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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전후의 북한 동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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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1-12-13 15:43 조회1,09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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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전후의 북한 동향  

 

                           10.26 직후의 북한 동향

 

19791026, 박정희 대통령이 측근인 김재규에 의해 갑자기 시해되자, 당시 국무총리였던 최규하가 대통령 대행자가 되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이끌던 내각은 19791027일 새벽 4시를 기해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했고, 같은 날 아침 9시에는 최규하 대통령 대행이 직접 나서서 국가비상시국에 관한 특별담화를 통해 국민의 단결을 호소했다. 참고로 계엄 시스템을 소개한다. 제주도를 포함한 계엄은 전국계엄이고, 제주도를 제외한 계엄은 지역계엄이다. 지역계엄과 전국계엄의 차이는 계엄관리의 절차와 속도에 있다. 지역계엄은 계엄사령관이 비상 상황을 관리하는 데 있어 국방장관과 국무총리를 거쳐 대통령을 상대해야 하는 것이고, 전국계엄은 계엄사령관이 중간 절차를 생략한 채 곧바로 대통령을 상대하는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한 그 시점에서 국민들이 가장 염려했던 것은 북한의 남침이었고, 간첩들의 준동이었다. 197912, “1980년 초에 남침을 감행할 것이라는 첩보가 미국으로부터 입수됐고, 같은 시기에 일본 외무성으로부터도 “19801월에 남침할 가능성이 높다는 첩보가 입수됐다(1979.12.25. 육군본부 정보참모부가 작성한 북괴 대남 도발 위협 판단’). 광주사태'가 발생하기 2개월 전인 1980328일에는 일본 신문사 '통일일보'1면 톱기사로 대남 특수군사 작전의 일환 / 북의 계속되는 무장게릴라 남파 / 작년 가을부터 계획 /김철만 상장 책임자로라는 큰 제목으로 북한의 특수부대에 의한 한국 침공 작전을 보도했다. 통일일보는 당초의 계획은 80년 봄을 목표로 대량의 무장게릴라를 남파하여 자발적인 의용대를 가장하여 한국 지방도시의 방송국을 점거하는 등 본격적인 한국 소요를 기도하는 목적이라는 내용을 보도했다. 이 보도는 광주사태의 폭동 상황과 아귀가 딱 맞아떨어지는 보도였다. 산케이신문 정치부 편집위원 출신인 사에키 히로아키(佐伯浩明)씨는 최근 저자가 쓴 책 [조선과 일본](일어판 '反日에의 最後通告')에 대한 서평을 냈다. 북한의 공작이 없었다면 너무나도 이해 불가능한 것이 많은 것이 5.18 광주사태다. '5.18광주사태'의 진상은 아직도 미해명의 상태로 남아있다.”

 

 

위 보도에 당황한 최규하 대통령은 1225일 크리스마스 날,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열었고, 여기에서 두 가지 결론을 도출했다. 하나는 대규모 육군 기동 훈련을 벌여 북한에 무력을 과시하기로 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 지도층에게 북한의 남침 위협을 알려 사회 안정을 위한 협조를 당부하기로 한 것이었다(G-3, ‘육군위기관리대책’). 1980121, 최규하 대행 주재로 대간첩 대책 중앙회의가 열렸다. 최규하 대행은 이 자리에서 북한은 공작간첩을 통한 정치 선동과 무장간첩 남파에 의한 사회불안을 획책할 가능성이 있으니 특히 대공 관계자는 불순분자 개입을 사전 방지해 달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어서 그해 126일부터 31일까지 경기도 파주에서 보병 2개 사단과 공군을 동원한 대규모 기동훈련을 실시했고, 130일에는 김종필, 김영삼 등의 정계 인사들과 언론계 및 대학생 간부 등 798명에게 기동훈련을 참관케 하여 훈련의 목적을 설명해주었다(G-3, 육군기동훈련).

 

정부는 517일에 전 공무원을 대상으로 비상근무령을 내렸으며, 전두환 중앙정보부장 서리는 위컴 한미연합사령관을 방문하여 일본 내각으로부터 접수한 남침 첩보 및 우려 사항을 전달했다. 그런데도 어수룩한 미국 정부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북한을 세밀하게 의심하지 않았다. 한국의 많은 지식인들은 미국이 세계정세를 손바닥 보듯이 한 눈에 보고 있으며 매 사안마다 현미경적 시각으로 자세하게 들여다보고 있다고 맹신한다. 하지만 이는 엄청난 착각이다. 미국은 한국의 사정을 한국인들을 통해 파악한다. 한국인들 중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정세 판단이 달라지는 것이다. 한국이 가지고 있는 정보는 1차정보(First Hand Information)이고, 한국인들을 통해 얻는 정보는 2차정보(Second Hand Information). 더구나 미국은 전시작전권을 갖기 때문에 북한의 대규모 군사 움직임과 전략시설 변화 등에 대한 전략적 정보만 채취한다. 반면 한국은 평시작전권을 갖기 때문에 소규모 군사 침투와 간첩 침투에 대한 정보를 주로 채취한다. 소규모 군사 침투와 간첩 침투에 대한 정보에 대해서는 미국의 주 관심사가 아니다. 그런데 한국도 모르는 침투 정보를 미국이 어찌 알 수 있겠는가? 2003년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가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정보판단 하에 이라크를 공격했다. 정보의 오판이었다. 침투라는 정보 카테고리와 핵보유라는 정보 카테고리는 그 성격과 의미가 천지차이다. 패러다임상의 이런 학술적 원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소규모 침투 분야에 대해서까지 미국 정보기관을 맹신하는 것이다. 무식한 사대주의인 것이다.

 

저자는 1981년 초 중앙정보부에 근무할 때 미국 CIA 파견 간부와 나의 상관인 제2차장과 대화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미국이 매우 어수룩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1999년 코리아나 호텔에서 만났던 CIA간부는 저자가 김대중에 대해 경계를 해야 하는 이유들을 신문 기사들을 보여주면서 설명해주었지만 정세 판단이 매우 순진하고 어두워 있었다. CIA 간부가 하는 이야기로는 자기가 국내의 내로라하는 정치학자들을 많이 만나 보았고, 장군들도 많이 만나 보았는데 저자와 같이 우려를 표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이다. 계급이 있고, 지식이 있는 유명인들이 하지 않는 이야기를 하는 저자를 오히려 이상한 사람으로 여기는 듯 했다. 이는 무슨 뜻인가? 미국 관리들이 스스로 창의적인 방법으로 첩보를 추적하고 독자적으로 정보를 생산해 내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들을 종합하여 카더라 정보를 취합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시 한국국민들이 느끼는 위기감과 미국이 느끼는 위기감 사이에는 이처럼 많은 간극이 있었다.

 

결론적으로 1980년의 봄은 남침 위기로 대표되는 매우 불안한 계절이었다. 하지만 재야세력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 권력의 공백기를 국가 전복의 기회라고 생각하여 국민과 대학생들을 선동하여 폭력시위를 주도함으로써 사회에는 그야말로 무질서한 리더십 진공상태가 형성됐다. 3김을 포함하는 정치꾼들 그리고 박정희 정권을 전복하고 싶어 했던 이른바 재야세력들이 저마다 일어나 선명성 경쟁을 벌이고 사회혼란을 획책함으로써 정치적 주도권을 장악하려 했다. 이 중에서도 특히 김대중이 이끄는 재야세력은 과도정부를 해체시켜 김대중을 중심으로 하는 사실상의 혁명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대중선동과 학생폭력을 주도했다.

 

이 권력의 공백기를 북한이 그냥 놔둘 리 없었다. 대남 사업부를 중심으로 남한에서 일고 있는 사회 혼란을 폭동으로 증폭시켜 남침 조건의 결정적 전기를 마련하려고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19791027, 전군에 전투태세 강화“(폭풍5)를 지시했고, 1029일에는 동구를 방문 중인 오극렬 총참모장 일행이 급거 귀환하여 군사 회의를 소집했고, 1218일에는 군-당 전원확대 회의를 개최하면서 전군에 통일에 대비한 무장을 강화하라고 지시했다. 19802월에는 해주, 세포, 곡산, 양덕 등에서 전쟁물자동원훈련을 실시했고, 철도역에 비상열차를 24시간 대기시켰다. 19803월에는 남파돼 있는 간첩들에게 남한의 시위 조직을 확대하여 반정부 투쟁을 강화하고, 시위 군중이 폭도로 변질되도록 점화 기폭조를 시위 군중에 잠입시키라는 지령을 내렸다. 조총련에는 공작원을 침투시켜 시위대를 거리로 유도하고, 민중 봉기의 계기를 조성하라고 지시했다(계엄사 114p). 

 

198058, 김일성은 극비리에 소련을 방문, 브레즈네프 소련공산당 서기장과 회동했고, 518일에는 루마니아 방문을 통해 통일에 대한 기대감을 잔뜩 표현했다. 나는 두 개의 조선을 반대한다. 남반부 인민의 영웅적 투쟁에 의해 금년 내에는 반드시 통일이 이루어질 것이다.”5.18이 예정돼 있었던 것이다. 이어서 519일에는 북한 인민군 고위 사절단이 중국을 방문하여 모종의 비밀 회동까지 했다. 남침 징후에 대한 첩보가 5건이 잇따르면서 드디어 1980510일에는 일본 내각조사실로부터 북한이 남침을 결정하였다는 긴급 첩보가 입수됐다. 남침 시기는 4월 중순, 김재규 처형 시기와 맞물려 있다. 김재규 처형에 따른 항의데모가 절정에 이를 때를 결정적인 시기로 정하였다. 그러나 처형이 지연되자 소요사태가 최고조에 이를 515~20일 사이에 남침을 하기로 재결정하였다. 이 첩보는 중국 당국이 일본 방위청에 제보한 것이었다.(1980.5.10. 육군본부 작성 북괴 남침설 분석”)

 

집요한 재야세력의 공격에 직면한 최규하 정부는 법과 원칙에 따라 차기 정권을 배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러나 재야세력은 막무가내로 최규하 정부를 유신 잔재 세력으로 규정하고, 최규하 정부는 북으로부터 아무런 위협이 없는데도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고 독재를 연장하기 위해 북한의 위협을 과장하고 있다며 대학생들을 선동해 최규하 정부를 전복하려 했다. 과도정부를 즉각 해체하고 전국 내각을 구성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과연 당시 최규하 정부는 유신체제를 계승할 자세를 보였는가? 아니었다. 최규하 정부는 박정희 시대에 발생했던 시국사범들에 대해 일제히 사면 복권을 단행했다. 재야 세계에서는 이를 서울의 봄이요 민주화의 봄이라며 매우 기뻐했고 승리감에 도취했다. 상대가 유약한 모습을 보일수록 더 밀어붙이는 것이 공산주의자들의 생리다. 재야세력은 최규하를 압박하고 모함하는 무수한 유언비어를 유포시켰다. 그때마다 최규하 정부는 헌법을 빨리 고치고 새 헌법에 의해 대통령 선거가 최단 시간 내에 이루어지도록 하겠다고 다짐해 주었다

 

이렇듯 민주화 요구에 적극 호응하던 최규하 정부를 놓고 유신체제의 후신이기 때문에 즉각 해체하고 거국 내각을 구성하자는 재야세력의 주장이 과연 타당한 주장이었는가? 당시 물렁하기로 이름나 있던 최규하 정부가 독재정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국민은 거의 없었다. 1996~7년의 역사 바로 세우기 재판에서도 최규하 대통령을 바지대통령이라고 판시했다. 최규하 정부가 유신을 이어받아 독재를 할 것이라고 주장한 사람들은 오직 김대중을 중심으로 한 재야세력뿐이었다. 최규하 정부를 전복시키기 위해서는 최규하 정부를 유신을 이어갈 독재 정부라고 주장했고, 전두환을 매장시키기 위해서는 최규하를 껍데기대통령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용도에 따라 최규하를 고무줄로 사용한 것이다.

 

                           광주사태 기간 중의 북한동향

 

518일에 일어난 광주시위사태는 주변지역으로 확대되었다. 전라남도 17개 시()와 군()이 치안 부재의 무정부상태가 되었다. 바로 이때 북한은 심상치 않은 군사적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김일성은517심야부터 518에 걸쳐, [기관 고위 간부회의]를 개최하여 한국 정세를 예의 검토하면서 통일에 대비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북한 인민군은 518에 전군 연대장급 이상 전원 간부회의를 소집하고 한국의 정세를 평가한 후에 유사시 군사행동을 감행하기로 결의했다. 519에는 북한 전역에 걸쳐 군수물자 동원 검열을 실시하는 등 전쟁준비 계획을 총 점검했다. 520일에는 중국을 방문 중이던 군사 대표단장 백학림 중장이 북한은 통일을 위하여 전쟁 준비를 강화하고 있다고 공언했고, 521에는 긴장된 국내외 정세를 이유로 군인의 외출과 출장을 일체 금지시키는 한편 출장 중인 군인과 당원을 527까지 귀대하도록 지시했다.

 

북한은 또한 520에 통혁당과 19개 사회단체 연합 성명을, 그리고 521에는 통혁당 전라남도 위원장 명의의 담화문을 통하여 광주사태를 민주화를 위한 성전” “평화적 통일을 위한 애국 투쟁이라고 고무하면서 노동자, 청년학생, 지성인, 계엄군 장병은 영웅적 투쟁에 합류하라고 선동했다. 521에 평양에서 대규모 군중대회를 연 것을 기점으로 광주 반정부 투쟁을 지지 성원하는 군중대회가 북한 전역으로 확대됐다. 광주 사태 당시 우리나라와 미국 정보기관이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북한은 9개조의 비정규전 부대를 후방에 투입함과 동시에 남침을 감행하기로 결정하고 광주사태가 전국적 규모로 확대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1988.6 안전기획부 작성 광주사태 관련 기본 자료”).

 

19822월에 육군본부가 펴낸 [계엄사] 114p에는 아래 내용이 있다. “19791027, 전군에 전투태세강화’(폭풍5)를 지시했고, 1029일에는 동구를 방문 중인 오극렬 총참모장 일행이 급거 귀환하여 군사 회의를 소집했고, 1218일에는 군-당 전원 확대회의를 개최하면서 전군에 통일에 대비한 무장을 강화하라고 지시했다. 19802월에는 해주, 세포, 곡산, 양덕 등에서 전쟁물자 동원훈련을 실시했고, 철도역에 비상열차를 24시간 대기시켰다. 19803월에는 남파돼 있는 간첩들에게 남한의 시위 조직을 확대하여 반정부 투쟁을 강화하고, 시위 군중이 폭도로 변질되도록 점화 기폭조를 시위 군중에 잠입시키라는 지령을 내렸다. 조총련에는 공작원을 침투시켜 시위대를 거리로 유도하고, 민중 봉기의 계기를 조성하라고 지시했다.”

 

1979113호청사 부장회의에서 김일성은 다음과 같은 비밀 교시를 내렸다. “10·26 사태는 결정적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징조입니다. 박정희가 정보부장의 총에 맞아 죽었다는 사실은 권력층 내부의 모순과 갈등이 더 이상 지탱할 수 없을 정도로 첨예한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적들은 지금 계엄 상태를 선포해 놓고 서로 물고 뜯고 하고 있는데 이것이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 연락부에서는 이 사태가 수습되기 전에 손을 써야 합니다. 남조선의 모든 혁명 역량을 총동원하여 전민 봉기를 일으킬 수 있도록 적극 유도해야 합니다.”

 

김일성은 또 19791220일 중앙당 확대간부회의에서 다음과 같은 비밀교시를 내렸다. “12·12사태는 미제의 조종 하에 신군부가 일으킨 군사 쿠데타입니다. 계엄사령관 관저에서 총격전이 벌어졌다는 사실은 남조선 정세가 그만큼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져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지금 남조선에서는 군 수뇌부가 갈팡질팡하고 있습니다. 연락부와 인민무력부에서는 언제든지 신호만 떨어지면 즉각 행동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24시간 무휴 상태로 들어가야 합니다.”

 

198053호청사 부장회의에서는 다음과 같은 비밀교시를 내렸다. 남조선에서 노동자들이 드디어 들고일어났습니다. 사북 탄광의 유혈사태는 반세기에 걸친 식민지 통치의 필연적 산물이며 인간 이하의 천대와 멸시 속에서 신음하던 노동자들의 쌓이고 쌓인 울분의 폭발입니다. 지금 남조선에서는 노동자뿐만 아니라 청년 학생, 도시 빈민 할 것 없이 전 민중들이 이글거리고 있습니다. 남조선 혁명가들과 지하 혁명 조직들은 이번 사북 사태가 전국으로 확산되도록 적극 불을 붙이고 청년 학생들과 도시 빈민 등 각계각층에 광범한 민중들의 연대 투쟁을 조직 전개하여 더 격렬한 전민 항쟁으로 끌어올려야 합니다.”

  

이러한 북한의 움직임에 김대중도 호응했다. 515일 서울역 앞 시위대 규모가 10만을 넘자 김대중은 잔뜩 상기되어 최규하 정부를 전복하겠다는 최후통첩을 발표했다. “57일자 제1차 민주화촉진국민선언문에서 요구한 비상계엄의 즉각 해제, 신현확 내각의 즉각 퇴진, 정치범의 전원 석방 및 복권, 언론의 자유 보장, 유정회, 통일주체국민회의와 정부개헌심의위원회의 즉각 해체 등에 대하여 51910시까지 정부가 명확한 답변을 할 것을 요구한다. 이 요구가 관철되지 아니하면 522일 정오를 기해 대정부 투쟁에 돌입할 것이다.”이어서 김대중은 전 국민을 상대로 반정부 투쟁 방침을 명확하게 선언했다. 민주 애국 시민은 유신체제를 종결짓는 민주 투쟁에 동참하는 의사 표시로 검은 리본을 가슴에 단다. 비상계엄은 무효이므로 국군은 비상계엄령에 의거한 일체의 지시에 복종하지 말 것이며, 언론은 검열과 통제를 거부하고, 전 국민은 민주화 투쟁을 용감히 전개한다. 정당, 사회단체, 종교단체, 노동자, 농민, 학생, 공무원, 중소 상인, 민주 애국시민은 522일 정오에, 서울은 장충단 공원, 지방은 시청 앞 광장에서 민주화촉진국민대회를 개최한다.” 522일을 기해 국가를 전복시키겠다는 선전포고였다. 이는 대규모 폭력시위의 기세를 믿고, 과도정부를 얕잡아 보면서 협박성 선전포고를 한 것이다. 당시 수세에 몰렸던 과도정부로서는 그야말로 일대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정국은 정부가 붕괴하느냐, 김대중이 붕괴하느냐에 대한 최후의 결전장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그 결과가 5.17사건이었다. 비상계엄을 확대하고 김대중 내란 모의자들을 전격 체포한 사건인 것이다.

 

2021.12.13.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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