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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명철 제2차 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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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0-11-07 22:38 조회94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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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명철 제2차 해부

 

ENG SUB] 북한 정치범수용소 현황과 관리체계안명철엔케이워치 대표북한 사람 인권

조회수 5632020. 2. 10.

https://www.youtube.com/watch?v=j3wL03Xfvac

119~705

 

나의 집안이 좋았다. 부모가 다 당원이었다. 식량배급소 당간부를 30년 이상 했다. 집안이 좋았기 때문에 나와 내 동생은 국가안전보위부에 발탁됐다. 나는 보위부 직속으로 갔고, 동생은 국경경비대로 갔다. 나는 13호 수용소 11호 수용소 등 4개 수용소를 다니면서 8년 동안 근무한 후에 탈출했다. 아버지가 술김에 한마디 했다. “쌀이 없는 것은 배급소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위에서 잘못했기 때문이고, 배급제도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조사가 시작되자 아버지는 음독자살을 했다. 이는 자실은 조국반역죄에 해당했다. 어머니도 조사받았다.

 

나는 8년 동안 휴가를 안 갔다. 8년을 다 하고 나서야 표창휴가를 받게 되었고, 이와 아울러 부친이 돌아가셨다는 전보를 받고 겸사겸사 집에 갔다. 부대에 복귀해서는 나와 아버지는 다르다, 나는 조국에 충성하겠디며 혈서를 썼지만 통하지 않았다. “그 애비에 그 자식이라는 것이었다. 어머니와 여동생은 수용소에 갔다. 나는 그들의 옆에 가서 보살펴야 할 입장이었지만 너무 뻔히 아니까 못가겠더라. 결국 탈북을 결심하게 되었다. 탈출할 때 나와 친했던 두 오누이(24,26)가 있었다. 누나는 석탄 수량을 계산하는 확인원이었고, 남동생은 내가 모는 차를 수리하는 수리공이었다. 나는 늘 그들을 만났다. 탈출할 때 그들도 살려주고 싶어 그들을 차에 태우고 권총 한 자루씩 주었다. 차단초소를 지난다고 하자 이들은 뛰어내렸다. 추격팀이 추격해 오고 있었다. 나를 검거하는 과정에서 애꿎게 중국으로 탈북해 있던 140명이 붙잡혀 강제북송 당했다.

 

: 아버지의 음독자살로 인해 연좌제가 실행됐다고 했는데, 본인과 국경경비대로 간 남동생은 연좌제 해당 없었는가?

 

 

2007.9.20. 발행된 [완전통제구역] 5, ‘운명의 탈출내용

 

나는 1969222일 장남으로 태어났다. 나의 할아버지는 홍원읍 소작농이었다. 작은 땅과 소 한 마리르 어렵게 장만했는데 1960년에 소를 강탈당해 스스로 목을 찔러 자살했다. 가족들은 대를 이어 반역자의 집안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살아야 했다. 어머니는 열상이 많았고, 평생 당원이 되는 것이 소원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할아버지로 인한 연좌제 때문에 노력영웅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뇌물을 써서 할아버지의 기록을 자살에서 사망으로 바꾸었다. 그후 어머니는 홍원군 철도영업소 열차판매원이 되었다. 어머니가 일하는 동안 나는 헐머니 손에 커서 할머니만 좋아했다. 내 아래로는 남동생 용철, 정철 그리고 여동생 순희가 있었다. 용철이는 내가 10사 되던 해(1979)에 사망했다. 1980311, 순희가 태어났다. 나와는 11살 차이다. 당시 나는 홍원고등중학교에 다녔다. 어머니 덕으로 일반직장에 가지 않고 군 입대를 할 수 있었다.

 

19세의 나이였던 19874월에 입대했다. 나는 애초에 경비병으로 뽑힐 수 없었지만 어머니가 당간부들과 군관들에 뇌물을 바쳐 완전통제구역의 경비병이 되게 했다. 나는 사회에서 어깨너머로 배운 운전실력을 바탕으로 경비대의 운전병으로 선발됐다. 나는 언제나 정치범에게 우호적이었다. 한번은 정치범에게 헌 운동화와 고깃덩이를 가져다 준 것이 발각되어 군에서 쫓겨날 위기에 있었지만 뇌물로 무마했다. 8년이 다 된 19943어머니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절대로 집에 들리지 말라, 반드시 초기복무(장기 직업군인)를 지원하라는 내용이었다. 19945, 중대장 장금철 대위가 나를 호출했다. 편지 한 장을 주면서 출장준비를 완료해가지고 보고하라고 했다. 편지 내용에는 1994122일자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내용이 있었다. 봉투를 보니 이 편지는 2월에 부대에 도착했다. 3~4개월 동안 내게 전해주지 않은 것이다. 출장준비를 하는데 교환수로 일하면서 나을 형님이라 부르는 박성하가 찾아왔다. 그 역시 나와 같은 동네 이웃에 사는 데 그도 휴가를 간다는 것이었다. 운수부대 동료들이 내 출장준비를 도맡아 해주었다. 나를 감시하기 위해 참모장이 따라나섰다. 그 역시 내 이웃에 친척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고향에 와보니 어머니가 손수 설계해 지은 새집이었고 방이 다섯 개나 되었는데 그 집의 지붕이 무너지고 문짝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큰아버지 식구들에 물어보니 아버지가 식량을 부탁하는 친구들과 이웃에게 강냉이를 몰래 가져다 준 이유로 절도범으로 몰렸다고 했다. 그래서 1994122일 양잿물을 먹고 자살했다고 했다. 양정사업소 초급당 비서가 어머니에게 아버지를 독살한 범이이라고 몰았다고 한다. 큰아버지라는 사람은 어머니가 아버지를 독살시켰다는 항소문을 들고 평양까지 1주일 동안 걸어서 중앙검찰소에 신고를 했다고 한다. 며칠이 지나 참모장이 나를 데리러 왔다. 15살 난 내 여동생이 참모장을 붙들고 오빠를 초기복무 시켜달라 부탁했고, 나 역시 그렇게 부탁했다. 부대에 귀대하여 대대장, 정치지도원, 후방부대장, 참모장 등을 찾아가 초기복무를 부탁했다. 그러나 그들은 다 같이 이런 말을 했다. 정치범들을 도와주고 계급적으로 변실한 놈의 새끼가 하면 얼마나 잘 하겠어, 그리고 네 부모들도 당을 배난하고 반역죄를 지었는데,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고 너 같은 놈이 추기복무는 뭐 말라빠진 초기복무야, 딴 생각말고 맡은 일이나 잘 해

 

19946, 나는 9월에 탈불하기로 결심했다. 감시를 완화시키기 위해 기발한 생각이 떠 올랐다. “혈서를 써서 충성심의 본보기를 부여주자그리고 혈서를 썼다. 이때부터 군관들의 감시가 수그러들었다. 남조선이 나를 신뢰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비밀문건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런 문건은 내가 구할 수 없었다. 머리를 짜낸 끝에 탄광에서 일하는 최순애(26)와 최희유(24) 남매를 태워가기로 했다. 차단초소인 세천초소 초소장이 내게 쌍을 줌 구해달라고 했다. 나는 9월에 쌍을 그의 집에 가져다 놓을테니 세천초소 근무병들에게 프리패스를 시키라는 명령을 내려 달라고 했고, 그는 이를 약속했다. 탈출날짜를 917일로 정했다. 송이버섯, , 피복, 천막 등을 미리 차에 실어놓았다. 16일밤 12시부터 17일 오전 2시까지 내가 보초를 섰다. 당직실로 내려와 부당직(부직일관)인 부소대장에게 심부름을 시켜놓고 무기고를 열어 권총 5정과 실탄을 챙겨 배낭에 넣었다. 근무 중에 미리 숨겨둔 AK47 소총과 실탄을 차에 싣고 17새벽 230경 수용소 본부를 더나 탄광으로 올라갔다. 미리 나와 대기하던 두 남매를 차에 태웠다. 그들은 영문도 모르고 몸을 실었다. 초소로 가는 길은 오르막길이었다. 이 때 나는 두 정치범들에게 설명했다. 너희들은 아무래도 이 안에서 죽고 만다. 내가 하라는 대로 하면 사람답게 살 수있다. 우리는 남조선으로 가야 한다. 뒤 적재함에 방수포가 있다. 그 안에 들어가서 내가 신호할 때까지 절대로 움직이지 말라. 초소를 통과해야 하니 명심해라

 

그리고 권총 한 자루씩 나누어주었다.피 값이라도 해야 하니 이거 받아라

그들은 초소를 통과해야 한다는 말에 겁을 먹었다. 우리는 가지 않겠다. 초소로 올라가면 죽는다하면서 차에서 뛰어내렸다. 세천초소(차단초소)는 약속대로 차단봉을 올려두고 있었다. 강변에 다다랐다. 1997917일 새벽 230, 두만강과 가장 인접한 도로가에 트럭을 세우고 시동을 껐다. 차에 실어둔 AK47과 권총, 7kg짜리 쌀, 송이버섯이 든 배낭을 차에서 꺼내 양어깨에 메었다. 중국을 향해 강물로 들어섰다. 배낭의 무게로 인해 도저히 헤엄을 칠 수 없었다. 들고 있던 AK소총과 배낭을 벗어버렸다. 간신이 살아나기는 했지만 도로 북한 땅이었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꼭 이래야만 했는가. . 내 평생 그렇게 많은 눈물을 흘려본 적이 없었다. 날이 밝을 때까지 이러고 있었다. 나를 잡으려고 출동한 22호 출동한 22호 경비대 트럭의 불빛이 보였다. 옷과 신발을 벗고 팬티만 입은 채 권총을 담은 배낭 하나만 메고 수심이 낮은 쪽으로 건넜다.

 

중국의 농가로 들어갔다. 새벽 5시 경, 단잠을 자고 있었을 농가 부부에 팬트바람으로 들이닥쳐 권총을 겨눴다. 남편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밥을 얻어먹은 후 연길로 데려다 달라고 협박했다. 주인은 권총 2자루만 주면 연길까지 무사히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택시를 잡으려고 집을 나섰다. 내가 버리고 온 두만강 가에 나를 잡으려고 온 체포조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50미터의 강 건너에는 나를 잡으러 온 동기들, 부하들, 관리소장이 핏대를 올리고 있었다. 그 소리가 나에게도 들렸다. , 이 새끼들아, 빨리빨리 찾아, 못 잡으면 너희들 모두 죽을 줄 알아라! 야 그리고 대대장 이새끼야, 너는 부하들관리를 왜 이렇게 못해! 너 안명철이 이 반역자 새끼 못 잡으면 너 옷을 벗을 줄 알아라. 무조건 잡아, 알았어!” 대대장 강소남의 기가 죽은 목소리가 들렸다. 알았습니다. 소장 동지!절친한 친구들의 얼굴도 보였다. 그는 믿기지 않는 현실 앞에서 그냥 어리둥절한 것 같았다.

 

그 때 중국 남자 둘이 나를 쳐다보았다. “자기 잡으러 온 군대들입메?” 나는 그렇다고 하고 빨리 택시를 불러올 것을 명령했다. 조금 있으니 군용 지프차 같은 택시가 왔다. 나는 권총 세 자루를 모두 허리춤에 차고 언제등지 쏠 수 있게 모두 안전장치를 풀어놓고 있었다. 2사간 정도 택시를 타고 연길역오니 점심시간이었다. 나는 그 남자들에게 신발을 바꾸어 신자고 했다. 그랬더니 그 남자는 권총 2 자루를 더 주시오라고 했다. 운동화와 인민폐 50장을 받고 권총 2자루를 내주었다. 그리고 그 농부는 집으로 돌아갔다.

 

길림역까지 기차를 탔다. 열차 안에서 중국 공안들이 열차표 검열을 하였다. 나는 주머니 속의 권총을 겨눈 채 벙어리 흉내를 냈다. 열차가 길림역에 도착하니 19일 밤 2시경이었다. 하얼빈 가는 기차를 타려면 4시간 더 기다려야 했다. 한가한 열차 안에는 조선족 몇 명이 있었다. 60세 정도의 할아버지를 보았다. 나는 그 할아버지에게 다가가 사정을 말하고 도와달라고 사정했다. 그 할아버지 입에서 그놈 한 놈 때문에 수천만이 고생한다며 수령님에 대한 욕이 나왔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나는 할아버지의 뺨을 후려쳤다. 내가 정신을 차려 사과했더니 용서를 해주었다, 노여움을 푼 할아버지가 나를 자기 집으로 데려갔다. 할머니는 목욕물을 받아주면서 씻으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새옷과 속옷을 주며 갈아입으라 했다. 잉어매운탕도 끓여주었다. 할아버지는 곧장 하얼빈으로 가서 한국영사관에 팩스를 넣었고, 그 답까지 가지고 나에게 왔다. 920, 나와 할아버지가 북경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검열과 조사를 할 때마다 나는 벙어리 흉내를 냈다. 북경역에 도착해서는 할아버지가 나에게 담요를 뒤집어씌우고 중명환자라 우기며 북경역 검색대를 빠져나갔다. 북한 보위부는 중국에까지 건너와 현상금을 걸고 공개수배령을 내려놓고 나를 잡으려 혈안이 되어 있었다. 택시는 나를 계속 나를 북한 대사관으로 데려갔다. 그러기를 여러 번 하자 택시비가 문제가 되어 신랑이가 있었다. 촌 할아버지는 돈을 많이 날린 후 돌아갔다. 그리고 나는 영사관 업무가 시작될 무렵 한국 영사관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자가 당착 사항

 

1. 부모가 모두 당원이었다. 집안이 좋아 나와 내 동생이 보위부로 발탁됐다.

 

2. 부친에 대한 조사, 설화 때문인가, 양곡을 훔친 것 때문인가?

 

3. 할아버지가 소를 빼앗겨 억울한 마음에 목을 찔러 자살했고, 집안은 반역자의 집안으로 찍혔는데 어머니가 뇌물을 써서 할아버지의 기록을 자살자에서 사망자로 바꾸면서 부모가 당원이 되었다고 하는데 이것이 가능한 일인가?

 

4. 나는 애초 경비병으로 갈 수 없었지만 어머니가 뇌물을 써서 경비병으로 갔다고 했는데 사실일 수 있는가?

 

5. 18세에 징집되어 갔다면서 언제 사회생활을 했고,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 어깨너머로 운전능력을 배울 수 있는가?

 

6. 그렇게 배운 실력이 설사 있다 해도 현실적으로 군대에서 그것을 어떻게 인정해 줄 수 있는가?

 

7. 가장 악랄-열악하다는 제22수용소에서 정치범들에게 운동화와 고깃덩이를 현실적으로 가져다 줄 수 있는가?

 

8. 아버지가 1994122, 음독자살했는데 어떻게 어머니가 동년 3월에 수용소에 안 가고 아들에게 편지를 쓸 수 있는가?

 

9. 큰 아버지가 함경남도 홍원군에서 평양에까지 물리적으로 1주일 동안 걸어갈 수 있었는가? 여행증과 검문과정은 어떻게 해결했는가? 그런 상소라면 지역당에 충분히 신고할 수 있었는데 왜 구태여 평양까지 갔다는 말인가? 그런 항소 이유라면 여행증을 재주지 않았을 것인데 어떤가?

 

10. 1994.1.22. 아버지 자실로 인해 반역자 집안으로 판명되었는데 어떻게 4개월이 지난 5월에 포상휴가를 보낼 수 있는가?

 

11. 19941월에 반역자 집안이 되었는데 어떻게 5월에 어머니는 수용소에 갔는데 어떻게 당국이 15세의 딸 혼자만 빈집에 남겨둘 수 있는가?

 

12. 15세 된 딸이 무엇을 안다고 오빠의 장기복무를 참모장에게 호소할 수 있는가?

 

13. 안영철이 대대장, 정치지도원, 후방대대장, 참모장 등을찾아다니면서 충성심을 어필 할 수 있는 군대라면 이 대한민국이라는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존재하지 않는데 북한에서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

 

14. 자기보다 더 높은 부소대장인 부당직에게 심부름을 시킨 다음 무기고에서 권총 5자루를 훔치는 일이 가능했으며 와 권총이 5자루씩이나 필요했는가?

 

15. 정치범 남매 최순애(26)과 최희유(24)를 남한에 데려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그들을 데려가야 자기의 진정성을 남한이 알아줄 것 같았기 때문이아 했는데 왜 그런가?

 

16. 혼자서 탈북하기도 어려운 현실에서 어떻게 그들까지 탈북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는가?

 

17. 그들을 도ᅟᅥᆼ반 탈북시키려면 미리 잘 설득을 시켜야 했을 터인데 어떻게 차에 태우고 나서 긴급 상황에서 짧은 말로 설득시키려 했는가?

 

18. 세천초소(차단초소)의 초소장이 안명철을 그런 식으로 통과시킨다면 그가 죽을 것인데 그가 쌀 7kg 받고 그런 결심을 할 수 있는가?

 

19. 1997917일 새벽 230, 두만강과 가장 인접한 도로가에 트럭을 세우고 시동을 껐다. 차에 실어둔 AK47과 권총, 7kg짜리 쌀, 송이버섯이 든 배낭을 차에서 꺼내 양어깨에 메었다. 중국을 향해 강물로 들어섰다고 했는데 가변과 도로 사이에 아무런 장애물(철조망, 흔적선, 철심 등 장애물과 초소가 없었는가?

 

20. 송이버섯과 쌀은 왜 필요했는가?

 

21. 권총은 왜 5정씩이나 필요하다고 생각했는가?

 

22. 배낭으로 인해 헤엄을 칠 수 없어 버렸고, 버렸기 때문에 살아남았고, 살아남고 보니 몸 닿은 곳은 중국쪽이 아니라 북한 쪽이었다 했는데 살기 위해 버렸던 배낭은 어떻게 북한쪽 강변으로 밀려왔는가?

 

23. 농가의 순진한 농부가 왜 권총을 4정씩이나 탐을 냈는가?

 

24. 도와주겠다는 조선족 할아버지가 뺨을 맞았으면서도 집에 데려다 극진히 대접했고, 머나 먼 하얼빈으로 가서 한국영사관에 팩스를 보내고,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북경에까지 동행하면서 낯선 사람을 구해줄 수 있었는가?

 

25. 다급한 상황에서 그리고 농촌에서 택시를 기다리면서 50m 두만강 건너편에서 자기를 잡으러 온 부대원들의 말을 들 수 있고, 얼굴을 인식할 수 있었다는 것이 물리적으로 그리고 심리적으로 가능했다는 것인가? 농촌이 강가에 붙어 있었는가?

 

 

2020. 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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