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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1-02-21 20:39 조회73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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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는 잊지 않는다

                                조선녀성  1990년 제3호(루계448호)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수많은 인민들이 일제히 떨쳐일어나 손에 무장을 들고 용감히 싸운 광주인민들의 영웅적 봉기는 남조선의 파쑈 통치 지반을 크게 뒤흔들어 놓았으며 미제와 그 앞잡이 군사파쑈 분자들을 불안과 공포에 떨게 하였습니다.>

(<김일성저작집>35권, 340페지)


자주와 민주, 통일에 살려는 지향과 념원을 안고 압제자들의 야만통치에 항거하여 일떠선 남조선인민들의 대중적 구국항쟁인 광주인민봉기가있은 때로부터 10년이 되었다. 해가 바뀌고 세월이 흘러 강산이 변했어도 10년전 1980년 5월은 광주시민들이 떨쳐일어나 대지에 붉은 피를 뿌리며 자주, 민주, 통일을 절규하던 그 항쟁의 5월 ,피의 5월을 우리는 영원히 잊을 수 없다.


                           항쟁의 거리


1980년 5월 18일 광주는 침략자, 억압자들을 반대하는 항쟁에 일떠섰다. 미제의 조종밑에 전두환 군사파쑈도당이 5월 17일 남조선 전역에 <비상계엄령>을 실시하고 애국적 인민들과 민주인사들에 대한 전대미문의 파쑈적폭압선풍을 일으킨데 격분한 광주의 청년학생들과 시민들은 전남대학교 학생들의 집회와 시위투쟁을 도화선으로 하여 억압자들을 반대하는 대중적인 항쟁에 궐기해나섰다. <비상계엄령 해제하라> <군부통치 결사반대한다> <전두환은 퇴진하라> <양키는 물러가라>등 구호를 웨치며 100여만 군중의 대하가 거리거리를 메우며 굽이쳤다. 항쟁용사들은 전두환일당의 파쑈폭압이 극도로 강화되는데 대치하여<민주투쟁위원회>를 조직하고 대오를 정비강화하는 한편 <시민군> <특별경계부대> <결사대>등 자위적 무장조직을 내오고 대중적이며 조직적인 무장봉기에로 넘어갔다.


파쑈의 칼날이 번뜩이며 총포탄이 우박치는속에서도 괴뢰군 장갑차의 무한궤도가 지축을 울리며 덤벼들고 미제침략군비행기들이 요동치는속에서도 항쟁용사들은 죽음도 마다하지 않고 온몸이 그대로 육탄이 되어 군사불한당들과 결사전을 벌리였다. 가두 녀성들과 로인들까지도 거리에 달려나와 항쟁용사들에게 음료수와 빵을 공급하고 돌을 날라다주며 인화병을 만들어주고 부상자들을 간호하면서 항쟁에 합세하였으며 나어린 녀학생들과 어린이들까지도 땅크를 타고 시내를 돌며 자주, 민주, 통일을 웨치면서 결사항전을 벌리였다. 


봉기에 참가한 각계각층 군중들은 중무장한 괴뢰군과 괴뢰경찰들의 파쑈적폭압을 박차고 결사적으로 싸워 <계엄군>을 도시에서 몰아냈으며 21개 동의 괴뢰통치기관을 불태우고50여개의 이용기관을 파괴하였으며 <시청>과 <도청>,방송국, 은행, 우편국 등 모든 공공기관들을 점거하였다. 한편 봉기군중은 괴뢰경찰서들과 무기고, 화약고들을 련이어 습격하여 5천4백여정의 각종 저격무기와 수십만발의 탄알들을 로획하였으며 각종 차량 459대를 파괴 소각 하였다.


그리하여 광주는 10일간이나 인민들의 손에 장악되어있었다.  참으로 광주인민봉기는 민주주의에 대한 남조선인민들의 한결같은 지향과 념원을 반영한 의로운 투쟁이였으며 압제자들의 야만통치에 항거하여 억눌려 사는 광범한 각계각층 군중이 참가한 대중적항쟁이였다.


                              피의 광주


광주인민봉기 참가자들의 격렬한 투쟁에 당황한 미제와 그 주구 전두환 파쑈도당은 인민봉기의 불길이 타오른 첫날부터 광주시민들에 대한 잔인무도한 대 살륙 만행을 감행하는 것으로 대답해나섰다. 미제의 조종밑에 전두환 파쏘악당은 악명높은 공수특전대를 비롯한 7만여명의 대병력과 150여대의 땅크와 장갑차, 100여문의대포, 대형헬리콥터와 미싸일까지 동원하여 봉기진압작전, 시민들에 대한 대살륙작전을 벌리였다.


심지어 파쑈살인마들은 환각제를 먹인 공수특전대놈들을 봉기진압에 내몰면서 <광주시민 70%를 죽여도 좋다. 젊은이들은 모조리 죽이라.>는 살인명령을 내리였으며 신경가스탄을 비롯한 유독성화학무기까지 사용하여 봉기군중을 무차별적으로 살육하다못해 녀학생들의 유방을 도려내여 죽이고 임산부의 배를 갈라 태아까지 꺼내여 참살하는 등 차마 눈뜨고 볼수 없는 귀축같은 만행을 감행하였다.  광주의 거리거리에는 항쟁용사들의 붉은 피가 랑자하였다


여기에 한 해외동포가 친척집을 방문하기 위하여 광주에 갔다가 인간백정들의 피비린 살육만행을 목격하고 쓴 수기의 일부가 있다.

<<...참으로 무섭고 끔찍한 살인 행위였다. 여자대학생으로 짐작되는 세명의 처녀들이 공수병에 의하여 옷을 벗기우고 있었다. 속옷까지 모조리 찢어낸 다음 험악하게 생긴 공수병이 처녀들의 앞가슴을 걷어차면서 성난 늑대처럼 내몰았다.  처녀들은 하나와 같이 가슴을 감싸고 길바닥에 꺼꾸러졌다.  순간 처녀들의 등에는 대검이 똑같이 박아지면서 피가 분수처럼 뿜었다. 
역전광장앞에서도 조선대학교의 6명의 대학생들과 3명의 녀공들을 창고에 가두고 발가벗겨 희롱하다가 나중에는 광장에 끌어내여 분수대에 매달고 유방을 도려내어 전선대에 묶어높고 칼로 가슴과 배를 찌르던 나머지 사지를 찢어죽이였다. 두명의 공수병이 만삭이 가까운 임신부를 끌어다놓고 <야, 이년아, 이 주머니에 들어있는 것이 뭐냐?>하고 묻자 임신부는 미처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그러자 한 공수병이 <머슴애는 모조리 죽이라는 것이 전두환총장의 분부다.>하고 소리치면서 <새끼주머니에 든것이 머슴인가 계집앤가,>고 다그쳐물었다. 

이때 옆에 있던 다른 공수병이 <내가 알려주지,>라고 하면서 녀인이 반항할 짬도 없이 옷을 나꿔채자 원피스가 쭉찢어지고 속살이 드러났다. 후비면서 찔렀는지 금방 창자가 튀여나왔다. 그들은 다시 그 녀인의 아랫배를 가르더니 태아를 끄집어내여 아직도 할딱거리며 마지막으로 숨져가는 녀인에게 던졌다.
도저히 믿을수 없고 있을수도 없는 이 처절한 현실을 목격했던 사람들은 하나와 같이 고개를 돌리고 몸서리를 치며 이를 갈았다.>>

진정 인간이기를 그만둔 피에주린 야수, 력사가 일찍이 알지 못하는 인간백정 전두환 군사파쑈 악당의 야만적인 대중학살만행에 의하여 얼마나 많은 광주의 항쟁용사들이 놈들의 야수적인 총탄과 대검의 칼날에 휘두르는 철퇴와 화염방사기에 장갑차와 땅크에 무참히 피흘리며 쓰러졌던가. 항쟁용사들에게 돌과 기와장을 날라다주었다고 하여 어린 고등학교 녀학생을 칼탕쳐죽이고 빵과 물을 보장해주었다고 하여 할머니를 군견을 풀어놓아 물어뜯게 하고 부상자들에게 피를 뽑아주었다고하여 폭도를 도와준 너도 폭도라고 하면서 불태워 죽이고 굴복하지 않는다고 하여 두눈알을 뽑고 심장까지 도려내어 죽이는 잔인한 학살참극이 전두환, 로태우 괴뢰도당에 의하여 가는곳마다에서 헤아릴수 없이 벌어졌다.


온 광주땅은 말그대로 <피의목욕탕>,<죽음의 도시>로 전변되였다. 미제와 파쑈도당의 귀축같은 살인만행에 의하여 봉기 10일동안에 광주시에서는 무려 5천여명이 학살당하고 1만4천여명이 부상당하였으며 주변 시, 군들에서도 1천7백여명의 무고한 주민들이 살상되였다.
 

온 광주시가 피바다에 잠기고 그 시체는 무등산골짜기를 메웠다. 참으로 미제의 지휘밑에 전두환, 로태우 파쑈도당이 감행한 광주대학살만행은 인류력사가 아직 알지 못하는 가장 잔인하고 악독한 동족살륙만행이였으며 그 잔인성과 야수성에 있어서 이전의 파쑈독재자들을 훨씬 뛰여넘는 가장 악랄한 민족백정행위였다.


                          대학살만행의 배후조종자


광주대학살 만행의 배후조종자는 다름아니 철천지원쑤 미제침략자이다.  미제는 광주인민봉기가 터지기 바쁘게 자기의 관할하에 있는 7만여명의 괴뢰군병력과 땅크, 장갑차, 중포 그리고 비행기와 미싸일까지 파쑈살인마들에게 넘겨주면서 봉기군중을 <무쇠주먹으로 진압하라.>고 명령하였으며 군사깡패무리들을 학살만행에 내몰았다. 


한편 미제는 남조선강점 미제침략군에 <경계령>을 내리고 항공모함 <코랄씨>호를 비롯한 각종 전투함정들과 항공기들을 남조선에 급파하여 전두환, 로태우 악당의 학살만행을 무력으로 뒷받침해주고 배후에서 조종하는 천추에 용납 못할 범죄를 저질렀다. 


이제야말로 애국적봉기자들을 살륙하도록 지휘한 광주대학살만행의 배후조종자이며 군사파쑈통치의 장본인이다. 남조선에서 군사파쑈<정권>을 조작하고 력대로 괴뢰들을 파쑈폭압에로 내몬것도, 남조선인민들이 겪고 있는 모든 불행과 재난의 화근도 다름아닌 미제침략자들이다.


오늘 로태우 일당이 1980년 5.17파쑈폭거를 재연하여 제2의 광주대살륙만행을 획책하고 있는 것도 미제의 배후조종에 있으며 광주인민봉기가 있은 때로부터 10년이 지났으나 광주인민들과 남조선인민들이 그토록 갈망하던 자주, 민주, 통일의 념원이 아직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전적으로 미제의 침략책동에 있다.


그러나 남조선인민들은 보고만 있지 않는다. 광주항쟁은 끝나지 않았으며 광주인민들과 남녘겨레들의 가슴속에는10년전 그날의 울분과 분노가 그대로 서리고 맺혀있다.


광주를 그처럼 피바다에 잠근 미제와 전두환, 로태우 일당에 대한 치솟는 분노를 안고 힘차게 싸워온 남조선인민들은 지금 이시각에도 광주항쟁을 계승하여 기어이 자주, 민주, 통일의 념원을 실현하고야말 일념으로 가슴 불태우고 있다.


이제 광주가 일어나고 온 남녘땅이 불타오를 때 그 불길속에 미제와 전두환, 로태우 파쑈살인무리들은 타죽고야 말것이며 애국적 광주항쟁용사들과 남조선인민들의 가슴속에 맺히고 서린 원한을 풀고 자주, 민주, 통일의 새날을 기어이 안아오고야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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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광주민주국≫의 출현

△ ≪총, 총이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시내 중심거리에서만 벌어지던 시민들의 투쟁은 5월 19일에 들어와 광주시 전역에로 파급되였다.

5월 19일 오후 3시경이였다.

동명로와 산수3차로사이에서는 500여명의 군중과 ≪경찰기동중대≫사이에 일대접전이 시작되였다.

≪기동경찰대≫는 군중이 밀집된곳을 따라다니며 최루탄을 쏴대며 마구 탄압하였고 군중들은 그에 맞서서 투석전을 벌렸다.

일진일퇴를 거듭하며 두시간나마 격전을 벌리던 군중들은 드디여 ≪기동경찰대≫를 포위하고 마구 짓조겨댔다.

사면팔방에서 달려드는 군중의 기세에 눌리운 ≪기동경찰대≫는 골목골목으로 빠져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군중들은 ≪놈들이 도망친다! 붙잡아라!≫하고 다급히 소리지르며 골목길들을 봉쇄하였다.

끝내 27명의 ≪기동경찰대≫놈들이 봉기군중에게 붙잡혔다.

바로 이때 포위된 ≪기동경찰대≫를 빼내려고 ≪공정대≫놈들이 밀려왔다.

놈들은 군중들 앞에 밀려와 일렬로 진을 치고는 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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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사격자세를 갖추었다. 그러는 가운데 ≪공정대≫장교 한놈이 뭐라고 소리치며 공포를 쏘았다.

삽시에 주위가 조용해졌다.

그러자 장교놈은 ≪해산하라! 그렇지 않으면 사격하겠다≫고 을러메며 ≪공정대≫놈들을 향하여 ≪사격준비!≫하고 구령을 쳤다.

자칫하면 또 한차례의 피바다가 펼쳐질 위기일발의 직전이였다.

긴장한 침묵이 흐르는속에 ≪가만!≫하고 소리치며 봉기군중을 헤치고 나서는 한 청년이 있었다.

전남대학교 외국어대학 2학년생인 리동훈이였다.

동훈은 ≪공정대≫장교놈에게 다가가 ≪당신들은 지금 자기의 형제들에게 총을 겨누고 있다. 당신들은 자기 형제들을 죽이고 속이 편할것 같은가, 할 말이 있으면 총을 내리우라.≫고 침착한 어조로 말하였다. 그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우리는 지금 <기동경찰대원>27명을 억류하였다. 당신들이 총을 쏘면 바로 그 총알에 그들도 맞아죽을것이다. 당신들이 요구하는대로 억류된 <기동경찰대>원들을 내놓겠다. 그러되 체포해간 우리 동료들을 그만큼 석방하라. 그러면 그 가증스러운 최루가스차도 돌려주겠다.≫고 말하였다.

동훈의 말을 듣던 장교놈은 ≪네가 대표인가? 그렇다면 이야기 좀 해보자.≫고 하고는 옆에 서있는 놈에게 고개짓을 하였다. 순간 ≪공정대≫놈들이 동훈을 덮치였다.

이때 군중들이 ≪저놈들이 사람을 잡는다≫고 고함을 지르며 왁 하고 달려들었다. 그러자 놈들은 달려드는 군중을 향해 총을 마구 란사하였다.

수십명의 군중이 일시에 쓰러졌다. 그 다음부터 놈들은 군중들을 총검으로, 총탁으로 찌르고 치며 미친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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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돌아쳤다.

동명로는 삽시에 군중들의 피와 시체로 뒤덮였다.

총이 없었기 때문에 이런 희생을 당한 것이다.

누군가가 군중들속에서 ≪총! 총!≫하고 피타게 절규하였다.

총!

총이 없었기 때문에 군중들은 잡혀가는 동훈을 빼앗아내지 못했고 수많은 희생을 당하였다.

그 총이 없었기 때문에 군중들은 놈들이 순진한 녀학생들의 옷을 벗겨놓고 갖은 희롱을 다하며 지어 젖가슴까지 도려내여 죽이고 배를 갈라 태를 치는 것을 보고도 저지시키지 못하였다.

총이 없었기 때문에 군중들이 집단적으로 희생을 당한 실례는 너무도 많았다.

총!

총이 없기 때문에 자유와 민주주의는 고사하고 생존권마자 지켜내지 못하고 막대한 손실만을 당하고있는것이였다.

봉기군중은 무장한 적은 무장으로 대항해야 한다는 것을 피로써 체험하였다.

시민들은 드디여 ≪피를 피로 갚자면 총을 들어야 한다≫는 구호를 들었으며 무기획득을 위한 투쟁에 떨쳐나섰다.

5월 21일 광주고등학교와 숭일고등학교 학생들이 ≪학도호군단≫의 무기고를 들이치고 많은 무기를 탈취하였다.

이것은 광주인민봉기과정에 봉기군중이 처음으로 벌린 무기탈취투쟁이였다.

군중들은 무기를 탈취한 그들을 열렬한 박수로 환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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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하는 군중에게 학생들은 로획한 무기를 높이 들고 ≪우리는 총에는 총으로 대항하는 길밖에 없기에 부득이 총을 쥐였다≫고 흥분하여 웨쳤다.

압박이 있는 곳에는 반항이 따르는 법이다.

압박의 힘이 클수록 반항하는 힘도 그만큼 강해지는 것이다.

이때부터 봉기군중은 무기르 획득하기 위해 놈들의 무기고들을 본격적으로 들이치기 시작하였다.

폭동군중은 괴뢰들의 군용차량공장인 ≪아세아자동차 공장≫을 습격하여 314대의 군용차량을 로획하였으며 그 밖에도 414대의 각종 차량들을 탈취하였다.

봉기군중들은 로획한 이 차량들을 타고다니며 놈들의 무기고들을 들이치고 많은 무기들을 로획하였다.

600여명으로 구성된 폭동군중의 한 집단은 괴뢰군 제199지원단 제1훈련소의 무기고를 기습하여 숱한 무기를 탈취하였고 지원동 석산의 독립가옥에 보관되여있는 많은 폭약과 뢰관들을 빼앗아내였다.

200여명으로 무어진 다른 한 폭동집단은 시내의 ≪향토예비군≫무기고들을 들이치고 많은 총들을 로획하였다. 그리고 ≪카톨릭쎈터≫앞에서는 괴뢰군 지방 ≪계엄군≫을 포위하고 놈들의 군용차와 여러대의 버스를 탈취하였다.

이리하여 무기탈취투쟁을 시작한 21일 오전부터 오후4시 현재까지 폭동군중이 탈취한 무기는 카빙총 2,240정, ≪엠-1≫보총 1,235정, 권총 28정, 실탄 4만 6,400여발이였고 장갑차가 4대, 군용차량이 400여대에 달하였으며 수백키로그람에 달하는 폭약과 수백개의 뢰관들도 획득하였다.

무기획득을 위한 봉기군중들의 투쟁은 이날 오후부터 광주의 주변지역에로 확대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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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군에 진출한 폭동군중은 괴뢰경찰서 ≪산포지서≫, ≪로안지서≫ 등 5개의 괴뢰경찰서들을 습격하고 놈들이 가지고 있던 무기를 모조리 빼앗아내였다.

화순군에 진출한 봉기군중은 괴뢰경찰서의 역전무기고, ≪전투경찰중대무기고≫, ≪동면지서≫, ≪릉주지서≫, ≪향토예비군무기고≫들을 들이치고 수많은 무기들을 탈취하였다.

장성군, 강진군, 령광군, 승주군, 해남군에서도 무기탈취투쟁이 벌어졌다.

이날 오후에는 오전보다 더 많은 무기를 탈취하였다. 그리하여 오후에 이르러 봉기군중들은 일반상용무기들을 대체로 다 장만하였다.

이때 일부 외신들은 광주의 봉기군중이 남조선괴뢰들로부터 탈취한 무기로는 괴뢰군 2개 사단을 무장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무기탈취를 위한 투쟁은 순조롭게 진행된 것이 아니였다.

봉기군중은 때로는 치렬한 격전을 벌려야 하였고 수많은 희생도 당하였다.

그러나 봉기군중은 무기가 있어야 자신들을 지켜낼 수 있다는 피의 체험이 있었기에 그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고 놈들과 싸웠으며 끝내 무기를 탈취해내고야말았던것이다.

괴괴군 제179지원단의 무기고를 습격할 때의 일이다.

폭동군중이 무기로를 향해 밀려들자 보초놈들은 사격을 가하며 완강하게 저항하여나섰다.

그리하겨 무기고기습초기에 벌써 적지 않은 청년들이 희생되였다.

정면으로 밀고들어가면 막대한 희생을 낼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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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폭동군중은 정면에서 사격전을 벌리는 한편 몸이 빠른 청년들로 놈들의 배후를 기습하게 하였다.

정면의 폭동군중을 막는데 급급하던 놈들은 배후에서 불의에 달려들어 내려치는 청년들의 각목세례를 받고 모두 나가너부러졌다.

보초병들을 까눕힌 군중들이 무기고를 열어제끼는 순간이였다. 꺼꾸러졌던 보초 한놈이 정신을 차리고 무기고앞에 모인 군중들을 향하여 사격을 가하였다.

그리하여 또 여러명의 폭동군중이 희생을 당하였다.

괴뢰도청을 탈취하이 위한 격전을 한창 벌릴때에는 죽어자빠진 괴뢰군의 시체에서 총을 벗기려던 5명의 어린이들이 ≪공정대≫놈들에게 붙잡혀 무참하게 참살당하기도 하였다.

실로 폭동군중이 획득한 무기들에는 못다싸우고 희생된 봉기자들의 피가 그대로 스며있었다.

무기를 탈취한 폭동군중은 희생당한 사람들의 복수를 다짐하면서 무장대오를 편성하였다.

고등학교학생들은 ≪돌격대≫, ≪특공대≫를 무었고 대학생들은 ≪전남지역학생총련맹≫의 지휘에 따라 대학별로 전투대오를 조직하였다.

무기를 틀어쥔 폭동군중은 이때부터 놈들과 정면으로 대결하여나섰으며 ≪도청≫, ≪시청≫, ≪검찰청≫, ≪법원≫, 방송국, 은행, ≪경찰서≫, 우체국 등 광주시내의 모든 괴뢰공공기관들을 무력으로 공격하였다.

폭동군중은 괴뢰경찰서들과 광주역부터 먼저 공격하고 그곳을 타고 앉았다.

서울에서 광주로 수송되여오는 다수의 ≪공정대≫놈들이 광주역을 리용하고 있으며 광주시내에서 괴뢰경찰서들을 하나의 기지로 리용하여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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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우기 수천명의 ≪공정대≫놈들이 기차로 서울을 출발하여 광주로 향하였다는 소식이 널리 퍼졌던것이다.

폭동군중은 새벽에 광주역을 점령하고 서울로 떠려는 기관차 한대와 열한대의 객차를 파괴하고 광주역으로 들어오는 수십메터의 철길을 다 들어냈다.

뒤이어 그들은 ≪택양경찰서≫를 습격하고 점령하였으며 ≪전남검찰청≫과 ≪광주법원≫을 습격파괴하였다.

무장한 폭동군중의 격노한 흐름은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힘으로 광주를 휩쓸었다.

드디여 놈들은 광주시내에서 한걸음두걸음 물러서기 시작하였다.

시내 곳곳에서는 쫓겨가는 적들과 치렬한 총격전이 벌어졌다.

수세에 빠진 ≪공정대≫놈들은 ≪도청≫, ≪시청≫, ≪경찰국≫, ≪서부경찰서≫,≪광주교도소≫를 제외한 모든 공공건물들에서 퇴각하였다.

이날 오후1시 폭동군중은 드디여 괴뢰도청에 대한 총공격을 개시하였다.

폭동군중은 놈들의 퇴로를 완전히 막아버리고 서서히 육박해들어갔다.

사면을 물샐틈없이 포위하고 육박하는 폭동군중의 공격에 기겁을 한 ≪공정대≫놈들은 직승기를 동원하여 폭동군중에게 맹사격을 가하였다. 이에 대항하여 폭동군중은 로획한 고사총을 건물옥상에 걸어놓고 놈들의 직승기에 사격을 퍼부었다.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생사를 판가름하는 총격전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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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놈들의 기세는 처음보다 절반이나 떨어졌다. 이러한 때 ≪도청≫을 지키던 ≪공정대≫놈들속에서 비상사건이 일어났다.

≪공정대≫놈들 속에 있던 전라남도출신의 한 병장이 그 비상사건의 주인공이였다.

5월 19일 광주에 증강되여올 때부터 그 병장은 ≪전라도놈들을 모조리 죽이라!≫고 지껄인 전두환역적에 대해 매우 커다란 반감을 가지고있었다.

그는 광주에 도착하여 시민들을 닥치는대로 사살하는 ≪공정대≫원놈들을 보고는 치를 떨며 이를 갈았다.

≪도청≫방어전이 한창일 때였다.

≪도청≫뒤마당쪽에서 어린이들의 자지러진 비명소리가 총성을 뚫고 들려왔다.

다급한 속에서도 ≪도청≫안에 웬 아이들이 있는가싶어 뒤마당으로 돌아가던 병장은 젖먹던 밸까지 울컥 올라오도록 분격할 참상을 목격하였다. 다른 ≪공정대≫원놈들이 어린아이 다섯명을 잡아놓고 차례로 찔러죽이는것이였다.

어린아이들이 죽은 ≪공정대≫놈들의 무기를 ≪탈취≫하려 했다는것이다.

이 기막힌 광경을 목격한 병장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살인마이기로서니 어린아이들까지 저렇게 무참하게 찔러죽여야 하는가.

만약 저 어린것들이 제동생이라면 결코 저렇게 무참하게 살육하지는 못할것이다.

짐승만도 못한 저런 자식들속에 끼여있다는것자체가 죄악이다.)

이렇게 생각한 병장은 ≪공정대≫에 대한 혐오감과 증오심이 일시에 생겨나고 격분이 솟구쳐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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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내가 바보였다, 내가 바보였어!≫하고 소리치면서 쥐고있던 총으로 ≪공정대≫놈들을 마구 쏴갈겼다.

다섯놈이 그 자리에서 즉사하였다.

그리고 병장자신도 자총하고말았다.

이 사건이 터지자 ≪공정대≫원들속에서는 동요가 일어났다.

환각제를 먹은 상태여서 모두가 짐승처럼 보이는 판국에 언제 누가 자기에게 총구를 돌려댈지 알수 없는것이였다. ≪공정대≫놈들은 봉기군중을 경계하는것보다 자기의 패거리들을 더 경계하기 시작하였다.

이런 때 봉기군중의 공격이 더욱 세차졌다. 봉기군중은 휘발유를 가득 실은 소방차에 불을 달아 ≪도청≫정문으로 몰아넣기도 하였다.

≪공정대≫놈들에게는 봉기군중을 막아낼 힘이 더는 없었다.

드디여 놈들은 직승기로 문건들과 ≪공정대≫들을 철수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저녁8시경에 봉기군중은 괴뢰도청을 완전히 장악하였다.

≪도청≫이 봉기군중의 수중에 장악되였다는 소식이 ≪시청≫과 괴뢰경찰국, ≪서부경찰서≫를 기키던 놈들에게 전해지자 그놈들도 저마끔 꽁무니를 빼고 말았다.

봉기군중은 치렬한 격전 끝에 밤11시경에 괴뢰군 ≪공정대≫와 지방≪계엄군≫, 괴뢰기동경찰대를 광주시내에서 교외에로 완전히 내몰았다.

이것은 봉기군중이 달성한 큰 승리였다.

이 승리는 80만 시민이 합심하여 무장한 적을 무장으로 대항한 결과에 이룩된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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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수호의 무기

 

32살난 마산무용학교 녀교원 전옥주는 본가가 있는 광주에 왔다가 동생들이 참살당하는데 분격하여 봉기에 참가하였다.

그는 초기에 봉기군중에게 돌을 날라다주고 물을 떠다주었으나 어쩐지 그것으로 자기 할 일을 다한것 같지 않았다.

무엇을 하면 더 잘 싸울 수 있겠는가 하고 궁리하던 전옥주는 방송원을 하면 군중에게 더 큰 힘을 주고 놈들에게 커다란 타격을 안겨줄 수 있다는 생각에 미쳤다.

하여 전옥주는 방송원이 될것을 자원하여 나섰다.

마산에 어린 자식들을 두고있는 어머니였지만 광주사람들, 아니 동족이 무참하게 살육당하는데 언제 자식들 생각을 하랴 하면서 봉기자대렬속에 뛰여든 그였다.

전옥주는 확성기를 설치한 군용차를 타고다니면서 열정적인 선동구호로 봉기군중의 사기를 북돋아주었다.

시민들이여! 모두가 궐기하자! 전두환악당은 광주시민들을 전멸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

보라! 공정대의 만행을!

그들은 인간이 아니다. 인두겁을 쓴 짐승의 무리이다!

우리의 항거는 정의적이며 파쑈폭력에 대한 민주의 폭력이다.

정의와 민주는 반드시 승리한다!

시민들이여!

모두가 궐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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궐기하여 전두환살인악귀를 타도하자!

그는 이렇게 웨치며 광주시내의 큰 길들과 골목들을 누비였고 멀리 교외에까지 진출하였다.

전옥주가 격동적인 방송을 하며 거리를 지나갈 때면 풋낯이나 알고있던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생소한 사람들도 ≪우리 옥주≫, ≪옥주선생≫, ≪마산의 녀선생≫이라고 하며 총쥔 손을 높이 들어 반갑게 인사하였다.

그럴때면 전옥주도 비록 처음보는 얼굴들이였지만 서로가 통하는 마음들이여서 웃으며 손짓하며 반겨주었다.

5월 20일밤.

전옥주는 봉기군중을 향하여 ≪중대발표≫를 하는 영광을 가지게 되었다.

시민여러분!

래인 <도청>앞에서 중대한 행사가 있게 됩니다.

자유의 광주, 민주의 광주에 일떠세울 광주민주국의 대표들을 선거합니다!

시민여러분!

모두가 <도청> 앞 광장으로 모입시다.

모여서 우리의 대표기관을 선출합시다.

전옥주는 온밤 광주시내와 주변군들을 돌아다니며 이렇게 웨쳤다.

전옥주의 이 방송은 사라들을 몹시 흥분시켰다.

듣는 사람마다 가슴이 뭉클해하였고 방송을 하는 전옥주자신도 무한히 격동되였다.

≪격동의 광주≫, ≪민주의 광주≫를 상징하는 ≪광주민주국≫!

광주의 봉기자들이 이 시각을 얼마나 기다리고 또 기다려 왔던가!

그리고 이 기쁨의 순간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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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이 피를 흘렸던가.

≪자유의 광주≫를 위해 싸우다 장렬하게 희생된 영령들도 이날만은 기쁨을 금치 못할것이였다.

그렇다.

자유의 광주, 민주의 광주를 일떠세우기 위해 광주시민들은 수많은 희생을 당하였고 그들이 흘린 피는 바다를 이루었다.

자유와 민주의 정권을 위해 그들은 파쑈폭압의 험난한 가시덤불길도 마다하지 않고 꿋꿋이 싸워왔으며 수많은 학우들과 벗들을 혈전의 길에서 잃었다.

그야말로 ≪광주민주국≫은 열혈시민들이 흘린 피의 대가이며 정의와 애국에 불타는 인민대중의 간고한 투쟁의 고귀한 열매였다.

그러므로 광주에 자유의 민주의 대표기관 - ≪광주민주국≫의 대표들을 선출한다는 소식을 듣는 사람들마다 흥분되지 않을 수 없었고 그 소식을 전하는 방송원 또한 격동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 기쁨의 소식을 알려주는 방송원이나 그 소식을 듣는 시민들이나 모두가 다같이 격정의 눈물을 뿌리였고 기쁨으로 가슴설레였다.

비록 남녘땅 전역은 아니더라도 자그마한 광주에서나마 자유의 정권, 민주의 정권을 세운다고 생각하니 그들의 마음인들 어찌 설레이지 않을 수 있으랴!

5월 21일!

이날 새벽4시부터 봉기군중들이 ≪도청≫앞 광장으로 몰려들었다. 시내 곳곳에서 모여들고 마산, 화순, 목포, 강진, 담양, 승주 등 전라남도의 각 군들에서도 자동차로, 도보로 밀려왔다.

≪도청≫앞 광장에는 군중이 밀집되다 못해 금남로 일대에 차넘치였고 금남로와 대봉로, 금남로와 충장로를 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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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하는 길복판에도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일부 외국통신들은 이때 모인 군중이 30만을 헤아린다고 전하였다.

하지만 이날에 모인 군중은 그보다 더 많았다.

≪광주민주국≫의 선포를 알리는 식은 간단하였다.

각계각층 대표들의 의견들이 제기되고 그에 따라 ≪광주민주국≫의 림시명칭이 결정되였다.

≪광주민주국≫의 림시명칭은 ≪민주투쟁위원회≫였다.

민주투쟁위원회≫가 곧 자유와 민주의 완벽한 정권은 아니였다.

그것은 진정한 자유, 민주의 정권을 세우기 위한 과도적인 ≪주권적 대표기관≫이였다.

모두가 반동의 야만적인 폭력에 정의의 폭력으로, 조직적인 폭력으로 맞서자면 봉기군중을 단합시키는 중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일치하게 강조하였다.

시민들의 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도, 부상자들을 치료하는데서도, 도시의 질서를 바로잡는데서도 통일적인 조직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누구나 다 토로하였다.

민주투쟁위원회≫, 이것은 바로 봉기군중, 아니 전체 광주시민들을 위한 대표기관이였다.

동시에 그것은 봉기군의 통일적인 지휘기구로 무력과 작전을 통솔하는 군사령부였고 파쑈통치체제의 무덤우에 민주의 체제, 인민대중의 진정한 자유의 체제를 세우고 주민생활의 안정을 보호하는 민주정권의 새싹이였다.

민주투쟁위원회≫는 행정부와 외무부, 기획부와 통보부, 작전상황실과 기동타격대 그리고 대변인실 등의 10개의 부서를 두었고 매개 부서와 책임자들은 ≪민주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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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위원회≫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게 되어 있었다.

조선대학교 무역과 3학년생이였던 김종배가 위원장으로 선거되였다.

그는 적에 대한 비타협적인 투쟁정신과 강의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였다.

그리고 그는 리론과 현실에 대한 리해가 깊었고 이웃을 위해 자기를 희생할 줄 아는 고상한 정신도덕적풍모도 갖추고 있었다.

그는 ≪전남지역학생총련맹≫의 중요한 핵심이였고 조선대학교학생위원회 위원장이였다.

봉기자들은 그가 ≪민주투쟁위원회≫를 군중의 의도에 맞게 이끌고 나가리라고 확신하였고 위원자이 된 그를 열렬한 박수로 환영하였다.

행정부위원장에는 조선대학교 공과대학 2학년생이였던 허귀정이 선출되였고 ≪보성기업≫ 요업과장이였던 정상룡이 외무부위원장으로 추천되였다.

그리고 ≪기독교청년회≫ 종교인 김영철이 기획부장으로, 골재운반차 운전선 박남선이 상황실장으로, 가구공 윤석주가 기동타격대장으로, 회사원 김준봉이 치안부장으로 선출되였다.

이들 모두는 광주시민, 아니 온 전라남도 인민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이였다.

그들모두는 그만치 인밍들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한몸바쳐싸워온 열렬한 애국자들이였다.

조직된 ≪민주투쟁위원회≫는 첫 사업으로 무장부대들을 편성하는데 바쳤다.

기동타격대장 윤석주의 제안에 따라 무장한 ≪시민군≫을 ≪특별경계부대≫, ≪결사대≫,≪돌격대≫, ≪특공대≫와 여러개의 기동타격부대들로 편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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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개 부대들에는 군사에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책임자로 임명되였다.

그들은 무장을 쥔 군중에게 초보적인 군사훈련부터 실시하였다. 총을 쥐고있으나 쏠줄 모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고 고장퇴치법을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초보적인 무기상학과 간단한 구조작용원리학습을 진행하고 어느 정도 총다루기에 숙력된후 광주공원에서 무기수여식을 진행하였다.

기동타격대는 ≪민주투쟁위원회≫의 무장력이였으며 각계각층 인민대중의 리익을 옹호하는 시민의 참다운 무장력이였다.

민주투쟁위원회≫의 조치에 따라 기동타격대는 시내의 주요 건물들과 지점들에 배치되여 적의 기습을 물리치는 방차재의 역할을 하였으며 필요한 때에는 적들을 주동적으로 공격하였다.

그들은 또한 장갑차를 타고다니며 거리를 순찰하기도 하였다.

한편 일부 무장대는 첫 군사활동으로 ≪계엄군≫의 본부가 있는 송정리에서 멀지않은 ≪삼양다이야회사≫를 습격방화함으로써 놈들을 당황망조케 하였다.

다른 무장 부대들은 시외에 진출하여 무기를 계속 탈취하였으며 그것이 광주에 도착하는 차제로 새로운 무장부대들을 조직하였다.

일부 부대들은 화순, 승주 등에 진출하여 무기들을 탈취하였으며 그것을 광주시내로 가져다가 지원동과 광주공원에서 군중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민주투쟁위원회≫는 광주시를 무력으로 보위하고 강화하는데 큰 힘을 넣었다.

민주투쟁위원회≫의 통일적인 지휘에 따라 기관총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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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무장한 ≪특별경계부대≫들이 시내의 고층건물들과 주요지점들에 배치되여 적기의 란동을 견제하고 ≪공정대≫의 교란작전을 감시파탄시키는 투쟁을 하였다.

치안부대에서도 해방된 광주에 질서를 세우며 광주로 숨어들어오는 ≪공정대≫의 정탐들과 시안에서 준동하는 밀정들을 적발처형하고 주민생활의 안정을 보장하기위한 면밀한 사업을 펴나갔다.

치안부대는 또한 봉기군이 리용하는 ≪도청≫, ≪시청≫, ≪경찰국≫, 방송국, 신문사 등의 공공건물들과 주요 공장들에 대한 경비를 조직하였으며 사람들의 무질서한 출입을 단속하기도 하였다.

민주투쟁위원회≫는 광주시안의 전화와 무선통신지휘체계도 통일적으로 장악하여 모든 정보들이 ≪민주투쟁위원회≫에 제때에 집결되게 하고 ≪민주투쟁위원회≫의 지시가 즉시에 해당장소에서 집행되도록 하였다.

민주투쟁위원회≫는 대중정치선전사업도 활발히 벌려나갔다.

민주투쟁위원회≫는 방송과 신문발간을 통한 선전사업을 정력적으로 벌렸고 가두방송, 대벽보, 선언문, 삐라, 노래, 가두선전, 합동장례식과 같은 여러 가지의 형식과 방법으로 선전사업들을 진행하였다.

그 내용들은 모두가 전두환파쑈악당의 귀축같은 살육만행과 집권야욕을 낱낱이 폭로하는 것으로 일관되였고 봉기군중들에게 승리의 신심을 안겨주고 투쟁목표와 방도들을 제시하여 주는 것들이였다.

광주봉기자들은 18일부터 26일까지 신문 ≪민주회보≫를 9개호나 발행하였다.

신문에서는 광주인민봉기의 정당성을 론증하고 적들의 살육만행과 그에 분격한 시민들의 절규를 실었으며 전두환괴뢰도당의 간교한 회유기만술책의 정체를 폭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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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봉기군중의 앞으로의 활동목표와 수행방도들을 제시하는 지시문들을 실었다.

신문 ≪민주회보≫의 매호들은 전두환파쑈악당과 끝까지 싸워나갈 결의와 봉기군중들의 격노한 웨침들로 끝을 맺었다.

삐라도 수많이 찍어내어 시내중심가에 매일같이 뿌렸다.

계엄군을 타도하자!≫, ≪김대중을 석방하라!≫, ≪계엄령을 철폐하고 구속자들을 석방하라!≫, ≪공정대는 전두환의 명령에 따라 전라도사람들의 씨를 말리러 왔다고 말하고 있다. 모두가 일어나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자!≫고 하는 것들이 삐라의 기본적인 내용들이였다.

민주투쟁위원회≫가 자기의 기능을 원만히 수행하는데 만족한 봉기군중들은 ≪민주투쟁위원회≫를 ≪광주민주국의 림시정부≫라고 자랑스럽게 불렀다.

이에 대하여 일본 도꾜대학의 한 교수는 다음과 같이 썼다.

≪시위를 계속하던 광주의 학생, 시민들은 권력 앞에 맞서 나섰다.

전두환일파의 사병이 된 공정부대의 잔학은 이들에게 무기를 잡게 하였으며 마침내 광주봉기는 잠시나마 자유광주, 광주민주국을 산생시켰다.

이 수일간 남조선 전역에서 공포의 강권탄압이 광란하였지만 광주에서만은 언론의 자유가 있었다.

정부를 비판할 자유, 시위를 할 자유가 완전히 있었던 것이다.

탄생한 자유의 공간은, 혁명승리의 려명은 남조선 전지역에서 실현시켜야 할 새로운 질서의 본보기였다.≫(일본잡지 ≪세까이≫ 1980년 7월호)

민주투쟁위원회≫는 ≪광주민주국≫을 일떠세운 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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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들로 하여금 그 성과를 도안의 시, 군들로 확대하여 나가도록 투쟁을 조직 지휘하였다.

이에 따라 봉기군은 목포시를 중요공격대상으로 삼았다.

21일 오후2시반경에 6대의 고속뻐스와 2대의 승용차를 탄 봉기군중은 목포시로 진출하였다.

봉기군중은 목포에 도착하는 즉시로 대중선동사업을 힘있게 벌렸다.

≪목포시민여러분!

광주는 해방되였다.

자유, 민주의 광주가 태여났다.

악마의 독재에서 벗어나 민주의 정권을 세웠다.

시민여러분!

일어나라! 궐기하라!

우리 함께 독재의 아성을 짓부시고 자유의 목포, 민조의 목포를 일떠세우자!≫

그렇지 않아도 전두환괴뢰도당의 파쑈적폭압책동을 반대하는 시위투쟁을 벌려오던 목포시민들은 광주에서 온 봉기군의 이 격동적인 호소에 즉시 호응하여 투쟁의 길에 떨쳐나섰다.

목포에서는 처음 2만여명의 군중이 궐기하였고 그날 저녁9시에는 3만여명으로 불어났다.

그들은 괴뢰목포경찰서와 여러개의 파출소들을 습격 파괴하였고 괴뢰시청을 비롯한 행정관료기관들과 어용방송국을 점령하였다.

폭동에 궐기한 군중들의 기세는 시간이 갈수록 높아갔다.

5월 22일 새벽 목포시에서 봉기에 참가한 군중은 10여만명으로 확대되였다.

폭동군중의 격노한 기세에 질겁한 목포시안의 괴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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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은 경비정을 타고 황황히 도망치고 말았다.

이날 봉기군은 목포에 도사리고 있던 ≪지방계엄군≫도 완전히 제압하였다.

령광군에서도 군내 인민들이 5월 21일밤을 기해 일제히 폭동에 궐기하였다.

봉기군은 군대의 모든 ≪경찰지서≫들과 ≪파출소≫들을 습격파괴하였고 22일 오후에는 령광군을 완전히 장악하였다.

라주군에서는 22일 봉기자들이 군 ≪경찰서≫와 ≪라주지서≫, ≪파출소≫들을 습격파괴하고 괴뢰군청을 점거하였다.

같은날 담양군과 화순군에서는 괴뢰경찰서들과 ≪파출소≫들을 비롯한 괴뢰관공서들을 기습파괴하는 봉기가 있었다.

특히 화순탄광로동자들은 봉기의 맨앞장에서 괴뢰경찰서 ≪릉주지서≫, ≪역전파출소≫, ≪향토예비군≫무기고를 습격하여 많은 무기와 탄약을 로획하였다.

5월 21일 밤 12시 완도군에 도착한 광주의 봉기군중들은 그곳 시위군중과 합세하여 괴뢰군청와 ≪경찰지서≫를 습격파괴하였고 ≪항동파출소≫, ≪대촌지서≫, ≪비아지서≫ 등 괴뢰경찰들의 소굴들을 기습하여 파괴하거나 소각하여 버렸다. 그리고 잇달아 ≪향토예비군 중대본부≫를 습격하여 괴뢰전투경찰대놈들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고 완도군을 완전히 해방하였다.

승승장구하는 그 기세로 봉기군은 해남군으로 진출하였다.

21일 저녁 이곳 해남군에 도착한 광주봉기군중의 한 대오는 구두선동사업을 맹렬히 벌려 군내인민들을 폭동에 궐기시켰으며 그들과 함께 계곡면 ≪경찰서≫를 들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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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명으로 구성된 봉기군중의 다른 한 대오는 려수 방면으로도 진출하여 괴뢰경찰서와 ≪파출소≫를 여러개나 공격하여 파괴하여 버렸고 수많은 무기와 탄약을 로획하였다.

전두환살인악당을 반대하는 전라남도내 인민들의 봉기는 승주군, 보성군, 령암군, 함평군, 광양군, 영산포, 장흥군에서 잇달아 일어났으며 이 도의 26개 시, 군 가운데서 17개 시, 군이 봉기에 합세하고 도내 괴뢰통치체제는 거의 마비상태에 빠졌다.

이렇게 되자 전두환 일당은 전라남도의 괴뢰도청을 전라북도 리리시에 옮겨놓고 괴뢰내무부가 전라남도의 행정전반을 담당한다는 통고문을 발표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러나 이러한 발표는 세계의 여론을 기만하기 위한 것이였다.

광주시가 봉기군에 의하여 점거된후부터 괴뢰도청이란 존재하지도 않았으며 괴뢰내무부 역시 전라남도의 행정에 대해 손을 써본 적이 없었다.

5월 22일 전라남도의 광범한 지역은 봉기군에 의하여 완전히 장악되였다.

≪광주민주국≫이야말로 미제와 그 앞잡이들의 전대미문의 악랄한 파쑈폭압마아에 포위된 속에서 과감하게 일떠선 참다운 민주정권의 맹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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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분노 / 조선로동당출판사 편,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85.

 

7. 빛나는 최후

△ 최후결전을 앞두고

 

정세는 전두환괴뢰도당의 발광이 극도에 이르렀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전남북계엄분소장≫ 소준렬놈은 박충훈놈의 ≪특별담화문≫이 발표되자바람으로 ≪란동자들은 빨리 무기를 바치고 자수하라. 그렇지 않으면 징벌을 면치 못할것≫이라고 고아댔다.

사태에 직면하여 ≪민주투쟁위원회≫는 광주시를 끝까지 고수할 대책들을 세워나갔다.

무엇보다도 봉기군중을 결사의 각오로 더욱 튼튼히 무장시키는데 힘을 집중하였다.

민주투쟁위원회≫는 련일 시민궐기대회와 시위를 진행하였다.

5월 23일 오후 3시에는 궐기대회를 가진 뒤 끝에 ≪평화행진≫이라는 이름을 단 시위를 벌렸다.

시위는 놈들이 학살한 시체를 메고 행진하면서 봉기군중을 ≪폭도≫, ≪란동자≫라고 떠벌이는 전두환파쑈악당을 규탄배격하는 것으로 일관되였다.

봉기군중들은 모두가 격노하여 ≪우리는 란동자도 폭도도 아니다.≫, ≪피는 피로써 갚자≫고 웨쳤고 전두환일당과 끝까지 싸울것을 결의하였다.

이날 전두환파쑈악당은 시위자들을 향하여 직승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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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기관포를 란사하였다.

수많은 시민들이 기관포에 맞아 무참하게 살해되였다.

이런때면 봉기군중들은 놈들을 증오하던 나머지 ≪저런 악귀들을 편히 날아다니게 하는 하늘도 무심하다≫고 ≪하늘≫까지 원망하기도 하였다.

5월 24일 오후 9시에는 5만여명의 봉기군중이 전날 놈들에게 학살당한 사람들에 대한 장의식을 거행하였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시민위원회≫와 ≪학생수습대책위원회≫가 공동으로 작성한 ≪시민행동강령≫을 발표하였다.

그 강령의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5 ․ 18광주민중의 봉기는 우리민족의 지혜와 민주화의 념원을 반영한 것이다.

우리는 궁극적인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투쟁을 계속할 것이다.

모두가 일심동체가 되어 조성된 난국을 타개하여나가자.

모두가 자각적으로 질서를 세우는데 최선을 다하자.

모든 총기는 각자가 책임적으로 휴대할것이며 총기에 의한 오발사고와 기타 사고들을 철처히 근절하며 이와 관련하여서는 시민들모두가 적극 협력하자.

자유민주를 위해 싸우다 희생된 봉기자들은 엄숙하게 시민장의를 한다. …≫(일본도서 ≪광주 80년 5월≫)

봉기군중은 ≪시민행동강령≫을 철저히 준수할 것을 모두가 다짐하였다.

이럴 때 비가 쏟아져내렸다.

우산을 펼치는 사람들, 비옷을 쓰는 사람들, 아무것도 없이 서있다가 비옷을 쓰거나 우산을 펼치는 사람들 틈으로 끼여드는 사람들모두가 비를 피하느라고 소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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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고 무질서가 조성되였다.

그러자 궐기모임을 사회하던 한 사람이 ≪여러분, 조용합시다! 이 비는 원통하게 죽은 광주의 영령들이 눈을 감지 못하고 흘리는 피의 눈물입니다. 우리가 이 비를 어떻게 피할 수 있겠습니까.≫하고 격조높이 웨쳤다.

봉기의 나날에 계속 내린 비는 전두환살인악당에 의하여 원통하게 참살당한 시민들의 원한에 찬 피의 눈물과 같았다.

하기에 모두가 펼쳤던 우산도 머리에 썼던 보자기도 다 걷어넣었다. 그리고는 대줄기같이 쏟아지는 비를 그대로 맞으며 영령들을 숭엄하게 추모하였다.

≪시민행동강령≫이 채택된후 봉기군중은 ≪전두환화형식≫을 가졌다.

사회자가 전두환역적의 가장물을 들고 나타나자 모두가 그 가장물에 침을 뱉고 돌을 던지면서 ≪살인악귀≫, ≪찢어죽일 놈≫, ≪인간백정≫이라고 소리쳤다.

≪공정대≫놈들에게 부모와 동생, 온 가족을 잃은 한 대학생이 구천에 사무친 원한을 담아 ≪광견 전두환을 화형하자!≫는 성토문을 격한 어조로 랑독하고 결연히 가장물에 불을 달았다.

모두가 박수를 쳤고 환성을 울렸다.

비가 오는 때인지라 가장물이 다 타버리지 않게 되자 시민들은 그 잔해를 마구 밟아뭉갰다.

불에 타던 가장물의 잔해는 수천의 시민들이 밟고짓뭉개는데 따라 갈기갈기 찢어져나갔다.

그럴수록 시민들은 ≪죽여라!≫, ≪탕쳐라!≫고 연방 노호성을 지르며 밟고 또 짓뭉갰다.

살인자 전두환역적에 대한 광주시민들의 증오심은 이렇게 높았다.

5월 25일에는 비가 온종일 억수로 퍼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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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서도 시민들은 자진하여 궐기대회를 가졌고 20여만이 일대 시위를 하였다.

그들은 ≪광주민주국≫아래서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마음껏 누려보자는데도 있었으나 살인악귀를 하루한시라도 규탄배격하지 않고서는 견딜수 없었다.

련일 계속되는 궐기대회와 시위로 고조된 시민들의 열기는 26일에도 식을줄 몰랐다.

아침 5시 적들이 땅크를 앞세우고 ≪농촌진흥청≫ 앞길로 하여 광주시내로 육박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봉기군중들은 모두가 총을 쥐고 떨쳐나섰다.

올테면 오라!

우리를 다 죽인 다음에는 몰라도 광주로는 그대로 들어갈 수 없을 것이다!

군중들은 이렇게 웨치며 달려오는 땅크를 맞받아나갔다.

녀인들은 ≪우리를 먼저 죽여라!≫고 웨치며 땅크가 들어오는 길복판에 렬을 지어 드러누웠다.

로인들도 어린이들도 손에 손을 잡고 자기들로부터 깔아죽이라고 고함치며 땅크로 육박하였다. 군중의 완강한 저항에 당황한 놈들은 물러서지 않을 수 없었다.

이날 금호고등학교부근에서는 주민들을 격분시키는 하나의 사건이 또 터졌다.

아침 ≪시민군≫이라고 자처하는 세놈이 마을에 나타나 총을 란사하며 주민들의 물건들을 마구 략탈하였다.

지어 이 략탈자들은 ≪시민군이 어떻게 주민들의 물건에 손을 대는가≫고 따지는 할머니를 총탁으로 후려치면서 ≪우리 일에 방해하면 죽여버리겠다≫고 위협하였다.

≪시민군≫이 이렇게 강도로 변할 수 없다고 생각한 마을의 청년들이 놈들과의 격투 끝에 한놈을 붙잡았다.

잡아놓고보지 ≪시민군≫으로 가장한 ≪공정대≫놈들이

 

-96-

 

였다.

그놈들은 봉기군중이 ≪폭도≫이며 ≪란동자≫들이라는 여론을 퍼뜨릴데 대한 ≪계엄분소장≫ 소준렬놈의 특명을 받고 기여든 교란자들이였다.

그동안 광주시내에서 좀 떨어진 유측에서는 한두건의 강도사건이 있었다. 수법은 금호고등학교주변에 나타난 놈들의 수법과 같았다.

이것을 가지고 ≪동아일보≫는 광주봉기자들속에서 강도사건이 일어났고 그것을 ≪민주투쟁위원회≫가 인정한듯한 보도를 날린바가 있었다.

그러나 금호고등학교근방에서 잡힌놈의 고백으로 강도사건의 내막은 낱낱이 드러나고말았다.

내막을 알게 된 주민들은 너무도 분격하여 ≪이런 비렬한 짓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전두환이 천벌을 받을 짓을 마음대로 하는데 하늘에서 왜 마른벼락이라도 치지않는가.≫고 땅을 치며 저주하였다.

한 할머니는 ≪박정희의 양자, 전두환을 찢어죽이라!≫고 쓴 구호판의 전두환의 이름을 돌로 쾅쾅 치며 ≪이런 악귀들이 백의민족가운데 섞여있다는 것이 수치≫라고 하면서 통곡하였다.

모두가 격노했고 전두환놈을 잡기만 하면 갈기갈기 찢어죽이겠다고 벼르었다.

이날 ≪민주투쟁위원회≫는 시민궐기대회에서 놈들의 비렬한 책동을 발가놓았다.

그리고는 전두환일당과 끝까지 싸울 결의를 다지는 토론들을 조직하였다.

마이크앞에 나선 사람들마다 자유의 광주를 끝까지 지켜낼 결의를 피력하였다.

총을 틀어쥔 한 학생이 마이크 앞에 나서서 격동된 흥분을 누르지 못한 채 이런 시를 읊었다.

 

-97-

 

뜨거운 피로 씁니다.

뜨거운 피로써 맹세합니다.

우리는 향락을 위해 태여나지 않았음을

 

자유없는 ≪한국≫에

민주없는 광주에

정의없는 학원에

우리의 자유

국민의 자유

우리모두의 정의 이룩될 때까지

내 몸 육탄이 되고

내 몸 불기둥이 되어

≪유신≫을 불사르렵니다.

구국에 과감하렵니다.

죽고죽고 또 죽고

최후 한사람이 남을 때까지

 

≪특별경계부대≫의 한 항쟁용사는 시민궐기대회에 다음과 같은 혈서를 남기고 적들을 맞받아나갔다.

 

애국의 선혈로 적습니다.

심장으로 웨치고 피로 다짐합니다.

육신이 동강나고 뼈가 가루되여도

생명보다 귀중한 자유를 위하여

꿈에도 소원인 통일을 위하여

민주의 기발을 내리지 않고

손에 든 총을 놓지 않고

싸우렵니다.

원쑤를 갚으렵니다.

기어이 이기고야말렵니다.

 

-98-

 

죽고죽고 또 죽어 최후의 한사람이 남을 때까지 생명보다 귀중한 자유를 위하여 꿈에도 소원인 통일을 위하여 자유의 광주, 민주의 광주를 지켜 싸우겠다는 이 철석같은 결의들은 시민들을 원쑤와의 판가리싸움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키는 위력한 무기로 되었다.

민주투쟁위원회≫는 시민들의 이와 같은 결의를 담아 ≪80만 광주시민의 결의≫를 작성하여 만장일치로 채택하였다.

그 결의의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조성된 현 사태의 책임은 전적으로 전두환일당에게 있다.

피해를 모두 보상하고 퇴진하라!

•<공정대>에 의한 무력탄압을 중지하며 <계엄령>을 즉각 해제하라!

살인마 전두환을 공개처단하라!

•구속중에 있는 민주인사들을 즉시에 석방하며 민주인사들을 포함한 과도정부를 수립하라!

•<정부>와 언론은 광주봉기에 대해 허위날조, 외곡보도하지 말라!

•우리들, 광주시민들은 이상의 요구가 실현될 때까지, 최후의 한사람이 남을때까지 투쟁할 것을 전민족앞에 엄숙히 선언한다.

1980년5월 26일

광주시민 일동

궐기대회가 있은 뒤 끝에 봉기군중들은 희생된 항쟁자들에 대한 시민장의식을 거행하였다.

그때의 상황을 목격한 일본의 한 기자는 다음과 같이 썼다.

오후5시쯤 <도청>구내에는 20개쯤 되는 관이 놓여

 

-99-

 

있었다.

가족들이 확인할 수 있도록 얼굴부분은 열어놓았다.

몇 개의 시체는 퉁퉁 부어오르고 새까맣게 타있었다.

고등학교학생 10여명이 울면서 시체를 넣은 관을 ≪상무관≫에 설치된 분향소까지 운반하고 있었다.

그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젖어든 목소리로 <우리의 념원은 통일, 통일아 어서 오라, 이 나라 살리는 통일, 이 민을 살리는 통일, 통일아, 통일아 어서 오라>고 노래를 불렀다.

연도에 섰던 시민들도 이들을 보며 같이 엉엉 울었다.≫(일본주간잡지 ≪산데이 마이니찌≫ 1980년 7월 20일호)

광주의 봉기군중들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요구하였고 나라의 자주적인 평화통일을 갈구하였다.

하여 그들은 이 념원을 담아 ≪우리의 소원≫이라는 노래를 만들어불렀다.

 

우리의 소원은 민주

꿈에도 소원은 민주

이 목숨 살리는 민주

민주여 어서 오라

 

이 겨레 살리는 민주

내 나라 찾는 민주

민주의 새세상 위해

겨레여 나서자

 

우리의 념원은 통일

이 나라 살리는 통일

 

-100-

 

이 민을 살리는 통일

통일아 어서 오라

 

군중을 격동시키고 투쟁에로 부르는 힘있는 노래.

못견디게 그립고 애타게 기다리는 민주와 통일.

그날을 위해 끝까지 싸우려는 굳은 결의로 충만된 노래는 듣는 사람마다 격정에 휩싸이게 하였고 원쑤와의 싸움에 한목숨 기꺼이 바치리라는 불타는 의지를 더욱더 굳게 하여주었다.

 

 

△ 마지막 호소

 

최후 결전의 시각은 각일각 다가오고 있었다.

5월 26일 ≪민주투쟁위원회≫는 엄숙한 시각을 앞두고 ≪나라와 민주주의와 우리를 낳아준 고향의 자유와 정의를 수호하기 위하여 총궐기하자≫는 호소문을 ≪민주회보≫에 실었다.

호소문의 내용은 간단하였다.

하지만 그 심도는 매우 깊었다.

 

…시민 여러분!

오늘 광주시는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있다.

미제7함대소속의 항공모함 2척이 부산항에 정박.

계속되는 전두환일파의 무모한 만행은 내외로부터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게 하고있다.

전두환의 멸망은 멀지않았다고 확신한다.

시민여러분!

우리 80만 시민이 일치단결하는 것은 승리를 앞당기

 

-101-

 

는 것이다.

후대들에게도 떳떳한 민주사회를 위해 최후까지 싸우자.≫(일본도서 ≪광주80년 5월≫)

미제와 전두환파쑈일당이 무지막지한 폭압에 제아무리 날뛰여도 자유와 민주주의는 반드시 이룩되고야말것이라는 확신, 이 확신 하나로 광주시민들은 놈들의 무지막지한 살육만행에도 굴하지 않고 용감하게 싸워왔다.

그리고 그들은 이 싸움의 하루하루가 자유와 민주의 승리를 앞당겨나가는 나날이라고 자각하고 있었다.

하기에 광주시민들은 민주사회를 위해 최후까지 싸워나가자는 ≪민주투쟁위원회≫의 호소를 가장 숭엄한 것으로 받아들이였다.

모두가 결사전을 준비하였다.

저마다 총을 달라고 ≪민주투쟁위원회≫로 찾아왔다.

민주투쟁위원회≫의 본부가 자리잡은 전 괴뢰도청은 이런 요구자들로 들어찼다.

민주투쟁위원회≫는 그들을 모두 ≪시민군≫에 받아들이였다.

그들에게는 ≪시민위원회≫가 걷어들인 무기가 수여되였다.

이와 함께 ≪결사대≫, ≪돌격대≫, ≪기동타격부대≫, ≪특별경계부대≫들도 로획한 무기로 증강하였고 차량들도 각 무장단위들의 임무수행상성격에 맞게 배치되였다.

이때 놈들에게서 로획한 무기는 기관총, 소총, 권총 등 총기류가 5천 400여정, 각종 탄약 28만 9천 500여발, 수류탄 550여개, 폭약 3천 600상자, 장갑차와 군용트럭 450여대, 유류 3천도람이였다.

이즈음에 와서 ≪결사대≫나 ≪돌격대≫는 대학생들과

 

-102-

 

고등학교학생들을 기본으로 편성하고 ≪기동타격부대≫는 군사경험이 있는 50여명의 청장년들로 10~20명씩 4개조로 편성하였다.

무등산입구와 남광주역전, 광주고등학교가 이들의 본거지였다.

이 무장단위들은 ≪민주투쟁위원회≫의 긴급지시에 따라 필요한 방어지대에 자동차와 장갑차로 긴급수송되여 해당지역에서 방어임무를 수행하는 ≪특별경계부대≫들과 협동작전으로 ≪공정대≫의 광주진압을 막게 되어있었다.

≪특별경계부대≫는 무등산과 화순방향의 야산지대에 진지를 구축하였고 광주에서 다른 시, 군들로 통하는 모든 길에 바리케트를 쌓아놓고 ≪계엄군≫의 진입을 막아나섰다.

민주투쟁위원회≫는 ≪전남북계엄분소≫의 소굴이 있는 송정리로 통하는 금남교, 송정교, 철교들을 유사시에 일제히 끊어버릴 목적으로 거기에 ≪화순광업소≫에서 날라온 폭약과 뢰관들로 폭발장치를 하여놓았다.

민주투쟁위원회≫는 ≪시민군≫들이 낮에는 진지에 나오고 밤에는 교대로 집에서 자는 형식으로 휴식을 조직하였다.

그러나 누구도 광주를 지키는 진지에서 좀처럼 뜨려고 하지 않았다.

봉기초기에 ≪공정대≫놈들에게 학살당한 남편과 아들의 원쑤를 갚는다면서 ≪민주투쟁위원회≫를 찾아와 총을 달라고 떼를 써서 ≪시민군≫이 된 ≪농성동아주머니≫는 자기의 남은 두 딸을 데리고 아주 진지로 이사를 왔다.

진지로 이사오던 날 ≪농성동아주머니≫는 딸들에게 ≪여기가 우리 집이다. 여기서 산 목숨으로 밀려나면 그

 

-103-

 

때는 죽은 목숨이나 같다.≫고 말하였다.

민주투쟁위원회≫는 적들과의 격전을 준비하면서 장기전으로 넘어갈 경우에 대처하여 일부 부대들로 하여금 ≪도시유격전≫을 벌릴 계획도 추진시켰다.

그리하여 목포, 령암, 화순 등지의 산간지대들에 무기를 감추어놓았고 일부 무기는 서울로 비밀리에 운반하였다.

그뿐이 아니였다.

민주투쟁위원회≫는 놈들과의 싸움에서 광주시가 점령될 수 있다는 것을 예견하여 광주시가를 폭파할 준비도 갖추었다. ≪도청≫지하실에는 수많은 폭약을 장치하여 놓고 경비를 세워놓았다.

이것은 그 며칠동안만이라도 자유를 마음껏 누려왔으며 그것을 위해 흘린 의로운 시민들의 피가 스민 땅, 민주의 광주, 자유의 광주가 파쑈독재의 검은 군화발에 유린당하지 않게 하려는 순결한 량심에서 흘러나온것이였다.

닥쳐올 수 있는 온갖 경우들을 예견하는 준비를 해나가면서도 ≪민주투쟁위원회≫는 ≪공정대≫와의 부단한 격전을 벌렸다.

5월 23일부터 5월 27일까지의 사이에 광주시와 시주변 어디에서나 ≪공정대≫와의 치렬한 격전으로 새날을 맞았고 밤을 보냈다.

5월 23일 밤이였다.

광주 남쪽 교외의 학동근방에서 방어임무를 수행하던 ≪특별경계부대≫의 소조는 야밤에 기습하여 들어오는 백여놈의 ≪공정대≫와 맞서게 되었다.

놈들은 ≪특별경계부대≫의 인원이 적다는 것을 얕잡아보고 마구 달려들었다.

치렬한 사격전이 벌어졌다.

 

-104-

 

힘겨운 싸움이였으나 ≪특별경계부대≫의 매 사람들이 ≪한치도 물러서지 않을것이다≫라고 웨치며 한시간나마 용감하게 싸웠다.

미친듯이 달려들던 놈들도 ≪특별경계부대≫의 완강한 방어에 더는 어쩌지 못하고 제놈들의 시체를 걷어가지고 내빼고 말았다.

이 전투에서 13명의 ≪시민군≫이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도적고양이처럼 야밤중에 기여들어 봉기군중을 덮치려던 음흉한 기도가 실패하자 놈들은 이튿날부터는 땅크와 장갑차를 앞세우고 바리케트와 차단물들을 마구 깔아뭉개며 달려드는가 하면 직승기에서 시민들에게 기관포를 마구 쏘는 만행을 감행하였다.

그러나 봉기군중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그때마다 놈들과 사생결단으로 맞섰고 싸워서 승리하였다.

그것은 실로 생사를 판가리하는 결사전이였다.

송정교근방에서는 ≪결사대원≫들이 로획한 장갑차를 타고나가 놈들과 맞서서 싸웠고 고층건물에 설치한 고사기관총들은 집요하게 달려드는 적들의 직승기를 향해 쉬임없이 사격하는 통에 총신이 녹아 휘여들 지경이였다.

5월 25일 련속되는 공격에서 패전의 쓴맛을 본 놈들이 무슨 꿍꿍이를 꾸미는지 이날의 적정은 고요하였다.

그러나 이 고요한 정적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하여서는 누구나 짐작하고 있었다.

민주투쟁위원회≫는 시민들에게 놈들과의 결사전을 할 준비를 갖추고 고도의 경각성을 높일 것을 호소하였다.

예견은 틀리지 않았다.

 

-105-

 

이날 괴뢰외무부가 ≪광주와 목포에 있는 외국인은 잠시 퇴거할 것이 요망된다. 그리고 이 두 도시로 가려고 하는 사람은 그 려행일정을 취소할 것을 권고한다.≫는 밀서를 남조선주재 각국 ≪외교대표부≫들에 보냈다는 정보가 ≪민주투쟁위원회≫에 들어왔다.

 

광주를 유린하는데서 제놈들의 의도대로 순순히 되지않으면 이미 대기시켜놓은 미싸일까지 발사하면서라도 흉악한 목적을 달성하려는 것이 뻔하였다.

민주투쟁위원회≫는 이에 대처하여 시민들을 궐기시키는 호소문을 내는 한편 최후결전을 벌릴 준비를 하였다.

5월 27일, 보통 같으면 아직 많은 사람들이 깊은 잠에서 깨여나지 못할 새벽4시였다.

이 새벽에 광주에서는 온 시민이 떨쳐나서 ≪공정대≫와 치렬한 싸움을 벌리였다.

≪시민군≫이 총동원되였고 로인들과 녀인들, 어린이들까지 놈들과 맞서서 사생결단으로 싸웠다.

≪농성동아주머니≫를 비롯한 녀인들은 ≪<공정대>악귀들이 광주사람들을 전멸시키려고 밀려온다. 우리도 죽기로 싸우자!≫고 웨치며 땅크들과 함께 놈들이 밀려오는 길복판에 어깨를 겯고 드러누웠다.

맨발의 녀인들, 저고리를 벗어버린 녀인들, 머리를 풀어헤친 녀인들, 각양각색의 녀인들이였건만 모두가 ≪공정대≫놈들을 막겠다는 그 하나의 일념으로 어깨를 서로 겯고 길 한복판에 누웠다.

그들은 남녘인민의 자유와 민주를 위해 격전을 벌리는 항쟁용사들에게 약한 힘이나마 보탬을 주자고 이렇게 부끄러움도 마다하고 큰길 한복판에 누워있는것이였다.

≪시민군≫이 사생결단으로 ≪공정대≫와 치렬한 결사전

 

-106-

 

을 벌리고 있을 때 민주투쟁위원회≫는 놈들이 더 이상 무엄하게 계속 밀려든다면 바로 그 시각에 광주를 폭발시키고말겠다는 폭탄선언을 하였다.

이 폭탄선언에 놈들은 기겁을 하였다. 그리고 더러운 목숨을 살리기 위해 즉시로 꽁무니를 뺐다.

≪공정대≫는 물러갔다.

그러나 방심할 수는 없었다.

언제 어떻게 기습하여올지 누구도 몰랐기 때문이다.

이날 몇놈의 ≪공정대원≫들이 ≪시민군≫으로 가장하고 ≪민주투쟁위원회≫의 본부가 자리잡은 ≪도청≫에 잠입하였다.

잠입한 놈들은 지하실에 설치한 폭발장치실에 기여들어 경비원들을 살해하고 폭발장치를 모두 해제하여 버렸다.

봉기자들이 잠입한 놈들과의 격투 끝에 두놈을 죽여버렸으나 파괴된 폭발장치는 단시간내에 고쳐놓을수 없게 되었다.

이와 거의 때를 같이하여 놈들은 사면에서 광주를 공격하였다.

놈들이 화순과 담양, 송정리 방향에서 총공격을 개시하였으며 ≪시민군≫의 힘으로는 중무장한 놈들을 견제하기 어렵다는 보고가 ≪민주투쟁위원회≫에 련속 날아들었다.

땅에서는 살을 스치고 지나가도 썩게 하는 담담탄, 맥을 못추고 쓰러지게 하는 최면가스탄을 쏴대며 수백대의 땅크와 장갑차를 앞세우며 달려들고 하늘에서는 조명탄을 띄워놓고 직승기고 기관포를 마구 퍼붓는 적들과 대항하는 ≪시민군≫측에서는 희생자가 무리로 났다.

최후의 시각이 다가온것이다.

이 준엄한 시각 ≪민주투쟁위원회≫에서는 위원들의

 

-107-

 

긴급모임이 있었다.

항복하기 위해서가 아니였다.

그들은 항복에 대해 조금도 생각하여 본적이 없었다.

영웅들답게 최후를 어떻게 마치겠는가를 결정하자는것이였다.

일부 위원들은 자폭하자고 하였다.

그러나 절대다수의 위원들은 자폭할 것이 아니라 총알이 다할 때까지 놈들과 맞서서 떳떳이 싸우자고 하였다.

이 길만이 광주의 위업을 빛내이는 길이라고 주장하였다.

절대다수 위원들의 요구대로 ≪민주투쟁위원회≫는 마지막순간까지 놈들과 맞서싸우기로 결정하고 온 ≪시민군≫에 이 결정을 전달하였다.

끝까지 싸우자!

우리의 위업은 정당한 것이며 신성한것이다!

하기에 이 위업은 력사에 길이 남아있을것이다!

봉기군의 사랑을 받아온 방송원 전옥주가 방송차를 타고 항쟁의 거리를 누비며 이 결정을 알려주었다.

그리고는 봉기군중들이 편작하여 즐겨 불러온 ≪민주가≫를 힘있게 불렀다.

 

민주의 기 우리 기는

전사의 시체를 덮는다

시체가 식어 굳기전에

혈조는 기발을 물들인다…

 

전옥주의 창창한 선창은 삽시에 ≪시민군≫의 대합창으로 넘어갔다.

 

-108-

 

모두가 숭엄한 감정으로 노래를 따라불렀다.

 

높이 들어라 민주의 기발을

그밑에서 굳게 맹세해

비겁한자야 갈라면 가라

우리들은 이 기발을 지키리라

 

민주투쟁위원회≫의 성원들을 선두로 총검을 비껴들고 결전에로 나아가며 부르는 ≪민주가≫의 숭엄한 노래소리와 함께 ≪자유광주 만세!≫, ≪조국통일 만세!≫를 웨치는 봉기군중들의 우렁찬 목소리는 ≪시민군≫의 최후진지를 유린하는 ≪공정대≫의 잔악한 총포소리를 뚫고 온 광주에, 온 남녘에, 아니 온 세계에 힘차게 울려퍼졌다.

 

해방광주.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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