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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탐험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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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2-08-27 16:20 조회1,89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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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두환 탐험 [34]

 

김대중의 내란 행진

 

51217:00, 국민회의 지도부, 김대중, 문익환, 예춘호, 이문영, 한완상, 한승현, 서남동, 이해동, 심재권, 장기표, 이헌배, 계훈제 등이 북악파크호텔에서 회동한 내용은 아래와 같다.

 

장기표(9년 감옥, 12년 도피): 각 대학은 일정한 날을 정하여 동시에 각목과 화염병을 사용한 폭력시위를 과격하게 벌여 저지하는 과정에서의 희생을 각오하면서 민중의 호응을 얻어 정부 중요 부서를 점령하게 되면 4.19와 같은 무정부 상태가 되는 데 이를 계기로 민주세력의 구심 인물인 김대중 선생을 사태 수습 인물로 내세워 학생과 민중을 설득하면 정권 장악이 가능하고 사후 수습으로써 민주제도연구소를 주축으로 과도정부를 이끌면 차기 정권까지 잡을 수 있습니다. 저는 심재권과 함께 각 대학 학생회장단에 영향력이 있는 복학생들을 규합, 학생폭력시위를 주도하겠으니, 선생께서는 이문영에게 과도정부 구상을 미리해 두시기 바랍니다

 

김대중: 알았다

 

5.14, 전국 규모의 시가지 폭력시위가 일어났다. 서울에서는 22개 대학 52천여 명의 학생들이 오전 10:00시부터 종로, 광화문, 영등포역 등 도심지에 집결하여 계엄철폐, 신현확 내각 퇴진 등을 외치며 돌과 화염병을 가지고 경찰을 공격했다. 이런 폭력사태는 야간에도 이어져 고대, 이대 등 7개 대학이 철야 횃불시위를 벌였다. 이로써 서울 전역이 치안 마비 상태에 빠졌다. 부산, 대구, 경주, 광주, 전주. 이리, 대전, 공주, 수원, 청주 등 10개 지방에서 11개 대학에서도 가두시위를 벌였다. 파출소 3개 전소, 경찰차량 7대 전소, 경찰 장비 192점 파괴, 경찰관 233명 부상,

 

5.15, 심재철의 서울역 회군으로 대표되는 날이다. 전국 80여 개 대학, 10만여 명의 학생들이 신현확 내각 퇴진, 계엄해제 등을 외치며 유례없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37개 대학 7만여 명의 학생이 14시를 기해 일제히 행동을 개시했으며 시위 양상과 규모는 전일에 비해 매우 악화되었다. 경찰의 진압장비를 빼앗아 파괴하고 경찰에 폭행을 가했다. 서울역 광장에는 10만 학생이 집결하여 경찰차량 3대를 방화했고, 민간차량 4대를 탈취하여 경찰 대열에 돌진함으로서 경찰관 1명이 현장에서 사망하고, 3명이 중상을 입었다. 수적 열세에 몰린 경찰은 오직 청와대 하나만을 지키기 위해 청와대로 배치됐고, 서울시내는 완전히 치안공백상태가 되었다.

 

지방에서도 인하대, 충북대, 전북대, 전남대, 조선대 등 4만여 명이 역전, 시청, 도청 광장에 모여 시위를 벌였고, 전경 1명이 사망했고, 113명이 부상을 입었다. 경찰차 1대가 전소되고, 차량 7대가 파손, 경찰장비 178점이 파손됐다.

 

516, 고대생 500여 명이 ‘5.16 장례식을 열고, ‘5.16 잔당 사형선고를 한다며 행여를 메고 시위를 벌였다. 서울에 15,000여 명, 지방에 15,000여 명이 가두시위를 벌였다. 학생시위가 전국적으로 확대하자 5.16, 국민연합은 '2차민주화촉진국민선언문'을 발표했다. 57일자 제1차민주화촉진국민선언문에서 요구한 비상계엄의 즉각 해제, 신현확총리의 즉각 퇴진, 정치범의 전원석방 및 복권, 언론의 자유보장, 유정회, 통일주최국민회의와 정부 개헌심의위원회의 즉각 해체 등에 대하여 51910시까지 정부가 명확한 답변을 할 것을 요구하고, 이 요구가 관철되지 아니하면 522일 정오를 기해 대정부 투쟁에 돌입할 것을 선언하였다.

 

이어서 김대중은 실로 위협적인 반정부 선전포고를 했다. "민주 애국시민은 유신체제를 종결 짓는 민주투쟁에 동참하는 의사표시로 검은 리본을 가슴에 단다. 비상계엄은 무효이므로 국군은 비상계엄령에 의거한 일체의 지시에 복종하지 말 것이며, 언론은 검열과 통제를 거부하고, 전 국민은 민주화투쟁을 용감히 전개한다. 정당, 사회단체, 종교단체, 노동자, 농민, 학생, 공무원, 중소상인, 민주애국시민은 522일 정오에, 서울은 장충단 공원, 지방은 시청 앞 광장에서 민주화촉진국민대회를 개최한다"

 

이날 오후 17:40분경, 전국 44개 대학총학생회장단이 이대에서 연합회의를 열었다. 이들은 "비상계엄을 522일까지 해제하라, 과도정부는 민주적 정부에 연내에 정권을 이양하고 정치일정을 522일까지 밝혀라, 모든 양심범을 즉각 석방하라"고 위의 국민연합 선언 내용을 반복하였고, 522일에 국민연합과 행동을 같이 할 것을 결의했다. 경인지구 15개 전문대학들도 경기공업전문대학에서 회동을 갖고 이에 가세했다. 전국으로 치닫는 이 폭력사태를 방치할 경우 국가 전체가 무정부 상태가 되고, 급기야는 국민회의가 의도한 바대로 국가가 전복될 것이라는 예측이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516, 전두환은 이학봉 수사국장으로 하여금 이희성 계엄사령관과 주영복 국방장관에게 국기문란 사건과 권력형 부정축재자 수사계획을 통보했다.

 

517, 10:00, 전두환은 시국수습방안을 보고하기 위해 이학봉과 함께 청와대에 도착했다. 최규하는 보고 취지에 동의했지만, 국회해산은 부결하였고, 국보위 설치에 대해서는 취지에는 동감하나 내각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관계기관의 의견을 들은 후에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비상계엄의 전국 확대는 쾌히 승낙했고, 수사는 즉시 시작하라고 지시했다. 당일인 5.17일 오후 7시경, 최규하는 전두환을 불러 권력형 부정축재자 1명의 삭제를 지시했다. 그리고 이어서 5.19, 국보위를 긴급명령으로 하지 말고 현행법령의 테두리 내에서 설치하라 지시했다.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선고(1981.1.23.)

 

1980911일 결심 공판에서 군검찰은 김대중 피고인에게 사형을, 다른 피고인에게는 7년에서 20년 사이로 구형했다. 9171심 선고 공판에서 재판부는 김대중에게는 내란 음모, 국가보안법, 반공법, 계엄법, 외국환 관리법위반죄를 적용하여 사형을 선고했고, 나머지에 대해서는 징역 2년에서 20년을 선고했다. 117일 김대중 등 12명은 대법원에 상고했으나 81123일 대법원은 상고를 기각했다. 하지만 전두환 대통령은 국민 화합을 위해 김대중을 무기징역으로 감형하고 피고인 12명 전원에 감형조치를 취했다.

 

김대중, 누구 믿고 정부에 선전 포고했나?

 

19459, 김대중은 22세의 나이에 남로당목포 시당 청년부장이 되어 그 후 사망할 때까지 골수 공산주의자로 활동했다. 1971,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에 패하자 신병 치료차 일본으로 건너갔다. 197210월 유신 계엄령이 선포됐고, 국회가 해산되던 민감한 시기에 김대중은 일본과 미국을 왕래하며 한국에 대한 경제원조 및 군사원조를 중단시키고자 노력했다. 1973년 그는 '베트콩'으로 불리는 종북 요인들과 함께 반국가 단체인 한민통(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을 결성하여 의장에 취임했다. 한민통의 핵심 요원은 김종충, 조활준, 배동호, 김재화, 곽동의, 정재분 등 소위 '베트콩들'이었으며 이들은 조총련과 북한으로부터 자금을 받는 인물들이었다. 육영수 여사를 저격사살한 문세광이 한민통 멤버이고, 육여사 저격 직후 국내에 잠입했다가 간첩으로 체포된 김정사도 한민통 소속이었다. 이로 인해 대법원은 지금까지도 한민통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해놓고 있다.

 

19734, 김대중은 미국 하버드대 코헨 교수에게 한국의 박정희 정권을 타도하기 위해서 미국이 한국에 대한 군사원조를 중단하고 주한미군을 철수해야 한다며 미 의회 지도자에게 그런 압력을 넣어 달라 호소했다. 이에 분노한 중앙정보부는 197388, 그를 도쿄 팔레스 호텔에서 납치하여 129시간 만에 서울로 압송했다. 이에 대해 특히 일본이 주권침해라 반발했고, 이에 김종필 총리가 일본을 방문하여 사과하는 선에서 사건 86일 만에 마무리됐다. 국제적 비난이 확산된 것만큼 김대중의 자유공간도 넓어졌다. 그는 일본에 있는 김종충, 배동호 등과는 전화로, 다른 구성원들과는 김녹영 및 일본기자 등을 통해 통신연락을 취하면서 반정부 음모를 계속했다.

 

이렇게 공산사주의가 골수에 배어있는 김대중은 대통령이 되어서도 박정희-전두환이 쌓아올린 국가의 재산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빼내다 북한에 주었다. 이런 김대중이라면 죽는 순간까지 북괴와 선이 닿아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누구든 갖게 될 것이다.

 

197010.26 이후 김일성은 이른바 김일성 교시를 통해 남한 간첩들에게 계속 전민 봉기를 독려해왔다. 그리고 김대중은 그야말로 쉴 새 없이 학생시위를 주동하여 정국을 혼란하게 만들고 학생시위가 클라이맥스에 올랐을 때인 1980516, 국가를 향해 선전포고를 했다. 감히 어느 누가 국가를 향해 선전포고를 할 수 있다는 말인가. 60만 대군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 행정부와 군이 그런 선전포고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상식이다.

 

김대중은 그가 잡혀갈 줄 알고 김일성이 독려하는 전민 봉기’(전국 봉기의 북한 표현)를 선언한 것이다. 김대중은 4월 초부터 학원가를 중심으로 한 시위가 나날이 격화되는 모습을 보았고, 드디어 515일에는 서울역 10만 집회의 위력을 보았다. 그 학생시위는 사실상 머리 좋은 대남공작 요원들이 연출시킨 것이라는 점을 김대중도 알았을 것이다. 서울역 시위까지를 지켜 본 김대중은 자기가 구속되는 것이 광주사태에 명분을 주는 불쏘시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점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더구나 그는 광주사태가 성공할 것이라는 점을 굳게 믿었을 것이고, 이에 대비하여 24명으로 구성된 혁명내각’, 이른바 쇄도우 캐비넷’(Shadow Cabinet)을 작성해 놓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김일성-김정일 부자가 자신만만하게 주도했던 518광주 게릴라전은 판단 미스로 실패하고 말았다. 김일성 부자는 광주사태의 성공을 너무 확신했던 나머지 고위직들과 8명의 로열패밀리까지 광주로 보내 자신이 광주에 준비해놓은 작전을 구경시키고 싶어했다. 자신들의 위업을 보게 하여 으스대고 싶어한 것이다. 김일성은 6.25때에도 오판을 하여 남침했다. 남으로 밀고만 내려가면 김일성을 추종하는 남한 주민 20만이 적화통일에 합세할 것이라는 박헌영의 말을 신뢰했다가 낭패를 본 역사가 있다.

 

광주사태에 대해서도 무기고만 털어 반골기질이 농후한 전라도 주민, 김대중이 이끄는 반국가 세력에게 총기를 주면 이들이 합세하여 봉기에 참여하게 되고 이어서 전국적으로 봉기가 확산될 것이라는 판단을 했을 것이다. 이런 판단이 없고서는 훗날 들통 날 수 있는 불장난, 유엔에서 전범국가로 재판을 받을지도 모를 지극히 위험한 불장난을 저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개념 있는 광주시민들은 총을 받으려 하지 않고 총기를 나누어주는 북한군을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다가 가버리곤 했다.

 

이에 다급한 북한 특수군이 북에 SOS를 쳤다. 신속하게 김일성 지령이 내려왔다. “교도소를 공격하여 2,700명의 수용자를 해방시키고 그 인력을 폭동의 동력으로 삼으라.” 촉각을 다툴 만큼 다급한 명령이라 이 지시내용이 암호화되지 않은 채 계엄당국에 감청됐다. 계엄당국은 전투력이 미약한 광주지역 향토사단(31사단)이 지키고 있던 부대를 철수시키고, 전투력이 가장 강한 공수 3여단을 긴급 투입해 야간에 6회씩 공격해 오는 북한군을 대량으로 사살할 수 있었다.

 

북한은 1980년에 제작된 5.18기록영화와 4가지 문헌들을 통해 475명이 '무리 죽음'(떼죽음) 당했다며 살기어린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저자는 많은 증거자료와 논리로 475명 중 430명이 청주에 가매장됐던 무연고 유골이라는 분석을 [5.18답변서]에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놓았다.

 

북한 당국은 등교 시 확성기를 통해 무등산의 진달래라는 구슬픈 노래를 틀어준다. 동강난 조국을 하나로 다시 잇자/ 억세게 싸우다 무리 죽음 당한 그들/ 사랑하는 부모형제 죽어서도 못 잊어/ 죽은 넋이 꽃이 되어 무등산에 피어나네/” 475명의 넋이 무등산의 진달래에 피어있다는 뜻이고, 475명이 북한의 부모형제라는 뜻이고, 억세게 싸운 이유는 통일을 이룩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결국 김일성은 그토록 공을 들여 길러놓은 일당백의 살인 기계를 한 순간에 잃게 되었고, 600명의 살인 기계 중 125명만 살아남아 부득이 524일 철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2022.8.27.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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