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실(제240광수) 녹취록(중) > 최근글

본문 바로가기

System Club 시스템클럽

최근글 목록

이순실(제240광수) 녹취록(중)

페이지 정보

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0-11-14 21:08 조회226회 댓글0건
  • 트위터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본문

          이순실(240광수) 녹취록()

 

 

녹음순번-#09 (파일명:9 KTV 사랑합니다 대한민국죽음을 경험한 8번의 강제북송 탈북 간호장교 이순실’)

녹음일시-2014. 9. 1.

대 화 자-이순실

 

이순실 : 내가 늙어죽어도 그 애와 같이 갈 것 같아요. 지금도 영원한 2살로 내 엄마의 마음속에 있는 것 같아요.

 

후 략

 

 

녹음순번-#10 (파일명:10 탈북자들 앞에서 북한을 함부로 말하지 말라_)

녹음일시-2014. 12. 2.

대 화 자-이순실

전 략

 

이순실 : 평양산원에서 그 환영을 받으며 애기를 출산했지만 나는 역전 보일러실에서, 북한에서 태어난 나도 역전 보일러실에서 아기를 낳았습니다. 내 딸이 2살이 될 때까지 따뜻한 집에서 한번 재워보지 못했으며, 옷 한 벌, 아니 보송보송하게 마른 기저귀 한번 채워보지 못하고 잔등에 오줌덩이 절도록 업어서 키웠지만,

 

후 략

녹음순번-#11 (파일명:11 탈북, 그 행복한 선택_방송인 이순실 간증집회)

녹음일시-2015. 8. 15.

대 화 자-이순실

전 략

 

이순실 : 2군단 15사단 여기에서 군의소에서 간호장교를 하다 왔어요. 그래서 간호장교라고 하면 대한민국처럼 3, 2년짜리가 아니라 온군 11년짜리, 여기 11년 군복 맨 사람 나와 보라 그래. 없제?

 

중 략

 

이순실 : 제가 평양시 보통강 구역 낙원거리에서 태어났어요. 그래서 제가 잘나서 평양에서 산 것도 아니고 그냥 우리 집은 예로부터 못 살았어요. 못 살았어요. 잘 살다가 못 산 게 아니라 그냥 못 살았어요. 그런데 아버지가 군인이다 보니까 평양방호사령부에서 일을 하시다 보니까 평양에서 태어났고, 또 인민학교 4학년까지 평양에서 공부를 하고, 또 아버지가 2군단 사령부로 소환되면서 황해북도 평산군 와연리라는 곳에 2군단 사령부가 있어요. 여기로 내려왔어요. 그런데 어머니는 군단장 요리사를 하셨기 때문에 그래도 어머니나 아버지를 보면 우리는 북한에서 보면 출신성분이 대단한 집안이에요. 괜찮죠? 그만하면. 다 머리를 끄덕이시니까 인정받는 집안이기는 했어요. 그런데 잘 살지는 못했어요. 아버지가 별 두 알 달고 있는 중자였지만, 두 줄에 두 알이었지만 집에 TV도 없고 에어컨도 없고 뭐 아무 것도 없어요. 그냥 이사만 열심히 다니는 집이었어요. 이불장도 없고 그냥 폭탄상자,

 

중 략

 

이순실 : 나는 꿈이 그냥 인민군대가 되고 싶었고 아버지가 어렸을 때부터 인민군대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도둑질만 배워줬어요, 어렸을 때부터. 여러분들은 어머니 아버지들이 어렸을 때부터 예쁜 꿈만 배워주고 착한 일만 배워주고 정말 이런 것만 배워주잖아요. 북한에 그렇게 교육하면 군대 가서도 왕따당하고 머저리 취급받아요. 그냥 그래서 아버지가 늘 그냥 맨날 도둑질만 배워주는 걸 배웠어요. 이렇게 학교 갈 때마다 아버지가 손잡고 가요. 군부대하고 학교하고 갈림길에 딱 들어서면 아버지가 저기 이렇게 보다 얘야 저기 무슨 강냉이 상자가 있다. 저 강냉이 자루를 가서 뚫어가지고 가방에다 한 가방 좀 가져와.” 이러면 . 알았습니다, 아버지.” 하고 가서 그냥 자루에 막 퍼다가 가방에다 퍼 담고 와서 척 보여주면 아버지가 잘했어. 잘했어.” 이것이 교육이에요. 그냥 어디에 가다 야 저기 감자 익은 것 같다. 감자 캐라.” 또 어디 가다가 누구네 옷 있으면 저 옷 걷어 와라. 신발 훔쳐 와라. 호미 훔쳐 와라.” 별 거 다 훔치는 걸 배워줬어요. 그래서 아버지가 배워준 도둑질로 군대 나가서 도둑질 잘해서 입당도 했고 도둑질 잘해서 표창도 받았어요. 왜 그러냐면 북한에는 도둑질을 못하면 바보라니까, 여러분들 지금 북한을 몰라서 웃죠. 북한은 도둑질 잘해야 돼요. 그래야지 살아남아요. 그리고 2군단 15사단이라고 하면 바로 전방초소하고 마주하고 있어요. 여기는 남한이고 북한이에요. 김일성, 김정일이가 제일 많이 현지지도 온 곳이 2군단 15사단이에요. 대덕산리, 장풍군 대덕산리 파주 쪽에 있어요. 그래서 제가 거기 딱 학교를 졸업하고 배치 받았는데 정말 여러분들 보기에는 탈북자 치고 제가 키가 크잖아요. 맞죠? 제가 170이에요. 왜 큰지 알아요? 엄마가 여의사니까 어렸을 때부터 계속 맛있는 것만 갖다 먹였고 그 맞다 먹이는 것도 다 훔쳐다 먹인 거예요, 엄마가. 바께스에다가 맨날 한 바께스씩 갖고 오는데 뭔지 알아요? 군대들이 먹다 남은 밥, 그 다음에 먹다 남은 고기, 생선튀김 이런 거 갖다가라도 열심히 먹였으니까 우리가, 우리 집 종자는 다 키가 커요.

 

중 략

 

이순실 : 그러면서 제가 1991년도에 제대를 하게 돼요. 83년도부터 91년도부터 제가 군복무를 했어요. 그 동안에 휴가라는 것도 한 번도 없잖아요. 왜 없냐면 원래 규정에는 군사규정에는 휴가가 있어요. 그런데 이것도 정기휴가, 표창휴가가 있는데 집에 가지 않는 것이 도와주는 거예요. 집에 가면 혼자 가는 게 아니라 중대장 아니면 소대장을 꼭 붙여서 보내요, 집에. 탈영할까봐, 그러면 그렇게 못 먹고 못 사는 가난한 사람들이 그 아들 오면 밥도 끓여줄 거 없는데 소대장까지 붙어있으니까 집에 이불 팔아서 강냉이 가루 좀 사다가 또 밥 해먹이고 다음 끼는 뭐 사다가, 뭘 팔아다가 계속 하다 보니까 이 아들만 왔다 가면 그 집은 쪽박 차는 거예요. 빚 지고 그냥 다 팔아먹고 없어요. 그러니까 이 형편을 아는 자식들이 가주지 않는 게 도와주는 거예요.

 

중 략

 

이순실 : ‘줄 것도 없고 그냥 나도 이제 저렇게 되겠구나. 안 되겠다. 이제는 무섭다. 이제는 살아야 되겠다.’ 하고 4일 만에, 먹을 게 없는데 4일 만에 장마당에 또 나가려고 보니까 뭐 팔 것도 없고, 그런데 나한테 유일하게 뭐가 남아있냐면 제대될 때 입고 들어왔던 온전하게 남은 군복 한 벌이 있었어요. 훈장을 다 떼고 그 옷을 입고 장마당에 나갔어요. 나가서 장사도 할 줄 모르고 어떻게 사는 걱정하면서 이렇게 보고 있는데 빵 파는 할머니가 이리 와. 이리 와.” 갔어요. “너 제대 됐니?” “. 제대됐습니다.” “너 어떻게 살갔니? 지금 세상이 말이 아니여.” 이러면서 내가 너를 도와줄게. 너를 보니까 얼굴이 시커먼 게 며칠 굶었구나.” “. 배고파 죽겠어요.” 그랬더니 나를 보고 거기 군복을 다 벗어 달래요. 자기 옷을 주면서 바꾸면서 빵 5개 준다. 1개가 5원이에요, 5. 5개면 25원이잖아요. 나는 40원 갖고 제대됐는데, 그러니까 그 값을 계산해보니까 빵 받는 게 나을 것 같애. 옷을 다 벗어서 주고 할머니가 입고 있는 옷을 받기로 했어요. 할머니가 이렇게 옷 벗는 걸 보더니 내가 입고 있는 빤스가 마음에 있어요. 그 빤쓰는, 여러분들 웃지 마요. 이제 통일되면 나가서 속옷가게 해요. 부자 돼요. 북한은 속옷도 없어요. 속옷도 없어. 그런데 나는 그 입은 속옷이 뭐냐면 군대에서 직접 군수공장에서 만든 천이고 그 천 자체도 면이고 광목이고 질겨요. 그러니까 오래 가거든. 그런데 사회에서 파는 속옷들은 못 입어. 앉아서 방구 뿡 뀌면 빤스가 뿡뿡 뚫어질 정도로 그렇게 얇아. 그러니까 그렇게 낡았어요. 그러니까 그 할마가 빵 1개까지 보충해서 빵 6개에 그냥 빤스까지 다 벗어주고 할머니는 속옷도 없더라고요. 그래서 나도 속옷도 없이 할머니가 입고 있는 그냥 겉옷만 입고 나와서 , 이제는 이 빵으로 산다 해도 이제는 이거 어떻게 집에 가나?’ 이거 이렇게 입고 어떻게 집에 가? 자존심 상하고 막 말이 아니고 막 내 자신이 동네 들어가기 창피한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보니까 중국에서 들어오는 거울가게가 있었어요, 동그란 거울가게. 그 거울을 이렇게 봤는데 정말 영낙없는 꽃제비예요, 꽃제비. 집에 못 들어갔어요. 그때부터 걸어서 나와서 동네방네 다 다니면서, 군대에서 또 뭘 했어요? 훔치는 거 했잖아요. 훔쳐 먹고 도둑질하고 그 다음에 매 맞고 또 잡히고 머리카락 다 잘리고, 그러면서도 먹고 살아야 되기 때문에, 오직 정신은 먹고 살아야, 29살이여, 그때 제 나이가. 29살이여. 그런데 글쎄 시집가야 되는 여자가, 여러분 여기 우리 여기 꽃처녀들도 많잖아. 얼마나 다듬고 거울 보고 빗질하고 막 그래. 그런 거 하나도 없어요. 배고프면 우리 목사님도 앉아서 옷 벗으시오.” 그러면 옷 다 줘요. 빵하고 바꾸자 하면 다 줘요. 우리 여기 예쁜 아가씨들도 너 그거 옷 달라. 내가 빵 줄게.” 그러면 다 벗어줘요. 배고픔 앞에서는 아무 것도 없어요. 다 벗어줘요. 그러다 보니까 떠돌다 떠돌다가 이제 더는 못하겠어요. 97년도가 됐어요. 97년도까지는 그나마 훔쳐 먹을 거가 많을 때예요. 그래서 이제는 훔쳐 먹을 것도 없고 걸어서 양강도 혜산까지 왔어요. 양강도 혜산에 오니까 전국에 꽃제비가 다 모여가지고 얼마나 훔쳐 먹고 때려 먹고 도둑질하고 강도질하고 그런 게 판을 치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거기에서 강도질은 못하겠더라고요, 도둑질은 해도. 그래서 이제는 살 수가 없어 갖고 야 중국에 건너가자.’ 보니까 중국에 여름에 지금 가뭄철 같은 때는 물도 하나도 없어요. 그냥 맨 자갈밭이에요. 그런데 군대들 경계가 너무 심해서 못하지만 겨울은 엄청 춥거든요. 그때는 탈북의 시즌이에요. 시즌 때예요. 그때는 1월 달 2월 달은 정말 거기는 외상으로도 갈 수 있어요. 돈 내고 가는데 그냥 건너오면 중국에서 외상으로 한국에 오게 도와줘요. 그 다음에 한국에 와서 정착금 받으면 다 뺏어가요. 그런데 우리는 그런 뇌물도 모르고 그냥 강 건너서 오면 잡혀요. 중국 공안한테 잡혀서 북한에 북송돼요. 또 거기에서 감옥생활 하다가 집에 가라고 보내지면 또 중국에 오고, 왜 그러냐면 집에 가야 먹을 것도 없고 입을 것도 없고 아무 것도 없으니까 안 가고 또 중국 오는 거예요. 그래도 잡혀 오면 어떻게 하는지 알아요? 저는 지금 머리부터 발끝까지 성한 자리가 하나도 없어요. 하다못해 이 똥궁댕이까지 다 지져놨어요. 불로 다 지져놨어요. 이 뒤에는 오늘도 더워서 이렇게 하다가도 사람들이 볼까봐 머리를 축 내리는데 뒤에는 머리카락이 없어요. 뜨거운 물로 다 지져놔 가지고, 그냥 여기 다 데어서 없어요. 발가벗기고 아주 그냥 들어가면 보위부 감옥 복도에다가 쫙 세워놔요. 세워놓고 벗어!” 구령 내려요. 그러면 여자들이 그냥 하나 같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실오라기도 하나 걸치지 않고 싹 다 벗어야 돼요. 벗고 나면 다리 벌려.” 이래요. 그러면 다리를 쫙 벌려요. 조금 벌리면 각목 있잖아요. 1m 강목으로 다리를 엄청 때려요. 다리를 쫙 벌리면 자기 아들 같고 자기 남편 같고 자기 동생 같은 남자들이 와서 손으로 자궁을 뒤져요. 돈 감추고 왔다고, 그리고 임신된 여자들 약 먹여서 다 강제낙태 시키고, 그 강제낙태 한 애들을 다 공중화장실, 똥 푸는 화장실 알죠? 옛날 화장실. 거기에다가 다 갖다 버려요. 그러면 오줌 똥 싸러 갈 때마다 자기 애 있는 거 다 알잖아요, 엄마들이. 정신병자 되는 거예요, 정신병자. 그러면서도 건너오면 또 약물을 먹여요. 설사약으로 먹여요. 설사약을 먹이고 돈을 진짜 삼켜서 나오는 사람이 있어요. 100원짜리 똘똘 말면 성냥가치처럼 얇아져요. 이거를 먹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이거를 빼앗기 위해서 와, 설사약을 먹이고 독방에다가 바께스 하나 들여보내고 3일 동안 설사 시켜서 그 돈까지 다 뺏어요. 이 손바닥도 다 찢어놨고 머리카락도 그냥 군형 혁띠로 까가지고, 그 각대로 까갖고 다 그냥 터덜터덜터덜해요, 꿰매지 못하고 새살 나와 가지고. 그래 갖고 제가 지금도 UN에 다니면서 지금 탈북자들 위해서 이렇게 대변하고 토론하고 그렇게 하면서 지금 다니거든요. 왜 그러냐면 누군가 이야기를 해야 되는데 우리 탈북자들은 그렇게 맞고 그렇게 흠집 되고 중국에 와서 팔려 다니고 이런 것이 다 그냥 수치로 여겨요, 수치로. 우리가 무슨 수치예요? 북한에서 태어난 죄밖에 없고 충성하면서 산 죄밖에 없는 우리 사람들한테 그렇게 못되게 노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탈북하다 잡히고 가다 잡히고, 이런 것을 8번을 당했어요, 8. 1997년부터 2007년도까지 10년 동안 4년 동안 교도소 생활을 했어요, 4. 교도소는 왜? 그냥 배고파서 중국에 갔던 배반자의 죄명이에요. 그래 가지고 교도소 생활 끝나고 한 여덟 번째 만에 오빠가 너무 내 꼴이 보기 싫으니까 오빠가 찾아왔어요. 감옥에 찾아와서 출소하는 날 나를 데리고 죽어도 우리 집에 가서 죽자. 죽물을 먹어도 우리 나눠먹자.” 이러면서 평산이라는 곳에 또 데리고 왔어요. 와서 이렇게 봤는데 눈 뜨고 볼 수가 없는 게 뭔지 아세요? 올케 언니 있고 오빠 있고 조카 둘이 있어요. 올케 언니가 우리 오빠랑 한 학급이고 한 동네에서 살았거든요. 그 언니하고 결혼을 해서 사는데 결핵이, 끄떡하면 피나오고 끄떡하면 피나오고 화장실도 벌벌벌벌 기어가는데 가다가 힘이 없어서 벌러덩 누워서 오줌 다 싸고, 막 그러면서 사는 거예요. 그리고 22살 난 총각이, 조카가 군대 나갔다 왔어요. 군대 나가서 서른다섯, 서른두 살에 오는데 왜 스물두 살에 온지 알아요? 강영실, 영양실조 걸려서 눈이 다 멀었어요, 그 청춘 아이가. 그 다음에 99년도에 태어난 이 막내조카가 엄마도 아프지, 자기 형도 다 눈 멀어서 왔지, 그러니까 학교도 못 가고 공부도 못하고 아침에 일어나면 아장아장 걸어서 도롱뇽 알 주우러 가고, 개구리알 주우러 가고, 그 다음에 저거 뭐야, 메뚜기 잡아서 이런 걸 해다가 엄마 먹이고 자기 형을 먹이는 거예요. 이런 데에서 내가 어떻게 살아요, 내가? 나도 고문 받아서 다리 다 절룩대지 막 그냥, 지금은 이렇게 건강한 것 같지만 아유 그때 43kg 나갔어. 17043kg면 거미여, 거미. 벌벌 기다시피 그렇게 살았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나도 힘들고 다 힘드니까 오빠 나 여기에서 더는 못 살겠다. 나 어디 가겠다. 나가겠다.” 나왔어요. 그런데 오빠가 나를 또 잡아다가 시집이라도 가봐라. 시집가면 너 입 하나는 건사할 수 있지 않냐? 가라.” 시집가는 게 80년대 이전에는 잔치하면 동네잔치여. 돼지 몇 마리 잡고 그냥 녹두지짐 지지고 그냥 강냉이 국수 누르고 엄청난 음식을 만들어서 동네방네 잔치 배터지게 먹고 사는 게 잔칫날이었어요. 90년도에는 그런 잔치는 옛말이에요. 그냥 오빠가 써준 집주소를 갖고 배낭 둘러매고 개성에 다시 걸어가서 남자 찾아가는 게 결혼이여. 그렇게 해갖고 터벌터벌터벌 걸어서 집에 가보니까 집만 쓰고 사는 거지지 똑같아요. 된장, 간장, 소금도 없어요. 아이고 이런 데에서 산다고 생각하니까 , 이거 내가 죽으러 왔구나. 그래도 오빠가 시집보냈으니까 살아야지.’ 들어갔는데 들어간 날부터 술이 없으면 때리고 쌀도 없어도 때리고, 그 남편 아새끼는 얼마나 나를 때리는지 그것도 소대장이여. 그것도 군대여. 그런데 그 시아버지 시엄마가 좀 말려야 되겠구만 아이고 우리 집에 들어오는 사람이 복이 없어서 우리 집 못 사는 거여.” 이러면서 자꾸 추기는 거여, 아들을. 그러니까 아들은 야 술 갖고 오라.” 시아버지도 술고래여. “술 갖고 오라.” “술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면 야 이 간나 너 지금 반말하고 나한테 지금 접어드니?” 때리는 거예요. 그래 때려라, 때려서 술이 나오면 계속 때려라, 술 나오고 쌀 나오면 내 맨날 매 맞겠다. 때려라, 때려라, 맨날 매 맞다가 악이 번지는 거여. ‘야이씨 해보자.’ 나도 군대에서 이거 주먹 좀 배웠거든요. 야따야따 하면서 싸우는데 집안에 남는 게 없는 거예요. 유리창 다 깨지고 사발 다 깨지고 밥 퍼먹을 게 없으니까 부대에서 식기, 유무식기를 갖다가 그 다음에 밥을 퍼먹더만요. ‘에이 못 살겠다. 가자.’ 하고 나와 봤는데 7개월 만에 나왔는데 임신이 돼 버렸어요. 북한에는 한 집에서 다 살아요. 한 방에서 시어머니, 시아버지, 시집갔다 쫓겨 온 시누이, 또 사고, 교통사고로 다쳐서 다리 절룩거리는 시동생, 그 아들, 6명이 한 구들에서 이불 14kg 나가는 똥솜이불 덮고 자는데 그 안에서 쏙쏙 거리면서 구들농사는 얼마나 열심히 잘하는지 몰라요. 그래 가지고 새끼는 주렁주렁 낳아요. 그 아이들은 낳으면 굶어죽고 맞아죽고 병들어죽고 지금 그 상황인데 대한민국에 와보니까 아이들을 안 낳고 사는 거예요. 그 이유를 알았어요. 이놈의 전기 때문이에요, 이놈의 전기. 북한에는 해만 지면 5시인데 해만 지면 볼 것도 없고 들을 것도 없고 이불 속에 들어가서 엄마가, 할머니가 옛말하는 게 그냥 TV 보는 거예요. “야 우리가 살 때는 야 엿도 많고 야 사탕도 많고 과자도 먹고,” 먹던 얘기만 해요, 밤새껏 배가 고파 죽겠는데. 그 다음에 녹두를 갈아가지고 지짐 부치는데 돼지비계로 해서 엄청 구수했어, .” 그러면 그거를 상상하면서 잠이 오기를 기다리는데 배고파 죽겠는데 잠이 와요? 그러니까 쏙쏙쏙쏙 거리는 남편들은 애기 만들자, 애기 만들자.” 눈을 감아야 애기 만들잖아. 그래서 여기에서 한조가 애기 만들고 나면 여기에서 애기가 또 만들어지고, 그런데 대한민국에는 왜 애기를 못 만드는지 알았어요. 이 전기가 많아갖고 잘살아보세.’ ‘이만갑’ ‘내조의 여왕’ ‘자력갱생그런 걸 보게 되면 새벽 1시 반이여. 그러면 그거 끝나면서 잠들어버렸어. . 남편들이 와서 여보야 우리 손목 잡고 자자.” “듣기 싫어. 힘들어. 시끄러워. 불 꺼. . 아침에 6시면 또 일어나서 씻고 일 나가야지.” 그래서 애기 못 만드는 거여. 나는 대통령이 되는 게 꿈이에요, 대한민국에 와서. 대통령이 되면 저녁 5시부터 밤 10시까지 전기 다 꺼버릴 거요, . 그러면 출산이 다 돼. 출산 다 돼. 내가 지금 꿈이 대통령이거든요. 할 거예요, 이제.

 

장내 박수

 

대통령 돼 가지고 전기 5시부터 밤 10시까지 끈다는 거 잊지 마요. 5시부터 10시까지 끄면 순실이가 대통령 된 거요. . 그런 거예요. 그러면서 임신이 됐는데 오매 북한에는 임신돼도 몰라요. 성교육 자체도 없고 언제 생리를 하는지 언제 애기가 가지는지도 모르고 살아요. 제가 간호원도 했지만 산부인과, 소아과는 취급도 안 해요, 병원에서 군대 병원에서는. 그러다 보니까 몰라요. 임신된지도 모르고, 대한민국 여자들은 입덧을 꽤나 잘 알데요. 입덧하면 천리만리 비행기 타고 가서라도 뭘 다 사다 먹이고 난리법석 하는 거 보면 참 가관이요. 북한 애들은 입덧이 없어요. 배고파요, 그냥. 그냥 배고파. 그게 입덧이요. 그래서 나도 아우 맨날 먹고 싶은데 배고프니까 먹고 싶은 거다 했어요. 그런데 돼지고기가 그렇게 먹고 싶은 거예요. 아이고 이렇게 손을 깨물어보면서 고기 씹을 때 이 맛이었어.’ 이렇게 잘근잘근 씹어보면서, 군대에서는 별 달았으니까 고기를 이따금씩 얻어먹었거든요. 쫄병 때보다 낫거든. 그래서 이렇게 씹어보면서 , 고기 씹을 때 이랬지.’ 그게 입덧이 한 것 같아요. 그렇게 먹고 싶더라고요. 아이고 그런데 나는 나와서 꽃제비 생활 나와서 임신한 걸 알았는데 맨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다리 밑에서 살고 철길 굴간 터널 그 옆에서 살고 그랬는데 점점 불러오는데 애 낳을 데가 있어요? 그런데 최근에 누가 왔다 갔어요. 신은미 이 여우 같은 게 왔다 갔잖아요. 황희선 이놈의 간나들이 와서 뭐라 그랬어요? “북한에서는 여성들이 평양산원에 애기를 낳는다. 나도 거기에서 환영을 받으면서 애기를 낳았다.” 황희선이 이따위 소리를 했어요. 그 다음에 신은미가 뭐라고 했어요? “젊은 지도자가 나와서 평양은 살만하고 북한도 제법 이제는 활기가 넘치는 사람들이 되었다. 복지가 잘 되었다.” 이따위 소리를 하는 거예요. 밸이 나가지고, 여기는 밸 난다고 하면 모르지. 화가 나가지고, 거기는 밸 난다 그래요. 화가 나가지고 뛰어나왔어요. 프레스센터에 가서 이것들아 나와라. 너네 이순실이 앞에서 그딴 소리 해봐라.” 왜 그런지 알아요? 내가 이제 말할게요. 임신이 됐는데 애기 낳을 데가 없어요. , 나는 평양에서 태어났고 북한에서 41년을 살아도 그 평양산원 문 앞에도 못 가봤어요. 평양산원에는 누가 가서 애기를 낳으며 그 평양산원에 가는 사람들은 누군지 다 알아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거기에 가도 안 되기 때문에 갈 생각도 못하고 살았거든요. 그런데 남한에서 태어나고 남한에서 자란 황희선이 어떻게 평양에 와서 애기를 낳고 어떤 대우를 받았어요? , 열이 번져 죽겠어요, 그래 가지고. 막 내가 나가서 나와라. 발로 밟아 죽인다.” 내가 막 그랬어요. 정말 나는 예수님을 안 믿으면, 믿음생활을 안 했다면, 예수님의 사랑을 모른다면 머리끄댕이 돌돌돌돌 감아가지고 어디 태치려고 마음먹었어요. 그런데 이것도 안 되더라고요. ? 온 세상 사람들이 내가 간증집회 다니면서 이순실 집사라고 하는데 그거를 어떻게 그래요? 그러면 안 되지. 그래 갖고 사랑의 마음으로 용서하기는 했지만 이것들이 싹 지랄을 피워놓고 싹 미국으로 다 가버리고 황희선은 감옥에 싹 가버리고 해볼 데가 없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지금 UN에 가서 너네가 말하는 게 맞나, 우리가 말하는 게 맞나? 나와서 말해보라.” 대한민국에는 3만 명의 탈북자가 살고 있어요. 나 혼자 사는 세상에서 말했다면 나는 용서해요. 아니거든요. 애기를 낳아야 되는데 낳을 데가 없어서 혜산 역전 옆에 보일러실이 있어요. 석탄재를 갖다 버리면 2시간은 뜨뜻해요. 거기에다가 방막을 깔고 앉아서 아이고 배야, 아이고 배야하고 울면서 누구를 원망했는지 알아요? 우리를 그렇게 만든 김 부자를 원망하는 게 아니라 나를 낳아준 어머니 아버지를 원망하면서 울었어요. 우리는 꿈에서라도 생각이라도 마음속이라도 김 부자를 원망하면 천벌 받아 죽는지 알았어요, 세뇌교육을 그렇게 받아가지고. 왜 하늘이 낸 위인, 인류의 위대한 수령 김일성 장군, 정말 세상에 제일 좋은 말은 다 갖다 붙였어요, 김일성한테. 그러기 때문에 엄마, 아버지만 원망하면서 어머니 왜 나를 낳으셨어요? 왜 나를 낳으셨어요? 나를 낳으려면 아들을 낳지 왜 딸을 낳아가지고 이렇게 해산하게 이렇게 만들어요?” 이러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그런데 애기를 낳아야 되겠는데 뭐가 있어요? 옷이 있어요, 가위가 있어요, 실조각이 있어요? 천조각이, 없어요. 저도 빤스도 없는 여자예요. 상거지예요. 거지에 완전히 거지는 나예요, . 그 거지 엄마가 애를 낳는다고 있는데 지나가는 할머니가 이렇게 보더니 계속 우는 걸 보고 잔등을 쓸어주면서 야 애기 엄마야 자꾸 울면, 산모가 자꾸 울면 눈이 멀어. 울지 마라.” 그러니까 제까닥 무서운 게 우리 조카를 보니까 눈도 못 보고 이렇게 하는 게 너무 끔찍해서 눈물을 거두고 할머니 나 좀 도와주세요. 나 이제 어떻게 해요?” 하고 했더니 할머니가 그래 도와주마이러면서 앞치마 긴 거 입은 거를 북 찢어갖고 거기에서 실오리를 뽑아서 콧바람으로 소독해갖고 이렇게 돌멩이 위에다 올려놓고, 그 다음에 또 나가서 찾아갖고 유리조각 요만한 걸 갖다가 바지에다가 문대고 콧바람으로 소독해서 그걸로 배꼽을 탁 자르고 그 실밥으로 꽁꽁 묶어줬어요. 그리고 그 앞치마에다가 애기를 싸주고 머리 타올수건을 벗어서 머리에다가 씌워주면서 빨리 장마당에 가래요. 그런데 우리 여기네 여성들이 많지만 여자들이 해산하고 나면 그 출혈이 얼마나, 뒤처리가 얼마나 힘들어요? 애기 낳은 것보다도 더 힘들어요, 그게 뒤처리가. 그런데 나는 천조각도 하나 없는 거지 엄마예요. 아무 것도 없어요. 애기를 안고 일어났는데 출혈이 물컹물컹 쏟아지면서 1227일인데 백두산 밑이다 보니까 얼마나 추운지 출혈이 떨어지면 서걱서걱서걱서걱 얼어요. 그런 추위에 바람이 웽웽 뼈마디로 다 들어가요. 지금도 이따금씩 손 씻고 손을 털면 뼈마디 떨어지는 것 같이 아파요. ‘어머 이게 산후탈이구나.’ 이거를 알았어요. 그 애기를 안고 장마당에 가니까 장마당에서 애기가 빽빽 울고 나는 막 힘들어 앉아있지 그러니까 장마당 엄마들이 어머 저 거지 엄마 애기 낳았구나. 저 꽃제비 엄마 애기 낳았구나. 어떡하니? 저것들은 죽었다. 죽었다.” 이러면서도 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양말짝도 갖다 주고 천조각도 갖다 주고 그러더라고요. 어떤 사람들은 천 마대, 마대 천을 갖다 주고 거기 깔고 앉으라고 너무 바닥이 차니까, 그렇게도 주고. 그래서 누가 양말을 갖다 주면 그 애기 발에다 끼우면 바지가 되고, 또 양말 한 짝 주면 팔에다 끼우면 옷이 되고, 이렇게 하면서 애기를 키웠어요. 그래도 혼자 살 때보다 애기가 있으니까 그래도 먹고 살겠더라고요. 애기가 엄마를 먹여 살리더라고요. 얘가 쇼를 배우는데요, 어떻게 배우는지 알아요? 세 돌 돼 오는 2살 되니까 잔등에서 쇼를 배워요. 거지 엄마한테서 뭘 배울 거 있어요? 얘가 알아서 생각는 거예요. 저기에서 사람이 오면, 그냥 둘이 있을 때는 아무 것도 안 울어요. 그냥 추워도 안 울고 배고파도 안 울어요. ? 엄마는 거지 엄마니까 내가 아무리 울어도 먹을 걸 못 주고 입을 걸 못 주는 엄마라는 걸 알아요. 그러니까 저기에서 사람들이 먹으면서 오거나 장마당에서 뭘 사갖고 가는 거 보면 가만히 있다가 거진 다 오면 내 머리카락을 뒤에서, 업었으니까 잡아당기면서 배고파. 나 배고파 죽겠다고, 배고프다고하면서 막 울어요. 그러면 사람들이 동전도 주고 이렇게 무슨 입에 넣었던 사탕도 깨물어서 주고 이러면 이것을 다 받아요. 그러다 사람이 가면 엄마 먹어. 먹어.” 입에다 넣어주는데 와,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걔 낳았을 때부터 너든지 나든지 둘이 다 죽든지 너가 죽든지 내가 죽든지 뭐 하나 죽자.” 이러면서 매일 하는 말이 그거였는데 이제는 이거를 보니까 얘야 나는 이제 너를 두고 죽지 못한다. 이제는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자.” 그런데 이 애가 업으면 땅바닥만 딱 봐요. 보면 소똥무지가 있어요. 소똥만 보면 엄마 맘마 있다고 맘마, 맘마, 맘마하고 그래요. 이렇게 보면 소똥 이만한 게 있어. 그러면 빨리 가서 그것도 맡아야지 꽃제비들 오면 다 뺏겨요. 이렇게 나뭇가지로 휘둘면 강냉이나 여물콩, 콩여물 요만한 거 8, 5알씩 있어요. 반쪽짜리 이렇게 옹근 것도 있고, 그러면 이거를 주워다가 물에다 깨끗이 씻어서 비닐봉지에다 싸들고 다니면 이 애기는 하루 식량이 자기 거 있는 걸 알고 배고파도 안 울고 얼마나 재롱을 부리는지 몰라요, 그거 뺏어먹기 위해서. “엄마, 엄마완전히 그냥 내 앞에서 뭐라 그럴까? 영화배우들 심사하는 것처럼 막 그렇게 막 엄마라는 단어를 1001,000번을 여러 가지 모양으로 불러요. 그러면서 한 알 주면 너무 좋아서 그냥 발버둥 치면서 삼키지 못하고 콩알이 불어서 불어서 이만하게 되도록 입안에서 굴리고 굴리고, 이거를 보니까 정말 마음이 아픈 게 그런 세상에 그 애기를 태어나게 만든 엄마의 죄 때문에 막 너무 미안한 거예요. 눈길을 마주 못 보겠어요. 애기는 그냥 그것도 엄마라고 엄마, 엄마하고 앞에 앉아서 재롱부리고 막 그냥 머리 쓸어주고 울면 눈물 닦아주고 이러지만 그 애기 눈을 못 보겠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생각하기를 , 이제는 너를 데리고 중국에 가자. 살아도 죽어도 이제는 배불리 한번 한 끼라도 먹여줄게. 가자.’ 하고 그 애기를 배낭에 담아갖고 딱 강에 들어섰어요. 그런데 그 애기도 그 압록강을 알고 그 강을 건너면 총에 맞거나 군대가 와서 잡을 걸 알고 무거운 그런 걸 알아요. 공포를 알아요. 배낭에 들어가서 배낭끈을 딱 잡았는데 부들부들부들 막 떨어요. 그러면서 눈물을, 우는데 울지를 못해요. 꾹꾹 참으면서 지금 이 배낭끈을 잡고 부들부들부들 떠는 거예요. “울지 마라, 아가야. 너가 울면 뒤에서 군대가 총을 쏜다. 울지 마라. 총 쏘면 너도 죽고 엄마도 죽어. 절대 울지 마라.” 그러면 알았어. 알았어.” 하고 내려와서 딱 중국에 건너와서 애기를 풀어 안고 딱 안았는데 숲속에 숨어있던 인신매매하는 사람들한테 딱 잡혀버린 거예요. 잡혀버렸는데 그때 우리를 잡아갖고 애기 떼어내려고 하는데 그 애기가 엄마 손을 잡았는데 나는 2살짜리 아이가 그렇게 힘이 센지 몰랐어요. 손을 꽉 잡았는데 이 손 놓으면 우리는 마지막 이별이라는 걸 애가 눈빛으로 이야기하는 거예요. “놓지 마. 놓지 마, 엄마. 놓지 마. 꼭 잡아. 꼭 잡아.” 하는데 그 목소리가 지금도 들려오고 거 손의 힘이 지금도 느껴져요. 그럴 정도로 그 눈빛으로 이야기하는데 그 남자들한테 힘을 못 이기겠어요. 빼앗기고 택시 태워서 절반이 갈라져서 가는데 나는 미친 여자들이 왜 미치는지 알았어요. 맨날 꿈에서는 애기를 안고 자요. ‘그래 나는 이제는 너를 안 놓을게. 이제는 꼭 너를 여기에서 놓지 않을게. 이제는 만났으니까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 아침에 일어나 보면 없어요. 그러면 내 새끼 내놔.” 내 새끼 어디 갔나? 내 새끼 찾고 내 새끼 찾고 이러면서 정말 많이 울었어요, 그 애기 때문에.

 

후 략

 

- -

- 다음 녹음순번 계속 -

녹음순번-#12 (파일명:12 20170524 수요예배 이순실집사간증집회)

녹음일시-2017. 5. 30.

대 화 자-이순실

 

전 략

 

이순실 :그러면서 한때는 그렇게 잘 사는 세상에서 태어나가지고 67년도부터 82년도에 학교 졸업 16살에 했는데 그때까지는 정말 어려운 거는 없었어요.

 

중 략

 

이순실 : 매 엄청 맞았어요. 막 그냥 뺨따귀 3단으로 막 치고 막 엄청 맞았어요. 그러면서 제가 6개월 동안 걸어로서 딱 왔어요. 북한에도 뭐 기차 있고 버스 있고 달구지 있고 다 있지만 사람이 걸어가는 게 제일 빨라요. 기차하고 사람하고 출발!” 해서 보내면 누가 먼저 가는지 알아요? 사람이 먼저 가요. 기차가 가다가 서있고 조금 가다 또 서있고, 그런데 사람은 꾸준히 걷다 보면, 그래서 사람이 먼저 와요. 그래서 북한에는 11호차가 발전돼 있어요. 11호차는 그냥 두 다리로 걷다예요. 11호차가 돼 갖고, 그 다음에 양강도에 딱 도착하니까 내가 창피하지 않고 부끄럽지 않은 것이 뭐냐면 나보다 더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이 전국 각지에서 모여가지고 중국에서 쌀 차가 들어오면 그 쌀을 부려주고 흘린 거 다 주워 먹고 그 다음에 쌀 부린 사람들은, 일한 사람들은 밀가루라도 강냉이라도 조금씩 줘요. 그거 얻어먹으려고 그렇게 하는데 그 일을 누구나 쉽게 못해요. 아주 장정들만 할 수 있는데 그거를 얻어먹겠다고 많이 와서 전국에 꽃제비들이 드글드글한 거예요. 여러분들 꽃제비라고 하면 그냥 대한민국에 노숙자를 생각하는데요, 대한민국 노숙자는 이런 생활하라면 나는 대한민국에서 노숙자 생활 100년도 할 수 있어요. 이들의 생활수준은 북한의 간부수준이에요.

 

중 략

이순실 : 그러면서 내가 잡혀오면 거기에서 감옥살이하고, 또 집에 가라고 놔주면 또 중국 가고 또 잡혀오고, 계속 이런 살이를 1998년부터 2007년도까지요 10년 동안 8, 8번 북송을 당한 거예요. 그러니까 맨 감옥에 있는 거예요. 그리고 여덟 번째 출소하는 날은 다시는 중국에 못 가게 하려고 우리 오빠를 지방에서 직접 불러다가 오빠한테 인계해주면서 데리고 집에 가라고, 그래서 오빠가 나를 데려가면서 이제는 절대로 탈북하지 마라. 죽어도 살아도 오빠네 집에서 같이 먹고 살자.” 그러는 거예요. “. 오빠.” 하고 갔어요. 집에 가서 너무 눈 뜨고 볼 수 없는 일을 본 거예요. 뭐냐면 나보다 더 건강했던 올케 언니가 폐결핵에 걸려가지고 앉아서 피를 토하고 앉아있고 뼈에 가죽만 씌워가지고요, 여자가 병들다 보니까 집에 땔나무가 있나 빨랫감이 이렇게 쌓여도 빨래를 하나 아무튼 집이 그냥 말이 아닌 거예요. 그래서 그 올케 언니를 붙들고 앉아서 그냥 울고 막 그렇게 있는데 뒤에 시커먼 그림자가 떡하니 보고 있는 거예요. 이렇게 봤더니 군대에 나갔던 우리 큰조카가 20살인데 집에 왔어요. “명성아 너 무슨 일이야?” 군대 나가면 집에 못 오는 거 뻔히 내가 아니까 어떻게 집에 왔냐고 물어봤더니 고모 내가 군대 나가서 영양실조 걸려갖고 맹인이 됐어요.” 눈 시력을 다 잃고 맹인이 돼서 집에 온 거예요, 20살에. 막내조카는 엄마하고 형을 위해서 아침마다 메뚜기가 날개가 마르면 날아가니까 이슬 맞은 메뚜기를 잡으려고 콩밭에 가서 겨밭에 가서 그거를 메뚜기를 잡아오고 도롱뇽, 막 그냥 뱀, 집을 뒤져갖고 쥐 잡아다가 그렇게 해서 구워서 엄마하고 형을 먹여 살리는 거예요. 여기에서 내가 그거를 같이 먹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런데 내가 움직일 수 없는 게 뭐냐면 감옥에서 너무나 고생하고 나와서 무릎팍이 하나가 이렇게 부었어요, 물이 차가지고. 무릎팍은 띵띵 부었지, 고문 받은 자리 다 곪아서 고름이 질질 나오지, 막 썩은 냄새 나지, 그러니까 집에서 병들어서 온 나를 내버리지 못하고 그럴 때 오빠 내가 나갈게. 나가서 내가 훔쳐 먹든 얻어먹든 내가 살겠으니까 내버려달라 했더니 오빠가 그러면 너 시집가면 너야 굶겨죽이겠냐? 시집가라.” 그러면서 오빠가 잘 아는 남자네 집으로 시집을 개성시 그 옆으로 하는 데로 보냈어요. 그래서 딱 가서 보니까 그 집은 얼마나 못 사는지 똥구녕이 찢어지게 가난한 집으로 간 거예요. 세상에 독이라는 독 쌀독, 소금독까지 싹 다 그냥 햇빛에 바짝 말라서 다 뒤집어서 바닥에 그냥 다 아무 것도 없어요. 그래도 나가서 돼지풀이라도 끓여서 풀죽을 끓여서 시아버지 시엄마 딱 놔두면 시부모님들이 그거를 떠먹으면서 뭐라고 욕하는지 알아요? 너 같이 못 사는 가난뱅이들이 우리 집에 와갖고 우리가 이렇게 복이 없다고 나를 얼마나 욕하고 천대하고 밥도 못 먹게 해요. 이 풀죽도 못 먹게 해요, . 입 벌리면 소리 지르고 시아버지가 바가지에 물, 물이 남으면 이놈의 가시나 어디 갔어?” 나를 찾아갖고 와서 그 남은 물을 나한테 뿌리고 막 그렇게 인간 이하의 천대를 받는 거예요. 가난 때문에, 나는 그런 집 환경 속에서 그런 집 같은 데에서 살지를 않았어요. 엄마 아버지가 다 잘 먹이고 잘 사는 집에 살았기 때문에 그 부모들이 하는 것이 너무나 마땅치 않아 가지고 7개월 만에 제가 집을 뛰쳐나왔어요. 혼자 도둑질 해먹던 혼자 사는 게 낫겠더라고요. 거기에서 왜 매 맞고 살아요? 나와서 보니까 임신이 되어 있는 거예요. 북한의 여성들은 임신도 잘 돼요.

 

중 략

 

이순실 : 애기를 낳았는데요, 세상에 그 애기가 너무 못 먹고 못 사는 엄마 배에서 나와 가지고 애기가 쥐새끼만해. 이만해. 새까만 게 나왔는데요, 이 애기 배꼽을 잘라줘, 탯줄을 잘라줬는데 가위가 있어요, 뭐가 있어요? 아이를 낳는 이 엄마도 아무 것도 없어요. 대한민국 여성들 애기, 임신 진단 받았을 때부터 열 달 동안 맨날 아가야 사랑해. 아가야 사랑해.” 노래를 하면서 다 준비하고 준비하면서 아가야 빨리 나와라. 빨리 나와라.” 막 기다리잖아요. 양말짝이 있어요, 실조각지이 있어요? 아무 것도 없어요. 그러니까 할머니가 긴 앞치마 있는 걸 풀어서 허리단을 뜯어갖고 실밥을 뽑아서 콧바람에 소독해가지고 애기 탯줄을 묶었어요. 그 다음에 이 끊어야 되는데 가위가 없어서 유리조각 주워다가 머리에다가 비비고 발에다가 닦고 콧바람에 소독해가지고 그 탯줄을 딱 끊어줬어요. 대한민국 아이들은 100분에100 죽어요. 북한의 아이들은 얼마나 천덕꾸러기인지 죽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아요. 그래 가지고 너가 죽든 내가 죽든 둘 중에 누가 죽든 죽자죽자 했는데도 둘 다 살아났어요. 그래 갖고 할머니가 그 앞치마에다가 애기를 싸고 타올수건 벗어서 몸에다 덮어주면서 빨리 장마당에 가라는 거예요. 장마당으로 가려고 애기를 딱 들고 일어났는데요, 여자들이 하혈이 얼마나 많아요? 이 해산하고 나면. 짐승 같이 그 하혈을 흘리면서 15분 동안 장마당에 들어갔더니 그 장마당에 온 엄마들이 , 저 꽃제비 엄마 애기 낳았구나. 어떡하니? 어떡하니?” 하면서 양말을 벗어줘요. 양말을 벗어주면 밑에 깔고 앉으라고 주지만 나는 그럴 데가 없어요. 이 양말들을 받아서 애기 발에다 끼우면 바지가 되고 손에다 끼우면 옷이 되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서 그 애기를 3년 동안 혜산 장마당에서 빌어먹으면서 사는 거예요. 그 애기를 안고 “10전만 주세요. 그 국수 국물 남겨주세요.” 그러면 애기가 삑빽거리며 울면 먹던 사람도 애기 먹이라고 국물이라고 조금씩 남겨주고는 했어요. 그러면 누가 주구장창 먹을 걸 주는 세상은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북한에 아이들이요, 우리 자매님 몇 살 때 철들었어요? 지금 철들었다고 생각해요? 철들었으면 손들어 봐요. 우리 남편이 저보다 6살 어려요. 지금 마흔다섯 살이거든요. 마흔다섯 살 난 우리 남편도 철이 없는데 우리 자매님이 철들면 얼마나 들었겠어? 그런데 북한의 아이들은요 3살 되니까 철이 다 들어요. 배고파도 안 울고 추워도 안 우는데 언제 우냐면 우리 엄마가 거지라는 거 다 알고 누가 먹을 거를 안 주니까 잔등에 업혀있다가도 누군가 먹으면서 지나가면 엄마야 나 저것 좀 줘. 엄마야 맘마 좀 줘. 배고파. 배고파.” 그 소리를 계속 해도 누가 먹을 거 안 줘요. 그러면 마지막에는 막 울어요. 울면 그 소리를 듣고 누군가가 씹던 거라도 뽑아서, 입에 거라도 뽑아서 아가야 이거 먹어라하고 주면 이거를 싹 받았다가 그 사람들이 지나가면 절반을 딱 끊어서 엄마 맘마, 맘마.” 하면서 엄마 입에다 쏙 넣어줘요. 그리고 절반을 지가 먹어요. 이런 것을 보니까 내가 눈물, 피눈물이 나는 게 뭐냐? 애기가 배고파서 울면 먹을 것을 줘야 되는 엄마가 애기가 피눈물 흘리면서 벌어들이는 것을 내가 먹고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너를 데리고 맞아죽어도 좋고 총에 맞아죽어도 매맞아죽어도 좋으니까 너를 데리고 중국 가자, 가서 우리 그냥 버려진 거라도 한번 배불리 한번 먹어보자, 이것이 엄마의 마지막 소원이다.” 하고 그 애기를 배낭에다 담고 헌띠로 꽁꽁 묶어가지고 1월 달에 압록강이 꽝꽝 얼었을 때 딱 압록강을 넘어왔어요. 넘어온 다음에 그 강 옆에, 중국 강 옆에요 숨어있는 인신매매 장사꾼들한테 딱 잡힌 거예요. 이것들이 우리를 잡아가지고 애기부터 분리를 시키는 거예요. 애기가 엄마 안 가, 안 가.” 소리치면서 엄마야 같이 가. 엄마야 같이 가. 엄마 나 안 가.” 막 소리 치면서 우는데 이 애가 배낭에서 뽑아져 나오니까 엄마 손을 꽉 잡고 뭐라 그러는지 알아요? “엄마 같이 가. 같이 가. 엄마 나 배고프다는 말 안 할게. 엄마 나 배 안 고파.” 이것이 정말 엄마하고 이별하는 3살짜리 아이 마지막 부르짖음 소리였어요. 정말 그 애기 때문에 포기하고 싶었던 생명도 진짜 다시 정신 차려서 목숨을 붙이고 붙이고 붙여가지고 살았는데 여기에 와서 마지막에 이렇게 갈라진다고 생각하니까 눈앞이 노래지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는 게 뭐냐? 내가 보는 앞에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 앞에 놓고 개, 돼지, 소 파는 것처럼 값을 흥정하면서 우리 애기를 중국 돈 3,000원에 팔아버리는 거예요, 내 앞에서. 그리고 나는 중국 돈 5,000원에 나도 알지도 못하고 말도 모르고 낯선 그 외국 땅에 중국 산둥으로 5,000원에 팔려갔어요. 팔려가지고 그 집에서 조금 있으면 이 여자가 도망칠 것 같으면 5,000원에 샀으면 6,000원에 나를 다시 팔아버려요. 6,000원에 산 사람은 또 도망을 가면 7,000원에 또 팔아버려요. 본전을 뽑아갖고 자꾸 팔아버리는 거예요. 그런 데에서 도망쳐 나오려고 한 달 3일 만에 돼지, 똥물 내려가는데 돼지 부유통 밑으로 해가지고 바깥에 담장으로 해갖고 도망쳐 나와 가지고 제가 이렇게 나왔어요.

 

후 략

 

- -

- 다음 녹음순번 계속 -

녹음순번-#13 (파일명:13 탈탈탈-882- 2007년 입국, 남한생활 10년 만에 내 집 마련 _너무 기뻐서 잠도 안 온다_ _ 이순실 인터뷰)

녹음일시-2018. 1. 12.

대 화 자-이순실, 남자 1, 남자 2

전 략

 

남자 1 : 9729살 때 첫 탈북하고 8번 탈북해서 잡혔다가 이제 마지막 탈북은 20071239살 때고요. 3살 먹은 딸 충단이는 엄마 앞에서 인신매매가 돼서 아직 소식을 모르고요. 그러면 이제 지난 회에서 이제 군부대 가기 전에 도둑질 배웠다. 또 마지막에 탈북할 때 그릇 팔아먹은 얘기하셨는데 이게 좀 사실 잘못된 행동이잖아요.

이순실 : 그렇죠. 그런데 그런 인식을 몰라요.

남자 1 : 그러니까 너무 절박하고 힘들면,

이순실 : 오직 그냥 하루 한 끼에 그냥,

 

중 략

 

남자 2 : 그래서 비행기 탔어요. 몇 달 만에 탔어요, 거기 가서?

이순실 : 40.

남자 2 : 얼마 안 있었네.

이순실 : 아니 그 안에서만, 그러니까 이 양탄굴에 들어가서부터는 쭉 석 달 만에 온 거지.

남자 2 : 3개월?

이순실 : . 그 마지막 비행기 거기 탈 때는 한 40일 동안 거기 마지막에 있다가 그렇게 왔는데 야, 비행기 탈 때도 누가 인솔자도 없이 나한테 맡기는 거야.

남자 2 : , 진짜?

 

후 략

 2020.11.14. 지만원

www.systemclub.co.kr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최근글 목록

Total 12,293건 1 페이지
최근글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추천
공지 [전단지]이런문재인,임종석 어떻게 하시렵니까 ? 첨부파일 지만원 2019-09-06 9974 545
공지 북한에 배신당한 아웅산 테러범 제 630, 631광수 지만원 2019-02-14 17315 710
공지 광수들의 신분 정리 지만원 2015-06-10 288866 1405
공지 5.18관련사건 수사결과(1995.7.18)를 공개합니다. 첨부파일 지만원 2013-04-02 341373 1413
공지 [안기부자료] 5.18 상황일지 및 피해현황 첨부파일 지만원 2013-04-02 305264 1339
공지 도서구입 - 종합안내 지만원 2010-08-15 452182 1890
12287 추미애의 경국지추(傾國之秋) (비바람) 비바람 2020-11-26 804 174
12286 박근혜에 몰입된 박빠들의 폐해 지만원 2020-11-26 1042 188
12285 김대령 저 [역사로서의 5.18] 요약 지만원 2020-11-26 770 160
12284 트럼프 이후의 미국은 시드니 파웰이 이끌 것 지만원 2020-11-25 1443 265
12283 문재인과 추미애 독배 마셨다 지만원 2020-11-25 1339 225
12282 국방부와 현충원 관리소는 김정은의 돼지우리 지만원 2020-11-23 1404 238
12281 트럼프가 패하면 모든 나라가 중국의 속국 됩니다. 지만원 2020-11-23 1805 303
12280 회원님들께 드리는 12월의 인사 말씀 지만원 2020-11-23 1106 203
12279 법정에서 공방되어야 할 핵심 쟁점 지만원 2020-11-22 1014 155
12278 청남대 전두환 동상의 목이 잘렸다 지만원 2020-11-20 1649 249
12277 비닐팩포장은 김정은전용기에 보낼 목적(김제갈윤) 댓글(2) 김제갈윤 2020-11-20 1065 163
12276 청주유골 430구, 거대한 음모 보인다 지만원 2020-11-19 1535 212
12275 청주시가 보내온 회신에 대한 평가 지만원 2020-11-18 1287 189
12274 청주유골 430구 처리에 대한 청주시 해명 지만원 2020-11-17 1595 164
12273 나를 고소한 12명의 탈북자들 1차분석을 끝내고 지만원 2020-11-14 1468 274
12272 이순실(제240광수) 녹취록(하) 지만원 2020-11-14 447 46
열람중 이순실(제240광수) 녹취록(중) 지만원 2020-11-14 227 34
12270 이순실(제240광수) 녹취록 (상) 지만원 2020-11-14 370 41
12269 광주에 직파돼 5.18지휘했다는 손성모[안찬일TV] 지만원 2020-11-14 533 83
12268 김성민(제270광수) 녹취록 지만원 2020-11-14 192 31
12267 리민복(제276광수) 녹취록 지만원 2020-11-14 162 28
12266 정광일(제489광수) 녹취록 지만원 2020-11-14 163 31
12265 김정아(제286광수) 녹취록 지만원 2020-11-14 167 37
12264 박세현(제269광수) 녹취록 지만원 2020-11-14 248 36
게시물 검색

개인정보취급방침 서비스이용약관

지만원의 시스템클럽 | 대표자 : 지만원 | Tel : 02-595-2563 | Fax : 02-595-2594
E-mail : j-m-y8282@hanmail.net / jmw327@gmail.com
Copyright © 지만원의 시스템클럽. All rights reserved.  [ 관리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