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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파 사령부의 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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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2-02-07 23:05 조회1,13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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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남사업의 선발대 통혁당(통일혁명당)이란?

북한은 4.19 혁명이 통일로 이어지지 못한 것에 대해 몹시 후회했다. 그리고 그 원인을 진단했다. (1) 남한에 혁명을 수행할 수 있는 정당이 없었고, (2) 명확한 투쟁강령이 없었고, (3) 노동자-농민의 참가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1964년 3월15일, ‘통일혁명당창당준비위원회’가 1964년 3월15일, 서울의 지하에서 발족됐다. 이 준비위원회는 합법적 비합법적 조직을 거느렸다. 합법조직으로는 ‘학사주점’ ‘새문화연구회’ ‘청맥회’ ‘동학회’ ‘민족주의연구회’ 등 많은 써클을 두었고, 비합법적 도구로는 ‘민족해방전선’을 두었다.

당기관지에도 합법지와 비합법지가 있었다. 합법적 당기관지는 ‘청맥’이라는 잡지였고,  비합법적 당기관지로는 ‘혁명전선’이란 지하 신문이었다. 이들은 반미-반정부 사상과 민족, 계급 의식을 고취시켰다. 남쪽에서도 북한처럼 노동자가 주인이 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바로 이 통혁당 창준위(창당준비위원회)가 합법정당 행세를 하면서 1964년의 6.3한일회담반대 투쟁을 조종했다. 6.3동지회의 핵심 삼총사인 이명박(대학 4년), 손학규(고3), 이재오가 바로 통혁당에 의해 의식화된 사람들인 셈이다.

이후 통혁당은 이 학생써클을 내세워 1965년 8월에 한일협정비준 반대 투쟁을, 1967년 6월에는 험프리 미 부통령 및 좌등 수상 내한 반대 투쟁을, 1969년 7월의 3선개헌 반대 투쟁을 벌였고, 다음달인 1969년 8월에 정식 중앙당 창당을 하게 됐고, 창당하자마자 그달 8월24일에 비밀 조직망이 탄로나 73명이나 검거되면서 표면적으로는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사형 5명, 중형 30명  

통혁당이 검거된 이후 남한의 학생써클은 조평통 산하에 있는 한민전의 지휘를 받아왔다. '신진회' 세대에서 '민청학련' 세대로 넘어가는 길목인 것이다.  

사형자는 김종태(북괴노동당 대남공작원), 김질락(북괴노동당 대남공작원, 가명 백두오), 이문규(북괴노동당 대남공작원 가명백두육) 이관학(괴뢰군인) 김승환(괴로군인).
  
주동자였던 김종태· 김질락· 이문규는 월북해 조선로동당에 입당했고, 통혁당 하부선이었던 이진영·오병헌은 68년 4월 22일 월북해 교육을 받다가 통혁단 사건이 노출되면서 귀환하지 않았다.

김종태는 4차례에 걸쳐 북한을 왕래하면서 김일성을 면담하고 미화 7만 달러, 한화 3,000만 원, 일화 50만 엔의 공작금을 받고 A-3지령만 167회를 수신했다. 그는 민중봉기, 간첩의 무장 집단유격투쟁을 통한 수도권 장악, 북한으로부터 무기수령을 위한 양륙거점 정찰, 특수요원 포섭, 월북 등 14개 항목의 공작임무를 띠고 있었다.

북한은 통혁당에 대한 검거망이 좁혀오자 김종태 등을 구출하기 위해 무장공비를 남파하기도 했다. ‘김종태를 구하라’는 특별지령을 받은 북한 753부대 소속 무장공작선은 68년 8월 20일 제주도에 도착했으나, 우리 군경과의 교전 끝에 14명 중 12명이 사살되고 이관학, 송승환 등 2명은 체포됐다. 이들 무장공비들은 김종태를 구출하여 월북시킨 뒤 백두일이라는 가명으로 북한정권 수립 20주년 기념일인 9·9절에 남한대표로 김일성 앞에서 연설하게 할 예정이었다.

주범 중 한 명인 김질락은 옥중유고에서 “통일혁명당이 북한의 지령을 받은 비밀지하당 조직이라는 데는 이의가 있을 리 없고 통혁당의 조직상황과 활동상황이 김일성에게 직접 보고되었다는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고 쓴 바 있다.

통혁당은 또한 공산혁명조직이었다. 김질락의 앞의 수기 중 65년 11월초 통혁당 결성 당시 김종태의 제안설명 중 일부를 인용해 본다.

“우리는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입각하여 반제·반봉건·반식민의 민주사회를 거쳐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목적이며… 우리의 당은 비단 이북의 노동당만이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의 공산당과도 형제당이 되는 것이며 국제 공산당의 일원이 되는 것입니다.”

이어 “남반부를 불법강점하고 조국통일을 방해하는 원수 미제와 그 주구들을 몰아내고 사회주의 낙원을 건설함에 있어서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으로 무장하고 중앙당의 지도 아래 혁명을 수행하기 위하여 통일혁명당 창당을 선언한다”는 요지의 선언문이 낭독됐던 것으로 같은 수기는 기록하고 있다. 한마디로 통혁당은 공산혁명을 목표로, 중앙당인 북한 조선로동당의 지휘를 받는 남한 내 지하당이었다.

김질락은 68년 11월 30일 공판정에서 “反美·反제국주의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공산주의자의 ABC이다. 나는 <청맥>의 지면을 통하여 광범한 인민대중의 반미·반괴뢰투쟁을 선동하였다”고 말했다.

김질락은 그러나 68년 12월 18일 공판정에서 “지은 죄가 얼마나 큰가를 뉘우칠 뿐이며 정당함을 주장할 것이 없다”고 변호인 신문을 거부한 뒤 “그동안 공산주의를 위해 싸워 왔으나 이제는 공산주의자로서 죽고 싶지 않으며 순수한 인간으로 돌아가 죽고 싶다”고 참회했다.

통혁당 사건으로 북한에 가서 로동당에 입당한 김종태, 김질락, 이문규는 사형을 당했다. 신영복, 이재학, 오병철, 신광현, 정종소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박성준은 15년형, 김종태의 아내 임영숙은 12년형을 선고받았으며, 기타 인물들은 5년 이하의 형을 선고받았다.

북한은 통혁당 사건 이후 연루자들에 대한 영웅(英雄)화에 나섰다. 69년 1월 25일 김종태와 이문규에게 사형이 확정되자 평양 모란봉극장에서는 김종태와 이문규를 지지하는 평양시 군중대회가 열렸다.

김종태가 69년 7월 10일 사형집행을 당한 후 김일성으로부터 영웅칭호가 내려졌다. 69년 7월 12일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는 김종태 추도 결의문을 채택했고, 같은 해 7월 13일부터 19일까지 북한 전역에서 김종태 추도기간이 설정됐다. 평양대극장을 비롯해 각 시·도·직할시·區분대·區분대당위원회·공업기업소·협동농장·교육문화·보건기관에 이르기까지 대대적 추도식이 거행됐다.

북한 내각은 김종태에게 영웅 칭호 외 북한 최고훈장인 금성메달과 국기훈장 제1급을 추서하고 평양 전기기관차 공장을 김종태 전기기관차 공장으로, 해주사범대학을 김종태사범대학으로 개명했다. 평양 시내에는 김종태의 이름을 딴 거리가 생겨났다.

69년 11월 6일 이문규가 사형집행을 당하자 역시 영웅 칭호가 수여됐다. 그러나 죽기 직전 공산주의자였던 것을 뉘우친 김질락은 북한정권으로부터 변절을 이유로 외면당했다.

살아남은 최고위급 통혁당 간부인 신영복은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년을 감옥에서 보낸 후 1988년 특사를 받아 출감했다. 그는 89년 이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명숙(총리)의 남편 박성준은 신영복의 하부선으로서 자신의 처 한명숙(현 국무총리 내정자), 박경호, 김국주 등을 포섭한 혐의 등으로 15년형을 선고받았다. 박성준 역시 현재 성공회대 민주사회교육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평택범대위 배후조종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민중신학자 안병무 교수(작고)가 설립했던 신학연구소의 운영책임을 맡았으며 최근 종교공동체연대 등의 설립에 참여, 소위 반전평화운동을 펼치고 있다

통혁당 사건은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가 1968년 8월 발표한 대규모 간첩단 사건으로, 박 교수는 이 사건으로 구속돼 징역 15년을 선고받았으며 1981년 성탄절 특별사면으로 13년의 옥고 끝에 풀려났다.

크리스챤 아카데미는 1970년대 초반 한국사회의 구조적 병폐를 해소하기 위해 강원용 목사 등의 주도로 결성된 사회봉사 단체로, 중앙정보부가 단체 간부들을 반공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하면서 한명숙도 2년여간 옥살이를 했다.
http://blog.naver.com/k60198/30003345341

                           아래는 2002년 귀순한 한영진 기자가  2006.10.31에 쓴 기사다.  
                             http://blog.naver.com/aldnjfem?Redirect=Log&logNo=70010159029

김일성은 '4.19 혁명' 직후 대남 통일전선 조직을 총괄하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를 구성하고, 남한내 지하당 조직을 건설하기 위해 김종태를 주모자로 하는 당조직을 만들었다. 통일혁명당은 당시 지식인, 학생, 청년 등과 전 남로당 당원을 포섭하여 결정적 시기에 수도권을 장악하고 요인암살, 정부전복을 결행할 것을 기도했으나, 통혁당 서울시 창당준비위원회 활동이 드러남으로써 발각되었다.

김종태는 통일혁명당 서울시위원회를 맡고 이문규(조국해방전선 책임자), 김질락(민족해방전선 책임자), 최영도(전라남도위원회위원장), 정태묵, 윤광수 등이 이끄는 통혁당은 1968년 8월24일 막을 내렸다.  

158명이 검거되었고, 1969년 1월 25일에 열린 선고공판에서 국가보안법, 반공법, 형법상의 간첩죄, 내란음모죄 등으로 김종태∙ 최영도, 김질락∙ 이문규 등 5명은 사형, 신광현 등 4명에게 무기징역, 나머지 21명은 최고 15년에서 최하 3년까지의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북한당국은 김종태 최영도 등이 사형되자 이들에 대한 장례식을 빨치산 투사들과 똑같은 격에 맞추어 '국장'(國葬)으로 진행했다. 북한 장례식으로는 최고 영예였다. '그리고 공화국 영웅' 칭호와 '조국통일상' 등 각종 명예를 수여했다. 추도모임을 전국적으로 갖고, "김종태 동지는 미제 식민지 통치에서 남조선을 해방하기 위한 조국통일위업을 위해 싸우다 체포되어 애석하게 서거했다"고 추모했다. 당시 북한 당국은 각지에 빈소를 만들어놓고 각 기업소 직장 주민들이 1분간 작업을 멈추고 남쪽을 향해 묵도(묵념)하게 했다. 동시에 기차와 자동차는 경적을 울리게 했다.

김종태를 비롯한 통혁당 지하당원들이 체포되자, 북한은 전국적 범위에서 이들의 사형을 반대하는 궐기대회를 열고 그들의 사형을 막아보려고 최선의 노력을 경주했다. 김종태는 사형집행 후 '공화국 영웅' 칭호를 수여받았고, 그가 죽은 해인 1969년 평양전기기관차 공장을 '김종태전기기관차 공장'으로 이름을 바꾸고, 해마다 통혁당 창당 기념일을 즈음해 추모모임을 가지고 있다.

또 통혁당 관계자들의 활동을 '김일성혁명역사' 교과서에 '조국통일을 위한 남조선 혁명가들의 투쟁'이라는 한 개 절로 만들어 통혁당 건설과 최후에 대해 교육하고 있다. 교과서는 "통일혁명당은 조선노동당의 붉은 혈통을 이어받아 남조선에 주체사상을 전파하기 위한 전위부대였다"고 평가하고 있다.

국정원 자료에 따르면 북한은 또 94년 7월 통혁당 연루자들인 이상진과 김영복이 입북하자, 김종태의 처와 아들의 행처를 확인하라는 지령을 내렸다. 그리고 그 가족은 "남조선 혁명가 김종태의 가족을 찾고, 그들이 원할 경우 북한으로 데려오라"는 김일성의 뜻을 전달 받았다 한다.

                                                        신영복과 박성준과 한명숙

판결문(2006.5월호 월간조선)에 나타난 통혁당 간첩 서열은 김종태-김질락-신영복-박성준-한명숙이었다.  

통혁당이 검거됐던 1968년 8월 당시, 신영복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육사교관으로 근무하면서 생도와 교관을 포섭했다. 박성준은 서울대 경제학과 4학년으로 선배인 신영복에 포섭돼 사상교육을 받았다. 신영복은 육사생도 9명에 대한 교양교육을 시켰다. 신영복은 박성준을 조종하여 시내 각 대학생 100여명을 포섭하여 1967년 7월2일 중구 명동에 집결시켜 6.8부정선거 규탄구호를 외치며 서울대 치과대까지 행진시켰다.    

                                                           거물간첩 김용규의 증언

이를 100% 뒷받침하고 있는 책이 바로 대남공작비화 (소리없는 전쟁]이다. 저자 김용규씨는 호남출신 거물간첩이었으며, 15년간에 걸쳐 암약한 내용들을 실감 있게 정리했다.

“내가 다음으로 낚은 대어는 4.19 학생운동의 원류였던 ‘신진회’의 주 멤버였다“.  ”나는 나의 연고지에는 물론 무안, 목포, 영암, 해남, 완도 등지에 각계 인사 40여명을 포섭하여 조직을 확대하고.  . .“.

”지금(1962) 군사정권은 미국놈들의 조종 아래 한일회담을 추진하고 있는데 막상 한일협정을 추진할 단계가 되면 각계 각층 국민들이 완강하게 저항하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그 때를 대비하기 위해서도 학생, 지식인, 종교인들 속에 뿌리를 깊이 박아야 합니다“.

“포섭대상자들 중에는 대학교수, 박사도 있었고, 변호사, 언론인, 종교인, 그리고 초.중.고등학교 교사와 실업자들도 많았다. 그들 모두가 박정희 군사정권에 한을 품고 있는 호남출신으로, 남조선 혁명에 발 벗고 나설 수 있는 동조자들이었다”(57쪽).

“그 후 4개월에 걸쳐 통혁당 창당준비작업은 예상을 뒤엎고 매우 빠른 속도로 진척되었다. 호남에서는 각계각층의 저명인사들을 직업적 혁명가로 육성하여 지하당 조직을 확대해 나가느라 여념이 없었고, 서울에서는 김종태(호남출신))를 중심으로 서울대 출신들을 비롯해 학연. 지연 관계로 연결된 엘리트 군단으로 통혁당의 조직적 골간을 형성하는 동시에 통혁당의 외곽조직으로 ‘학사주점’, ‘민족주의비교연구회’,를 비롯한 각종 비합법. 반합법 군중단체를 조직, 확대하는 한편 기관지 [청맥]과 [혁명전선] 발간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이처럼 서울과 호남지역의 창당준비 공작이 빠른 속도로 추진됨에 따라 평양에서는 통혁당 강령 규약과 선언문 초안, 그리고 기관지 [청맥]에 실을 원고를 준비하느라 즐거운 비명이 그칠 사이 없었다”.

“1964..3.15.밤 12:00, 서울과 호남에 창당준비위원회가 결성되고, 평양으로부터 당중안위원회 명의의 축전이 날아오고 조총련을 비롯한 수많은 해외단체 조직들에서 연대성을 표시하는 격려의 메시지가 날아왔다”.

“우리가 손을 대지 않아도 한일회담을 반대하는 데모는 이미 전국으로 확산되게 돼 있다. 지하당 조직간에 주도권 싸움을 하지 마라. 지금 나서면 잡힌다.”(64쪽).    

“전남도당 지도부는 최연도와 정태묵을 각각 정조직과 후보조직의 책임자로 하여 광주, 목포, 여수 등 전략적 요충지대를 중심으로 세포조직을 깔아 나갔고. . . 다른 한편으로는 남조선의 모든 혁명 조직들을 북과 연계되지 않은 자생적 조직인 것처럼 잘 위장해야 한다는 전술 방침에 따라 김진락, 이문규가 각각 관장하는 별개의 체계로 민족해방전선과 조국해방전선을, 그리고 그 예하에 반합법 조직으로 ‘새문화연구회’, ‘청년문학가협회’, 60년대학사회‘ 등 20여개의 부문별, 계층별 군중 단체들을 조직, 결속시키고 합법적 활동무대를 넓혀 나갔다. 그 중에서도 특히 65년4월 이문규의 발기로 설치 운영되었던 ’학사주점‘과 ’60년대학사회‘는 전국 각 도시 각 대학에 뿌리를 박은 가장 큰 규모의 반합법 조직으로서 통혁당의 저수지 역할을 담당하는데 손색이 없었다”(67쪽).

“일제 식민지 통치 시기의 광주학생사건, 6.10 만세운동은 차치하고, 해방 후 6.25 이전까지만 해도 호남지역은 여순반란 사건과 지리산 빨치산 투쟁으로 이승만 독재정권을 전율케 했던 전통적으로 좌익성향이 강한 지역이 아닌가!”.

“1967년, 공화당과 신민당과의 치열한 싸움에서 통혁당 조직원들은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역전, 터미널, 사장 터 할 것 없이 찾아다니며 ‘이번 국회의원 선거는 목포가 죽느냐 사느냐 사활이 걸려있는 선거다. 목포시를 살리고 내가 살기위해서는 공화당을 낙선시켜야 한다(낙선운동의 시조)’고 목이 터져라고 외쳤다”(72쪽).  

“노동당 연락부의 각 공작팀에서는 서로 실적을 올리기 위한 치열 경쟁이 불붙기 시작했다. 저마다 앞을 다투어 공작선을 차지하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그 순번은 이미 공작준비 상태가 양호한 성적순으로 정해져 있었다”(74족).

“대학에도 못간 놈, 공부는 안 하고 무슨 권투선수가 되겠던 나의 친동생, 면사무소 말단 직원으로 있으면서 5.16 군사정권에 대해서는 남다른 적개심을 가지고 있는 나의 사촌 동생, 이들은 평양에 가서 뜨거운 포옹과 분에 넘치는 환대에 말할 수 없는 희열을 느끼면서부터 사상과 혁명적 열정이 극으로 넘쳤다. 4.19 때, 너는 중학생이었지? . .그 때 우리가 조금만 더 잘했으면 벌써 통일이 됐을 텐데, 그 좋은 기회를 놓쳤거든. . .그래서 지금 많은 애국 투사들이 제2의 4.19를 준비하고 있는데 너도 거기에 동참해서 한 몫 해야지. . ”(82-84쪽).

“혁명은 수백만 대중을 정치적으로 각성시키고 조직 동원할 수 있는 탁월한 영도예술을 필요로 하고, 또 혁명에는 노동자, 농민뿐만 아니라 학생, 정치인, 지식인, 종교인, 교수, 박사 등 광범한 계급 계층이 다 참가하게 되는데 그들을 의식화, 조직화하는 그 역할을 어떤 사람이 담당해야 하겠나”(98쪽).

“나도 4.19 때 학생 운동 해봤지만 그 때 얼마나 결렬했는지 아나? 5.16 쿠데타만 아니었다면 그 때 벌써 우리나라는 [민주화]가 열매를 맺고 통일의 문도 열렸을 거야, 그런데 그 쿠데타를 막지 못했기 때문에 4.19의 열매가 군홧발에 짓밟히게 된 거지!(207쪽)”.

“나쁜 놈들 같으니라고, 그 따위로 반공법에 걸려면 누군들 못 걸겠소? 김대중 선생까지 납치해 오더니 또 기승을 부리는 모양이로군! . . 정보부에서 알면 붙잡아가기밖에 더하겠습니까?  그게 무서워 입 다물고 있으면 언제 민주화가 되겠습니까? . . .참 존경스럽습니다. 목사님 같은 분들이 [민주화운동]을 이끌어 주셔야 할 텐데요. . .민주화운동을 하는데 돈이 있어야 합니다. 집회 시위를 한번 하려 해도 움직이기만 하면 돈이 듭니다. . . 그러시면 일본에 계신 우리 은사님 한번 만나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 . 은사님이 뉘신데오? . . 김대중 선생하고도 막역한 사이인데 그 어른께서도 목사님 같은 분을 좋아 하십니다”(1972년의 대화, 215쪽).


                                                       통혁당이 한민전으로 개명

그러나 통혁당은 그 후 ‘한민전’(한국민족민주전선)으로 이름을 바꾸어 지금도 활동하고 있으며, 주사파들은 학생운동 때 한민전의 지시를 받아 활동해 왔고, 강정구 역시 한민전의 지령에 의해 맥아더 동상 제거에 앞장선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이미 조사한 바에 의하면 강정구는 북한의 대남공작 전위 기구인 한민전의 지령에 따라 한총련, 범민련 등과 연합하여 맥아더 동상 제거, 주한미군철수, 체제부정 활동을 해왔다.  

                                    대남공작의 거점, 주사파 써클 전대협의 정체
                            - 전대협은 한민전의 지령받던 학생괴뢰 집단 -


全大協, 金日成주의 지하조직에 장악..『의장들 모두 主事派 조직원』안기부 자료

노무현 정권 요직에 대거 진출해 있는 전국대학생협의회(全大協) 출신들의 주체사상(主體思想) 추종은 법원 판결·정부 기록·전향자 증언 등을 통해 널리 입증된 사실이다.

대법원은 92도1244, 92도1211, 93도1730 등의 판례를 통해 『全大協의 노선을 결정하는 「정책위원회「는 북한이 주장해온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혁명(NLPDR)에 따라 우리 사회를 美제국주의식민지로, 우리 정권을 親美예속파쇼정권을 규정하는 전제 하에 ▲미군철수 ▲국가보안법철폐 ▲現 정권타도 ▲고려연방제에 의한 통일 등을 주장하는 이적단체(利敵團體)』라고 판시한 바 있다.

법원판례 이외에도 안기부의 당시 수사결과를 담고 있는 「주사파에 장악된 전대협의 실체 수사결과「전대협 유인물과 북한방송 대비분석」「전대협은 순수학생운동조직인가」「전대협의 조직실체」(이상 91년 발간)등 복수의 공안문건들은 주사파 지하조직의 전대협 장악과정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안기부 수사결과에 따르면, 『전대협 제1기 의장 이인영(現 열린당 의원)은 주사파 지하조직 「전국사상투쟁위원회(전사투위)」가 전대협 의장 감으로 사전물색, 金日成 주체사상으로 철저히 무장시킨 후 의장에 당선시켰다』고 돼 있다.

『전대협 제2기 의장 오영식(現 열린당 의원)은 주사파 지하조직 「반미청년회「 출신이며, 전대협 제3기, 제4기, 제5기 의장 임종석(現 열린당 의원), 송갑섭, 김종식 역시 주사파 지하조직 「자민통「이 전대협에 침투시킨 지하조직원들이었다』고 안기부는 밝히고 있다.

전대협 의장(議長) 이외 정책위원회 등 핵심간부들도 마찬가지이다. 『제5기 정책위원회의 경우 위원장 송규봉, 위원 정영훈, 최정봉, 이명곤, 김기태 등 전원이 주사파 지하조직 「자민통」「관악자주파」「조통그룹」에서 파견된 자들이었다』고 안기부는 밝히고 있다.

                                              『金日成수령님 만세』 충성 결의

전대협을 장악한 주사파 지하조직들의 이념성향은 강령과 결의문, 맹세문 등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자민통」기관지는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을 향도이념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하여 오늘 한민전의 지위와 역할은 비상히 높아지고…』라는 식으로 시작된다.

90년 8월 이뤄졌던 「자민통」의 가입결성식에서는 『「한민전」의 강령을 받아들이는 선서』와 『金日成 수령님 만세! 金正日 지도자 동지 만세! 한국민족민주전선 만세!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만세!』 등을 부른 후 아래와 같은 결의문과 맹세문을 선언했다.

『위대한 수령님 金日成 동지와 우리의 지도자 金正日 비서의 만수무강과 한민전의 영도 아래 이 한 목숨 끊어질 때까지 투쟁하겠다는 결의 결단으로 나아가자』

『主體의 깃발 따라 계속 혁신, 계속 전진으로 위대한 수령 金日成 장군님을 따라 숨통이 끊어지는 그날까지 죽음으로 혁명을 사수하며 조국과 민족이 완전 해방되는 그날까지 열사 헌신 하겠습니다』
전대협 간부들의 金日成과 북한에 대한 강한 충성심은 91년 전대협 수사과정에서도 드러났다.

당시 수사 결과에 따르면, 제4기 전대협 의장 송갑석은 『金日成을 존경한다』는 말을 반복했고, 『金日成이 TV화면에 비칠 때면 건강하고 정정한 모습에 흐뭇함을 느낀다. 북한은 정의와 자주권이 보장되어 있는 한반도의 유일한 정통정부이며 북한에 의한 통일만이 진정한 조국통일이다』라고 주장했다.

제5기 전대협 의장 김종식은 『金日成주석을 핵심으로 하는 수령관에 동의한다.』는가  하면 『金日成주석은 항일독립투쟁을 전개했고 더 나은 사회주의발전을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 지금의 북한을 훌륭하게 건설했다. 북한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정치적 자주, 경제적 자립, 군사적 자위를 갖추기 위해 노력하는 나라』라고 주장했다.

전대협은 91년 「제5기 전대협 총 노선」이라는 문건에서 보이듯 『남한사회는 美帝의 식민지예속사회이고, 남한정권은 美帝의 식민지파쇼정권』으로 인식하며 특히 『통일의 주체권력은 북한정권임』을 못 박고 있다.  

                                    위수김동, 친지김동 金日成·金正日 추앙

全大協의 주체사상 추종 사실은 자유주의연대 출범 초기, 전향 主思派 지식인에 의해서도 확인된 내용들이다.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간사 등을 지낸 자유주의연대 집행위원장 홍진표씨는 2004년 10월 월간조선에서 『권력을 움직이고 있는 386들은 80년대 민주화운동이 좌파(左派)운동이었다는 주장을 색깔론이라고 반박하지만 이는 거짓말이다. 80년대 대학가와 노동현장을 중심으로 전개된 민주화운동은 본질적으로 사회주의혁명을 지향하는 좌파운동이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주사파는 80년대 중반 이후 전대협, 한총련 등을 조직해 학생운동의 주도권을 잡았다...이들은 소위 김일성 원전(原典)을 읽고 한민전을 청취하며 북한 주도의 통일을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활동했다』

『주사파는 「위수김동(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친지김동(친애하는 지도자 金正日 동지)「이라는 호칭을 써가며 김일성과 金正日을 진심으로 추앙했다...사회주의권 붕괴에도 주사파가 주축인 NL(민족해방)계열은 「북한은 건재하다「는 논리를 앞세워 통일운동을 전면에 내세워 역량을 유지해갔다』

                                  2008.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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