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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명의 가족 지옥에 던지고 혼자 나온 최주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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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1-03-21 15:58 조회1,52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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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명의 가족 지옥에 던지고 혼자 나온 최주활

 

212광수 최주활 

9999.PNG

 

 

                                  증거 자료

 

1995.10.14. 중앙일보, 귀순한 북한군 상좌 최주활씨는 누구인가

https://news.joins.com/article/3145050

 

2001.03.05. 통일신문,

https://www.unityinfo.co.kr/66

 

2004.11.18. 탈북자수기.희망 없는 세계와 희망있는 세계를 살아보며 - 최주활

http://new.nkd.or.kr/news/story/view/421

 

2015.5.29. 장진성의 인물초대석,최주활 탈북자동지회 회장 조직지도부 북한지배설에 대한 인터뷰

https://nambukstory.donga.com/Board?bid=125&timeseed=250&#!lid=307065&bid=125&p=1511&m=view

 

2004.11.19 [NK인포메이션센터 탈북자수기] 가족간의 유대는 역경을 이기는 힘 최주활

http://nkd.or.kr/news/story/view/480

 

통일부 2014. 8. 15, 북한에도 특목고가 있다 3: 북한의 외국어 열풍을 이끄는 평양외국어학원

https://unikoreablog.tistory.com/4400

 

                                  가족 사항

 

최주활:1949419일 청진시 출생(47) -2004.11.18. 탈북자 동지회

1995. 중앙일보

:최금활(51), 사회안전부(경찰)병기국 11.24관리소소장, 최씨와 같은 상좌계급

부친:최석보, 6.25당시 평양시 경비연대 당 조직지도원(소좌)을 하다 전사해 열사가족으로 특혜- 2004.11.18. 탈북자 동지회

중앙일보

어머니:이순음(67)

:평양시 의약품 관리소 판매원 조현실(42)

: 애화(17)

아들: 철준(12). 철민(10) 모두 평양에 살고 있다.

 

의견

 

위 중앙일보 기사에 의하면 최주활의 모친 이순음(67)은 최금활(51)16세에 출산했다. 15~16세에 임신을 했다는 뜻이다. 인민군은 194828일 창설되었고, 19506.25 남침을 감행했다. 아버지는 6.25 전쟁에 소좌(소령)로 전사했다고 한다. 그의 형 금활은 경찰청에 해당하는 사회안전부 고위 간부인데 그 계급이 1995년 당시 상좌라 한다. 북한의 경찰계급은 군대 계급과 동일하다. 1995년 당시 최주활의 가족으로는 어머니, , 처 그리고 3남매(17.12.10) 6명을 평양에 남겨두고 온 것이다. 최주활이 인민군 고위 간부였다는 사실을 감안하며 그의 가족에 미칠 화는 매우 혹독할 것이라는 점은 상식이었다. 가족 6명의 졸지에 희생시키면서까지 탈북할 사람은 지식인 계급에서는 없을 것이다. 1996918, 강릉에 상어급 잠수함이 넘어왔다가 좌초됐다. 대령이 지형 정보 확인 차 왔었다. 그 때 대령이 인솔하여 산으로 도주한 11명은 그 자리에서 집단 자살을 했다. 남한에 잡혀 정보를 불면 북한에 있는 가족이 다 처벌을 받는다. 그래서 그들은 가족을 살리기 위해 집단 자살을 택했다.

 

   강릉의 북한 침투자 자살 현장

 

                                  경력 사항 

2001.3.5. 통일신문,

 

1949년 청진에서 출생

아버지는 6.25때 공을 세운 국가유공자

195911년제 평양외국어 유자녀학원에 입학 (유치원1, 인민학교 4, 중학교3년 고등학교 3, 11) (11살에 입학)

1968년 고2 (20) 중퇴하고 인민군 특수전부대(항공육전여단)에 입대 병사 -사관(하사)까지 진급한 후 제대(연도 미상)

평양외국어대학(5년제) 러시아어과 3학년 편입해 학업을 마치고 인민무력부 대외사업국에 배치 (연도 미상)

1979(31)5, 체코주재 북한대사관 부무관으로 3년간 근무 후 평양으로 추방(33)

(: 김평일은 1954년생, 위키백관에 의하면 김평일은 1979(26)에 유고슬로바키아 주재 북한 대사관 부무관 근무)

인민무력부 대외 사업국 부부장으로 10년 넘게 인민무력부 수뇌부의 통역 업무를 맡으면서 인민군 최고 지휘관들과 친분 쌓아

상좌(중령-대령 사이)까지 진급, 뛰어난 러시아어 실력으로 '외화벌이 사업'에 발탁

1995(47)1월 상좌로 진급과 동시에 인민무력부 후방총국 산하 륭성무역회사 합영부장에 임명.

 

통일부 2014. 8. 15. 평양외국어학원은 19586월 개교한 6년제 고등중학교 과정의 외국어 전문 교육기관이다. 입학 조건이 상당히 까다로운데, 혁명 유자녀 또는 '영웅' 칭호 수여자 및 영예군인 자녀 중 외국어 소질이 있는 인민학교 졸업자들에게 입학 자격이 주어진다.

 

2004.11.18. 탈북자수기 ,2년반 정도 사병으로 근무하고 7010월 정찰국 직속 외국어강습소에 입학하여 소대장,중대장 전술과 정보수집 방법 및 러시아어 (전공)등을 배우고 7210월 졸업과 함꼐 소위 칭호를(정식 군인 신분이 아니기 때문에 임관은 아니다)받고 민족 보위성 외사부(568군부대)에 통역관으로 배치되어 23년 동안 근무하며 부부장으로 진급하였다. 759월부터 788월까지 평양외대 러시아어학부에 편입하여 공부하였고 89년에는 상위 칭호를 받은 후 925월까지 체코주재 대사관 부무관으로 파견되어 체코 군 대령을 대상으로 전차에 설치하는 화염방사기 기술 문건과 신형 방독면 입수를 추진타가 현장에서 체포되어 추방당한후 9412월까지는 인민무력부 대외사업국에서 중좌로 일했으며 95.5월까지는 후방총국 륭성무역회사 합영부장으로 일했다. .

 

의견

 

북한의 일반 주민들은 거의 예외 없이 6살에 유치원 가고 7~10살에 인민학교를 다니고 11~17살에 중고등학교 6년을 의무적으로 다닌다. 최주활의 경우 어버지는 6.25때 소령으로 전사했기 때문에 열사가족으로 특혜를 누렸다고 한다. 그 특혜로 인해 최주활은 일반 중고등학교에 가지 않고 우리나라 특목고에 해당하는 평양외국어 유자녀학원에 다녔다고 한다. 그 이후의 경력은 2001년 통일신문에서 다르고 2004. 탈북자 수기에서 다르다.

 

2001년 통일신문에 나타난 경력: 1968년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를 중퇴하고 사병으로 입대하여 하사 계급에까지 오른 후 제대를 했다. 제대 후 5년제 평양외국어대학 3학년에 편입하여 졸업했고, 인민무력부 대외사업부에 배치됐다. 1979년부터 1982년까지 체코슬로비키아 주재 무관부에서 부무관으로 인하다가 체코슬로바키아를 대상으로 간첩행위를 했다하여 체코로부터 추방당했다. 대외사업국에서 10년 이상 통역을 하면서 부부장으로 승진했다. 19951, 상좌로 진급하여 외화벌인 사업을 하는 룡성무역회사의 합영부장으로 박탁됐다.

 

2004년 본인이 쓴 수기에 나타난 경력68년부터 사병으로 2년 반 동안  근무하다가 제대한 후 197010월부터 7210월까지 2년 동안 정찰국 직속 외국어강습소과정을 이수했다. 그 후 우리의 민족 보위성(197212, 인민무력부로 개편) 외사부에서 통역관으로 일했고, 그 후 23년 동안(1972~1995) 있으면서 부부장으로 진급했다. 이 과정에서 19759월에 평양외대에 편입하여 19788월까지 러시아어를 공부했다. 1989년에는 상위 칭호(중위)를 받은 후 925월까지 체코주재 대사관 부무관으로 파견되어 간첩 활동을 하다가 현장에서 체포되어 추방당한 후, 9412월까지 인민무력부 대외사업국에서 중좌로 일했고, 951월 상좌로 진급해 95.5월까지 후방총국 륭성무역회사 합영부장으로 일했다.

 

여기에서 전자의 진술과 후자의 진술이 판이하게 드러난 부분들이 있다. 전자에서는 사병에서 하사로 진급했고, 하사로 제대한 후 곧장 평양외대에 편입했다고 했고, 후자에서는 사병 복무를 2년 반 동안 한 후 곧장 이어서 2년 동안 군 외국어강습소에서 러시아어를 훈련받고 통역 근무를 하다가 1975.9월에 평양외대에 편입했다고 한다. 전자의 경력에는 2년 동안의 외국어 강습과정과 외사부 통역근무가 없는 반면, 후자의 경력에는 하사 경력이 없다. 후자의 체코 근무 연도는 79년을 89년으로 표시한 오타로 보인다.

 

                                탈북 동기 

 


1995.10.14. 중앙일보

79년부터 82년까지(31~34)체코에서 무관생활을 했다. 그곳에서 필요한 군사기술 정보를 입수하다 체코 안전기관에 단속되어 추방된 적이 있다. 김일성과 김정일을 위해 한 것인데 그게 왜 죄가 되는지 불만이 싹텄다. 사실상 91년이나 92년쯤(43~44)엔 무관이나 대좌에 승진할 수 있었는데 그 사건으로 인해 이후에도 계속 제약을 받았다. 외국을 많이 돌아다니다 보니 북한 체제에 대한 모순을 많이 느꼈다. 95년에 중국에 출장을 나와 한국 기업가 등과 접한 적이 있다. 그들과 같은 호텔에 묵으면서 사업을 진행하다 보니 인간적으로 가까워졌다. 이들과 얘기도 많이 했다. 그러던 중 국가 안전보위부에서 전화가 왔다. 남조선 사람들을 만나지 말라는 것이었다.출장기간이 73일까지였는데 67일 갑자기 북한에서 지시가 떨어졌다. 사업 중지하고 압록강을 넘으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남쪽으로 가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2001.3.5. 통일신문,

19955월 중국 비닐공장 건설사업 협의차 무역대표단 단장으로 대표단 이끌고 중국을 방문, 중국 단동시 압록강여관에 머무르고 있던 중 1995619일 오전 심양주재 국가안전보위부 요원과 인민군 보위사령부 부부장(상좌) 그리고 중국 공안원 2명이 불쑥 들이닥쳐 여권과 출장비를 모두 회수한 후 당일 12시까지 본국으로 돌아갈 준비를하라는 지시 했다(47). 감시 중이던 보위부 요원격투 끝에 제압하고 여관 탈출하여 4개월여 중국과 홍콩을 경유해 그해 10월 서울 땅을 밟았다.

 

2004.11.18. 탈북자수기

1995.4 외화벌이차 대표단을 인솔하고 중국으로 출장을 나갈 기회를 얻었다. 대표단에 합영부 지도원 장일관, 최명숙(당시 중앙재판소 소장 최원익 딸)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중국 체류 중 이상한 소문을 듣게 되었다. 보위당국이 내가 사업상 접촉한 재미교포, 재호주 대표, 남한의 실업가들에게 군사비밀을 넘겨주고 딸라를 받아먹은 것으로 의심하며 조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나에게 소환 명령이 내렸다. 나는 탈출만이 유일한 살 길이라고 확신, 대표단을 이탈하여 대한민국의 품에 안기게 되었다.

 

2004-11-19 NK인포메이션센터 탈북자수기

내가 자유에 대해 동경하게 된 것은 오래 동안 외국에 나가 생활하면서부터였지요. 체코슬로바키아 주재 북한 대사관에서 무관으로 근무했고 구소련, 유럽 등지로 출장 많이 갔는데 외국의 새로운 환경에 접하면서 북한이 얼마나 폐쇄적이고 자유가 억압된 나라인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심리적인 혼란이 밀려오면서 긴 고민 끝에 남한행을 결심하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2015.5.29. 장진성의 인물초대석, 1992년부터 1994년 사이에 구소련, 프룬제아카데미아를 비롯한 각 군사대학을 졸업한 사단장, 여단장 그 이상 간부들이 대거 체포되거나 처형됐다. 나의 직속 상관이었던 대외사업국 김학산 국장을 비롯하여 모스크바 주재 북한 대사관 무관 소장 김정찬, 유고 주재 북한 무관 조재형 등 해외 무관부에 나가 활동하던 무관, 부무관들을 인민무력부 보위사령부에서 체포하여 처형했다. 그러던 중 본인도 연관지어 내부 조사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처형될 것이란 위압감에 탈북했다.

  

의견

 

발견된 최주활의 탈북동기는 5가지다.

 

95년에 중국에 출장을 나와 한국 기업가 등과 접한 적이 있다. 그들과 같은 호텔에 묵으면서 사업을 진행하다 보니 인간적으로 가까워졌다. 이들과 얘기도 많이 했다. 그러던 중 국가 안전보위부에서 전화가 왔다. 남조선 사람들을 만나지 말라는 것이었다.출장기간이 73일까지였는데 67일 갑자기 북한에서 지시가 떨어졌다. 사업 중지하고 압록강을 넘으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남쪽으로 가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중국 단동시 압록강여관에 머무르고 있던 중 1995619일 오전 심양주재 국가안전보위부 요원과 인민군 보위사령부 부부장(상좌) 그리고 중국 공안원 2명이 불쑥 들이닥쳐 여권과 출장비를 모두 회수한 후 당일 12시까지 본국으로 돌아갈 준비를하라는 지시 했다(47). 감시 중이던 보위부 요원격투 끝에 제압하고 여관 탈출하여 4개월여 중국과 홍콩을 경유해 그해 10월 서울 땅을 밟았다.

 

중국 체류 중 이상한 소문을 듣게 되었다. 보위당국이 내가 사업상 접촉한 재미교포, 재호주 대표, 남한의 실업가들에게 군사 비밀을 넘겨주고 딸라를 받아먹은 것으로 의심하며 조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나에게 소환 명령이 내렸다. 나는 탈출만이 유일한 살 길이라고 확신, 대표단을 이탈하였다.

 

체코슬로바키아 주재 북한 대사관에서 무관으로 근무했고 구소련, 유럽 등지로 출장 많이 갔는데 외국의 새로운 환경에 접하면서 북한이 얼마나 폐쇄적이고 자유가 억압된 나라인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심리적인 혼란이 밀려오면서 긴 고민 끝에 남한 행을 결심하고 실행에 옮겼다.

 

1992년부터 1994년 사이에 해외 무관부에 나가 활동하던 무관, 부무관들을 인민무력부 보위사령부에서 체포하여 처형했다. 그러던 중 본인도 연관지어 내부 조사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처형될 것이란 위압감에 탈북했다.

 

소결중국 출장기간이 아직도 한 달 가량 남아 있는데 67일 갑자기 두만강을 넘으라는 지시가 떨어져 순간적으로 남쪽 행을 결심했다고도 했고, 619일 갑자기 북한 보위원 2명과 중국공안 2명이 여관으로 들이닥쳐 12시까지 귀국준비를 하라며 감시를 하던 중 그 중 한 명을 격투로 제압하고 탈출했다고도 했고, 남한 사업가 등에 기밀을 팔아먹었다는 혐의로 자기를 조사한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실제로 소환 명령이 떨어져 탈출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다고도 했고, 외국 바람을 접하고 보니 북한이 너무나 폐쇄적이고 부자유한 나라라는 것을 깨닫고 고민 끝에 남한행을 결심했다고도 했고, 92~94년 사이에 해외 무관부에 근무하던 고위자들이 대거 숙청되고 있는 가운데 본인도 조사 대상에 올라있다는 사실을 알고 처형의 위압감에 탈북을 했다고도 한다. 탈북 동기가 말할 때마다 달라 55색인 것이다.

 

                            탈북 경로

 

1995. 중앙일보동남아 경유해 서울에 왔다.

2001. 통일일보, 4개월여 중국과 홍콩을 경유해 서울에 왔다.

 

의견

 

중국과 홍콩은 동남아가 아니다.

 

                                  결 론

 

최주활은 그의 말대로라면 북한의 핵심 계층이고 열사가문이다. 말할 때마다 초기 경력이 다르고 탈북 동기가 55색이다. 탈북 경로도 다르다. 탈북 스토리가 거짓이라는 뜻이다. 그가 혼자 살자고 여섯 식구를 지옥으로 내던지고 홀로 남한에 왔다는 것은 인륜적으로 용서받을 수 없는 패륜이다. 그의 발언을 들어보면 그는 혼자 사는 에고이스트이지 가정을 생각하는 온정 있는 가장이 아니다. 만일 그의 가족들이 북한에서 온전하게 잘 살고 있다면 우리에게 알려진 북한에 대한 상식은 일거에 몰락한다. 그는 기획 탈북자다.

 

  

2021.3.21.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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