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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광일 (489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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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1-04-15 14:09 조회1,05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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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광일 (489광수)

 

 

                      증거자료

 

2013.5.4. ShareAmerica 정광일-국경을 넘어

https://www.youtube.com/watch?v=wSWYBgzSNME

 

2015.3.9. RFA ‘노 체인의 정광일 대표

https://www.rfa.org/korean/weekly_program/rfa_interview/rfainterview-03092015103045.html

 

2015.6.26. 시사경제신문

http://www.sisa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10727

 

2015.6.29. voa [인터뷰] 탈북자 정광일

https://www.voakorea.com/episode/2841372-31067

 

2015. 9. 13 탈북자동지회 자유게시판

http://nkd.or.kr/community/free/view/33633/128646

북한 인권운동가 정광일의 정체

 

2018.7.9. 오도민신문, [림일 작가의 통일인터뷰] - 정광일 노체인 대표 -

http://5donews.co.kr/board_life/4505

<5년 전으로만 표시>북한이 밝힌 정광일의 정체 (동영상28)

https://vimeo.com/139104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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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리와 의견

 

                             가 족

 

1969년 그의 가족은 중국의 정치적 박해를 피해 북한으로 왔다. 북한은 희망에 찬 나라로 보였다.

 

1963년 중국 연길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연길사범대학 교원이었는데 문화대혁명 때 조선특무’(간첩)라는 누명을 쓰고 홍위병(공산당)에 의해 감옥에 끌려갔다. 7살 때인 1969년 모친의 손에 끌려 북한으로 나왔다. 함북도 회령에서 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 1979년 인민군대에 입대하여 당시 조선인민군 5군단 74여단에서 군사 복무를 했다. 행정 지역으로는 군사분계선 강원도 철원군 마장리 일대이다.

: 문화대혁명: 19665월부터 197612월까지

 

인민군 10년 복무를 마치고 1989년에 제대하여 회령 전동기공장에 배치 받았다.

 

인민군 10년 복무를 마치고 1989년에 제대하여 회령 전동기공장에 배치 받았다. . . 당시 부친은 중국 정부에서 보상받은 돈을 밑천으로 연길에서 큰 식당을 경영했다. 하여 부친에게 손을 내밀었다. 대략 40~50만 달러를 받아서 그 돈으로 돼지 1차량(철도 차량), 밀가루 5차량, 옥수수 10차량을 당에 바쳤다. 그로 해서 모친은 국기훈장 1급을 수훈하였고 나는 인민군 제대 당시 많은 동료들이 발전소, 탄광, 건설장에 가는 데서 배제되어 고향으로 귀가할 수 있었다. 당에 헌납한 충성의 애국 물자덕분이라고 보면 된다.

 

고소장 주장: 5.18 때 나는 18세로 5군단 포병 중대 이등병이었다. 2003년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를 경유하여 20044월 한국에 입국했다.

 

의 견

 

부친은 연길사범대학 교원, 문화대혁명 때(1966~76) 북조선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홍위병에 의해 감옥에 끌려갔고, 7살 때인 1969년 모친과 함께 북한으로 와 함경북도 회령에서 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 1979~1989년에 군사 복무를 하고, 회령전동기공장에 배치 받았는데 중국의 부친으로부터 40~50만 달러를 받아서 그 돈으로 돼지 1차량(철도 차량), 밀가루 5차량, 옥수수 10차량을 당에 바쳤고, 그로해서 모친은 국기훈장 1급을 수훈하였고 정광일은 자유의 몸이 되어 고향으로 갔다고 한다. 1960년대 후반에 간첩으로 투옥됐던 사람이 어떻게 무슨 명목으로 중국 정부에서 큰돈을 보상 받아 식당을 했으며, 1989년 당시 화폐로 50만 달러를 노동당에 바칠 수 있는지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다. 더구나 20년 전 중국 감옥에 있는 남편을 뒤로하고 아들을 데리고 북한으로 떠난 부인과 그 아들을 위해 이 엄청난 금액을 희사했다는 것이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정광일의 이력

 

1963년 중국 연길에서 출생

1969년 어머니와 함께 북한 회령으로 이주

1979~1989 5군단 74여단에서 군복무

 

군에서 10년간 복무한 후 중국과 무역 회사에서 얼마 정도 근무했다. 중국에 자주 나오게 되었다. 90년도 중반이었다. 중국에서 우연한 기회에 한국 사람들을 알게 되었고 그들과도 어쩔 수 없이 무역 거래를 하게 되었다. 감시가 뒤따랐다. 1999722일 저녁, 2명의 보위부 요원이 집에 들어와 다짜고짜 체포했다. 간첩이라는 걸 인정하라고 하더라. 나는 인정하지 않았다. 고문을 9개월 동안 받았다. 9개월 동안 체중이 75kg에서 36kg으로 빠졌다. 견디지 못해 거짓 자백을 했다. 요덕 수용소에 투입됐다. 사람들은 걸어다니는 해골이었고, 하루에 16시간씩 일했다. 3년간 있었다. 2003412, 석방됐다. 간첩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2000년 봄 북한 요덕정치범수용소에 수감돼 3년 간 고문과 강제 노역을 당했다 . . 10개월 계속해 고문을 받고는 더 버티기를 포기했다. 보위부가 요구하는 대로 남한 간첩 혐의를 인정했다. 자백을 한 뒤에 15호 요덕정치범 수용소로 투입됐다.

 

요덕수용소 서림천 혁명화 구역에 수감됐던 180명의 이름과 나이, 수감 이유등의 정보가 담긴 보고서를 공개했다. '요덕수용소의 내 동료 수감자들: 서림천과 함께 사라진 180'이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는 2000년부터 2003년까지 요덕수용소에 갇혀 있었던 정씨의 기억을 토대로 작성됐다.

 

20004월에 요덕에 수용됐다. 일을 잘해서 혁명화 구역에서 반장을 2차례 했다. 일을 잘해서 당이 나를 믿어준다고 간부가 말해주었다. 첫 번째 반장은 13개월 정도 했다. 사고가 나서 잘렸다가 또 다시 반장을 1년 정도 했다. 반장이었기 때문에 수용자들을 불러 신상을 파악해 180명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해 유엔인권기구 서울사무소에 제출했다.

 

북한측 주장에 의하면 정광일씨는 정치범 수용소 출신이 아니고 유색금속 밀수, 밀매. 어린 처녀들 인신매매 혐의로 로동교화소에 3년간 수감생활을 했다 본명도 정광일이 아닌 최광일, 교화소에서 만난 당 간부 출신 죄수 정광일의 말을 듣고 남조선에 와서 성을 바꾸고 당 간부 출신 정광일 흉내 내고 다닌다고 한다.

 

1992년 조선노동당 824연락소(인민무력부 작전국 소속, 통신정보 분석 업무를 전담하는 특수부서) 지도원으로 임명되어 평양시 형제산 구역에서 2년간 근무하다가 1994년 강원도 문천분소에 내려가 1996년까지 근무했다. 이후 청진분소 종합지도원으로 자리를 옮겨 199810월까지 근무했다. 그 뒤 조선평양무역회사 청진지사장으로 임명받아 근무 중 19997월 간첩 협의로 국가보위부에 체포되었다. 나는 그동안 공적인 무역 업무로 수년간 중국을 드나들었다. 그 와중에 중국에서 남조선 사람들과 접촉했다는 것이 체포 이유다. 짐작하건데 아무래도 무역을 하면서 풍족한 생활을 하다보니 그것이 보위부에 거슬렸던 모양이었다.

 

간첩죄로 회령보위부에서 4개월, 이후 청진보위부에서 10개월간 고문 받았다. 두 손을 뒤로 묶고 쇠창살에 수갑 채운 상태에서 앉지도 서지도 못한 채 잠도 못자는 비둘기 고문이다. 구류장에서 체중이 75kg에서 35kg으로 줄었다. 어쩔 수 없이 없는 죄를 시인하자 형식상 검사가 찾아와 조사를 시작했고 이후 재판도 없이 함남도 소재 요덕수용소로 보내졌다. 20034월 석방되었다. 너무 분했다. 내가 3년 간 무역을 하면서 노동당에 70만 달러 이상을 헌납했는데 결국은 억지 남조선 간첩 혐의이니 말이다.

 

정광일, 본명 최광일, 최광일 놈의 경력, 19814월부터 19871월까지 군사복무, 19872월부터 19925월까지 회령시 회령 기계수리공장 노동자, 19926월부터 19972월까지 회령시 회령 모피공장 노동자, 19973월부터 19977월까지 청진시 기계공장 노동자, 19978월부터 20001월까지 평양시 무역국 청진농수산물 가공사업소 노동자,

 

최광일 놈이 꾸며낸 경력 1979년부터 1987년까지 군사 복무, 1992년부터 1994년까지 조선노동당 824 연락소 평양시 형제산 본사 지도원, 1994년부터 1996년까지 조선노동당 824연락소 문천분소 지도원, 1996년부터 1998년까지 조선노동당 824연락소 청진분소 종합지도원, 199811월부터 19997월까지 조선 평양무역회사 청진지사장, 1999722일 간첩 혐의로 국가 보위부에 체포, 보라. 최광일 놈이 얼마나 황당한 거짓말을 늘어놓고 있는가, 이놈은 1997년부터 일곱 차례 비법 월경하여 420kg의 유색 금속을 밀수 밀매했으며, 1984년 월남 도주한 괴뢰 정보원 첩자 김모에게 매수되어 감지한 군사 비밀을 넘겨주었다. 또한 세 차례에 거쳐 나어린 처녀들을 유인 납치하여 김모에게 넘겨주었을 뿐만 아니라 19998월 또 다시 2명의 어린 처녀들을 유인 납치하여 함경북도 회령시 강안동 두만강 대안으로 향하다가 현지 주민들의 신고에 의해 인민보안기관에 현행범으로 체포되었다. 그러면 최광일 놈과 함께 생활했던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