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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8광수 김용화 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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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0-10-23 15:26 조회47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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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98광수 김용화 파일


6.PNG

 

뉴데일리 2012.9.11.

뉴데일리 2012-09-11

'탈북자의 아버지' 김용화! 6천명 구해낸 진정한 탈북지원단체!

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12/09/11/2012091100012.html

 

1953년 생

 

1988년 철도국 지도원(중위) 열차 전복사고(1988.7.13.), 압록강 건너 중국으로 탈북 산동성 지린 등 각지 떠돌아

 

1995.2월 베트남으로 밀입국, 망명 신청 한국이 거절, 밀항시도하다 베트남 공안에 체포-유치장-북송 대기, 음식을 주러 온 유치장 간부 폭행 - 전화위복 2년 동안 재판,

 

1997, 만기 출옥 시점(1997)에서 다시 탈옥, 라오스로 가다가 공안에 잡혀 라오스 감옥 생활, 라오스 감옥에서 탈옥하여 다시 중국으로 길을 걷던 도중 한국인 신혼부부로부터 30만원 기증

중국에서 30만원으로 쪽배 구입, 노를 저어 18일간 황해 건너 딱딱한 빵 6조각 나침판, 방수 비닐(: 식수에 대한 언급 없음)

 

한국 정부, 북한인으로 인정 안해

 

쪽배 타고 다시 일본 행, 일본 수용소에 있다가 일본인권단체 도움으로 가석방된 후 한국행

 

탈북자 3만 명 중 내가 6천명 입국시켜

=====================================

 

이만갑 2013.5.5.

이제 만나러 갑니다. 2013/05/05 73,

탈북하는데, 7년 걸린 남자의 레전드 탈북과정

https://principlesofknowledge.kr/archives/59215

탈북에 7년 소요(1988~95)

가족들 앞에서 죽을 수 없어 당증과 권총 소지 후 도주

자살은 민족 반역-3대가 멸족되는 행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죽자

중국에 수배령 떨어져(권총 소지 명목)

중국 역전 곳곳에 얼굴 공시 수배지

중국에서 베트남까지 2만 키로 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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씻지 못해서 아무도 접근 못해

베트남 도착 즉시 체포- 더러워서 베트남 경찰 몸수색 포기

중국 거지로 판단하고 중국으로 송환 도중 화장실 핑계대고 도주

총으로 위협하는 베트남 경찰에게 총으로 맞대응

권총을 가진 중국거지를 잡기 위해 베트남 경찰 총 출동

경찰 눈을 피하기 위해 도마뱀이 우글거리는 숲으로 피신

베트남 국경에서 허노이 한국 대사관으로 이동 -

중국과 베트남에서 동시에 수배령 내려져 있어서 한국대사관이 도움 줄 수 없다

한국 대사관에서 당증과 권총을 맡긴 후 지금지원  받고 나와

한국 무역선을 타고 밀항할 결심- 태극기 걸려 있는 한국배에 탑승 시도

배 위에서 총을 겨누고 있던 베트남경찰에 체포

북송은 곧 죽음 14일간 기다려

스스로 삶을 포기하기 위해 대못을 준비

북송 3일전 도시락을 들고 온 베트남 경찰 폭행(단순 화풀이) 2년의 삶 연장

북한 대사관이 황당하게도 북송 보류

의사소통 불가능한 수감생활

모범수로 형량 감소

0.3톤배로 18일간 표류 끝에 태안반도 도착

 

시사저널 (96.7.18)

탈북자 김용화씨, 북한 주민 증거 없어 추방 위기

1996.07.18 (시사저널)

http://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87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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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주지, 현재 평양(1988년 당시에는 평양시 형제산 구역)

1988년 죽으려고 혜산행 열차 올라, 혜산 도착(집에서 먼 곳으로 가서 자살하자는 생각으로 혜산행 열차 승차) - 막상 죽으려 하니 이왕이면 중국으로 탈출하자는 생각 들어

956, 1차 밀항 실패 후 같은 달에 제2차 밀항 성공

95.9. 서울외국인 보호소 수용

95.10. 강제퇴거명령 중국 공안부가 발행한 신분증이 위조(931만원에 위조)

96. 강제퇴거 명령 무효소송 제기

1989년 초, 중국에서 장춘선 여인 만나 7년 동안 사실상 결혼생활 집을 비운 사이 북한 보위부 요원이 들이닥쳐, 베트남으로 탈출

베트남에서 탈북자로 밝혀져 감옥소, 경비 허술한 틈을 타 탈옥

0.5톤쪽배로 중국 산동성 행양현 출발 70시간 만에 충남 태안에 도착

199561차 밀항 기도했지만 선박고장으로 실패

1995. 6월 말에 2차 밀항 성공

 

123.PNG

 

김용화씨의 고향은 평안남도 순안군 오금리(현재 평양시 형제산구역)이다. 중학교를 졸업한 뒤 농업기술전문학교와 단천 마그네샤 공장 기능공학교에서 기술을 배웠다. 김씨가 조선인민군에 입대한 것은 열일곱 살 때인 70. 인민군 892부대 운전병으로 시작해 79년에는 인민군 소위로 임관해 82년까지 장교로 복무했다.

 

철도부 함흥철도국 단천기관차대 승무지도원으로 근무하다가 88년 북한을 탈출한 것은 다소 우연한 계기에서였다. 김씨의 주장에 따르면, 출신 지역 등을 둘러싸고 누적되었던 내부 갈등에다 그가 책임졌던 열차가 정지 사고를 내 당 정치부장·동료들과 갈등이 생겼다. 단순 사고인데도 처가 식구들의 사상성까지 들먹이면서 비판서를 강요 당하자 정치부장과 싸움을 벌인 끝에 밤새 고민하다가 자살을 결심했다. 단천역에서 차라리 먼 곳으로 떠나 자살하자고 결심한 그는 충동적으로 혜산행 열차에 올라탔다. 열차가 압록강변 도시인 혜산에 도착하자 죽을 바에는 중국으로 탈출하자는 생각이 들어 압록강을 건넜다.

 

감시와 도피가 계속되는 중국 생활에서 그를 안정시킨 사람은 89년 초에 만난 조선족 교포 장춘선씨(43)였다. 장씨는 김씨와 힘을 합쳐 식당을 꾸리면서 지난해 6월 중국을 떠나기 직전까지 7년 넘게 사실상 결혼 생활을 해 왔다. 결혼 생활 내내 장씨는 김씨의 중국 생활을 헌신적으로 뒷받침했다 (78쪽 인터뷰 참조). 장춘선씨는 김씨를 대신해 고생을 떠맡기도 했다. 95년 김씨의 불법 체류 사실을 안 중국 공안요원들과 북한 정치보위부 요원이 김씨의 집을 급습했다. 김씨가 집을 비운 사이 장씨가 대신 연행되어 고초를 겪은 이 사건은 그가 탈출 경로를 베트남으로 변경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베트남에서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탈북 사실이 밝혀져 하이퐁 시 감옥에 수용됐고 북한으로 송환되기 직전에야 경비가 허술한 틈을 타 겨우 감옥을 빠져 나올 수 있었다.

 

2016.1.25, 연합뉴스

탈북단체 대표가 탈북민 지원금 13천만원 '꿀꺽'

https://www.yna.co.kr/view/AKR20160124069652004

 

거주지, 현재 평양(1988년 당시에는 평양시 형제산 구역)

 

14년 탈북기의 주인공, 탈북민 지원금 13천만원('남북하나재단' 보조금)- 동대문 경찰서 입건 송치. 북 여성의 임시 거처를 마련해주는 '여성쉼터사업'을 하겠다며 보조금 6천만원을 받았으나 이 사업은 전혀 진행되지 않았다.

  

연합뉴스 96.12.11) 무국적자 김용화씨 그는 과연 누구일까?

https://news.v.daum.net/v/19961211112800275?f=o

 

88.7.25 혜산에서 압록강 길림성 매하루로 탈불 함경남도 단천시 철도승무대원으로 근무하던 중 일어난 열차 연착사고의 책임추궁

 

하노이 주재 한국 대사관 K경제담당 참사관 등은 "불법 월경 혐의로 체포령이 내려져 있다"면서 미화(美貨) 620여 달러 가량의 여비를 쥐어 주면서 피신하라고 했을 뿐 귀순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9561일 산동성(山東省) 해양현에서 쪽배를 타고 남한 서해안으로 밀항을 결행했다. 이 밀항 시도는 보름 동안 표류하다 되돌아 온 것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6228마력짜리 트랙터 엔진을 부착한 0.5t 선박을 구입, 다시 한번 서해로 탈출을 시도했다.

95625일 낮 11시께 남한 선박 <형제호>를 발견, "탈북자를 구해달라"고 필사적으로 외쳤다. 배에 오른 씨는 그때서야 비로소 자신이 충남(忠南) 태안 앞바다에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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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화씨의 고향은 평안남도 순안군 오금리(현재 평양시 형제산구역)이다. 중학교를 졸업한 뒤 농업기술전문학교와 단천 마그네샤 공장 기능공학교에서 기술을 배웠다. 김씨가 조선인민군에 입대한 것은 열일곱 살 때인 70. 인민군 892부대 운전병으로 시작해 79년에는 인민군 소위로 임관해 82년까지 장교로 복무했다.

 

철도부 함흥철도국 단천기관차대 승무지도원으로 근무하다가 88년 북한을 탈출한 것은 다소 우연한 계기에서였다. 김씨의 주장에 따르면, 출신 지역 등을 둘러싸고 누적되었던 내부 갈등에다 그가 책임졌던 열차가 정지 사고를 내 당 정치부장·동료들과 갈등이 생겼다. 단순 사고인데도 처가 식구들의 사상성까지 들먹이면서 비판서를 강요 당하자 정치부장과 싸움을 벌인 끝에 밤새 고민하다가 자살을 결심했다. 단천역에서 차라리 먼 곳으로 떠나 자살하자고 결심한 그는 충동적으로 혜산행 열차에 올라탔다. 열차가 압록강변 도시인 혜산에 도착하자 죽을 바에는 중국으로 탈출하자는 생각이 들어 압록강을 건넜다.

 

감시와 도피가 계속되는 중국 생활에서 그를 안정시킨 사람은 89년 초에 만난 조선족 교포 장춘선씨(43)였다. 장씨는 김씨와 힘을 합쳐 식당을 꾸리면서 지난해 6월 중국을 떠나기 직전까지 7년 넘게 사실상 결혼 생활을 해 왔다. 결혼 생활 내내 장씨는 김씨의 중국 생활을 헌신적으로 뒷받침했다 (78쪽 인터뷰 참조). 장춘선씨는 김씨를 대신해 고생을 떠맡기도 했다. 95년 김씨의 불법 체류 사실을 안 중국 공안요원들과 북한 정치보위부 요원이 김씨의 집을 급습했다. 김씨가 집을 비운 사이 장씨가 대신 연행되어 고초를 겪은 이 사건은 그가 탈출 경로를 베트남으로 변경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베트남에서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탈북 사실이 밝혀져 하이퐁 시 감옥에 수용됐고 북한으로 송환되기 직전에야 경비가 허술한 틈을 타 겨우 감옥을 빠져 나올 수 있었다.

  

2016.1.25, 연합뉴스

탈북단체 대표가 탈북민 지원금 13천만원 '꿀꺽'

https://www.yna.co.kr/view/AKR20160124069652004

 

14년 탈북기의 주인공, 탈북민 지원금 13천만원('남북하나재단' 보조금)- 동대문 경찰서 입건 송치. 북 여성의 임시 거처를 마련해주는 '여성쉼터사업'을 하겠다며 보조금 6천만원을 받았으나 이 사업은 전혀 진행되지 않았다.

  

경향신문 / 2019/8/24

탈북시켜놓고 끝까지 책임지지 못했다니정부는 뭐 했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908241132001

 

김용화 탈북난민인권연합 대표(64)는 북한이탈주민(탈북민) 고 한성옥씨(42)와 그의 아들(6)을 추모하기 위해 마련된 광화문 분향소에 가지 않았다. 그는 한씨를 한국으로 데리고 온 주인공이다. 중국에서 인신매매혼 피해를 입은 탈북여성들을 구조하고 한국으로 데려오는 것은 김 대표가 하는 여러 일 중 하나다. 그는 고인이 숨지기 전 마지막으로 도움을 요청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김 대표는 사람들이 그러더라. 끝까지 책임지지 못할 거면 데려오지를 말았어야지. 왜 데려와서 사람이 죽는데 도와주지도 않았느냐고 하더라. 그런 말을 듣고 내가 무슨 낯으로 거길 찾아가겠나. 통일부 사람들도 내가 오는 건 달갑지 않을 것이고라고 했다.

 

1995년 중국을 거쳐 탈북한 김 대표는 남파간첩으로 몰려 9년간 옥살이를 했다(95~2004). 출소 이후 탈북민들을 한국으로 데려오거나 구출하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의 손을 거쳐 한국 또는 제3국으로 간 탈북민은 어림잡아 6500명에 달한다.

 

력사의 증언 김용화(김용하) 가족들 우리 민족끼리

2016. 9. 5.

https://www.youtube.com/watch?v=tBhv6xWMX64&t=115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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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있다 1959년 귀국

1968년 중학교 중퇴(15)

도둑질 협잡질

결혼해 농장생활

처가 보는 앞에서 미성년 여학생 강간한 죄로 교화소 4년 징역

기관차 노동자 하다가 도주

아래 이만갑 프로에서 한 말 모두 거짓(이만갑 2013.5.5.)

 

                       

                   요 약

 

평안남도 순안군 오금리(현재 평양시 형제산구역)이다. 중학교를 졸업한 뒤 농업기술전문학교와 단천 마그네샤 공장 기능공학교에서 기술을 배웠다. 김씨가 조선인민군에 입대한 것은 열일곱 살 때인 70. 인민군 892부대 운전병으로 시작해 79년에는 인민군 소위로 임관해 82년까지 장교로 복무했다. - 연합뉴스

 

1988.7.13.(중위), 열차 전복사고 뉴데일리

 

함흥철도국 단천기관차대 승무지도원으로 근무하다가 88년 북한을 탈출한 것은 다소 우연한 계기에서였다. 김씨의 주장에 따르면, 출신 지역 등을 둘러싸고 누적되었던 내부 갈등에다 그가 책임졌던 열차가 정지 사고를 내 당 정치부장·동료들과 갈등이 생겼다. 단순 사고인데도 처가 식구들의 사상성까지 들먹이면서 비판서를 강요 당하자 정치부장과 싸움을 벌인 끝에 밤새 고민하다가 자살을 결심했다. - 시사저널

 

단천역에서 차라리 먼 곳으로 떠나 자살하자고 결심한 그는 충동적으로 혜산행 열차에 올라탔다. 열차가 압록강변 도시인 혜산에 도착하자 죽을 바에는 중국으로 탈출하자는 생각이 들어 압록강을 건넜다. -시사저널

 

68.PNG

 단천시-혜산 직선거리 서울-대전 거리와 비슷

 

가족들 앞에서 죽을 수 없어 당증과 권총 소지 도주 -이만갑

 

중국으로 탈북 뉴데일리

88.7.25 혜산에서 압록강 길림성 연합뉴스

 

1989년 초, 중국에서 장춘선 여인 만나 7년 동안 사실상 결혼생활 집을 비운 사이 중국공안요원과 북한 보위부 요원이들이 들이 닥쳐, 베트남으로 탈출 시사저널

 

중국 전 역에 수배지 부착, 걸어서 베트남까지 2만키로 걸아가 -이만갑

1995. 2. 베트남으로 밀입국, 망명 신청, 한국대사관 거부 뉴데일리

베트남 도착 즉시 체포-더러워서 몸 수색 안해 이만갑

중국거지로 판단하고 중국으로 송환 도중 화장실 핑계로 도주 이만갑

베트남에서 탈북자로 밝혀져 감옥소, 경비 허술한 틈을 타 탈옥 -시사저널

도주 중 총으로 위협하는 베트남 경찰에게 총으로 맞대응 -권총을 가진 중국거지를 잡기 위해 베트남 경찰 총 출동 -경찰 눈을 피하기 위해 도마뱀이 우글거리는 숲으로 피신 이만갑

 

1997. 만기 출옥 시점에서 탈옥, 라오스로 가다가 베트남 공안에 체포(2년 재판) 뉴데일리

 

베트남 국경에서 하노이 한국 대사관으로 이동, 한국 대사관에서당증과 권총을 맡긴 후 지금지원 받고 나와, 한국 무역선을 타고 밀항할 결심- 태극기 걸려 있는 한국배에 탑승 시도, 배 위에서 총을 겨누고 있던 베트남경찰에 체포 이만갑

 

하노이 주재 한국 대사관 K경제담당 참사관 등은 "불법 월경 혐의로 체포령이 내려져 있다"면서 미화(美貨) 620여 달러 가량의 여비를 쥐어 주면서 피신하라고 했을 뿐 귀순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연합뉴스

 

중국으로 가던 중 한국인 신혼부부로부터 30만원 기증받아 뉴데일리

 

북송 3일전 도시락을 들고 온 베트남 경찰 폭행(단순 화풀이) 2년의 삶 연장, 북한 대사관이 황당하게도 북송 보류, 의사소통 불가능한 수감생활, 모범수로 형량 감소 -이만갑

 

중국으로 가서 쪽배 구입, 노를 저어 18일간 황해 건너 태안에 도착 (6조각, 나침판 방수 비닐(식수 언급 없음) 뉴데일리

 

956, 1차 밀항 실패 후 같은 달에 제2차 밀항 성공 -시사저널

0.3톤 배로 18일간 표류 끝에 태안반도 도착 -이만갑

0.5t짜리 쪽배로 산동성 해양현을 출발해, 70시간 만에 충남 태안 앞바다에 도착했다. 1차 밀항 기도가 선박 고장으로 실패한 뒤 한 달쯤 지나서였다. -시사저널

0.5 톤쪽배로 중국 산동성 행양현 출발 70시간 만에 충남 태안에 도착 -시사저널

9561일 산동성(山東省) 해양현에서 쪽배를 타고 남한 서해안으로 밀항을 결행했다. 이 밀항 시도는 보름 동안 표류하다 되돌아 온 것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6228마력짜리 트랙터 엔진을 부착한 0.5t 선박을 구입, 다시 한번 서해로 탈출을 시도했다. -연합뉴스

 

한국정부, 탈북민으로 인정 안해 뉴데일리

95.9. 서울외국인 보호소 수용 시사저널

95.10. 강제퇴거명령 중국 공안부가 발행한 신분증이 위조(931만원에 위조) -시사저널

96. 강제퇴거 명령 무효소송 제기 -시사저널

 

9년 감옥살이(1995~2004) 뉴데일리

 

쪽배 타고 다시 일본 행, 일본 수용소에 있다가 일본인권단체 도움으로 가석방된 후 한국행 뉴데일리

  

2016. 탈북민 지원금 13천만원('남북하나재단' 보조금)- 동대문 경찰서 입건 송치. -연합뉴스

 

2019. 한성옥과 그의 6세 아들의 도움요청을 외면하다가 자살한 후에도 온 국민이 조의하는 자리에 나타나지 않았다. 김용하는 자기가 탈북을 도와준 사람이 6,500명이라 주장한다.

 

                         의문점

 

 

1. 열차 전복사고인가 연차 지연사고인가?

 

2. 베트남 감옥에서는 수용인에게 도시락을 건네주러 온 유치장 간부가 대면하여 주다가 폭행을 당할 수 있는가?

 

3. 1995년에 베트남에서 중국을 향해 가다가 신혼부부가 과연 30만원을 줄 수 있는가?

 

4. 탈북하면 남은 가족 연좌제에 걸리지 않는가?

 

5. 북에서 가져온 권총을 탈북 과정, 베트남 감옥, 라오스 감옥에 들어갈 때도 휴대하고 나올 때도 휴대하고 탈옥할 수 있는가?

 

5. 총을 가진 베트남 경찰들에게 권총으로 맞섰는데 사살당하지 않은 재주는 무엇인가?

 

6. 도마뱀이 우글거리는 숲으로 수많은 추적하는 경찰을 과연 따돌릴 수 있었는가?

 

7. 베트남 감옥에서 자살을 하려고 대못을 준비했다는데 어떻게 손에 넣게 되었나?

 

8. 95.9~10월 중국 공안부가 발행한 위조신분증 밖에 없어 강제 퇴거명령을 받아 일본으로 다시 쪽배타고 갔다 하였는데 베트남 한국대사관에 권총과 당증을 맡겼다면 전화 하나로 한국정부가 베트남 대사관에 탈북자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을 터인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는가?

 

9. 베트남 감옥과 라오스 감옥에서 어떤 식으로 탈옥에 성공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10. 95년에 베트남 감옥에서 폭행죄가 더해져서 2년 복역했고, 다시 라오스 감옥에서 복역했다면 복역이 끝난 시점은 최소한 97~98년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어떻게 95. 6월에 한국에 밀항하였는가(알리바이)

 

11. 한국에 올 때 사용한 배는 0.3톤급 배인가? 0.5톤급인가?

 

12. 베트남 감옥에서 모범수로 형량이 감해졌다는데 얼마 감해졌으며 이유는 무엇이라고 추정하는가?

 

13. 단천에서 혜산까지 충동적으로 갔다면 여행증명서 없이 갔다는 말인가?

 

14. 라오스로 가다가 라오스 감옥에서도 살았고, 라오스로 가다가 베트남공안에 체포돼 2년간 감옥살이를 했다고도 하는 데 어느 말이 맞는가?

 

15. 자살하려고 집에서 먼 곳으로 갔다면 왜 하필 국경연선지대인 혜산인가?

 

16. 베트남 공안에 체포됐을 때, 중국 거지로 판단했다고도 했고, 탈북자로 밝혀졌다고도 했는데 왜 발언시 마다 다른가? 어느 말이 맞는가?

 

17. 1995.1. 0.3톤 쪽배로 노를 저어 18일 에 태안에 도착했다는 말도 했고, 70시간 만에 태안에 왔다고도 했고, 처음 1995. 61일 제1차 밀항 시도에서는 0.3톤 배를 타고 밀항하다가 15시간 표류 후 산동성 해양현으로 되돌아갔고, 2차 시도에서는 8마력 엔진을 부착한 0.5톤 배를 구입하여 한국을 행해 오다가 6228마력짜리 트랙터 엔진을 부착한 0.5t 선박을 구입, 다시 한번 서해로 탈출을 시도했다. 95625일 낮 11시께 남한 선박 <형제호>를 발견, "탈북자를 구해달라"고 필사적으로 외쳐서 구조를 받았다고도 했다. 노를 젓고 왔다는 말과 엔진 달고 왔다는 말이 서로 다르다. 15시간 표류했는데 어떻게 다시 중국해양현으로 갈 수 있었는가?

 

18. 중국에 북한보위부 요원이 직접 탈북자를 체포하러 올 수 있는가?

 

 19. 하노이 주재 한국 대사관 K경제담당 참사관이 620달러를 지급했다고 했는데 한국대사관에 탈북자 지원금이 예산으로 책정되어 있는가?

 

20. 한국에서 퇴거 명령을 받은 사람은 다시 중국으로 압송되는데 어떻게 경찰 손을 피해서 일본으로 갈 수있는가? 쪽배로 일본 가는데 가능한가?

 

21. 노를 저어 18일간 황해 건널 때 배 안에는 딱딱한 빵 6조각, 나침판, 방수 비닐 있다고 했는데 식수없이 빵 6조각으로 어떻게 버틸 수 있었는가?

 


 

2020.10.23. 지만원

http://www.systemclu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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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안기부자료] 5.18 상황일지 및 피해현황 첨부파일 지만원 2013-04-02 305263 1339
공지 도서구입 - 종합안내 지만원 2010-08-15 452181 1890
12287 추미애의 경국지추(傾國之秋) (비바람) 비바람 2020-11-26 783 173
12286 박근혜에 몰입된 박빠들의 폐해 지만원 2020-11-26 1016 187
12285 김대령 저 [역사로서의 5.18] 요약 지만원 2020-11-26 764 160
12284 트럼프 이후의 미국은 시드니 파웰이 이끌 것 지만원 2020-11-25 1432 263
12283 문재인과 추미애 독배 마셨다 지만원 2020-11-25 1328 223
12282 국방부와 현충원 관리소는 김정은의 돼지우리 지만원 2020-11-23 1394 238
12281 트럼프가 패하면 모든 나라가 중국의 속국 됩니다. 지만원 2020-11-23 1797 302
12280 회원님들께 드리는 12월의 인사 말씀 지만원 2020-11-23 1103 203
12279 법정에서 공방되어야 할 핵심 쟁점 지만원 2020-11-22 1013 155
12278 청남대 전두환 동상의 목이 잘렸다 지만원 2020-11-20 1646 249
12277 비닐팩포장은 김정은전용기에 보낼 목적(김제갈윤) 댓글(2) 김제갈윤 2020-11-20 1062 163
12276 청주유골 430구, 거대한 음모 보인다 지만원 2020-11-19 1530 211
12275 청주시가 보내온 회신에 대한 평가 지만원 2020-11-18 1286 189
12274 청주유골 430구 처리에 대한 청주시 해명 지만원 2020-11-17 1592 163
12273 나를 고소한 12명의 탈북자들 1차분석을 끝내고 지만원 2020-11-14 1466 274
12272 이순실(제240광수) 녹취록(하) 지만원 2020-11-14 446 46
12271 이순실(제240광수) 녹취록(중) 지만원 2020-11-14 226 34
12270 이순실(제240광수) 녹취록 (상) 지만원 2020-11-14 370 41
12269 광주에 직파돼 5.18지휘했다는 손성모[안찬일TV] 지만원 2020-11-14 533 83
12268 김성민(제270광수) 녹취록 지만원 2020-11-14 191 30
12267 리민복(제276광수) 녹취록 지만원 2020-11-14 16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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