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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아(제286광수) 녹취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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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0-11-14 20:17 조회16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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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아(286광수) 녹취록

 

 

녹음순번-#27 (파일명:27 (ENG SUB)몰랐수다 북한수다252- 김정아 대표, 북한 열병식, 여군, 입양, 탈북민, 북한인권법, 북한군, 통일맘연합회)

녹음일시-2017. 5. 20.

대 화 자-김정아, 장원재, 김주성

 

전 략

 

장원재 : 오늘의 초대손님은 통일맘연합회 김정아 대표입니다. 안녕하세요?

김정아 : 안녕하세요?

장원재 : 북한에서는 17살 때부터 27살 때까지 여군에 복무했습니다. 병사 3, 군사대학 1, 장교 3, 그리고 3년은 군부 소속이었고요.

 

중 략

 

김정아 : 그러니까 97년도에 저희 오빠도 길거리에서 꽃제비 돌아가신 게 97년도였거든요. 군사대학 졸업하고 고향에 오니까 오빠가 길거리에서 밥 빌어먹는데,

 

중 략

 

장원재 : 북한에서만 2번 입양됐다고 그러셨잖아요.

김정아 : 그렇죠.

장원재 : 어떤 사연입니까?

김정아 : 북한에서 저를 낳아주신 부모님이 기를 수 없는 상황이어서 태어난지 3일 만에 바로 입양이 됐습니다. 그리고 그 입양하신 부모님들이 아버지는 당일꾼이었고 어머니는 청진백화점 부지장 일하면서 좀 부유한 집에서어릴 때는 그 부모님이 또 친부모인지 알고 자랐죠. 그런데 아버지가 12살 때갑자기 폐농증으로 돌아가시고 어머니까지 아버지 병간호하다가 어머니까지 처녀 때 앓던 늑막이 또 도지면서 늑막암으로 돼 가지고 아버지 돌아가신지 3년 제사 딱 끝내고 3개월 만에 어머니까지 돌아가셨어요. 그리고 갑자기 고아가 됐죠. 그런데 돌아가신 부모님한테 친아들이 있었어요. 그리고 그 오빠는 나를 친동생, 친오빠로 나는 알고 있었는데 그 오빠는 내가 입양된 아이라는 걸 오빠는 6살 때 나를 입양했으니까 오빠가 기억이 그대로 살아있는 거예요.

(: 15세에 고아가 됐고, 이 때 오빠는 21)

 

중 략

 

김정아 : 친척들이 결국 돌아가신 부모님 재산이 좀 있었으니까 그 재산을 뺏기 위해서 나를 강제입양을 보내, 오빠 모르게 강제입양 보냈고 그 입양 보낸 사람이 다른 사람도 아닌 우리 오빠 부대,오빠가 부모님 돌아가시기 전에 군대 나갔거든요. 그런데 아버지가 힘이 있다 보니까 청진에서 경성에서 군사복무 했으면 진짜 힘 있는 거잖아요.

김주성 : 집 가까운 데에서.

김정아 : . 그것도 청진에서 경성 그 혁명 사적지라는 데가 있어요. 김정숙 혁명사적지, 그 사적지 근무 서는 경비대였어요.

김주성 : 편하지.

김정아 : 진짜 그 정도면 힘 있는 집이었거든요. 그러니까 거기에 군대 나가다 보니까 저는 오빠 부대에, 걸핏하면 오빠 부대에 왔거든요.친척들이 뭐라고 구박하고 그러면, 그리고 오빠 부대 앞에서 오빠 근무 서고 돌아올 때까지 그 부대 앞에서 계속 이렇게 서서 울고 이러면 부대 분대장들 와서 데리고 가도 이랬는데 그 문제가 결국 보고가 돼 가지고 오빠 부대 정치요원이 나를 입양하겠다고 나선 거예요. 그런데 그 입양하기 딱 나설 때 내 동의 하나도 받은 것도 없고 오빠 동의 받은 것도 없어요. 그냥 친척들하고만 얘기하고 어느 날 아침에 내가 학교 갔다 딱 오니까 갑자기 나보고 입양 가래요. 그게 몇 살이었냐면 17, 5개월 있으면 학교 졸업하고 제가 성인이 되거든요.그러면 그 집이 내 명의로 들어오거든요. 그렇게 되면 그 집과 재산 자기네가 뺏지 못하니까 당장 학교 졸업하기 전에 나를 강제로 입양을 시킨 거죠. 하루아침에 그냥 학교 갔다 오니까 갑자기 군대 애들하고 차 와있고 내 짐 고모랑 할머니랑 이미 다 싸놨고 입양 가래요. 입양, 그 다음에 , 잠깐만 내가 화장실이라도 갔다 오겠다.” 했는데, 어릴 때부터 내가 도망을 정말 잘 쳤거든요. 유명하게 도망쳤어요. 9살 때 평양 주체사상탑 구경하겠다고 청진에서 집에서 혼자 내가 평양 와서 구경하고 돌아간 애거든요.길눈이 상당히 밝고 한번 간 길은 내가 반드시 돌아오거든요. 그거를 아는 고모로서는 나를 바깥에 안 내보낸 거죠. “얘를 내놓는 순간 무조건 도망친다. 얘는 도망치는, 도망치는데 유명한 애다.” 이래 가지고 군대들이 그 집 앞에서 화장실도 못 가고 그냥 차에다 실어가지고 왔고 그 집에 와서 바로 다음 날 기자들이 들이닥쳤고 뭐 입양된 기분이 어떠냐, 아니 갑자기 납치돼 온 사람이 무슨 기분이, 어떤 뭘 대답하냐고, 그리고 한 달 만에 완전히 김정일 친필서한 감사문이 내려왔다고, “훌륭한 당일꾼입니다.” 1993425일 김정일 친필서한 훌륭한 당일꾼입니다.” 서한이 내려왔고 양아버지는 그걸로 출세를 하기 시작했죠. 그래서,

(: 15세때 1차 양부모가 다 사망해 고아가 됐고, 1차 양부모에게는 21세의 적자 아들이 있었고, 양자 딸이 있었는데 어째서 유산이 의붓딸에게 갈 수 있는가? 1차 양부모가 북한에서 고위직이면 그들의 집도 당 소유일터인데 어떻게 자식들에게 상속될 수 있는가? 김정아가 17세에 제2차 입양이 됐다면 15세에 17세까지 3년 동안 당이 돌보지 않고 고아로 방치했다는 말인가? 2차 입양 연도는 1976+17=1993, 이때는 고난의 행군시기 2년 전임)

 

장원재 : 부모 없어진 아이들을 거둬줬다고?

김정아 : 그렇죠. 그런 강제입양이고 나 동의 아무 것도 없고 나는 집에 가겠다고 난리 치고, 그 속에서 오빠가, 오빠가 결국 내가 도망치게 되면 오빠가 여기에서 압력 받을 거잖아요. 오빠 때문에 내가 더는 도망칠 수 없고 그냥 눈물로 거기에서 산 거죠. 그리고 양아버지가 거기에서 감사문 받고 내가 탈북할 때 양아버지가 사단 정치요원까지 했어요.

김주성 : 그러니까 그 당시에 사회주의 미풍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면서,

 

중 략

 

장원재 : 그 오빠랑은 지금 연락되십니까?

김정아 : 오빠가97년도에 군사대학 졸업하고 왔을 때 길거리에서 꽃제비로 돌아가셨어요.

김주성 : 결국 그 오빠도 고아가 된 셈이네.

김정아 : 그러니까 오빠가 군사복무 10년 한 분이고 폐농양이라는 진단을 받고 의가사 제대됐어요. 그랬으면 적어도 양아버지가 돌봐줘야 되잖아요. 병간호까지는 원치 않아요. 그 사람이 먹고 살 수 있는, 잠자리를 할 수 있는 보금자리라도 해줄 수는 충분히 있는 직책이었는데 오빠를 그냥 길거리에 내쫓은 거죠. 그런 걸 모르고 나는 또 오빠가 뭘 잘못했는지 알고 오빠를 찾아갔을 때 오빠가 길거리에서 밥 빌어먹기 때문에, 그때 당시 우리 북한에서 그런 게 있었잖아요. 꽃제비 집안 수치스러움, 그것도 아버지가 청진시 신안구역에서 한다 하는 당일꾼이셨고 엄마가 청진백화점 부지장에 두 분 다 그 신안구역 우리 고향 땅에서는 두 분 다 정말 존경하시는 분, 돌아가셨지만 돌아가신 후에도 존경받는 분들이었어요. 졸업하고 어깨 별 달고 고향에 딱 들어가니까 보는 사람마다 나 붙잡고 우는 거예요, 길바닥에서. 그래서 아, 내가 별 달고 온 게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나서 자랑스러워서 우는가 보다 했죠. 다음 날 집 앞에 나가니까 오빠가 이모 집에 갔었는데 다음 날 오빠가 길거리에서 밥 빌어먹고 있는데 그 광경을 보고 나는 무너졌죠. 그때 오빠를 동정한 것이 아니라 오빠를 이해를 못하고 그때 오빠한테 다퉜죠. 니 친아들이라며?” 니 친아들인데 어떻게 돌아가신 부모님 얼굴에 이렇게 먹칠할 수 있냐고, 밥 빌어먹어도 고향 땅 떠나서 밥 빌어먹으라 그랬어요. 그리고 그때 오빠 뺨을 때렸죠. 그리고 오빠가 그래 내 죽으마.” 할 때 그래 차라리 죽어라.” 그랬어요.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나는 눈물 흘리며 청진을 떠났고 부대에 와서 두 달 동안, 그때 97년도에 2,000원 돈이면 큰돈이잖아요. 2,000원 돈을 내가 마련했어요.왜냐면 오빠의 꽃제비 상황을 개조할 만한 돈이 필요했고 오빠를 그 청진에서 떠서 외갓집이라는 이런 산골 농촌에서는 적어도 농사일만 하면 굶어죽지는 않거든요. 그러니까 거기에다 데려다주려고 나는 생각한 거죠.

 

중 략

 

김정아 : 그 스트레스가 장난 아니었어요. 그래서 그 연애하던 그 사람하고 고향에 가자 이래서 그 사람하고 같이 문덕에 고향에 갔고, 그러면서 시집가는 걸로, 그러면서 제가 결국 10년 만에 겨우 군부에서 총하고 무기를 거기에서 겨우 놓을 수가 있었죠.

김주성 : 빠지기 위해서 결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 소리네요?

김정아 : 내가 나가려고 하면 당에서 준 임무인데 당원이었고, “당에서 준 임무인데 니가 이거를 해야지.” 이러면서 정치요원이 압박을 해요. 당원인 입장에서는 그거 빼도박도 못해요. 그거를 잘못하게 되면 나는 반역이 돼요. 그러니까 거기에서 자연스럽게 빠질 수 있는 게 첫째로 건강상 문제, 두 번째가 결혼이거든요. 그런데 건강상 문제는 부대에서 계속 돌봤으니까 내가 할 말이 없는 거예요. 결국 결혼밖에 없는 거죠. 그래서 결혼으로 해서 문덕으로 시집가면서 내가 거기에서 온전히 발을 뽑을 수가 있었던 거죠.

장원재 : 그래서 아이 하나 낳고 두 번째 아이를 임신했는데 남편의 폭행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 왜 때렸어요?

김정아 : 북한은 원래 가정폭행이 심합니다. 그런데 그 심한 정도가 사람들이 인식을 못해요. 이것이 무엇이 잘못됐는지, 그리고 저희 남편도 그때 그 폭력을 딱 하면서 내가 임신 7개월 때 그때 배 맞았는데 결국 가정살림으로 해서 술을 사오라 했는데 내가 술을 안 사왔거든요. “쌀이 없다. 당장 출산해야 되겠는데 집에 식량이 바닥이다. 그런데 어떻게 술 사오냐?” 이렇게 해서 싸움이 났는데 대한민국에서 보면 뭐 이 말도 안 되는 일이냐고 하잖아요. 그런데 북한, 그것이 바로 북한입니다. 그렇게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게, 그런데 그때에도 내가 맞고 막 통증으로 데굴데굴 구르니까 바빠서 지가 한다는 소리가 내 때려도 배는 안 때리느라고 조심했는데그러니까 이게 북한남자들의 대처방법이에요. 그러니까 그것이 잘못됐다는 걸 생각 못하고 내 그래도 배는 안 때렸다고 주장을 하는 거예요. 몸 어딘가 그 스트레스 받는 순간에 배속에 아이가 함께 다친다는 걸 생각을 못하는 거죠. 결국 그때 그 조산으로 나온 아이가 까무라치는 병 있잖아요. 그래서 태어난지 3일 만에 입술이 파랗게 되면서 까무라치는 걸 내가 막 울면서 심장 두드리고, 우리 북한에 지압법 많잖아요. 발바닥 지압법을 제가 썼거든요. 그런데 애가 거기에 간신히 살아났어요. 그런데 엄마들은 알잖아요. 자식 낳게 되면 , 이 아이가 오래 못 살겠구나.’ 병든 자식일수록 더 잘 압니다. 그래서 , 아이가 얼마 못 버티겠구나했는데 그래도 아이가 살아있는 동안은 남편에 대한 원망을 뒤로 미뤘어요. 그런데 아이가 정작 죽은 다음에는 이게 정신이 돌더라고요.

장원재 : 몇 살 때 그러면?

김정아 : 열 달 때, 열 달 못 넘기고, 그 아이가 죽기 전에 어느 정도 8개월 지나서부터 애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군병원부터 갔고 군병원에서 도병원으로 갔는데 병 진단을 못 내리더라고요. 그리고 이 아이 병 진단을 받기 위해서는 평양산원에 가야 된다고 그때 권고를 받았어요. 그래서 평양산원에 가려면 그 대기순위를 기다리는 게 1년이 걸려요. 그런데 그거 기다리면 애가 죽어요. 그러니까 엄마 입장에서 어쩌겠어요? 결국 군복 입었을 때 그 군인정신 다시 발달이 된 거죠. 평양으로 불법으로 애를 업고 들어가서 평양산원을 경비원들 뚫고 들어가려니까 경비원들 못 들어가게 하더라고요. 평양산원 주위를 3일 동안 돌면서 눈물 참 많이 흘렸습니다. 하수구를 통해서 들어갈까, 변기를 통해서 들어갈까, 철장, 바닥 땅을 파서 들어갈까, 별 생각을 다 했는데 이게 콘크리트 바닥이니까 그게 형성이 안 되더라고요. ? 평양 시내니까. 결국 3일 만에 포기하고 돌아오는 길에 애가 잔등에서 죽었는데 죽은 것도 몰랐죠. 이렇게 푹 뒤집어썼으니까, 그런데 애기를 업으면 이 잔등이 적어도 따뜻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잔등이 차더라고요. 그러니까 이게 뭐지?’ 하고 갑자기 딱 애를 내려 보니까 이미 얼굴이 다 파랗게, 그런데 그 순간을 잘 지켰으면 또 살릴 수 있었는데 그거를 잔등에 업어 있었으니까 못 지킨 거죠. 그래서 길바닥에 그냥 맨손으로 강변에다 애를 묻었는데 그 다음부터 이 정신이 돌더라고요. 남편을 죽여야겠다는 생각, 그러니까 내 몸에 난 내 자식은 결국 여자들은 내 살이나 다름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그때마다 그 내가 집은 흉기 안에 계속 우리 북한 딸이 보이는 거예요. 그 딸을 위해서 적어도 그 딸한테 비극적인 부모는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이혼을 결심하고 이혼하자 할 때 우리 남편이 저한테 무릎 꿇고 빌었어요.

장원재 : 그러면 그 폭행은 신혼 때부터 시작된 겁니까?

김정아 : 원래는 폭행을 안 했던 사람이에요. 그런데 제대, 그러니까 연애 때도 전혀 없었고 신혼 때도 전혀 없었어요. 애를 출산한 이후에 그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 농촌지역에서 내가 여군 장교 출신이고 남자는 하전사 출신이에요. 둘 다 당원이에요. 사회적 직위가 내가 솔직히 더 높거든요. 장교였기 때문에, 그러니까 사회에서 이 주변에 사회의 흐름이 야 너 마누라한테 잡혀 살지 않냐?” 이렇게 계속 옆에서 속닥거리는 거죠. 그러니까 예로부터 명태하고 마누라는 두드려 패라 했다.” 이런 말을 많이 주입을 받으면서 사람이 변화되더라고요. 그러면서 사람이 변화돼서 결국 나중에 그 끔찍한 사건 저지르고 나중에 울면서 나한테 빌었어요. 제발 잘못했다고, 자기 잘못을 아니까. 그런데 나는 이미 마음 돌아선 거 어떡해요? “나 당신 잘 때 보면 나 당신 죽이고 싶어. 부엌에 나가서 하루에도 몇 번씩 내가 칼 들어. 나 그러기를 바래?” 이러고서 마지막에 끝내 이혼을 했는데 딸을 데리고 나오고 싶었죠.

 

중 략

 

김정아 : “우리한테 고마워해라이겁니다. 왜 고마워해야 되나? 중국에 넘어가는 순간 중국에 어딘가로 팔려갑니다. 그런데 돈이 없는 사람들 잘못 팔리게 되면 갱단이라든가 노래방이라든가 성매매장에 팔려갑니다. 그러면 인생 제대로 망가지겠죠.

장원재 : 북한여성들,

김정아 : .

김주성 : 사창가, 사창가.

김정아 : 그것을 가운데 그래도 거기 안 가게 잡는 것이 지금 농촌 총각에게 일반 가정집에, 정상적으로 가정생활이라도 할 수 있게 보내주는 사람들이 브로커였어요. 그러니까 그 사람들 입장에는 니네가 그런 갱단이나 성매매장에 팔려가는 거 우리가 가운데에서 막아주는 거야. 우리한테 고마워해야 해.” 이겁니다. 인신매매를 하면서, 그러면 그런 집에 가서 저 같은 경우는 거기에 팔려갔을 때 당시에 거진 고열로 팔려갔는데 팔려갈 때 배속에 아이가 있는 거 몰랐거든요. 그런데 한 달 만에 고열 치료가 다 나았고 이랬는데 어느 날 내가 개살구를 먹으면서 딱 보니까 아, 이게 큰딸 임신됐을 때 개살구를 그렇게 먹었거든요. 그래서 , 이게 뭐야? 병원 가자.’ 해서 병원 가보니까 배속에 애기가, 100일짜리 애기가 들어가 앉아있는 거예요. 시집에서 나오기 전에 임신된 거죠. 그래서 이 아이 떨궈야 된다.’ 이러고 집으로 딱 왔는데 누가 벌써 공안에다 고자질을 했더라고요. 병원에서 바로 고자질을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북한 여자가 온 지 한 달도 안 돼서 중국 말도 하나도 모르는데 배속에 북한 애기까지 임신돼서 왔다. 이거 북송해야 된다.” 이렇게 얘기를 했더라고요. 공안에 그날 밤으로 반바지 바람에 러닝 바람에 실내화 신고 그날 밤으로 공안까지 끌려 올라갔을 때,

 

중 략

 

김정아 : 나를 살리기 위해서, 결국 거기에서 역전승이 됐고 이 사람들이 막 임산부인데 막 자해시도 하고 이러니까 자기네가 막 너무 당황해서 얼굴이 사색이 돼서 난리도 아니죠. 그러면서 적어도 임산부인데 왜, 너 애 배 속에 애기를 생각해라.” 이 사람들아 지금 내가 죽게 생겼는데 내가 어떻게 배속에 애기를 생각하겠냐고, 당신들도 지금 병 주고 약 주는 것도 아니고 지금 뭐하는 거냐고, 지금 이채로 북송당하면 죽게 되는 거 뻔히 알면서 북송하시지 않냐고, 막 그랬거든요. 그러니까 말을 못하더라고요. 사람이 지켜보면서 그 사람이 배 속에 애기가 내 애기다.” 이러면서 거기에서 완전히 거짓말로 발칵 뒤집어버렸죠.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문제가 그 사람 그 먼 가족에 사돈의 팔촌 정도 되는 사람이 그 공안 간부더라고요. 그거를 나중에 전화로, 전화로 한 네다섯 다리를 1시간 동안 전화통화를 해서 연결을 해가지고 이런 사태로 지금 여기 끌려왔다.” 이러니까 벌금만 받고 내보내라.” 이렇게 돼서 벌금 4,000원을 거기에서 물었어요.

(: 팔려오자마자 병원에 갔더니 임신 100일이라 했는데 아무리 공안이 어수룩해도 임신 100일된 아이가 중국인 아들이라고 눈감아 줄 수 있는가?)

후 략

 

 

녹음순번-#28 (파일명:28 (ENG SUB)몰랐수다 북한수다253- 통일맘연합회, 탈북 고아, 북한인권, 중국, 탈북민, 대통령상, 북송)

녹음일시-2017. 5. 20.

대 화 자-김정아, 장원재, 김주성

전 략

 

장원재 : 그래서 이제 배 속에 아이는 있고 그 아이는 낳아야 된다고 그러고 본인은 낳기 싫고,

김정아 :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그리고 마지막에 그 중국 그 사람이 나를 설득하더라고요. “그 아이도 생명이다.” 그러니까 북한에서는 우리 소파하는 거 솔직히 무서워 안 했잖아요. 그리고 먹고 살기도 힘든데 애를 낳아서 뭘 하냐, 이 위주였는데 중국사람이 그때 그 말을 제가 처음 듣고 조금 양심에 가책이 됐어요. “니 배속에 있는 애도 생명이다. 그런데 그거를 그렇게 잔인하게 하려고 하냐? 니 애미 맞냐?” 이러면서 그때 나한테 모질게 얘기를 하더라고요. 결국 거기에서 내가 꺾여가지고 그래 낳자. 이게 어떻게 되든 일단 낳자.” 이래서 결국 거기에서 애를 출산을 했죠. 그리고 그 아이를, 내가 이미 경찰에 등록된 몸이고 그리고 그 아이는 그사람하고 유전자 검사하면 바로 그 사람 아이가 아니라는 게 나오기 때문에 만약 내가 북송당할 때 애가 함께 북송당할 위험이 있어요. 그러니까 이 낳자마자 이 사람이 이 아이를 자기 호적에다 올려놓겠다, 입양아로. 입양아로는 충분히 올릴 수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입양아로 그 사람 호적에 올리게 함으로써 아이가 일단 북송되는 문제는 차단을 시켰어요. 그런데 문제가 거기에서부터 생긴 거죠. 아이를 거기에다가 호적을 올려놓으니까 내가 지금 한국에 왔잖아요. 애를 내가 찾으려면 아이가 호적에 올린 애이기 때문에 우리 기본 뭐 중국에 있는 애를 데려오는 방법이 브로커에게 돈 줘가지고 애를 납치한다거나 애를 몰래 유도해가지고, 엄마가 애를 유도해가지고 이렇게 데리고 온다거나 이러는데 호적에 있는 애니까 브로커들이 손을 안 대려고 하는 거예요. 그리고 대체로 애를 데려온 사람들은 중국 집에서 또 협조를 많이 해줬어요.협조를 안 해준 애들 같은 경우에는 거진 납치해서 데려오고, 그리고 만약 호적에 올린 애들이라 해도 납치해서 데려온 경우에는 어떤 경우가 있냐면 시내예요. 그리고 집하고 애들 다니는 학교하고 거리가 조금 떨어졌어요. 그렇게 되면 그게 가능하거든요. 그런데 우리 애기 같은 경우에는 지금 어떤 상황이냐면 농촌이고 학교가 그 농촌마을 중심 안에 있어요. 그리고 이 100리 앞에 100%, 북한 한족들은 이렇게 모여 살거든요. 100리 앞 100% 그 사람 집 친인척이에요. 친인척 뭐 이모, 고모, 사촌에 뭐 이촌에 삼촌에 이 친인척이 쫙 깔렸어요. 형제들이 많아가지고, 또 형제들도 한번에 그저 한 56명씩 있어요. 그게 다리 건너 다리 건너 다 사돈이에요. 그러니까 일단 그 안에 들어를 못 가는 거예요, 내가 가고 싶어도. 그리고 브로커들도 거기에 만약 간다 해도 실제로 호적에 있는 애이기 때문에 이거 잘못하다가 우리가 걸리는 날에는,

장원재 : 불법이죠.

김정아 : 그냥 불법이 아니라 납치범으로, 납치범으로 되게 되면 적어도 10년 정도의 이런 교원까지 있더라고요. 중국이 그게 구절이 있더라고요. 그 납치범으로 만약 될 때 만약 그 사람들한테서 내 이름이 나오잖아요. 나도 대한민국에서 그만한 법을 또,

김주성 : 공범죄.

김정아 : . 공범죄 이거를 나도 법적 제재를 받아야 돼요. 감옥, 실제 감옥까지 가야 되고,

 

중 략

 

김정아 : 그나마 불가마니보다 조금 나은 지옥이라고, 깜깜한 세상. 그렇게밖에 비교가 안 돼요. 이런 대한민국에서 내가 지금 아들 낳고 6살짜리 아들 보면서 그 아이 볼 때마다 내가 그 아이 생각 안 하겠어요? 우리 아들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우리 신랑하고 밥상 앞에서 계속 기도를 합니다. “중국에 있는 누나, 북한에 있는 누나 빨리 만나게 해주세요.” 이제는 애가 6살이라서 그 기도를, 이제는 3명이서 기도를 돌아가며 하거든요. 그러면 우리 아들이 제일 먼저 기억한 게 북한에 있는 누나, 중국에 있는 누나 빨리 만나게 해주세요.” 그거 보고 놀랐어요.

김주성 : 그런데 그 중국에 남편은 지금 애에 대한 생각을, 어떻게 자기 딸로 생각을 하고 있어요? 아니면,

김정아 : 자기 딸로 생각했으면 한번은 애가, 애하고 마지막으로 전화통화 연락 두절될 때 애가 나보고 뭐라 했냐면 그때 애 생일이었어요, 2013년도. 내가 생일 축하한다고 생일축하 노래도 불러줬거든요. 노래를 불러줬는데 애가 반응이 없더라고요. 그러니까 너 왜 가만히 있니?” 했더니 (중국 말) 이러는 거예요. “엄마 니 나 싫니? 엄마 니 나 버렸지?” 이 말을 하는 거예요. 그때 그 동안 참았던 이게 폭발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잠깐만, 그 얘기 누가 해주디? 그 얘기 누가 말해줘? 동네사람들이 해줬니?” 나는 동네사람들이 해줬을지 알았어요. 적어도, 적어도 그 사람이 그 얘기를 해줬을, 동네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면 그 사람이 나가서 그 사람들 혼내줄 줄 알았어요. 아빠가 말했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에 내가 모든 게 다 무너졌죠. 평정, 그때까지 지키던 평정심이 거기에서 내가 허물어진 거예요. “아빠 바꿔라.” 전화 바꿨죠. “니 애한테 엄마, 내가 버렸다고 말했나?” 이랬더니 니 사실이잖아.” 그 동안에 그렇게 몇 년 동안 그렇게 전화로 설득하고 내가 왜 올 수밖에 없었으며 나는 너를, 너네를 버린 거 아니며 같이 와서 살자, 돈도 보내고, 그 설명을 하니까 그래도 버린 건 버린 거잖아.” 이렇게 얘기를 하니까, 아이에 대한 교육정책의, 어떠한 교육의 이 기본적인 이게 안 돼 있다 나니까 애를 그냥 있는, 그냥 엄마는 너를 버렸다. 엄마를 잊어버려라.” 그 애가 나한테 의지하면 아빠한테 아마 반항을 하나 봐요. 그러니까 그거를 막기 위해서 지금 그런 짓까지 했더라고요. 그래서 이거는 아니다. 니 적어도 나 살려준 생명의 은인인 건 알겠는데 이거는 아니다. 어떻게 아이한테 엄마가 버렸다고 그런 모진 말을 해줄 수 있냐? 그게 어떤 고통인지 니는 겪어 못 봤으니 모르지?” 그래 갖고 그때 이후로 연락이 두절됐거든요. 그리고 두 번째 그 사람이 그 아이를 친딸로 생각 안 한다는 걸 제가 또 어디에서 느꼈냐면 돈 문제를 얘기했을 때, “얼마 줄 거니?” 친딸로 생각한다면 그렇게 물어 안 봤죠. “얼마 줄 거니?” 그래서 5만원 얘기하니까 싫다.” 하더군요. 그게 답이었어요. 그러니까 그거를 쭉 두고 보면서 내가 애를 무조건 찾아야겠구나그때부터 이미 내가 애를 납치해서라도 찾기 위해서 노력한 게 2013년 그 전화 연락 두절된 다음부터예요. 그 다음부터 애 옷이라든가 뭐 다양한 거 사 보내려면 그거 모든 게 추정적으로 사야 되잖아요. 옷 한번 살 때에도 사이즈를 모르니까, 지금 7살이지 그러면 7살짜리 애들 몇 사이즈 입는가 그거를 쫓아다니면서 봐요. 그리고 거기에 어림짐작으로 사거든요. 그렇게 해서 보냈지만 짐도 보내고 편지도 보내고 수많은 걸 많이 보냈어도 이제는 답장도 안 해줘요. 그런데 우체국에서 본인에게 전달됐습니다.”라는 답변은 계속 정상적으로 오는 거죠. 심지어 그 문제를 가지고 미국에 AP통신 같은 경우에는 거기 기자가 직접 중국으로 글 써가지고 거기에다 편지를 보냈어요.

 

후 략

 

녹음순번-#29 (파일명:29 NO. 146 나의 탈북결정에 큰힘이된 양아버지. #DIMPLE, #North Korean defector female officer Kim Jung-ah TV,)

녹음일시-2020. 10. 3.

대 화 자-김정아

 

전 략

 

김정아 : 그래서 아, 나는 이 사람들하고 같이 이런 장사를 하는 게 아니라 처럼 군부대에 노동자로 들어가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무진장 많거든요, 는 군인 출신이니까. 양아버지를 찾아갔습니다. 양아버지가 저한테 한 약속이 있잖아요. 강제입양 그 얘기를 하면서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기억하시라고. “청진에 내가 돌아오게 되면 다시 나한테 집을 주마. 돌아가신 부모님 유산 그거를 그대로 주마.” 그러면 그때 당시 양아버지는 무슨 직책이었냐? 군단에서 그렇게 살아 나오셔 가지고 그때 당시 9군단 산하 김책사단정치원을 했습니다. 사단정치원 하면 장성이에요. 소장 별입니다. 장군, 장군 레벨이고 사단정치원, 그러니까 여단, 사단정치원부터 이 인사 임명을 김정일이가 직접 사인을 해서 줍니다. 그런데 사단정치원 양아버지네 집에 내가 그때 가서 나 이혼했다. 나 이제 청진 들어와서 살아야겠다. 내 거처 좀 마련해 달라. 나 입양할 때 한 소리가 있지 않냐, 청진 오게 되면 돌아가신 부모님 유산, 집 그거 그대로 돌려준다고. 그대로까지는 원치 않는다. 거처지가 지금 가장 절실히 필요하다. 그리고 이혼을 했지만 이혼한다고 통보는 모든 게 다 갔지만 법적인 절차인 이혼수속 완전히 저거를 다 떼어서 청진으로 가져오기 전에는,” 그것이 상당히 힘든 일이거든요. 그런데 그거를 하려면 돈이 있어야 되는데 나한테 수중에 돈이 없잖아요. 그거를 해달라고 제가 요청을 했습니다. 양아버지가 그때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너 무서운 애다. 내가 언제 그랬니?” 그 말을 듣는 순간에 그냥 눈물이 쫙 나오는 거예요. “그런 사람이었어요?” 양아버지는 양엄마 모르게 나한테 사과까지 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가슴에 묻으려고 했습니다. 진짜 그렇게 나올 줄 몰랐거든요. 정말로 나는 청진까지 올 때 탈북을 아예 생각도 안 했습니다. 그런데 양아버지가 너 무서운 애다.”라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은 거예요. 그 다음에 내가 막 우니까 양엄마가 당황한 거예요. 그러니까 아, 내가 모르는 양아버지와 나만의 무슨 약속이 있었구나, 이거를 양엄마가 그때야 안 거예요. 양아버지가 분명히 오빠 죽어서 내가 가서 사과 받아낼 때에도 양아버지 분명히 인정했거든요. “나한테 청진 오면 준다는 그 집 오빠한테 줬어야 되는 거 아니냐그런데 지금 이제 와서는 약속한 당사자인 내가 가서 지금 그거를 요구하니까 모른다는 거예요. “니 언제 그랬니? 너 무서운 애다.” 이제는 완전히 저 무서운 애로 몰아가는 거예요. 그때 울면서 내가 그 얘기를 했습니다. “후회하실 겁니다. 지금 이 순간 그 대답 후회하실 겁니다.” 당신들 천년만년 꼭 반드시 그거를 후회하면서 가슴 치면서 후회하게 내가 그렇게 만들어줄 거라고 그때 내가 그 앉은 자리에서 이를 갈았거든요. 양엄마는 그때 짐작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날 내가 집에서 울면서 나오는 걸 양엄마가 나를 잡으려고 했어요. “무슨 일인지 나한테 말해라.” “청진 오면, 입양할 때 청진 오면 부모님 유산 버리고 온 거나 똑같기 때문에 그 유산 다시 해준다고 했다. 그러나 그거 전부는 아니라도 거처지까지는 내가 분명히 약속 받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거를 모른다고 한다. 더는 이제는 나는 당신들 용서할 마음 없다.” 그러고 나오니까 그때 양아버지하고 양엄마가 다툰 걸로 제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청진 올라왔죠. 그러다가 나중에 제가 있는 친구 집에 양아버지가 전화가 온 거예요. “어디 있냐?” “내가 어디 있든 뭔 상관하지 마라.” 경성에다가 임시 요양에 가서, 양아버지가 경성에 담당의사들이 있거든요. “거기 가서 요양치료 하면서 일단 있어라.” 그렇지만 이미 그때는 제 마음이 완전히 돌아섰을 때거든요. 알았다고, 그리고 양아버지는 저한테 어떠한 조치도 안 해줬습니다. 그때 올라와서부터 제가 브로커를 알아보기 시작했죠. 그리고 브로커를 알아보고 탈북을 결심하기 전까지 또 다시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거처지 없이 친구들의 장사나 곁에서 도우면서 떠돌이 식으로 이렇게 남의 집에 얹혀있다가는 저 역시도 언젠가는 오빠의 운명처럼 길거리에 꽃제비가 되지 않을까, 그런 두려움? 오빠의 죽음의 두려움이 저한테는 또 하나의 공포였어요. 그래서 , 내가 이 땅을 이제는 뜰 때가 됐구나.’ 그래서 부모님 산소 가서 제가 몇 날 며칠을 매일 찾아가서 낮에는 거기 앉아서 술 마시면서 엄마 보고 물어봤어요. 엄마 나 여기에서 엄마가 말한 충성스러운 사람이라는 그거를 지켜야 되나, 아니면 내 생명에 그냥 맞게끔 내 삶을 찾아서 가야 되나 엄마가 한번 얘기해달라고, 꿈에라도 좀 나와서 얘기해달라고 그렇게 저는 탈북, 정말 탈북 오는 길이 힘든 게 아니라 탈북이라는 그 마음을 가지는 게 저는 너무 힘들었습니다. 결국 제가 탈북 브로커를 다 잡고 탈북날짜까지 정했지만 그 전날까지도 제가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아버지 회사가 있던 그 청명공원 앞에 그 백사장에서 술을 마시면서 밤새 거기에서 울었습니다. 오빠도 불러봤다가 아버지도 불러봤다가 엄마도 불러봤다가 내가 어쩌면 좋냐고, 내가 이 땅을 떠나면, 영원히 떠나면 부모님 산소 또 다시 주인 없는 산소 되겠는데 내가 어떡하면 좋냐고, 오빠 시신도 못 찾았는데 내가 어떡하면 좋냐고, 그러나 저는 그 생각이 들더라고요. ‘돌아가신 부모님도 내가 죽는 거는 원치않을 것이다. 어딘가는 내가 잘 살아남기를 원할 것이다.’ 결국 그 최종결정이 저의 탈북을 시작을 하게 된 거죠. 청진을 뜨는 날 아침에 제가 전화했습니다. 그랬더니 양엄마가 그러지 않아도 재까닥 전화 받더라고요. 어디 있냐고, 청진 친구 집에 있다가 경성에 한동안 내려갈 거니까, 한동안은 한 한 달 정도는 경성에 있다가 내가 김책 내려가겠다고 그리고 또 전화를 했습니다. 제가 왜 그 전화를 했다고 생각하세요? 양아버지는 9군단, 이제는 군단정치원과 막연한 사이, 양아버지가 군사대학을 보내서 키웠던 그 장교들이 이제는 북한 국경경비대, 29여단 국경경비대 중대장, 소대장으로 다 배치됐습니다. 그중에는 제 학교 동창도 있습니다. 그 상황을 제가 너무나도 잘 알거든요. 제 얼굴을 아는 사람이 국경에 많이 있습니다. 저는 안전장치를 해놔야 됐습니다. 양아버지를 안심시켜야 제가 그 땅을 뜰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마지막으로 그랬죠. 경성에 있다고 걱정 말라고, 한 한 달쯤 있다가 내가 김책 내려가겠다고 그랬더니 알았다고 그러고 전화를 내려놓더라고요. 그리고 그 전화 끝내고 나는 그날로 두만강을 향해서 떠났죠. 그리고 바로 저는 탈북했습니다. 저희 오누이의 희생으로 사단정치원까지 됐던 저희 양아버지 그 사람이 마지막에 우리를 또 어떻게까지 배신했는지 그 사연을 들으면서 여러분은 어떤 생각 드셨나요? 힘 없으면 그렇게 아무 보호도 못 받습니다. 힘없으면 그렇게 약속도 다 무용지물입니다. 약속이 다 뭡니까? 종이쪼가리 서약서를 써도 아무 힘이 없습니다. 권력만 있으면 살아남는 것이 바로 북한사회라는 거죠. 그러한 북한사회 권력만 살아남게끔 만든 것이 바로 북한정부가 그런 시스템을 만든 겁니다. 최소한에 제가 강제입양 됐을 당시 입양에 대한 절차가 적절한지를 단 한 번이라도 조사를 해봤더라면 그 진실은 분명히 드러나거든요. 왜냐면 온 신안구역 땅에 내가 하루아침에 사라져서 모두 다 놀랐기 때문에, 그거를 확인하러 내려왔던 게 바로 저희 담임선생이었고, 이렇게 저의 탈북의 결정적인 큰 힘과 용기를 준 양아버지에 대한 사연 제가 전해드렸습니다. 큰 힘이 맞죠? 탈북이라는 결정에 상당히 많이 흔들리는 나에게 복수라는 다짐을 가지게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탈북을 할 때 양아버지를 내가 당신을 기어이 복수한다.” 이러고 탈북할 때 중국이라는 곳에 머물 걸 생각 안 하고 저래 남조선 올 걸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브로커가 나보고 남조선 가게 해달라고 하니까 니 죽으려고 작정했구나.” 이러면서 저를 아예 시골에다 처박아 넣은 거예요. 3년 만에 제가 한국에 왔을 때 국정원에서 제가 사단정치원 딸이라는 걸 알았을 때 발칵 뒤집어진 거죠. 맨 처음에는 나보고 소설 쓴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때 딱 한 마디 했습니다. “1993425훌륭한 당일꾼입니다.’ 감사문 김정일이 직접 내렸고 감사문 받은 사람이 115연대 이준희 정치요원이다. 그 감사문에 제 이름이 함께 있을 거다.” 제가 그 얘기를 했습니다. 깜짝 놀라더라고요. 그거 확인해보라고, 당신도 북한에 정보통 있지 않냐고, 진짜 있는지를 확인을 하더라고요. 진짜 확인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그때부터 저한테 양아버지를 포섭해서 한국으로 데리고 오게 하는데 좀 같이 협조해주지 않겠냐라고 하더라고요. 싫다고, 당신들이 데리고 오라고, 그러면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 기어이 총으로 싸발겨 죽이고 말겠다고, 그렇게 그때 독을 품었습니다. 그리고 그분들하고 어떠한 일을 함께 하는 걸 제가 사양을 했습니다. 너무 많이 힘들고 그때 당시에는 그거를 기억하는 것도 싫었고 다시 이 얘기를 꺼내는 것도 힘들었고, 이렇게 양아버지에 대한 복수심이 결국은 저의 탈북에 결정적인 엑셀역할을 하게 된 거죠. 탈북에 대한 갈등이 정말로 심했던 나한테는 양아버지에 대한 복수심이 하나의 정말로 큰 계기, 큰 명분이 됐던 것 같습니다. 오늘 방송 여기까지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김정아 TV 구독해주시고 시청해주신 구독자분들, 시청자분들 진심으로 감사하면서 김정아 TV 많은 응원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늘도 대한민국에 영원한 여군장교이고 싶은 김정아였습니다. 충성!

녹음순번-#30파일명:30 NO. 138 16년만에 밝혀진 나의 출생의 비밀#DIMPLE, #North Korean defector female officer Kim Jung-ah TV,)

녹음일시-2020. 9. 29.

대 화 자-김정아

 

전 략

 

김정아 : 양아버지 문제가 과연 어떤 사연인지 제가 디테일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저한테는, 많은 분들이 오해를 상당히 많이 하시는데 저한테는 양부모 쌍으로 양부모가 아예 세 쌍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모르는 분들은 엄마가 하나고 아버지가 교체된 건가? 그래서 양아버지라고 말하나?” 이런 분들도 계시고 다양하게 오해하시는 분들이 많으시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특이하게 낳아준 부모가 다르고요, 저를 완전히 15살까지 돌아가시기 전까지 저를 정말로 친딸처럼 저를 아끼고 그렇게 아껴주신 부모님들이 계시고, 그 다음에 17살에 저를 강제로 입양한 양부모 이렇게 해서 세 쌍의 부모가 있습니다. 그중에 오늘은 저를 낳아준 부모와 돌아가신 부모님들에 대해서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어떻게 입양이 됐는지, 첫 번째 입양이 제가 어떤 식으로 됐는지에 대해서 제가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낳아준 부모에 대해서는 제가 아는 거는 청진의학대학 학생들이었다는 것이 제가 아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리고 그 부모들 당시에 시병원에서 출산을 했고 출산한지 3일 만에 저를 돌아가신 지금 저희 어머니죠. 그 어머니와 저의 친할머니 그 두 분이 청진 시병원에서 저를 받아온 것으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 당시에 70년대 당시에, 제가 76년생이니까 70년대 당시에 결혼 전에 혼전임신이 거진 사회 비난거리로 했대요, 북한도. 한국도 그때 시기는 아마 그런 걸로 제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두 분 다 의학대학 학생이었기 때문에 그때 당시 연애하는 과정에 아마 임신됐는데 원래는 결혼 전제조건으로 두 분이 만났는데 결혼을 할 수 없는 그러한 상황이 있었답니다. 왜 그런 상황이 됐는지는 뒷부분에 저희 할머니가 전해준 얘기를 마지막으로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돼서 저는 낳아준지 3일 만에 저희 돌아가신 어머니한테 입양이 됐고 그 부분을 저희 오빠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자기 6살 때 엄마가 병원 쪽에서 내려오는데 애기를 안고 왔기 때문에 엄마 애기 뭐야? 애기 샀어?”라고 질문했답니다. “그래 애기 샀어.”라고 하더랍니다. 우리 오빠는 그거를 분명히 기억하더라고요. 여기에서 돌아가신 저희 오빠, 저희 오빠는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머니의 친아들입니다. 그러면 어머니가 여기에서 왜 나를 입양하게 됐냐? 저희 어머니가 처녀 때 늑막을 좀 앓았대요. 그리고 저희 오빠를 출산한 다음에 다시 임신을 하게 되면 그 늑막에 타격이 오게 되면 늑막암으로 변할까봐 건강상 더 임신하면 안 되는 상황이었답니다. 그런데 아빠는 오빠를 아들, 아들, 어떤 아버지들은 아들아들 한다는데 아빠는 딸을 그렇게 원했답니다. 딸 하나 꼭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정말 돌아가신 아버지가 저를 진짜로 예뻐했어요. 정말로 제가 그때 얘기를 했잖아요. 중앙당 오빠 근무지로 해서 가 중학교 다시 재입학할 때 아버지가 그 큰 저를, 그때 한 12살 됐나? 안 가겠다고 드러누워서 우니까 엄마는 상점일이니까 그냥 할 수 없이 내보내고 아빠가 오히려 집에서 세면 다 시키고 크림 다 발라주고 옷 입혀주고 그러고서 올리고 올리고 올려서 저를 업어서 진짜, 진짜 저를 업고 학교까지 갔어요. 왜 동네사람들이 다 웃었어요. 쟤는 언제까지 저렇게 키울 거냐고, 그 정도로 아빠가 저를 그렇게 예뻐해줬어요. 그래서 진짜 돌아가신 부모님 사랑을 제가 엄청 받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친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제 충격은 어느 정도였냐면 오빠를 죽이겠다고 칼을 빼들었어요. 오빠를 죽이겠다고 칼을 빼들었을 때 그때 당시 제 나이가 16살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부모님이 저를 입양했다는 걸 제가 알게 된 것이 16살이었고 그 16살 때에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에 할머니하고 고모가 저를 구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구박이라는 걸 못 받고 살아온 저잖아요. 돌아가신 부모님 아버지 어머니가 정말로 저를 진짜 뺨 한 대 안 때리고 정말 손에 물걸레 한번 안 쥐고 저를 그렇게 고이 길렀어요. 그런데 부모님이 딱 돌아가신 다음부터 할머니가 저를 차지하면서 저희 집에 들어오면서 할머니하고 고모가 저희 집에 와서 저를 구박하기 시작했는데 그 서러움을, 그때 제가 사춘기잖아요, 열여섯이면. 그 사춘기에 그 서러움을 어디에다 토로 못하니까 제가 계속 오빠 부대에 가서 울었습니다. 나 혼자서 어려서부터 외갓집으로 평양으로 그 기차를 잘 타고 다니니까, 그러니까 가족들은 내가 없어지면 얘 또 오빠한테 갔겠거니 하고, 얘 아니면 외갓집에 갔겠거니 하고 이제는 찾기도 않아요, 그 할머니하고 고모들은. 이모도 아예 찾지도 않고, 그러니까 내 혼자서 기차 타고 잘 다닌 거예요. 그러니까 오빠 부대에 계속 간 거예요. 그래서 오빠 부대에 계속 가서 오빠 보고 울면서 할머니하고 막 나 구박한다고 하니까 오빠가 한번은 딱 그 소리를 하더라고요. “바라지 마. 그 사람들한테서 사랑받을 거 생각하지 마.” 이러더라고요. 그러니까 왜 그러냐고, 아무래도 나는 할머니가 아들을 중시하기 때문에 그런지 알았거든요. 아무리 아들이 중요하다 그래도 그렇지 오빠가 아무리 맏장손이고 그래도 오빠만 예뻐하고 나는 예뻐도 안 하고 예뻐 안 하는 거는, 예뻐해 달라는 말도 안 하는데 구박은 왜 하냐고 내가 막 그러면서 뭐라고 했거든요. 그랬더니 그때 우리 오빠가 얘기를 하더라고, “너 사실은 내 친동생 아니야.” 그 말을 들었을 때 야 이 미친 새끼 너 이제는 부모 돌아가고 내가 지금 짐이 되니까 너 이제는 나보고 동생 아니라고 하니? 이게 어디에서,” 이러고서 그 자리에서 칼을 빼들었어요. 그때 당시에 그 사건을 얘기했을 때가 바로 오빠가 경성연대 115연대 양아버지 연대정치요원으로 있던 그 연대 바로 군의소상의 집이었어요. 그때 칼을 딱 빼달고 오빠를 죽이겠다고 이러고 날뛰다가 내 풀에 까무라친 거예요, 그 자리에서. 그 말에 충격을 내가 못 이겨서, 그리고 그 자리에서 쓰러진 거죠. 그리고 그때 제가 한 3시간인가 5시만 만에 제가 의식 차렸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오빠가 너무 놀라서 내 의식 차리니까 내 눈앞에서 이러고서 눈물 뚝뚝 흘리면서 이러고 앉아있더라고요. 그 다음에 일어났는데 오빠 얼굴 보기 싫은 거예요. 그 다음에 아예 안 보고서 그 자리에서 내가 나와서 경성역전으로 향했습니다. 오빠 아무 말 안 하고 나하고 딱 1m 거리에 떨어져서 내 뒤로 터벅터벅 다가오는데 역전까지 가는데 단 한 마디도 안 했습니다, 오빠하고. 그리고 기차 타고 딱 떠나는데 오빠가 마지막으로 나를 보면서 그러더라고요. “누가 뭐라 해도 너는 내 동생이야. 내가 너한테 그 말을 해준 거는 니가 아프라고 말해준 게 아니라 니가 이제 컸기 때문에 할머니나 고모들 너 핏줄이 아니기 때문에 너한테 그렇게 구박하는 거라고, 그 진실을 알라고, 그 사람들한테 바라지 말고 이제 니 스스로 살아야 된다고. 그러나 오빠는 절대로 너 버리지 않는다고,” 차가 떠날 때 오빠가 나한테 그 말을 해줬어요. 그리고 청진 도착해서부터 저는 완전히 빡친 거죠. 할머니 집으로 고모 집으로 미친 듯이 가서 다니면서 제가 따졌습니다. 내가 친딸 아니냐고 말하라고, 그러니까 할머니가 맨 처음에는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오빠가 말해줬다고, 오빠 나한테 그렇게 허튼소리 할 사람 아니지 않냐고, 누구보다도 저를 아끼는 사람이 오빠였거든요. 부모님 다음에 저를 제일 아끼는 사람이 오빠였어요. 저희 오빠는 아버지 당일꾼, 엄마가 판매원 이거를 겪으면서 저를 어려서부터 저희 오빠는 저를 업고 다녔습니다. 정말로 어렸을 때부터, 그래도 부모님 대신 저를 돌봐준 사람이 오빠였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 가장 저를 아끼는 사람이 돌아가신 아버지, 어머님 다음에 저희 오빠였거든요. 이 세 사람 외에 저를 그렇게까지 아껴주는 사람 없었어요. 그래 할머니가 거기에서 주저앉더라고요. “너 시집갈 때나 말해주려고 했는데 그놈의 새끼 벌써 말했네. 끝내 일을 쳤네.” 이러더라고요. 그 다음에 할머니 제껴놓고 이모한테 갔어요. ‘이모는 현실을 말해주겠지.’ 돌아가신 어머니가 돌아가신 순간에 나 때문에 눈을 뜨고 돌아가셨거든요. 병으로 마지막에 늑막암으로 돌아가셨는데, 아버지 돌아가신 충격 때문에 늑막암으로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실 때 눈을 뜨고 돌아가시면서 마지막에 부른 이름이 오빠 이름이 아니라 제 이름을 불렀어요. 내 이름을 딱 세 번 부르면서 내 너를 두고, 내 너를 두고,” 이 말만 반복하다 끝내 눈 뜨고 돌아가셨어요. 이모 집에 들이쳐서 제가 이모한테 그렇게 따지고, 엄마 나 때문에 눈도 못 감고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내가 엄마 친딸이 아니냐고, 그런데 이모가 거기에서 한 말이 더 제 가슴에 칼을 박더라고요. 이모가 그때 당시 저한테 뭐라고 했냐면 그래서 니가 더 미워. 그래서 엄마가 더 눈 못 감은 거야. 아니 친딸도 아닌 너 끌어안고 그 고생을 하면서, 너 아니었으면 우리 언니 눈 감고 죽었어. 너 때문에 눈 뜨고 죽은 거야.” 이러고 이모가 그 자리에서, 그 말을 듣고 내가 더 주저앉아서, 이모는 그것 때문에 더 나를 미워했더라고요. 그제서야 왜 부모님 돌아간 다음에 나를 보는 시선들이 그렇게 차가웠는지, 그리고 제가 그날 거진 산소 올라가서 통곡 치며 밤새 울었어요. 그리고 그날 산에서 또 다시 쇼크 왔었어요. 그런데 제가 울면서 올라가는 걸 아마 그 저희 아버지가 독집 지어준 그 뒷산에 저희 아버지, 어머니 다 모셨거든요. 그런데 그 동네가 다 제 친구들이었어요. 울면서 올라가는 걸 봤는데 쟤 또 산소 올라가서 우나보다 해서 울면서 올라가는 걸 봤는데 이게 날이 깜깜해도 안 내려오니까 그 아래 저희 친구 엄마가 야 걔 초저녁에 지금 아까 오후에 올라갔는데 지금 안 내려왔다. 너네 올라가 봐라.” 이러고 오빠 친구들을 올려 보냈더라고요.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제가 산소에 쓰러져 쇼크 온 채로 있던 거예요. 그래서 그때 오빠 친구들이 저 업고 친구 집에 데려다가 엎어놓고 아침에 일어난 다음에 왜 그랬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때 이제 친구 엄마 무릎에서 제가 통곡 치고 울었거든요. “돌아가신 아버지, 엄마가 내 부모 아니래요. 믿어져요?” 이러니까 그때 그 집안 식구들도 다 충격 받았어요. “오빠가 그래요.” 나는 못 믿겠다고 그랬더니 그분들이 우리도 믿어 안 지는데 어떻게 니가 믿어지겠냐고, 너를 얼마나 사랑해준 사람들인데 어떻게 그분들이 니 부모 아닐 수 있냐고, 그래서 그 다음부터 제가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 내 낳아준 부모는 과연 어디에 있는데? 그 사람들은 과연 왜 나를 버렸는데?’ 그러고 다시 할머니 집에 갔어요. ? 저를 받아온 사람이 할머니하고 엄마인데 유일하게 생존한 사람이 지금 저희 할머니잖아요. 할머니한테 가니까 할머니가 그러더라고요. 진정하고 얘기 들으라고 하더라고요. “무작정 울고 떼쓰지 말라.” 이러더라고요. “진실은 진실인 거야.” 하더라고요. 돌아가신 아버지가 문제인 거예요. 돌아가신 아버지하고 엄마가 원래는 결혼 전제로 만난 분들이었고 그래서 저를 임신했는데 문제는 아버지가 어디에 뽑혔답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그때 얘기, 할머니 말이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할머니는 그때 그러더라고요. 그때 할머니가 알기로는 그 아버지가 대남공작에 뽑힌 걸로 알고 있다. 머리가 비상하시고 그러기 때문에 대남공작에 갑자기 천출이 돼 가지고 뽑힌 걸로 알고 있다. 그리고 엄마는 신분이 조금 안 좋았다.” 아버지, 엄마의 할아버지대가 아마 남한의 이런 지주였다. 이렇게 저는 알고 있었어요. 그때 그렇게 들었거든요. 그래서 엄마는 출신성분이 안 좋고 아빠는 출신성분이 좋은 사람이었고, 그런데 아빠는 또 마침 결혼 전제로 만나는 과정에 연애가 그 안에서 금지가 됐는데 결혼 전제로 만나는 과정에 아빠는 또 다른 데 또 파견까지 받았다. 그래서 그때 엄마하고, 돌아가신 엄마하고 할머니가 병원에 가서 산부인과에서 저를 받는 그 순간에 저를 낳아준 분은 저한테 젖을 먹이면서 계속 앉아 울고 있고, 그리고 남자분이 그 남자분 모습이할머니는 지금 제 모습을 보고, “그 남자분 모습하고 내가 지금 자라는 모습을 봤을 때 내가 그 사람을 많이 닮은 것 같다.” 그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 남자분이 그때 아이를 이렇게 빼면서, 뺏으면서 할머니한테 아이를 주면서 이 아이는 영원히 찾지 않겠으니까 꼭 당신의 친자식으로 꼭 키워라.” 그때 그러고 얘기를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그 자리에서 서로 아무런 얘기, 서로 연락처, 주소, 이름 석자도 안 나누고 그 자리에서 헤어졌다고 하면서 그때 아이를 안고 나오는데 등 뒤에서는 그 저를 낳아준 그분의 통곡소리가 들렸다고 할머니는 그때 그렇게 전해주었습니다. 어쨌든 할머니가 저한테 들려준 진실은 그게 전부였어요. 어딘가에는 분명히 저를 낳아준 그분들이 분명히 살아계시지만 그분들이 누군지는 저는 모르고 그래서 저는 지금 현재도 제 이름 성을 모릅니다. 가장 미안한 게, 미영이한테 가장 미안한 게 외가에 대해서 말해주는 것은 저희 돌아가신 부모님들에 대해서만 제가 말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렇게 힘든 저의 출생의 비밀사연을 오늘 전해드렸습니다. 그 동안 방송에서 나왔던 제 양부모, 양부모의 문제, 다음 시간으로 제가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970년 당시에 북한의 입양은 어떠한 서류도 없었고 그들만의 그러한 거래로 이어지는 것으로 저는 알고 있고, 그렇게 제가 입양된 이후에 저희 아버지는 저를 완전한 친딸로 하기 위해서 북한에 주민등록, 보안서, 경찰서에, 한국으로 말하면 경찰서에 주민등록 문건이 이러한 보위부에 있는 문건하고 완전히 세부화 된 문건들이 있는 걸 서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희 아버지는 그때 당시에 저를 친딸로, 완벽한 친딸로 만들기 위해서 보위부 서류까지 완벽하게 다 바꿔놨다고 저는 들었습니다.

 

 

 

2020.11.1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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