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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서(국정원 모 간부의 증언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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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1-05-01 10:33 조회95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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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 변 서

-국정원 모 간부의 증언에 대하여-

 

사건 2020804 .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위반 등

피고인 지만원

 

위 피고인은 다음과 같이 답변서를 제출합니다.

 

다 음

 

1. 이 특별한 답변서를 제출하는 이유

 

피고인은 2019.2.25.~26. 한 애국국민으로부터 매우 귀중한 제보를 받았습니다. 이 답변서는 제보내용과 이 제보내용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을 근거로 하여 작성하였습니다. 이는 매우 독특하면서도 후대에라도 이루어질 진실규명 노력을 위해 매우 귀중한 단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여 제출합니다. 제출하는 목적은 국정원이 국가안보와 역사규명에 절대적으로 소중한 진실을 은닉-매몰시켰을 것이라는 데 대한 강한 의혹을 공식문서에 남기고 싶고, 만일 이 증언이 사실로 공식화됐더라면 피고인의 연구 결과가 곧 진실인 것으로 확인될 수 있었다는 가능성을 제기하고 싶고 피고인의 연구가 아무런 근거 없이 한낱 허위사실 유포행위가 아니라 학설로 공론화될 성격의 것이라는 점을 어필하고 싶어서입니다.

 

2. 황장엽 등 북 고위간부에 대한 제보자의 메일을 받은 경위

 

피고인은 2019.2.25.(212) 동년 2.26.(213) 피고인을 돕고 싶어 하는 한 네티즌으로부터 5.18의 진실에 대한 뜻밖의 메일을 접수하였습니다. 비공개를 전제로 한 것이라 피고인에게 유리한 정황증거라 생각은 하면서도 그동안 답변서에 활용하지 못하였습니다. 메일의 요지는 피고인이 황장엽을 제71광로 발표했는데 위 제보자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김일성 종합대학 총장인 학자가 어떻게 그 험한 게릴라작전에 올 수 있느냐라는 고정관념에 따라 광수로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고 합니다. 위 제보자역시 같은 의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보자는 국정원 고위간부 이모씨의 말을 듣고 황장엽에 대한 의심이 풀렸다 하며, 이 모씨의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피고인의 영상 연구결과를 전적으로 신뢰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위 제보자에 의하면 황정엽(71광수)1997년 망명 당시 국정원에서 스스로 자기도 광주에 왔었고, 김덕홍(72광수), 이을설(인민군 전설, 62광수), 김중린(134광수, 당시의 현직 대남사업부장)까지 내려왔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 국정원 고위 간부는 2015.7 경에 귀순한 박승원(37광수)에 대해서도 언급했다고 합니다. 당시 동아일보와 의회신문(214, 215) 그리고 채널A가 곧 박승원 상장의 기자회견을 하겠다 해놓고 갑자기 극비에 붙였는데 그 국정원간부 이씨가 그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었다 합니다. 동 국정원 간부는 피고인이 2015.10.29. 국정원에 직접 가서 탈북자 19명이 위장간첩일 수 있다는 취지로 신고서를 제출하였는데(216) 그 사실도 이병호 원장이 묵살시켰다는 이야기도 전해주었다 합니다.

 

3. 피고인이 제보자로부터 받은 이-메일 2건의 요지

 

A(제보자):  혹시 황장엽이 5.18 때 광주에 왔었나요?”

B(이 모씨): “아니, 그걸 아직도 모르고 있어요?” (: 국정원에서는 공공연한 비밀?)

A: “제가 그런 비밀을 어찌 압니까?”

B: “그가 지입으로 광주에 왔었다 말했습니다.김덕홍, 리을설, 김중린도 함께 왔다 했지요

A: “그럼 신문한 녹취록이 있나요?”

B: “김대중이 태우라 해서 다 태웠습니다.”

A: “김덕홍은 요새 어찌 됐나요?”

B: “그는 산송장이지요.”

A: “2015년에 탈북했다는 박승원은 어찌 된 겁니까?”

B:“ 간부들이 이제 곧 세상이 뒤집힌다며 도원의 결의를 하고 기자회견을 준비했지요. 그런데 이병호가 꼬리를 내렸지요. 지금 빨갱이 세상이 다 됐는데 그거 발표하면 뒷감당이 안 된다는 것이었지요

A: “권영해가 북한군 개입을 적극 부인하고 다닌다 하던데요?”

B: “그 사람 참 알 수 없는 사람입니다

 

4. 네티즌 제보자로부터 받은 2건의 메일 발췌

1: 2019.2.25.(212)

 

저는 항상 지박사님의 건강과 안위를 걱정하는 한낱 民草인 000라는 사람입니다. 고군분투하시는 모습을 보며 뭔가 도움을 드려야겠다고 하는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가진 게 없어 안타까워 하던 차에 제가 주요인사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는 이 정보가 조금이나마 힘이 되어드렸으면 하는 바램에서 이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우선 지박사님께서도 이미 알고 계시는 내용이 아닌지 확인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이 질문부터 드려야겠습니다. 황장엽이 귀순 직후 국정원에서 조사 받을 때 이미 자기가 5.18 때 광주에 왔었으며 같이 온 고위 멤버들의 명단을 진술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는지요?

 

2: 2019.2.26.(213)

 

<2~3>

 

질문에 대한 아무런 답이 없이 반송하신 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모르겠네요. 一考의 가치도 없다는 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憂國하는 사람이라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을 의무감 같은 것이 날 밀어붙이니 알려드릴 건 알려드리고 이후부턴 일체 緘口할 것입니다. 지박사님이 알고 계시면 빨갱이들과의 투쟁에 유용한 情報가 되겠지만 저 같은 野人은 알고 있어봐야 마음의 짐만 될 뿐이라서입니다. 아래에 나오는 황장엽을 직접 심문했다고 하는, 국정원 사람에 대해 간략히 애둘러 소개할 수 밖에 없는 것에 대해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과의 대화는 한 도 틀림없이 그대로 적었습니다.

 

 

이름은 李 某. . . 신상정보 생략. . 

 

5.18은 좌빨들의 급소이지만 그 중에서도 황장엽이 과연 그때 광주에 내려왔었는가의 與否야 말로 雷管 중의 雷管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진을 보여줘도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안 믿습니다. 제와 형제 같은 9年上의 가장 친한 친구도 (공군 ROTC출신. 사귄지 44) “북한군 개입은 믿는데 황장엽이 왔다는 건 믿기 어렵다. 김일성대 총장하던(그 당시는 총장이 아닌데) 사람을 어떻게 내려 보낸단 말인가이 일로 거의 싸울 뻔도 했었지요.

 

저 역시 박근혜 탄핵 광풍이 극성을 부리던 2017.1.21에 처음으로‘5.18 영상화보집속의 황장엽 사진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하면서도 한편으론 반신반의했었습니다. 황장엽같은 고위층이 그런 위험한 작전에 투입이 되다니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질 않았고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는데 여기에 쐐기를 박아준 인물이 바로 위에 소개한 李 某 氏입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지만원 박사 책에는 황장엽이 내려온 걸로 되어있던데요?”하니 그 사람 눈을 동그랗게 뜨며 아니 아직 모르고 있었어요?”“저같은 일반인이 어떻게 압니까?”“지가 내려왔었다고 제 입으로 얘기했어요. 김덕홍이도 이을설 김중린이도 같이 왔었고솔직히 말씀 드리자면 지박사님에 대한 저의 전폭적인 신뢰는 지박사님의 책을 통해서가 아니라 이 사람의 이 말 한마디로부터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북한군 개입을 의심하는 사람들의 인식을 단박에 바꿔놓을 수 있는 5.18雷管은 바로 황장엽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4>

 

그 후 6개월인가 지나서 다시 물었습니다. “황장엽을 심문했다면 그 녹취록이 있을 텐데 아직 잘 보존되고 있습니까?”그 사람 선생이 참 아픈 델 찌르는데.....(좀 뜸을 들이더니) 김대중이 없애라고 해서 다 없앴어요몇 개월 후 황장엽과 다름없는 증인인 김덕홍의 근황에 대해서도 물었습니다. 그 사람 산 송장입니다이게 무슨 뜻인지 저는 지금도 정확히 모릅니다. 몇 달 전 최근에 그 사람에게 다시 질문했습니다. “지박사는 600명의 북한군이 내려왔었다고 하는데 황장엽이는 몇 명이라고 하던가요?”하니 그 사람 정확히 457. 지박사는 너무 나갔어.”

(: 북한은 광주에서 떼죽음 당한 시위대가 475명이라고 주장합니다. 457475년 기억 또는 전달과정에서 발생한 오차일 수 있을 것입니다)

 

<5>

 

2015년도에 있었어야 할 박승원 상장 기자회견 취소 건은 일 년 동안 저를 괴롭힌 話頭와도 같았습니다. . .그 양반에게 제가 진지하게 물은 적이 있습니다.“만약 지만원 박사가 만나자고 하면 만나실 의향이 있습니까?”했더니웃으면서 지박사가 날 만나면 틀림없이 도와달라고 할 텐데...”하고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가능할 것입니다. 제가 이 양반을 안 지가 꼭 3년 되었습니다. 이병호 이병기 수사 때 자기 집 아파트에도 수사관 12명이 들이닥쳤었다고 했습니다.

 

<6>

 

탈북광수 건에 대해 지박사님이 국정원에 신고한 것이 이병호에 의해 묵살된 것도 그 사람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20172월에 실현될 뻔 했던 박승원 상장 기자회견 건에 대해 말씀 드리지요..박근혜 탄핵이 무르익던 2016년 연말 무렵 이 양반 이병호 이병기와 머리를 맞대고 흡사 桃園結義를 하듯 박승원 상장 기자회견을 내년 초에 실행하기로 결의했다.”고 하여 저도 정말 기대가 컸었습니다. 저를 만날 때 마다 내년 봄이면 세상 뒤집어집니다. 아마 기자회견이 성사되면 전라도 사람들 얼굴도 들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수십 번을 말했는데 정작 2월이 거의 다 갈 무렵 하는 말이 이병호가 좌파들이 이렇게 극성인 판국에 어떻게 기자회견을 하느냐며 꽁지를 내려버리더랍니다. 기가 막혔지요. 그리고 이병호의 구속. 아마 기자회견 실행 못한 것을 감방 안에서 후회하고 있겠지요. 우파의 마지막 카드이자 판을 뒤집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날린 것입니다.

 

소결: 위 제보자는 피고인이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2019.2.25.~26.이면, 피고인이 광화문 면세점 앞에서 1주일 동안 청중을 모아놓고 5.18에 대한 영상들과 강의를 했었기에 제보자의 메일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없었던 때였습니다. 이에 대해 제보자는 매우 서운해 하면서도 진실을 알려야 한다는 의무감에 자기가 전 국정원 고위간부 이 모씨로부터 들었던 말들을 보탬도 빠짐도 없이 그대로 전한다고 하였습니다. 황장엽이 귀순할 때, 자기와 김덕홍과 리을설(인민군 전설 원수계급)과 김중린(현직 통일전선부장, 북한한 판 CIA부장)5.18때 광주에 왔었다고 실토했다는 말 위 사실을 김대중의 명령으로 불태워 증거를 인멸시켰다는 말 2015.7경 박승원 상장(3)이 귀순하여 기자회견을 계획했지만 당시 국정원정 이병호가 좌경세력이 두려워 묻었다는 이야기 피고인이 2015.10.29. 탈북 간첩혐의자(탈북한 광수) 20명 정도를 국정원에 신고한 사실도 이병호가 묵살했다는 말을 들었다 하였습니다. 제보자는 필체에 나타난 인품으로 보아 함부로 말할 사람으로 보이지 않으며, 그에게 위와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는 이 모씨는 제보자의 설명에 따라 추적하면 누구인지 금방 알아낼 수 있을만한 사람입니다. 피고인은 광수에 대한 영상 분석에서 황장엽, 김덕홍, 리을설, 김중린, 박승원을 광수로 분석하였습니다. 이는 위 제보자의 제보 내용과 일치합니다. 제보 내용이 구체성이 있고, 제보내용이 피고인의 연구결과와 일치합니다. 여기까지만 해도 [북한군 개입]에 대한 사실 여부는 미완의 숙제라는 결론이 도출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울러 피고인의 연구가 황당무계한 것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인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북한군 개입]에 대한 진실여부는 미완의 숙제라는 결론을 낼 수 있는 단계에 와 있다고 생각합니다.

 

5. 피고인의 연구가 학설이라는 데 대한 사실들

 

1) 고정관념으로는 새로운 것 추구할 수 없습니다. 대부분의 국민이 믿기 어려워하는 것이 황장엽을 광수로 판독하였다는 점입니다. 연약해 보이는 노학자이고, 높은 사람인데 광주의 폭동 현장에 어떻게 올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제보자 역시 얼굴분석에는 동의하지만 고정관념에 걸려 믿어지지 않았다고 실토하였습니다. 제보자는 이 모 국정원 전 간부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비로소 피고인의 연구결과를 수긍하였다고 말합니다. 황장엽을 광수로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북한의 철저한 노블리스 오블리주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북한 역시 남한에서처럼 권력 있는 사람, 학자, 예술인, 영화배우 등은 위험한 곳에 오지 않는다는 남한식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한에는 노블리스 오블리주가 없지만, 유럽, 미국, 북한에는 그것이 있습니다. 광수들 중에는 영화배우도 여럿 있고, 시인, 소설가, 여성, 아이, 부녀자들이 다 끼어 있습니다. 이들은 게릴라전 및 심리전을 수행하는 부대 편제의 필수 요소들입니다. 그런데 게릴라전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무슨 폭동에 여성과 노인과 어린이들이 동원되느냐며 비웃습니다. 게릴라전을 모르는 사람들은 북한 특수군이 600명씩이나 어떻게 들키지 않고 오느냐고도 하고, 600명이 무기고를 털어 무장을 했다면 공수부대와 전투를 했어야 했는데 공수부대가 그만큼 많이 죽었느냐는 말도 합니다. 김일성 군대가 들키는 방법으로 600명을 보낼 리는 없습니다. 김일성이 광주에서 600명의 군병을 확보할 때, 600명으로 하여금 남한에서 한국군과 드러내놓고 전쟁을 하라고 마련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런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군사교리와 전쟁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는 사람들입니다. 또한 600명이라는 것은 현장에서 활동한 특수군 숫자가 600명이라는 것일 뿐, 그 중에는 북한이 10.26사건 이후 내려 보낸 숫자, 기존에 남한에서 활동해왔던 고정간첩 숫자가 배합돼 있을 것입니다. 이 모씨가 말해주었다는 357명은 10.26이후 북한이 조금씩 침투시킨 숫자일 수가 있을 것입니다. 5.18은 게릴라전과 심리전이 배합된 북한식 작전이었습니다. 광주 현장 사진 수백 장이 바로 모략전을 위한 사진들일 것입니다. 여기에 황장엽과 배우들이 끼지 못할 이유가 없는데 사람들은 깊이 분석해 보려하지 않고, 각자가 겪어온 제한된 경험에서 형성됐을 고정관념에 따라 사물을 판단하려 합니다. 황장엽을 광수로 수용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광수의 존재 전체를 부인-백안시하는 사람들도 꽤 있습니다. 피고인은 2014.10.경에 남북한 공식 문헌, 5.18기념사업회가 보관한 문서 등을 종합하여 [5.18분석 최종보고서]를 발행했습니다. 이 책에는 5.18이 북한이 주도한 사건이라는 결론을 냈고, 따라서 광주 폭동을 주도한 인물들 역시 북한특수군일 것이라는 데까지만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한 네티즌이 2010.5.17. 평양노동자회관에서 개최된 5.18 30주년 기념행사장 로열박스에 앉아있는 사람이 광주현장 사진에 나타난 얼굴과 동일하다는 점을 인터넷에 올리자 노숙자담요가 나타나 광주현장사진들을 속속 찾아내 분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분석과정을 음미해보면 이 작업은 한 단위의 영상분석팀이 쌓아올린 예술이고 만리장성입니다. 뉴턴 식으로 관찰하지 않는 사람들이 지구중력의 가속도(g=980cm/sec2)를 발굴하지 못하듯이, 갈릴레오처럼 관찰하지 않는 사람들이 천동설에 매몰돼 있듯이, 사물을 고정관념에 따라 판단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학설을 좀처럼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차제에 이름을 특정해 낼 수 있는 전 국정원 고위간부가 들려준 말은 피고인 및 노숙자담요의 연구가 터무니없는 소설이 아니었다는 점을 시사해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지금 우리사회에서는 유튜브에서 5.18을 다루면 며칠 안에 폭파당합니다. 외교부가 미국정부로부터 122건의 비밀해제된 외교문서를 받아놓고도 국민에게는 43건만 받았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이 모씨가 들려주었다는 말은 현 우리 사회현상에서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2) 피고인은 5.18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연구결과를 학문적 접근방법에 의해 도출하였습니다. 2002년 광주법원으로 연행된 이후 지금까지 20년 가까운 세월에 걸쳐 평균 400쪽 짜리 5.18역사서 10권을 발간하였습니다. 새로운 정보가 쌓일 때마다 책을 쓴 것입니다. 웬만한 인물들도 생전에 단 1권의 책을 자기 손으로 발행하지 못합니다. 5.18에 대해 10권의 역사서를 자기 손으로 타자를 쳐서 쓴다는 것, 그리고 그 책의 독자들이 책 내용을 수긍한다면 이는 분명 학문의 범주에 속할 것입니다. 사학자가 역사서를 쓴다면 한 개의 역사사건에 대해 1권의 책으로 족할 것입니다. 하지만 동일 역사에 대해 10권의 역사서를 썼다면 이 역사는 방대한 자료를 요하는 역사이며 매우 정교하게 다듬어진 역사서일 것입니다. 이를 놓고 단순히 피고인이 5월의 명예를 훼손시키기 위한 범의를 가지고 쓴 책이라 평가할 사람은 아마 드믈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역사책들은 정식 출판되었고, 수만 명의 독자들이 이를 읽었고, 읽은 사람들의 대부분이 이에 호응하였기 때문입니다. 많은 국민들이 호응하였다는 표현은 주관적인 평가가 아닙니다. 그 중 한 가지만 먼저 제시하자면, 약칭 5.18진상규명법의 제36항입니다. 거기에 [북한군 개입] 여부를 조사하라는 명령이 기재된 것은 사회일각에 북한군 개입에 대한 학설이 여론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아래는 위키백과(218)가 나열한 피고인의 일부 저서들입니다. 여기에는 5.18역사서들이 대부분 누락돼 있습니다. 2192021.3.15.자 조선일보 제26면의 전면광고문입니다. 광주법원이 가처분판결로 판매금지 시킨 [5.18영상고발]이라는 제목의 화보집과 [무등산의 진달래]는 광고에 넣지 못했고, [솔로몬 앞에 선 5.18]은 품절이 되어 광고에 넣지 못했습니다. 피고인이 피고인이 저술한 저서들을 제시하는 이유는 피고인이 32세에 미국 해군대학원에 석사과정으로 입학하면서부더 80세에 이른 지금까지의 일생을 연구하는 인생으로 살아왔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드리기 위해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