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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환의 허풍과 자가당착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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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0-11-14 12:43 조회84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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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철환의 허풍과 자가당착 모음집

 

녹음순번-#20 (파일명:20 강철환대표의 탈북과정을 통해)

녹음일시-2017. 1. 14.

대 화 자-강철환, 여자 1

 

전 략

 

강철환 : 많은 사람들이 이제 뭐 혁명화구역이 아닌 다른 구역에 끌려가서 뭐 다 희생됐지만 저는 이제 다행히도 이제 풀려나게 됐습니다.

여자 1 : 그러면 부모님은요?

강철환 : 그러니까 이제 뭐 아버님, 할아버님 뭐 지금까지 행방불명이시고, 또 이제 아버지하고 이제 할머니는 이제 수용소 나와서 바로 돌아가셨고, 그래서 뭐 그런 시련을 당했죠. 그리고 이제 제가 그런 감정 때문에 이제 북한에서 약간 반체제운동 같은 것 이제 그런 것들을,

여자 1 : 북한 안에서요?

강철환 : . 해왔고요. 그래서 우리는 대한민국을 정말 좋아했습니다.

여자 1 : 거기 그 안에서 또,

강철환 : . 그래서 이제 그 좋아하게 된 계기가 저희 친구 중에 1명이 이제 일본에 친척들이 있는데 일본 친척이 이제 북한을 방문해서 이제 카세트 녹음기라고 옛날에 이제 음악 듣는 녹음기 있잖아요.

여자 1 : 소니 이런 거요?

강철환 : . 소니나 뭐 파나소닉 같은 것 이런 것들 그거 선물로 주고받는데 거기에 라디오가 있었어요.

여자 1 : 그러면 주파수가 잡힌,

강철환 : 다 잡히죠. 그러니까 거기는 라디오가 있고 이제 음악을 듣는 테이프 이제 돌아가는 게 있는데,

 

중 략

 

강철환 : 그래서 그 라디오를 듣다가 이제 걸려서 이제 또 보위부에서 이제 불려갔죠. 불려갔는데 다행히도 이제 그 보위부 그 직원이 저랑 같은 이제 뭐 어떤 연관이 있어 가지고 저를 죽이지 않고 이제 살리려고 마음먹은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제 저를 덮어주게 됐고, 그래서 그 사람의 이제 비호 아래 더 이제 반정부활동도 하게 됐죠.

여자 1 : 그 사람도 좀,

강철환 : 그 사람이 그런 거 하라고 도와주지는 않았지만,

여자 1 : 아니 그래도 좀 인연이 닿았네요.

강철환 : . 그래서 이 사람이 저를 커버해주니까 제가 이제 보위부 스파이가 누군지도 알게 됐고, 그래서 그 친구들 제가 피하면서 제가 하고 싶은 일을 막 하다가 결과적으로 제가 또 너무 일을 많이 벌이다 보니까 그 사람이 커버할 수 없는 그런 단계까지 가게 됐어요. 그래서 그분이 저를 불러가지고 하는 말이 더 이상 이제 자기 커버가 안 된다.”

여자 1 : “가라.”

강철환 : . 그러니까 가라는 건 아니지만 너는 잡혀가게 됐다.” 그러니까 이제 니가 잡혀도 나를 불지 말아라, 이런 뜻이겠죠. 그래서 제가 때가 왔다고 생각을 했고,그래서 이제 탈북을 해야 되는데 그때는 탈북이라는 말이 없었어요, 사실은.

여자 1 : 그러면요?

강철환 : 그러니까 뭐 휴전선으로 넘어가든지, 그러니까 중국을 통해서 간다는 길도 사실 알 수가 없었고, 그리고 중국이 그때 개혁개방 초기였기 때문에,

여자 1 : 그게 1900,

강철환 : 92년도.

여자 1 : 그렇죠. 제 기억에는 이 시기에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오지 않았어요.

강철환 : 거의 없었죠.

여자 1 : 80몇 년도에 이영평 소위라고, 중위인지 소위인지 비행기를 몰고 온 적이 있었거든요.

강철환 : 그렇죠. .

여자 1 : 그렇게 1명씩 올 때마다 굉장히 쇼킹한 게 북한사람들이었어요, 그때만 해도. 그렇죠? 맞죠? 제 기억이 맞죠?

강철환 : 그렇죠. .

여자 1 : 92년도만 해도 많이 오지 않던 시절이었어요.

강철환 : 그러니까 92년도는 이제 귀순용사 시대라고요, 그때는 이제 뭐 의사, 약사, 뭐 귀순용사 해가지고 되게 대우를 잘해줄 때고,

여자 1 : 그렇죠.

강철환 : 아주 귀할 때거든요.

여자 1 : 귀했어요. 오면 집도 주고 직업도 주고,

강철환 : 맞습니다. 뭐 강연도 너무 많이 했고, 이제 그런 때였기 때문에 탈북해서 성공하리라고는 거의 생각도 못했죠.

여자 1 : 시도는 했지만?

강철환 : 아니 그러니까 시도를 이제 해보기 전에, 하지만 일단은 제가 수용소 생활을 해봤기 때문에 두 번 다시 들어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고, 그래서 제가 죽든 살든 한번 탈북을 해보겠다.’ 이제 그런 마음을 제가 가지게 됐습니다. 그래서 같이 온 친구와 함께 탈북을 결심을 했죠. 그러니까 사실 많은 분들이 같이 탈북을 하기로 했는데 실제로 압록강까지 온 사람들은 저희 2명밖에 없었습니다.

여자 1 : 그런 나머지는?

강철환 : 나머지는 다 체포가 됐거나 이렇게 다 끌려갔죠. 그래서압록강까지 와서 이제 국경을 지키는 군인들하고 저희가 또 사귀게 됐고, 또 이제 그 브로커들도 활용을 해서 술, 담배를 왕창 먹이고 이 군인들이 새벽에 술 먹고 뻗은 그 사이를 저희가 활용을 해서 이제 강을 건넜죠. 그러니까 그때가 이제 겨울이었는데 특히 북쪽 지역은 굉장히 춥습니다.

여자 1 : 그렇죠.

강철환 : 그러니까 막 얼음이 막 이렇게 얼어버리는데 그 밤에 이제 강을 건너서 이제,

여자 1 : 그러면 그거는 걸어서 건너겠네요?

강철환 : . 걸어서 건넜죠. 건널 때 이제 김일성 배지를 제가 바위에 세워놓고 돌로 이제 짓뭉개고 그러고 이제 제가 탈북을 했죠. 그리고 중국에서 딱 건너간 곳이 바로 양강도 혜산이라고 하는 도시에 맞은 편 도시, 그러니까 창빠이라고 하는 중국에 국경도시가 있습니다. 그래서 창빠이시에서 저희가 한 3일 동안 있다가 겨울에 이제 연길까지 차로 오는데 그게 영하 30도가 됩니다, 이게.

여자 1 : 영하 30도는 체감이 잘 안 돼요.

강철환 : 30도가 되는데 그 거리가 5시간이 넘는 거리거든요. 그러니까 따뜻한 팩 하나 주면서 견디라 그러는데 이제 연길이 거의 와가지고 내리려고 그러는데 이 허리가 안 펴지는 거예요, 얼어가지고.

여자 1 : 얼어서요?

강철환 : 얼어가지고, 그래서 거의 동사 직전까지 그 상태에서 이제 와서 이제 머무르고 있는데 와, 엄청 추웠습니다, 그때.

여자 1 : 그때가 그러면 한 스물셋, ?

강철환 : 그때가 이제 24살 때.

여자 1 : 24살 때? 92년도 24살 때?

강철환 : .

여자 1 : 그러면 중국까지,

강철환 : 왔죠.

여자 1 : 들어갔네요?

강철환 : . 와가지고 이제 중국에서 한 6개월 동안 이제 숨어살았는데 북한에 이제 보위부 체포조가 저희를 잡으려고 나왔어요. 나와 가지고 이제 저희가, 저희 동선을 따라오는데 한 6개월, 아니 그러니까 한 6일 정도 차이를 두고 따라오더라고요, 보위부가.

여자 1 : 그러면 계속 6일 정도를 도망가고 있는 거예요?

강철환 : . 계속 쫓기면서도 도망 다녔죠.

여자 1 : 친구랑 2명이서?

강철환 : . 그러다가 이제 어느 순간 딱 끊고 이제 내륙으로 딱 빠졌죠.그래서 그때는 좀 안도를 했는데, 그래서 저희는 이제 동남아로 온 거는 아니고 바로 중국에 대련이라고 하는 항구도시에서 지인의 도움을 받아가지고 한국선장인 배인데 온두라스 국적의 배입니다, 이게. 그래서 그 선장님을 제가 설득을 해가지고 이제 밀항선을 타게 됐죠. 타서 이제 서해까지 나오는데 이제 한 반나절이 걸렸고, 그래서 한국 해군에게 구조요청을 해가지고 이제 배에 또 옮겨타게 됐습니다.

여자 1 : 이게 방금 설명하시는 것처럼 말로 들으면 그냥 옆에서 재미있는 얘기 듣듯이 이렇게 멍때 리고 있지만 사실은 그 11분이 다 생명을 걸었던 시간인 거죠?

강철환 : 그렇죠. 그때는 뭐 도와주는 분들도 없었고, 탈북 루트라는 것은 다 우리가 알아서 이제 개척을 해야 되는 상태이기 때문에,

여자 1 : 그리고 뒤에서 누군가가 어떻게 나타날지도 모르는 상황이잖아요.

강철환 : 그렇죠.

여자 1 : 잡혀가면,

강철환 : 그러니까 저희는 그냥 하늘에 맡겼고, 운을. 그리고 이제다행히도 우리 만나는 사람들 다 저희를 도와주려고 했고 진심으로 이제 저희를 아껴주었기 때문에 이분들의 도움이 없었으면 사실은 성공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여자 1 : 그러니까 먹는 것도 그렇고 참 다 힘들었을 것 같은데,

강철환 : 그렇죠. .

여자 1 : 그렇게 해서 그러면 한국으로 들어오신 거네요, 결국.

강철환 : 들어왔죠. 그러니까 그때는 이제 하나원이 없었죠.

여자 1 : 없었죠, 92년도에는.

강철환 : . 없었고, 이제 그때는 국정원하고 이제 기무사, 정보사라고 있는데 군인들은 정보사라고 하고 민간인들은 국정원에서 관리를 했어요. 그래서 이제 거기에서 한 6개월 동안 조사를 받고, 그러니까 조사과정에서 저희가 이제 북한에 정치범 수용소를 경험한 사람은 처음이다 보니까,

여자 1 : 제가 그때 그 말 들으면서도 무슨 말이지?’ 그때 정말 그랬었거든요.

 

중 략

 

강철환 : 사실은 이제 한국에 처음 와가지고 이 남한 땅에 종북세력이 있는지도 몰랐고, 주사파가 있는지도 몰랐고, 그리고 이 남한사회가 북한을 잘 모르지만 그래도 북한의 인권문제나 북한의 수용소 문제를 제가 폭로를 하게 되면 온 국민이 분노해가지고 일어날지 알았어요, 사실은.

여자 1 : 그런데 안 그러죠?

강철환 : 그런데 기자회견장 갔는데 기자들 반이 사실이 맞냐? 국정원이 시킨 거 아니냐?” 이런 데에만 관심이 있는 거예요, 이게.

여자 1 : 그렇죠. 안 믿긴다니까요.

강철환 : 그래서 이제 너무 황당한 거죠. 되게 화가 났거든요, 굉장히. “아니 국정원이 시켰으면 내가 여기 왜 나오냐, 여기에?” 그렇잖아요. 그리고 보위부는 간첩으로 걸리는 순간 그거는,

여자 1 : 무슨 말인지 지금 저 이해가 가요.

강철환 : 그냥 사지가 찢어지고 그냥 다 가루가 되는 그런 게 보위부고,

여자 1 : 그런데 그것도 놓치고, 바보처럼. 그렇죠?

강철환 : 그렇죠. . 그러니까 이제 그런 이제,

여자 1 : 우리나라에 그 무렵에요 대학생 1명이 북한에 갔다가 돌아오고 그랬었어요. 그런데 그 사람이 국회의원 돼 있어요.

강철환 : 제가 임수경 씨 알죠.

여자 1 : 잘 알아요?

강철환 : 임수경 씨가 저랑 같은 나이거든요.

여자 1 : , 같은 나이에요?

강철환 : . 같은 나이고, 사실은 제가 이 친구 때문에 남한에 대한 환상을 제가 가진 사람 중에 하나거든요.

여자 1 : 왜요?

강철환 : 왜냐면 그 임수경 씨가 그때 평양으로 그때 왔었어요. 그런데제가 지방에 있다가 임수경 씨 보려고 평양에 몰래 들어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89년도에 평양 이제 학생, 청년축전을 했는데 그때 제가 이제 그 수용소 나와서 거든요. 그래서 막 임수경 씨가 너무 이제 반가워 가지고,

여자 1 : , 남쪽에서 왔으니까 반가워서?

강철환 : 반가웠죠. 그리고 제가 반가운 이유는 뭐냐면 이 친구가 북한이 써준 각본대로 한 것이 아니고 자기 마음대로 떠드는 거예요, 그냥. 그러니까 북한이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 그러면 그거 다 걷어치우고 자기 말대로 하고, 그러니까 그런 자유로움, 천진난만함 이런 것들이 저희 또래 북한 청년들에게 상당한 이제 자유의 어필을 한 거죠.

여자 1 : 뭐야, 그러면 조금이라도 좋았던 그 효과가 있었던 거예요?

강철환 : 엄청 있었죠.

여자 1 : 그래요? 그런데 우리 개념에서는 북한을 갔다 온 사람에 대한 그 적대감이 굉장히 강해요.

강철환 : 그러니까 이제 저는 그때 그 친구가 주사파라고 생각을 안 했고, 이 친구들이 이제 어떤 세력이 파견됐는지 몰랐는데 다행히도 임수경 이후에 온 애들은 전부다 주사파 중에 아주 골수만 와가지고 북한이 하라는 대로 하는 바람에 인기가 전혀 없었어요.

여자 1 : 이미지가 그냥 다 바뀌었군요?

강철환 : . 그런데 임수경 씨만은 어떤 사상과 이념보다는 그 자체의 어떤 자유로움이 많이 묻어나왔어요.

여자 1 : 그 당시만 해도.

강철환 : . 그래서 예를 들면 이제 뭐 일본 맥주를 갖다가 줬더니 이런 거 왜 먹냐? 한국 맥주 달라.” 예를 들면 그런 식으로 말하니까 그 당시에 북한사람들에게 한국, 일본 맥주라는 건 최고의 맥주입니다, 그때는. 아사히 이런 맥주가 있는데 이걸 먹는 사람들은 북한에 상위 1%거든요, 사실은.

여자 1 : 그거를 줬는데도 싫다고 하니까.

강철환 : 싫다고 그러니까, 일본 거라고. 그러니까 이제 사람들이 놀라는 거죠. 그러니까 곳곳에서 임수경 씨가 상당히 이제 파장을 일으켰고, 이 임수경 씨 때문에 많은 북한사람들이 남쪽에 대한 환상을 가지게 됐고,

 

후 략

 

- -

- 다음 녹음순번 계속 -

녹음순번-#21 (파일명:21 (ENG SUB)탈탈탈221- The aquariums of pyoungyang, North Korean prison camps, torture, Interview)

녹음일시-2017. 1. 23.

대 화 자-강철환, 남자 1, 여자 1

전 략

 

강철환 : 평양시 중구에 경림동 38.

남자 1 : 반까지, 정말 디테일하시네요.

강철환 : 8년간 33.

남자 1 : 8년 동안 33호에 사셨고요.

강철환 : 그러니까 이제 저희 아파트가 그게 이제 독일에서 지어준 아파트예요. 그러니까 이제 전쟁 직후에 아마 평양이 폐허가 됐는데 동유럽에서 이제 지원사업을 많이 했죠.그래서 뭐 러시아, 루마니아, 독일, 헝가리에서 공산국가에서 막 지원을 했는데 저희 아파트는 이제 독일식으로 짓다 보니까 되게 천장이 높고 집이 되게 좋아요, 이렇게. 방이 4개가 있고, 그러니까 그 당시에는 이제 북한에서 최고위층은 아니지만 상당한 북한에 기여를 했거나 중견간부 이상 되는 이제 아주 높은 간부들 그런 사람들이 사는 집으로 이제 지은 집이죠.

남자 1 : 그러면 아버님께서 좀 높은 자리에 계시는 건가요?

강철환 : 그러니까 저희 할머님이 이제 최고 인민회의 대의원을 하셨고,

남자 1 : 국회의원 같은 거,

강철환 : . 국회의원, 그거를 한 15년을 하셨고, 할아버지가 이제 평양시 상업관리소 부사장직을 했었고, 그러니까 평양, 평양시에,

여자 1 : 그게 어떤 건지 좀 설명해주세요.

강철환 : 백화점하고 총괄하는, 그러니까 이제,

남자 1 : 실세시네요.

강철환 : 그러니까 이제 내가 어릴 때에는 우리 집에 항상 이제 먹을 게 막 둥둥 떠다녔어요. 그러니까 평양에서 먹는 것을 다루는 그런 이제 책임자니까 이제 뭐 사시사철 과일 다 들어오고,

남자 1 : 그게 북한에 몇 년도부터 몇 년도까지 그렇게,

강철환 : 그게 아마 내가 태어나서 77년까지, 그러니까 그때는 뭐 약간 북한 경제가 약간 좋을 때고,

남자 1 : 그렇죠.

강철환 : 또 이제 평양에서도 또 평양 중심가였으니까 좀 괜찮은 생활을 했던 사람들의 어떤,

여자 1 : 완전 노른자였네요.

강철환 : . 그런 분위기였고, 거기에서도 또 잘 사는 집이었으니까,

남자 1 : 세상에 부러움 없어라를 누리면서 사신 분이고,

강철환 : 내가 태어나서 9살까지는 정말 부러움 없이 자란 것 같아요.

 

중 략

 

강철환 : 그러니까 이제 제가 9살 때 갑자기 이제 저희 할아버지가 직장에 나갔는데 집에 안 들어오는 거예요. 그래서 출장 갔나 했는데 출장도 아니고, 그래서 한일주일 후에 북한에 이제 국가안전보위부라고 하는 그 보위부 조직에서 와가지고 저희 할아버지가 갑자기 이제 뭐 민중반역자라는 식으로 이제 얘기를 해요. 그리고 이제 신발도 안 벗고 막 들어와 가지고,

남자 1 : 집에.

강철환 : . 들어와 가지고 이제 국가에 이제 죽을 죄를 지었지만 북한은 이제 우리를 뭐 죽이지는 않고 뭐 어떤 지역으로 가게 됐다. 뭐 그런 식으로 말을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이렇게 서약서를 내미는데 국가안전보위부 무슨 몇 국 과장 전재군이라는 이름은 저 아직도 기억나요, 그게. 그래서 사인을,

남자 1 : 9살 때인데도 그게 아직도 기억나세요?

강철환 : . 기억나요. 그러니까 왜냐면 저희 할아버지, 아버지, 우리 형제들, 그 부모님들이 다 이제 막 슬퍼가지고 막 울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나는 그게 무슨 일인지 몰랐어요, 사실은. 모르고 이제 , 이게 불행한 일이 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너무 어렸기 때문에 이사 간다는 또 호기심,

여자 1 : 그 와중에.

강철환 : 그게 있어 가지고 상당히 이제 좀 들뜬 마음도 있었어요. 내가 평양에서 태어나가지고 한번도 외부에 나간 적이 없었기 때문에,

여자 1 : 다른 곳도 다 평양 같은지 아셨겠네요?

강철환 : . 그러니까 평양을 떠나면 지방은 어떨까 하는 그런 호기심도 있었고, 그래서 나는 그렇게 슬프지는 않았어요, 사실은. 슬프지는 않았는데,

남자 1 : 뭔지 모르니까, 거기는.

강철환 : 그렇죠. 그런데 이제 나를 되게 슬프게 한 건 뭐였었냐면 그 당시에 평양에서 이제 어린 아이들이 뭐가 있었냐면 집집마다 이제 어항을 이제 다 이제 놓고 그 어항에다가 이제 구피 있죠, 구피?

여자 1 : 구피요?

강철환 : 북한 말로 공작어라고 그러는데,

여자 1 : , 금붕어요?

강철환 : 구피라고 있어요, 구피. 여기 한국도 많이 키우더라고요.

여자 1 : , 그래요?

강철환 : 색깔이 막 이렇게 막 있는 고기 있잖아요, 조그만 고기.

여자 1 : 애완 물고기 말씀하시는 거죠?

강철환 : . 그 구피라는 고기,

남자 1 : 닥터피시 이런 건가요? 아닌가요?

강철환 : 아니요. 구피라는 종류가 제일 많아요. 그런 고기랑 이제 금붕어랑 그 다음에 북한 말로 검이라고 하는데 검, 꼬리에 이제 칼날이 잔뜩 붙은 고기가 있어요, 이렇게. 까만 것도 있고 빨간 것도 있고, 그러니까 그런 이제 관상용 고기들이 굉장히 인기가 있어 가지고 저희 친구들마다 이제 경쟁을 했어요, 그때 막.

남자 1 : 누가 많이 잘 키우나?

강철환 : 누구네 집에 제일 많은 고기가 있냐,

남자 1 : 그러니까 부의 상징이었네요.

강철환 : . 그러니까 나는 이제 우리 집에 내 어항이 한 5개인가 있었어요, 우리 이제 방에.

여자 1 : 9살 때요?

강철환 : .

여자 1 : 어항이 5개요?

강철환 : . 그래서 이상하게 저희 아버지가 제가 금붕어 이런 것들 키운다 그러니까 말리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어항을 몇 개 사가지고 거기에다가 종류별로 어항을 다 거기에 놓고 하루종일 그거 보는 재미로 살았거든요. 그리고 이제 애들을 다 불러모아가지고 자랑하고, 그런데 이제 하루는 이제 애들이 우리 집에 우르르 몰려와가지고, 그러니까 소문을 들은 것 같아요.

남자 1 : , 이사 간다는 소문.

강철환 : . 이사 가는데 되게 안 좋은데 가는데 이런 거 다 필요 없지 않냐고,

남자 1 : , 달라고.

강철환 : 그러니까 이제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이게. 그래서 애들한테 다 나눠주고, 나눠주고 이제 내가 제일 아끼던 고기들을 다 골라가지고 어항에 담았어요, 하나에다가. 이거는 내가 가지고 간다 해가지고, 그래서 그거를 담아가지고 이제 그 준비를 하니까 그 보위부 요원이 하도 어이가 없으니까 그거 놓으라고, 놓고 가라고. 그러니까 내가 막 그 보위요원한테 막 욕, 같이 막 싸움질하면서 막 가져가겠다고 막 떼를 썼거든요, 거기에서. 떼를 하도 쓰니까 그 보위부 요원이 가져가라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그거 금붕어 어항을 이제 아예 통째로 가져왔어요, 그거를 수용소까지.

여자 1 : 그거 그냥 그대로요?

강철환 : . 그거 이제 비닐에 싸가지고 이제 어항 딱 놓고 이렇게, 그래서 이제 그 영문판으로 나오는 이제 평양의 어항이라는 책의 이름이 바로 거기에서 나온 거죠, 이게.

여자 1 : , 그래서,

남자 1 : 어항의 뭐, . 그 책.

강철환 : . 평양의 어항이라는 그 책의 이름이, 그러니까 이게 프랑스 사람들의 강박인 것 같아요, 이게. 그러니까 저희는 이제 뭐 수용소의 노래뭐 한국어판은 그렇게 돼 있는데 프랑스 사람들은 이제 제 얘기 막 듣다가 보니까,

여자 1 : 그게 가장 인상 깊어서,

강철환 : 그게 굉장히 자기들한테는 야, 정말 이제 와 닿는 내용이에요, 그런 스토리가. 그래서 그때 내가 아주 어릴 때 정말 좋아했던 그 물고기들 그거를 내가 놓고 갈 수가 없어 가지고 이제 수용소에 끌고 왔죠, 그거를. 끌고 왔는데,

여자 1 : 그런데 그 이제 할아버지가, 할아버님이 출근하고 그렇게 갑자기 그렇게 됐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민족, 아까 민족반역죄라고 하셨는데 정확히 어떤 일을 하셨길래 그런,

남자 1 : 무슨 죄를 지었길래 그렇게 하루아침에 가족이 다,

강철환 : 그러니까 그 당시에 이제 북한에서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후계구도로 갈 때거든요. 그래서 김정일이 후계자가 되면서 반대파들을 막 숙청을 할 때, 이제 그런 식이었는데 그때 이제 그 북한에 많은 공산주의들, 그러니까 북한에 어떤 지지자들이 사회주의 공산주의는 지지하지만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가는 봉건주의는 지지할 수가 없다. 이게 보통 생각이거든요. 그래서 말은 못하지 뒤에서 막 수군대기 시작했어요, 사람들이. 그러니까 저희 할아버지도 사실은 뭐 아주 골수 사회주의자는 아니었지만 저희 할머니가 이제 사회주의자였기 때문에 저희 할머님의 영향을 받고 상당한 사회주의 공부를 많이 했죠. 그러다 보니까 이거는 사회주의 원칙에도 안 맞는 것이고 이거는 이제 봉건주의로 가는 길이기 때문에 앞으로 이제 북한, 그러니까 조선의 혁명에 상당히 지장을 줄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했고, 그리고 이제 동료들과 함께 술 마시면서 실수로 한 마디 한 것 같아요, 실수로. 그러니까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가는 것은 이제 봉건주의적인 어떤 그런 이제 문제이기 때문에 나는 찬성하지 않는다.” 그런 말을 했는데 본인도 아마 기억이 잘 안 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제 그,

남자 1 : 다 그렇게 가네요.

강철환 : . 그 말 한 마디 때문에 이제 할아버지가 행방불명이 된 거죠. 그런데 거기에다가 또 죄를 막 뒤집어 씌웠어요, .

남자 1 : 다른 죄를 같이?

강철환 : 죄를 막 뒤집어씌워가지고 뭐 일본에서부터 뭐 잘못했다느니 뭐 이래 가지고 다 뒤집어씌웠는데 기본적인 핵심 죄는 아마 이제 그 후계구도로 갈 때 그 반대했다.

 

중 략

 

남자 1 : 대표님께서 좀 소개를 해주시면 조금 더 와 닿을 것 같아요. 뭐 학교도 있고, 어떤 공동체인가요, 거기는?

강철환 : 그러니까 제가 이제 한 5시간 반 동안 이제 차를 타고 이제 굽이굽이 이제 막 올라와서 이제 내린 곳이,

남자 1 : 평양에서부터 여독까지 5시간,

강철환 : . 5시간 반 정도 걸린 것 같아요. 그래서 도착한 곳이 이제 간판을 보니까 함경남도 여독군 구읍리라고 돼 있어요, 거기는. 그런데 수용소 간판은 조선인민경비대 제2915군부대, 그러니까 2015를 안 되가지고 15관리소라고 불러요, 거기에서는 또.

남자 1 : 번호대로.

강철환 : . 그러니까 겉에 보기에는 군부대 박사같이 돼 있는데 그게 군부대는 아니고 수용소를 지키는 경비대의 군번 같은 이제 그런 명칭인 것 같아요, 보니까.

남자 1 :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 보기에는 군대 뭔가,

강철환 : 막사 같은데,

남자 1 : 막사처럼 보이는데 이제 안에는 범죄자들 수용하는 곳이었던 거죠?

강철환 : 그렇죠. 그래서 이제 정문에 딱 내려가지고 호송한 보위부 요원이 그 수용소 보위부 요원하고 무슨 이렇게 서류상 절차를 뭐 따지더니 문을 딱 열더라고요. 그래서 차가 딱 진입했는데 처음 진입한 집은 이제, 거기 처음 진입한 마을은 그 수용소를 지키는 이제 경비대나 국가안전보위부 요원들이 사는 마을이었어요, 거기는. 그러니까 거기는 좀 깔끔했어요. 그러니까 애들도 보면 우리하고 비슷했고, 그런데 그 마을 지나서 1반 마을 딱 들어서니까 그때부터는 약간 이상한 거예요, 감정이 좀. 그러니까,

여자 1 : 약간 평양이랑 이제 다른 느낌이니까.

강철환 : 나랑 비슷한 애들이기는 한데 너무 애들이 모양이 이상, 그러니까 막 뼈만 남고 막 머리가 막 뿌옇고, 그리고 막 눈이 막 퀭하고 막 이렇게 막 그런 상태로 있으니까 너무 이제 온 몸이 막 떨리는 거예요, 갑자기 나도. 그리고 이제 내가 지나가면서 내가 같은 또래니까 말 걸었어요, 너 누구냐고.

남자 1 : , 걸어서 거기를 통과를 했나요?

강철환 : 그러니까 처음에는 걸어서 가다가 다시 또 차를 탔는데, 그래서 그 1반 마을에서 이제 10반 마을까지 가는 거리가 한 40분 정도 걸렸어요, 40.

남자 1 : 그게 엄청나게 큰 동네네요?

강철환 : 엄청나게 크죠, 그 수용소가.

남자 1 : 그러니까 한국으로 만약에 어떤 지구로, 지금 동이나 이런 걸 얘기한다면 어느 정도의 크기 같아요?

강철환 : 수용소 크기가 워싱턴DC정도 크기래요.

여자 1 : 수용소 크기가요?

남자 1 : 그러면 뭐 서울에 뭐 일반 구보다,

강철환 : 더 크죠.

남자 1 : 더 큰 거 아니에요? 시만 한 거네요, 거의.

강철환 : 엄청 크죠, 수용소가.

 

중 략

 

남자 1 : 그 안에서 그렇게 그런 삶을 얼마 동안 사신 건가요?

강철환 : 제가 딱 98개월.

여자 1 : 거의 10년이네요.

남자 1 : 그러면 10살 때 오셔서 딱 10년 동안,

여자 1 : 10년 동안, 20?

강철환 : 9살 들어오고 19살 때 나왔죠. 그러니까 이제 해는 나이로 10살 때 들어와서 20살 때 나왔죠.

여자 1 : 완전히 청소년기를 거기에서 생활을 하신 거네요, .

강철환 : 그렇죠.

남자 1 : 거기는 교육은 이루어지나요? 어땠나요? 거기는 어떤 삶이,

여자 1 : 거기 그 안에, 그 안에 삶을 좀 말씀해주세요.

강철환 : 그 여독수용소가 이제 구역이 2개가 있었어요. 한쪽 구역은 혁명화구역이라고 돼 있는데 이 혁명화구역은 말 그대로 혁명화를 시켜서 이제 살려 내보내는 구역입니다, 이게.

남자 1 : , 사람 교화를 시켜서 내보내는 데고,

강철환 : . 그러니까 이제 시스템은 똑같은데 여기는 죽이지 않는 그런 구역이고, 이쪽 한쪽 구역은 이제 완전 통제구역이라고 돼 있는데,

남자 1 : 그러면 종신형인 거죠?

강철환 : 여기는 이제 종신형.

남자 1 : 못 나가는 거죠?

강철환 : . 그러니까 이 두 가지 구역이 있어요. 그래서 혁명화구역은 교육 시스템이 똑같아요, 일반 사회하고.

남자 1 : 학교도 있고,

강철환 : 학교도 있고,

남자 1 : 공장기업소도 있고,

여자 1 : 그런데 아까 워싱턴DC만 하다 했으면 안에, 안에 그러면, 그러니까 이제 그러니까 감옥 같은 게 아니라 그냥 어쨌든 건물들이 이렇게, 그냥 마을이 이렇게 있는 거죠?

남자 1 : 도시네요, 도시?

강철환 : 그러니까 뭐 약간 도시라고 말하기는 좀 힘들고 그냥 이제 일반 군 소재지 같은 뭐 그런 형태의 마을인데 혁명화구역에는 이제 김일성, 김정일 교육을 시켜요, 여기는. 그런데 완전 통제구역에는 김일성, 김정일 교육을 안 시키더라고요.

남자 1 : ! 어떻게 보면 좀 편한 거 아니에요?

강철환 : 편한 게 아니라 그거는 북한에서 말하면 이제 정치적인 생명과 육체적인 생명이 있다 그러잖아요, 북한에서. 그런데 정치적 생명이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 사람들은 인간이 아닌 거예요, 이게.

남자 1 : 개나 돼지 같은,

강철환 : 그냥 개, 돼지나 똑같은 사람들이에요, 이 사람들은. 그러니까 정치적 생명을 박탈한 사람들은 그냥 육체적인 생명만 남은 짐승이기 때문에 짐승생활을 시키는 거죠, 여기에서는.

여자 1 : 그러면 교육을 시킬 필요성도 못 느낀다?

강철환 : . 거기는 교육과정이 중학교 3학년까지밖에 없어요. 그런데 우리는 이제 5학년까지 있기는 있는데,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노동강도가 똑같아요. 혁명화구역이나 똑같아요. 똑같은데 어떤 차이가 있냐면 노동의 시간의 차이가 있어요. 그러니까 완전 통제구역은 1시간 먼저 일어나서 1시간 늦게 퇴근하는, 그러니까 우리가 5시에 일어난다면 그 사람들은 4시에 일어나서 일을 하는 거죠. 그러니까 그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노동강도나 이런 거는 똑같다는 거죠.

남자 1 : 아니 그러면 그 안에서 어떻게 보면 대표님은 10살 때 들어갔으면 미성년자잖아요. 그러면 어른들이랑 노동강도가 좀 달랐을 것 같은데,

강철환 : 그러니까 아이들은 이제 아이들에 맞는 일을 시키는 거죠, 거기에서.

남자 1 : 어떤 일을 주로 하나요?

강철환 : 제가 어릴 때 한 일들은 이제 농촌에 나가서 이제 옥수수 심는 일을 하는데 어른은 한 100평을 심는다면 아이들은 한 30평을 심는 거죠. 그리고 이제 뭐 같은 김매기를 하는데 뭐 어른은 300평을 맨다면 우리는 한 100평 매고, 그러니까 이런 평수의 차이가 있는 거죠. 애들에 맞게끔 일을 하는 거죠.

남자 1 : 학교 이런 게 있다고 했는데 그러면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교육 같은 건 어떤 건가요?

강철환 : 교육은 이제 혁명화구역은 일반 사회의 교육을 다 받기는 하는데 이제 문제는 뭐냐면 그 교원이라고 나온 사람들이 전부다 국가안전 보위부 요원들이에요, . 다 총 차고 나와 가지고, 그러니까 이제 그애들에 대한 교육의 목적이 아니고 그 수용소 안에 이제 아이들이 많다 보니까 이 아이들을 관리하는 목적이 더 큰 것 같아요, 거기에서는. 그래서 이제 그 아이들에게 이제 뭔가 이제 교육을 시켜서 뭔가 이제 뭐 가르치자는 목적이 아니라 그 아이들 통제하기 위한 그런 목적이 더 강하다 보니까 일을 엄청나게 시키고 나게 되면 애들이 앉아가지고 공부를 할 수가 없어요, 힘들어 가지고.

남자 1 : 피곤해서 못하죠.

여자 1 : 못하죠.

강철환 : . 그러니까 뭐 공부하라는 말도 안 하고 그냥 이제 공부하는 시간에는 다 잠을 자고 있고, 또 오후에 이제 일을 또 나가고, 이런 식으로 이제 하루 일과가 되다 보니까 제가 뭐 수용소 학교에서 뭐 배운 기억은 거의 안 나요, 사실은.

 

중 략

 

남자 1 : 어머님, 아버님,

강철환 : 그러니까 어머님은 강제이혼 당했고, 저희 아버지, 할머니, 막내삼촌, 여동생, 5명 저까지, 끌려갔죠. 그러니까 저희 어머니는 왜 안 갔냐면 우리 외할아버지가 혁명열사 가족이에요,.

남자 1 : 김일성이 뭐 할 때 이제 같이,

강철환 :김일성이 빨치산 때 일본에 파견돼 가지고 일본에서 무슨 스파이 활동을 했는데 일본 경찰에 잡혀가지고 일본 감옥에서 옥살이를 했어요. 그러니까 저희 집은 독립운동가,어떻게 보면 독립운동가죠, 어떻게 보면. 그런데 뭐 김일성이가 했다고 그러는데 나는 잘 모르겠지만,

남자 1 : 어머니 쪽이 그쪽인 거죠?

강철환 : . 외가 쪽이, 그래서 우리 외가 쪽에는 해마다 김일성이로부터 선물이 또 날아와요, 또 이렇게. 날아오니까 우리 어머니를 잡아가려고 하게 되면 우리 그 이모들 다 처리를 해야 되니까, 그러니까 이제 북한에서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갈 때 부인 쪽으로 만약에 이제 너무 성분이 좋아가지고 간부집이다 그러면 다 강제이혼을 다 시킵니다, 거기에서 일부러.

남자 1 : 그래서 어머니랑 아예 생이별 하시는 거네요?

강철환 : . 그래서 이제 그렇게 생이별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다보니까 이제 어떤 엄마 같은 경우에는 갓난아기를 그냥 떼고 오는 거예요, 그냥.

 

중 략

 

강철환 : 그러니까 80년대, 90년대에 북한을 유지시킨 곳은 일본 조총련이 유지시킨 거예요. 그 당 자금을 거의 다 일본에서 다 빨아갔어요, 그냥. 마지막에 이제 일본 그 신용금고가 다 파산해가지고 빚더미에 오를 만큼 다 끌고 갔거든요. 그런데 그 돈을 이제 계속 가져와야 되는데 이 교포사회가 이제 분위기가 안 좋아지는 거죠, 이게. 내 가족이 다 수용소에 끌려가 있으니까,

여자 1 : 그렇죠.

강철환 : 그래서 보위부가 그거를 김정일에게 보고를 합니다. 보고를 해가지고 일본 조총련 사회가 상당히 분위기가 안 좋으니까 좀 이제,

여자 1 : 풀어줍시다?

강철환 : 풀어주자고, 그래서 이제 돈 때문에 사실은 풀어준 거예요. 그리고 이제 풀려나온 사람들도 일본에 가족이 있는 사람들, 친척이 있는 사람들만 골라가지고 또,

남자 1 : ,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들만 풀어줬네요.

강철환 : . 그러니까 저희는 다행히도 일본에 친척들이 좀 있으니까 그것 때문에 이제 풀려난 거죠.

여자 1 : 그러면 풀릴 때 그 할머니랑 여동생이랑 다,

남자 1 : 가족이 다 생존하고 있었나요?

여자 1 : 다 같이 풀려나간 건가요?

강철환 : 그러니까 우리는 정말 운이 좋게 아버지하고 할머니하고 거의 몇 번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어요, 거기에서 사실은. 넘겼는데 다행히도 죽지 않고 살아나왔어요. 살아 나와서 돌아갔죠, 바로 밖에서.

남자 1 : 그러면 다시 평양으로 이제, 나오셔가지고 평양으로 다 올라가신 거예요?

강철환 : 그러니까 평양으로 간 거는 아니고 여독수용소 바로 옆에, 옆에 이제 여독군이 있는데 여독군으로 이사를 시킨 거죠.

남자 1 : , 아예 평양으로 하는 게 아니라,

강철환 : 평양으로 간 게 아니고,

남자 1 : 그나마 그래도 거기에서 벗어났다는 이미지만 주려고 이제 나왔던 거네요.

강철환 : 그렇죠.

남자 1 : 그러면 그때 나이가 이제 대표님 나이가 20살이 되던 해,

강철환 : 19, 19.

여자 1 : 19, 어떤 느낌이셨어요? 10년 간 거기에서 생활을 하다가 어쨌든 해제? , 뭐라고 표현해야 될까요?

남자 1 : 자유? 그러니까 정말 없는 데에서 조금 얻은 자유감?

강철환 : 그러니까 이게 참 아이러니컬한 생각이기는 한데 수용소에 정이 든다는 말을 하게 되면 약간 이상할 거예요, 사실은.

여자 1 : 아니 10년 살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남자 1 : 미운 정이 들 수도 있죠.

강철환 : 그러니까 정이 든다는 게 나가려다가 보니까 내가 10년 동안 다니던 그 산들이 눈에 갑자기 보이는 거예요, 이게. 그런데 그 산 하나하나가 다 이게 피눈물이 다 배어있는 산들인데 그게 막 정으로 느껴지는 거예요, 사실은 그게. 내가 나오면 다시는 못 볼 산들이기 때문에, 그래서 이제 그 산들 보면서 굉장히 씁쓸한 생각, 뭐 기쁘다는 그런 막 환희가 나올지 알았는데 전혀 그런 생각은 안 들더라고요, 이게. 그래서 이제 밖으로 나왔는데 밖으로 나온 세상이 너무 황홀했어요, 사실은. 그게 여독군이라고 하는 산골마을이었지만 여독수용소에 비하면 거의 천국이죠. 그리고 이제 딱 수용소 밖에 나갔는데 인민보안부 경찰복을 입은 간부가 딱 지나가는데 저희는 90도로 인사를 딱 한 거예요, 거기에서.

남자 1 : , 이 몸에 배어있으니까.

강철환 : 그러니까 이제 옆에 있는 사람들이 너 왜 인사하냐고, 인사하지 말라고 그러는데 우리는 그 자동적으로 90도로 인사하게 돼 있어요, 수용소 안에서는. 그런데 그게 몸에 배어있으니까 갑자기 인사를 하는 거죠.

남자 1 : 티가 나는 구나, 완전.

강철환 : ‘, 인사 안 해도 되는 구나그게 참 기뻤어요, 사실은 저도. 그래서 이제 처음 배치 받은 곳이 여독군에서 좀 떨어진 리, 송도리라고 하는 농촌마을에 저희들 배치하더라고요, 리에.

남자 1 : 가족이랑 같이 안 살고 떨어져서 이렇게 사는 건가요?

강철환 : 가족 전체를 다 거기에다가, 갔는데 그 여독군 송도리라는 그 마을이 참 마을풍경이 예뻤어요, 굉장히. 예쁘고 그 사람들 민심이 너무 좋아가지고, 그러니까 우리가 딱 나왔는데 그 사람들이 다 이제 동병상련이라고 이제 고생했다는 거 알고,

남자 1 : , 그러니까 옛날에도 거기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쪽으로 막 다 풀려나온,

강철환 : 그러니까 그 지역이 다 추방지다 보니까,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이제 처음에 처음 나가니까 그 합숙소에서 아줌마가 그러니까 이밥을 주는 거예요, 거기에서.

남자 1 : 쌀밥을,

강철환 : 쌀밥에다가 이제 두부국을 해가지고 탁 주는데 이거를 내가 처음 먹어보는 거예요, 거기에서.

남자 1 : 10년 만에 먹어보는,

강철환 : 10년 만에 이렇게,

남자 1 : 그러면 그 안에 있을 때 흰밥이라는 건 구경도 못해봤어요?

강철환 : 거의 뭐 구경할 수가 없죠, 거기에서는.

여자 1 : 뭐 드셨어요? 그 안에서.

강철환 : 강냉이, 그러니까 옥수수.

여자 1 : 그것만, 10년 간?

강철환 : . 옥수수만.

남자 1 : 그러다 그 밥을 10년 만에,

강철환 : 그러니까 그 밥에 두부를 딱 보는 순간 , 이게 정말 천국이구나이렇게 생각을 했죠. 그래서 나는 농촌이고 뭐고 여기에서 살아야 되겠다.’ 그 생각을 했는데 갑자기 이제 다른 이제 지역에 있는 저희 친척들이 또 몰려왔어요, 저희 도우려고. 몰려왔는데 저희 큰삼촌이나 이 삼촌들이 와가지고 한번 농장원으로 찍히게 되면 영원히 거기에서 빠져 못 나온대요. 그래서 농장원으로 찍히기 전에 빨리 빠져나와야 된다고, 그래서 이제 여독군에 와가지고 여독군당 책임비서, 조직비서, 보위부장 다 뇌물 줘가지고 빠져나왔죠, 거기에서. 빠져나와서 이제 여독군 소재지에 저희 집을 받게 됐고, 그리고 이제 여독군에 직장을 하나 얻어가지고 거기에서 이제 생활을 시작했죠.

남자 1 : 아니 쉽지 않죠? 그 정치범에 들어갔다가 풀려나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계속 지켜보고 감시하고 보위부분들이, 이동의 자유가 거의 없었을 것 같은데,

강철환 : 그게 이제 그게 여독군 안에 정치범 수용소 출신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거기에. 많이 나와 있다 보니까 그 지역에 있는 보위부나 그 지역에 있는 간부들이 약간 익숙이 돼 있어요, 그게. 그리고 재일교포들이 많다 보니까 돈이 또 있잖아요, 돈이. 돈이 있다 보니까 이 사람들이 관심이 또 있어요. 그래서 마침 저희가 딱 나올 때에는 완전히 거지도 그런 거지가 없어요, 사실은. 다 꾀죄한 옷 입고 나오기는 나왔는데 갑자기 일본에서 친척들이 와가지고,

남자 1 :

강철환 : 옷을 그냥 일본제 옷으로 막 싹 뿌리고 막 그래, 돈 막 하고 나니까 하루아침에 그냥 부자가 된 거죠, 저희 집이 하루아침에. 그러다 보니까 이제 뭐, 뭐 코빼기도 안 보이던 군당 책임비서가 놀러오죠, 그리고 뭐 또 저기 뭐 국가 보위부들, 보위부장도 올라오고, 간부들 다 한번씩 방문하는 거예요, 이렇게. 올 때마다 다 뇌물 또 주고, 그러다 보니까 이제 수용소 나왔지만 하루사이에 그냥 갑자기 이제 돌변을 해가지고 제가 이제 그 수용소 10년 때를 굉장히 빠르게 벗었어요, 사실은.

여자 1 : 되게 지금 들으니까 이렇게 평양에 있다가 훅 내려왔다가 지금 다시 훅 올라가셨어요.

강철환 : . 훅 올라갔어요. 훅 올라갔는데 제가 수용소 나올 때 키가 1m60cm 중반됐었어요, 사실은.

여자 1 : 20살이었잖아요.

남자 1 : 그렇게 작은 키는 아니에요, 북한에서.

강철환 : 작았죠. 내가 지금 거의 70몇이 됐는데, 그러니까 거의 클 나이 다 커서 왔는데 저희 친척들이 와가지고 이제 저희 몸보신 시킨다고 한 달에 한 번씩 개를 잡았어요, 여기에서.

남자 1 : 북한에 또 부의 상징이 개고기잖아요.

강철환 : 맞아요. 그래 가지고 이제 그 여독군에 그 개고기가 되게 맛있어요, 또 거기 함경남도 산골짜기 개니까. 그래서 그거를 한 달에 한 번씩 개를 잡아가지고 개고기를 먹였더니 제가 1년 사이에 10cm가 훅 큰 거예요, 그냥.

남자 1 : 건강이 좋아지니까.

강철환 : . 그러니까 1년 간 잘 먹었더니 그냥 팍 크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나는 다행히도 성장판이 이제 닫히기 전에 나오는 바람에 키가 컸는데 저보다 먼저 나온 한 친구가 있었는데 이 친구는 나이가 22살 때 나왔어요. 그런데 몸이 이제 찌그러져가지고 키가 조그마할 때 나왔거든요. 그런데 걔는 키가 못 컸어요. 그러니까 수용소에서 막 등짐 지고 막 이렇게 살다가 이제 딱 나오니까 키가 이렇게 크지 못하고 이렇게 키가, 완전히.

남자 1 : 대표님 들어갈 때는 10살 때라 그래도 사회적인 분위기나 이런 거는 잘 모르셨을 것 같은데 나오니까 그때가 몇 년도였죠?

강철환 : 그때가 이제 87년도.

남자 1 : 많이 바뀌었을 것 같은데, 사회의 분위기나 아니면 돌아가는 거나 이런 것들이,

여자 1 : 아니면 그 당시 느껴졌을 때는,

강철환 : 그러니까 제일 놀란 게 77년도에는 뇌물 같은 것들이 사실은 없었어요, 거의. 거의 북한 사회가 약간 청렴한 그런 분위기였고, 특히 이제 국가안전보위부나 인민보안부 같은 이제 공안기관의 사람들은 뇌물 같은 거 절대 안 받았거든요, 그때는. 그런데 딱 10년 후에 나와서 보니까 뇌물 없이는 한 발자국도 갈 수 없다는 거예요, 뇌물 없이는. 그리고 뇌물을 주는 순간 모든 게 다 해결돼요, 그냥. 그러니까 저도 이제 농촌에 갈 뻔했지만 뇌물 딱 주니까 바로 농촌에서 나왔죠. 그리고 이제 직업을 고르는데 돈을 주니까 또 좋은 직업을 고를 수가 있어요.

남자 1 : 어떤 직업을 선택하셨나요?

강철환 : 그러니까 이제 처음 나와 가지고 이제 뭐 거기 우마사 사업소라고 달구지 끄는,

남자 1 : , 달구지 소를 쓰는,

강철환 : . 거기 가라 그래서 거기를 가서 일해 보니까 너무 한심한 거예요, 그게. 그래 가지고 이제 다시 돈을 주고 편의봉사위원회라고 또 있어요, 이게 또.

여자 1 : 그거는 어떤 일,

남자 1 : , 이렇게 매점에서 이렇게 뭐 나눠주는 건가요?

강철환 : 각 군마다 편의봉사위원회라는 게 있는데 이거는 이제 군 단위로 이제 인민들의 생활편의를 보장해주는 단위죠. 그러니까 뭐 신발부터 뭐 생활필수품들을 갖다 만들어주고, 또 이제 뭐 생필품 공급해주는, 그러니까 되게 쉬운 직종이죠. 인기가 좋고, 거기에 이제 자재지도원으로 제가 이제,

남자 1 : 자재지도원으로?

강철환 : . 스카우트 돼가지고, 돈이 있으니까. 그래 가지고 이제 그 자재지도원이라는 명칭을 하나 따고 그때부터 이제 전국여행을 다니기 시작했죠.

남자 1 : 전국여행,

여자 1 : 여행을 다니셨다고요?

남자 1 : , 그러니까 전국에서 그 자재를 떼어 와서 사람들한테 공급을 해야 되니까, 직업상. 여행이 아니라 직업으로 다니신 거네요.

강철환 : . 그러니까 제가 역마살이 있는지 좌우간 이제 수용소 나와서 1년 후부터는 전국을 누비면서 계속 다녔어요, 그냥.

여자 1 : 출장 다니신 거네요.

남자 1 : 출장으로 다니신 거죠? 물론, 누가 보면 놀러, 돈 주고 놀러 다니신지 오해하시겠어요.

강철환 : 그러니까 좌우간 뭐 주로 평양 쪽으로 많이 가기는 갔지만 어쨌든 전국에 안 가본 데가 거의 없을 만큼 거의 막 여행을 많이 다녔죠.

남자 1 : 그때까지는 이제 가족분들은 다 여독에서 생활을 하신 건가요?

강철환 : 그러니까 막내삼촌은 북한에 리과대학이라고 여기 한국으로 말하면 카이스트죠, 리과대학이. 그 리과대학에 생화학분야에 권위자였어요, 저희 막내삼촌이. 그래 가지고 리과대학 10점 채운, 그러니까 만점 채운 우등생은 국가가 다 채용을 사실 쓰게 돼 있대요. 그런 규정이 또 있더라고요. 만점 채운 우등생은 어디에 가든 다 쓰게 돼 있대요. 그래서 우리 삼촌이 거기에 만점 채운 거의 천재 같은 사람이었는데 그러다 보니까 저희 막내삼촌이 이제 수용소 나온 다음에 국가과학원 친구들하고 연락을 해가지고 거기 들어간 거예요, 사실은 또 다시. 그래서 이제 과학원으로 들어갔고 나도 이제 과학원에 가려고 사실은 준비를 하고 있었죠. 그래서 준비를 하면서 제가 이제 북한에 김책공대라는 대학이 있죠? 그 대학에 누가 넣어준다 그래 가지고,

남자 1 : 일류대학교죠, 한국으로 말하면 진짜.

강철환 : . 넣어준다 그래 가지고 내가 어떻게 갈 수가 있냐?” 했더니 돈만 내면 간대요.

남자 1 : 80년대에 북한 사회도 썩고 있었네요.

강철환 : . 돈만 내면 간다 그래 가지고 그래서 얼마면 되냐 했더니 10만엔.

여자 1 : 10만엔?

강철환 : , .

남자 1 : 일본 돈인 거죠?

강철환 : . 10만엔만 내면 붙일 수 있다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나는 김책공대 가려고 사실은 공부를 죽기 살기로 했어요, 그때.

남자 1 : 기부입학제네요, 10만엔.

강철환 : 그래서 이제 저희 삼촌의 친구들 동원해가지고, 거기 김책공대 교수들 다 있잖아요, 또 거기. 그래서 교수들 다 삶아놓고, 너 적당한 점수만 나오게 되면 대학에 붙여준다고, 그렇게 이제 공부를 하다가 탈북을 했죠.

남자 1 : 아니 그러면 대표님 자재지도원 그거를 하면서 평양으로 왔다 갔다 하시면서 뭐 어머님은 한번 안 찾아뵀나요?

강철환 : 어머니 뵀죠, 내가 가서 10년 만에. 되게 이제 가슴 아픈 스토리이기는 한데, 그러니까 이제 딱 10,

남자 1 : 알아보시던가요, 어머니가?

강철환 : 당연히 알아보죠. 알아보고 나도 다 알아보는데 나는 처음 만나는 순간 눈물이 막 쏟아져 나올 줄 알았어요. 그런데 어머니는 막 눈물 흘리면서 나 부둥켜안고 우는데 저는 눈물이 안 나오더라고, 왜 그런지.

여자 1 : 10년 만에 뵈었는데?

강철환 : . 그러니까 이제 이게 뭐냐면 그때 내가 오해한 게 왜 그 우리를 놔두고 혼자 떨어졌냐,

여자 1 : , 왜 버렸냐,

강철환 : .

남자 1 : 저도 그 생각했습니다.

강철환 : 내가 그것 때문에 사실은 이제 눈물이 안 나오더라고요, 그때는.

남자 1 : 원망스러움이 좀 더 많았던 거,

강철환 : 그렇죠.

남자 1 : 어머니는 어떻게 생활하고 계셨나요, 그 당시에?

강철환 : 그러니까 뭐 결혼 같은 건 안 하고 혼자 살고 있더라고요. 이렇게 살고 있는데 몸이 되게 안 좋았을 거고, 그때도. 그런데 이제 나중에 내가 이제 어머니 만나고 상당히 좀 눈물이 나올 것 같은데 눈물이 안 나왔어요. 옆에 동생 보니까 동생도 눈물이 안 나오더라고요, 얘도. 그래서 이제, 이제 어머니는 계속 굉장히 이제 눈물을 크게 흘리시고 막 이렇게 통곡을 하시는데, 그래서 이제 그렇게 만나고 이제 이모들이 와서 막 맛있는 거 해주고 잘 도와줬는데 뭔가 반갑지가 않았어요, 사실은 그때. 만나서도 반갑지 않았었는데 나중에 다니면서 다시 이제 대화를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내가 마음이 풀리기 시작했어요.

여자 1 : 오해가 풀리고,

강철환 : . 오해가 풀리고, 그러니까 이제 옆에 있는 이제 그 어머니하고 되게 친했던 한 분이 계셨는데 그분이 이제 김책공대 교수였어요, 그분이. 교수였는데 이제 나를 불러가지고 설명을 해주더라고요, 그러니까 가려고 했는데 못 갔다고.

여자 1 : , 그분이 오해를 풀어주셨군요.

강철환 : . 그래서 이제 내가 그때부터는 이제 오해를 풀고 용서를 했죠, 그때 사실은. 그런데 그 전까지는 사실은 되게 원망을 많이 했어요.

남자 1 : 가슴 아픈 생이별 당하시고, 그러다가 이제 가족 그렇게 원하시고 그리워하던 가족을 다 재회를 하고 만났는데 왜 갑자기 탈북을 하셨는지가 너무 궁금합니다.

강철환 : 제가 이제 그때 1920살 정말 이제 억눌려 있던 그런 이제 그런 압력이 막 터지는 순간이었죠. 그러니까 이제,

남자 1 : 억울함이 이제 폭발하는,

강철환 : 그러니까 억울함보다는 갑자기 이제 눈이 막 뜨이면서 다른 세계가 막 보이잖아요, 이렇게. 그러면서 이제 많은 친구들을 막 사귀면서 막 이렇게 하다 보니까 그 수용소 안에는 이제 저 같이 어릴 때 간 친구들도 많았지만 다 커서 온 친구들도 많았어요. 그러니까 이제 해외 유학 갔다가 온 친구들, 또 이제 중앙당 간부의 자식들도 많이 왔었고, 그러니까 평양에서 온 애들이 많다 보니까 다들 이제 반정부 같은, 반정부 체제의 어떤 그런,

남자 1 : 불신을 품은 거군요?

강철환 : . 생각을 가진 사람들, 이런 친구들이 다 주변에 많았어요, 이게. 그러다 보니까 나도 이제 감정이 안 좋은 터라서 이 친구들과 함께 반정부 그룹을 만들어 가지고 반정부운동까지는 아니지만 그 체제를 반대하는 그런 활동을 했죠.

남자 1 : 북한에서 그런 활동을 하셨다고요?

강철환 : . 했죠.

남자 1 : 안에서, 안에서요?

강철환 : 아니요, 나와서.

남자 1 : 나와서 다시 연락을 해서 만나서요?

강철환 : 만나서 이제 친구들끼리 만나가지고,

여자 1 : 그게 가능해요?

강철환 : 그러니까 가능하지는 않지만 그때 그런 거 가능했어요, 저희 때.

남자 1 : 이거 약간 저는 못 믿겠어요. 거짓말 같아요, .

여자 1 : 그러니까요.

남자 1 : 그중에 1명이 또, 또 가서 밀고하고,

강철환 : 그게 이제 왜 가능하냐면 우리는 10년 간 생사를 같이 했어요, 애들끼리.

여자 1 : 그 여독수용소 안에서.

강철환 : . 수용소 안에서. 그러니까 생사를 같이 한 아이들은 다 신뢰가 있어요.

남자 1 : 그렇죠.

강철환 : . 너네는 보위부에 신고 안 한다는 신뢰가 다 있어요. 그래서 우리끼리 만나게 되면 김정일이 욕을 막 다 해요, 그냥 거기에서. 김정일이 개새끼라고 욕도 막 하고, 그러니까 이런 말을 하게 되면 이런 같은 애들은, 이 친구들은 이제,

남자 1 : 저는 가서 바로 밀고하죠.

강철환 : 절대 이해 못하죠.

남자 1 : 바로 밀고해요.

여자 1 : 밀고라니요, 이보세요.

남자 1 : 그 나라에 있으면 그게 맞는 겁니다.

여자 1 : 아니 그런데 실제로 저도 이제 공부를 하면서 들으면 그 어떤 뭐라고 해야 되나? 모임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사실 금지,

남자 1 : 불법이죠.

여자 1 : 아닌가요?

강철환 : 제가 그래서 보위부에 몇 번 끌려갔었어요. 왜 끌려갔냐면,

여자 1 : 너무 당당하게 말씀하시면서,

강철환 : 우리 이제 너무 친구들이 많이 오니까 담당 보위부 지도원이 저한테 하는 말이 너 애들 묶어가지고 뭐 하려고 그러냐고, 그러니까 나는 너무 그게 생각이 아주 웃겨가지고, “아니 친구들이 많이 모이는데 내가 그거를 뭐 한단 얘기요? 솔직히 말해서.”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그런 것 같아요, 보니까 또 내 본새가.

남자 1 : , 정곡을 찌른 거예요, 보위원이?

강철환 : 아니 내가, 내가 좋아가지고 친구들이 많이 오는데 내가 친구들 오지 말라고 그러냐고,

남자 1 : 그렇죠.

강철환 : 그런데 이제 보위부 직원이 하는 말이 그렇게 많이 모이지 말래, 나보고. 친구들 오게 되면 다 내보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