭 한가운데 검은 콜탈이 발라진

목조건물 안으로 갔다

울퉁불퉁한 바닥에

책상 몇 개를 모아놓고 잠이 들었다

피곤했던 신경들이 파르르 풀렸다

밤중이 되자 비바람 몰아치고

귀신바람이 문틈으로 새어들었다

귀신이 옆에 와 지켜보는 것 같아

미동도 할 수 없었다

눈도 뜰 수 없었다

 

용기를 내 창문을 열고 뛰었다

멀리 가로등이 보였다

무서웠던 빗줄기가

아름다운 은가루였다

비가 이렇게 아름답다니

 

한없이 내리는 은가루

그 자리에서 한참 머물렀다

어디로 가야 하나

이 가로등에서

저 가로등으로

무의식 속에서 달렸다

그리고 아침이 되었다

 

나는 나보다 10살 많은

여인 옆에 누워있었다

얘야 법 먹을 수 있겠니

어젯밤 네가 부엌 부뚜막에

새우처럼 웅크리고 자더라

널 보내고 마음이 안 놓였는데

무슨 소리가 나더라

내가 많이 울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쓴 책

뚝섬무지개의 시작이었다

 

달빛도 영롱했던 어느 날 밤

맑은 유리창에 점점이 붙어 있던 먼지들이

달빛을 타고 들어와

누나의 화사한 얼굴에 점들을 찍었다

외국영화에 망을 쓰고 출연하는

아름다운 여배우의 얼굴보다 더 아름다운 얼굴

빤히 바라보는 순간

누나가 말을 했다

달빛 받은 네 얼굴 참 예쁘구나

 

나는 무역회사 급사로 취직했다

야간학교가 끝나면 회사 사무실에 가 잤다

매일 밤 하교시간이 되면 누나가 찾아왔다

용두동 개천길

20분이면 갈 거리를 한 시간씩 걸었다

여러 대의 버스가 왔지만 그냥 보냈다

날마다 그렇게 버스를 탔다

버스가 누나로부터 멀리 벗어나면

나도 모르게 어깨가 들먹였다

 

영원히 헤어져야 하는 뚝섬 나루터

누나를 싣고 갈 배를 여러 번 그냥 보냈다

누나가 전철역에 나를 바래다주었다

내가 또 누나를 나루터에까지 바래다주었다

이렇게 둘은

나루터와 전철역 사이를 여러 번 왕복했다

미루나무 잎이 노을빛에 파르르 떠는 한 시각

무심한 배는 떠났다

 

배가 떠나기 전에는 둘이었는데

떠나고 나니 혼자였다

이내 어둠이 깔렸다

전철역으로 옮겨지는 내 발길

무거운 쇠사슬이 채워졌다

터벅터벅

한 걸음 한 걸음이 납처럼 무거웠다

멀리에서 비춰주는 흐린 불빛이

쉴새 없이 매달리는 구슬 방울에

오색 빛 무지개를 만들고 또 만들어 주었다

 

 30장 왜곡된 사건들

 

  <북촌리 사건>

 

4·3 왜곡에 앞장 선 정부보고서와 추미애 등 좌익들은 군경에 의한 무차별 대량학살론을 전개하기 위해 북촌리 사건을 아래와 같이 왜곡해서 내건다.

 

이 사건은 제2연대 연대장 함병선 대령에 의해 저질러졌다. 1949. 1. 17 아침, 일부 군 병력이 이동하던 중 북촌마을 어귀에서 게릴라의 습격을 받아 군인 2명이 사망했는데 2연대가 이에 대한 무분별한 보복으로 마을을 불태웠다. 2연대는 무장대와 내통한 빨갱이 가족을 찾아낸다며 주민 약 400명을 처형했다.”

 

좌익들과 정부보고서는 북촌리 사건을 위와 같이 정리해 놓고, 이 사건이 바로 토벌대가 저지른 대표적인 대량살상 사건이라 주장한다. 정부보고서는 북촌리에서 400명이 처형됐다고 하고, 추미애는 300명 이라고 했다. 정부보고서가 추미애의 기록을 뻥튀기시킨 것이다.

 

제민일보 4·3 취재반이 쓴 “4·3은 말한다” 4권은 북촌리 부분을 이렇게 묘사했다.

 

북촌리는 일제 때부터 자존심 강한 마을이었다. 해방 후에는 항일독립운동가 출신들이 주도한 건준과 인민위원회를 중심으로 주민들이 똘똘 뭉쳐있었다. 북촌리는 1947813일 경찰관에게 뭇매를 가한 소위 ‘8.13 사건을 계기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1948516일에는 북촌 포구에 피항한 배를 조사하던 중 동승했던 경찰관 2명을 살해했다. 이 같은 사건이 벌어지면서 청년들은 수배를 받아 일찍부터 피신생활에 들어갔다. 입산시기도 다른 마을보다 빨랐다.”(43520-436-4376). “유지들은 산에도 협조하고 토벌대에게도 협조하는 소위 양면작전으로 마을을 보호했다”(4374). “입산한 북촌마을 청년들이 마을을 보호해 줬기 때문에 산 쪽으로부터의 습격은 없었다. 또 어른들은 산 쪽뿐만 아니라 토벌대에게도 협조하는 양면작전을 써 강경토벌전을 피했다.”

 

정부보고서의 발원처인 ‘4·3은 말한다의 위 인용문들을 요약해 보면 북촌리 주민들은 거의 모두 인민위원회를 중심으로 똘똘 뭉친 좌익들이었고, 이들 중 희생당한 사람들은, 무고하게 사살된 것이 아니라 공산 유격대에 가담하거나 그 작전에 협조한 사람들이었다. 그렇다면 북촌리 뿐만 아니라 제주도의 다른 마을에서 희생된 사람들 모두를 순수한 양민이라고 주장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제주도에서 이 사건을 지켜 본 사람들이 증언하는 북촌리 사건> 

 

1948516, 우도에서 제주도로 가던 범선이 풍랑을 맞아 북촌포구로 피항하자, 이 마을 출신 유격대 3명이 마을 주민 30여명이 지켜보는 앞에서 우도 지서장 양태수 경사를 권총으로 사살해 바다로 던졌다. 동승했던 진남양 순경도 때려 죽였다. 이어서 유격대 7~8명이 승객 14명을 선흘곶유격대 연대본부로 납치해 520일 저녁에 전원 사살하려는 순간 토벌대에 의해 극적으로 구출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때 생포한 유격대원의 안내로 군은 북촌마을 내에 있는 굴속에서 유격대원 7명을 검거했다. 이들은 권총을 휴대한 것으로 보아 지휘관급인 것으로 판명됐다. 이러한 일련의 누적된 상황들을 종합해 본 군은 당연히 북촌 마을이 유격대의 본거지요 전략촌이라는 판단을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런 사건들이 누적되어 북촌의 대학살이 발생한 것이지 단지 2명의 병사가 기습을 받아 전사한 단순한 사건에 보복하기 위해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든 것은 아니었다.

 

여기에 필자가 조금 부연한다면 4·3사건이 발생한지 20여년이 지난 1970년을 전후하여 월남에서도 마을에 베트콩 진지가 있다고 판단되면 월남 성장(도지사)의 허락을 받아 마을 사람들에게 마을로부터 나오라고 방송을 한 후 마을 전체를 폭격하여 잿더미로 만든 적이 많았다.

 

정부보고서와 추미애는 무장유격대에 소속되지 않은 제주도민 전체를 양민으로 보고 있다. 좌익사관을 견지한 제민일보 특별취재반이 펴낸 “4·3 은 말한다에는 정부보고서와 추미애의 주장이 거짓임이 밝혀져 있다. 아래는 “4·3은 말한다의 발췌문이다.

 

“19481025일 밤 대정면 모슬봉과 가시오름. 한림면 금오름 등지에서 일제히 봉화가 올랐다. 또 마을에서는 무장대 쪽에 가담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이른바왓샤 시위가 벌어졌다. 무장대로서는 자신들의 존재를 과시한 시위였지만 이는 출동명령만을 기다리던 9연대에게 토벌대상 지역을 선정해 준 격이 되고 말았다. 더구나 봉화는 9연대 제3대대가 주둔하고 있던 모슬포의 모슬봉에서도 올라 군을 더욱 자극시켰다. 9연대는 봉화가 오른 대정면 신평리와 일과리, 그리고 한림면 금악리에 즉각 출동하여 젊은이들을 눈에 띄는 대로 붙잡아 모슬봉 서쪽 일제 때 만든 탄약고 터에서 집단 총살했다.”(70~71)

 

“19481029일 애월면 고성리에 진입한 토벌군은 우선 무장대 은신처를 찾았다. 곤한 잠에 빠져 있다가 불의의 기습을 받은 무장대는 혼비백산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 마을 사람들은 무장유격대원 40여명에게 3,4일간 자기들 집에서 묵게 했다.”(84~85)

 

“4·3 초기엔 무장대가 함덕리를 장악하고 있었다. 함덕지서는 번번이 무장대의 피습을 받았다. 주민들은 무장대의 요구에 따라 식량과 의복을 올려 보냈다. 그러나 1948년 여름께부터 군·경의 강경작전이 벌어지자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은신생활에 들어 갔다....주민들은 집에 숨어 지내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밤에 몰래 내려온 무장대는 이제 곧 통일된다. 며칠 있으면 해방된다고 선전하며 여전히 기세를 올렸다...양정근씨는 자신의 경험을 이렇게 증언했다. ‘나는 4·3전에 남로당과 민애청에 가입했었습니다. 당시 남자면 누구나 그랬습니다. 아니면 따돌림을 받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다 사태가 심상치 않자 많은 젊은이들이 산으로 피했습니다. 80%이상이 산으로 올랐을 겁니다... 아버지 집 마굿간의 거름을 쌓아 두는 곳에 토굴을 만들어 숨었지요. 숨어 지내는 동안에도 토벌대가 세 번이나 가택수색을 했어요. 결국 나도 산으로 도망쳤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마을에서 산으로 식량을 올려 보냈습니다. 당시 마을에는 군경원호회가 조직돼 있었는데 모금을 하면 반은 군·경 먹이는데 썼고 반은 산으로 올려보냈습니다.”(431~432)

 

제주도 주민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무장유격대의 동조자 였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집단 총살당한 주민들은 일부 오인되어 억울하게 죽은 사람도 있었겠지만 죽임을 자초한 행동을 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들 모두를 무고하고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라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북한의 4·3 논문이 주장한 내용을 정부보고서가 반복해>

 

정부보고서와 추미애의 주장은 대체로 1991년 북한의 박설영이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에 실은 논문 제주도 인민의 4·3 봉기와 반미 애국투쟁의 강화의 표현과 일치한다. 정부보고서의 역사관과 추미애 등 좌파들의 역사관과 북한의 역사관이 일치하는 것이다.

 

1948년 말까지 수많은 애국적 인민이 학살되고 200여 개의 부락이 소각되었다. 1949년에 들어와서 놈들의 학살만행은 더욱 악랄하게 감행되었다. 이해 2월초에만도 놈들은 남원면 남원, 위미, 의귀 등등 마을에서의 400여명 대학살만행과 조촌면 북촌리에서의 대중적 학살만행 그리고 구좌면 평대리에서 임신부를 끌어다 국부에 막대기를 찌르고 아랫배를 갈라 태아를 꺼내서 조리를 하는 등 야수적 만행들을 서슴없이 감행하였다.

 

이 시기 살인악당들의 인간 살육만행은 이밖에도 이르는 곳마다에서 감행되어 수많은 인민들을 학살하였다. 놈들의 살인 만행으로 하여 빚어진 손실은 19614월 조선민주법률가협회를 비롯한 8개 단체가 폭로한 전 세계에 고함이라는 데서 밝힌 것처럼 남해의 아름다운 섬 제주도에서는 1948년부터 1950년 사이에 총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7만여 명이 학살당하였다. 당시 제주도 169개 리 중 80%130개리가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그리하여 세상에 알려진 아름다운 섬 제주도는 조국과 인민을 위해 몸 바쳐 싸운 애국적 인민들과 평화적 주민들의 선혈로 물들게 되었다.(제주도 인민들의 4.3무장투쟁사 자료집 266페이지)

 

이제부터는 3인의 증언을 요약하여 정부보고서가 얼마나 사실과 다른지를 지적하고자 한다. 증언자 한수섭(1931)은 당시 오현중학 2년생으로 1949117일 이른바 북촌리 학살이 이루어진 북촌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학살 현장을 직접 목격한 사람이고, 훗날 제주 경찰서장을 한 사람이다. 전정택(1925)은 당시 함덕지서 순경으로 근무하고 있었으며, 117, 2연대 예하부대로 북촌리에서 공비로부터 습격을 받고 그에 대한 보복으로 집단학살을 주도한 제3대대와 한 곳에 있었던 사람이다. 김덕선(1926)은 당시 제주 농업학교 4학년이었고, 194953일부터 제주경찰에 투신한 사람으로 당시 제주도 동쪽 작은 섬 우도포구에서 돗대가 3개 달린 큰 범선에 경찰과 함께 타고 제주항으로 항해하다가 풍랑을 만나 북촌항에 대피하였다가 죽을 고비를 간신히 넘긴 사람이다.

 

이 세 사람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북촌리 사건은 아래와 같다.

 

<1949. 1. 17 북촌리 집단총살 사건의 뿌리는 1948. 6. 15 사건>

 

1949117일 북촌리 북초등학교 사건의 뿌리는 1948615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덕선은 제주농업학교 4학년으로 임시 휴교기간을 맞아 제주도 동쪽에 동떨어진 우도에 소재한 본가에 왔다가 개학한다는 연락을 받고 1948615, ‘우도포구에서 돛대가 3개나 달린 큰 범선에 승선했다. 배는 우도지서장(경사 양태수), 인천출신 진순경, 이장 김용석, 순경 백하룡과 그의 처 김선심 및 장남, 등으로 구성된 일행 16명을 태우고 제주항으로 가기 위해 오전 10시 경에 출항했다. 북제주군 조천읍 북촌리 앞 해상에 이르자 풍랑을 만나 도저히 항해를 할 수 없었다.

 

이때 잠수기선 2척이 북촌항으로 입항하는 것을 보고 우리가 탄 배도 일기가 호전될 때까지 대피할 요량으로 포구에 배를 댔다. 배를 대자마자 건장한 청년 3(편의상 갑,,병으로 칭함)이 접근하여 이것저것 물었다. 배가 어디서 왔느냐, 어디로 가느냐, 누가 탔느냐? 우리는 그들이 민보단인줄 착각하고 우도에서 왔고 제주로 가는 중이며, 이 배에는 우도지서장도 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이들이 즉시 배를 좀 보아야 하겠다며 승선했다. 을과 병이 배 멀미로 누워있는 지서장 양태수와 진순경에게 순간적으로 접근했다. ‘은 지서장 옆에 놓아둔 카빈총 총구를 잡고, ‘은 진순경 옆에 놓아 두었던 44식 총을 잡아 빼려고 격투를 했다. 바로 이 순간 이 달려들어 권총으로 양경사와 진순경을 쏘았다. 양경사는 즉사하여 바다에 버려졌고, 진순경은 옆구리에 총을 맞고 몽둥이로 머리를 맞아 뇌가 노출될 상태에 이르렀다.

 

포구에는 청장년층 남녀 30여 명이 모여 있었는데 이들은 우리 모두와 진순경을 하선하게 하여 밧줄로 결박하고, 총과 철창 등으로 무장한 청년 7~8명의 감시를 받으면서 2시간 정도 끌려갔다. 끌려간 곳은 밀림지대인 선흘곶이고 도착된 시각은 일몰 시각이었다. 이처럼 북촌리에는 공비 및 동조자들이 많았고 이들은 공비연대와 직결돼 있었다.

 

산에 도착하자마자 진순경은 몽둥이로 맞아 숨졌고, 김덕선을 포함한 14명은 결박된 상태로 3~4일간 감금되었다가 공비 연대본부가 있는 곳으로 1시간 정도 이동했다. 매복해 있던 보초가 하고 암호를 묻자 연행하는 자가 이라 확인하는 절차가 끝나자 우리는 곧 그자에게 인계됐다. 일행은 2시간 정도 그를 따라갔고, 도착한 곳은 그들의 연대본부 였다. 그들의 병력은 50~60명 정도였으며 그 중에는 국경출신이 있었는지 국경동무하고 부르는 소리도 들렸다.

 

우리들이 도망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그들은 결박을 풀어주었지만 감시는 삼엄했다. 1박을 하고 그 다음 날 저녁에 우리를 처단하여 북촌포구에서 발생한 사건을 완전범죄로 은닉하려 한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인근에서 토벌임무를 수행하고 있던 경찰이 사찰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공비 1명을 생포했다. 그 공비는 우리를 연행했던 바로 그 공비였다. 취조한 결과 우도에 사는 사람들이 북촌포구로부터 많이 잡혀왔는데 오늘 밤에 처단하려 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이에 모슬포에 주둔하고 있던 강노반 중위가 토벌대를 인솔하고 긴급 출동하여 우리 일행 14명은 구사일생으로 구출됐다. 이 부대는 생포한 공비를 추궁하여 공비들의 은신처를 찾아냈다. 생포된 공비를 따라가 보니 북촌리 마을 안에 있는 한 가옥의 마당구석에서 돌로 교묘하게 위장된 굴의 입구를 찾아냈고, 그 곳에 은신해 있는 공비 7명을 생포했다. 그 중의 1명인 김진태는 배에서 내릴 때 김덕선의 우측 눈을 발로 차 바다에 떨어지게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 사람이 20036월 당시 “4·3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으로 신고돼 있었다. 김덕선은 그 굴을 지금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증언한다.

 

북촌리 사건은 좌익 및 정부보고서가 주장하듯이 단지 군인 수송차량이 북촌리를 지나다가 매복한 공비들의 기습을 받아 2명이 전사한 사건으로 촉발된 것이 아니었다. 당시 권총을 휴대할 만큼 지휘자급 공비들이 북촌마을에 있었을 정도로 북촌 마을은 공비의 마을이라는 인식이 토벌대와 주민들 사이에 팽배해 있었다. 북촌리는 ‘4·3은 말한다가 밝힌 대로 마을 전체가 좌경화된 마을이었고, 그들의 끈질긴 반역행위들이 117일 집단총살을 유도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비극을 안았던 그 범선은 후에 4·3 주동자들이 해외로 도피하는데 이용되었다고 한다.

 

그러면 폭도들은 그후 보복을 하지 않고 지나쳤는가? 유격대는 194924일 보복을 단단히 했다. 북촌마을 동쪽 일주도로에 매복해 있다가 제2연대 장병들의 무기수송차량을 기습하여 23명을 죽이고, 합덕지서 부원 하순경을 살해한 후 불에 태웠으며 민간인 1명에게 중상을 입히고, 99식 소총 150정을 탈취했다. 이들 사망자의 이름은 김영중의 내가 보는 제주 4·3 사건” 94쪽에 확보돼있다. 정부보고서는 이들 모두를 외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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