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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선에 대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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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1-11-06 11:48 조회1,44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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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남선

 

141에 의하면 박남선은 1954년생, 중학교 2년 중퇴, 19세 되던 해에는 잘도죄, 5.18직전인 1979년에는 협박죄로 각 징역형과 벌금형을 선고받았고, 5.18당시에는 골재를 채취하는 화물차 운전수였다. 2차례에 걸친 계엄검찰부 피의자신문조서에 의하면 그는 1980.5.20. 계림동, 산수동, 풍향동 등 외곽지역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가두시위를 했고, 5.23. 적십자병원에 있던 19구의 시체를 도청으로 운반하고, 그후로는 도청 시체를 상무관으로 운반하는 부역자가 됐다. 5.25. 05, 시민학생수습위원회 부위원장이었던 김종배의 제의로 상황실장을 맡은 후 별 하는 일 없이 권총을 어깨에 메고 다니다가 5.26.18:00, 위원장인 김찰길을 권총으로 위협해 퇴출시키고 김종배가 위원장이 되게 했다.

 

그는 황장엽으로 감정된 제71광수가 자기인데 피고인이 얼굴 부분을 황장엽 얼굴과 비슷하게 창작하여 합성시켜 놓았다고 주장했다. 71광수의 얼굴이 황장엽 얼굴과 비슷하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피고인이 조작하기 이전의 오리지널 사진을 제출할 수 있느냐는 변호인 질문에 그는 이미 다 제출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오리지널 사진을 제출하지 않았다. 반면 피고인은 그 사진이 조선일보 사진DB’의 몇 페이지 몇 행에 있다는 것을 제출했고, 또 그 사진과 관련기록을 캡처해 제출했다. 이로써 박남선의 고소는 위계 또는 사기성 고소로 판명됐다고 생각한다. 이른바 게임 끝인 것이다

 

 

덤으로 원심 판결 중 피해자들의 주장에는 모순이 없다는 점에 대해 간단히 부연하고 싶다. 2018.6.21.일자 박남선 녹취서에는 모순이 매우 많다. 이 모순들은 2018.12.17. 자 제출된 종합답변서 34~52쪽에 정리돼 있다. 그는 광주시위 첫날부터 시위대 총사령관이 되어 시위를 지휘했고 계엄군도 자기의 지휘로 광수시로부터 몰아냈다고 주장했다. 자기는 총사령관이고, 김종배는 장례위원이라고도 증언했다. 하면서도 유공자 등급 14개 등급 중에서 하위 등급인 10등급밖에 받지 못했다고 법정에서 푸념했다. 그는 자기가 소지했던 M16 유탄발사기를 공수부대와 결투를 벌여 노획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당시 계엄군은 유탄발사기를 소지하지 않았다.

 

M16유탄발사기는 M16소총과 M203 유탄발사기를 결합한 총이기에, 방아쇠도 2, 조준장치도 2개다. 소총 실탄의 직경은 5.56mm, 유탄은 40X46mm의 유탄을 400m까지 날아갈 수 있다. 이 사진을 보여주며 M16유탄발사기에 대한 상식을 물었는데 그는 아무 것도 모른다. 그냥 가지고만 다녔다고 답했다. 잠을 잘 때에도 군화를 신었다고 주장했는데 제71광수는 검정색 사제단화를 신고 있었다. 이처럼 실소를 유발하는 수많은 모순들이 2018.12.17. 답변서 20개 쪽에 걸쳐 정리돼 있다. 하지만 원심은 이 답변서 내용을 모두 무시했다.

 

댑변서책 제240~252, 13개쪽에는 71광수, 황장엽, 박남선의 얼굴사진들이 분석돼 있다. 황장엽은 1923년생, 박남선은 1954년생이다. 5.18당시 황장엽은 57, 박남선은 26, 31년의 연령차가 존재했다. 박남선의 사진은 1983년 것이라고 한다. 29세의 사진이다. 사진들에 나타나 있는 30세의 박남선 얼굴이 제71광수의 얼굴이라고 인식하기에는 많은 무리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