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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영 여성판사, 똥보다 더러운 판사! <제3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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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2-03-28 18:10 조회1,30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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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예영 여성판사, 똥보다 더러운 판사! <3>

  

            김예영, 북한군 개입 42개 증거 무조건 무시

 

김예영 재판부에 제출한 답변서 분량은 A4378쪽이고, 광주 현장을 주도한 주역들이 북한군일 수밖에 없다고 믿어지는  42개의 정황 증거를 30~285쪽 총 255쪽에 걸쳐 정리했다. 책 총 분량의 68%인 것이다. 2021.11.12. 재판정에서 브리핑을 할 때 3시간 중에서 2시간 이상을 할애했다. 그런데 김예영은 이 42개 증거에 대해 단 한 개에 대해서도 판결서에 언급하지 않았다. 그리고 북한군 개입은 절대 없었다고 판결했다.

 

김예영은 이에 대한 근거를 최근 광주민사법원에서 손해배상 판결을 여러 번 받았다는 사실 2002년 광주법원에서 형사처벌을 받았다는 사실 5.181997년 대법원 판결과 민주화보상법 등에 따라 민주화운동으로 그 평가가 종결돼 있다는 점을 내세웠다.

 

이는 그 이후에 새로 발견된 42개 증거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판결인 것이다. 나는 새로운 증거를 2003년부터 찾아냈다. 이전에는 아무도 찾아내지 못했던 증거들인 것이다. 그 증거들의 일부만 여기에 정리한다면 아래와 같다.

 

                  북한이 증명하는 북한특수군 

 

1) 5.18 현장을 1980년 그해에 기록영화로 제작한 존재가 북한이다. 북한 조선기록영화촬영소는 1980년에 광주 상황을 동영상으로 촬영해 기록영화를 만들었고, 그 중 42분 분량을 발췌해 비디오테이프로 제작해 전라도 일대에 몰래 시청시켰다. 한국에는 광주현장을 세밀하게 촬영한 기록영화가 없다. 북한이 1980년 당시 광주에서 촬영 주권을 확보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기록영화를 만들 수 있겠는가? 이 동영상은 구굴에 떠 다녔지만 지금은 꼬리가 잡힐까 두려워 모두 삭제해 버렸다. 하지만 나는 이를 가지고 있으며 법원에도 제출했다.

 

2) 광주의 수많은 현장에 북한 기록요원 있었다.  북한은 1982년과 1985년에 두 가지 문헌을 발행했다. 1982년에는 [주체의 기치따라 나아가는 남조선인민들의 투쟁]을 냈고, 1985년에는 [광주의 분노]를 냈다. 이 책에는 광주의 수많은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상황들이 매우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기록돼 있다. 북한의 전쟁 역사기록관들이 곳곳에 배치되지 않고서는 작성될 수 없는 성격의 기록들이다. 반면 우리나라에서 작성한 상황일지는 2005년까지 검찰창고에 비밀 보관돼 왔다. 2005년 이전에는 한국측 자료가 일체 공개되지 않았고, 공개된 내용들도 구체상이 없고, 자세하지도 않았다.

 

3) 광주시위에 대한 전략과 전술 그리고 교훈이 북한 책에 담겨있다. 5.18 현장은 북한이 기획한 것이다. 북한 노동당출판사가 1982년에 펴낸 [주체의 기치따라 나아가는 남조선인민들의 투쟁] 567쪽에는 광주에서 시위대가 사용한 전략과 전술이 설명돼 있고, 609~610쪽에는 광주시위에서 얻은 교훈 3가지가 기록돼 있다.

 

4) 북한은 매년 북한 전지역의 시,,, 도시 단위에서 1주일에 걸쳐 5.18행사를 매우 성대하게 기념한다(5.18답변서 92).

 

5) 북한 교과서에 5.18은 김일성의 영도 하에 일으킨 반파쇼 투쟁이었다고 기록돼 있다(2015.10.14. 연합뉴스).

6. 북한에서 최고인 것에 5.18을 영예의 상징으로 하사(5.18답변서 93).

 

             현장 사진과 검찰 및 안기부 기록에 투영돼 있는 북한특수군

 

1. 광주에 어울리지 않는 불가사의한 전투프로들

 

1980521일의 상황에 참여한 광주 운동권 요원은 없었다. 김종배, 윤상원 등 항쟁본부 구성원도 521일에 모두 도망가 있었다. 521일 군사행동에 참여한 광주인이 없었던 것이다. 부대이동 계획은 극비로 취급된다. 그런데 정체불명의 300명 집단이 20사단 지휘부 차량부대가 광주 톨게이트를 정확히 08시에 통과한다는 극비정보를 알아가지고 장애물을 미리 설치한 후 매복하고 있다가 정확히 08시에 그곳을 통과하는 사단장 지프차를 포함 14대의 지프차를 탈취하여 이웃에 있는 군납업체 아시아자동차 공장으로 향했다.

  

09, 또 다른 300명이 다섯 대의 버스를 타고 아시아자동차 공장으로 와서 매복부대 300명과 합류했다. 이들 600명은 삼엄하게 경비되고 있던 아시아자동차 군납공장을 점령했다. 장갑차 4대와 군용트럭 370여 대를 탈취하여 전남지역 17개 시-군에 위장돼 있는 무기고를 불과 4시간 만에 털어 5,300여 정의 총기와 다수의 폭발물을 탈취했다. 도청에 2,100발의 TN폭탄을 조립해 놓았다. 광주시를 히로시마 잿더미로 초토화시킬 수 있는 분량이었다.

 

2. 사진으로 부는 북한특수군의 광주 활동 일지

 

1) 521일 오후 5, 계엄군이 전남도청을 포기하고 광주시 외곽으로 철수한 다음 전남도청은 북한특수군이 점령했다. 그리고 그들은 광주시민의 접근을 차단했다.

  

2) 전남도청은 북한군의 작전 기지로 이용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