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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인 이순실에 대한 피고인의 신문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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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2-01-28 13:30 조회1,46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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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증인 이순실에 대한 피고인의 신문사항

    2022.1.27. 

 

1. 증인의 본명은 이춘옥이 아닌가요? 한국에 도착한 연월일을 기억하나요?

 

2.증인이 북한에서 결혼한 연월일을 기억하나요?

 

3.증인의 탈북 이력은 89기인가요, 910기인가요?

 

4.첫 번째 탈북한 연월일을 기억하나요?

 

5. 8번째 탈북한 연월일과 마지막 탈북한 연월일을 기억하나요?

 

6.딸의 생일을 기억하나요?

 

7.북한의 의무교육은 통상 17살에 끝나고, 남성은 통상 17살에 군대 가지요? 증인이 고등중학교를 졸업한 해가 언제였나요?

 

8. 증인이 제대한 연월일을 기억하나요?

 

9. 애기를 데리고 압록강을 도강한 첫 케이스가 몇 회째이며 그 날짜는 언제였나요?

 

10.다른 탈북자들은 압록강이나 두만강을 건너다 집히면 사형을 당하거나 또는 죽도록 고문당한 후 수용소로 보내진다고 하던데 증인처럼 여러 번 탈북을 시도해서 살아남은 다른 탈북자들의 사례를 아는가요?

 

11. 증인은 평산에서 압록강변 혜산까지 몇 번을 왕복하였는가요?

 

12. 황해북도 평산군에서 북단 압록강변 혜산까지 모두 걸어서 다녔고, 한번 걸어가는데 6개월 걸렸다 했는데 걸어가는 것이 기차보다 더 빠르다고 하였지요?

 

13.북한에서는 군() 경계를 벗어날 때 반드시 여행증이 있어야 하는데 황해북도 평산군에서 양강도 혜산에까지 가려면 여러 개의 군()을 통과해야 했는데 어떤 여행증을 가지고 갔나요?

 

14.증인의 부친은 어디에 위치한 어느 군관학교를 졸업했으며, 무슨 계급으로 군 생활을 종결했나요?

 

15.통일부 북한 인명DB에는 북한 장군들의 프로필이 다 정리돼 있는데, 증인의 부친을 검색하려면 누구의 이름으로 검색해야 하나요?

 

16.증인은 부모님의 생년월일과 돌아가신 날을 기억하나요? 제사는 지내지 못해도 추모해야 할 날짜는 기억하실 텐데요. 부모님이 1988년 동시에 돌아가셨다는 것인가요?

 

17.증인이 마지막 탈북에 성공했을 때는 언제이며, 그때 증인의 몸무게는 얼마였나요?

 

18. 유엔이 운영한다는 몽골수용소는 여객기가 뜨고 내리는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였지요? 증인은 어느 공항에서 이륙하여 어느 공항으로 한국에 도착했나요? 비행시간은 얼마나 걸리던가요?

 

19.증인을 혜산에서 평산으로 데려다 중매했다는 오빠는 당시 직책이 무엇이었는가요?

 

20.증인은 장군인 아버지 관사에서 부모와 함께 생활하면서 학교에 다녔다 했지요?

 

21.꽃제비 생활은 언제부터 시작했나요?

 

22. 장군의 관사는 동네 속에 있나요, 아니면 민간인 접근이 어려운 곳에 따로 지어져 있나요?

 

23. 장군 관사는 경비병들이 삼엄하게 경비하고 있지 않나요?

 

24. (2733) 귀순 장교들의 증언과 인터넷에 따르며 인민국 장군들은 출근할 때 관용차 벤츠를 타고 다닌다 하던데 증인의 부친은 별 두알”(2) 이면서도 아침마다 증인의 손을 잡고 같이 걸어가다가 학교로 가는 길과 부대로 가는 길이 갈라지면서 서로 헤어졌고, 이 때 아버지가 증인에게 여러 가지를 훔쳐오라 시켰다는 것인가요?

 

25.몽골에서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는 누가 태워주었나요? 한국으로 알선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26.그때 비행기는 혼자 탔는가요, 여럿이 탔는가요?

 

27. 증인을 한국 공항까지 데려온 사람은 누구였고, 그 후 어떤 절차를 따라 국정원에 인계됐나요?

 

28.하나원은 언제 입교하여 언제 졸업했나요? 한국에서 현 남편과 결혼한 날은 언제인가요?

 

아래에는 증인이 출연했거나 인터뷰한 20여 개의 자료들입니다. 차례대로 증인의 발언 사실들을 확인해 가면서 질문을 하겠습니다.

 

2012.6.11. 이제 만나러 갑니다 이순실여사의 슬픈 이야기

https://www.youtube.com/watch?v=WUJSOS0xATA

020~9:00

 

1,군사복무기간에 중대 소대장 하고 알고지내다가 결혼식 없이 배낭 메고 가서 살았다.남편이 툭하면 술 먹고 때리고 싸웠다. 9북송당했다.

 

1~2,혜산 역전에서 아이를 낳았다. 역전 앞에 7층짜리 927여관이 있는데, 거기에서 산후조리를 했다. 아기가 강냉이 죽만 먹어서 소아병동에 입원했는데 애기하고 도망쳐 나왔다.

 

2,고문당하는 것도 애가 다 봤어요. 보면서 각반 혁띠로 때리는데 혁띠가 올라가면 아이가 먼저 엄마, 엄마하고 막 울었어요,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엄마 때리지 말라고 엄마, 엄마했었어요.

 

2,9번의 북송과정에서 살았는데, 들어오자마자 중국에서 인신매매에 걸린 거예요. 그래서 애기는 3,000원에 팔리고 저는 5,000원에 팔려간 거예요.

 

29.군에서 제대하자마자 중대에서 잘 알고 지내던 소위 집에 배낭 메고 간 것이 결혼이었다는 것이지요?

 

30. 9번째탈북에 성공했지만 아이를 중국 인신매매단에 빼앗겼다는 것이지요?

 

31. 성인 여성의 몸값이 5천원인데, 양육을 필요로 하는 두 살배기 어린 여야의 몸값이 3천원씩이나 된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데요?

 

2012. 10. 4. 9번 탈북, 이순실의 애환과 질곡의 탈북 이야기

https://www.youtube.com/watch?v=nVLkZXwsZzo&lc=Ugiqjem4UIAZxXgCoAEC

240~318

525~537

610~849

900~1030

1200~1240

1300~1918

 

5,제가 장교생활 끝나고 이어진 생활이 꽃제비 생활이에요. 그러면서 정말 5년 동안 밖에서만 잤어요. 그 과정에 제가 또 애기가있었거든요. 애기도 역전에서 낳았어요. . . 지나가는 할머니가 보더니 길바닥에 가서 깨진 유리를 갖다가 진짜 코를 흥흥 풀어서 이렇게 소독을 하더니만 그걸로 탯줄 다 끊어주고, 그 다음에 지나가는 군인들이 밥덩어리 줘서 또 그거 먹고, 그런데 한4일 동안은 그래도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 오는 사람이 밥을 줘서 먹고 얻어먹고 살았어요. . .

 

7,중국에 오면 애도 굶어도 좋아해요. 그 다음에 빵 한 조각이나 죽 한 그릇을 얻어 먹이면 그렇게 좋아서 그래요, 그리고 북송당하는 거 알기 때문에 벌써 변방대에 들어오면 애가 무서워서 공포감에 질려서 울고 막 그러더라고요.

 

8,맨 마지막 북송을 그애기를 배낭에 담아 지고 강을 건넜어요.그때 장마철이 돼서물이 엄청 많았어요. 그런데 깊은 물에는, 정말 들어가서 떠내려갈 만한 그 깊은 곳에는 경비대가 보초를 안 서요. 거기는 들어가라고 아주 권하는 것 같아요. 거기로 다 들어서요. 그러면 사람들이 다 둥둥둥둥 다 떠내려가요, 거진. 그래도 제가 그 중국으로 가야 되겠다고 마음먹어서 그런지 그 애기를 배낭에 매고, 그 다음에 발에는, 신발도 없었으니까요. 발에는 그냥 새끼줄로 꽁꽁 묶어서 이렇게 돌에 물때가 많아서 잘못 디디면 정말 뒤집어져서 떠내려가면 죽어요.그래서 그렇게 해갖고 준비를 해서 건넜어요. 건너서 중국 땅에 다행히도 들어섰는데 중국 공안한테 잡혀버린거예요. . . 차에 탔던 그 브로커들이 막신발 벗어서 우리를 막 까고 때리고 하면서 이제부터 찍소리하면 죽여 버린다고 막 그러는 거예요.

 

32.애기를 역전에서 낳고, 4일 동안은 길을 오가는 사람들로부터 밥을 얻어먹었다는 것인가요?

 

33. 2쪽에서는 7층짜리 여관에서 산후조리를 했다고 했는데 다른 이야기가 아닌가요?

 

34. 애기가 중국에 가면 먹을 게 많아 좋아하고, 변방대에 가면 공포감에 질린다고 했는데 변방대가 중국에 있나요 아니면 북한에 있나요? 무엇하는 곳인가요?

 

35. 마지막 탈북 때에는 장마철에 아이를 배낭에 담아 짊어지고, 미끄러지지 않게 새끼줄로 맨발을 묶어 건넜는데 숲에서 인신매매단이 튀어나와 아기를 납치해갔다는 것이지요?

 

36. 장마철에는 강물이 불어나고 물줄기가 노도처럼 거세서 사람들이 건널 수 없기에 경비마저 서지 않는다 했는데, 그런 험한 물살과 깊은 강물을 애기를 배낭에 업고 건넜다면 사람들이 믿을 수 있을까요?

 

37. 강을 건너자 중국공안에 잡혔는데 그 공안이 갑자기 인신매매단이 되었다는 것인가요?

 

2012.12.4. 2012년 통일다큐멘터리_미리보는 통일 한반도 2

https://www.youtube.com/watch?v=KrHcuQsA934

720~737

 

10,2살 난 딸 아이를 업고 열 번째탈북을 시도했다. 탈북은 성공했으나 그녀의 아이는 그녀 곁에 없었다.

 

38.2쪽에서는 9번째탈북이 성공했다고 했는데 여기 제10쪽에서는 10번째라 하는데 어떤가요?

 

2013. 3. 19. [탈북자 행복열차] 안녕하세요? - 이순실 편

https://www.youtube.com/watch?v=qiTlXGLWfoQ&t=702s

540~640

1310~1340

1348~1410

1419~1616

1745~2120

2152~2340

 

11, 원래 간호원으로 들어갔는데 간호원 그 양성소라고 그래요, 거기는.

간호양성소 6개월을 졸업하면 간호원 자격증이 주어져요. 그래서 간호원

생활을 하다가 22살에 군의대학을 들어간 거예요. 그래서 군의대학에서 총

4년을 공부하는데 여자들은 기간이 짧으니까, 복무연한이 짧으니까 4년 중에

2년만 대학공부하고 1년 정도는 실습이에요. 그런데 남자들은 4년 공부하고

1년 정도 실습, 이렇게 하거든요. 그래서 2년 반 동안 공부 끝나면 대학

졸업하면 거기에서 준의사 자격증을 줘요. 사회에 나와서도 의사는 못해요.

의사 밑에서 준의사로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기술자격증을 가지고 나와서

군부대에 군의소에서 수술 집도만 못해요. 마취, 집도는 못해요. 그냥 그

보조역할을 해주는 군의 바로 밑에서 일하는 거죠.

 

청춘시절 고스란히 11년 동안, 16살에 군대 가서 29살까지예요

 

 

13, 9번 탈북하는 과정에서 4번째까지는 홀몸이었다.

 

15,12월에 하나원 나왔다.

 

39.한국에는 언제 도착했고, 하나원은 언제부터 언제까지 있었나요? 12월에 하나원을 나왔다면 몇 년도 12월인가요?

 

40. 하나원은 교육기간이 12주가 아닌가요?

 

41.9번 탈북하는 과정에서 4번째까지는 홀몸으로 탈북하였다고 했는데, 4번째, 탈북이 언제였는가요?

 

42. 5번째 탈북한 연도는 몇 연도였고, 그때 딸아이의 나이는 몇 살이었나요?

 

43. 증인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간호원 양성소에서 6개월 수업하고, 간호원 생활을 하다가 22살에 군의대학에 입교했다 했지요?

 

44.증인은 여성이라 군의학교 4년제를 2년 반만에 졸업하고, 준의사 자격증을 받아 부대에 배치된 이후 10년 동안 간호장교로 복무하다가 중위로 제대를 했다는 것이지요? 22세에 군의학교를 들어가 2년 반 동안 수학했다면 군의학교 졸업 당시 증인의 나이는 25세였겠네요?

 

45. 증인은 또29에 제대했다고 했지요? 그렇다면 증인은 간호장교 생활을 4년 한 것이 되네요? 군의학교 수학기간을 여기에 보태도 군생활이 7년인데 11년간 군복무를 했다는 것은 무엇인가요?

 

46.증인은 또 16살에 군대 가서 11년 동안 군대생활을 했고, 제대 당시의 나이가 29세였다고 했는데 16세에 11년을 보태면 27세여야 하는 게 아닌가요?

 

47. 앞에서는 졸업하고 일반 간호양성소 과정을 6개월에 이수하고 간호원 생활을 하다가 22살에 군의학교에 입학했다고 말했는데, 여기서는 고등학교 졸업하기 전 나이인 16세부터 군대생활을 시작했다는 것은 또 무엇인가요?

 

2013.6.3. 오늘 순실의 과거를 밝히겠다! 새로운 탈북미녀 김수경!_채널A_이만갑 77

https://www.youtube.com/watch?v=FUEp2akKqoc&t=123s

0020~250

 

16~17(이순실은 몽골 수용소에서 분위기 메이커였다)

김수경 : 안녕하세요? 저는 함경남도 신포에서 온 김수경이라고 합니다. 훈훈한 이미지를 갖고 있고 어머니의 품성으로 동생들을 잘 돌보고 있다는 그분을 폭로하러 나왔어요. 그분은,

김수경 : 순실이 언니랑 저는 몽골에서 같이 수용소 동거생활을 오랫동안 같이 해왔어요. 그런데 언니의 특유한 습관이 있어요. 이렇게 수용소를 입소를 쭉 하면 이렇게 애들이 이쁜 옷을 입었나부터 이렇게 쭉 훑어보시더라고요. 그러고는 여기 와서이쁘니까 옷을 벗어. 이것을 내가 입어야 돼.” 자기 풍채에 안 맞는데도 불구하고,

김수경 : 그래 가지고 그날 새로 들어온 애들한테 이렇게노래를 시키더라고요.그런데 언니가 노래에는 관심이 전혀 없어요.

김수경 : “니들이 매고 온 배낭 속에 사탕이 있?” 그래서 저분은 어디서 온 분이냐 하니까 모두 그분에 대해서는 얘기를 하지 말래요. 뭐 덩치가 킹콩같으니까 덤비지 말고, 그 다음 저 언니한테 잘못 덤비면 사자 밥이 된다. 그래서 저희는 말을 아예 못했어요. 그런데 이제 몽골에는 식당 근무를 서는 조가 있어요. 그런데 언니는 그거를 무조건 서야 돼. 자기가 밥을 해야 돼. 밥을 안 하면 안 돼, 거기에서.

김영철 : , 식당근무를 하는 거예요?

김수경 : . 식당근무.

김영철 : 왜요? 자기가 식당근무를 해요?

김수경 : 밥을 해야 거기에서 누룽지라도 많이 먹을 거 아니에요?

김수경 : 그래 양을 많이 먹으니까, 먹고 살쪄야 돼. 거기에서100kg 나가든 90kg 나가든 본인은 몰라. 우리가 볼 때는 완전 덩치가 아, 꽃돼지? 꽃돼지라면 즐겨. 꽃돼지라 하니까 그거는 듣기가 좋대요. 그런데 어떤 날 누가 멧돼지라 했더니 호실마다 문을 열어보면서 멧돼지라 한 애 나와라. 한 판 뜨자.”

남희석 : 자기가 방마다 가서 얘기한 거예요? 멧돼지라고 그런 사람 나오라고?

김수경 : .

남희석 : 그거 다 소문났잖아, 모르는 사람까지.

김수경 : 그렇죠. 그러니까 하는 거예요, 거기에서.

이순실 : 멧돼지 소리를 남자들이 지어놨더라고요. 그래서 남자들 때려줘 갖고 그 남자들 코피 났어.

 

48.이 뒤에 나오는 이야기이지만 증인은 8번째 탈북에 실패했을 때의 몸무게가 43kg 이었다 했고, 최근 수정된 나무위키에는 2007년 한국 도착시의 몸무게가 51kg라 했는데 한국 도착 직전에 있었던 몽골수용소에서의 몸무게가 킹콩, 꽃돼지, 멧돼지로 불리고, 증인에게 잘못보이면 사자 밥이 된다할 정도로 보일 수 있는 것인가요?

 

49. 위 내용을 보면 증인은 바로 수용소에 오기 직전에 딸을 강탈당해,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딸아이가 그리워 눈물을 흘린다고 했는데, 딸의 울부짖던 소리가 채 가시지 않았을 그 시기에 400명의 남녀 수용소 인원을 장악해가면서 노래도 시키고, 웃음도 자아내게 하고, 분위기를 장악하고, 부엌일을 맡아 많이 먹고, 남자들을 때려 코피를 흘리게 할 정도로 쾌활한 생활을 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때는 아이 생각이 나지 않던가요?

2013. 7. 11. 탈북미녀 이순실, 배고픔에 우는 아이에게 줄 것이 '죽은 병아리' 밖에 없어.._채널A_이만갑 82

https://www.youtube.com/watch?v=T8R0DMYFCdY

00~300

 

18,제가 애기를 업고 어느 농촌으로 들어갔어요. 거기에는 그 농촌에 그 배추에다가 우아독스라는 농약을 쳐가지고 그 밭에 풀어놓은 병아리들이 그 벌레 잡아먹다가 다 죽었어요. 그런데 그 병아리를 죽은 거를 거름 하려고 그 밭고랑에다 쭉 풀어놨더라고요. 보니까 털은 털대로 다 떨어지고 벌써 갈비도 다 보이는 정도로 그렇게 병아리가 완전히 부패된 건데 그 병아리들을 다 걷어가지고 개울에 가서 털을 뽑는데 살도 막 떨어져요. 그런 걸 양재기에다 끓여가지고 먹는데 뒤에 있는 애기가 계속 먹겠다고 달라고그러는데 그 독성물질이 있어서 그 애기한테 주면 안 될 싶은 것도 그냥우리가 씹어가지고 국물은 빨아먹고 고기건더기를 줬었어요. 그런데 너무도 계속 먹겠다 그래 가지고 그 뼈다귀를 줘가지고 그거를 하루 종일 빨아서 그 뼈가 정말 흐물흐물해질 동안 그거를 빨아먹는데 그 배고픈 애한테 먹을 거 하나 못 주는 게 너무 안타까웠어요.

 

18,잔등에 있는 애가 아파트 문이 열리니까 나를 보고 들어가서 먹을 걸 구해내래요, 애가. 막 거기 들어가자 그래요,

 

50. 중국에 갔다는 이때가 몇 번째 탈북이었는가요? 몇 년도였는가요?

 

51. 증인은 양재기와 라이터를 지참하고 다녔나요?

 

52.중국은 병아리를 배추밭에 방목하는 나라던가요?

 

53. 농약 먹고 죽은 병아리를 삶아서 먹고도 병이 나지 않았다는 것인가요?

 

54. “우리가 먹었다고 하셨는데 몇 사람이 동행하면서 먹었다는 것인가요?

 

55. 아파트 문 앞에서 날을 새고 아침이 되자 그 아파트 주인집 아이가 문을 열고 나왔는데 딸아이가 빨리 문 안으로 들어가 먹을 것을 달라 채근했다는 이때가 몇 년이었나요?

 

56. 2살 이전의 아이가 이런 지능과 실행력을 가졌다는 것이 대한민국의 여느 아이와는 비교할 수 없는데 증인의 딸이 이렇게 특출한 지능과 행동력을 가지고 있는 이유가 있는가요? 보편타당한 상식을 넘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데 어떤가요?

 

2013.7.23. 8번의 북송을 통해 이순실이 겪었던 끔찍한 고문_채널A_이만갑 84,

https://www.youtube.com/watch?v=MAZnGmUuTbk

128~200

 

20,북송일곱 번째, 여덟 번째는때리지도 않더라구요.

 

57.이 대목을 보면 탈북을 막아야만 하는 보위부가 상당히 낭만적이고 목가적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그들과 많이 친해졌다는 것인가요?

 

2014.5.20. 남남북녀 커플, 황유성 이순실 부부의 간증 I @ 통일북소리 8(MC. 김경란, 오지헌

https://www.youtube.com/watch?v=ZsN_BJghvoQ

540~710

820~ 840

1728~3436

 

21,

 

이순실: . . 6형제가 다 군인이었고 다 장교였어요.

오지헌 : 그러면 장녀였어요?

이순실 : . 제가 간호중위로,

 

군대 나가기 전에 학교에서 원래 그 16살 졸업하기 전에 그 군단 체육단에서

1개 체육부서를, 부를 통째로 체육단에 데리고 갔어요. 그래서 제가 배구선수였는데 그때 거기 들어가서 16살 때부터 군인신분이 아닌 반유급신분으로, 오전에는 학교에 가서 공부하고 오후에는 군부대 가서 배구훈련을 하면서 반유급제 생활을 했어요, 3년 동안. 그런데 그것이 군사복무 기간에 채워주지 않았는데 후에 군사복무 연한으로 다 해줬어요. 그래서 16살 때부터 군대 나가서 29살 때까지 군복무 한 거예요. 그러니까 29세까지 군복무를 했다. 간호 중위로 제대했다.

 

22, 11년 동안 군에서 배운 것은 도둑질밖에 없다. 제대비 40원 가지고 장마당에 가서 강냉이, 강냉이 가루, 쌀을 조금씩 사왔다. 1kg125원 했다.

 

23,스물아홉에 제대했고, 결혼을 제가 그 같은 중대에서, 같은 부대에서입당보증인이 중매로 이렇게 맺어진 그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시집을 가보니까 나 혼자서 그 6명 식구를 다 먹여 살려야 되거든요. . . . 남편이 술을 좋아해요. . 먹고살기 위해 시집을 갔는데 여기서도 살 수 없어 꽃제비가 시작된 거죠, 그래서 살 수 없어 꽃제비가 시작된 거죠.

 

24,그때(결혼생활) 당시는 아기가 없었어요. 그때는 없었고 이렇게 꽃제비 생활하면서 나갔다 들어갔다 하고 또 선거 때마다 이따금씩 또 사람들을 다 모아놓고주민등록을,이렇게 주민등록 이거 점검을 하는 거예요. . . 그때 그냥 거기 또 붙어있어야 되기 때문에 거기 갔다가 저기 갔다가 이러면서 그간에 그냥 또아기를 가지게 된 거예요. .

 

24~25. 할머니가 나한테 그 앞치마 시커먼 앞치마를 벗어서 애기를 싸서 주시면서 안아주시면서 빨리 장마당으로 가라. 장마당에 가면 너는 죽지 않는다. 애기를 봐서라도 너는 누가 쉽게 죽이지는 않을 거야. .” 그러면서, 얼어 죽을 것 같은 그런 추위예요. 1125날 애기가 태어났는데, 장마당 역전 그 역전 장마당 앞에 들어가는 입구에 앉아서 그 애기를 안고 노래를 불렀어요.

 

25,사람들이 지나가면 애기도 가만 잔등에 업혀있다가도 사람만 지나가면 아아아아 배고파.”우는 거예요. 그러면 사람들이 이렇게 먹을 걸 갖다 주면 그 애기는 그 먹을 것을 가만히 갖고 있다가 사람들이 지나가면 빼가지고 엄마 입으로이렇게 넣어주는 거예요.

 

26,아침에는 새파란 하늘 보는 게 왜 그렇게 싫은지, ‘아우 또 살아났네. 이놈의 목숨이 질기기도 질기다.’ 이러면서, 그러면 애기가 일어나서 엄마 우리 눈 떴네. 살았네.” 이것이 엄마한테 계속 듣던 말이니까 애기도 하는 말이 또 살았네.” 이게 애기가 하는 말이에요.

 

27,중국의 어느 한 집에 앞에 가니까 새파란 사과를 비닐봉지에 버렸는데 다 얼어 있었다. 정신없이 갉아먹었다. 뒤에서 뭐가 쿡 누르기에 뒤돌아보니 중국공안이었다. 불쌍해 보이니까 빨리 먹으라 하더라. 옆에 총 든 사람이 있었지만 갉아먹고 주머니에 넣고 챙겼다. 등에 업힌 아이도나 줘. 나도 줘. 엄마 나도 줘. 나도 먹을래.”그런 걸 공안대들이 다 봤다.

 

28,공안이 우리를 봉고차에 태워 변방대로 갔다. 3일 동안 조사를 받는 동안쌀죽에 돼지고기 껍데기 덩어리를 끓여서우리를 주었다.

 

29,중국공안들이 아이 양말 떠주라고 뜨게실과 코바늘을 주었다.

 

58. 좀 전에는 아기가 변방에만 오면 공포에 떨었다고 했는데, 여기에서는 변방의 중국공안이 천사 정도인 것으로 묘사됐는데 어느 것이 사실인가요?

 

59.1쪽에서는 중매 없이 증인이 29살에 제대하고 같은 부대에서 알고 지내던 소위한테 배낭 메고 간 것이 시집간 것이라 했는데 여기에서는 입당보증인이 중매를 서서 결혼을 했다는 것인가요?

 

60.다른 탈북자들의 경우를 보면 공안은 염라대왕과 같다던데 증인이 만난 공안은 이에 비하면 인간적이고 천사이네요? 이유가 있나요?

 

61.증인의 딸은 여름에도 중국에 가서 농약 먹은 병아리 달라했고, 겨울에 가서는 언 사과를 달라했고, 장마철에 가서는 엄마 같이 가, 다시는 배고프다 울지 않을께했고, 겨울철인 1월에는 얼음 위로 걸어가 생이별을 당했다 했습니다, 여름, 겨울, 겨울, 장마철 이렇게 4차례 중국에 아이를 데리고 갔었다는 말이 되는데 이 모든 것이 2살 때 있었던 일이었는가요? 각기 몇 번째 탈북 시에 있었던 일인가요?

 

62. 증인은 1991년 군에서 제대하자마자 입당보증인의 중매로 결혼을 했고, 결혼생활 7개월만에 가출을 하여 꽃제비가 되었는데 선거 때 실시되는 인구 조사 때문에 시집에 들렸어야 했고, 그래서 시집에 들렸다가 임신을 했다는 것이지요?

 

63.29세에 결혼을 했고, 7개월 후 가출을 했고, 선거철에 시집에 들렸다가 아이를 갖고, 1997년 임신한 상태에서 6개월 동안 걸어서 혜산에 갔고, 그해 1125일에 출산을 했다는 것이지요?

 

64.그렇다면 임신한 시기는 대략 19972월 전후가 되겠네요? 그런데 증인이 딸과 헤어진 때가 20071월이라 했지요? 그렇다면 199711월에 출산한 아이가 10년 후인 2007년에 2살이라는 이야기가 되는데 어떤가요?

 

65. 앞에서는 증인이 군대 가기 전에 간호사 양성소를 졸업하고 간호원으로 일하다가 22세가 돼서야 4년제인 군의대학에 갔다고 했는데, 여기에서는 16세 고교 시절에 오전에는 학교 공부하고 오후에는 배구 선수하면서 3년을 보냈고, 그 후부터 간호장교로 복무하여 29세에 중위로 제대했다고 했는데 어느 것이 맞는가요? 입대전의 이력이 간호사였나요, 배구선수였나요?

 

66. 아이가 중국에서 증인이 언 사과를 먹고 챙길 때 엄마, 나 줘. 나도 줘. 엄마 나도 줘. 나도 먹을래했다고 하는데 이때의 겨울은 몇 년도 겨울이었나요? 몇 번째 탈북이었는가요? 이때 아이는 몇 살이었는가요?

 

2014. 9. 1. KTV 사랑합니다 대한민국] 죽음을 경험한 8번의 강제북송 탈북 간호장교 이순실

https://www.youtube.com/watch?v=tZw28nZ7Nv8

400~410

 

30,내가 늙어죽어도 그 애와 같이 갈 것 같아요. 지금도 영원한 2살로 내 엄마의 마음속에 있는 것 같아요.”

 

67.이 발언의 요지는 중국으로 마지막 탈북에 성공했을 때, 아이의 나이가 2살이었다는 뜻이지요?

 

2015. 8. 15. "탈북, 그 행복한 선택" 방송인 이순실 간증집회(최근 삭제)

https://www.youtube.com/watch?v=IrTSyWwXtSY

210~227

252~400

510~725

2130~ 2225

2825~54:00

 

32,황해북도 평산군 와연리에 2군단 사령부가 있다. 어머니는 군단장 요리사였고, 아버지는별 두알, 두 줄에 두 알인 중장이었지만, TV도 에어콘도 없고 폭탄상자가 곧 이불장이었다. 그냥 열심히 이사만 다니는 집이었다.

 

33,아버지는 나에게 도둑질 훈련을 시켰다. 강냉이, 감자, , 신발 등 훔쳐오라 하면 나는 훔쳐왔다. 1991년에 제대 했다. 83년부터 91년까지 군복무를 했다.

 

34~35.40원 갖고 제대했는데 빵한 개 5원 했다. 군복을 빵 5개에 바꾸고 팬티까지 다 벗어 팔고 할머니가 입고 있던 겉옷만 입었다. 창피해서 집에 갈 수 없었다. 동네에 다니면서 훔쳐 먹었다. 29살이여, 그 때 제 나이가 29살이여.. 97년도가 됐어요.97년까지는 그나마 훔쳐 먹을 거가 많을 때예요. 그래서 이제는 훔쳐 먹을 것도 없고 걸어서 양강도 혜산까지 왔어요.97년에 양강도 혜산에 오니까 전국에 꽃제비가 다 모여가지고 얼마나 훔쳐 먹고 때려 먹고 도둑질하고 강도질하고 그런 게 판을 치는 거예요.

 

36,1997년부터 2007년까지 10년 동안에 4년 교도소생활을 했다.8번째 출소하는 날 오빠가 나를 데리러왔다. 오빠 집이 찢어지게 가난하고 식구들은 병이 들고, 나는 170cm키에 43kg으로 거미였다. 오빠가 써주는 주소를 찾아 배낭메고 개성 남자 집에 간 것이 결혼이었다. 남편은 소대장이었는데 술주정뱅이에 폭군이었다, 나도 군대에서 주먹 좀 배웠기에 서로 싸우다가 세간이고 유리창이고 다 깨졌다.

 

37,7개월 살고 나왔는데 임신이 돼 있었다.

 

41,누가 양말을 갖다 주면 그 애기 발에다 끼우면 바지가 되고, 또 양말 한 짝 주면 팔에다 끼우면 옷이 되고, 이렇게 하면서 애기를 키웠어요. . . 애기가 엄마를 먹여 살리더라고요. 얘가 쇼를 배우는데요, 어떻게 배우는지 알아요? 세 돌 돼 오는 2살 되니까

잔등에서 쇼를 배워요. 거지 엄마한테서 뭘 배울 거 있어요? 얘가 알아서 생각는 거예요. 저기에서 사람이 오면, 그냥 둘이 있을 때는 아무 것도 안 울어요. 그냥 추워도 안 울고 배고파도 안 울어요. ? 엄마는 거지 엄마니까 내가 아무리 울어도 먹을 걸 못 주고 입을 걸 못 주는 엄마라는 걸 알아요. 그러니까 저기에서 사람들이 먹으면서 오거나 장마당에서 뭘 사갖고 가는 거 보면 가만히 있다가 거진 다 오면 내 머리카락을 뒤에서, 업었으니까 잡아당기면서 배고파. 나 배고파 죽겠다고, 배고프다고하면서 막 울어요. 러면 사람들이 동전도 주고 이렇게 무슨 입에 넣었던 사탕도 깨물어서 주고 이러면 이것을 다 받아요. 그러다 사람이 가면 엄마 먹어. 먹어.” 입에다 넣어주는데 와, . .

 

41, 그런데 이 애가 업으면 땅바닥만 딱 봐요. 보면 소똥무지가있어요. 소똥만 보면 엄마 맘마 있다고 맘마, 맘마, 맘마하고 그래요. 이렇게 보면 소똥 이만한 게 있어. 그러면 빨리 가서 그것도 맡아야지 꽃제비들 오면 다 뺏겨요. 이렇게 나뭇가지로 휘둘면

강냉이나 여물콩, 콩여물 요만한 거 8, 5알씩 있어요. 반쪽짜리 이렇게

 

42,옹근 것도 있고, 그러면 이거를 주워다가 물에다 깨끗이 씻어서 비닐봉지에다 싸들고 다니면 이 애기는 하루 식량이 자기 거 있는 걸 알고 배고파도 안 울고 얼마나 재롱을 부리는지 몰라요, 그거 뺏어먹기 위해서. “엄마, 엄마완전히 그냥 내 앞에서 뭐라 그럴까? 영화배우들 심사하는 것처럼 막 그렇게 막 엄마라는 단어를 1001,000번을 여러 가지 모양으로 불러요. 그러면서 한 알 주면 너무 좋아서 그냥 발버둥 치면서 삼키지 못하고 콩알이 불어서 불어서 이만하게 되도록 입안에서 굴리고 굴리고, 이거를 보니까 정말 마음이 아픈 게 그런 세상에 그 애기를 태어나게 만든 엄마의 죄 때문에 막 너무 미안한 거예요. 눈길을 마주 못 보겠어요. 애기는 그냥 그것도 엄마라고 엄마, 엄마하고 앞에 앉아서 재롱부리고 막 그냥 머리 쓸어주고 울면 눈물 닦아주고 이러지만 그 애기 눈을 못 보겠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생각하기를 , 이제는 너를 데리고 중국에 가자. 살아도 죽어도 이제는 배불리 한번 한 끼라도 먹여줄게. 가자.’ 하고 그 애기를 배낭에 담아갖고 딱 강에 들어섰어요. 그런데 그 애기도 그 압록강을 알고 그 강을 건너면 총에 맞거나 군대가 와서 잡을 걸 알고 무거운 그런 걸 알아요. 공포를 알아요. 배낭에 들어가서 배낭끈을 딱 잡았는데 부들부들부들 막 떨어요. 그러면서 눈물을, 우는데 울지를 못해요. 꾹꾹 참으면서 지금 이 배낭끈을 잡고 부들부들부들 떠는 거예요. “울지 마라, 아가야. 너가 울면 뒤에서 군대가 총을 쏜다. 울지 마라. 총 쏘면 너도 죽고 엄마도 죽어. 절대 울지 마라.” 그러면 알았어. 알았어.” 하고 내려와서 딱 중국에 건너와서 애기를 풀어 안고 딱 안았는데숲속에 숨어있던 인신매매하는 사람들한테 딱 잡혀버린 거예요.잡혀버렸는데 그때 우리를 잡아갖고 애기 떼어내려고 하는데 그 애기가 엄마 손을 잡았는데 나는2살짜리 아이가 그렇게 힘이 센지 몰랐어요.손을 꽉 잡았는데 이 손 놓으면 우리는 마지막 이별이라는 걸 애가 눈빛으로 이야기하는 거예요. 놓지 마. 놓지 마, 엄마. 놓지 마. 꼭 잡아. 꼭 잡아.하는데 그 목소리가 지금도 들려오고 그 손의 힘이 지금도 느껴져요. 그럴 정도로그 눈빛으로 이야기하는데그 남자들한테 힘을 못 이기겠어요. 빼앗기고 택시 태워서 절반이 갈라져서 가는데 나는 미친 여자들이 왜 미치는지 알았어요. 맨날 꿈에서는 애기를 안고 자요. ‘그래 나는 이제는 너를 안 놓을게. 이제는 꼭 너를 여기에서 놓지 않을게. 이제는 만났으니까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 아침에 일어나 보면 없어요. 그러면 내 새끼 내놔.” 내 새끼 어디 갔나? 내 새끼 찾고 내 새끼 찾고 이러면서 정말 많이 울었어요, 그 애기 때문에.

 

68.아버지가 별 둘, 줄 둘의 중장이었다는 것인가요?

 

69.아래 사진은 북한의 장령급, 좌관급의 계급장을 나무위키에서 떠온 것인데 부친의 계급이 정확히 어느 계급인가요?

 

 

70. 피고인이 연구한 바에 의하면 북한의 장병들은 한번 배치되면 제대할 때까지 첫 번째 배치된 부대를 떠나지 않고, 부대이동도 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남침을 했을 때, 부산에 이르기까지 그 지역으로부터의 진출로를 빠듯이 숙지하고, 그 중간 지점에 탄약, 기름, 식량 등이 어디어디에 있는 지 눈을 감아도 외울 정도로 익숙 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증인의 부친은 늘 이사를 다녀서 세간이 없다 하였습니다. 이사를 많이 다녔다는 부친의 이력을 대강 말해 줄 수 있나요? 어디에 위치한 어느 군관학교를 나왔나요?

 

71. 장군의 이불장이 겨우 포탄상자라는 것인가요?

 

72. 북한군 장군은 벤츠를 타고 다니지 않나요?

 

73. 어머니는 몇 년 동안 북한 2군단장 전속 요리사를 했는가요?

 

74. 좁은 평산군에 2군단 사령부가 있고, 거기에서 아버지가 2성 장군이라면 직책은 무엇이었나요? 군단장은 3성장군이고 차석인 부군단장은 1성 장군인데 2성장군이 갈 자리는 평산에 없는데, 어떤가요?

 

75.증인은 91년에 제대를 했고, 그해 나이가 29살이었다 했는데 그렇다면 1991년에서 29를 빼면 증인의 생년이 1962년이 된다는 이야기인데, 어떤가요?

 

76. 1991년 제대하면서 제대비 40원으로 빵 5개를 살 때가 29세였다, 97년에 혜산에 갔다, 8번째 실패 후 감옥에서 출소해 오빠가 평산으로 데려갔다, 이때의 증인 체중이 43Kg 였다는 것이지요? 이때가 몇 년도였나요?

 

77.증인이 북에서 결혼했던 사람은 증인이 부대생활 하면서 잘 알고 지내던 사람이라 했지요? 그렇다면 그 사람과 결혼하는 데에는 중매쟁이가 불필요한 게 아닌가요? 그런데 증인이 말한 결혼 동기를 보면 1) 증인이 직접 찾아가 결혼했다고도 했고, 2) 입당보증인이 중매를 섰다고도 했고, 3) 오빠가 아는 친구라고도 했는데 왜 이렇게 다른가요?

 

78. 결혼한 시기에 대해서도 전에는 29세에 제대하자마자 1991년에 결혼해서 증인이 혜산으로 간 1887년 이전에 임신했다고도 했고, 8번째 탈북에 실패한 후에 오빠의 중매로 결혼하고 7개월 살다가 혜산으로 가서 출산해 20041125일에 아이를 출산했다고도 했습니다. 그리고 제4번째 탈북 시까지는 아이 없이 혼자 탈북했다고 했습니다. 5번째 탈북 시에는 아이를 데리고 탈북했다고 하는 이야기가 되는데, 이는 8번 탈북에 실패하고 오빠가 데려다 결혼시켜서 임신을 했다는 이야기와는 전혀 아귀가 맞지 않습니다. 5번째 탈북 시에 아이를 데리고 탈북했다는 말과, 8번째 탈북에 실패한 후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다고 하는 말은 천지차이로 다른 것인데 어떤가요? 행복했든 불행했든 인생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결혼일과 자식의 출산시기가 어떻게 이렇게 널뛰듯 할 수 있는가요?

 

79.결혼 후 가출한 시기가 몇 년도였나요? 앞에서는 1991년에 결혼하여 7개월 살다가 가출하여 꽃제비가 된 후 1997년에 걸어서 6개월에 걸쳐서 혜산으로 갔다고 했고, 여기에서는 8번째 탈북에 실패한 후 결혼하여 7개월 살다가 가출했다고 하는데 왜 가출시기가 이렇게 다른가요? 어느 것이 맞는가요?

 

80.79의 녹취록 42쪽에는 아이의 언행이 담겨 있는데, 그 정도의 언행은 초등학생도 표출할 수 없는 상상 속의 이야기로 들립니다. 실제로 2살 전후의 아이가 그런 언행을 했다는 것인가요?

 

2017.5.30. 20170524 수요예배 이순실집사 간증집회

https://www.youtube.com/watch?v=vO8s2VUWp4E

650~705

3840~4000

4820~ 5210

5655~ 1시간 232

 

44,6개월 걸어서혜산에 왔다. 11호차가 기차보다 더 빠르다.

 

45,1998년부터 2007년까지 10년 동안 8번 북송 당했다. (89)

당에서 오빠를 불러 나를 인계했다. 오빠가 찢어지게 가난한 집이었다.

 

46,7개월 만에 시집을 뛰쳐나왔다. 나와서 보니까 임신이 돼 있었다.

 

47,애기를 배낭에다 담고 헌띠로 꽁꽁 묶어가지고1월 달에 압록강이 꽝꽝 얼었을 때 딱 압록강을 넘어왔어요.넘어온 다음에 그 강 옆에, 중국 강 옆에요 숨어있는 인신매매 장사꾼들한테 딱 잡힌 거예요. 이것들이 우리를 잡아가지고 애기부터 분리를 시키는 거예요. 애기가 엄마 안 가, 안 가.”소리치면서 엄마야 같이 가. 엄마야 같이 가. 엄마 나 안 가.” 막 소리 치면서 우는데 이 애가 배낭에서 뽑아져 나오니까 엄마 손을 꽉 잡고 뭐라 그러는지 알아요? “엄마 같이 가. 같이 가. 엄마 나 배고프다는 말 안 할게. 엄마 나 배 안 고파.이것이 정말 엄마하고 이별하는 3살짜리 아이 마지막 부르짖음 소리였어요.

 

49,9729살 때, 첫 탈북하고, 8번 탈북 다 잡혔다. 마지막 탈북이 200712,그 때 내 나이39이었다. 몽고에서는 인솔자 없이 인솔을 나한테 맡겼다. 수용소에는 40일 있었다.

 

81.1997년에 6개월에 걸쳐 혜산으로 갔다는 것이지요?

 

82.1998년부터 2007년까지 8번 북송 당했으면 8번째 북송일이 2007년이었는가요?

 

83.200712이 마지막 탈북 즉 9번째 탈북이고, 꽝꽝 언 강을 건넌 때가 1이고, 건너자마자 아이를 빼앗겼다면 그 1월은 몇 년도 1월인가요?

 

84. 8번째 탈북 후 6개월 감옥에 있다가 오빠에 이끌려 평산으로 가려면 6개월이 걸리고, 결혼생활을 7개월 했고, 임신한 상태로 가출하여 다시 혜산으로 가려면 또 다시 6개월이 될 터인데 감옥생활 6개월과 결혼생활 7개월과 혜산과 평산 사이를 왕복한 12개월을 보태면 25개월이 됩니다. 그러면 8번째 탈북시기와 9번째 탈북시기 사이에는 25개월이라는 차이가 나는데, 200712월에 9번째 탈북을 했다면 8번째 탈북은 계산상 200411월이 되는 것입니다. 증인이 8번째 탈북한 시기가 200411월인가요? 그렇다면 20041125일에 출산했다는 말도 이치에 맞지 않는데 어떤가요?

 

85.증인은 나무위키를 2021.11.10.11.21에 수정하면서 2007년의 증인 나이가 42세라고 밝혔다 하는데 여기에서는 2007년의 나이가 39세라는 것인가요?

 

86. 증인은 이 사건 고소장에서 증인의 생년이1967년이라 했고, 녹취록 37쪽에서는 1962년생이라 했고, 녹취록 49(2017년 방송)에는 1963년생, 11월 말에 수정된 나무위키에는1966년생으로 주장돼 있는데 반해, 애초에 작성된 첫 번째 나무위키 기록에는 1960년생으로 기록돼 있는데 왜 나이가 1960~67년 사이에서 이렇게 줄었다 늘었다 하는 것인가요?

 

2018.1.12. [탈탈탈] 882- 2007년 입국, 남한생활 10년 만에 내 집 마련 "너무 기뻐서 잠도 안 온다" : 이순실 인터뷰

https://www.youtube.com/watch?v=2aMEdn-ZgSk

23~54

1740~1800

 

49,9729세 때 첫 탈북, 마지막 탈북은 200712, 39.

몽골에서 40일 있다가 인솔자 없어 내가 인솔하고 비행기 탔다.

 

87.앞에서는 몽골에서 50일 있었다 했는데 여기에서는 40일 있었다는 것인가요?

 

88. 비행기는 어느 공항에서 출발하여 어느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였으며, 어느 나라 국적이었는가요?

 

89.비행시간은 대략 얼마였는가요?

 

90.인솔자도 없고 안내자도 없는데 증인이 혼자서 한국행 길을 개척했다는 것인가요? 인솔자 없이 당국과의 연결 없이, 비자도 혼자 받고, 비행기 표도 증인이 끊고, 탑승 시 신원 조사도 혼자 받았다는 것인가요? 한국은 당국의 허가 없이 올 수 없는 국가인데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한국행 수속과 탑승과 신원검사와 신원 인수 절차에 대해 자세히 말해 줄 수 있나요? 인솔자 없이 증인이 인솔했다면 몇 사람을 어떻게 인솔했다는 것인가요?

 

91.몽골의 수용소와 몽골 비행장 사이의 거리는 얼마나 되나요? 인터넷을 보면 몽골수용소는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 있다 하는데 맞는가요?

 

2018.1.12. 탈탈탈] 881- 1997년 탈북, 중국에 오자마자 인신매매범에게 잡혀 "아이와 강제로 이별" : 이순실 인터뷰

https://www.youtube.com/watch?v=5RUe3ujmcfI

600~621

1150~1215

2755~3115

5250~ 1시간 0824

 

50, 엄마가 요리사였어요. 군단장 요리사였어요. . 군단장이 회의 가면 따라가요. 그 다음에 또 군단장이 야전훈련 나가면 또 따라가고, 계속 식당이 같이 움직이는 거예요.

 

51, 엄마는 남이 잘되는 거 못 봐준다. 우리 집 앞 유치원 선생 딸이 고급 수제신발을 신고 다녔는데 엄마다 한쪽만 훔쳐다 홍수가 난 물에 던지라고 해서 그렇게 했다.

 

53,89기였다. 6,7,8회 북송 시에는 아예 때리지를 않았다. 조사도 안 하고, 얼굴을 아니까 이 간나 또 왔냐했다.

55,오빠 숟가락 하나 덜자. 그냥 내가 나갈게.” 그랬더니 니가 나갈 형편은 안 된다. 몸은 이미 너는 병들어 있다. 무릎팍도 다 물차서 부었고 막 매맞아가지고 다 터지고, 그러니까 너는 그냥 시집이나 가라, . . 시집보내는 동생한테 속옷도 한 벌 없고 팬티도 한 장 없이 그렇게 홑바지 입고 부들부들 떨고 막 앓고 있는 동생을 개성으로 시집을 보낸 거예요. 70리를 걸어서, 아침 5시에 출발하니까 밤 10시에 도착하더라고. 가다 쉬다 하면서 70딱 그 주소 갖고 갔는데 우리 오빠네 집보다 더 못 사는 집으로 간 거예요, . .7개월 살고가출했다.

 

56,시집에서 나와 보니 임신이 돼 있었다. 시집에서 뛰쳐나가서 또 양강도로, . . 계속해서 뛰쳐나가서 또 양강도로 간 거야. 가니까 아닌 게 아니라 엄마들이 너 임신됐는데 어떡하냐, 왜 집 나왔냐?”

 

92.군단장은 남한, 북한, 미국 등 부르조아 국가들에서 3성 장군이 맡는 직책인데, 이런 부르조아 국가에서도 여성 전속요리사가 회의하는 곳에도 따라가고, 훈련장에도 따라가는 경우는 없습니다. 아니 전속 여성 요리사 자체가 상상 밖의 일입니다. 그런데 부르조아를 적대시하는 북한에서 그리고 계급의 장벽 없이 상호비판이 생활화되어 있는 북한군에서 어떻게 이런 호화스런 대우가 있을 수 있는지 설명할 수 있나요?

 

93.아버지는 남의 호박을 훔쳐오라 했고, 어머니는 남이 나보다 잘 사는 꼴을 보지 못하는 성격이라 이웃 잘 사는 앞집 유치원 선생 딸이 신은 예쁜 구두가 샘이 나서 한 짝만 훔쳐가 장마철 개울에 버리라고 시켰다는 것이지요?

 

94. 북한에서는 영관급과 장군급의 숙소가 민가와는 상당한 거리로 떨어진 군 숙소단지에 있고, 경비가 삼엄하기 때문에 일반 인민들과 앞뒷집, 옆집 등으로 이웃해서 살 수 없었을 텐데 어떤가요?

 

2019.08.04. “몽골까지 걸어갔죠이순실, 죽을뻔한 탈북 스토리(SBS)

http://mplay.mk.co.kr/view/?cid=2906448

00~329

 

 

61,중국에서 몽골까지 걸어갔다

 

62,89기였다.

 

63,너무 오니까 중국 군인들이 공안대가 뭐라고 그러냐면 니 또 왔냐?” 이래요, 막 우리 조사하다가 중국 쪽에서. 그리고 보위부로 북한으로 넘겨지면 북한 보위부에서 야 이 쌍간나새끼 너 또 왔나?” 이러면서 그러면서 때려줬었어.

 

95. 혜산으로부터 몽고 수용소까지 걸어갔다면 혜산에서 몽골 울란바토르까지 걸어갔다는 것인데, 증인은 위 프로에 함께 출연한 남한 국민들이 의이해 하는데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힘주어 걸어갔다고 강조했습니다. 앞서에서 증인은 평산에서 혜산까지 가는데 6개월 걸렸다 했는데 혜산에서 울란바토르까지 가는 데에는 얼마나 걸렸나요? 지도를 보면 한반도 최북단과 최남단까지의 거리를 5배 정도 걸어야 갈 것 같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