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순 녹취록(제283광수)
페이지 정보
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0-11-14 14:55 조회491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김영순 녹취록(제283광수)
◎녹음순번-#24 (파일명:24 [몰랐수다 북한수다]209회 - 김영순 여사, 북한 정치범 수용소, 요덕 수용소, 장진 광산, 탈북자, 북한, 1호 범죄자, 성혜림 친구)
◎녹음일시-2016. 12. 15.
◎대 화 자-김영순, 안찬일, 장원재
《 전 략 》
김영순 : 딱 이렇게 말했어. “가보십시오.” 그래서 내가 이랬어. “저는 성혜림이 말 한 것도 없습니다. 알지도 못합니다.” 이렇게 거짓말했어요. 그렇게 하고 나왔어요. 그렇게 하고 집에 갔는데 일주일 동안 또 이거 무슨 또 여독수용소 가는 지령이 안 떨어지나 가슴이 덜덜덜덜덜, 저요 여독수용소에서 나와 가지고는요 하루에 한번씩 꼭 울었어요, 오후에. 그렇게 하고 입안에 이거 다 헤져서 밥알을 모래알 씹는 것 같았어요. 그렇게 하고 문소리만 나면 심장이 두두두두 떨려서, 그것이 중국에 나와서 약 한 톨 안 쓰고 다 떨어졌어요. 그렇게 해가지고89년도 반탐국장이 왔다 간 다음에 탈북을 결심했어요. 그런데 도대체 어디로 해서 어떻게 오는지 이거를 어떻게 알겠어? 함흥에서. 함흥에 내가 19년 살았거든. 바느질 했어요, 양복점에 다니다가. 출당되니까 어디 가 지도원 한 자리도 못하잖아. 그래서 윤양자라는 귀국동포한테 재단에서부터 가공까지 배웠어요. 그래 가지고 저 바느질 잘해요. 멋쟁이 옷만 했어요. 돈 잘 벌었어요, 19년 동안에. 그래서 인민반장을 하면서 반탐국장이 왔다 간 다음에 반장을 시키더라고요. 통장, 인민반장을 시키더라고 보위지도원이. 그래서 인민반장을 했어요. 우능1동 18반장을 했거든요. 그래 가지고 야, 정말 그때, 그래 가지고 탈북을 시도했는데 도무지 막 살았으면 국경이 어디가 붙었는지 … 몰라요. 지금도 못 해요, … 딱 시간 지키라면 지키고 그런 사람이에요. 그래 가지고 그때 이제 그거를 10년이 걸렸어요. 89년도에 왔는데 2001년도 2월 1일에 탈북했으니까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나 이거예요.
안찬일 : 주도면밀하게,
김영순 : 예. 그래서 그 다음에 돈을, TV 팔아가지고 돈을 준비해가지고 다 여행증을 1,000원 주고 사고, 노동자로 우리 아들하고, 그렇게 하고 나는 노무자 가족으로 해서 남양까지 여행증을 떼었는데 여행증으로 못 나오겠더라고, 보위지도원들이 다 서있기 때문에 국경 연선이라서, 그래 가지고 뒷길로 철길로 뒤로 쫙 해서 도망했어. 침대권도 300원 주고 야매로 떼고, 그렇게 해서 안전하게 남양까지 와가지고 그 다음에 밤에 한 상, 보위지도원 돈 500원 주고, 또 한 상 잘 차려 먹이고 거기 밤 12시에 그 보위지도원이 지키고 … 2월 1일이니까 땅땅 언성, 남양 언성 딱딱 얼었을 때죠. 도문리 얼었을 때, 그래서 도보로 한 발, 눈이 왔다 얼고 눈이 왔다 얼고 해서 그래서 한 발 내디디면 와사삭, 한 발 내디디면 와사삭 하는 걸 그저 … 그렇게 하고 최고로 입었어요. 10호 상점 마후라에다가, 그 다음에 이라크 동복에다가, 그 다음에는 중국 이제 뭐야,
장원재 : 장화?
김영순 : 장화 그렇게 신고, 그렇게 하고.
장원재 : 처음부터 한국으로 오실 생각을 한 겁니까? 아니면 일단 북한만,
김영순 : 오실 생각, 아니 한국으로 오려고 마음먹었어요.
안찬일 : 북한만 벗어나려고,
김영순 : 북한만 벗어나려고 생각 안 했어요. 중국이라는 거는 안 돼요. 그래서 벗어나려고 하는데 중국에 내가 2년 6개월 있었거든요. 2년 6개월, 돈 벌었어요. 파출부, 식당에 근무했어요. 나이 속이고, 65세에 나왔거든요. 2년 6개월 동안 59, 60이라고 그래도 다 곧이듣더라고, 팔팔했으니까. 그렇게 하고 여독수용소에서 나온 지 뭐 오래지 않아요. 79년도에 나왔으니까, 그때로부터 뭐 사회에 나왔으니까 뭐 자기를 가꾸는 건 되잖아요. 그러니까 엄청 젊었죠. 그래서 최고의 용광로를 거쳤기에, 저는요 여독수용소가 최고의 인생대학이라 그럽니다. ‘최고의 인생대학을 졸업했기에 오늘의 내가 있다.’ 이렇게 생각해요. 그래 가지고 광산 나왔죠. 탈출했죠. 그래 가지고 그 다음에는 여독수용소에서 19년 바느질하다가 2월 1일 반탕국장에, 그래서 제가 여기 나와서 절대 김정남이는 후계구도 못한다. 80년대 초반부터 제거작업을 했어요, 북한이. 성혜림 … 그거를 탈북자들이 알아야 돼요.
장원재 : 어떻게 보면 김영순 여사 여독수용소 간 것도 김정남 후계 제거작전일 수도 있겠네요.
안찬일 :그렇죠. 그 일환일 수 있었겠네요.
김영순 : 그래서 여기 와서 절대로 후계구도 못 잇는다. 다 정남이를 찍더라고, 뭐 강명도를 비롯해서 그렇게 하고 다 정은이, 정은이는 이제 얼마 못한다 그러더라고요.
안창일 : 그렇죠. 그렇죠.
김영순 : 1년 가면 죽는다 뭐 그러는데 저는 그렇게 안 했죠. 그렇게 해가지고 그저 어쨌든 대한민국에 올 수 있는 기반을 닦았다라고 그 여생을 하니까 맘이 편안해요.
장원재 : 북한에 김씨 왕조를 어떻게 하면 빨리 붕괴시킬 수 있습니까?
2020.11.14. 지만원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