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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서(송선태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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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1-05-12 16:59 조회93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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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답 변 서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불법성 보강 증거 제출

 

사건: 2020804 .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위반 등

피고인: 지만원

피고인은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 위원장 송선태가 5.18진상규명법 제14-1을 전면으로 위반하였다는 사실을 증명 하는 2개의 증거를 제출합니다.

 

1.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 위원장이 위반한 법규

 

14(위원의 제척·기피·회피) 

위원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해당 심의의결에서 제척된다.

 

1. 위원또는 그 배우자나 배우자였던 사람이 위원회 진상규명사건의 가해자 또는 희생자피해자인 경우

 

2. 진상규명조사위원장 송선태가 법규를 위반한 이유

 

1) 송성태는 1980년 군법회의 2심에서 징역 3년 판결. 송선태당시 24세 학생으로 내란죄와 계엄법 위반 혐의로 1심에서 징역 5년을 받고 2심에서 항소를 기각당해 3년을 받았던 자입니다(252-9). 이는 위 5.18진상규명법 제141항에 곧장 해당합니다. 이러한 자가 사실을 숨기고 위원장이 되어 그 동안 불법으로 봉급을 타고 비상임위원 이동욱을 내세워 독직성격의 불법행위를 자행하는 등 국가예산을 왜곡되게 처리하였을 것입니다. 

 

1980.12.8. 2심 선고 피고인별 형량 (252)

 

2) “5월항쟁에 대한 부채의식소유자(253)

 

2532003.7.10.시민의소리를 요악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1) 송선태는 1988년 광주청문회 당시 48세였고, 광주청문회 TV생중계의 숨은 일꾼이었다.(252에 의하면 송선태는 1980년 당시 24).

2) 송선태는 이렇게 회고했다. “805.18 당시 전남대 총학생회 (비밀)기획실장으로서 초기 항쟁의 총괄기획을 담담한 이후 5월 영령들과 생사를 함께 하지 못한 마음의 부채로 안고 살아왔다.

3) 송선태는 전남 고흥 출신으로 75년 전남대 국문과에 입학 한 후 80년 당시 전남대 총학생회 비밀간부로 5월 항쟁을 주도하다가 808월에 내란죄와 계엄법 위반으로 붙잡혀 2년여 동안 투옥되기도 했다.

4) 출옥 후 송 전 전문위원은 5월 관련단체와, 민주헌법쟁취 광주전남국민운동본부에서 핵심간부를 맡아오다가 88년 정상용 전 평민당 의원의 보좌관으로 발탁돼 국회보좌관, 96년 광주시의회 전문위원 등으로 공직생활을 해오며 광주항쟁의 법적 제도적 장치, 광주시의회 기틀 마련 등에 힘써왔다.

 

3.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라는 경력의 의미 

 

나무위키에는 5.18기념재단이 이렇게 설명돼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비영리 재단법인. 1980년대 후반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5.18 민주화운동이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고이 때 당시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그를 위한 단체가 필요해졌다이를 바탕으로 1994 8 30 5.18 기념재단이 공식으로 출범했고 조비오 신부가 초대 이사장을 지냈다.”

 

 아래는 5.19기념재단 홈페이지 일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