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주사태 VS 광주민주화운동/광주사태의 명쾌한 해설/한국 현대사의 비극과 오점/Korean Oldguy- 타이핑 기록 > 최근글

본문 바로가기

System Club 시스템클럽

최근글 목록

5.18 광주사태 VS 광주민주화운동/광주사태의 명쾌한 해설/한국 현대사의 비극과 오점/Korean Oldguy- 타이핑 기록

페이지 정보

작성자 해머스 작성일20-03-14 21:22 조회3,459회 댓글2건
  • 트위터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본문

5.18 광주사태 VS 광주민주화운동/광주사태의 명쾌한 해설/한국 현대사의 비극과 오점/Korean Oldguy

 

출처: 다본다TV, https://youtu.be/ibtWXLmKv3E (~38분 55초)

2018. 2.11

.

 

 

00:09

안녕하세요.

오늘은 광주사태 또는 광주 민주화운동이라고 불리는 사건에 대해서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사람에 따라서 광주사태 또는 광주 민주화운동으로 서로 다르게 불리는 이 사건은 우리 현대사에서 아주 중요한 사건 중에 하나로, 이것을 어떻게 정의 하는가에 따라서 현재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많은 갈등, 즉 지역간 갈등, 정치세력간 갈등은 물론이고, 세대간 갈등까지도 재해석될 수 있는 중요한 사안입니다.

 

00:51

저는 이번 비디오를 통해서 왜 5.18 광주사태가 민주화운동이 될 수 없는지? 왜… 이것이 폭동이고 내란인지에 대해서 말하고자 합니다. 마지막 부분에 그 중요 원인이 나오니까 조금 길고 지루하더라도 끝까지 보시면 고맙겠습니다.

 

01:14

이것이 특히 중요한 이유는 내란 또는 반란에 준하는 광주사태가 민주화운동으로 둔갑함으로써 우리나라에서 반역자 집단이 스스로 정당성을 가질 수 있게 되었으며, 반역을 하더라도 권력을 잡고 진실을 왜곡시킬 수 있다면은 결국 역사적인 승자가 될 수 있다는 아주 나쁜 선례를 현대 정치사에 특히 21세기 선진국 도약의 기로에 선 대한민국에 뚜렷하게 남겼기 때문입니다.

 

01:53

무엇이 악인지 무엇이 선인지, 무엇이 반역인지 무엇이 충성인지, 우리 사회의 가치관의 혼란을 가져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광주사태가 민주화 운동으로 둔갑하게 된 것은 반역자 집단인 좌파가 그들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 행한 가장 중요한 일련의 행동 중 하나입니다.

 

02:22

광주사태는 반정부 활동만 일삼던 무능한 정치꾼 김영삼과 반역자 좌파의 원조격인 김대중에 의해서 이루어졌고, 여기에 부패하고 부정한 자칭 우파라고 하는 썩어빠진 정치인들의 침묵 내지는 동조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야말로 우리나라의 총체적인 정치적인 부도덕성과 난맥상의 실체이며, 정치적 야합과 타협의 실상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아주 좋은 신뢰이며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03:04

제가 이미 다른 비디오에서 전에 말씀드렸듯이 우리나라 우파는 실상 우파라고 할 수 없고, 우파의 탈을 쓴 거짓 우파 또는 어떠한 우파적 신념이나 철학 없이 어중이떠중이가 모여 자신의 개인적 이익을 위해서 정치를 이용하는 집단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우파적 가치나 철학 또는 신념 없이 우파가 추구하는 애국 정신이 없는 단순히 개인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자들이 모여서 자칭 우파라 칭하고, 그들의 이익을 위한 정치를 추구하였기 때문에 오늘날 그들은 진정한 우파가 대한민국에서 더 이상 설 자리를 잃게 만든 장본인들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우파적 가치가 똥이 되고, 우파가 설 자리를 잃게 된 것은 모두 다 이러한 가짜 우파, 거짓 우파가 우리의 정치판을 휩쓸고 다녔기 때문입니다.

 

04:13

좌파가 반역자 집단인 것을 뻔히 아는 사람들도 선뜻 우파 정치인들을 지지할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 자칭 우파라는 자들이 얼마나 썩은 자들이 모여 있으면 좌파를 태생적으로 싫어하는 사람들도 우파를 지지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저만 해도 현재 우리나라 우파 정치인들의 썩어빠진 얼굴은 쳐다보기도 싫습니다. 근본도 없고 철학도 없이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자들이라서 하는 짓거리나 말하는 것을 보면, 정말 수구 꼴통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르고, 그들의 얼굴만 쳐다 보면 썩은 돼지 대가리가 떠오릅니다.

 

05:02

광주사태가 광주 민주화운동으로 둔갑한 것도 실상은 우리나라 우파 정치인들의 침묵과 동조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전라도 표를 의식해서 또 젊은이들의 표를 의식해서 또는 중도 좌파의 표를 의식해서 단기적인 시각을 가지고 행동했습니다.

 

05:29

장기적으로 이러한 행동이 그들에게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힐 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치 않았습니다. 우리나라 우파는 당장의 이익,당장 닥치는 선거에서의 표심이 중요하지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이익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신념과 철학, 애국심이 없는 자들이기 때문에 장기적인 관점보다는 눈앞에 보이는 당장의 이익을 더 우선시 하기 때문입니다.

 

06:03

그것이 본질적으로 자신의 기반을 무너뜨린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치 못했습니다. 아니 생각치 못했다기 보다는 안 했습니다. 반면에, 좌파는 이념과 신념이 뚜렷했기에 그들의 이념을 뒷받침 할 것들을 차곡차곡 마련하고 쌓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결국은 그들 좌파는 승리했고 그들은 정당성을 부여받았습니다

광주사태가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았다는 것은 좌파의 반역활동이 정당성을 부여받은 것이고, 결국 이것은 우리 사회에서 좌파가 승리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입니다.

 

06:50

자… 그럼 이제부터 광주사태의 개요부터 말해보겠습니다.

광주사태가 일어나게 된 근본적인 계기는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박정희대통령의 시해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에 의해서 시해 당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바로 10.26사태입니다.

이후 곧바로 신군부 세력이 권력을 잡기 위해서 쿠테타를 일으킵니다. 79년 12월12일 일어난 일로서, 소위 말하는 12.12 사태가 이것입니다.

 

07:34

한편은 당시 북한에서는 12월20일 북한의 김일성이가 다음과 같은 명령을 하달합니다. 지금 남조선은 군 수뇌부가 갈팡질팡 하고 있으니, 연락부와 인민무력부는 명령만 떨어지면은 즉각 행동할 수 있도록 24시간 대기하라 라는 명령을 합니다.

 

07:59

이때까지만 해도 대학교가 방학기간 중이라서 다음에 개학기간까지 커다란 동요나 소란 없이 지나갔습니다. 이후 대학교가 개학을 하는 시점 이후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대학을 중심으로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08:20

그와 마찬가지로 김대중이나 김영삼이 같은 정치인들도 권력을 잡기 위해서 온갖 수단 방법을 다 동원하던 시기였습니다. 각종 성명이 난무하고 최후통첩을 하고 정치적인 일정을 요구하는 등 그야말로 권력쟁탈 투쟁의 시기가 본격적으로 도래하였던 것입니다.

 

08:47

그럼 당시 반정부 시위 또는 민주화 시위의 산실격인 대학의 분위기는 어떠했을까요? 당시 모든 시위와 데모는 대학이 주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즉 대학교의 모든 활동을 계획하고 주도하고 행사했던 학생회를 중심으로 각 대학의 민주화 시위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각 대학의 총학생회는 거의 대부분 좌파 운동에 심취하고, 공산주의 사상에 많이 몰두하던 자들이 주도권을 쥐고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시위를 데모라고 했습니다.

 

09:30

당시 데모는 소위 말하는 1980년 5월15일 서울의 봄이라고 불리는 대규모 민중시위가 이루어지기까지 각 대학교를 중심으로 산발적으로 소규모의 시위가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일반적인 대학생들의 시위 참여도나 시위를 바라보는 시 또는 데모의 분위기 등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당시의 분위기나 일반 대학생들의 상황들을 잘 아는 까닭은 제가 당시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었고, 또 이런저런 데모에 많이 참가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잘 알고 있습니다.

 

10:14

물론, 저는 시위를 주도하거나 또는 어떠한 특별한 역할을 맡거나 했던 것은 전혀 아니고, 단지 그냥 일반적인 보통의 대학생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시위에 특별한 관심이 있던 소수의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일반적인 대부분 대학생들은 데모가 일어나는 과정이나 데모와 관련된 사항들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10:44

그냥 학교에 나왔다가 오늘 데모를 한다더라 하는 소식을 들으면은 데모에 참가하던지, 아니면 다른 볼 일이 있거나 약속이 있으면 다른 걸 하던지 하는 그런 정도였습니다.

예를 들어, 친구들이랑 학교 근처 당구장에서 당구를 치거나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최루탄 터지는 소리가 나고, 함성 소리도 들리고 하면 야… 데모 하나 본데 한번 가볼까 하는 그런 정도고…

 

11:16

그러다 의견이 맞으면, 데모 좀 참가하고 그거 끝나면은 다시 당구장에 모여 놀거나 술 한잔하거나 뭐 하는 그러한 정도의 분위기였습니다. 사실 대부분은 일반 대학생들은 뭐라고 그럴까요? 조금은 방관자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고 할까요…

물론 민주적 정치를 원하고 군부의 집권 시도를 원하지 않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위해서 목숨을 걸 정도의 특별한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11:52

아무튼 이러한 소규모의 각 대학별로 산발적인 시위가 5월 들어서 전국적으로 통합된 대규모의 시위로 점점 발전하게 되는데, 아마도 좌파 정치인과의 교감과 그들의 지원 하에 각 대학별 총학생회의 통합회의로 대규모 시위로 발전하게 된 것 같습니다.

특히 서울을 중심으로 어마어마한 대규모의 시위가 5월13일 기점으로 해서 폭발하게 됩니다. 당시 5월13일 서울역에 32개 대학 10만명이상의 학생들이 모여서 대규모 시위를 하게 됩니다.

 

12:37

이후에 데모는 5월15일 절정에 이르는데, 이른바 서울의 봄으로 불리는 그러한 사건입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당시 모든 시위의 주체는 대학생이었습니다.

일반인들은 데모에 참여를 하지 않았습니다.

 

12:55

하지만 서울의 봄 당시에는 일반인들의 참여도 엄청나게 많아졌습니다. 우리는 이들을 넥타이 부대라고 칭했습니다. 왜냐하면 직장인들이 일이 끝나고 나서 양복을 입은 채로 데모에 참여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얼마나 많은 학생과 시민이 참여했는가 하면 당시 시민들은 느끼기를 이대로 청와대까지 행진하거나 또는 이와 같은 데모가 조금 더 진행이 되면은 신군부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것이다 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로 대규모 였고, 거의 모든 시민들로부터 지지와 환영을 받고 있었습니다. 당시 시위 분위기는 어떠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13:46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당시 저는 시위에 직접 참여하였기 때문에 시위 양상과 분위기에 대해서 잘 압니다. 물론 단순 참여자이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돌아가는 실상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당시 시위는 처음 대규모 시위가 있었을 때는 경찰도 최루탄을 쏘면서 강력대응을 하였고 시위를 해산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14:17

또 극렬 참가자는 체포하려고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2~3일 계속해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고 일반시민까지 참여하자 데모를 진압할 경찰들의 태도가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도 더 이상 데모대를 진압하려고 하지 않고 질서유지에 오히려 신경을 쓰고 커다란 사건이나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방향을 유도하거나 교통을 통제하는 등의 역할로 전환을 하였던 것 같습니다.

 

14:52

이렇게 대규모로 일어난 데모치고는 너무나도 평화롭게 큰 사고 없이 진행되었고 이러한 것은 정말로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서울의 봄에 일어난 평화적인 시위가 광주사태의 무장봉기의 원인 중 하나가 아닐까도 생각해봅니다.

 

15:15

특정 세력, 아직까지도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광주사태를 기도했다는 600여명의 정체불명의 집단은 서울의 봄과 같은 평화적인 시위가 그들이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무장폭력사태를 계획하고 진행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15:37

광주사태를 주도한 이들 정체불명의 집단은 북한이 직접 남파한 자들이 주도적으로 조직한 자들이라는 설명이 있습니다. 그것과 관련한 비디오도 유튜브에 많이 있고요. 또 탈북자들 중에 당시 남파를 주도한 기관에서 이랬다고 주장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16:01

아무튼 무엇이 진실인지는 밝혀진 것이 없으니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당시 무기고를 탈취하고 무장을 주도하고 전투를 지휘했던 자들의 사진도 있는데, 그 정체를 밝혀내지 못했다는 것은 그들이 평범한 자들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16:24

현 문재인 좌파 정권은 물론이고, 과거부터 좌파 정권들이 주도했던 5.18 광주사태의 진상위원회에서 허구한 날 떠들어대는 진상이라는 것은 광주사태에 전반적인 진실규명과는 거리가 먼 어떤 특정한 부분에 대해서 사실을 밝힌 것입니다.

 

16:46

좌파들은 언제나 그렇듯이 국민들을 속이고 기만하는 데는 도가 튼 자들입니다. 이것은 언론이 어떤 사건의 전체에서 일부만 발췌해 편집해서 자신들이 구미에 맞는 기사를 만들어 발표하는 것과 100% 똑같은 방법입니다.

 

17:10

예를 들어, 그들이 말하는 진상규명은 누가 최초로 발포명령을 했는가? 헬기가 출동해서 무엇을 했는가? 뭐 어디에 시체가 있다던데 한번 파보자. 이러한 것들로 국민들에게 단순히 적개심만 불러일으키는 것들에 한해서 중점조사를 하여서 광주사태를 호도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17:38

어쨌든, 5월16일 김대중이 국가를 상대로 최후통첩을 합니다. 5월19일까지 계엄령을 해제하고, 최규하 내각을 해체해서 전국 혁명내각구성 등을 골자로 하여 관철이 안될 시에는 5월22일 전국 봉기를 할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18:03

그러자 5월18일 0시를 기준으로 해서, 신군부에서는 당시 서울에 대한 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하여 휴교령을 내립니다. 여기서 반드시 주목하고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사람이 있습니다. 계엄령 전국확대와 휴교령이 떨어지자 당시 데모를 주도했던 세력들, 즉 각 대학의 총학생회는 전부 도주해서 숨어 버렸습니다.

 

18:34

예를 들어, 서울의 봄을 주도했던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 심재철과 광주일대에서 5.18 광주사태 이전까지 모든 시위를 지휘하고 주도했던 전남대 총학생회장 박관현 등은 모두 도주를 해서 자취를 감췄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체포되어 군대나 경찰에 끌려가서 감금되거나 심문을 받게 된 것이 두려워서 숨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후 그들 당사자들이 전부 진술한 것으로 사실입니다.

 

19:14

그러면 도대체 광주사태는 누구의 주도로 벌어진 것입니까?

모든 시위는 주도하는 자가 없으면은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냥 자연발생적으로 주도자 없이 일어나는 시위가 가능합니까? 100% 불가능합니다. 더 더욱이나 당시 계엄령이 전국으로 확대되어 각 중요 지점에 군인들이 배치되어서 통제하던 상황에서 그러한 조직적인 무장투쟁,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아니 사실 방불케 한다기 보다는 일반적인 군사작전보다 훨씬 더 잘 기획되고 진행되어진 광주사태가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은 100% 불가능한 일입니다.

 

20:04

당시 기존의 모든 시위 주동자들이 모두 도주하고 숨은 상태에서 광주사태를 주도한 정체불명의 600여명의 신원은 철저한 재조사가 이루어져야 하고, 그들의 의도와 행동도 재조명되어야 합니다.

 

20:22

5월18일 전남대에 배치된 계엄군은 7공수여단 33대대로 정문에 20여명이 배치되어 통제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당시에는 실탄이 지급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경비와 통제를 하던 계엄군 20여명과 200여명이상의 학생이 최초 충돌을 합니다. 이것이 광주사태의 시발점이라고 합니다.

 

20:53

숫자가 적고 빈 소총만 가지고 있던 무장이 빈약한 계엄군을 향해서 학생인지 아닌지 떼거지로 몰려든 200 여명이상이 투석 등을 하여 계엄군에게 린치를 가하고 모두 흩어져 도망갔답니다.

 

21:12

영화에서 묘사하는 광주사태는 개념들이 그야말로 무차별적으로 시민들을 학살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이것은 전부 거짓입니다.

계엄이라는 상황을 겪어보지 못한 젊은 사람을 위해서 잠깐 설명드리겠습니다.

 

21:32

저는 당시에 계엄군들이 어떠한 형태로 배치되어 있었고, 어떻게 활동했는지 잘 압니다. 왜냐하면 서울에서도 계엄군이 다 배치되어 있었으니까 잘 압니다. 계엄이라고 무슨 특별한 방법으로 시민들을 통제하거나 감시하고 그런 건 전혀 아닙니다.

 

21:56

중요 시설이나 거점에 몇 명씩 군인들이 배치되어 있는 것만 빼면은 사실 시민들에게는 일상 생활은 똑같은 그러한 상황입니다. 물론 군인들에게 실탄도 지급되지 않습니다. 보통 광주사태 하면은 계엄군의 무차별 사격으로 수백 수천명의 시민이 학살당하는 것을 연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총 사망자가 200여명도 되지 않습니다. 총 사망자는 193명 입니다. 군인 사망자 23명과 경찰관 4명이 포함된 숫자이고, 그들을 뺀 총 민간인 사망자는 166명으로 어떤 원인으로 누구에게 죽은 것인지 모르는 그냥 묻지마 식으로 집계된 원인불명의 모든 사망자를 포함한 좌파에 의해서 집계된 숫자입니다. 이 중에는 당시 계엄군이나 군대에서 사용되지 않던 칼빈소총에 의해서 살해된 민간인도 26명이나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23:11

당시 칼빈소총은 무기고를 탈취해 무장하고 있었던 시민군들이 사용하던 소총입니다. 그 외에 M16소총이 아닌 칼이나 둔기 등에 의해 살해된 모든 숫자를 포함한 것으로서, 실제 계엄군과의 교전에 의해서 사망하는 자들이 얼마나 되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또 죽은 자 가운데 13명은 신원을 전혀 밝힐 수가 없었는데, 도대체 이건 무슨 상황입니까? 이들은 북한군 또는 남파 간첩으로 추정되고 있다고도 합니다.

 

23:49

광주사태의 최초 사망자는 경찰관으로서 5월22 노동청으로 달려드는 시위대의 버스로 인해서 4명이 사망하게 됩니다. 그 후 20일밤에 최초로 계엄군에게 실탄이 지급됐다고 합니다. 그 다음날 5월21일은 영화 화려한 휴일(휴가)의 주 대상 날짜라고 합니다. 도청을 탈취하려는 계엄군과 폭도 간 총격전이 발생하게 됩니다.

5월20일 이전까지 계엄군은 숫자도 적었고, 실탄도 없었고, 무장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상황을 통제할 수 없었습니다. 좀 더 자세히 5월 20일 상황을 살펴보겠습니다.

 

24:45

21일 오전 8시에 300여명의 폭도가 광주 톨게이트에 매복해서 톨게이트를 통과하는 20사단 사령부를 기습 공격해서 사단장 찌프 1호차를 포함해서 총 14대의 찦차와 약간의 기관총과 소총 등 무기를 탈취한 후, 군수차량 생산공장인 아시아자동차로 직행해서 장갑차 4대와 군용트럭 374대를 탈취합니다.

 

25:20

그야말로 정예화된 특수부대의 작전을 방불케 하는 전격적이고 과감한 치밀한 작전을 수행한 것입니다. 이 시각에 맞춰서 광주 금남로에서 또다른 300여명의 폭도가 다섯 대의 버스에 분승해서 아시아자동차에 합류하여 총 600여명의 폭도가 탈취한 군용트럭374 대와 장갑차 4대, 군 지휘부 찦차 14대 등을 몰고서 전라남도 17개 시군구에 배치된 47개의 무기고로 이동해서 무기고를 습격 탈취합니다.

 

26:07

이때 탈취된 수류탄, 소총, 기관총 등 공용 화기와 탄약, 폭약 등이 무려 군대 3개 연대 병력을 무장시킬 수 있는 분량이라고 합니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작전이 전격적으로 실수 없이 수행되었던 것입니다.

 

26:31

미국의 최정의 특수부대라고 해도 이것보다는 더 잘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작전이 수행된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작전이 처음 광주 톨게이트에 매복해서 20사단사령부를 기습 공격하고, 아시아자동차를 습격해서 수백대의 군용트럭을 탈취한 후, 17개 시군구에 위치한 탄약고를 탈취해서 도청에 다시 재집결하는 데까지 걸린 총 시간이 단 8시간 만에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27:10

그야말로 최고의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데요. 만약 이것이 미국이나 한국 등 한 국가의 정규군이 행한 작전이라면은, 분명히 성공스러운 군사작전에 모범사례로 군사교범에 실려서 교육이 될 정도로 훌륭하게 수행된 작전입니다. 이러한 작전이 단지 데모를 하기 위해서 모인 일반 대학생이나 시민이 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27:41

이것은 불가능합니다. 게다가 이미 말했듯이 당시 데모를 주도했던 세력이 밝혀지지 않고 불분명 합니다. 차량 한 대에 소수의 인원이 참가한 작전이라면은 가능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생각해 보세요. 동원된 차량이 수백대이고, 참여 인원도 600여명에 이릅니다.

 

28:06

게다가 한군데서 이루어진 것도 아니고,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 일사 분란한 작전을 수행한다는 것이 일반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당시에는 핸드폰 이라는 것도 없던 시절이었고, 또 당시 광주에 트럭운전이 가능한 면허증 발급 수량이 200개미만이었었다고 합니다.

 

28:31

게다가 1급비밀인 군 부대이동을 미리 알아서 매복기습 공격한 것과, 일반인들은 도저히 알 수 없는 각지에 흩어진 수십 군데의 무기고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습격해서 탈취했다는 점은 도저히 일반인들이 했다고 납득할 수 없는 일입니다.

 

28:54

아시아자동차 습격 이후 작전시간을 보면은, 수백대의 트럭을 탈취해서 각지에 흩어진 47개의 무기고를 600여명이 4백여대의 트럭 등의 차량을 이용해서 탈취하고, 다시 광주에 모이는 데 걸린 시간은 4시간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29:18

정말 기가 막힙니다. 작전의 천재 아닙니까? 특수부대도 이 정도만 되면은 세계 최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날 오후 도청에서 폭도와 계엄군간 대규모 총격전이 벌어집니다. 당일 60여명이 사망했다고 하는데, 실제 도청에서 총격전으로 실탄에 의해서 사망한 사람은 13명 정도였다고 합니다.

 

29:48

도청에서 실탄에 의하지 않고 원인은 잘 모르겠지만, 둔기나 칼에 의해서 사망한 자들이 20여명에 이르고, 나머지는 다른 장소에서 사망한 숫자라고 합니다.

도청에서 총격전 이후에 계엄군은 다시 시 외곽으로 철수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일부는 조선대 또 일부는 광주교도소 등에 방어진지를 구축하게 됩니다.

 

30:19

이때, 폭도들은 철수하는 계엄군을 추격해서 전투를 계속 벌입니다. 그리하여 계엄군이 방어진지를 구축한 광주교도소를 밤새도록 습격 공격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21일에서 26일까지 철수하였던 계엄군을 폭도들이 추격해서 전투를 벌인 결과, 시민 60여명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 숫자는 자신들이 군대를 공격하다가 죽은 것이므로 그 자신들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0:59

자... 여기서 다시 한번 생각해 봅시다. 보통 시민이라면은 이러한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철수해서 방어진지를 구축한 군대를 공격할 수 있습니까? 이런 것은 절대로 일반시민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것은 특수훈련을 받은 자들이 계획하고 선동해서 거기에 휩쓸린 일부 일반인들을 총알받이로 동원해서 벌인 일입니다.

 

31:29

일반인들이 자기가 죽을지도 모르는데, 군인을 상대로 공격을 할 수 있습니까? 설사 자기가 죽지 않는다는 확신이 선다 하더라도 결과가 어떻게 될 지 알고 그렇게 합니까? 나중에 살인범이 될 수도 있는데, 두려움도 없습니까? 인생이 쫑 날 수도 있는데 할 수 있습니까?

 

31:55

이것은 옆에서 꾸준히 감시하고 선동하고 부추기는 세력이 없다면은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사실 22일 이후에는 광주시내는 평온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무장세력들이 철수한 계엄군을 따라서 시 외곽으로 나갔기 때문입니다.

 

32:18

이들이 시 외곽에서 계엄군과 전투를 벌이는 사이에 정신차린 일부 시민들이 광주시내에서 무기를 회수하고 질서를 유지하는 등의 행동을 취하였다고 합니다. 22일 이후에 이들 정체불명의 핵심인물 600여명은 복면을 착용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32:44

그리고 26일을 기점으로 무장복면 세력들은 갑자기 자취를 감추고 사라졌는데,

지금도 그들이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27일 새벽 4시를 기해서 계엄군은 본격 작전에 돌입하여 광주사태를 마무리하게 됩니다.

 

33:07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광주사태는 일반 민주화 시위와는 궤를 달리하는 비정상적인 폭동사태입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여러 가지 의심스러운 사안과 좌파 정치인과 언론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축소되어지고 은폐된 사실들은 반드시 재고찰 되어야 할 것입니다.

 

33:34

게다가, 저는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광주사태가 정상적인 민주화 시위가 될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이 살상무기로 무장한 세력이라는 점입니다. 그들이 총기로 무장한 순간 그들은 더 이상 민주화 세력이 아니라, 반란군으로 전락한 것으로서 반란을 일으킨 자들로 규정되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34:07

전세계 어떠한 나라도 수천의 총기로 무장한 세력이 한 도시를 점령한 사태가 발생한다면은 그것이 어떠한 이유가 되었던 간에 그들을 폭도 또는 반란군 내란 주동자들로 간주하여 군대를 동원해서 그거를 처단할 것입니다.

 

34:28

이것은 국가라면은 당연히 해야만 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정당한 업무 집행으로 간주되어지는 일입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에서 어떠한 이유로든 간에 수 천의 총기로 무장한 사람들이 도시를 점령했다면 과연 그들 나라들은 어떠한 행동을 취하겠습니까? 아마도 우리나라보다 더욱 더 무자비하게 진압했을 것입니다.

 

34:59

물론 대화로 무장해제를 먼저 시도하려고는 하겠죠. 당시 계엄군도 여러 번에 걸쳐서 무장해제를 위한 경고나 대화 등을 시도했습니다. 이러한 시도가 별 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면은 그 어떠한 나라도 똑같은 행동, 즉 무력진압을 시도할 것입니다.

이것은 한 나라가 국가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한 당연히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일이고, 사실 이러한 일은 공으로 치하받아야 하고 진압작전에 참여하여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면은 마땅히 훈장을 수여하고 공적을 기려야 하는 일입니다.

 

35:46

광주사태에 원인이나 과정 등 그 모든 것은 서로 보는 시각에 따라서 서로 다른 결론을 도출할 수도 있고, 또는 같은 결론이라고 해도 서로 온도 차를 느낄 수 있는 주장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총기로 무장한 순간, 그들은 더 이상 민주화 운동을 하는 세력이라고 할 수는 없게 되는 것입니다.

 

36:13

그들이 누구든 그들의 주장이 무엇이든 관계없이 그들은 반란군이 된 것이며, 결국은 정부군과 반란군간에 무장 교전이 벌어진 상황이 된 것입니다.

즉 다시 말해서, 그들이 100% 순수한 광주시민이던 또는 북한의 지령을 받고 남파한 간첩이 주도해서 조직한 세력이든 관계없이 또 그들의 주장이 민주화를 요구하던 계엄해제를 요구하던 김대중이를 지지하던 이 모든 것에 관계없이 그들이 무기고를 탈취해서 수천 정의 총기와 화약으로 무장한 순간 그들은 반란군을 조직한 것이며, 반란군의 일원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단 하나의 진실입니다.

 

37:11

이것이 광주사태 본질입니다. 사실 그 이외의 것은 부차적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광주사태를 이해하고 광주사태를 바라보는 올바른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대부분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러한 사실을 간과하고 인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사람이 몇명 죽었는가가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37:39

중국의 천안문 사태처럼 무장하지 않은 시민들을 학살했다면, 그것은 당연히 지탄받아야 할 최악의 행위입니다. 하지만 거듭 말씀드리지만 광주사태는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본질적으로 다른 사항입니다. 수 천의 총기로 무장하고 도시를 점령한 반란군을 커다란 피해 없이 조기에 진압한 것으로서 국가로서 정당하게 자신의 권리를 행사한 일입니다.

 

38:15

이것은 국가 라면은 당연히 해야 할 권리 행사이며, 의무입니다.

반란군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들의 뜻에 맞지 않는 정부를 대상으로 그들의 주장을 관철 하려고 무장한 세력을 반란군이라고 합니다. 반란군을 제압하는 것은 주권을 행사하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광주사태는 광주 민주화운동이 될 수가 없으며, 반란군에 의한 정부군과의 교전 사태로 보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구독해 주세요.

 

 

댓글목록

해머스님의 댓글

해머스 작성일

물질만능과 이기주의, 기회주의(보신주의)가  대한민국내 판을 치고 있음을 한탄하게 됩니다.
모든 가치관의 혼돈은 이들 정치꾼들이 옳고 그른 것에 대한 판단을 흐리게 한데서 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 근본원인은 잘못된 518인식의 오류를 갖게 한 정치에 있습니다.
애국심과 철학도 없는 정치꾼들은 준엄한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진리true님의 댓글

진리true 작성일

<세상통치자의 위선>
They tie up heavy loads and put them on men's shoulders,
but they themselves are not willing to lift a finger to move them.
"Everything they do is done for men to see :
They make their phylacteries wide and the tassels on their garments long ;
they love the place of honor at banquets and the most important seats in the synagogues;
they love to be greeted in the marketplaces and to have men call them 'Rabbi.'
"But you are not to be called 'Rabbi,' for you have only one Master and you are all brothers.
And do not call anyone on earth 'father,' for you have one Father, and he is in heaven.
Nor are you to be called 'teacher,' for you have one Teacher, the Christ.
The greatest among you will be your servant.
 If you put yourself above others, you will be put down.
But if you humble yourself, you will be honored.(mathew23:4~12)

최근글 목록

Total 13,849건 6 페이지
최근글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추천
13699 [지만원 메시지(109)] 미국 품이 그리운 김정은의 접근법, 대… 관리자 2023-07-16 10814 245
13698 [지만원 메시지(108)] 투시력 없으면 구국도 없다 관리자 2023-07-16 9103 240
13697 [답변서] 사건번호 2020고단5226(초안) 관리자 2023-07-15 9067 167
13696 [지만원 메시지(107)] 괴담 분출자들엔 실어증폭탄 투하해야 관리자 2023-07-14 9900 226
13695 [지만원 메시지(106)] 지만원 비판한 서강대 임지현 교수에게 관리자 2023-07-11 11411 314
13694 [지만원 메시지(105)] 김양래 법정증언의 의미 관리자 2023-07-11 10655 186
13693 [지만원 메시지(104)] 대통령, 이것만 더하면 5천년 최상의 … 관리자 2023-07-05 10119 313
13692 [지만원 메시지(101)] 5.18 진상규명 조사위원회 귀중 관리자 2023-06-30 10135 200
13691 [지만원 메시지(103)] 국민제위께, 대통령께 긴급 전해주십시오… 관리자 2023-06-30 9411 189
13690 [지만원 메시지(102)] 기적! ‘북한군 개입’ 표현, 더 이상… 관리자 2023-06-30 7817 214
13689 [지만원 메시지(100)] ‘5.18은 북한소행’ 표현이 걸어온 … 관리자 2023-06-24 10145 239
13688 [지만원 메시지(99)]전광훈 목사님께 전하는 긴급 메시지 관리자 2023-06-24 9184 239
13687 [지만원 메시지(98)] 교육부와 학원가와의 복마전 관리자 2023-06-24 8441 168
13686 [지만원 메시지(97)] 5.18 마패, 동강낼 수 있는 진검 탄… 관리자 2023-06-24 6368 178
13685 [지만원 메시지(96)] 5.18 천지개벽 관리자 2023-06-20 8060 257
13684 [지만원 메시지(95)] 준비서면(광주민사1심) 초안 관리자 2023-06-19 6536 141
13683 [지만원 메시지(94)] 형집행정지 신청 관리자 2023-06-18 7366 260
13682 [지만원 메시지(93)] 5.18 진상규명위와 국민 제위께 드리는… 관리자 2023-06-18 7012 169
13681 [지만원 메시지(92)] 민병돈 장군 관리자 2023-06-08 9914 261
13680 [지만원 메시지(91)] 5.18 후계자 관리자 2023-06-08 9753 269
13679 [지만원 메시지(90)] 옥중 출판에 대한 생각 관리자 2023-06-03 12350 295
13678 [지만원 메시지(89)] 지만원 족적[5] 3. 5.18을 나만 … 관리자 2023-06-03 12008 216
13677 [지만원 메시지(89)] 지만원 족적[5] 2. 장경순과 나 관리자 2023-06-03 9926 180
13676 [지만원 메시지(89)] 지만원 족적[5] 1. 김대중과 나 관리자 2023-06-03 9489 142
13675 [지만원 메시지(88)] 지만원족적[4] 6~7 관리자 2023-05-29 11211 163
13674 [지만원 메시지(88)] 지만원족적[4] 5. 소위가 치른 베트남… 관리자 2023-05-29 10867 161
13673 [지만원 메시지(88)] 지만원 족적[4] 4.육사 1년 선배 관리자 2023-05-26 7406 171
13672 [지만원 메시지(87)] 윤석열 대통령, 전두환 대통령처럼 당한다 관리자 2023-05-23 10111 286
13671 [지만원 메시지(88)] 지만원 족적[4] 1~3 관리자 2023-05-22 6824 146
13670 [지만원 메시지(86)] 지만원 족적[3] 3~4 관리자 2023-05-19 9010 168
게시물 검색

개인정보취급방침 서비스이용약관

지만원의 시스템클럽 | 대표자 : 지만원 | Tel : 02-595-2563 | Fax : 02-595-2594
E-mail : j-m-y8282@hanmail.net / jmw327@gmail.com
Copyright © 지만원의 시스템클럽. All rights reserved.  [ 관리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