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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고소자 안명철(491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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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1-08-03 20:36 조회86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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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안명철(491광수)

 

1969년 출생

1994.10. 한국도착

고소장 주장: 1969년생으로 5.18당시 12살이었다.

총평 : 상상으로 엮은 스토리인데 현실성이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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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위키 약력 

19692월 함경남도 홍원군 출생.

1985(16) 함경남도 홍원군 홍원고등학교 졸업.

1987(18) 홍원농업전문학교 졸업, 정치범수용소 경비대에 입대하여 국가안전보위부 11(함경북도 경성군) 경성 수용소에서 신병교육 받음.

19877~ 199012월 국가안전보위부 13(함경북도 종성군) 종성 수용소 근무.

19911~ 199110월 국가안전보위부 22(함경북도 회령시) 회령 수용소 근무.

199111~ 19923월 국가안전보위부 26(평양시 승호구역) 승호 수용소 근무.

19924~ 19949월 국가안전보위부 22(함경북도 회령시) 회령 수용소 근무.

19949, 22(함경북도 회령시) 회령 수용소를 탈출하였고, 중국을 경유하여 10월에 대한민국으로 망명.(25)

1997년 서울시 광진구 건국대학교 입학.(28)

 

                                   자료원 

2002.12.04. NK조선 경비원 안명철씨가 말하는 제22호 정치범수용소

http://nk.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26745

2007.10.17. RFA, “완전통제구역저자 북한정치범수용소 경비원 출신 탈북자 안명철씨 회견

https://www.rfa.org/korean/daily/seoul_plaza/former_political_prison_guard-20071017.html

2007.9.20. [완전통제구역] 5, ‘운명의 탈출내용

별책

2020-12-18 동아닷컴 [주성하 기자의 북에서 온 이웃]

https://www.donga.com/news/Politics/article/all/20201218/104505031/1?ref=main

나무위키

https://namu.wiki/w/%EC%95%88%EB%AA%85%EC%B2%A0

2017.03.13. 진보 블로그, NK워치대표 안명철과 박금옥의 행적을 두고-

http://blog.jinbo.net/tumbler78/734

2020. 2. 10. [ENG SUB] 북한 정치범수용소 현황과 관리체계안명철엔케이워치 대표북한 사람 인권

https://www.youtube.com/watch?v=j3wL03Xfvac

119~705

 

1) 정치범수용소 근무

 

22호 수용소에서 7년 동안 경비병으로 근무했다

 

당비서였던 부친의 배경 덕분에 정치범수용소 경비병으로 입대했다.

 

19세의 나이였던 19874월에 입대했다. 나는 애초에 경비병으로 뽑힐 수 없었지만 어머니가 당 간부들과 군관들에 뇌물을 바쳐 완전통제구역의 경비병이 되게 했다. 나는 사회에서 어깨 너머로 배운 운전 실력을 바탕으로 경비대의 운전병으로 선발됐다. 나는 언제나 정치범에게 우호적이었다. 한번은 정치범에게 헌 운동화와 고깃덩이를 가져다 준 것이 발각되어 군에서 쫓겨날 위기에 있었지만 뇌물로 무마했다. . 1994122일자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 19943월 어머니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절대로 집에 들르지 말라, 반드시 초기복무(장기 직업군인)를 지원하라는 내용이었다. . , 19945, 중대장 장금철 대위가 나를 호출했다. 편지 한 장을 주면서 출장 준비를 완료해가지고 보고하라고 했다. . 나를 감시하기 위해 참모장이 따라나섰다. . 고향에 와보니 어머니가 손수 설계해 지은 새집이 망가져있었다. 방이 다섯 개나 되었는데 그 집의 지붕이 무너지고 문짝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 양정사업소 초급 당비서가 어머니에게 아버지를 독살한 범인이라고 몰았다고 한다. 큰아버지라는 사람은 어머니가 아버지를 독살시켰다는 항소문을 들고 평양까지 1주일 동안 걸어서 중앙검찰소에 신고를 했다고 한다. 며칠이 지나 참모장이 나를 데리러 왔다. 15살 난 내 여동생이 참모장을 붙들고 오빠를 초기복무(장기복무) 시켜달라 부탁했고, 나 역시 그렇게 부탁했다. 부대에 귀대하여 대대장, 정치지도원, 후방부대장, 참모장 등을 찾아가 초기복무를 부탁했다. 그러나 그들은 다 같이 이런 말을 했다. “정치범들을 도와주고 계급적으로 변심한 놈의 새끼가 하면 얼마나 잘 하겠어, 그리고 네 부모들도 당을 배난하고 반역죄를 지었는데,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고 너 같은 놈이 초기복무는 뭐 말라빠진 초기복무야, 딴 생각말고 맡은 일이나 잘 해”. . 19946, 나는 9월에 탈북하기로 결심했다.

 

2) 부모의 신분

 

나는 1969222일 장남으로 태어났다. 나의 할아버지는 홍원읍 소작농이었다. 작은 땅과 소 한 마리를 어렵게 장만했는데 1960년에 소를 강탈당해 스스로 목을 찔러 자살했다. 가족들은 대를 이어 반역자의 집안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살아야 했다. 어머니는 열성이 많았고, 평생 당원이 되는 것이 소원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할아버지로 인한 연좌제 때문에 노력영웅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뇌물을 써서 할아버지의 기록을 자살에서 사망으로 바꾸었다. 그후 어머니는 홍원군 철도영업소 열차판매원이 되었다.

 

나의 집안이 좋았다. 부모가 다 당원이었다. 식량배급소 당 간부를 30년 이상 했다. 집안이 좋았기 때문에 나와 내 동생은 국가안전보위부에 발탁됐다. 나는 보위부 직속으로 갔고, 동생은 국경경비대로 갔다.

 

아버지는 군의 식량을 총괄하는 양정사업소 당비서였고, 어머니는 상업관리소 지도원이었다. 아버지는 머슴의 아들이었고, 어머니도 전쟁고아 12명을 키운 집에서 태어났다. 북한에서 말하는 소위 핵심계층출신이었다. 홍원과 같은 농촌 지역에선 안씨의 부모처럼 부부가 모두 노동당원인 집안도 드물었다. . 군에 갈 때가 되자 집에 보위부 지도원이 찾아왔다. 선발 과정의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안씨는 정치범수용소를 지키는 보위부 소속 부대에 입대하게 됐다. 정치범수용소 경비대의 40% 이상은 수용소 관리 보위원 출신 자녀들이다. 20% 정도는 외부 보위원 자녀들이고, 30% 정도는 중앙당 등 고위 간부 자녀들이다. 비밀 유지를 위해 보위부와 고위 간부 출신 자녀들만 선발했다. 안씨는 출신성분이 좋아 예외적으로 뽑힌 경우였다.

 

명철 놈은 1969222일 함경남도 홍원군 읍에서 량정사업소 로동자로 일하던 아버지 안경식과 갱목생산사업소 로동자로 일하던 어머니 김복실의 맏아들로 출생했다. . 이자의 애비 안경식 역시 량정사업소에서 로동자로 일하면서 쥐 소금 녹이듯 국가량곡을 훔쳐내여 사취하다가 법기관에 적발 체포되여 조사를 받던 도중 지레 겁을 집어먹고 음독자살한 더러운 범죄자이다.

 

3) 아버지의 자살

 

양정사업소에서 일하시던 아버지가 식량을 부탁하는 친구들과 이웃사람들에게 강냉이를 몰래 갖다 주었다는 이유로 절도범으로 몰리자 19941월 양잿물을 마시고 자살했다.

 

아버지가 술김에 한마디 했다. “쌀이 없는 것은 배급소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위에서 잘못했기 때문이고, 배급제도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조사가 시작되자 아버지는 음독자살을 했다.

 

1994년 고난의 행군이 닥쳐왔다. 사람들이 굶어 죽어갔고, 간부들은 식량을 빼돌리느라 여념이 없었다. 국가 검열이 내려왔을 때 간부들은 양정사업소 당비서인 부친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우려 했다. 화가 난 부친은 술김에 쌀이 없는 것이 간부들의 잘못이냐. 나라가 잘못한 거지라고 말했는데 보위부에 고발이 들어갔다. 보위부 조사를 받으며 억울함을 감추지 못한 부친은 어느 날 양잿물을 마시고 세상과 작별했다. 북한에서 자살은 체제에 불만이 큰 반동이나 하는 짓으로 인식된다. 이번엔 어머니가 보위부에 끌려갔다. 자살 여부를 가린다며 아버지 묘를 3번이나 파고 부검했다. 안씨가 집에 도착하기 전에 벌어진 일들이었다.

 

나무위키, 아버지는 식량배급제도에 대해 비판적인 발언을 했다가 김일성의 지시를 어긴 당정책 위반죄에 걸려서 양잿물을 마시고 자살했다.

 

4) 아버지 자살의 여파

 

8년을 다 하고 나서야 표창휴가를 받게 되었고, 이와 아울러 부친이 돌아가셨다는 전보를 받고 겸사겸사 집에 갔다. 부대에 복귀해서는 나와 아버지는 다르다, 나는 조국에 충성하겠디며 혈서를 썼지만 통하지 않았다. “그 애비에 그 자식이라는 것이었다. 어머니와 여동생은 수용소에 갔다.

 

어머니가 정치범이 돼 15호 관리소(요덕정치범수용소)12살 여동생과 함께 끌려갔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뒤늦게 알았지만 국경경비대에 나갔던 남동생도 수용소에 끌려갔다. 안씨도 수용소 경비원에서 졸지에 정치범으로 내몰릴 상황이었다. 그런데 천운이었는지 마침 그해 7월 김일성이 사망했다. 100일 애도기간 모든 행정이 중단됐다. 그동안 안 씨는 간부들을 만나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지” “너 안 되겠는데라는 싸늘한 말뿐이었다. . 고민하던 그는 100일 애도기간이 끝나기 한 달 전인 918일 탈북길에 올랐다.

 

5) 경비부대 탈출 과정

 

탈출 날짜를 917일로 정했다. 마침 차단초소인 세천초소 초소장이 내게 쌀을 좀 구해달라고 했다. 나는 9월에 쌀을 그의 집에 가져다 놓을테니 세천초소 근무병들에게 프리패스를 시키라는 명령을 내려 달라고 했고, 그는 이를 약속했다.. 송이버섯, , 피복, 천막 등을 미리 차에 실어놓았다. 16일 밤 12시부터 17일 오전 2시까지 내가 보초를 섰다. 당직실로 내려와 부당직(부직일관)인 부소대장에게 심부름을 시켜놓고 무기고를 열어 권총 5정과 실탄을 챙겨 배낭에 넣었다. 근무 중에 미리 숨겨둔 AK47 소총과 실탄을 차에 싣고 17일 새벽 230분경 수용소 본부를 떠나 탄광으로 올라갔다. 미리 나와 대기하던 두 남매를 차에 태웠다. 그들은 영문도 모르고 몸을 실었다. 초소로 가는 길은 오르막길이었다. 이 때 나는 두 정치범들에게 설명했다. “너희들은 아무래도 이 안에서 죽고 만다. 내가 하라는 대로 하면 사람답게 살 수있다. 우리는 남조선으로 가야 한다. 뒤 적재함에 방수포가 있다. 그 안에 들어가서 내가 신호할 때까지 절대로 움직이지 말라. 초소를 통과해야 하니 명심해라”.

 

그리고 권총 한 자루씩 나누어주었다. “피 값이라도 해야 하니 이거 받아라”. 그들은 초소를 통과해야 한다는 말에 겁을 먹었다. “우리는 가지 않겠다. 초소로 올라가면 죽는다하면서 차에서 뛰어내렸다. 세천초소(차단초소)는 약속대로 차단봉을 올려두고 있었다. 강변에 다다랐다. 1997917일 새벽 230, 두만강과 가장 인접한 도로가에 트럭을 세우고 시동을 껐다.

 

917일 토요일 늦은 저녁. 함께 근무하던 근무조 장교들이 주말이라며 신이 나 퇴근하자 안씨는 몰래 내무반을 빠져 나왔다. 며칠 동안 세운 탈북계획을 실행하기 위해서였다. 경비대 소속 트럭 운전수였던 그는 우선 자기가 몰던 차만 남기고 나머지 차량의 휘발유 관을 모두 잘랐다. 차량 추격을 막기 위해서였다. 평소 안면이 있는 외곽 차단초소 초소장에게 전화를 해 분대장 생일이라 밖에 나가 술을 가져오려 하니 내가 도착하면 차단봉 올리게 부하들에게 말해 달라고 부탁했다. 평소 종종 있는 일이라 초소장은 술을 갖고 올 때 쌀 20을 가져달라고 요구했다.

 

무기고에 들어가 총과 권총을 모두 꺼내 차에 실었다. 차에 시동을 거니 새벽 2시경이 됐다. . 초소를 향해 달렸다. 초소장의 지시를 받은 듯 한 병사가 나왔다. 그가 차단봉을 올리려는 순간 초소 안에서 전화 받는 듯한 소리와 밖에 나간 병사를 찾는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다. “벌써 들켰구나.” 망설일 틈이 없었다. 안씨는 차를 몰아 차단봉을 그대로 치고 나갔다. 용접한 철제 차단봉이 부러졌다. 그 길로 그는 두만강을 향해 차를 내몰았다. 평소 40분 걸리는 거리를 15분 만에 주파했다.

 

안명철은 주둔지역과 그 주변에서 강도질까지 하는 범죄를 감행하다가 법적 처벌을 받게 되자 도주한 놈이다.

 

6) 오누이(24, 26)의 동반 동기

 

남조선이 나를 신뢰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비밀 문건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런 문건은 내가 구할 수 없었다. 머리를 짜낸 끝에 탄광에서 일하는 최순애(26)와 최희유(24) 남매를 태워가기로 했다.

 

탈출할 때 그들도 살려주고 싶어 그들을 차에 태우고 권총 한 자루씩 주었다.

 

안 씨는 탈북을 결심하면서 평소 정이 들었던 이들에게 자유를 찾아주고 싶었다. 그래서 어느 날 저녁에 돼지고기를 갖다 줄 테니 차 소리가 들리면 둘 다 숙소 앞 도로에 몰래 나오라고 일러두었다. 이들은 약속을 지켰다.

 

7) 두만강 도강

 

차에 실어둔 AK47과 권총, 7kg짜리 쌀, 송이버섯이 든 배낭을 차에서 꺼내 양어깨에 메었다. 중국을 향해 강물로 들어섰다. 물살이 빠르고 회오리까지 쳤다. 배낭의 무게로 인해 도저히 헤엄을 칠 수 없었다. 들고 있던 AK소총과 배낭을 벗어버렸다. 간신히 살아나기는 했지만 도로 북한 땅이었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꼭 이래야만 했는가. . 내 평생 그렇게 많은 눈물을 흘려본 적이 없었다. ” 날이 밝을 때까지 이러고 있었다. 나를 잡으려고 출동한 22호 경비대 트럭의 불빛이 보였다. 옷과 신발을 벗고 팬티만 입은 채 권총을 담은 배낭 하나만 메고 수심이 낮은 쪽으로 건넜다.

 

하사 계급장을 단 그는 탄창 하나에 30발이 들어가는 AK47 자동소총을 메고, 탄창 3개를 허리에 둘렀다. 어깨에 멘 배낭 안에는 장전한 군용 권총 6정과 탄창이 들어 있었다.. 장마가 갓 끝난 때라 물이 불어 있었다. 물살에 갑자기 몸이 휘감겨 말려 들어갔다. 의식이 아득해지는 순간 소총을 버리고 탄창도 풀어 던졌다. 허우적거리다 배낭만 쥐고 물살을 헤치고 겨우 뭍에 도착했다. 아차 싶었다. 중국이 아니라 북한 땅이었다. .강기슭에서 그는 하늘을 쳐다보며 통곡했다. “나는 왜 고향과 가족, 미래를 버리고 이렇게 도망자 신세가 됐나요.” 40분쯤 지났을 때 멀리 추격해오는 트럭들의 불빛이 보였다. . 배낭에서 비상식량으로 챙겨두었던 쌀과 증거로 갖고 챙겨온 사진묶음 등을 모두 꺼내 강물에 버렸다. 군복도 버리고 신발도 벗었다. 팬티만 입고 권총 6정과 탄창이 든 배낭을 들고 다시 강물에 뛰어들었다.

 

8) 중국에서

 

중국의 농가로 들어갔다. 새벽 5시 경, 단잠을 자고 있는 농가 부부에 팬티 바람으로 들이닥쳐 권총을 겨눴다. 남편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밥을 얻어먹은 후 연길로 데려다 달라고 협박했다. 주인은 권총 2자루만 주면 연길까지 무사히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택시를 잡으려고 집을 나섰다. 내가 버리고 온 두만강 가에 나를 잡으려고 온 체포조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50미터의 강 건너에는 나를 잡으러 온 동기들, 부하들, 관리소장이 핏대를 올리고 있었다. 그 소리가 나에게도 들렸다. “, 이 새끼들아, 빨리빨리 찾아, 못 잡으면 너희들 모두 죽을 줄 알아라! 야 그리고 대대장 이새끼야, 너는 부하들 관리를 왜 이렇게 못해! 너 안명철이 이 반역자 새끼 못 잡으면 너 옷을 벗을 줄 알아라. 무조건 잡아, 알았어!” 대대장 강소남의 기가 죽은 목소리가 들렸다. “알았습니다. 소장 동지!” 절친한 친구들의 얼굴도 보였다. 나는 믿기지 않는 현실 앞에서 그냥 어리둥절했다.. 그 때 중국 남자 둘이 나를 쳐다보았다. “자기 잡으러 온 군대들입메?” 나는 그렇다고 하고 빨리 택시를 불러올 것을 명령했다. 조금 있으니 군용 지프차 같은 택시가 왔다. 나는 권총 세 자루를 모두 허리춤에 차고 언제든지 쏠 수 있게 모두 안전장치를 풀어놓고 있었다. 약 2시간 정도 택시를 타고 연길역에 오니 점심시간이었다. 나는 그 남자들에게 신발을 바꾸어 신자고 했다. 그랬더니 그 남자는 권총 2 자루를 더 주시오라고 했다. 운동화와 인민폐 50장을 받고 권총 2자루를 내주었다. 그리고 그 농부는 집으로 돌아갔다. 길림역까지 기차를 탔다. 열차 안에서 중국 공안들이 열차표 검열을 하였다. 나는 주머니 속의 권총을 겨눈 채 벙어리 흉내를 냈다. 열차가 길림역에 도착하니 19일 밤 2시경이었다. 하얼빈 가는 기차를 타려면 4시간 더 기다려야 했다. 하얼빈행 기차표를 사고 빵3, 담배2, 라이터 한 개를 사고 나니 파란색 돈 2장만 남았다. . 한가한 열차 안에는 조선족 몇 명이 있었다. 60세 정도의 할아버지를 보았다. 나는 그 할아버지에게 다가가 사정을 말하고 도와달라고 사정했다. 그 할아버지 입에서 그놈 한 놈 때문에 수천만이 고생한다며 수령님에 대한 욕이 나왔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나는 할아버지의 뺨을 후려쳤다. 내가 정신을 차려 사과했더니 용서를 해주었다, 노여움을 푼 할아버지가 나를 자기 집으로 데려갔다. 할머니는 목욕물을 받아주면서 씻으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새옷과 속옷을 주며 갈아입으라 했다. 잉어매운탕도 끓여주었다.

      

할아버지는 곧장 하얼빈으로 가서 한국영사관에 팩스를 넣었고, 그 답까지 가지고 나에게 왔다. 920, 나와 할아버지가 북경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검열과 조사를 할 때마다 나는 벙어리 흉내를 냈다. 북경역에 도착해서는 할아버지가 나에게 담요를 뒤집어씌우고 중병환자라 우기며 북경역 검색대를 빠져나갔다. 북한 보위부는 중국에까지 건너와 현상금을 걸고 공개수배령을 내려놓고 나를 잡으려 혈안이 되어 있었다. 택시는 나를 계속 나를 북한 대사관으로 데려갔다. 그러기를 여러 번 하자 택시비가 문제가 되어 실랑이가 있었다. 촌 할아버지는 돈을 많이 날린 후 돌아갔다. 그리고 나는 영사관 업무가 시작될 무렵 한국 영사관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조선족 농민 부부는 팬티만 입은 남자가 맨발로 아침에 뛰어들자 깜짝 놀랐다. “조선에서 방금 넘어왔는데 멀리 도망갈 수 있게 도와주시오.”아내의 입에서 욕설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안씨가 배낭에서 권총 6정을 차례로 꺼내자 금방 입을 닫았다. 이번엔 남편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더니 권총을 주면 도와주겠다고 제안했다. 거절할 겨를이 없었다. 옌지(延吉)까지 데리고 가는데 권총 2정을 달라고 했고, 하얼빈(哈爾濱)까지 가는 기차표를 사주고는 추가로 한 정을 달라고 했다. 밥 한 끼 사준 값이라며 다시 권총 한 정을 요구하더니, 담배 한 갑을 사주면서 또다시 권총 한 정을 받아갔다. . 하얼빈에 내려 노인의 도움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노인은 베이징(北京) 한국영사관에 권총을 차고 온 조선 군인이 한국에 가고 싶어 한다고 전화를 걸었다. 영사관에 이미 안씨의 탈북 소식이 전달돼 있었는지, 영사관 직원은 노인에게 당장 베이징까지 함께 와달라고 부탁했다.

   

벙어리 흉내를 내며 다시 베이징으로 향했다. 18일 새벽 두만강을 넘고 20일에 하얼빈에 도착해 그 다음 날 새벽 베이징에 도착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사흘이었다.

 

택시기사에게 한국영사관에 가자고 했더니 북한대사관 앞에 내려주었다. 인공기와 김일성 초상화를 보고 질겁한 이들은 다시 택시를 탔다. 이번에는 제대로 한국영사관을 찾았다. 밖으로 나온 영사관 직원은 안씨가 권총을 차고 있는지를 확인한 뒤 탈북 동기 등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는 어디론가 데려갔다. 103일 안씨는 마침내 한국에 도착했다.

 

                                          총체적 결론

 

안명철은 수용소에서 경비병으로 일했다고도 했고, 운전병으로 근무했다고도 한다. 어깨 너머로 배운 운전 실력 덕분에 운전병으로 근무했다고 한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19세로 군에 입대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시절에 어디에서 어깨 너머로 운전 실력을 익혔다는 것이며, 무슨 차를 가지고 운전 연습을 했기에 그 살벌하고 엄격하다는 수용소 경비부대에서 합격권의 운전 실력을 보여주었다는 말인가?

 

그는 운전병 주제에 정치범에게 은전을 베풀었는데 그것도 운동화를 구하고 고깃덩이를 구해 감히 반역범들에 시혜를 베풀다가 적발돼 처벌 위기에 처했지만 뇌물로 이를 모면했다는 무협지도 썼다. 북한에서 자살은 3대를 멸하는 범죄인데 그의 아버지가 양곡을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1994122일에 자살을 했는데도 어머니가 3월까지 무사한 상태로 자식에게 집에 오지말고 장기복무를 지원하라는 편지를 썼다고 한다. 그는 그의 어머니를 존경받는 당간부라고 했다. 그 어머니의 치맛바람 때문에 자기가 핵심계층만 갈 수 있는 경비대에 갈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런 그 어머니가 아버지의 죄가 무슨 죄인 줄 모르고 장기복무를 지원하라고 편지를 썼다는 말인가. 당장 수용소로 체포돼 가야 할 아들의 신세를 모르고 이런 어수룩한 편지를 썼다는 것인가.

 

회령에 사는 큰아버지가 제수씨를 고발하기 위해 평양까지 1주일 동안 걸어서 중앙검찰소에 신고를 했다고 한다. 범법자에 대한 처벌은 이미 중앙당에서 알아서 하는 것인데 회령에 사는 일개 개인이 항소문을 써가지고 중앙검찰소에 신고하러 갔다는 것도 북한 체제에 어울리지 않는 소설로 보인다. 안명철 본인도 그렇다. 자기 부친이 1994122일 자살한 범죄가 무슨 범죄인줄 뻔히 알면서 참모장에게 장기복무 희망을 조를 수 있는 것이며, 당시 나이 14세에 불과한 여동생이 세상물정을 어떻게 안다고 참모장에게 매달려 오빠의 장기복무를 애원했다는 말인가?

 

그는 부모의 신분에 대해서도 매체와 시기에 따라 횡설수설했다. 어머니가 뇌물을 써서 할아버지에 붙어있던 [자살자] 신분을 [사망자] 신분으로 바꿔놓았다 한다. 그 후 어머니는 열차 판매원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또 2020[eng sub] 방송에서 뻥을 쳤다. 부모가 다 당원이기 때문에 나와 내 동생은 국가안전보위부에 발탁됐다고 했다. 202012월 동아일보에서는 나의 아버지는 군의 식량을 총괄하는 양정사업소 당비서였고, 어머니는 상업관리소 지도원이었기에 나와 내 동생은 출신이 너무 좋아 예외적으로 국가안전보위부에 발탁됐다고 했다. 하지만 진보 블로그에서는 그의 아버지 안경식을 홍원군 읍단위 양정사업소 노동자로 양곡을 절도하다가 자살했다고 했고, 그의 어머니 김복실에 대해서는 갱목생산사업소 로동자라고 했고, 안명철에 대해서는 부대와 부대 주변에서 절도와 강도짓을 하다가 도주했다고 발표했다. 안명철은 아버지가 자살한 지 4개월 후, 대대장, 정치지도원, 후방부대장, 참모장 등을 찾아가 초기복무를 부탁했다고 썼다. 스스로가 죄인으로 낙인찍혀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 일반 병사 신분으로 대대장, 정치지도원, 후방부대장, 참모장 등을 마치 계급 장벽이 전혀 없는 세상인 것처럼 두루 찾아다니면서 초기복무(장기 직업근무)를 부탁했다고 한다. 이것이 가능한 일인가. 그는 또한 어머니, 남동생, 여동생 모두가 체포돼 끌려갔는데 자기만 무사했던 이유는 김일성이 사망한(: 1994.7.8.) 100일을 애도기간으로 정해놓았고, 그 기간에는 모든 행정이 중단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19945월에 그가 고향에 갔을 때 어머니와 남녀 동생은 왜 이미 끌려갔는가?

 

아버지의 자살동기에 대해서도 횡설수설이다. 아버지가 술김에 당정책을 비판했다가 조사를 받았다고도 했고, 절도범으로 몰려 자살을 했다고도 했다.

 

경비부대 탈출 과정을 보면 그야말로 무협지다. 초소장이 자기에게 쌀을 좀 구해달라 해서 9월에 구해줄 테니 그때 초소 근무병에게 내가 나가면 무조건 프리패스 시켜달라 했고, 초소장은 이를 수락했다고 했다. 일개 운전병 주제에 감히 초소장에게 이런 엄청난 부탁을 할 수 있는 것이며, 초소장 역시 자기의 목숨은 물론 3대에까지 연좌제가 걸리는 이 무시무시한 내용의 부탁을 그대로 들어주기로 약속을 했겠는가? 술을 사러 밖에 나간다는 것은 수용소라는 마을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일반사회 마을로 가서 구매해 온다는 뜻이다. 그런데 겨우 수송대 분대장의 생일에 쓰일 술을 사러 간다고 해서 초소를 통과시킬 초소장이 어디 있겠는가? 분대장 생일에 필요한 술을 가져올 테니 차단봉 패스를 시켜달라? 그런데 초소장이 한술 더 떠 자신에게도 술과 쌀 20키로를 더 갖다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초소문을 열어주기로 합의했다? 그가 저술한 책에서 그는 세천초소(차단초소)는 약속대로 차단봉을 올려두고 있었다고 썼고, 2020.12.월 동아일보에서는 초소가 그의 탈출을 눈치 채서 쇠로 된 차단봉을 트럭으로 밀고 나갔다고 말을 바꾸었다.

 

탈출시에 그는 AK소총과 권총을 챙겼다고 했는데 어떤 때는 권총이 5자루라고도 했고, 또 어떤 때는 6자루라고도 했다. 그가 탈출을 결심했을 때 권총이 왜 그토록 많이 필요했는지에 대해 설명이 없다. 탈출하는 사람이 무슨 전쟁이라도 하러 나가는 것인지 AK소총 말고도 1정 당 1kg 정도 하는 권총을 5~6개씩이나 챙긴다는 말인가. 그는 차량으로 탈출을 할 때 자기차량만 남기고 모든 차량의 휘발유 관을 절단했다고 했다. 최소한 수십 대에 해당할 그 많은 차량에 일일이 접근하여 휘발유 관을 자르는 동안 부대는 잠을 잤다는 말인가. 휘발유 관이 모두 잘렸는데 어떻게 그 부대는 불과 3시간 만에 휘발유 관을 교체하는 정비를 하고 40분이 걸린다는 두만강 강변, 그것도 정확하게 그가 버린 차량의 위치를 찾아 곧장 달려올 수 있다는 말인가.

 

그는 부당직(부직일관)인 부소대장에게 심부름을 시켜놓고 무기고를 열어 권총과 실탄을 탈취했다고 했다. 졸병 주제에 부소대장에게 심부름을 시켜놓았다는 것도 황당하고, 설사 부당직이 자리를 비웠다 해도 잠금장치가 돼 있는 무기고를 어떻게 부대 수송부 병사에 불과한 졸병이 열쇠 없이 연다는 말인가? 그는 물살이 거친 두만강을 건널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는 무게 4.3kg나가는 AK소총을 팔에 들고, 또 다른 수 kg에 달하는 탄창들을 몸에 지니고, 배낭에는 무게 5kg인 권총 5자루, 7kg, 송이버섯 등 최소한 15kg이나 되는 내용물을 넣었다 한다. 모두 20kg이 훨씬 넘을 짐을 가지고 물살이 고약하다는 두만강을 감히 건널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인가?

 

그는 두만강 변에 차를 세워놓고 시동을 껐다고 말한다. 그러면 차가 밤 2시경에 가장 예민한 국경연선지대에서 차량거리 40분이나 되는 도로를 질주하도록 아무런 검문검색 없이 통과되었다는 말인가. 소가 웃을 말이다. 그가 탈출한 사실을 즉시 인지한 경비부대에서 차량을 끌고 밤중에 안명철이 차량을 세워놓은 장소를 찾아오는 동안 국경을 지키는 별도의 경비부대에는 비상이 전혀 걸리지 않았다는 것인가. 22수용소 차량이 안명철이 차량을 정차해놓은 그 장소를 찾아낸다는 것은 잔디밭에서 바늘을 찾는 격이다. 그러는 동안 국경을 경비하는 부대는 무엇을 했다는 말인가.

 

두만강은 한 병사가 차를 타고 와서 강을 건널 때까지 철조망도 없고, 초소도 없고, 순찰도 없고, 흔적선(발자국을 탐지하기 위한 모래밭 선)도 없다는 것인가? 안명철의 이야기들은 실로 목가적인 무협지다. 처음 강을 건널 때에는 9월 장마가 갓 끝난 시점이라 물살이 세고 거기에 더해 소용들이까지 쳤다고 했다. 그런 강을 건너다 물살에 휩싸여 AK소총과 쌀과 권총들이 든 무거운 배낭을 벗어버리고 간신히 살아났는데 떠내려가다가 몸이 닿은 강가가 다시 북한 땅이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가 표류한 지점은 먼저 건넜던 지점보다 한참 하류(: 동해 쪽)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2번째 시도에서 군복도 벗고 신발도 벗고 팬티만 입은 상태에서 다시 물에 던져버렸던 권총이 든 배낭을 가지고 강을 건넜다고 했다. 급류의 깊은 물에 던져버렸다던 그 무거운 배낭이 어떻게 하류로 떠 내려와 그의 손에 다시 잡혔다는 말인가. 탈북하여 한국에 오겠다는 사람이 송이버섯은 무엇이고, 쌀은 무엇이고 AK소총과 5~6자루의 권총은 무엇이란 말인가. 전쟁하러 가는 것인가? 굶어죽는다는 수용소에서 운전병이 어디에서 무슨 수로 송이버섯을 구해 배낭에 넣었는가? 반역범인 정치범에게 감히 고깃덩이와 운동화는 어디에서 구해다 주었다는 말인가? 그것이 문제가 됐을 때 무마하려면 엄청난 뇌물을 바쳐야 했을 텐데 겨우 운전병 주제에 그 귀한 뇌물은 무엇들이며 어디에서 어떻게 구했다는 것인가?

 

중국에서의 이야기도 황당하다. 아침 시간 농가에서 밥도 먹고 옷도 얻어 입고 이야기도 나누고 협상도 하고 택시도 부르려면 상당한 시간이 지나 대낮이 됐을 텐데 농가 길에서 두만강 저쪽을 바라보니 차량들의 불빛이 보였다고 한다. 장마 뒤에 물이 불어나 건너는 데 혼이 났다면서 두만강 북한 쪽 둔치가 불과 50m 밖에 안 되어 22경비대에서 출동한 동료, 상관들의 얼굴이 다 보였고, 그들이 말하는 소리를 내용까지 다 들었다고 하니 뻥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깡촌에 사는 중국 농부가 권총을 4~5개씩이나 탐냈다는 것도 희극적이고, 열차에서 만난 노인에게 뺨을 때렸다는 것도 웃기고, 뺨을 맞은 노인이 자기 돈 써가면서 그리고 목숨을 거는 모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를 하얼빈에까지 데려갔다가 다시 3,000km 정도나 되는 북경에까지 데려다 주었다는 것도 몽상적이다. 중국 전역에 안명철의 얼굴 사진과 함께 그를 수배하는 전단이 벽들에 깔려 있는 상태에서 그 엄청난 거리를 가는 동안 중국 공안으로부터 수십 번 검문을 당했는데 그때마다 벙어리 흉내를 내서 무사통과했다는 말, 그리고 북경역에 도착해서는 그 노인이 그에게 담요를 씌워 중병에 걸린 사람이라며 통과시켜주었다는 말, 이 모두를 믿으라는 것은 차라리 해가 서쪽에서 뜬다는 말을 믿으라는 말과도 같을 것이다.

 

그의 탈북 스토리에서 엑스트라로 등장한 26세의 누나와 24세의 남동생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그는 혼자 탈북하기에도 낙타의 바늘구멍이라 생각할 때인 그 시기에 수용소 정치범 두 사람을 함께 남한에 데려오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그 동기도 횡설수설이다. 그들을 살려주고 싶어서였다고도 했다가 남한에 와서 자기 신분을 증명하기 위해 그들을 이용하려 했다고도 했다. 전자는 순수한 이타심이고, 후자는 자기 안전을 위한 도구로 쓰기 위한 이기심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안명철은 위장탈북자다. 그는 국민을 속이는 탈북스토리를 썼다. 그의 진정한 탈북스토리는 오로지 국정원만 알고 있을 것이다. 그의 정체성과 탈북스토리 중 사리에 맞는 것은 단 한 개도 없다. 국정원이 그를 포함해 소송을 제기한 12명의 탈북자와 장진성을 공작 차원에서 보호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2021.8.3.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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