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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9광수 박세현 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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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0-10-25 16:31 조회1,28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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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69광수 박세현 파일 

 


김 기자가 만난 사람/탈북자 한의사 박세현 원장

치료 잘 하는 대한민국 한의사로 남고 싶어

http://www.dysisa.com/main/main_news_view.php?seq=32905

20150213()양주/동두천신문사

 

산전수전 겪고 탈북 성공 ‘23성공 신화

 

박세현 원장은 197412월 김일성 별장이 위치한 함경북도 경성군에서 출생했다. 그는 개성에서 인민군 복무를 하고 있던 중 청천벽력 같은 형의 탈북 소식을 들었다. 부모를 포함해 박 원장 자신까지 생사의 기로에 놓인 것이다. 북한에서는 탈북자가 발생하면 남아있는 가족의 대를 끊는 혹독한 처벌까지 내리기 때문이다.

 

그는 멀리 떨어져 있는 부모 걱정에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고 의가 전역을 의도하고 개인 화기로 자신의 왼손바닥에 총격을 가해부모 곁으로 갈 수 있었다. 고향 도착 후 1998117일 그는 안전을 위해 잠시 중국으로 떠나자는 부모의 권유에 따라 두만강을 건넜다. 꽁꽁 언 두만강 살얼음 위를 가로지르다 얼음이 깨져 살기 가득한 냉기뿐인 두만강 물에 빠져 부모님과 저승 문턱까지 갔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강을 건널 수 있었다.

 

그러나 두만강 반대편에 위치한 사람은 한국으로 탈북을 돕는 브로커였다. 먼저 한국에 들어온 둘째 형이 살아있는 가족들을 돕고자 브로커를 보냈고, 그의 부모는 박 원장이 행여나 한국행을 거절할까봐 하는 조바심에서 선의의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 2주 후 한국에 무사히 안착한 그는 자유 속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지만 대학 졸업장도 없는 탈북자 입장에서 돈을 버는 것은 가시밭길과 같았다.

 

그러던 중 이미 한의사의 길을 걷고 있던 둘째 형의 권유로 한의사 꿈을 갖고공부를 시작했다. 검정고시를 통해 대학에 입학했고 한의사 시험 필수 18과목을 통달하기 위해 펜을 놓지 않았다. 2007년부터 3년에 걸쳐 시험에 응시해지난 20093수 끝에 합격의 문턱을 넘었다.

 

 [HOT] 세바퀴 - 1호 탈북 한의사 삼형제, 목숨을 건 탈북 스토리 공개!

조회수 537,9402014. 5. 17

https://youtu.be/Px5fW2R33wk

00초초~300

 

박수현(2째 형) 중국에서 택시를 타고 한국영사관 가자 했는데 내 중국말이 서툴렀는지 북조선인민공화국영사관 앞이었다. 오금이 저려 빨리 여기를 떠나라고 했다. 미국영사관 일본 영사관 깃발이 보였다. 미국은 싫고 일본영사관으로 가자 했더니 40원 더 달라 했다. 20원밖에 없다 했더니 택시기사가 화를 내면서 내려놓았다. 내린 장소에 키가 큰 사람 3명이 나타났다. 그 중 한 사람이 돈이 없구나라고 한국말로 말했다. 너무 반가워 손잡고 도와달라 사정했다. 뒤에서는 중국경찰이 우릴 잡으려고 달려오고 있었다. 키가 큰 사람이 중국경찰을 붙잡고 뭐라 뭐라 하니까 중국경찰이 가더라. 잡히면 쇠줄로 코를 꿰어 북송한다. 그 사람이 택시비를 치르고 우리에게 100원씩 주면서 한국영사관은 북경에만 있다며 그리로 가라고 했다. 고마워서 이름이라도 알자 했더니 이게 다 분단의 비극이다. 살다보면 언젠가는 만날 것이다이렇게 말했다. 북경 주재 한국 대사관에 갔더니 탈북자가 너무 많이 못 받아준다고 했다.

 

Three Turns, Three Brothers Specials #04, 삼형제 특집 20140517

조회수 278,8502014. 7. 31.

https://youtu.be/XMzOOhRMhfs

00~810

 

박태현(3) 형이 남한에 가서 기자회견을 했다. 가족이 추방지역으로 쫓겨났다. 역적들이 가는 귀양지역이었는데 우리 가족은 역적중의 역적으로 취급됐다. 나는 먹을 것이 없어 전국을 돌아다녔다. 큰 형만 결혼상태였는데 지동 이혼 됐다. 막내는 자실을 기도했다. 어느 날 동네 tv가 없어졌다. 사람들이 나를 범임으로 지목했다. 한국행을 결심했고, 곧장 몽골로 갔다.

 

박세현(막내): 17세에 군대 가서 18세에 어머니로부터 편지 받았다. 둘째 형이 탈북했으니 조심하라는 내용이었다. 의가사 제대 원했지만 가정환경이 불우하다는 이유로 생활제대 했다. 둘째 형을 AK 소총으로 죽이고 싶었다. 셋째 형까지 도망하자 나는 감옥에 갔다. 그런데 10일 만에 감옥에서 도망쳤다. 조서를 쓰게 하기 위해 수갑을 한쪽 손에만 채웠다. 난로 옆 벽에 불조심 팻말을 고정시키는 쇠못이 걸려 있었는데 그것을 떼어내 잇발로 자로 만들어 나머지 한쪽 팔에 채워진 수갑을 풀었다. 그리고 A4지에 물을 발라 유리창에 붙여놓고 유리를 깨고 도망했다. 둘째 형이 남한에서 브로커를 보냈더라. 회령에서 부모랑 함께 두만강을 건넜다. 아버지는 모자를 북을 향해 던졌다. 10년만인 1999년 남한에서 온 식구가 다 같이 만났다.

 

 

인터뷰공감] 박수현 묘향산한의원 원장-경인일보

http://m.kyeongin.com/view.php?key=20160419010007728

권준우 발행일 2016-04-20 9

"그러게 작작 쏘다니지" 보약같은 핀잔에 침구실 웃음꽃

묘향산한의원_박수현15

 

지난 20013'국내 1호 탈북 한의사'가 된 탈북 한의사 박수현(50)씨가 18일 오후 성남시 수정구 수진동 묘향산한의원에서 경인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만의 인생철학을 소개하며 웃음짓고 있다

 

지난 2002, 36살의 청년 박수현(1966년생)을 경인일보가 만났다(경인일보 2002218일자 9). 그는 탈북자였다. 통역을 부탁한 친구를 따라나섰다가 고향을 등졌다, 중국의 자전거 물결과 고층빌딩에 충격을 받아 남한행을 결심했다. 두만강을 건넌지 딱 열흘만이었다.

 

경희대 한의학과에 94학번으로 입학한 그는 생면부지의 영어, 낯선 한자(북한은 전공서적에도 한자를 잘 쓰지 않는다)를 기어이 극복해 20013'1호 탈북 한의사'28살에 탈북해 . .

 

1998년부터 3차례에 걸쳐 북에 있던 가족들을 탈북시킨 그는2010년에 탈북자 최초로 한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며 '국내 1' 명함을 한장 더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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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013.09.17) [184]목차보기기사 제보|편집장에게 한마디 | 체험구독신청

화제인물 - 탈북 삼형제 남쪽에서 이룬 허준의 꿈

https://jmagazine.joins.com/monthly/view/299134

 

이들 박씨 형제들은 함경북도 경성군 상온포리에서 나고 자랐다. 강원도 인제가 고향인 부친은 6·25 전쟁 때 8남매가 뿔뿔이 흩어지는 바람에 북한에서 자리를 잡게 됐다. 북한에서는운전기사이자 당비서였고, 어머니는 농사일을 했다.

 

삼형제는 군복무를 모두 채우지 못했는데 그 이유가 가지각색이다. 둘째 박수현 원장은 북한에서 그야말로 엘리트 코스를 달렸다. ‘성분 좋은사람으로 분류돼 고위간부로 발탁될 수 있는 수순을 차근차근 밟았다. 머리가 명석해 인민학교 때부터 고등중학교 때까지 1등 자리를 놓친 적이 드물었다.

 

16세에 군에 입대해서 24세까지 묘향산여단 국제친선전략관 호위사령부(한국으로 치면 대통령 경호부대)에서 근무했다. 그는 군당국의 추천을 받아 50001의 경쟁률을 뚫고 청진의과대학에 진학하면서 10년 복무 중 8년 만에 제대하는 영예를 안았다. 의대에 입학하면서 로동당에 입당해 충성을 맹세했다. 졸업하면 의사이자 북한의 고위간부로 살아갈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된 것이다.

 

형의 뒤를 이어 군에 입대한 셋째 태현 씨는 몸이 허약해 군복무를 다 마치지 못했다. 16세에 징병된 그는 6년 만에 감정제대(의가사제대를 이르는 북한 말)’를 했다. 북한에서 전역군인의 경우 농민집안의 자식은 집으로 보내지만 일반 노동자의 자녀는 탄광에 보내진다고 한다.

 

태현 씨는 우리는 노동자 자식이기 때문에 (은박지를 감아주는) 절연지광산, 운모 광산에 보내졌다고 설명했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갑자기 보위부로부터 짐을 싸라는 명령을 받았다. 둘째 형 수현 씨의 탈북 사실이 알려지고 나서다. 가족들에겐 청천벽력에 가까운 일이었다.

 

막내 세현 씨는 둘째 형의 탈북 소식을 접할 당시 군복무 중이었다. 그는 군에서 역적으로 몰리며 전방부대로 다시 배치됐다. 하지만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며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가 없었다. 혈기 왕성한 17,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로 결심한 적도 있었다. “턱에 총구를 겨누는데, 어휴~그건 못하겠더라고요.” 고민 끝에 그는 왼손 바닥에 총구를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그 일로 부대에서 내쫓겨 생활제대(불명예제대)’로 집에 돌아가게 됐다.그의 손에는 그때 얻은 흉터가 남아있다. 왼쪽 손등은 아무렇게나 꿰맨 자국으로 흉하게 일그러졌고, 손가락은 아직도 감각이 없다. 둘째 수현 씨는 농담조로 막내는 열 살 터울이라 늘 어린 줄만 알았죠. (손으로 곤지곤지 흉내를 내며) 그래서 마냥 송고송고(곤지곤지의 강원도·함경북도 방언) 할 줄 알았더니 제 손을 쏴버릴 줄 어떻게 알았겠어요?”라며 허탈하게 웃었다.

 

둘째 수현 씨에게 4년간의 의과대학 생활은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던 듯하다. 청진의대는 동의학부(침술), 위생학부(보건대), 약학부(약학·한약학과), 기초학부(의대 1~3), 의학부(의대 4~6)로 이뤄져 있는데 마침 그는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가 없는 한약학과에 입학하게 됐기 때문이다.

 

한약학과는 의대생들 사이에서는 약초만 캐는 농작꾼이라고 무시를 받는 학과였다. 하지만 대학 시절 매년 4~5월이면 동원되어 1인당 10이나 15정도 약초를 캐고 연구한 경험이 한국에서 한의사 생활에 큰 도움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단다. 동의학과와 한약과에서 6개월 정도 중국어를 배우는 기회가 있었는데 이것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다.

 

수현 씨가 중국어 통역을 빌미로 친구와 탈북을 감행한 것이다. 그의 설명. “어린 시절 친구 중에 골동품 장사를 하는 이가 있었어요. 북한에서는 총살 감인데 몰래 한 거죠. 그가 어느 날 제게 ‘1만원 줄 테니 3일만 중국어 통역을 해달라는 엄청난 제안을 했어요.” 북한 돈 1만원이면 한국 돈으로 1억원 정도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순진하게도 그 약속을 믿었는데 백두산을 넘는 순간 그 친구가 갑자기 꺼이꺼이 목놓아 우는 것이었다.

 

이 친구가 북한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그때 알았어요. 골동품 장사를 하다 들켜서 추적을 당하다가 국경을 넘었던 거지요. 결국 저까지 오도가도 못한 신세가 됐죠. 혼자서 돌아가면 죽고, 이제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친구 따라 중국으로 월경을 하게 된 셈이죠.”의과대학에서 4년 동안 공부한 것도 물거품이 돼버렸고 그는 충성맹세를 한 북한을 등지게 된 것이다.

 

북한의 가족들은 평지풍파를 만났다. 하루 만에 가족들이 함경북도 길주군의 추방지로 내쫓긴 것이다. ‘역적마을도 불리는 그곳은 반동’(술 마시고 행패를 부리거나 사회불만의 발언이나 행동을 한 사람)으로 몰려 쫓겨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다.

 

셋째 태현 씨가 말했다. “다닥다닥 붙은 집들을 일컫는 하모니카세대의 이웃은 서로가 믿지 못할 스파이였어요. ‘저 집의 아무개는 몇 시에 나갔다, 몇 시에 잠들었다등을 종이에 써서 보위부의 편지함에 넣어주는 식이었거든요.” 악몽 같은 날들이 반복되는 동안 가족들은 수현 씨를 얼마나 원망했을까?

 

동생 태현 씨가 다시 말을 이었다. “저는 아버지께서 형이 먼저 한국에 터를 잡으려고 나간 거다. 통일이 금방 될 거다고 말씀하셔서 그런 줄만 믿고 참아냈지요.” 그의 나이 스물 세 살 때였. 그런 차에 군대에 있던 막내도 얼마 안 가 총상을 입은 손에 붕대를 감고 집으로 왔다.

 

이런 사정을 알 리 없는 둘째 수현 씨도 중국에서 험난한 나날을 보내긴 마찬가지였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세 끼 식사도 제대로 챙겨먹기 힘들었다. 공안의 눈을 피하느라 위험 천만한 순간을 수없이 모면하던 그에게 북에 남은 가족들의 안위를 떠올릴 틈조차 없었다. 중국에서 수현 씨는 우선 친구의 친척 집에 머물렀다. 그때 받았던 문화충격이 엄청났다.

 

수현 씨가 말을 이었다. “자동차로 치면 티코·엑센트·에쿠스급 자전거인 샛별·갈매기·삼천리 브랜드가 거리에 물결치듯 지나가는 거에요. 북한에서는 자전거도 큰 재산이거든요.” 충격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북한 체제에 대한 반발이었다. 친구의 조선족 친척이 북한 지도자들을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처음에는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더라고요. 당시에 신과 같은 존재를 동네 아저씨처럼 비난했으니까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생각도 차츰 바뀌게 됐다. 19931010일 그는 결국 톈진항에서 한국행 여객선에 몰래 올라탔다. 그의 나이 스물일곱이었다. 40조금 넘는 바짝 곯은 몸으로 한국에 도착했다. 북한을 탈출한 지 10일 만이었다. 한국에 귀순자’(당시엔 탈북자를 귀순자로 불렀다)10명도 채 안 되던 시절이었다.

 

: 19931010, 텐진항에서 몰래 한국행 여객선에 승선, 북한을 탈출 한지 10일 만인 날이 19931010, 북한 탈출은 9월 말일이라는 뜻

  

줄이은 형제들의 탈북, 극적인 가족 상봉

 

남은 가족들의 추방지에서의 삶은 그야말로 비참했다. 해발 1500m에 있는 외진 광산마을에서 생명을 걸고 곡괭이로 광물을 캐고 약초를 채취하는 데 동원됐다. 매일 일터를 오가는 데 6시간 동안 40~50를 걸어 다녀야 했다. 배급도 없어 음식도 땔감도 자력으로 조달해야 했다. 셋째 태현 씨는 운송수단이나 식량배급이 없으니 수렵채취 생활을 하는 것과 다름없었다고 말했다. 주식은 옥수수·두부콩·감자 등이었다. 이런 암흑 생활이 4년 동안 이어졌다.

 

그런데 19982월 어느 날, 낯선 사람이 찾아왔다. 한국에서 정착해 살던 둘째 수현 씨가 북한 돈 4만원을 브로커를 통해 보내온 것이다. 이 얘기가 나올 즈음 형제들은 목소리를 한층 높였다. 막내 세현 씨는 북한 노동자의 월급이 80원 정도 하던 때였으니 한국으로 따지면 4억원에 가까운 돈이었다라고 말했다. 19983월 셋째 태현 씨와 맏형은 탈북을 감행했고, 막내와 부모님도 그해 11월 어느 날 새벽, 둘째 형이 보낸 브로커와 함께 살얼음이 진 두만강을 건넜다.

 

하지만 셋째 태현 씨는 탈북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다. 탈북과정에서 소식이 완전히 끊긴 것이다. 그는 인신매매단에 붙들려 내몽고까지 가게 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고 했다. 그곳에서 둘째 형한테 무작위로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는 수십 통의 편지가 착신지를 찾지 못하고 버려지다 마침내 형과 연락이 돼서 한국에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북한을 탈출해 한국으로 오는 탈북자가 흔하지 않던 시절 수현 씨가 북한에 있는 가족들을 남쪽으로 데려오는 일은 전투를 방불케 했다. 그는 한때 여권위조 때문에 형사입건 돼 조사를 받기도 했고, 그의 장인·장모·친구들도 조사를 받았다. 하지만 셋째 태현 씨의 탈북을 끝으로 온 가족이 남쪽으로 넘어왔다.

 

셋째 태현 씨와 어머니의 생일인 1999424일 안기부(국정원) 시설보호소에서 온 가족의 극적인 상봉이 이루어졌다. 북한의 남은 가족을 남쪽으로 모두 데려온 그 순간에 대해 수현 씨는 굉장히 감격스러웠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막내 세현 씨도 남조선에서 가족들과 다시 만나게 된 것이 어색하고 어안이 벙벙하기만 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삼형제는 한국에서의 새로운 인생 2막을 열어젖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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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 약

 

가족

 

강원도 인제가 고향인 부친은 6·25 전쟁 때 8남매가 뿔뿔이 흩어지는 바람에 북한에서 자리를 잡게 됐다. 북한에서는운전기사이자 당비서였고, 어머니는 농사일을 했다.

 

고향: 함경도 경성군(김일성 별장 근처)

 

부모:

 

맏형: 이름도 등장도 하지 않아. 19983, 3남 박태현과 맏형은 탈북을 감행했다.

 

2;수현 1966년생

 

3:태현 , 983월 탈북 감행, 몽골을 거쳐 한국에 왔다

 

막내: 세현 1974년생 199811월 말 탈북감행

 

 

2남 박수현

 

장래가 촉망됐던 엘리트

 

친구가어느 날 제게 ‘1만원 줄 테니 3일만 중국어 통역을 해달라는 엄청난 제안을 받아들였다. 백두산을 넘는 순간 그 친구가 갑자기 꺼이꺼이 목놓아 울면서 자기는 골동품 범죄자라 북한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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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을 부탁한 친구를 따라나섰다가 고향을 등졌다, 중국에서 수현 씨는 우선 친구의 친척 집에 머물렀다. 중국의 자전거 물결과 고층빌딩에 충격을 받아 남한행을 결심했다. 두만강을 건넌지 딱 열흘만이었다.

 

미국 및 일본 대사관 부근에서 중국경찰에 쫓기고 있던 도중 우연히 만난 3인으로부터 차비 100원씩 지원받아 북경의 한국 대사관에 갈 수 있었다. 대사관에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19931010그는 결국 톈진항에서 한국행 여객선에 몰래 올라탔다. 그의 나이 스물일곱이었다. 40조금 넘는 몸으로 한국에 도착했다. 북한을 탈출한지10일 만이었다. 한국에 귀순자10명도 채 안 되던 시절이었다.

 

경희대 한의학과 94학번, 20013월 박사학위, '국내 1호 탈북 한의사'

 

 

3남 박태현

 

몸이 허약해 군복무를 다 마치지 못했다. 16세에 징병된 그는 6년 만에 감정제대(의가사제대를 이르는 북한 말)’를 했다. 전역의 결과로 절연지광산, 운모 광산에 보내졌다. 그러던 중 1992년 둘째 형이 탈북했다.

 

1992년 형의 탈북으로 온 가족이 역적동네로 추방됐다. 함경북도 길주군의 추방지로 내쫓긴 것이다. ‘역적마을이었다. 남은 가족들의 추방지에서의 삶은 그야말로 비참했다. 해발 1500m에 있는 외진 광산마을에서 생명을 걸고 곡괭이로 광물을 캐고 약초를 채취하는 데 동원됐다. 매일 일터를 오가는 데 6시간 동안 40~50를 걸어 다녀야 했다. 배급도 없어 음식도 땔감도 자력으로 조달해야 했다. 이런 암흑 생활이 4년 동안 이어졌다.

 

19982월 어느 날, 한국에서 정착해 살던 둘째 수현 씨가 북한 돈 4만원을 브로커를 통해 보내왔다. 19983, 박태현과 맏형은 탈북을 감행했다.

 

기에서 사람들이 자기를 tv 절도범으로 지목해 탈북을 결심했고 곧장 몽골로 갔다.

 

 

막내 박세현

 

17세부터 개성에서 군 복무

 

19922째형 수현의 탈북으로 인해 최전방으로 배치되어 감사받았다

 

제대 할 목적으로 왼손에 총기발사 부모와 동거했다(2015년 동두천신문사)

 

자살을 하고 싶었다. “턱에 총구를 겨누는데, 어휴~그건 못하겠더라.” 고민 끝에 그는 왼손 바닥에 총구를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그 일로 부대에서 내쫓겨 생활제대(불명예제대)’로 집에 돌아가게 됐다. (2013. 월간 중앙)

 

의가사 제대 원했지만 가정환경이 불우하다는 이유로 생활제대 했다.(2014년 삼형제 특집)

 

셋째 형까지 도망가자 나는 감옥에 갔다. 하지만 10일 만에 가옥에서 도망쳤다. 교도관과 함께 문서를 작성하던 도중 벽에 걸린 철사를 뽑아 자로 꼬부린 후 수갑을 풀고 유리창 깨고 탈출했다.

 

1998117, 부모와 함께 꽁꽁 언두만강 살얼음 위를 걷다가 생사의 기로에 처했다가 도강에 성공, 강 저쪽에는 이미 수현 형이 보낸 브로커가 기다리고 있었다. 브로커의 도움으로 2주 후에 한국에 안착

: 198811월 하순, 박세현과 부모가 함께 한국 입국

 

1992부터 1998년 기간에 가족 6명이 모두 비교적 큰 고생 없이 탈북하여 한국에 정착한 보기 드문 가족

 

                      의문점

 

1. 처음으로 탈북한 가족은 2남 박수현이다. 그는 골동품 범죄를 저지른 친구의 꼬임에 빠져 백두산을 넘어 탈북하여 친구 친척집에 머물다 탈북 10일 만인 931010일 텐진에서 한국행 여객선에 몰래 승선해 한국에 안착했다고 한다. 청진의과대학 또는 경성군에서 백두산을 넘어 탈북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했는가?

 

2. 창주의대 수재가 박수현이 친구가 통역비 1만원을 준다는 바람에 중국으로 가가기로 작정 했고, 1만원을 벌자고 친구와 함께 백두산을 넘어 중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 27(1993-1966) 수재에게 어울리는 스토리일까?

 

3. 수현은 백두산을 넘어 중국에 갔고, 중국서 친구의 친척집에 여러 날 머물렀다가 어디에서인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택시를 탔다가 한국인을 만나 자금 지원을 받고 북경 소재 한국대사관을 방문했다가 한국행을 거부당했다, 그런데 탈북시점에서부터 텐진항에 가는 데 불과 10일 걸렸다는 것인가?

 

4. 텐진항 한국행 여객선을 몰래 승선할 수 있었다는 것은 무협지 같은 이야기다.

 

5. 박수현은 931010일 텐진에서 여객선을 탔타고 한국에 안착한 후 94년에 경희 한의대(6년제)를 들어가 박사과정을 공부하여 2001년에 한의사 자격증을 받았는데 학생신분에 어떻게 해서 브로커를 3차례씩이나 중국에 보내 나머지 가족들을 데려올 수 있었는가? 학생 시절에 자금은 어떻게 조달했는가?

 

6. 북한에서 탈북한 시기가 1992년이라고도 했고, 9310월이라고도 했는데 어느 해가 맞는가? 동생들은 둘째 형이 1992년에 탈북했다고 말하는 반면 인터뷰에서는 1993101일 경이라고도 말했다.

 

7. 1992년 둘째인 박수현이 탈북했는데 가족 전체가 겨우 역적마을로 보내지는 것이 연좌제의 끝인가?

 

8. 박수현이 남한에서 방송을 하는 판에 나머지 5식구 모두가 2차례에 걸쳐 비교적 쉽게 그리고 빠르게 한국 땅을 밟을 수 있었던 과정이 매우 궁급하다. 이순실의 경우와는 너무 대조적이다.

 

9, 북한에서 수현이 군대생활을 하고 있을 때 둘째 형이 탈북하여 방송을 탔는데, 어머니의 편지가 부대에 도달할 수 있는가?

 

10. 형이 탈북을 하여 한국에 갔는데 북한 당국이 막내를 최전방으로 보낼 수 있는 것인가, 아니먀수용소로 보내져야 하는 것인가?

 

11. 손에 총을 쏘아 자해한 병사를 당국이 제대시켜 부모와 함께 살게 할 수 있는 것인가?

 

12. 감옥의 벽에서 못을 뽑아 잇발로 자를 만들어 쑤갑을 풀고 교도소 직원이 보는 앞에서 종이에 물을 묻혀 창문에 붙인 후 주적으로 깨서 감옥을 탈출했다는 말이 현실 세계의 일인가?

 

13. 박세현과 부모가 1998117일 두만강을 넘은지 14일 만에 브러커의 도움으로 2주 만에 한국에 안착했다고 하는데 박수현 측 브로커가 특별하 전능한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행 과정을 밝혀야 할 것이다. 수용소에 갇혀야 상식인 박씨 가족이 이런 식으로 쉽게 탈북했다는 것은 차라리 무협지 소설이라 해야 맞을 것 같

 

2020.10.2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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