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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실(제240광수) 녹취록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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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0-11-14 20:47 조회75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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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실(제240광수) 녹취록(상)  

 

녹음순번-#01 (파일명:1 이제 만나러 갑니다 이순실여사의 슬픈 이야기)

녹음일시-2012. 6. 11.

대 화 자-이순실, 남희석

 

전 략

 

이순실 : 어른들도 꽃제비 생활해요. 그래서 5년 동안이라는 그 세월을 정말 지붕 한번 씌어보지 않은 그 바깥에서 하늘을 지붕 삼아서 그냥 자갈밭, 압록강 주변을 그냥 방바닥 삼아서 살았어요. 그 꽃제비 생활기간에 어린 애기까지 있어 가지고 바깥에서, 애기도 바깥에서 낳았어요.

남희석 : 잠깐만요. 남편은 어떻게 만나신 거예요? 그 당시에.

이순실 : , 그거는 제가 군사복무기간에 중대 소대장하고 원래 좀 알고, 친분으로 알고 있었다가 결혼식 없이 그냥 가서, 배낭 지고 가서 결혼식 생활처럼 이렇게 살았어요. 그런데 그 사회에서 그 쌀 공급 안 하고 또 모든 게 불편하니까 그냥 동네북이에요. 툭하면 술 먹고 때리고 싸우고 그게 일이에요. 그래서 그 집에서 살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그때부터 또 나가 돌아다니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이렇게 굶어죽느니 우리도 한번 중국 가보자이렇게 결심하고 중국에 다니면, 이렇게 다녔어요. 그래서 9번 북송을 당했어요, 제가. 그래서 저의 몸에는 그 9번 동안의 그 고문, 그 보위부에 들어가서 받은 고문흔적들이 그대로 있어요. 그 지지고 소바늘로 따고 그냥 생머리 까서 여기 내 머리에 꿰매지 않고 붙어서 막 살이 쭉쭉쭉쭉 다 튀어 올라왔어요. 홀딱 벗기고 그냥 뜨거운 물로 지져놔서 다 떼었어요, 여기에 다. 그래서 여기 지진 자리로 발까지 그 9번의 흔적들이 그대로 다 있는 거예요.

남희석 : 애기는 어디에서 낳으신 거예요?

이순실 : 길바닥에서, 바깥에서 꽃제비 생활하면서,

남희석 : 그게 무슨 말이에요? 어디에서요?

이순실 : 혜산 역전에서 낳았어요. 그 역전에 애기하고 저를 어디에 갖다 놨냐면 혜산 역전 앞에 927여관이라고 있어요. 꽃제비들, 방랑자들 가둬놓는 그런 여관을 1층부터 7층까지 옥상까지 가득 찼어요, 그 꽃제비들이. 이제 거기 갖다 넣는 거예요. 그래서 거기에서 산후조리를 했어요. 산후조리라 해야 뭐 그냥 방이나 빌렸을 뿐이지 강냉이 가루 죽을 이렇게 마셔도 겉에 강냉이 가루 하나 묻지 않는 그런 죽물 먹어봤자 있어봤자 죽을 것 같아요. 매일 죽어가는 사람들 보니까 우리도 두려운 거예요.

남희석 : 젖은 나왔어요?

이순실 : 아니에요.

남희석 : 그렇죠. 먹는 게 없으니까,

이순실 : 애기를 그 강냉이 가루 죽을 먹이기 시작해서 그 애가 소아병동에 입원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그 병동에 입원하면서 도망쳐 나오고 도망쳐 나와서 또 중국을 또 들어오고 또 들어오고,

남희석 : 애기는 병원에다 두고?

이순실 : 아니죠. 애기 데리고 다녔죠.

남희석 : ? 그 갓난아기를.

이순실 : 애기를 데리고 다녔죠. .

남희석 : 군인들 단속에 걸릴 때도 애기가 있었을,

이순실 : . 그때마다 군인들이 뭐라고 그랬냐면 애가 걸음걸이라도 하면 내놓고 애라도 중국에서 살려주겠는데 젖먹이이기 때문에 데려가. 데려가.” 해서 보위부에 와서 똑같은, 제가 이렇게 고문당하는 것도 애가 다 봤어요. 보면서 이 혁띠, 각반 혁띠로 때리는데 혁띠가 올라가면 걔가 먼저 엄마, 엄마하고 막 울었었어요, . 계속 그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엄마 때리지 말라고 엄마, 엄마했었어요. 그렇게 하면서도 내가 그 애기 때문에 희망을 가지고 진짜 9번의 북송과정에서 살았는데 9번의, 들어오자마자 중국에서 인신매매에 걸린 거예요. 그래서 애기는 300원에, 3,000원에 팔리고 저는 5,000원에 팔려간 거예요.

남희석 : 아이 무슨 얘기야?

이순실 : 그 택시에 탔어요. 택시에 탔는데 조선족하고 한족이 들어오더니 택시에 애기를 갈라 태우는 거예요. 그러면서 왜 애기를 뺏느냐?” 그랬더니 저리로 쭉 나가면 검문소가 있는데 검문소를 지나가면 애기 엄마들 다 단속한다고, 북한 여자이기 때문에 단속한다고, 그래서 갈라 태운대요. 그래서 어느 지점에 가서 만난다고 기다리라는 얘기해서 아, 그러겠거니 하고서 참는데 계속 안 만나고 깜깜해지도록 사람을 못 만나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거 어떻게 된 일이냐고 막 울며불며 했는데 그때부터 울면 때리고 입을 틀어막고, 계속 그러니까 우리는 그냥 당하고만 있는 거예요. 애기 앞에서 없어지는 걸 뻔히 봤어요, 우리는. 그게 마지막 모습이었어요. 떨어질 때 택시에서 갈라 낼 때 제일 지금도 마음에 걸리는 게 그냥 한 끼라도 배불리 먹여주고 정말 옷이라도 한 벌, 신발이라도 자기 짝을 맞춰서 신겨놨으면 그까짓 거 하겠어요. 마음이라도 좀 편하겠어요. 그때 당시에도 배가 고파서 저의 손을 갖다, 업었는데 손을 끌어다 계속 이 생손을 빨았었어요, 배가 고파갖고. “조금 저기에 가면 아저씨들이 먹을 거 준다. 먹을 거 준다. 기다리자, 기다리자.” 이러면서 자꾸 울리다 갈라졌기 때문에 그게 너무 마음이 아파요. 제가 여기 대한민국에 와서 하루 한 끼 밥 먹는 게 처음에는 정말 눈물의 밥을 먹었어요, 눈물의 밥을. ‘내가 무슨 생각 가지고 이렇게 밥을 배불리 먹고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웃지?’ 하는 생각이 들면 갑자기 막 또 이렇게 눈물이 나고 막 그랬었어요. 대한민국에 와서 정말 이렇게 엄마들이 애기 2살짜리 이런 거 업고 다니면 그 애기들 바라보고 자꾸 눈물 흘리게 되고 밤에도 계속 울고, 저희 남편 사실 만났을 때도 저희 남편이 저 애기 엄마인지도 몰랐어요. 어떻게 알았냐면 밤마다 자꾸 울고 애기 이름을 부르면서 우니까 당신은 왜 자꾸 밤마다 우냐 하고 자꾸 흔들어 깨우는 거예요. 그러고 매일 베개통 안고 우는 게 베개가 얼룩덜룩 하도록 울고, 왜 자꾸 우냐고 물어보기 때문에 제가 저한테 사실 그런 애기가 있다.” 이렇게 얘기했더니 저희 신랑이 그렇게 큰 아픔을 왜 혼자서 이겨내려고 하냐, 그거를 어떻게 하려고 혼자서 그렇게 울고불고 사냐, 이러면서 안아주는 거예요. 그래서 정말 저 남편 때문에 제가 그 아픔, 그리움 이런 것을 다 이겨나가는 것 같아요. 저 지금도 꿈에서 보고 또 안보강연회 할 때마다 이런 이야기하면 밤에 악몽에서 자꾸 애가 보여서 막 미치겠어요, 진짜. 분명히 꿈에서 내가 안고 자요. 그리고 내가 다시는 너 여기에서 안 내보낼게. 미안해.” 하고서 꼭 끼고 자는데 일어나면 베개통 안고 자요. 이런 것이 우리 북한사람들이 똑같은 아픔이에요. 저 같은 아픔이 북한사람들 거진 다 탈북자들이 80%가 다 겪고 살아요, 지금. 자식들 다 중국에서 팔려가고,

남희석 : 아니 어떻게 부모자식, 부모가, 엄마가 있는데 그거를 애를 팔아요?

이순실 : 진짜 나라 잃은 백성, 상갓집 개 봐도 개만도 못하다는 소리가 있잖아요. 북한에서 그렇게 당을 위해서 충실하고 오직 당과 혁명을 위해서 일을 하고 내 몸을 바치면서 조국을 보위하고 초소에도 섰지만 그 조국이 준 게 뭡니까? 마지막에는 자기 새끼, 내 새끼까지 다 잃어버리게 하고, 그래서 저는 지금도 어디 가면 잊지 않는 게 제가 고문당해서 이랬던 아픔, 어디 가서 그냥 천대받으면서 살았던 아픔도 다 잊을 수 있어요. 그러나 내 새끼 그거 잃어버린 것만은 진짜 못 잊겠어요. 진짜 내가 마음이 아파서 죽어도 죽어도 못 잊을 것 같아요, 지금.

남희석 : 어떤 것을 넣으시겠습니까? 소망함에 넣고 싶은 것.

이순실 : 제가 한국에 와서 이 곰인형을, 살아가면서 이 곰을 샀어요. 왜 곰을 샀냐면 중국에서 나온 화교인들이 애들이 오뚜기라고 그래요. 그래서 인형이 아니고 오뚜기를 가지고 노는데 애가 산둥에서 계속 저거 줘. 저거 줘.” 계속 그 오뚜기를 가지고 싶어서 그러더라고요. 그런데 줄 수는 없고, 남의 거기 때문에. 그래서 제가 항상 갖고 다니던 띠에 애 속내의가 있었어요. 그 속내의를 동글동글하게 말아서 그 연필로, 눈썹 그리는 연필로 아이 동그란 오뚜기 눈을 그려서 이렇게 줬었어요. 그러니까 항상 엄마가 아파서 누워 있을 때도 개울가에서 그거 하나 갖고 놀았었어요. 그래서 한국에 와서 얘가 우리 딸이에요. 그리고 혼자 집에 있는 게 너무 애처로워서 제가 이 엄마라고 이 엄마 곰을 샀어요. 그래서 너는 항상 엄마가 강연을 가도 너는 엄마 곰하고 같이 있어.” 하고 거울에다 계속 같이 있게 놔두고 있어요. 그래서 이렇게 있는 게 아니라 저하고 계속 대화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밤에 누워서 이렇게 거울 보다가도 엄마 있어서 오늘 외롭지 않았지?” 이렇게 제가 대화를 해주는 거예요. 그래서 소망함에 이 우리 딸에게 주는 선물을 주면서 소망함에서도 만날 때까지라도 엄마랑 같이 있으라고 저는 곰을 가져왔어요. 그래서 이 엄마 곰하고 애기 곰하고 같이 엄마를 만나는 날까지 같이 한 몸이 돼서 외로울 때마다 엄마 보고 싶을 때마다 같이 이야기하라고 그래서 2개를 같이 가져왔어요. 사랑하는 보고 싶고 만나보고 싶고,

 

후 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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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녹음순번 계속 -

녹음순번-#02 (파일명:2 9번탈북, 이순실의 애환과 질곡의 탈북 이야기)

녹음일시-2012. 10. 4.

대 화 자-이순실, 남자 1

전 략

 

남자 1 : 북한에서의 성장과정이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이순실 : 제가 보면 남들은 고생도 좀 많이 한 사람들도 있지만 저는 아버지가 군인 출신이고 어머니가 군단장 여의사를 하면서 좀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어요. 그래서 어렸을 때는 정말 그 고생이라는 걸 모르고 살았어요. 그래서 남들이 정말 먹어보지 못한 것, 입어보지 못한 것 우리는 다 누리면서 살았어요. 그렇지만 아버지 교육은 대를 이어서 군대를 나가서 조국을 보위해야 된다.

 

중 략

 

이순실 : 그러면서도 그게 안 되니까 마지막에는 이렇게 꽃제비 생활에 들어가서, 저도 그냥 군사복무 11년 끝나고 이제 이어진 것이 꽃제비가 돼 버린 거예요.

 

중 략

 

이순실 : 그래서 제가 장교생활 끝나고 이어진 생활이 꽃제비 생활이에요. 그러면서 정말 5년 동안 밖에서만 잤어요. 우리 보고 야생이라고 그랬었어요, 야생말. 그런 말까지 들으면서 살았었어요. 그런데 그 과정에 제가 또 애기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 애기도 임신하고 바깥에 나와 가지고 그 애기도 역전에서 낳았어요. 역전에서 낳았는데 혼자 이렇게 몸을 푸는데 누가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요. 그런데 지나가는 할머니가 보더니 길바닥에 가서 깨진 유리를 갖다가 진짜 코를 흥흥 풀어서 이렇게 소독을 하더니만 그걸로 탯줄 다 끊어주고, 그 다음에 지나가는 군인들이 밥덩어리 줘서 또 그거 먹고, 그런데 한 4일 동안은 그래도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 오는 사람이 밥을 줘서 먹고 얻어먹고 살았어요. 그 다음부터는 비가 오기 시작하는데 바깥에서 들어갈 곳이 없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애기랑 저랑 그냥 비닐방막 하나씩 쓰고 바깥에서 살면서 엄청 많이 고생했어요. 그런데 어떻게 그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애기만 안고 며칠을 기다려보니까 내가 몇 끼를 굶었나 하고 생각해보니까 4일을 굶었더라고요. 그런데 애기는 젖을 먹어야 될 거 아니에요? 내 젖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그 애기를 안고 비닐방막에 싸가지고 장마당에 나가서 우리 애기한테 동냥젖을 주세요.” 하고 이렇게 종이에다 써서 앞에다 걸고 앉아있었어요. 그랬더니 장마당에 엄마들이 와서 물건 사러 왔다가 애기 젖 조금씩 먹여주고 가고 먹여주고 가고 그랬어요. 진짜 저는 아침에 일어나서 아침 해를 맞는 것이 너무 슬펐어요. 애기랑 같이 죽고 싶은 생각도 많이 났고, 제가 애기는 낳았지만 애기한테 밥 한 사발 줄 수 없고 젖 한 모금 줄 수 없는 것이 엄마로서 너무 막 그게 죄책감이 돼서 정말 많이 울고, 그런데 정말 목숨이 질기더라고요. 목숨이 끊어지지를 않아요. 그래서 정말 사람들이 앞에 주고 가는 밥을 보면 쉰밥도 있고 곰팡이 핀 국수도 있고 그렇지만 최대한으로 제가 살려고, 애기 때문에 살려고 먹었어요. 그래도 정말 그 목숨이 질겨서 그런지 설사 한번 안 하고 병 한번 안 걸리고 살더라고요. 살아나더라고요, 그게. 정말 목숨이 질긴 걸 그때 안 것 같아요.

 

중 략

 

이순실 : 9번이라는 것이 정말 그 제가 생각하기에도 영웅감이에요, 영웅감. 정말 내가 이런 길을 걸었구나 하고 뒤돌아볼 때는 진짜 상상도 못할 그런 일들이 너무 많았어요. 그래서 북송당하면 보위부에 들어가서 온몸을 정말 불로 지지고 때리고, 거기에서는 여성, 남성을 가리지 않아요. 무조건 집어 드는 게 다 흉기가 돼요. 그래서 그 흉기로 제가 지금 이 몸에 온통 데인 상처들이 많지만 그 고문현장에 그 2살짜리 애기가 같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 애기가 같이 우는 소리를 제가 들으면서 여기에서 내가 정신 차려서 살아야 되겠구나, 저 애기 때문에 살아야 되겠구나 그렇게 정신을 가다듬으면서 그 고문장에서 맞는 것도 정말 혁명적으로 맞은 것 같아요. ‘내가 여기에서 쓰러지면, 깨어나지 못하면 저 아이가 고아가 된다. 정말 핏덩어리 같은 애가 고아가 된다. 쟤를 내가 어떻게 살렸지?’ 하면서 막 그렇게 정신을 가다듬으면서 매 맞아도 정말 이겨내야 된다.’ 이렇게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거기 들어가면 우선 여성들은 발가벗기고 막 고문을 해요. 그 다음에 임신된 여성들은 다 낙태시켜요. 그리고 또 여성들이다 보니까 여성들이 무리다 보니까 생리적으로 오는 그런 현상들이 있잖아요.

남자 1 : 그렇죠.

이순실 : 이런 생리적인 주기적인 생활도 마음대로 가지지 못해요.

 

중 략

 

이순실 : ? 이제 여기에서 도망쳐 나가지 않거나 거기에 있으면 그냥 죽는 것밖에 없어요. 죽음의 길 앉아서 기다리는 것뿐이에요. 그래서 화장실 밑으로 빠져서 그 분, 변을 파는 거기 구멍으로 나와서 도망친 적도 있어요. 그래서 이 상처에 똥독이 올라서 막 형편없었어요. 막 온 몸이 붓고 물집 잡히고, 그래도 잡혀서 그 몸 상태로 또 온 상태도 있어요. 그러니까 탈출해서 이틀 만에 잡혀 온 상태도 있어요. 그래서 더 맞고 더 정말 이렇게 고문당하고 그래도 또 도망쳐야 된다. 그러나 도망칠 기회는 없었고, 그래서 6개월 동안 또 감옥살이하다가 나중에는 또 중국으로 오는 거예요.

 

중 략

 

이순실 : 북한에서 중국으로 탈출하는 거예요. 그 한 그릇을 위해서, 넘어와서 빵 한 조각씩 먹고 밥 한 그릇 얻어먹는 것이 그렇게 행복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잔등에서 계속 울던 애기도 중국을 알아요. 중국에 오면 애도 굶어도 좋아해요. 그 다음에 빵 한 조각이나 죽 한 그릇을 얻어 먹이면 그렇게 좋아서 그래요, . 그리고 북송당하는 거 알기 때문에 벌써 변방대에 들어오면 애가 무서워서 공포감에 질려서 울고 막 그러더라고요. 온 몸이 불구가 돼도 죽어도 중국 땅에 가서 죽겠다 하고 오는 각오가 더 간절한 것 같아요. 그래서 중국에 와서 우리도 한국 탈출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한국으로 탈북하는 그 루트도 우리가 그때 알게 됐고, 그래서 일단은 북한에서 탈북할 때는 우리가 한국 가야 된다고 오는 것이 하나도 없어요. 그냥 밥 한 그릇, 빵 한 조각 이것을 먹기 위해서 오는 거예요. 그 북한의 땅에 가만히 앉아있으면 굶어죽어요, 정말. 그래서 그냥 탈북을 재시도하는 것 같아요.

남자 1 : 생사를 넘나들면서 거듭된 실패 속에서 아홉 번째에 성공한 탈북, 그 가운데에는 강한 의지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이순실 : 그 꽃제비 생활하는 기간에도 정말 한 가지 소망이 있었다면 이 애를 위해서 내가 살아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죽고 싶었던 그 마음들을 다 버리고 그 애기만 하나 바라보면서 살았어요. 그리고 맨 마지막 북송을 그 애기를 배낭에 담아 지고 강을 건넜어요. 그때 장마철이 돼서 물이 엄청 많았어요. 그런데 깊은 물에는, 정말 들어가서 떠내려갈 만한 그 깊은 곳에는 경비대가 보초를 안 서요. 거기는 들어가라고 아주 권하는 것 같아요. 거기로 다 들어서요. 그러면 사람들이 다 둥둥둥둥 다 떠내려가요, 거진. 그래도 제가 그 중국으로 가야 되겠다고 마음먹어서 그런지 그 애기를 배낭에 매고, 그 다음에 발에는, 신발도 없었으니까요. 발에는 그냥 새끼줄로 꽁꽁 묶어서 이렇게 돌에 물때가 많아서 잘못 디디면 정말 뒤집어져서 떠내려가면 죽어요. 그래서 그렇게 해갖고 준비를 해서 건넜어요. 건너서 중국 땅에 다행히도 들어섰는데 중국 공안한테 잡혀버린 거예요. 그래서 애기 엄마들 4명이 거기에 건넜는데 다 애기들 배낭에 넣고 4살 미만의 애기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중국에 건너가자마자 공안들이 딱 잡았는데 우리를 택시에다 2개로 갈라서 태우려고 이제 두 대가 왔어요. 그래서 일단은 한 차에 애기랑 엄마랑 다 태우는데 한참 가다가 검문소가 있다고 하면서 애기 따로 엄마들 따로 두 차에 가르는 거예요. 그래서 , 저기에 어디 가서 모여서 또 이렇게 우리한테 애기를 주는가 보다.’ 하고서 마음 놓고 갔는데 갈림길이 이렇게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애기 엄마들은 따로 애기들 실은 차는 또 따로 택시가 갈라져버리는 거예요. 왜 이렇게 갈라져서 가는가 했더니 그때부터 그 차에 탔던 그 브로커들이 막 신발 벗어서 우리를 막 까고 때리고 하면서 이제부터 찍소리하면 죽여 버린다고 막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그때부터는 그냥 울기만 하고 그냥, 소리도 못 내서 울기만 하고 갈라져가는 그 차를 봤으니까 우리는 분명히 이것이 무슨 일이 아니다. 애기들이 분명 잘못된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그 사람들이 그 사람들이 그러더라고요. “저 애기는 3,000원에, 중국 돈 3,000원에 다 팔아버렸으니까 너네 찾을 생각하지 마라.” 이러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도 지금 중국 돈 5,000원에 샀대요, . 사갖고 지금 인신매매에 걸려서 지금 다 팔려가는 길이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팔려가는 줄도 모르고 그냥 따라가던 길이죠. 그래서 그 차를 타고 한 3일 동안 그 계속 길을 가는데 가서 농촌마을에다가 우리를 한 집에 갖다 풀어놓는 거예요. 그래서 내려서 우리는 정말 만신창이가 돼서 힘들고 배고프고 지치고 해서 그냥 구석에 그러고 앉아있는데 동네사람들이 와서 정말 그 짐승 구경하듯이 와서 다 내려다보고 막 그러면서 거기에서 사람을 선택해서 사가는 거예요. 그래서 정말 솔직한 말로 우리 처지는 꽃제비 처지지만 마음은 아직 살았어요. ‘우리가 왜 여기까지 팔려 와야 되는가? 왜 너네들한테 우리가 가서 살아야 되는가?’ 이런 생각으로 도망칠 기회만 가졌었어요. 그래서 그 집에서 도망친 사람이 2명이에요. 다 도망쳤지만 2명은 잡혀 오고 우리 2명은 또 도망쳤어요. 도망쳐가지고 어느 한 골짜기를 들어가서 산에 들어가서 그 무덤 지키는 아버지들이 계시는 것이 있어요. 그 사람들한테 우리가 저 북한에서 온 사람들한테 우리 살려달라고 막 그랬어요. 그랬더니 십자가 있는 데로 가라고 이러면서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십자가라는 것이 저도 북한에서 들었지만 아, 거기에서 먹여주고 재워주고 붙들려가지 않게 보호해준다. 이런 것이 북한에서는 다 통과돼요. 다 통과가 되니까 , 이제는 살 길이 열렸구나하고 그렇게 하고 찾아 들어간 곳이 한인교회였어요. 그래서 그 교회에서 그나마 먹고 자고 보살펴주고 그래서 거기에 머무르게 된 거죠. 솔직한 말로 저희 딸이 있었으면 여기 그 교회에서 같이 이렇게 좀 숨어 있다가 왔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는데 길이 잘못 들어서도 아니고 그 공안들이 딱 지키고 있는 곳에서 우리가 이렇게 잡힌 거다 보니까 그냥 생떼 같은 딸을 빼앗긴 거죠, 우리가. 그래서 한국에 들어와서도 그 딸 때문에 정말 그 미친 여자의 그 삶으로 살았어요. 자고 나면 또 딸이 보이고 또 일어나서 꿈이면 또 배게통 안고 계속 그러고 울고, 너무 힘들게 산 것 같아요. 그리고 그 갈라지는 장면을 우리가 지금도 눈에 막 생생하지만 그게 지금도 생각하면 공포감이고 무섭기만 해요, 그게. 2살 난 딸 때문에 지금도 계속 그냥 막 저희 남편이랑 기도도 하고 만나게 해달라고 진짜 막 그러기야 하지만 그게 앞으로 어떻게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후 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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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녹음순번 계속 -

녹음순번-#03 (파일명:3 2012년 통일다규멘터리_미리보는 통일 한반도 2)

녹음일시-2012. 12. 4.

대 화 자-남자 1

전 략

 

남자 1 : 딸아이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그 당시 2살 된 딸아이를 업고 열 번째 탈북을 시도했다. 탈북은 성공했으나 그녀의 아이는 그녀 곁에 없었다. 탈북과정에서 누군가에게 잡혔고 지금은 딸아이의 생사조차 알 수가 없다.

 

후 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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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녹음순번 계속 -

녹음순번-#04 (파일명:4 탈북자 행복열차안녕하세요_ - 이순실 편)

녹음일시-2013. 3. 19.

대 화 자-이순실, 여자 1

 

전 략

 

여자 1 : 저 궁금해요. 간호장교가 어떤 일을 하는 군인인가요?

이순실 : . 원래 간호원으로 들어갔는데 간호원 그 양성소라고 그래요, 거기는. 간호양성소 6개월을 졸업하면 간호원 자격증이 주어져요. 그래서 간호원 생활을 하다가 22살에 군의대학을 들어간 거예요. 그래서 군의대학에서 총 4년을 공부하는데 여자들은 기간이 짧으니까, 복무연한이 짧으니까 4년 중에 2년만 대학공부하고 1년 정도는 실습이에요. 그런데 남자들은 4년 공부하고 1년 정도 실습, 이렇게 하거든요. 그래서 2년 반 동안 공부 끝나면 대학 졸업하면 거기에서 준의사 자격증을 줘요. 사회에 나와서도 의사는 못해요. 의사 밑에서 준의사로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기술자격증을 가지고 나와서 군부대에 군의소에서 수술 집도만 못해요. 마취, 집도는 못해요. 그냥 그 보조역할을 해주는 군의 바로 밑에서 일하는 거죠.

 

중 략

 

이순실 : 그것을 가지고 든든하게 생각하고 장마당에 와서 이걸로 사회생활 시작하자 하고 나갔더니만 세상에 쌀 1kg125원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40원 가지고 쌀 1kg도 못 산 거 아니에요? 11년의 그 군사복무값이 쌀 1kg값도 안 되는 그런 생황을 한 거예요. 그래서 , 우리가 이렇게 살았구나.’ 청춘시절 고스란히 11년 동안, 16살에 군대 가서 29살까지예요. 그 기간을 제일 청춘의 그 정말 아름다운 시기를 다 조국에 바쳤는데 우리한테는 쌀 1kg도 못 사는 돈을 줬구나.’

 

중 략

 

여자 1 : 그런 생활 때문에 뿔뿔이 헤어지게 됐다는 말씀이잖아요?

이순실 : .

여자 1 : 그러면 꽃제비 생활했을 때 어떠셨어요?

이순실 : 완전히 겨울, 여름 뭐 사계절을 바깥에서 그냥 짐승처럼 불소처럼 사는 거예요. 그래서 자갈밭에서 자고 하늘을 지붕 삼아 사는 거예요. 거기에서 또 애기까지 낳았어요, 제가.

여자 1 : 그때 낳은 아이가 2,

이순실 : 그렇죠.

 

중 략

 

이순실 : 애기를 가지고 정말 여성, 여성들이 대한민국에서는 입덧을 해도 얼마나 행복한 입덧을 해요? 그런데 제가 그때 제일 먹고 싶었던 것이 새빨간 양념을 무친 돼지고기국이었어요. 돼지고기가 그렇게 먹고 싶고 하얀 쌀밥이, 거기에다 막 밥 말아서 먹고 싶은 게 저의 입덧이었던 것 같아요. 그거를 못 먹어서 그냥 매일 우는 거예요. 서러워서, 임신에 대한 그 행복감이 아니라 애를 가졌다는 막 그런 뭐랄까? 불행이에요. ‘이렇게 내가 애를 어떻게 바깥에서 낳지?’ 그런데 어느 덧 열 달이 다 차서 애를 낳게 됐어요. 그런데 애 낳을 자리가 없는 거예요. 짐승들도 자기가 새끼를 낳으면 자기 자리가 있어요. 새끼 낳을 둥지를 찾는 거예요. 그런데 이거는 사람인데 애 낳을 자리가 없는 거예요. 바깥은 다 꽁꽁 얼었고 정말 지나가는 사람들 진창이 와서 그렇게 아파서 울어도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도 않아요. 그래서 제가 애 낳을 자리를 찾아간 것이 역전 옆에 그런 무슨 화구간이에요. 불 때는 그런 아궁이 앞이에요. 거기 들어가 앉아서 막 진통이 와서 막 배가 아파 그러는데 지나가는 할머니가 배도 쓸어주고 잔농도 쓸어주고 그러다가 이제 진통이 끝나고 이제 임신하게 됐어요. 애를 받아줬어요. 그런데 탯줄을 끊어야 되는데 아무 것도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옆에 유리 깨진 유리가 있었어요. 그거를 바지에다 뻑뻑 닦아서 코를 흥흥 이렇게 해가지고 그걸로 탯줄을 자르는 거예요. 그래서 내 엄마가 아니라도 지나가는 할머니가 그렇게 자기 딸자식 해산방조하는 것처럼 해줘도 그 아픔보다도, 진통의 아픔보다도 할머니가 너무 고마워서 저 엄마 생각나서 엄청 울었어요. 그때 제가 애 낳으면서 울었던 눈물도 막 얼었어요. 그렇게 추운 날이에요.

 

중 략

이순실 : 태어나서도 젖 한 모금 못 먹인 죄로 그나마 그래도 너가 살 때까지는 나도 살기 위해서 노력하겠다 하고 매일 압록강에 가서 그 얼은 물이라도 먹고, 막 그 다음에 압록강에 물 길러오거든요. 그래서 거기 할머니들 보고 된장이라도 좀 한 숟갈씩 달라고 해갖고 된장물 풀어서도 먹고, 그러면서 그냥 그 애기를 위해서 그냥 산 것 같아요. 그래도 바깥에서 사는데도 애기가 감기 한번 안 걸려요. 정말 지독하게 생명이 붙어있더라고요.

여자 1 : 정말 그 애기 생각하면 이렇게 가슴속 밑바닥에 있는 그 눈물까지도 다 쏟아 부어도,

이순실 : 그렇죠. 저는 지금 눈물 다 말랐다고 생각해요.

여자 1 : 그런데 또,

이순실 : 그런데 자식 생각하면 자식 때문에 우는 눈물은 안 말라요, 정말.

여자 1 : 그런데 아까도 이제 말씀 계속 이어지지만 북한 탈출을 9번 하셨다 그랬어요.

이순실 : .

여자 1 : 정말 그 바닥까지 내려갔기 때문에 이제서는 이해가 되네요. ‘9번 하실 수 있었겠구나.’

이순실 : 정말 그 9번 탈북하는 과정에 한 네 번째까지는 제가 홀몸으로, 그때는 애가 없을 때니까. 그때부터 계속 탈북했다 잡히고 막 계속 그랬는데 임신했을 때 중국 변방대에 잡혔을 때도 중국 공안들이 임신부라고 따로 독방에다가 재우고 밥도 따로 재웠어요. 임신부 대우를 해줬어요. 그런데 북한에 가니까 이 종자가 누구 종자인가 물어보는 거예요. 그래서 저희 그때 그 남편이 맨 2군단에 있었어요. 그 남편 이름을 대면서 이렇게이렇게 살다 나와서 지금 집에도 못 들어가고 있다. 그래서 그 사람 애다.” 그렇게 설명을 시켜서 그 애는 그나마 붙어살았어요. 다른 애들은 중국 조선족 애들은 와서 다 강제낙태 다 시켰어요. 주사로 약 배에다가 주사 놓고 다 그냥 살아있는 애기를 다 죽여서 다 꺼냈어요. 그래서 그래도 살려낸 애예요, 나는 그거는. 그렇기 때문에 정말 조마조마했어요, 마지막 낳을 때까지.

여자 1 : 그런데 9번이라는 그 시간 동안은 북송되고 탈출하고,

이순실 : 감옥에 들어가고,

여자 1 : 감옥에 들어가고,

이순실 : .

여자 1 : 정말 그러면서도 희망이 있으셨어요?

이순실 : 희망이라는 것이,

여자 1 : 여기 대한민국에 올 수 있다는?

이순실 : . 그것이 왜 희망을 가졌냐면 가다가 잡힌 애들이 왔어요. 한국 가다가 잡힌 애들이, 북한에서 중국 가다 잡힌 애들은 감옥생활 하면 끝이지만 한국 가다 잡힌 애들은 거진 총살이에요, 그거는. 사형감이에요. 그런데 거기 정신이 조금 이렇게 혼돈된 아이처럼 정신병자처럼 위장한 아주머니가 있었어요. 그러니까 자기는 길도 몰라서 막 갔는데 그냥 한국 가는 길이었다.” 이렇게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사람은 그냥 중국까지 갔다 온 걸로 취급해서 우리 호실에 갖다 잡아넣더라고요. 그런데 그 사람이 얘기를 하는데 한국 가는 길을 얘기해주는 거예요.

여자 1 : 정신 나가신 분이 아니시구나.

이순실 : 아니죠. 그렇게 위장을 한 거예요. “나는 그냥 아무 데나 정신없이 다니다 보니까 거기 가다가 잡혔다.” 이렇게 된 거예요. 그러면서 그 아주머니가 얘기하는 것이 너네 살아있을 때 힘이 있을 때 한국 가라. 분명히 가는 길이 있다. 우리 앞서서 간 사람들도 다 성공해서 갔다, 우리는 잡혔지만.” 이런 거를 알려주는 거예요.

여자 1 : 그때 희망이라는 걸 아셨네요?

이순실 : ‘나는 죽어도 이제 여기 나가면 간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와서도 몇 번을 잡혔어요. 그래도 또 가고 잡히면 또 가고 또 가고, 10번 만에 성공한 거예요.

 

중 략

 

여자 1 : “우리 부인, 우리 부인하는 게 바로 눈에 보입니다. 어떻게 만나셨어요, 남편분은요?

남자 1 : 제가 원래 하나원 나와서 집을 분양을 받아서 이렇게 집 배정을 받아갖고 들어갔는데 집에 아무 것도 없었어요. 그냥 키 하나 들고 들어가서 하나원에서 준 이불로 덮고 자고 아침에 일어나 보면 빈 방, 그런데 우리 탈북자들이 언니 우리 컴퓨터를 배우자. 컴퓨터를 배우면 컴퓨터로 북한도 볼 수 있대. 그리고 북한에 자기 집 마당까지 볼 수 있는 위성이 있대.” 이러면서 막 그러는 거예요. 그런데 돈이 있어야지 컴퓨터를 사잖아요. 그래서 생각다 못해 제가 그 인터넷 갖고 있는 그 컴퓨터 있는 집에 찾아가서, 거기 통장 어머니예요. 그 어머니 집에 가서 우리 컴퓨터를 배워줄 사람을 찾아달라고 올려달라고 그랬어요. 그랬더니 이 어머니가 봉사센터에다가 이 글을 올렸어요. “탈북자들을 한 10명 정도 무료로 공부시켜주실 분 있으면 찾습니다.” 이렇게. 그러니까 저희 남편이 우리 주소를 따라서 온 거예요. 그래서 와서 자기 노트북을 열어놓고 배워주기 시작했어요.

여자 1 : 컴퓨터만 배운 게 아니라 사랑도 배우신 거,

이순실 : 그런 것 같아요. 매일 3시간 배워주고,

여자 1 : 매일 3시간이나요?

이순실 : . 7명이 한 집에서 배웠어요.

여자 1 : , 대단하시네요.

이순실 : . 그리고 퇴근해서 다음에 와서 또, 또 와서 배워주고, 그러다 보니까 나이는 몰랐어요.

여자 1 : 그렇죠. 사실 뭐 선생님하고 나이 물어보고 그런 거 없잖아요.

이순실 : . 그런데 설날이 돼 왔어요. 우리가 12월 달에 하나원 나와서 1월 달에 이제 우리는 양력 11일을 쇠거든요, 북한에서. 그래서 11일이니까 여기도 11일 그때 쇠는지 알고 그 사람 보고 우리 11일 때 설 쇠야 되지 않습니까? 설을 쇠야 되는데 한국에는 설을 어떻게 쇠요?” 하고 물어보니까 그러면 우리 집에 가서 설 쇠는 거 구경하실래요?”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그러면 따라가도 돼요?” 그래서 따라갔어요.

 

후 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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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순번-#05 (파일명:5 이순실 몽골수용소에서 분위기 메이커)

녹음일시-2013. 6. 3.

대 화 자-이순실, 김수경, 강성연, 남희석, 김영철, 이용식

전 략

 

김수경 : 안녕하세요? 저는 함경남도 신포에서 온 김수경이라고 합니다. 훈훈한 이미지를 갖고 있고 어머니의 품성으로 동생들을 잘 돌보고 있다는 그분을 폭로하러 나왔어요. 그분은,

남희석 : 누구일까요?

김수경 : 순실이 언니예요.

남희석 : , 순실이 언니.

강성연 : 어머 순실이 언니에 대해 폭로할 게 뭐가 있어요?

남희석 : 너무 포근한 우리 친누나 같고 형님 같고,

강성연 : 우리 맏언니인데,

김수경 : 순실이 언니랑 저는 몽골에서 같이 수용소 동거생활을 오랫동안 같이 해왔어요. 그런데 언니의 특유한 습관이 있어요. 이렇게 수용소를 입소를 쭉 하면 이렇게 애들이 이쁜 옷을 입었나부터 이렇게 쭉 훑어보시더라고요. 그러고는 여기 와서 이쁘니까 옷을 벗어. 이것을 내가 입어야 돼.” 자기 풍채에 안 맞는데도 불구하고,

남희석 : 오늘 아무튼 순실 씨, 순실 씨 보복 없기, 보복 없기.

이순실 : 반성하고 있어.

김수경 : 그래 가지고 그날 새로 들어온 애들한테 이렇게 노래를 시키더라고요. 그런데 언니가 노래에는 관심이 전혀 없어요.

남희석 : 그럼?

김수경 : “니들이 매고 온 배낭 속에 사탕이 있냐?” 그래서 저분은 어디서 온 분이냐 하니까 모두 그분에 대해서는 얘기를 하지 말래요. 뭐 덩치가 킹콩 같으니까 덤비지 말고, 그 다음 저 언니한테 잘못 덤비면 사자 밥이 된다. 그래서 저희는 말을 아예 못했어요. 그런데 이제 몽골에는 식당 근무를 서는 조가 있어요. 그런데 언니는 그거를 무조건 서야 돼. 자기가 밥을 해야 돼. 밥을 안 하면 안 돼, 거기에서.

김영철 : , 식당근무를 하는 거예요?

김수경 : . 식당근무.

김영철 : 왜요? 자기가 식당근무를 해요?

이용식 : 임무야?

김수경 : 밥을 해야 거기에서 누룽지라도 많이 먹을 거 아니에요?

이용식 : 양을 많이 먹기 위해서.

김수경 : 그래 양을 많이 먹으니까, 먹고 살쪄야 돼. 거기에서 100kg 나가든 90kg 나가든 본인은 몰라. 우리가 볼 때는 완전 덩치가 아, 꽃돼지? 꽃돼지라면 즐겨. 꽃돼지라 하니까 그거는 듣기가 좋대요. 그런데 어떤 날 누가 멧돼지라 했더니 호실마다 문을 열어보면서 멧돼지라 한 애 나와라. 한 판 뜨자.”

남희석 : 자기가 방마다 가서 얘기한 거예요? 멧돼지라고 그런 사람 나오라고?

김수경 : .

남희석 : 그거 다 소문났잖아, 모르는 사람까지.

김수경 : 그렇죠. 그러니까 하는 거예요, 거기에서.

이순실 : 멧돼지 소리를 남자들이 지어놨더라고요. 그래서 남자들 때려줘 갖고 그 남자들 코피 났어.

 

후 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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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순번-#06 (파일명:6 탈북미녀 이순실, 배고픔에 우는 아이에게 줄 것이 _죽은 병아리_부끄에 없어.._채널A_이만갑 82)

녹음일시-2013. 7. 11.

대 화 자-이순실, 강성연

 

강성연 : 이순실 씨가 말하는 꽃제비 생존의 법칙 썩은 음식이라도 일단 입에 넣어라.”

이순실 : 제가 애기를 업고 어느 농촌으로 들어갔어요. 거기에는 그 농촌에 그 배추에다가 우아독스라는 농약을 쳐가지고 그 밭에 풀어놓은 병아리들이 그 벌레 잡아먹다가 다 죽었어요. 그런데 그 병아리를 죽은 거를 거름 하려고 그 밭고랑에다 쭉 늘어났더라고요. 보니까 털은 털대로 다 떨어지고 벌써 갈비도 다 보이는 정도로 그렇게 병아리가 완전히 부패된 건데 그 병아리들을 다 걷어가지고 개울에 가서 털을 뽑는데 살도 막 떨어져요. 그런 걸 양재기에다 끓여가지고 먹는데 뒤에 있는 애기가 계속 먹겠다고 달라고 그러는데 그 독성물질이 있어서 그 애기한테 주면 안 될 싶은 것도 그냥 우리가 씹어가지고 국물은 빨아먹고 고기 건더기를 줬었어요. 그런데 너무도 계속 먹겠다 그래 가지고 그 뼈다귀를 줘가지고 그거를 하루종일 빨아서 그 뼈가 정말 흐물흐물해질 동안 그거를 빨아먹는데 그 배고픈 애한테 먹을 거 하나 못 주는 게 너무 안타까웠어요. 그런데 지금 제가 느끼는 게 뭐냐면 , 가슴 아프다. 가슴 아프다.’ 하는 게 뭔가 이제 느껴요. 여기가 막 아파요, 지금. 아파서 제가 지금 말을 못하겠어요. 중국하고 북한에 오고가는 그 세간다리가 있어요. 그 다리 밑에서 비닐방막 하나 의지해서 그 방막 깔고 방막으로 애를 돌돌 말아가지고 그거를 배낭에 담아가지고 그냥 안고 자고, 그 다음에 너무 추울 때는 아침에 깨어나 보면 애가 꼼지락꼼지락 하는 게 너무 진짜, ‘, 살았구나하고 안도의 숨을 쉬고, 갈 데 없으면 그 아파트 위에 들어가면 아파트 위에 그 창문에 그 복도에 창문에 유리가 하나도 없어요. 그 유리 밑에 계단 밑에서 자면 새벽에 그 주인집 아이가 학생 아이가 나오다 깜짝 놀라면서 엄마 우리 집 앞에 쌍제비 왔어. 쌍제비.” 하면서 막 우는 거예요, 무서워서. 그런데 우리 꼬라지가 너무 무서운 거예요. 새까맣고 그냥 방막 하나 뒤집어쓰고 그 앞에서 창문통 밑에서 앉아서 이렇게 있는데, 그런데 본능적으로 그 잔등에 있는 애가 그 문 열리니까 나를 보고 들어가서 먹을 걸 구해내래요, 애가. 막 거기 들어가자 그래요, 애가. 그런데 그 주인집 엄마가 문 열고 보다가 야 밤새껏 여기에서 어떻게 얼지 않고 이렇게 살아있냐고, 문이라도 두드리지 왜 이렇게 하고 있냐고 이러면서 그나마 거기에다가 강냉이 가루 죽이라도 내줘서 그거 먹고, 그 집에서 양말, 어른 양말 몇 켤레 준 걸로 아이 손에다 끼우고 발에다 끼우고 바지처럼 이렇게 입히고 이렇게 나왔어요. 그래도 동정해주는 사람들은 그나마 주는데 자기네 집 앞에 있거나 그러면 막 쫓아버려요, 자기네 거 다 훔쳐간다고. 그래 가지고 정말 어렵게 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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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순번-#07 (파일명:7 8번의 북송을 통해 이순실이 겪었던 끔직한 고문_채널A이만갑 84)

녹음일시-2013. 7. 23.

대 화 자-이순실, 김영철

전 략

 

김영철 : 그런데 얘기 들어보니까 순실 씨한테 왜 유난히,

이순실 : 왜 그런지 아세요? 조선노동당원이었고, 10년 동안 국가에서 정말 잘 키워줬고, 또 아버지랑 다 좋은 내역에서 그렇게 자꾸 도망하고 가면 잡혀오고 가면 잡혀오고 그러니까 갈 때마다 그 감옥에서 나갈 때마다 다시 안 간다고 손지장 찍었어요. “너 다음번에 들어오면 죽여 버린다.” 그렇게 손지장 찍고 나갔어요. 일곱 번째 여덟 번째는 때리지도 않더라고요. 그냥 독방에 가둬놓고 너 말라 죽으라.” 물도 한 모금 안 주는 거예요. 그래도 애기가 있으니까 또 하루 지나서 꺼내다가 또 그냥 아무 데나 또 집어넣어서 그 사람들하고 같이 있게 하고 그런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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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순번-#08 (파일명:8 나남북녀 커플, 황유성 이순실 부부의 간증@통일북소리 8(MC. 김경란, 오지헌))

녹음일시-2014. 5. 20.

대 화 자-이순실, 김경란, 오지헌

 

전 략

 

이순실 : 자녀들한테 다 얘기를 해주시면서 키웠기 때문에 6형제가 다 군인이었고 다 주의교였어요.

오지헌 : 그러면 장녀였어요?

이순실 : . 제가 간호중위로,

김경란 : 그렇구나. 아니 지금 말하는데 순실 씨도 모르게 6형제라고 했어요, 6형제,

오지헌 : 맞아요, 맞아.

김경란 : 세 분이 여성이세요. 그러면 이렇게 6남매 중에 딸은 순실 씨 한 분이셨어요?

이순실 : . 여자애 3, 남자 3, 그런데 지금 살아남아있는 게 그냥 몇이 안 돼요. 다 지금,

김경란 : 그렇군요. 그런 어린 시절에 그런 이야기를 듣고 진짜 이제 군 생활을 그러면 하시게 되신 거예요?

이순실 : 군대 나가기 전에 학교에서 원래 그 16살 졸업하기 전에 그 군단 체육단에서 그 1개 체육부서를, 부를 통째로 체육단에 데리고 갔어요. 그래서 제가 배구선수였는데 그때 거기 들어가서 16살 때부터 군인신분이 아닌 반유급 신분으로, 오전에는 학교에 가서 공부하고 오후에는 군부대 가서 배구훈련을 하면서 반유급제 생활을 했어요, 3년 동안. 그런데 그것이 군사복무 기간에 채워주지 않았는데 후에 군사복무 연한으로 다 해줬어요. 그래서 16살 때부터 군대 나가서 29살 때까지 군복무 한 거예요. 그러니까,

김경란 : 13?

이순실 : 3년을 제끼면 11년이거든요. 그런데 3년까지 합쳐지면 그냥 만 13, 13년 돼요. 그렇게 한 거예요.

김경란 : 그러면 뭐 남들은 뭐 군사깡패라고도 불리고 어쨌든 누가 봐도 천상 정말 군인의 피가 흐른다라고,

 

중 략

 

김경란 : 그래서 군생활 이야기 좀 더 들어볼게요.

이순실 : 말 자체로 인민군 되면 나라와 당과 수령을 위해서 복무하는 전사잖아요. 그런데 군사복무 11년 동안에 너는 무엇을 배웠냐 하면 저는 배운 거라는 건 오직 한 가지 그냥 도둑질밖에 배운 게 없어요. 왜 그러냐면 북한 여군들도 도둑질을 하지 않으면 먹고 살 형편이 안 돼요.

 

중 략

 

이순실 : 그런데 제대비를 제가 40원을 받아가지고 제대돼서 딱 사회에 나와 보니까 와, 정말 당장 아침에 일어나서 끓여먹을 게 아무 것도 없는 거예요. 어머니가 쓰다가 남겨두신 그 물건 그런 재산도 몽땅 그냥 막내동생이 집에 있으면서 하루 한 끼를 유지하기 위해서 장마당에 가서 팔고 그것을 먹고 살고 또 처녀, 꽃처녀가 어디 나가서 뭐 그렇게 거지생활을 못하겠으니까 그냥 있는 거 다 팔아먹고 그나마 아무 것도 없으니까 집을 나가서 꽃제비 생활 들어가 버린 거예요. 그래서 아니 40원 들고 장마당에 나왔는데 쌀 1kg 강냉이 쌀 1kg125원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정말 나는 거기에서 깜짝 놀랐어요. 그리고 집에 들어와서 강냉이 쌀, 강냉이 가루를 조금 사갖고 집에 와봤는데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동네에 거지들이 또 문을 두드리면서 물 좀 주세요.” 물 달라는 소리는 그 물에 된장을 풀어서 이렇게 달라는 소리예요. 맹물이 아니에요. 바깥에 우물도 있고 다 있어요. 개울물도 있고, 그런데 물 좀 주세요.” 하면 간장물이라든가 된장물이라도 풀어서 줘야 되는 그 물이거든요. 그런데 나도 먹을 게 없는데 정말 너무, 그 이야기들을 어떻게 우리가 모여서 뭐 몇 분 동안에 다 풀어내겠어요?

오지헌 : 위치가 어디였어요? 그러니까 어디 살았어요?

이순실 : 저는 평양에서 태어났지만 개성에서,

오지헌 : 개성, 그러면 얼마 멀지,

이순실 : 개성도 전방 구역이기 때문에 평양하고 거진 가까운 공급체계가 되어 있었어요, 원래.

김경란 : 그러니까 막 굉장히 열악하고 막 저 산골짜기의 어떤 시골도 아니고,

이순실 : 그렇죠.

김경란 : 정말 이렇게 평양과 인접한 곳에서 오히려 더 격차를 크게 느끼시면서, 아우 정말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제가 아까 열여섯에 이제 군대에 들어가서 13년 계셨다 그러셨는데 그러면 스물아홉에 이제 나오셨을 텐데 그래도 북한에서는 좀 결혼을,

오지헌 : 일찍,

김경란 : . 좀 어느 정도 할 것 같은데,

이순실 : . 결혼을 제가 그 같은 중대에서, 같은 부대에서 입당보증인이 중매로 이렇게 맺어진 그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시집을 가보니까 나 혼자서 그 6명 식구를 다 먹여 살려야 되거든요.

김경란 : 오히려 가장처럼,

이순실 : 증조할머니, 증조할아버지, 시어머니, 시아버지 뭐 온 집안이 거진 다 모여서 살거든요. 그 다음에 큰아들, 또 불구자 된 큰아들, 그러니까 여기로 말하면 장애인 그 큰아들도 집에서 있고, 그러다보니까,

오지헌 : 돈 벌 사람이 없었구나.

이순실 : . 나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데 그 식구들이 다 풀을 한 사발을 뜯어 와도 거기에서 다 나눠먹어야 되고 그렇게 살아야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도무지, 아무리 내가 그렇게 해다 줘도 돌아오는 거는 욕설뿐이고 그냥 막 치부하는 소리뿐이고, 그런데 그거는 남편이 또 술을 좋아해요. 그런데 군인들은 술을 좋아하면 안 돼요. 제대시켜요, 그것도. 비판대상이고, 이 사람이 그 모든 사회, 그 다음에 자기 가정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그 술로 다 해소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하다못해 알코올이라도 갖다 줘야지 그거 먹으면 잠을 자는 정도로, 그냥 맨 정신에는 손이 안 나오면 욕이 나오고 막 그래서 이거는 아니다. 나는 여기에서는 더는 못 살겠다.’

오지헌 : 그러면 도움을 하나도 못 받은 거예요?

이순실 : 도움이, 거기는 도움을 받는 게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해서 시집을 가는데 거기에서도 살 수 없는 경황이 됐죠. 그래서 이러면서 그냥 꽃제비가 시작된 거죠, 그냥.

오지헌 : 그러면서 이제,

김경란 : 순실 씨도 꽃제비 생활을 하시게 되셨죠.

오지헌 : 그분이랑 같이 이제 뭐 혹시 아이나 뭐 이런 것들을,

이순실 : . 그때 당시는 아기가 없었어요. 그때는 없었고 이렇게 꽃제비 생활하면서 나갔다 들어갔다 하고 또 선거 때마다 이따금씩 또 사람들을 다 모아놓고 주민등록을, 이렇게 주민등록 이거 점검을 하는 거예요. 누가 죽었는지 누가 행방불명 됐는지 인원조사 같은 그런, 그런 게 있어요. 그때 그냥 거기 또 붙어있어야 되기 때문에 거기 갔다가 저기 갔다가 이러면서 그간에 그냥 또 아기를 가지게 된 거예요. 그런데 그 북한에서 임신되면 저 천덕꾸러기가 또 임신됐다고 막 그러고 막 좀 이 시대에 무슨, 뭐 왜 애기를 낳아?” 막 이 정도로 욕을 먹을 정도였거든요, 그때도 막. 그런데 그 애기가 태어나는 것도 역전에서, 혜산 역전 그 보일러실에서 낳았거든요. 그런데 그 보일러라는 것이 여기처럼 손만 똑똑똑똑 누르면 뭐 전기가 가고 뭐 이렇게 뭐 통하고 이런 게 아니라 불을 판을 피워서 재를 긁어서 그렇게 열을 보장하는 곳이에요. 거기에서 이 재를 파서 바깥에 버리면 그 잿무지가 따뜻해요, 열이 있으니까. 임신은 됐지, 당장 진통은 오지, 애기는 낳아야지. 자리가 어디 있어요? 그 재탄무지에다가 비닐방막 깔고 앉아서 아기 낳을 걸 기다리고 막 진통을 앓는데 사람들은 저 여자는 죽었어. 얼어 죽어. 얼어 죽어.” 사람 취급을 안 해줬어요. 그런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렇게 취급을 안 해도 정말 엄마 같으신 그 할머니가 한 분 지나가다 가다 돌아보다 또 돌아보다 돌아서서 오시면서 잔등을 쓸어주시고, 이렇게 보니까 애기 기저귀도 없어, 옷도 없어, 하다못해 가위도 없어, 실도 없어, 탯줄을 끊어줘야 되는데 아무 것도 없어요. 그러니까 아이고, 아이고하더니 더 재무지 옆에 쓰레기장이 있는데 거기에서 유리 깨진 거 주워오고, 할머니가 시커먼 앞치마를 길게 뜨고 다니는데 그 앞치마를 두루룩 해가지고 거기에서 실밥을 뽑아서 그렇게 해놓고 그 유리를 코로 흥흥 해갖고 소독해서 앞치마랑 다 닦아갖고 그렇게 해서 거기에서 할머니가 아이를 받으셨어요. 아기를 받으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고 아이고 꽃제비 주제에 무슨 애기를 낳는다고 저기 나와서 애기를 낳노?” 막 그래요. 그런데 그 할머니가 이렇게 바라보시더니 막 잔등이랑 쓸어주시면서 울지 마라. 울면, 애기 엄마들이 울면 눈이 차. 시력이 안 좋아져.” 그러면서 울지 마라. 울지 마라.” , 그때 그 엄마 생각나서 엄청 울었어요. 그리고 할머니가 나한테 그 앞치마 시커먼 앞치마를 벗어서 애기를 싸서 주시면서 안아주시면서 빨리 장마당으로 가라. 장마당에 가면 너는 죽지 않는다. 애기를 봐서라도 너는 누가 쉽게 죽이지는 않을 거야. .” 그러면서, 얼어 죽을 것 같은 그런 추위예요. 1125일 날 애기가 태어났는데, 장마당 역전 그 역전 장마당 앞에 들어가는 입구에 앉아서 그 애기를 안고 노래를 불렀어요. 그런데 그 장마당 엄마들이 내가 임신돼서 떠도는 거를 다 봤거든요. “아이고 너 죽지 않았구나. 너 애기 낳았구나.” 그러면서 여기에서 또 뭐 조금 갖다 주고 저기에서 조금 갖다 주고, 그 다음에 최근에 저희 남편하고 그분을 만났는데 그 생선가게 아주머니가 내가 너무 추워하니까 자기네가 이렇게 장마당에서 생선을 팔면서 발 시리지 않게 천마대, 그 마대를 깔고 서있던 그 마대를 뽑아다 저의 무릎에 씌워주고 가셨어요. 그러면서 생선대가리라도 남으면 저녁 때 비닐봉지에 싸서 끓여먹으라고 주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그 아주머니가 나를 TV로 보고 찾았어요. 그래서 저희 남편이랑 가서 고맙다고 인사도 하면서 밥도 같이 먹고 그랬는데 그 아주머니가 나를 보고 울더라고요. 죽은지 알았대요. “당신은 꼭 죽었을 거야.” 어떻게 살아났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대요. ‘그 애기 엄마 죽었겠다. 죽었겠다.’ 장사꾼들이 다 그랬대요. , 정말 그 노래를 부르고 또 파라티푸스라는 열병에 걸려갖고 다리 밑에서 그 애기를 키운 거예요. 비닐방막에 하나 이불밖에 없어요. 그 이불이라는 게 비닐방막을 하나 싸서 이렇게 애기를 데리고 자면 아침이면 그 방막 안에 막 서리가 하얗게 앉았어요, . 그러면 애기는 입술이, ‘애기들은 입술이 이렇게 다 새파란가?’ 처음으로 애기 낳아갖고 봤을 때는 애기들은 아직,

오지헌 : 추워서?

이순실 : . ‘입이 왜 이렇게 새파랗지?’ 그러면서도 애기가 뭐 얼어 죽지도 않았고,

김경란 : 신통하게 잘,

이순실 : 그리고 바깥에서 소독한 그런 유리도 아닌 그런 걸로 탯줄 잘랐는데도 염증도 없었고,

김경란 : 아유 다행이네요.

이순실 : . 정말 어떻게 그 아이가 거기에서 살아났는지 알 수 없어요. 그래서 거기에서 5년을 꽃제비 생활을 했어요, 5년을. 그러면서 애기가 이제는 거기에서 살다보니까 적응이 되는 거예요, 그 꽃제비 생활에. 그러니까 사람들이 지나가면 애기도 가만 잔등에 업혀있다가도 사람만 지나가면 아아아아 배고파.” 우는 거예요. 그러면 사람들이 이렇게 먹을 걸 갖다 주면 그 애기는 그 먹을 것을 가만히 갖고 있다가 사람들이 지나가면 빼가지고 엄마 입으로 이렇게 넣어주는 거예요. 그러면 나는 그거 받아먹으면서 , 내가 이 새끼 때문에 산다. 내가 너를 버리고 왜 죽겠니? 그냥 끝까지 살자, 살자.’ 죽기를 포기한 적이 엄청 많아요. 정말 둘이 다, 애기는 젖도 못 먹어요. 사람들이 갖다 주니까 먹고는 살아요. 그런데 나는 그냥 죽자 하고 아무 것도 안 먹고 안 마시고 다리 밑에 있어도 사람들이 어떻게라도 된장물이라도 갖다가 넣어줘요, 입에다. 그래서 또 살아나고 또 살아나고 아침에는 새파란 하늘 보는 게 왜 그렇게 싫은지, ‘아우 또 살아났네. 이놈의 목숨이 질기기도 질기다.’ 이러면서, 그러면 애기가 일어나서 엄마 우리 눈 떴네. 살았네.” 이것이 엄마한테 계속 듣던 말이니까 애기도 하는 말이 또 살았네.” 이게 애기가 하는 말이에요. 정말 싫었어요. 그리고 누워서 오늘 아침에도 촬영장 오면서 말을 하는데 하늘에 날아가는 새가 왜 이렇게 부럽냐고 내가 막 그랬어요. ‘쟤네들은 집이 없어도 살고 먹을 것이 없어도 쌀이 없어도 사는데 우리 사람들이라는 게 인간들이라는 게 왜 이렇게 살아야 되지? 내가 무슨 죄가 있어서 이렇게 살아야 되지? 정말 그 아까운 청춘시절 다 조국에 바쳤고 충성하고 입당하고 그렇게 살았는데 내가 무슨 죄가 있어서 이렇게 살아야 되지?’ 하면서 그 애기를 안고 계속 울고, 정말 눈물만 이렇게 눈물 흘리면서 살았어요.

김경란 : 아우 정말, 저희가 어떤 이야기를 해야 되고 뭐 어떤 위로의 말도 여기에서는 어울리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순실 : 제가요 그냥 북한에서의 그 삶이라면 저는 눈물밖에 없었다고 생각해요. 그냥 눈물로 살았어요. 그냥 많이 울었어요. 많이, 슬퍼서 울고 가엾어서 울고 불쌍해서 울고,

오지헌 : 그러시면서 이제 탈북을 결심하셨잖아요.

이순실 : 그렇죠. 거기에서 그렇게 그냥 죽을 수는 없더라고요. 내가 무슨 죄야?

김경란 : 그럼요.

이순실 : 그리고 너네들을 위해서 충성한 것밖에 없는데, 어린 시절부터 나는 조국을 지키고 너를 지키기 위해서, 장군님을 지키기 위해서 조국에 그 병사가 되는 걸 꿈을 가지고 살고 이제까지 군복무하면서 살았는데 나한테 잘해주는 게 뭐냐, 너네 대가가, 진짜 우리한테 대가가 뭐냐, 1kg라도 줬냐, 밥 한 그릇이라도 줬냐, 이거예요. 그래서 다리 밑에서 5년 동안 꽃제비 생활하면서 우리도 저 탈북이라는 걸 해보자.’ 그때까지도 나는 탈북이라는 걸 몰랐어요. 그냥 밀수꾼들이 왔다 갔다 하는 정도로 알고, 밀수꾼은 돈이 있기 때문에 저기 왔다 갔다 하는 걸로 알았지 우리 같이 굶는 사람은 넘어가는 것도 몰랐어요. 그런데 하루는 웬 아주머니를 장마당에서 만나게 됐어요. 그런데 그 아주머니가 저희 그 상급 사관장이었어요. 꽃제비 된 모습으로 아이 둘을 데리고, 그래서 제가 그 철국이 엄마인데 철국이 엄마라는 그 글을 써가지고 지금도 인터넷에다가 지금 이렇게 보여주고 있는데 그 사관장이 내가 앉아서 손을 내밀고 사람들한테 구걸하고 앉아서 애기를 보면서 이렇게 하고 손을 내밀고 앉아있는데 웬 빵을 이만한 걸 내 손에 쥐어주는 거예요. 그런데 그 아주머니는 나인 줄도 모르고 빵을 쥐어줬는데 내가 그 빵을 잡고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하고 얼굴을 들여다보는데 둘이 막 얼싸안고 막 통곡을 하며 울었어요. , 저희 상급 그 사관이었어요. 그 사람이 완전히 꽃제비가 돼 가지고 저를 거기에서 만난 거예요. 그래서 세상에 나는 너를 봐서도 너는 이 세상에서 꽃제비가 될 줄을 몰랐고, 남들이 꽃제비 생활을 해도 너는 안 될 줄 알았다. 그렇게 강인하고 용감했던 여자가 왜 이렇게 됐냐?” 이러면서 부둥켜안고 울고 막 그러면서 우리는 이렇게 더 못 살겠다. 우리 중국 가자. 중국 가서 빵이라도 한 개 얻어먹고 밥이라도 한 끼 얻어먹고, 얻어먹지 못하면 쓰레기장에 가면 그렇게 먹을 게 많다더라. 우리 가자.” 그래서 넘어왔어요. 처음에 넘어와서 그냥 그 겨울이다 보니까 강 그냥 막 뛰어서 왔어요, 우리는. 뛰어서 와갖고,

오지헌 : 애기를 안고요?

이순실 : 애기를 업고, 배낭에다 담아서 업고 그렇게 하고서 넘어왔어요. 어느 한 집 앞에 보니까 사과 이만한 비닐봉지에다가 통째로 버린 게 있더라고요. 그런데 보니까 다 얼었어요. 새파란 사과인데 그거를 다 언 걸 버렸어요. 그래서 그 사과를 개그맨 갈갈이 하듯이 막 이렇게 막 정신없이 갉아먹었어요. 그런데 뒤에서 뭐가 꾹 눌러요. 그래서 이렇게 올려다보니까 공안대가 와있어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우리가 너무 불쌍했는지 그 사람들도 일어서소리 못하고 빨리 먹으래요. 그래서 먹으래요. 그런데 무섭잖아요. 막 무섭고 떨리고 배는 고프고, 여기에서 잡히면 우리 또 이제는 또 굶는 데로 가야 되니까, 일단 먹고 보자. 옆에 총 든 사람이 있어도 그냥 갉아먹고 주머니 넣고 그거 챙기느라고, 사과 그 애도 나 줘. 나도 줘. 엄마 나도 줘. 나도 먹을래.” 그런 걸 공안대들이 다 봤어요. 한참동안 보더니 지네끼리 뭐라고 뭐라고 말하더니 우리를 봉고차에 태워갖고 변방대로 갔어요. 변방대를 가서 우리를 딱 들여보내는데 탈북자들이 엄청 많은 거예요, 거기에.

김경란 : , 거기 모여 있는 곳이었군요.

이순실 : , 그런데 그 3일 동안 거기에서 다 조사 받고 세관을 넘어서 북한에 보위부로 가는데 그 3일 동안 기간이 너무 아까운 거예요. 하루 자는 것도 싫고 시간 가는 게 싫은 거예요. 끼마다 거기에서 하얀 쌀죽에 돼지고기 그 껍데기 막 둘둘둘둘 말린 채로 막 이만한 거 이만한 거 막 끓여가지고 우리 주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가 숟가락으로 다 이렇게 잘라가지고 나눠먹거든요. 그게 왜 그렇게 맛있는지, 저희 평생 소원의 꿈이 하얀 쌀밥에 돼지고기 먹어보는 게 정말 꿈이었어요. 제가 지금도 고기 없으면 밥을 안 먹어요. 지금 한국생활 7년인데도 고기 없으면 밥을 안 먹어요. 3일째 딱 되는 날 애들이 막 걱정하는 거예요. “이제 건너가면 어떻게 되지? 어떻게 되지?” 건너가니까 아닌 게 아니라 때리고 패고 지지고 막,

김경란 : 그러면 다시 북한에 가신 거예요?

이순실 : . 북송을 시킨 거예요. 가면 그 보위부 생활이라는 것이 너네 갔다 오느라고 수고했다. 가서 거기에서 얻어먹고 사느라 고생했다.” 이런 소리가 아니라 이것들이 가서 장군님을

김경란 : 배신자, 배반자지.

이순실 : . 장군님을 망신시키고 북한을 배반하고 나라 개망신 시키고 왔다고 때리고 욕하고 그냥 보이는 게 다 고문도구고 허리띠까지 뽑아서 막 머리 찍고 막 그러거든요.

오지헌 : 혹시 아이는 어떻게?

이순실 : 애기도 다 잡혀가죠.

오지헌 : 애기도 때려요?

이순실 : 애기도 그 고문현장에 그 사고, 고문이라고도 안 그래요. 거기는 그냥 조사 받는다고 하죠. 그런데 조사 받는 게 그냥 때리고, 볼딱지나 때리고 궁댕이나 때리면 우리는 100번도 탈북하겠어요, 그렇게 그런 경우라면. 가면 그냥 보이는 게 고문도구예요, 그냥. 난로통에 꽂아놓은 그 재 굽는 갈고리로 이리 디밀고 저리 디밀어가지고 온통 다 데었어요, . 다 뜨거운 물 부어가지고 여기 머리카락 다 데이고, 뒤에는 머리카락이 없어요, 지금 제가. 이 손바닥도 코바늘로 다 찢어놓으니, 이 코바늘이라는 게 또 뭐냐면 그 쓰레기통에서 애기가 완전히 새빨간 발이 막 시퍼렇게 얼어요. 그래서 그 쓰레기통에 가보니까 뜨개실하고 코바늘이 있더라고요, 이만한 봉지에. 그래서 그 실궁데를 가지고 그 변방대 거기까지 잡혔는데도 다른 사람들은 다 짐을 회수해요, 변방대에서. 그런데 그 중국 공안들은 애기 양말 떠주라고 그냥 나한테 그 실을 주더라고요. 그래서 그거 가지고 보위부까지 온 거예요, 북한에까지. 그러니까 우리 짐을 여기에다 놓고 이게 뭐야? 이거 누가 줬어? 이거 어디에서 났어?” 계속 물어보는 거예요. 그래서 애가 그냥 그냥 주워왔습니다. 주워왔습니다.” 그런데 손을 이렇게 하고, 각지게 하고 비행기 유리줄자로 이렇게 땅땅 쳐요. 그러니까 이거를 자꾸 피했더니 손을 끌어다가 그 코바늘을 갖다 여기 다 찢어놓은 거예요. 그래서 여기도 그냥 다 찢어진 상태예요. 그냥 꿰매지 못하고 막 이렇게 부어가지고 엄청 고생했어요.

 

후 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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