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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강화와 거물간첩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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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1-12-26 16:52 조회1,68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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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강화와 거물간첩 김용규

 

해방이후의 남한역사는 소련과 북한이 주도하는 끝없는 폭동의 역사였다. 이를 가장 실감나게 증언한 사람은 북조선 대좌계급을 달았던  최고위급 간첩 김용규(1936)였다. 그의 저서 [소리 없는 전쟁]에는 간첩이 없으면 단 한건의 학생 시위도 발생할 수 없고, 단 한건의 노동자 시위도 있을 수 없는 사회구조가 실감나게 묘사돼 있다.

 

웬 일인지는 몰라도 JTBC[설강화]라는 픽션 연속극을 방영하고 있다. 참고로 설강화는 우리말 사전에는 없다. 우리말 사전에는 눈꽃풀이라고 기재돼 있다. 눈 속에서 피는 꽃이라는 뜻인 모양이다. 토요일과 일요일 밤 10시경에 한다기에 나도 토요일 보았다. 오늘도 볼 예정이다.

 

이 연속극에 대해 좌익들이 마치 왕소금 세례를 받은 미꾸라지들처럼 요란을 떤다. 1987년의 시대 상황을 배경으로 한 것인데, 민주화에 간첩이 주연 남자로 등장한다. 국정원 수사팀장도 명배우인 모양이다. 이를 놓고 빨갱이들은 민주화 운동 시대에 간첩이 주연이 되고, 국정원 팀장이 인기를 얻고 있다고 언성을 높인다. 민주화 시대에 간첩과 국정원이 멋있게 부각되면 민주화운동이 퇴색한다는 주장인 모양이다.

 

한마디로 민주화 운동에는 간첩이 절대로 끼어들지 않았고, 끼어들 수도 없다는 주장인 것이다. 국정원은 성스러운 민주화운동을 탄압한 악인데 왜 연속극에서는 멋있게 묘사하고 있는 것이냐고 불평한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5.18에 대한 광주의 황당한 주장과 정확히 일치한다.

 

필자는 1980년 국정원에서 4개월 동안 교육을 받았다. 간첩사를 배울 때에는 그야말로 숨도 크게 쉬지 못할 정도로 소름이 돋는다. 내가 중정시절에 받았던 간첩사례에 대한 교육은 거물간첩 김용규의 증언록에 의해 더욱 실감 있게 보강되었다. 5.18에 대해 광주 빨갱이들이 피우는 소란이나 지금 설강화를 반대하는 빨갱이들이 피우는 소란이나 정확히 일치한다. 일란성 쌍둥이 현상인 것이다.

 

                   거물 간첩 김용규의 자수 사건

 

1976.10.30. 중앙일보는 이런 기사를 냈다. 북괴노동당 중앙당 연락부 정치공작원 김용규씨(40)가 지난 919일 전남 여천군 삼산면 서도리 거문도에 침투했다가 동료 간첩 김창호(40) 김영철(43)2명을 사살한 뒤 여수경찰서 삼산지서에 자수해 왔다고 중앙정보부가 30일 발표했다. 김씨는 자수하기까지 만9년 동안 북괴노동당 중앙당연락부 대남공작 조장으로 연락부 부부장급 대우를 받으며 활동해 온 거물급 간첩으로 이번 김씨의 자수로 이미 북괴공작원에 포섭되어 오랫동안 거문도 지역 일대의 군··예비군의 경계태세를 제보하고 신규 주민등록증을 간첩에게 제공하는 등 고정간첩활동을 해 온 김재민(62·농업) 김영희(20·무직) 김웅호(3l·선원) 이포례(63·농업) 등 간첩망이 검거됐으며 서울 및 포항 등지에 잠복하고 있던 고정간첩 용의 망을 포함, 12명이 일망타진했다고 밝혔다.

 

                          김용규는 누구인가?

 

 19513, 서울중학교 2학년이었던 김용규는 패주하는 북한군에 잡혀갔다. 대남 공작부 부부장(세컨드 맨)을 지내면서 김일성으로부터 영웅칭호와 1급 금별메달

그리고 3차례 국기훈장을 받았다. 일본 산케이 신문에 연재된 이래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김일성 비밀교시'는 그가 제보해준 내용들이고 이 교시는 예언서처럼 지금 현재 사실로 속속 나타나고 있다.

 

그는 1999도서출판 원민을 통해 [소리 없는 전쟁]을 출판했지만 예상과는 달리 초판 5천부가 다 팔리지 않을 정도로 도외시됐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 남파 간첩이 어느 정도로 남한의 시위와 폭동을 배후 조종하고 있는지 그 실체가 눈에 보인다간첩이 없으면 단 한건의 학생시위도 발생할 수 없고, 단 한건의 노동자 시위도 있을 수 없는 사회구조를 실감하게 된다.

 

                       대남공작의 핵심

               불만을 부추겨 민란으로 확대하라!

 

돌이켜 볼 때, 1970 1980년대 전 기간에 걸쳐 나라의 안보를 위태롭게 했던 갖가지 극렬사태가 바로 북쪽의 공작에 의해 야기된 필연적 결과라는 것은 의문의 여지도, 재론의 여지도 없다(대남공작 비화 [소리 없는 전쟁]413

 

* [민주화]1960년대부터 북이 남한의 불만세력을 선동하기 위해 사용한 위장용어였다.

* 남한의 민주화운동은 북의 지령이었다

* 남한에의 민주정부 수립은 김일성의 목표였다

*4.19를 북한에서는 [4.19민중항쟁]으로 부르고 실패한 통일 기회로 기억한다

* 5.18을 호남에서는 [5.18민중항쟁]으로 부른다

* 4.19도, 5.18도 북의 공작에 의해 야기된 필연적 결과였다

* 김대중은 북이 키웠다

* 호남은 적화통일의 전략적 거점이다

 

                    '주사파가 싫어하는 말들'

 

인간은 자주성을 생명으로 하는 존재라고 하면서 왜 유일사상, 주체사상을 강요하는가’,

 

주체사상을 강요하는 그 자체가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작태가 아닌가’,

 

우리나라가 연합군에 의해 해방되었다는 건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인데 어째서 김일성의 항일 무장 투쟁이 조국광복을 이룩한 결정적 요인이라고 하는가’,

 

청춘도 가정도 다 버리고 오직 혁명을 위해 평생을 바쳤던 남로당원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한 김일성을 어떻게 민족의 태양이라고 할 수 있는가’,

 

절대성, 무조건성을 강요하면서 어떻게 당내 민주주의를 말할 수 있는가

 

                          간첩 사례에 대한 기본 상식

 

어느 사회에서든 불만세력은 있게 마련이다. 대남공작의 핵심은 기존의 불만을 부추기고, 불만의 표출 방법을 조직적으로 지도하고, 민란으로 확대시킴으로써 북한의 군사적 개입을 정당화시키려는 것이다. 북한을 연구하는 사람 치고 이를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북한의 대남 사업소들은 수십 개에 이른다. 각 사업부는 입신출세, 생존경쟁, 충성도 경쟁 등의 다양한 동기를 가지고 경쟁적으로 대남사업을 벌이기 때문에 한국사회에 남파된  거물간첩들은 호시탐탐 기회를 살피고, 기회를 만들어 사회소요를 획책해 왔다.

 

대한민국 역사는 대남공작 부서, 지하당 조직이 부추겨 일으킨 소요 사태들의 연속이었다. 따라서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모든 소요 사태 치고, 지하당 조직의 개입 없는 사태는 단 하나도 없다. 심지어는 4.19에서도 지하당이 깊숙이 개입하여 투쟁을 부추겼고 뒤에서 전문적으로 지휘했다. 1964년의 6.3한일회담반대 투쟁, 19658월의 한.일협정 비준반대-투쟁, 1969년의 험프리 미부통령 및 일본의 佐藤 수상 내한반대-투쟁, 19697월의 3선개헌반대-투쟁 모두에 북이 관련돼 있었다.

 

4.19 학생 시위를 직접 지도했다고 증언한 사람이 두 사람이나 된다. 한 사람은 1946대구폭동을 주도했던 간첩 [이석]이고 다른 사람은 1960년대에 남파하여 15년간 거물간첩으로 활약해온 김용규씨다. 김용규씨는 그의 대남공작 비화 [소리없는 전쟁](1999. 원민) 81쪽에서 4.19를 이렇게 회상했다. “4.19 때에도 시위학생들이 '가자 북으로! 만나자 판문점에서!' 이런 구호를 외치며 왁시글거리지 않았습니까? 그 때도 제가 서울에 있으면서 학생시위를 지도했습니다.”

 

이명영 교수(서울대 졸업, 정치학 박사, 중앙일보 본설위원)는 그의 저서 [통일의 조건-발상의 전환을 위하여]에서 이렇게 기재했다. “19721, 간첩 이석과 그의 공작망이 국군보안사령부에 의해 검거되자 그는 수사관 앞에서 담담하게 말했다. "4.19 혁명의 도화선에 불을 지른 사람이 바로 나입니다."

 

이명영 교수는 지하당 조직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1959년 당시 북한이 남한에 배치한 간첩은 1,000명 정도였다 .500명은 서울에, 또 다른 500명은 지방에 배치했다. 각 도에 50명씩 배치했고, 이 중 25명은 도청 소재지에, 25명은 에 배치했다.

 

간첩 이석(李錫)의 활동은 북한 지하조직의 활동을 대변할 만하다. 그는 남로당 경북도당 간부로 194610, 대구 폭동사건에 간여했고, 중앙당 간부로 자리를 옮긴 후 체포, 투옥됐다가 6.25 전쟁 때 구출되어 인민군을 따라 평양으로 월북했다. 19554, 다시 경기도 화성군 남양만 쪽으로 상륙, 경남 마산에 아지트를 구축하여 2개의 친목계 모임을 통해 40명을 조직, 의식화 작업을 했다.  3.15부정선거에 규탄하는 움직임이 일자 그는 이 40명으로 하여금 마산사태에 적극 개입하여 사태를 격화시키는 데 앞장서게 했다.

 

통일혁명당(통혁당) 사건은 이에 대한 확대판이었다. 북한은 4.19 혁명이 실패한 것에 대해 몹시 후회했다. 그리고 그 원인을 진단했다. (1) 남한에 혁명을 수행할 수 있는 정당이 없었고, (2) 명확한 투쟁 강령이 없었고, (3) 노동자-농민의 참가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1964315, 서울에서 발족된 것이 [통일혁명당창건준비위원회]였다.

 

이 준비위원회는 비밀조직으로는 [민족해방전선]을 두고, 합법적 조직으로는 [학사주점], [새문화연구회], [청맥회], [동학회], [민족주의연구회] 등의 써클을 두었고, 당기관지로는 [혁명전선]이라는 지하신문을, 합법적 잡지로는 [청맥]을 발간하여 반미 사상, 반정부 사상을 고취하고, 민족 및 노동자-농민에 대한 계급의식을 확산시켰다.

 

1964년의 6.3한일회담반대 투쟁, 19658월의 한.일협정 비준반대-투쟁, 1969년의 험프리 미부통령 및 일본의 佐藤 수상 내한반대-투쟁, 19697월의 3선개헌반대-투쟁을 선동했다. 그러나 이들은 1968824일 한국정부에 의해 발각되었다(73명을 구속, 85명을 조사중이라고 발표). 모든 반정부 불만을 소요와 폭동으로 교묘하게 연결시킨 배후에는 반드시 지하당의 선전-선동과 전문적인 연출세력이 개입돼 있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근거들이다.

 

이로써 한국정부는 통혁당이 완전 붕괴된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통혁당은 이들 투쟁들을 통해 조성되고 단련된 조직으로 19698월에 주체사상을 이념으로 하는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혁명]을 과업으로 하는 투쟁에 적극 나섰다. 197011월의 [조선노동당] 5차 당대회에서 통혁당 대표들도 참석했다는 북한의 발표도 있었다.

 

이 통혁단은 1985년부터 [구국의 소리]방송을 통해 [한국민족민주전선]이라는 이름으로 반미-자주화와 반파쇼-민주화를 고취하고 있다. 이들은 남한에서 정정당당하게 계급혁명(민중혁명:노동자-농민 즉 냉대 받는 기층세력 즉 양아치, 노동자, 구두닦이 등에 의한 혁명)을 주도하고 있다. 바로 이 간첩정책이 5.18에 그대로 투영된 것이다.

 

이런 지하당의 소행으로 봐야 할 사건이 바로 19805월의 광주사태다(163쪽 중간). 광주사태 직후에 일본의 언론 및 교회 계통에 [찢어진 깃폭]이라는 팜프렛이 널리 살포됐다. 이 팜프렛은 [목격자의 증언]이라고만 되어 있을 뿐, 필자도 발행처도 없었다.

 

그 내용은 실로 험악했다. 특전대 대원이 총검으로 임신부의 배를 째서 태아를 꺼나 그 어미에게 던졌다, 특전대원들이 여대생 셋을 발가벗겨 놓고 뛰어가라 했는데 앉아버리니까, 총검으로 등을 찌르고 가슴을 열십자로 째서 청소차에 집어던져 버렸다, 도청 앞 광장에 475구의 시체가 전시돼 있었다는 등이 [증언]들이 실려 있었지만 이들은 모두 거짓이었다.

 

외국 특파원들이 5.19일부터 취재를 했지만 이런 내용들은 없었다. 그 후 광주 시민의 그 누구도 이런 증언을 한 사람은 없었다. 단지 도청 앞에 50여 구의 시체가 전시됐던 것은 사실이었다. 당시 임산부와 세 여대생에 대해 군이 잔학한 행위를 저질렀다는 소문이 있었고, 이로 인해 시민들이 흥분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유언비어였으며, 외신이 전하는 바와 같이 [계획적인 선동]이었다(일본 조일신문, 1980.5.18).

 

누군가가 사태의 악화를 노려 유언비어를 퍼트려 놓고, 이를 다시 [찢어진 깃폭]으로 확대하여 해외에 유포시킴으로써 세계적인 반한-여론을 일으키려 한 대남공작이었음이 분명했다. 누구의 소행이겠는가. 한국의 전복을 노리는 혁명세력이 아니고서야 어찌 감히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있겠는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광주사태는 남한에 배치된 북한의 지하당 소행으로 보는 것이다(164쪽 중간).

 

1984년 봄부터 자율화된 대학가에는 매년 5월이 되면 의례히 [찢어진 깃폭] 내용이 대형 벽보로 나붙었다. 누가 학생들에게 이런 자료를 갖다 주었겠는가. 벽보는 이 모든 참상이 미국의 비호 하에 일어났다고 선동한다. 학살된 사람이 무려 2,000명이나 된다고 튀겼다. 이 선동 내용과 숫자는 광주사태 발생 초부터 이미 북한 방송이 선전해오던 내용과 숫자에 일치한다.

 

 

2021.12.26.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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