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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0-10-18 21:20 조회78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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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70광수, 김성민(김진) 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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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북통일당(탈북자정당) 대표 김성민의 정체

2020. 3. 28.

https://youtu.be/9M10_cVZ5U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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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은 안찬일과 함께 [남북통일당]을 창당하였고, 북한에 지하당을 만들어 통일을 시도하겠다고 한다. 김성민의 본명은 김진, 1962년생이라 한다. 그의 부친은 북한의 유명 시인 김순석이고 그에게는 누이 셋이 있다고 한다. 그가 밝힌 바에 의하면 그는 1996년에 탈북하여 중국에서 3년 있다가 99년 한국에 입국하였다고 한다. 반면 북한이 밝힌 바에 의하면 그는 어린 여성의 정조를 유린했고, 군관 시절(1993) 돈을 마련하기 위해 량식 창고에 침입하였다가 제대를 당했으며, 가짜 문화재를 중국에 밀수출하다가 중국 공안에 적발되어 북송도중 며칠 만에 열차에서 뛰어내려 남한으로 탈북했다고 한다. 그는 대위시절인 1996년 남한에 있는 삼촌들과 편지를 주고받은 것이 발각되어 체포된 것임을 직감하고 대위 신분으로 두만강을 건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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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부친은 북한에서 지금까지도 이름으로 검색되는 명성 있는 작가인데 김성민은 사리에 맞지 않는 말을 한다. 그의 아버지는 1971년 김정일로부터 선물을 받지 못해 왕따 당했다고 판단했으며, 아버지는 이를 숙청의 신호로 받아들여 고민하다가 1974년 사망했다고 한다. 김성민이 14살 때 사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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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중국에서 북으로 호송될 때 수갑과 포승줄로 손과 발을 다 묶였다고 주장하지만 북한에는 수갑이 매우 귀한데다가 웬만하면 포승줄로 묶지 않는다. 그렇게 손발이 다 묶인 상태에서 기차에서 뛰어내렸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는 아버지가 사망하자 집을 빼앗겼다고 주장한다. 그의 나이 14세에 빼앗겼다는 것이다. 그는 17세에 군에 입대했다. 그러면 그와 누나 셋은 누가 어디에서 살았다는 말인가? 집을 빼앗긴 시점은 그 후 또 바뀌었다. 1989년 제대하고 돌아와 보니 집에는 다른 사람이 살고 있더라 한 것이다. 1989년이면 그의 나이 27세였다. 집을 빼앗은 주체에 대해 김성민은 작가동맹이라 주장하지만 북한의 모든 집은 국가소유다. 그러나 그에게는 제대라는 게 없었다. 1996년 그는 대위신분으로 두만강을 건넜다고 했기 때문이다.

 

탈북사유도 말할 때마다 다르다. 거짓이기 때문이다. 월간조선 인터뷰에서는 그의 주도 하에 일제 악기가 탐이 나 다른 조직에 가서 그 조직이 아까워서 사용하지 않는 일제 악기를 훔쳐와 사용하다가 2년 후에 무명인의 밀고로 적발돼 책임을 지게 되었는데 연출가 작곡가 모두 처벌 받았던 반면 자기 혼자만 살아남았다고 했다. 그는 누명을 벗기 위해 김정일에 투서를 냈는데 그것때문에 체포됐다. 하지만 신소와 청원을 냈다고 해서 체포되는 일은 없다. 당이 그것을 정당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익명의 밀고자가 자기라는 의심을 받아 괴로웠다. 정성산처럼 남한에 가서 방송을 통해 사실을 밝히면 누명이 벗어지겠다고 생각해 탈북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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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의 탈북동기는 이와 달랐다. 삼촌 두 사람이 남한에 와 있다. 그 중 한 사람의 이름이 김관석이다. 지인으로부터 담배 한 보루를 선물 받았는데 월간조선지로 포장돼 있었다. 그 월간지에는 삼촌인 김관석 이름이 있고, 한국기독교협의회 총무로 기사화돼 있었다. 월간조선 뒷장에 있는 월간조선 주소로 편지를 써서 보냈다. 삼촌인 것 같으니 찾아달라는 요지였다. 한 번은 부하를 시켜 우송했고, 또 한 번은 보따리 장사를 시켜서 보냈다. 그런데 김관석은 80년에 그 자리를 그만두었다. 그런데 편지를 보낸 시기는 1996년 경이었다.

 

세 번째 탈북동기는 탈북영웅 33인 특별인터뷰에 기록돼 있다. 군사복무 중 대북삐라를 보고 탈북할 결심을 했다는 것이다. 탈북동기가 제각기 다른 것은 할 때마다 지어낸 거짓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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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아버지가 과연 그 유명한 김순석인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든다. 그는 그가 유명한 시인의 자손이라 시를 잘 쓰는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을 호소하고 싶은 것 같다. 김순석은 지금까지도 북한에서 공식적으로 추앙받는 시인이었다. 그런데 왜 숙청을 당하는 것이며, 부모 잃은 여식들이 살고 있는 집을 빼앗을 수 있겠는가? 집을 빼앗겼다는 시기도 증언 시마다 다르다. 1974년 그가 14세 때 빼앗겼다는 이야기도 했고, 1989년 그가 27세로 군에서 제대했을 때 와보니 다른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말도 했다. 그는 1974년 군에 가서 106개월 사병근무를 했다. 작가수업을 받기 위해 3년 동안 위탁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그 후 장교로 임관해 대위로 제대했다. 그렇다면 그가 군에서 제대한 시기는 136개월 플러스 최소한 5년을 더 잡아 186개월일 것이다. 17세에서 18년을 보태면 35세가 되는 것이다. 1962년에서 35년을 보태면 1997년이다. 그런데 그는 1996년 대위신분으로 중국으로 탈북했다고 한다. 그가 제대해 와보니 아버지 집에 다른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말은 눈물생산을 위한 신파극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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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은 또 다른 황당한 말을 했다. 한국에 와서 이발소에 갔더니 가그린을 주기에 물인줄 알고 마셨다는 것이다. 이발소에서 가그린을 주는 것이 상상이나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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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주간조선] 암투병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의 눈물

입력 2017.05.21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5/19/2017051902372.html

 

그는 북한에서 34년을 산 뒤 1996년 탈북해 1999년 한국에 입국했다.

 

김성민씨는 1962년 북한 자강도(평안북도) 희천시에서 태어났다. 본명이 김진인 그는 시인의 핏줄을 물려받았다. 그의 아버지는 북한의 유명 시인 김순석(1921~1974)씨다. 김순석씨는 광복 후 문학잡지인 조선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그는 종군기자로 6·25전쟁을 겪은 뒤 평양 김일성종합대학 어문학부 창작지도교수로 일하면서 북한의 대표적 시인인 차승수, 조빈, 서진명 등을 가르쳤다. 2007문학과 지성사가 출판한 북한 문학의 편집진은 김순석씨를 북측 최고의 시인으로 꼽아도 무리가 없다고 평가한다. 1958년 낸 황금의 땅이 그의 대표 시집이다.

 

시인의 아들인 김성민씨가 평양이 아닌 자강도 산골에서 태어난 이유는 아버지 김순석씨가 1961혁명화 대상자로 낙인찍혀 평양에서 추방됐기 때문이다. 흔히 공산주의 사상과 김일성을 찬양하는 시를 쓰는 다른 시인들과 달리 개인적이고 서정적인 시를 주로 쓴 것이 추방 이유다. 김순석씨는 이 때문에 배부른 부르주아적 사고에 물든 시인이라는 비판을 북한에서 받아왔다.

 

북한에선 일반적으로 한번 혁명화 대상자가 되면 복귀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일반 범죄를 짓고 감옥에 가는 것보다 정치적 낙오자가 되는 것을 더 두려워한다는 것이 김성민씨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순석씨는 희천공작기계공장에서 2년간 일하면서 항상 그이는 우리와 함께 계신다라는 북한 최초의 노동자 시집을 만들어 출판했다. “수령이 항상 노동자들과 함께 계신다는 내용의 김일성 찬양 시집이었다. 찬양 시집의 내용에 감명받은 김일성이 김순석을 원상 복귀시키라고 지시하면서 1963년 김순석씨는 부인과 아들을 데리고 평양에 돌아왔다.

 

평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김성민씨는 17세 때 군에 입대했다. 106개월 동안 사병으로 생활하며군인잡지에 시를 투고했다. 사병 생활을 끝낸 뒤북한 최고의 교원양성기관인 평양 김형직사범대학 작가양성반의 군위탁생으로 들어갔다. 투고한 시 덕분이었다. 대학에서 시를 전공한 김씨는 3년간의 교육을 마친 뒤 장교로 임관해예술선전대작가로 활동했다. 사령관이나 정치위원의 보고서를 써주고 예술단 공연의 코미디 작품을 쓰는 것이 주 업무였다고 한다. (: 군생활 106개월 + 3년 위탁교육 + 장교로 임관)

 

 

총살 피하려 기차에서 뛰어내려

 

김씨는 북한군 장교로 활동하면서 틈나는 대로 시인의 꿈을 키워 나갔다. 다른 부대의 군인들도 김진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알 만큼 여러 편의 시와 수필 등을 잡지에 냈고 축제 때 발표한 작품이 김정일의 칭찬도 받을 만큼 작가로 인정받았다고 한다.

 

군에서 승승장구하던 김씨가 탈북을 결심한 것은대위 시절이던 1996년이다. 당시 한국에는 김씨의 작은 아버지 두 명이 있었다. 김씨는 중국보따리상을 통해 남쪽의 숙부들과 편지를 주고받다가 북한 보위부에 적발됐다. 평소에 김씨를 잘 아는 장교가 적발 사실을 미리 알려줘 체포 직전 탈출했다.탈북을 결심한 지 3일 만이었다. 두만강을 건넌 뒤 쫄쫄 굶으며 자동차 바퀴에 깔린 바나나를 주워 먹던 김씨가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교회였다. 북한에서는 교회에 가면 사람을 죽인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김씨는 북한에서 읽은 소설 레미라제블을 통해 교회에 가면 적어도 밥은 줄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교회 전도사의 안내로 버스를 타고 12시간 동안 달려 도착한 옌지의 조선족교회에서 머물렀다.

 

김씨는 중국 다롄에서 한국으로 가는 배에 타려다 중국 공안에 적발됐다.족쇄를 찬 채 42일 동안 중국 감옥에서 조사받은 뒤 국경의 탈북자수용소에서 북한 군보위부원에게 넘겨졌다. 호송당해 북한으로 돌아가면 꼼짝없이 공개처형을 당할 판이었다. 씨는 감시가 느슨한 사이 양손에 족쇄를 찬 채 열차의 유리를 깨고 뛰어내렸다. 8일 만에 다시 두만강을 건너 중국에 숨었다. 부인 문명옥씨와도 이때 중국에서 만났다. 김씨는 약 3년 뒤인 19992월 한국에 입국했다. 현재는 부인과의 사이에서 딸 1명을 두고 있다.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는 고 황장엽 노동당 비서의 양아들로 불렸다.

 

탈북민들은 기억에 남는 북에서의 경험으로 흔히 고된 탈북노정을 꼽는다. 목숨을 걸고 넘던 두만강과 압록강에서의 고투, 4000~5000거리를 에돌아야 했던 몽골과 베트남에서의 노정 얘기다. “외아들인 내가 이 땅을 떠나면 아버지 어머니 산소는 누가 돌보고, 누이들은 또 이 못난 동생을 얼마나 원망할까.”

 

김씨는 14살에 양친을 모두 여의었다. 집 없이 부모 없이 산 그에게도 고향 집은 남다른 의미였다. 그는 사병생활을 마치고 고향 집을 찾았을 때의 소회를 병사의 자서전이라는 시를 통해 밝혔다.

 

산에 살다 고향으로 돌아온 인민군 전사가 있었습니다. 누구를 찾느냐는 경비실 노인네 앞에서 머뭇거리는 스물일곱 살의 제대군인입니다. (: 1989년 제대) 47호를 찾아왔는데요. 세대주 이름이. 귀뿌리가 빨개진 전사는 고개를 숙인 채 돌아섭니다. 고향집은 그가 바친 석삼년의 군복무 기간에 모래성처럼 사라져버렸습니다. 아버님과 어머님은 돌아가셨고 누이들은 뿔뿔이 흩어져 가고, 스물세평 작은 집은 얼굴도 모르는 심 아무개의 차지가 되어버렸나 봅니다.’ - ‘병사의 자서전

 

사병생활을 마치고 찾아온 고향 집엔 다른 사람이 살고 있었다. 개인 소유를 일절 허락하지 않는 북한에선 사람이 살다 죽으면 집도 다른 사람의 차지가 된다. 김씨는 당시의 소회를 이렇게 설명한다. “내가 살던 집에 다른 사람이 살고 있으리란 걸 뻔히 알면서도 끝까지 계단을 올랐던 심정을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3. 경기일보

[통일 이야기] 탈북자 1호 시인 김성민

2014. 08. 10

https://www.kyeonggi.com/news/articleView.html?idxno=812996

 

소년은 어린시절부터 글쓰기 재능이 남달랐다. 소년은 14~15살 때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신 후 혼자 고아로 살다 17살에 군대에 들어갔다. 군인이 된 소년은 김형직 사범대학 작가양성반(3년제)에서 시()를 전공하고, 대위로 조선인민군 212군부대 예술선전대 작가로 복무했다. 그는 199510월 중국으로 탈북했다 강제송환된 뒤 19964월 재탈북해 19992월 남한에 입국했다.

 

중국에서 북한 보위부대원에게 체포돼 평양으로 압송되다가 달리는 기차에서 뛰어내려 공개 총살을 면했다고 한다. 소년은 길고 긴 세월을 돌아 탈북자가 됐다. 여기까지가 탈북자 1호 시인이자, 자유북한방송 김성민(52) 대표의 인생의 전반전이다.

 

남한에 와서 시를 쓰고 싶어 연세대 국문과 3학년에 편입해 공부했고 중앙대 예술대학원(문예창작과)에서 석사를 받았는데 시 공부하는 것 보다 술 마시는 게 더 어려웠다. 지금은 다 추억이 됐다.

 

아버지(김순석)70년대 초까지 북한시단을 이끌었던 서정시인으로 작가동맹 중앙위 초대 시분과위원장과 김일성종합대학 조선어문학부 교수를 지내셨다. 아버지는 3천여 편의 주옥같은 시를 남기셨다. 어렸을 땐 자연스럽게 글과 친해졌고 어른이 된 후 군인시인으로 활동했다. 남한에 와서 매년 신춘문예에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2020.10.18. 지만원

http://www.systemclu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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