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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앞 발포는 팩트 없는 유언비어 [60쪽 신국판 80% 사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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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2-05-11 14:32 조회1,28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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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청앞 발포는 팩트 없는 유언비어

 

        금남로 살육전 벌여놓고 도청 앞 발포로 모략

                 - 건국대 이용식 교수의 분석을 중심으로 - 




저자 지만원

 

 

              목 차

 

15.18 시체장사의 모델, 조사천 부자

이 불쌍한 아버지를 죽인 존재는 잔인무도한 계엄군입니다

조사천 사망원인에 대한 광주의 자료조작

한겨레신문의 황당한 모략

계엄군이 소지한 카빈총의 진실

5.18조사위 위원장 송선태의 거짓 발표

건국대 이용식 교수가 밝힌 사실

5.18조사위, 증거는 없고 2년 동안 조사한 건 전라인들의 증언들뿐

5.18진상조사는 전라인들이 벌이는 후안무치한 돈 잔치

 

2장 도청앞 발포 없었다. 오로지 금남로 인간사냥만 있었다

광주사망자 154명에 대한 사망원인 조사는 1980.5.28.일부터

1980년 조사 결과와 1995년 조사 결과와의 차이

총상에 대한 상식

521일 오후 1, 계엄군에 의한 집단 발포는 없었다

도청 앞 발포는 유언비어

금남로 옥상을 점령한 존재가 계엄군일 수 없는 이유

 

3장 윤석열 대통령께

국민 위해 목숨 바치는 군을 멸시 조롱하는 나라, 이대로 좋으신지요?

국가를 공격한 폭력집단이 준-헌법기관이라니요?

광주는 왜 계엄군을 철천지원수로 생각할까요?

당시 계엄군은 어떤 존재였나요?

1997년 대법원 판결은 사실 오인 판결이었습니다

[결산]없는 [통합] 없습니다

국군을 살인마 집단으로 끝까지 인식되게 하실 건가요?

국가의 적은 앵벌이 세력입니다

대통령 위에 광주시장 있다는 사실을 아시는지요?

광주교도소 공격 누가 했는지, 이 하나만이라도 따져 주십시오

진실이 유린되도록 방치하실 것인지요

문재인의 날치기 역사왜곡에 새 대통령께서 동참하실 건가요

역사를 헌법에 넣는 것은 법 상식에 어긋난다는 것이 상식 같은데요

자유민주주의국가에서 무소불위의 횡포가 존속돼야 하는지요?

 

             제15.18 시체장사의 모델, 조사천 부자

 

위 사진은 조사천 부자의 사진이다. 아들 이름은 조천호, 들고 있는 사진이 무엇인지조차 모를 어린 아이가 시선 없이 멍하니 영정사진 들고 있는 모습이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사진 자체가 던지는 엄청닌 공감력을 이용하여 좌파들은 이 사진을 지난 40여 년간 시체장사 수단으로 우려먹으면서 톡톡한 재미를 보았다. “오월의 아이”, “오월의 꼬마 상주”.

 

       ‘이 불쌍한 아버지를 죽인 존재는 잔인무도한 계엄군입니다

 

좌파가 팔아먹어온 메시지는 오로지 하나, 이 불쌍한 꼬마 상주를 탄생시킨 존재가 바로 인면수심의 계엄군이라는 것이었다. 521일 도청 앞에 있던 공수부대가 이 가여운 아이의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메시지였다. 이 사진을 보고 눈시울을 적신 전 세계 인류들이 대한민국 국군을 멸시하고 증오했다. 이 한 장의 사진이 대한민국 국군을 살인마 집단으로 인식하도록 한 것이다.

 

            조사천 사망원인에 대한 광주의 자료조작

 

하지만 계암군은 절대로 조사천을 죽이지 않았다. 조사천은 무기고에서 탈취한 카빈총에 맞았다. 그것도 계엄군이 사격할 수 없는 곳을 지나다 8층 건물 옥상을 점령한 괴집단에 의해 저격당했다. 괴집단이란 고도의 체력과 전투기술 그리고 강심장을 연마한 북한 특수군이었다. 5.18자료를 관리하고 있는 5.18기념재단은 2016~2022사이에 1980년 당시의 시체 검시 자료를 변조-조작했다. 그가 카빈소총에 사망했다는 점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차마 계엄군이 소지했던 M16에 맞아 사망했다고는 변조하지 못했다. 단지 카빈총상을 그냥 총상으로 바꾸는데 그쳤다.

 

하지만 조작의 주체는 5.18기념재단만이 아니다. 2019.5.16. 한겨레신문은 그가 계엄군이 소지한 카빈소총에 맞아 사망했다고 보도했고, 2021.12.27.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 위원장 송선태는 도청을 지키고 있던 11공수 소속의 한 모 일병이 시민을 학살하라는 명을 받고 도청 부근의 전일빌딩 10층 옥상에 올라가 조사천을 조준사격 하였다는 증언을 했다고 KBS방송을 통해 공식 발표했다. 조사천이 카빈총에 맞은 것이 아니라 공수부대 일등병에 의해 M16으로 저격됐다는 것이다.

 

                 한겨레신문의 황당한 모략 

 

5.18진상조사는 전라인들이 벌이는 후안무치한 돈 잔치 2019516, 한겨레 기사는 두 가지 허위주장을 폈다. 하나는 1980528일 광주의 민간의사, 군의관, 민간검사, 군검사, 변호사, 광주유지 등 모든 관련 있는 사람들을 불러 모아 구성한 합동조사반’(합조반)이 검시한 자료는 계엄군에 의해 강제로 조작된 것이라는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아래 사진에서 계엄군 1명이 들고 있었던 카빈총 사진을 제시하면서 조사천은 계엄군이 휴대한 카빈총에 죽었다는 주장이다.

  

                계엄군이 소지한 카빈총의 진실

 

한겨레신문이 게재한 위 사진은 공수부대가 아니라 20사단이다. 20사단은 520일 기차를 타고 광주역에 하차하려 했다. 그래서 제3공수 5개 대대가 20사단 병력의 하차과정을 엄호하기 위해 광주역 앞에 집결했다. 하지만, 이를 눈치 챈 광주의 북한군은 광주시민 수만을 동원해 1천명도 채 안 되는 공수부대를 완전 포위했다. 드럼통에 불을 붙여 집합돼 있는 계엄군을 향해 굴리고 차량을 지그재그로 돌진시켰다. 3공수 5개 대대는 밤 10시까지 수만 시위대에 포위돼 몰살 위기에 있었다.

 

한편 이후 21일 새벽 광주역 하차를 포기한 20사단은 송정리역에서 하차했다. 송정리역에서 트럭을 타고 광주시로 진입하려 했지만 이 역시 북한군이 지휘하는 광주시민들에 의해 좌절되었다. 결국 제20사단은 521일 새벽부터 527일 새벽까지 광주시내로 진입하지 못했다. 전남도청을 지키던 4개 공수대대는 521일 오후 5, 도청을 포기하고 구사일생으로 조선대로 퇴각한 후, 오후 7, 어둠을 이용해 무등산 자락을 타고 시 외곽으로 야반도주했다. 이때 11여단의 여단장 모 준장은 지프차를 타고 도주하다가 시위대로부터 스나이핑을 당해 지프차를 버리고 운전수와 함께 무등산 꼭대기 미 방공포 부대로 기어가 가까스로 생명을 부지했다.

 

시 외곽으로 쫓겨난 공수부대는 527일 새벽 1. 극비리에 1개 조당 30~60명 단위의 특공조를 편성해 도청, 광주공원, YWCA, 전일빌딩, 관광호텔로 극비 진입했다. 그리고 새벽 4, 사살 17명이라는 예상외의 극소한 희생자를 내면서 10일 동안의 광주소요를 완전 진압했다. 527, 진압에 성공한 공수부대는 곧바로 원대로 복귀했고, 공수부대가 아닌 제20사단이 40일 동안이나 광주에 남아 평정에 필요한 잔무를 수행했다. 시민들에게 쌀 등 식품을 공급하고, 사상자들의 애로를 해결해 주고, 방화와 파괴로 얼룩진 도시 잔해를 청소하는 등의 복구작업을 해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