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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1-07-13 02:05 조회1,86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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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프로필

 

              5.18 일지의 프레임

                          (145에 근거)

 

5.14.~5.16 박관현 주도의 전남도청 앞 민족민주화 대성회

 

5.17 정동년 체포, 지역운동권출신 모두 도주-시위 불참

 

5.18 오전 9, 학생으로 위장한 어깨 250, 전남대 정문 으로 계엄군 찾아가 돌멩이 공격 후 금남로로 도주, 차량과 파출소에 불 질러 시민유도 후 지역감정 유발하는 유언비어 살포

5.18 오후 4, 31향토사단장 정웅, 계엄군에 과잉진압 명령, 곤봉사 태 발생 (해산시키지 말고 모조리 체포해 헌병대로 넘겨라)

 

5.19~5.20신출귀몰한 게릴라식 군사작전, 계엄군 전멸위기에 처해

 

5.21. 20사단 지휘차량부대가 08시에 광주 톨게이트를 통과한다는 정 보를 입수하고 300명이 사전에 장애물 설치하고 매복하고 있다 가 기습, 사단장 차 등 지프차 14대를 탈취하여 아시아자동차 공장으로 이동, 09, 600명 어깨 집단 아시아자동차공장 점령, 장갑차 4대와 트럭 370여 대 탈취, 전남지역에 위장돼 있는 44 개 무기고를 4시간 만에 털어 5,400여 정의 총기 탈취, 도청 지 하에 다이너마이트 폭탄 2,100발 조립,

 

오후 5, 600명 어깨부대, 계엄군을 시 외곽으로 추방하고 도청 을 배타적으로 점령.

 

밤에는 교도소 파상 공격

 

5.22~5.24. 점령군 천하, 도청을 작전기지로 활용

전후 5~6차례에 걸친 교도소 공격에 어깨부대 수백 명

사망 추정, 점령군 패인의 결정적 원인

 

점령군 일부는 복면하고 다니며 시민 호응 유도하고 일부 는 시체장사,

5.24 낮에 철수. 도청 비워

광주의 일부 유지들 계엄군과 협상, 무기반납 분위기 조성

5.25~27비운동권 출신들의 소영웅적 객기로 결사항전 선언 

 

이들은 비운동권출신으로 5.24일까지는 각자도생하자며 도망 다니다가 24일 늦은 오후 도청이 비워지자 각자 들어가서 처음 만난 사람들,

25일 밤중에 항쟁본부 구성,

526일 객기부리며 결사항전 선언했다가

5.2702~04시 계엄군 진압작전 초래 사형 및 무기징역형 선고

5.21. 영화 화려한 휴가’[오후 1시의 무차별 총격 드라마]

존재하지 않았다

 

5.21. 사망한 광주시민은 총 61, 그 중 도청-금남로 부근에서 사망한 자는 8, M-16 총상 사망자는 4, 도청을 지키던 계엄군은 130분에야 31사단 소대장 한동석 중위의 개인적 자비심에 의해 실탄 15발 획득. 1시에는 공수부대에 실탄이 전혀 없었다.

 

2. 계엄당국의 인물들

대통령 최규하

국방장관 주영복

계엄사령관 이희성(4)

2군사령관 진종채(4)

전투교육사령관(CAC) 윤흥정, 소준열(3)

보안사령관 전두환 소장(482)

 

3. 광주 운동권 인물들

 

정동년(200625.18기념재단 발행, ‘5.18의 기억과 역사2’)

 

<자필 진술>1943년 광주 출생, 사례지오 중고등학교, 1964년 전남대 총학생회장. 654학년 때 6.3사태에 관여한 관계로 제적. 65~73년까지 서울에서 형이 하던 양복점 운영, 73년 나주에서 형이 차린 전자회사 근무, 75~80년 학원강사, 1980년 복학생 되어 김대중으로부터 500만원의 폭동자금을 받아 5.18내란을 주도한 혐의로 5.17 밤중 자택에서 체포된 이후 사형언도

 

윤한봉(200625.18기념재단 발행, ‘5.18의 기억과 역사2’) -광주 운동권의 전설로 회자.

 

1947년 전남 강진에서 태어나 2007627, 59세로 사망. 5.18의 핵심 주역 중 한 사람으로 수배를 받다가 19814월 화물선에 숨어 35일에 걸쳐 미국으로 밀항. 미국에서는 민족학교와 재미 한국청년연합 등을 결성해 운동권 일각을 형성하여 활동하다가 1993년 김영삼의 선처로 수배가 해제되자 귀국. 5.18기념재단 설립을 주도했고, 민족미래연구소와 들불야학기념사업회를 창설.

 

<자필 진술> 

광주일고에서 땡땡이 치고 엉망으로 지냈다. 대학진학 안 하고 1년간 절간에서 살았다. 산에나 오르내리고 물가에 누워 낮잠이나 자면서 한가로운 시절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군에 자원입대를 했다. 병참학교에서 교육받고 12사단 최전방 부대인 52연대 군수과로 배치됐다. 성격이 꼬장꼬장해 군대에서도 많이 싸우고 다퉜다. 군대에서 대학 나온 놈들, 대학에 적을 둔 놈들이 나를 고교출신이라고 멸시했다. 그래서 대학 가기로 결심하고 전남대 축산학과에 입학했다. 민청학련사건으로 징역 15년 자격정지 15년을 선고받았다. 긴급조치 1,4호 위반, 국가보안법 위반, 예비내란 음모 등의 혐의였다. 75216일 대전 교도소에서 출소했다.

 

49, 인혁당 관련자 8명이 사형을 당했다. 그 뉴스를 듣고 나는 이 한목숨 다 바쳐 박정희 독재정권과 맞서 싸우겠다고 다짐했다. 후배들을 의식화시키는데 열중했고, 운동원 인사들에 대한 옥바라지에 나섰으며 김지하의 옥바라지도 했다. 광주일고 출신들이 금서인 리슨 양키”(Listen Yankee! 양키들아 들어라)를 구독하면서 미국을 제국주의로 인식, 반미감정을 갖게 됐다. 사상이 붉그스름하게 변하게 됐다. . 내가 무얼 해야 하는지 궁리를 했지만 답이 없었다. 박정희를 죽일 방법도 없고. . 생각해 낸 것이 학생운동 밖에 없었다. .

 

50만원이 넘게 든다는 학생회장 선거에서 7백원으로 당선되는 이변을 낳았다. . 내가 갑자기 유명해졌다. 그 다음 나는 등록금 인상 반대 투쟁을 벌었다. 이러는 사이 정보사찰기관은 나를 요주의 인물로 선정했다. . 515일 서울역 회군 이후 전국 총학생회 회장들이 이화여대에 모여 회의하는 것을 신군부가 급습을 했고, 이때 박관현, 박형선이도 잡혀갔다 하고, 김상윤도 잡혀 갔다 하고, 나를 찾느라 눈에 불을 쓰고 있다 했다. . 전남대, 조선대 다 접수되어 버렸고, 모두들 잡혀가고, 도망가고, 박살나브렀다. 나는 19일 새벽에 튀어 부렀다. . 무조건 서울로 향하다 중간에 생각이 바뀌어 대전으로 갔다. 이 상태로 서울 가다가는 잡힐 것이 틀림없었다. 다시 내려가는 기차를 탔다. 기차가 서기 전에 뛰어내렸다. 내리고 보니 장성역, 내 똥가방은 그대로 버리고 내린 것이었다.. 의대 앞에 있는 내 동생 경자 집에 갔다. 난리였다. 오늘 경찰이 두 번이나 찾아왔다. 개죽음 하려고 왔느냐 야단을 쳤다. 벽장에 나를 넣어놓고 나가더라. 작은 형님이 오시더라고. “, 한봉아 지금 너 잡히면 개죽음 당한다. 빨리 빠져나가라”. 형님이 준 양복을 입고 조카를 업은 여동생과 부부행세하고 백운동-남평-나주로 갔다.21일에는 나주에 있었다. 차량 시위대가 나주 경찰서에서 무기 탈취를 하더라.

 

박관현 (1953~1982)

 

전남 영광군 출생, 1980년 당시 전남대 3학년 재학 중 총학생회장으로 선출,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와 동시에 여수로 도피. 비겁자로 비난받자 옥중에서 단식 사망

 

윤상원(1950~1980)

 

[윤상원 평전], [윤상원 기념관]까지 존재할 만큼 5.18의 로고인물이자 전설로 통한다. 본명은 윤개원, 전남 광산군 출생, 살레시오고교 졸업, 전남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하여 재학 중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 서울 주택은행에 취직했다가 6개월 만에 퇴사. 광주 한남플라스틱에 취업했다가 곧 양동신협에 취업. 1978년 박기순의 설득으로 들불야학에 동참, 그해 12월 박기순은 연탄가스로 사망. 그 후 녹두서점 점원으로 일하면서 521일 총소리가 나자 보성기업으로 도피. 525일 밤중 항쟁지도부가 형성되면서 김종배에 의해 대변인으로 지명, 5.26 외신 기자들 상대로 결사항전 선언, 5.27 새벽 도청에서 사망. 1982.2. 박기순과 영혼결혼식, 이때 임을 위한 행진곡을 영혼결혼곡으로 처음 공개.

 

2021.7.13.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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