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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원TV]제232화, 5.18, 상황병과 소위의 현장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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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0-04-07 21:44 조회3,23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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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원TV]232, 5.18, 상황병과 소위의 현장증언

https://www.youtube.com/watch?v=s2sU00s_QZU

.

 

 232, 5.18, 상황병과 소위의 현장증언

 

선거: 자유당 31번 전국구 비례대표 정당 , 5.18정당

 

사전투표 절대 위험

투표일 - 20200415일 수요일

투표시간 - 06:00 ~ 18:00 까지

개표 - 투표 마감 후 즉시 개표

선거권 - 선거일 기준 만 18세 이상의 국민

사전투표일 - 410() ~ 411()

차이나바이러스, 차단만이 답이었다. 

이해찬 건강 문제- 임종석 양정철 전면 유세

서울현충원 5.18 행사, 오후 2. 이웃들 독려 부탁

 

 <3공수 12대대 김치년 상황병의 5.20>

 

520일 오후 7시께 우리 12대대는 광주역에 있던 3공수 15대대를 지원하고 KBS 광주방송국을 보호하라는 여단장의 지시를 받았다. 우리 부대는 광주역으로 이동하여 15대대와 합류했다. 어둑해질 무렵 드디어 수적으로 매우 열세인 우리 부대가 밀리는 상황을 계속 보고해 왔다. 악몽을 꾸는 듯 했다. 우리는 대한민국 최강의 부대라고 늘상 자부할 만큼 강도 높은 훈련과 시범을 보인 부대였다. 그런데 현실은 우리가 밀리고 있었다. 교신 내용은 매우 험악하게 변해갔다.

 

 -차량들이 돌진해 오고 있다.

 

오후 8시께 차량돌진 사태가 연이어 접수됐다. 그러다가 밤 10시가 될 무렵 드디어 피해상황이 접수됐다.

 

 -사상자가 발생했다.

 -사상자는 16대대의 한 중사다.

 -우리 대대원도 차량에 깔려 부상당했다.

 

당시 차량에 깔려 사망한 군인은 정관철 중사(사망 후 상사로 특진됨)였다. 그는 전역 명령을 받고 한 달 후 제대할 몸이었다. 더구나 그에게는 임신 9개월 된 부인이 있었다. 그의 사망 소식에 동료 하사관들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다. 부상병이 생겼다는 무전을 받은 지 20여 분이 지난 후 부상자들이 후송되어왔다. 그중 한 사람, 6지역대 장하사가 차량에 다리를 깔렸다. 그의 말에 의하면 갑자기 차량 한 대가 돌진해와 미처 피하지 못하고 부상당했다고 했다. 장 하사의 말에 따르면 차량은 지그재그로 진압군을 향하여 마구 돌진해 왔고 이에 병사들은 겁을 먹고 피하기에 급급해 하다가 부상자가 속출하자 부대원 모두가 과격해졌다고 한다.

 

장 하사와 함께 실려 온 두 사람은 민간인이었다. 그들은 경상도 번호판을 단 화물트럭의 운전기사와 조수였는데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다가 경상도 차량이란 이유로 시위대에게 구타를 당했다고 한다. 공포에 질린 표정들이었다. 두 사람 모두 옷도 찢겨지고 피범벅이 되어 있었는데 그 중 한 명은 머리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을 보자 나는 어이가 없어졌다. 이 무렵 무전기에서 위급한 상황에 처한 초급 지휘관들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없다.

 -옆 대대와 접촉이 안 되고 있다.

 -공포탄을 달라.

 -최소한도 차량을 저지할 수 있는 실탄을 달라.

 

 지그재그 차량 돌진 작전에 드디어 실탄 지급

 

너무나도 다급하게 흘러나오는 목소리였다. 이미 최루탄도 떨어진 상황이며 진압봉으로의 대처도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20여 분이 지난 후 공포탄 및 실탄을 사용해도 좋다는 여단본부의 명령이 하달되었다. 단 유의할 점 몇 가지 사항이 전달되었다.

 

(1) 실탄은 중대장 급 이상에게만 30발씩 지급할 것(공수부대 1개 대대에는 4개 지역대에 4개 중대씩 16개 중대가 있었는데 이를 팀이라 부르며 팀장이 곧 중대장이며 대위급으로 편성되어 있다)

 

(2) 돌진해 오는 차량의 저지용으로만 사용할 것

 

(3) 인명을 향하여 절대로 쏘지 말 것

 

(4) 공포용 이외의 용도에 사용할 시에는 엄중 처단한다.

 

대충 이런 요지와 함께 실탄지급을 명령하는 전통이 날아왔다. 작전병이었던 필자가 이 전통을 예하부대에 하달했으므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항들이다. 한편, 우리 대대에서는 소유하고 있던 탄약상자를 M-16 탄약 1상자와 예광탄 및 공포탄 각 1통씩을 싣고 여단 본부 병력과 함께 우리 대대의 작전 지역으로 수송했다. 우리 부대에서 지급된 실탄은 두 곳으로 나뉘어 전달됐다. 한 곳은 16대대가 시위대와 대치하고 있던 신안동 굴다리 쪽이었다. 본부대 병력 20여 명과 정보 참모가 경계용 실탄 1백여 발을 이들에게 전달했다. 여단 작전 참모와 함께 출발한 실탄 운반조는 광주역으로 향하면서 수백 명의 시위대와 부딪쳤다.

 

운반조는 시민군들의 공격을 뚫고 힘겹게 통로를 확보해 12, 15대대가 있던 광주역으로 도착할 수 있었다. 이 무렵 3공수 11대대는 금남로 신탁은행 공터에서 시위대에 포위되어 있던 중 여단장의 광주역 집결이란 명령을 받고 최루탄을 발사하며 포위망을 뚫고 이동 중이었다. 이들은 광주 시청에 몰려 있던 13대대와 합류한 다음 1130분께 가까스로 광주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때 조그마한 타이탄 트럭에 확성기를 달고 선무 방송을 하며 돌아다니던 여자가 있었다. 나는 훗날 이 여자의 이름이 전옥주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 여자의 선무 방송내용은 내게 종합되어졌다. 그 내용은 이렇다.

 

 - 광주 도청에서 시민 두 명이 살해되었다.

 - 광주 시민이여 봉기하여 무자비한 공수부대원을 몰아내자.

 - 광주역 부근에서 또 시민이 살해되었다.

 - 저들은 우리를 향해 절대로 총을 쏘지 못한다.

 -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궐기하자 광주 시민이여.

 

  중대장님, 전옥주를 죽입시다!

 

이 기록을 정리하는 사이 동료들의 얼굴 표정을 보니 전옥주란 여자의 선무 방송에 의해 대단히 불안한 심리상태를 보이고 있었다. 그녀의 선무공작은 특수전으로 단련된 우리들을 오히려 겁먹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부대원들은 저 여자 때문에 더욱 더 상황이 악화되고 있으니 저 여자를 죽여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주장했다. 당시 중대장이던 손 대위에게 한 하사관은 팀장이 못 쏘겠다면 총을 내게 달라. 내가 쏘아 죽이겠다고까지 할 정도였다. 그러나 끝내 그 여자를 향해 사격한 군인들은 없었다.

 

우리가 속한 부대는 북한의 한 지역을 대상으로 늘상 훈련을 한다. 그곳에 침투해 선무공작을 하고 때로는 시위를 일으키며 선무방송과 삐라를 만들어 뿌리는 임무도 수행한다. 한마디로 비정규전을 하는 부대이다. 그런데 선무 방송하는 시민군에게 심리적으로 위축당하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 광주사태는 시민군과 대한민국 육군과의 비정규전이었다. 거기서 비정규전 전문가인 군인들이 아마추어인 시민군들에게 깨지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러니였다.

 

5203공수여단의 광주 첫날 상황은 이튿날 새벽까지 계속되었다. 아침에 광주역에 도착했을 때 누구 하나 이런 사태가 올 줄 몰랐다. 모두가 현실이 아니길 바라는 듯했다. 우리 부대는 광주역에 집결해 시위대를 해산시키다가 52102시께 KBS를 지키던 31사단 경계병력들과 사복 경찰관 4~5명과 함께 전남대로 철수했다. 철수 명령이 떨어진 것이었다. 그 직후 광주 KBS 방송국이 불타오르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이 날 광주역에서의 진압을 두고 지금까지 학살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데 필자는 유감이다. 당시로서는 민간이 얼마나 총으로 사망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학살이거나 무차별 사격이었다면 적어도 수십 내지 수백 명이 죽거나 총상을 입었어야 말이 된다. 그 날 내 동료들의 말을 들어봐도 그들은 사람을 향해 쏜 것이 아니라 위협용 사격을 했었던 것이다. 실제로 19957월에 발표된 검찰 조사에서도 이 날 밤 총상으로 사망한 사람은 4명이었고 부상자가 6명이었다. 3공수여단 하사관 1명이 차량에 깔려 사망했고 3명이나 부상당한 이후 총을 가진 군인들이 작심하고 사격했다면 왜 4명에 국한됐을 것인가. 그럼에도 우리가 살인자로 몰려야 하는 이유를 필자는 모르겠다.

 

혹자는 광주사태의 진압을 일반 보병부대에 맡기지 않았음을 논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이 우리처럼 자제할 수 있었을지 필자는 의심스럽다. 눈에 불이 튀는 상황에서도 무차별 난사를 하지 않았기에 4명만이 불행한 죽음을 겪었다고 볼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살다보면 본의 아니게 서로 다른 입장에 설 수 있다고 본다. 우리라고 자원해서 진압군이 된 것이 아닌 것처럼 시민군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와서 진압자체를 두고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시각은 진정 유감이라 할 수 밖에 없다.

 

  차온다!” 노이로제

 

한편, 이날 현지에 투입된 공수부대원들의 공포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루 종일 죽음 앞에 직면한 부대원들이 전남대학교로 돌아왔을 때는 모두가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그들에게 가장 큰 충격은 차 온다는 소리였다. 예측할 수 없는 지그재그식 운전으로 돌진해 오는 차량 앞에, 서 본 사람만이 체감할 이 공포로부터 안전을 보장받을 군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일부 짓궂은 하사관이 녹초가 되어 바닥에 퍼져 있는 동료들에게 차 온다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한 명도 예외 없이 잠에서 깨어나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곳으로 몸을 날리며 긴장했다. 우스개로 한 장난은 동료들로부터 심한 비난을 듣는 것으로 끝났다. 우스울지 모르지만 나는 이 광경을 보고 정반대의 기분을 느껴야 했다. 그들은 하루 종일 차 온다는 경고에 사력을 다해 주위를 둘러보며 자신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하루 종일 시위대의 차량급습으로부터 피해 다니다 돌아온 그들에게차량 돌진은 일종의 노이로제가 되어 있었다.

 

521일 새벽에 우리는 일부 경계 병력을 제외하곤 강의실에서 눈을 붙였다. 새벽 5시께였다. 사이렌 소리가 났다. 시민들이 끌고 온 소방차였다. 전남대학교를 에워 싼 그들의 모습은 우리를 곧 삼켜버릴 것 같은 성난 모습이었다. 먼동이 터 오고 있었다. 바로 그때 시민군 측에서 총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어서 시민군도 무장했다는 전통과 함께 전대대원에게 실탄 10발씩 지급하라는 명령이 하달되었다. 부대 내에 남아 있던 탄약상자들이 본격적으로 해체되기 시작했다. 시민군들은 소총으로 무장한 채 군용 지프차를 몰고 태극기를 흔들며 정문 앞까지 왔다 갔다 했다. 그들은 복면을 하고 어깨 위에 총을 세운 채 하늘로 공포를 쏘고 다녔다. 그들도 우리를 향해 함부로 사격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그들의 총이 카빈이라는 걸 그때야 알게 됐다.

 

이때 처음 일반 대대원에게까지 실탄이 지급되었으며 이는 곧 상대편에 대하여 사격도 가능하다는 명령과 다름없었다. 멀리 대치한 그들의 모습은 각양각색이었다. 그들 중에는 예비군복을 입은 자도 있었다. 그 당시 공수부대 복장은 예비군복과 비슷했다. 뒷날 광주사태에서 공수부대원에 의한 성폭행 등 파렴치한 행위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피해자들이 예비군복을 입은 사람들을 공수부대원으로 착각한 것은 아니었을까. 필자에게는 당시 교문 앞에서 본 예비군복 차림의 시민군들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우리가 광주에 도착한지 만 하루가 지난 521일 오전은 전남대 교내에서 하루를 다 보낸 날이었다. 새벽 5시부터 전남대 정문 앞에 모여든 시위대들은 트럭, 소방차, 버스, 장갑차 등을 몰고 왔다. 이 무렵 대치상태라고 표현됐지만 사실상 우리는 포위되어 있었다. 시위대들은 이미 무기고를 습격해 무장을 한 상태였다. 3공수의 14백여 명에 비해 그들은 수십 배의 병력을 갖춘 셈이었다.

 

  <3196연대 제1대대 한동석 소위의 도청광장 충돌 상황 묘사>

 

전두환이 학살 명령을 내렸다고 가정을 한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실탄 분배 명령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발포명령이 나는 게 상식이지요. 저는 출동할 때 부대 상황실에서 탄통에 봉인된 실탄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솔직히 수도 없이 사용 충동을 느꼈지만 분배명령이나, 사격명령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다행이 그 전에 헬기로 탈출할 수 있었기에, 특전사 지역대장인 대위에게 탄통을 전달했습니다. 명령을 받고 탄통을 전달한 것이 아닙니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갔기에 공수대원들이 퇴각할 때 엄호용으로 활용할 것으로 예상하고 전달했지요. 아무리 특전사 병력이라 해도 맨 몸으로 버티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고, 저는 521일 오후 2시경 헬기를 타고 도청 광장을 이륙하여 도청을 탈출했습니다.

 

520일 하룻밤, 생사고락을 같이 했던 특전사 병력을 배신하고 혼자 도망한다는 생각에 어찌나 미안한지 눈물을 쏟고 말았습니다. 7공수와 11공수 5개 대대, 병력이 많으니 헬기수송 작전은 불가할 것이고 퇴로를 개척해서 무등산 쪽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위안을 삼은 것은“3개의 탄통에 든 실탄을 그들의 손에 쥐어주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추측하건데 시위대가 주장하는 521도청 앞 집단발포에는 제가 전달한 실탄이 사용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총소리가 이미 난 상황에서 31사단 병력 40여 명은 헬기로 탈출했지만, 특전사 병력도 맞바로 철수작전에 돌입하진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521일에 발생한 최초의 총소리는 금남로에서 들렸고, 그것은 분명 M-16 소총소리가 아니었습니다. 그 총소리에 인간 바리케이드 공수대열이 뒤로 밀리고 양쪽으로 갈라졌던 것입니다. ‘민족적 비극의 피해자는 광주 시민들만은 아닙니다. 말 못하고 있는 수많은 계엄군들의 육체적, 정신적 피해는 그 무엇으로도 보상이 되지 않습니다. 저도 1~2년까지는 심각할 정도로 정신적인 충격에서 벗어날 수도 없었고, 서울에서의 첫 직장생활을 잘 적응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도 가끔씩 꿈을 꿀 때면 아직도 전역을 하지 못한 상태로 꿈속을 헤맬 때가 있습니다. 제가 이 정도라면, 특전사 병력들의 실상은 매우 심각한 상태일 것이라고 감히 단정적으로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그 분들의 심정도 어느 정도 헤아려 줄 수 있는 마음의 배려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꼭 당부 드리고 싶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 만이라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그들 특전사 병력도 억울한 부분이 너무나 많습니다. 너무 일방적으로 왜곡하거나 비방하는 것은 자제해 주십사 당부드립니다. 대다수의 군인은 사기를 먹고 살며, 명예를 존중히 여기며 국방을 사수하는 순수한 국민의 아들들입니다. 사격훈련 목적으로 사용하는 교탄(교육용 실탄)을 사용할 때에도 사격 통제관의 통제에 따라서 사용을 할 수 있습니다. 경계용 실탄 역시 봉인된 상태로 보관하고 있다가 엄중한 통제권자의 통제에 따라서 사용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격명령을 내리기 전에는 반드시실탄분배 지시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기에 저희 부대도 MBC방송국에 출동할 때에, 비록 경계용 실탄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실탄분배 지시사격 명령도 상부로부터 받지 못했습니다. MBC방송국에서 탈출할 때에도 그렇게 위급한 상황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명령을 받지 못했기에 소대장의 단독판단으로 저와 병사들의 생명을 위해도피 및 탈출을 했던 것입니다.(필자 주: 여기에서 공포탄을 쏘아 부하들을 탈출시켰을 것으로 보임)

 

비록 정식으로 철수명령은 받지 않았지만 추후에 곰곰이 생각해 보면 올바른 판단이었다고 자위합니다. 지금도 나의 휘하에 있었던 병사들은 정상적인 철수 명령을 받고 철수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상부로부터 자위권 발동 명령을 받은 것은 521일 오후 늦게 담양 부대에 복귀해서 지시를 받은 것으로 기억이 됩니다. 특별한 지시가 없는 한, 장교라 해도 실탄을 개인적으로 보유할 수가 없었습니다. 경계용 실탄도 20발 들이 탄창에 15발씩 장전하여 청 테이프로 봉인한 후에 다시 탄창을 탄통에 넣고 봉인을 하고 있었습니다.

 

7공수는 실탄이 없었기에 철수하는 저희 병력에게 실탄 인수인계를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도 실탄을 보유하고 있는 데 다른 부대에게 실탄을 요구하는 경우는 어떠한 경우라도 없을테니까요. ‘실탄 인수인계라는 용어는 제가 표현한 것뿐입니다. 특전사 병력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어서 그냥 전달해 주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군요. 아주 급박한 상황에서 순식간에 일어난 상황들이라 그 당시에 순간순간 현지 지휘자인 제 판단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지 상부에 보고하고 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7공수 대대장은 31사단 병력이 헬기로 철수하는지도 몰랐을 것이며, 특전사 대위도 사후에야 실탄 습득에 대한 보고를 했을 것일라 추측됩니다. 정상적인 보고 후 지시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으니까요. 시위대는 차량돌진으로 순간적인 기습공격을 했고, 이에 공수부대가 형성하고 있던 방어대형은 순간적으로 양쪽으로 갈라졌습니다. 이런 다급한 상황에서 보고니 명령하달이니 그런 것들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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