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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츠페터, 사진을 찍으러 갔나, 가지러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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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1-07-13 01:50 조회1,52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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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힌츠페터, 사진을 찍으러 갔나, 가지러 갔나?

 

영화 [택시운전사]5.18 홍보영화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5.18영웅이 아니라 독일 기자 힌츠페터를 520일에 광주로 태워간 김사복이다. 김사복의 주위에는 붉은 인물들이 어른거렸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그와 단짝인 위르겐 힌츠페터가 간첩으로 평가될 수 있는 사람인가의 여부를 소고하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그를 북한에 부역한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힌츠페터가 광주에 간 날은 520일 오후와 23일 낯이다. 520일에 광주에 갔다가 21일 아침 서울로 출발해 동경으로 가서 사진을 독일 본사로 송고한 후 부랴부랴 다시 동경으로부터 한국으로 부리나케 날아와 또 부리나케 다시 광주로 간 날이 5.23일인 것이다. 그가 522일 전 세계를 향해 방송케 한 영상은 어떤 영상인가? 518일에 누군가가 촬영한 아래 사진들이다. 계엄군을 가장 영양가 높게 모략한 사진이 다음 사진들이었다. 과잉 진압의 로고 사진들인 것이다 

 

이 사진들은 518일 하루에만 찍힐 수 있었다. 520일 오후에 광주에 도착한 힌츠페터가 어떻게 518일에 발생했던 상황을 촬영한다는 말인가? 누군가가 촬영한 것을 힌츠페터가 520일 전달받아 가지고 007식으로 서둘러 일본으로 가서 독일 본사로 송고한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사실에 착안해야 한다. 위 사진들은 모두가 옥상 등에서 내려다보고 찍은 것들이라는 사실이다. 이런 과잉 진압 현상이 발생할 것을 미리 예상하고 옥상 등에 대기하고 있다가 순간을 포착한 것이다. 그러면 촬영자는 어떻게 미리 사진기를 촬영 현장에 세팅한 채, 이런 상황이 벌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을까?

 

단서가 있다.31사단은 광주지역 향토사단이다. 그 사단장 정웅은 김대중에 충성하는 빨갱이다. 그런데 군이 어수룩해서 518일 광주로 파견한 제7공수 2개 대대를 정웅이 지휘하도록 작전 명령을 내렸다 .518일 오후 4시 경, 정웅은 헬기를 타고 전남대에 가서 제7공수 2개 대대 대대장을 불러 작전 명령을 내렸다. “시내가 난리다. 내가 지도 위에 표정한 길목 36개에 공수대원들을 배치해서 그 안에 갇힌 젊은 놈들을 한 놈도 놓치지 말고 모두 체포해 31사단 헌병대로 넘겨라

 

불과 200여 명 정도 되는 전투요원을 36개로 쪼개니 1개 조에 4-5명씩 배치됐다. 젊은이들은 너무 많고 공수대원 수는 중과부적이었다. 젊은이들을 쫓아버리라 했으면 충돌도 없었을 테지만 정웅은 모두 체포하라고 명령했다, 그래서 명령을 하늘처럼 여기는 공수대원들은 곤봉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진을 촬영하는 팀과 정웅과의 사이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광주에서 촬영된 500여 장의 사진들 중 주류를 이루는 사진들은 518, 521, 523일에 촬영된 사진들이다. 여기에 더해 북한은 현장을 동영상으로 촬영하여 기록영화를 제작했다. 이 모든 사진들과 동영상을 520일과 23일 광주에 수 시간씩만 머문 힌츠페터가 혼자 다 찍을 수는 없다. 이 어마어마한 기록영화의 소재를 힌츠페터라는 외국기자 한사람의 능력에 의존할 수는 없는 것이다. 결국 힌츠페터는 거대한 촬영팀이 촬영한 정-동의 영상들을 독일 본사에 보내는 심부름꾼 역할을 했다고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이에 더해 힌츠페터는 1975년부터 김대중 조직인 한민통 수뇌들과 어울렸다. 1975103일은 장준하가 추락사 당한지 49제되는 날이다. 힌츠페터와 김사복은 장준하가 사망한 장소인 포천의 약사봉을 김대중 졸개들과 함께 갔다. 독일인이 이런 곳에 왜 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