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시리즈 홍어십쌔잡쌔조꾸 (5) > 최근글

본문 바로가기

System Club 시스템클럽

최근글 목록

연속시리즈 홍어십쌔잡쌔조꾸 (5)

페이지 정보

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2-01-23 23:19 조회1,372회 댓글0건
  • 트위터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본문

             연속시리즈 홍어십쌔잡쌔조꾸 (5)

 

 박남선 

         도둑질로 출범한 박남선이 5.18카르타 총사령관

 

5.18기념재단은 중2때 학교와 담을 쌓고 도둑질로 인생을 시작한 불량 청소년 박남선을 지만원 킬러로 내세웠다. 1980818, 계엄 군법회의에서의 피의자 신문조서에 의하면 박남선은 1954년생으로 중학교 2년 중퇴(13)하였고, 1973.에는 절도죄, 1979.에는 협박죄로 각 징역형과 벌금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이런 자를 내세워 5.18기념재단은 지만원을 감옥에 보내려 했고, 지만원으로부터 수억 원의 돈을 이미 뜯어냈다. 이자는 법정에 나와 눈알을 부라리며 영웅행세를 했다. 자기가 518일부터 600명의 특수어깨들을 지휘했고, 무기도 털었고, 계엄군을 전남도청에서 몰아냈다며 영웅행세를 했다. 5.18기념재단의 기획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박남선은 당연히 유공자 등급에서 당연히 1등급을 차지했어야 했다. 그런데 박남선의 유공자 등급은 10급이었다. 유공자 등급은 최고가 1, 최하가 14급이다. 5.18기념재단은 지만원과 국민을 우습게 보고 제10등급을 내세워 5.18민주화운동 사실상의 사령관으로 부각시켜 지만원을 죽이려 했던 것이다.

 

                   계엄군법회의가 밝힌 박남선은 5.18카르타 피라미

 

1980.5.20. 계림동, 산수동, 풍향동 등 소요의 핵심지역이 아닌 변방들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가두시위를 했고, 5.23.1400.부터 적십자병원에 있는 19구의 시체를 도청으로 운반하는 노무자로 동원되면서 전남도청에 처음 들어갔다. 그 후 전남도청에 집결해 있는 시체를 이웃의 상무관으로 옮기는 일에 동원됐다. 5.25.05:00, 당시까지 김창길이 위원장을 하고 있던 시민학생수습위원회의 부위원장인 김종배의 제의로 상황실장을 맡기 시작했다. 상황실장 제의를 받은 후에도 별로 하는 일 없이 45구경 권총을 어깨에 차고 돌아다니면서 눈에 보이는 대로 어린 학생 등을 상대로 산발적인 지시를 하였으며, 5.26.18:00, 김창길 등이 자기들을 계엄군에 넘겨주려 한다는 이야기를 김종배로부터 듣고, 회의를 하는 부지사실로 들어가 김창길을 권총으로 협박해 내보냈고, 5.27. 새벽 도청 2층 회의실에 있다가 투항하여 체포됐다. 이것이 계엄군법회의가 증명한 박남선의 피라미 공적이다.

 

            “광주시민 체포조장이 나 박남선이다

 

 

위 현장 사진은 523일 제71광수 황장엽을 대장으로 하는 반탐조가 47세의 해남출신 김인태의 팔을 꺾어 도청 안으로 연행해 가는 사진이다. 다른 사진들에서 확인하면 연행하는 외지인들이 차고 있는 어깨띠에는 [수습학생위원회]라는 글자가 쓰였다. 하지만 광주 시민들은 [수습학생위원회]라는 조직을 만든 적이 없다. 연행하는 어깨들이 광주 사람들이라면, 광주 시민이 왜 같은 동네 사람의 팔을 꺾어 도청으로 연행해 가는 것인가? 그 이유를 설명할 사람은 아마 이 나라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일반 시민들은 왜 멀리에서 공포스런 눈으로 구경만 해야 했겠는가? 이들 어깨가 광주 시위에 앞장선 20세 전후의 공돌이들인가? 

이 단계에서 상기하자면 당시 광주의 운동권을 포함한 대학생들은 5.17 예비검속이 발동되면서 모두 잡혀갔거나 꽁꽁 숨어있었다. 그렇다면 해남의 김인태의 팔을 꺾어 연행해 가는 어깨들은 누구이고, 한 손에는 무전기, 다른 한 손에는 무거운 M16 유탄발사기를 들고 이 어깨들을 지휘한 제71광수는 누구일까? 이들이 광주 시민들일 수 있을까? 연행돼 간 김인태(47)가 바로 심복례의 남편이었다. 이후 김인태는 도청 내에서 살해된 후 인근지역으로 유기됐다. 이 체포 사살조의 대장인 제71광수를 노숙자담요는 황장엽이라 판독했고, 박남선은 이 71광수가 자기라고 주장한 것이다

 

            71광수는 자기인데 지만원이 황장엽과 비슷한 얼굴로 합성했다. 

박남선은 위 현장 사진 속 제71광수의 얼굴이 실질적인 항쟁 지휘자였던 자기 얼굴이어야 하는데 지만원이 제71광수의 턱 부분을 황장엽 비슷하게 깎아 합성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위 제71광수 얼굴이 왜 자기 얼굴인지를 증명할 수 있는 원본사진을 내놓지 못했다. 무조건 위 사진의 71광수는 자기인데 지만원이 턱 부분을 황장엽 얼굴과 비슷하게 변조시켰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위 현장 사진은 조선일보 사진DB에 지금도 그대로 있다. 나는 변호인을 통해 원본 사진이 실려 있는 조선일보사 사진DB의 위치와 찾아가는 경로를 광주법정에 제출하였고, 광주재판부는 이 경로를 찾아가 확인을 했다. 그런데도 광주재판부는 박남선의 모든 주장이 다 옳다고 판결했다. 재판이 아니라 코미디 도깨비 장난질이었다

 

좌측 사진에서 좌측 얼굴은 제71광수, 가운데 얼굴은 황장엽, 우측 얼굴이 박남선 얼굴이다. 황장엽 얼굴의 특징은 입꼬리와 얼굴에 심하게 돌출된 S자형 근육에 잘 드러나 있다. 그런데 애송이 박남선 얼굴에는 그 S자 근육이 없다. 5.18 당시 제71광수 황장엽은 57, 박남선은 26세였다. 얼굴에 나타난 나이테가 57:25인 것이다. 이 세상에 제71광수와 위 박남선의 얼굴이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면 세상은 혼돈(Chaos) 그 자체일 것이다. 

                   북한 민간집단에 멋모르고 들어갔던 사람들 피살당해 

5.18기념재단은 나를 갈아 마시기 위해 박남선에게 71광수(황장엽)가 네 얼굴이라 하라며 지만원 죽이기 저격수로 내보냈다. 아래 사진은 어깨에 [수습학생위원회]라는 어깨띠를 맨 북괴군이 제71광수로 지정된 황장엽의 지휘를 받으면서 심복례 남편 김인태를 체포하여 도청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이다. 김인태는 구타를 당한 후 이마에 총을 맞고 사망했다. 

김인태처럼 도청으로 끌려가 처형된 현장 사진은 4개까지 발견됐다. 김인태, 김중식을 포함한 4명이 도청으로 체포돼 가서 즉결처분 된 사실은 2020.5.11. 미 국무성이 한국 외교부에 이관한 비밀해제된 외교문서에 기록돼 있고(5.18답변서 98), 4명이 연행돼 가는 사진은 [5.18답변서] 98~99쪽에 기재돼 있다. 이들이 연행돼 간 이유는 아래의 오른쪽 사진에 집결돼 있는 북한집단 속에 멋모르고 들어가 있다가 북한사람들에 의해 프락치로 신고되었던 사람들이다. 북한사람들만 저렇게 많이 모여 있는데 광주사람이 들어가면 분명히 북한사람들끼리 지껄이는 북한말을 들었을 것이다. 보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북한집단이 북한 말씨를 들은 광주인을 그대로 둘 리 없는 것이다. 

     박남선 왈 나는 잠을 잘 때도 군화를 신고 잤다그런데 제71광수는 검은색 사제 단화를 신었다. 

박남선은 잠을 잘 때에도 워커를 벗어 본 적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제71광수가 신은 신발은 위 현장 사진이 보여주듯이 검정색 사제 단화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저자는 얼굴만 변형시킨 것이 아니라 워커까지 단화로 조작했어야 했다. 

     박남선 왈 나는 M16유탄발사기를 계엄군과 결투해서 빼앗었고, 그냥 들고만 다녔다 

71광수가 소지한 총은 무거운 M16유탄발사기다. 이는 M16소총에 M203 유탄발사기를 결합하여 수류탄 정도의 폭발력을 가진 유탄을 최대 400m까지 발사할 수 있는 특수화기이며 훈련을 받은 사람만이 사용할 수 있는 무기다. 군에서도 특수화기를 다뤄야 하는 극히 소수의 특수요원만 다루는 무기를 20세 전후의 양아치 계급이 다룰 수는 없다. 그는 이를 공수부대와 결투해서 빼앗았다고 했다. 그는 자기가 예비군 중대 부중대장을 했기 때문에 모든 총기류를 다 다룰 수 있다고 큰소리쳤다. 이에 피고인 측이 아래 사진을 보여주며 각 부위가 무엇인가에 대해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