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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42개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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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2-12-25 22:12 조회7,41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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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필로그(42개 증거)

 

역사에 무관심한 국민이 민주화세력에 마취 돼

 

해방 이후 태어난 남한의 역사적 인물과 남한에서 발생한 역사적 사건 모두가 남한에는 치명적으로 불리하고 북괴에는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왜곡돼 있다. 이러한 왜곡은 제5공화국에 이르기까지 지하공작 차원에서 은밀히 이루어지다가 19886공이 들어서는 순간부터 급속도로 노골화됐다. 김일성을 광신하는 주사파를 선두로 한 빨갱이들이 민주화 세력으로 포장하여 언론과 합작하여 선전-선동전을 펴는 순간부터 국민의 두뇌는 완전 마취상태에 돌입했다. [민주화]라는 약물에 마취가 된 두뇌들은 빨갱이들의 선전-선동만 맹신했다.

 

생일 없는 유일한 나라

 

1945년의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광복절은 있는데, 1948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세운 사실을 기념하는 건국절은 없다. 이 세상에 생일 없는 사람 있는가? 생일 없는 국가 있는가? 그런데 지금 현재까지 대한민국에는 생일이 없다. 건국을 반대하고 부정해온 빨갱이들이 대한민국은 태어나서는 안 되는 더러운 나라라고 주장해왔고, 그들이 사회를 장악했기 때문에 국가에 생일이 없는 것이다. 생일 없는 대한민국! 그래서 이승만 대통령 묘비에 쓰였던 [건국 대통령]이 어느 날 날치기 당해 [초대 대통령]으로 둔갑했다.

 

4.3사령관 김달삼 묘가 평양 애국열사릉에 있는데도

 

건국을 반대하기 위해 일으킨 4.3 반란은 위대한 민주화 역사로 등극해 있고, 이를 진압한 미군정과 이승만 세력은 [살인자]로 매도돼 있다. 4.3사건을 지휘한 [한라산 인민군]의 총사령관은 23세의 김달삼이었다. 빨갱이들은 그가 북과도 관계없고, 남로당과도 관계가 없는 순수한 민주화운동의 지도자였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평양 신미리 [애국열사릉]에는 김달삼이 1.5m 높이의 대리석 묘비와 함께 묻혀 있다. 김달삼은 1948825, '해주 남조선인민대표자회의'에서 연설을 하여 극찬을 받았고, 한국전쟁 전인 1950322일 빨치산으로 남파하여 국군8사단과 교전 중, 강원도 정선군 여량면 봉정리에서 사망했다. 이것이 사실인데도 불구하고 빨갱이들은 역사에 무관심했던 국민을 상대로 허위사실을 주입시키고 있다. 평화롭게 살고 있는 제주도 주민을 미군정이 느닷없이 들어와 마구 학살했기 때문에 정당방위 차원에서 주민들이 들고 일어나 항거한 사건이 곧 4.3역사라는 것이다

 

나라를 지킨 한국과 미국은 살인마, 김대중과 김일성은 민족의 지도자

 

미국은 호전국이라 한국에까지 와서 양민을 학살한 [살인집단]으로 매도돼 있다. 대한민국은 태어나서는 안 될 더러운 국가인 것으로 매도돼 있다. 이승만은 부정선거 독재자, 박정희는 친일 독재자, 전두환은 학살자로 매도돼 있다.

 

반면 정말로 매국노인 김대중은 민주화의 조상으로 신격화돼 있다. 김대중은 무얼 한 사람인가? 적장인 김정일을 평양에서 단둘이 접선하여 6.25남침을 정당화시켜 주면서 북괴가 주장해온 연방제 통일을 하자고 합의해 주었다. 이것도 모자라 김정일에게 검은 돈과 핵 자금을 공급해 주었다. 지뢰제거 장비를 유럽에서 긴급 공수해와 적장에 넘겨주는 이적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국가예산을 퍼부어 전라도 땅 전체에 김대중 궁전을 세웠다. 국고 6조 이상을 털어 [김대중 문화궁전]을 건설했고, 금값보다 비싼 호화도로와 놀이시설로 도배했다. 국민이 역적을 위해 세금을 내고 있는 것이다.

 

 

소 군정 사령관이 직접 지휘한 9월 총파업과 10월 폭동도 민주화운동

 

1946년에 발생한 9월 총파업과 10월 폭동도 미제의 탄압에 항거한 민주화운동이라고 선전해왔다. 하지만 이 거짓말은 북한을 통치했던 소련군 군정사령관 시티코프 비망록이 공개되면서 들통이 났다. ‘시티코프 비망록19950509, 중앙일보가 공개했다. 이 비망록에는 9월 총파업이 조선공산당의 지시 차원을 훨씬 넘어 소군정의 직접적인 지시에 따른 것이고, 10월 폭동에도 조선공산당 지도부와 소군정이 직접 개입한 사실이 기재돼 있다. 소군정은 9월 총파업에 200만 엔, 10월 대구폭동에 300만 엔을 지원했다. 이 시티코프 비망록이 공개되는 순간 잠시 주춤했던 빨갱이들은 언제 시티코프 비망록이 공개되었느냐는 듯이 다시 왜곡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증거가 너무 명백한 여순반란사건도 민주화운동

 

1948년 여수에는 국경(국방경비대) 14연대가 주둔하고 있었고, 제주도에는 제9연대가 경찰과 함께 한라산 유격대에 맞서 힘겨운 전쟁을 하고 있었다. 제주도 사람들로만 구성된 9연대에는 빨갱이들이 득실거렸다. 더구나 연대장인 김익렬은 한라산 유격사령관 김달삼과 내통하견서 병력도 보내주고 총과 탄환까지 공급해준 빨갱이였다. 육지에서 여러 차례 지원 병력들이 축차적으로 파견되었지만 한라산 유격대와 내통하는 주민들이 많아 고전을 하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1948510일의 국회의원 선거를 방해하기 위해 그 이전인 43일에 제주도 전체를 뒤흔드는 폭동이 일어난 것이다. 이승만은 이런 폭동세력이 준동하는 가운데 그해 815일 건국 행사를 주도했다.

 

건국은 했지만 제주도 전황은 불리하게 전개되었다. 이승만 정부는 여수에 있는 제14연대를 제주도로 파견하기로 했다. 19481019일은 14연대가 제주도로 가기 위해 여수항을 출발하는 날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제14연대가 제주도로 떠나는 척하다가 총을 거꾸로 들이대고 위화도식 반란을 일으켰다. 여수는 물론 순천에까지 몰려가 경찰과 공무원 가족들을 몰살시킨 후 백운산으로 도주해 공비가 되었다. 백운산은 광양 지역 산으로 지리산의 반야봉과 노고단에 이어 세번째로 높은 산이다. 이렇게 발생한 공비를 토벌하라고 임명한 공비토벌사령관 송호성 준장은 6.25가 터지자 인민군 계급장을 달았다. 이것이 민주화운동이라는 것이다.

 

북괴가 정의한 [민주화운동]

 

문재인 시대에서 널리 확산된 낱말이 [사람 중심]이다. 북한 사전에서 [사람]을 검색하면 남한 사회의 사람과 다르게 정의돼 있다. 남한에서는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모두가 다 사람이다. 반면 북한이 정의한 사람은 노동자 농민 등 무산계급이다. 재벌, 남한정권, 미국은 [사람의 적]으로 규정돼 있다. 주체사상의 공식 명칭은 사람 중심 철학이다. 황장엽은 남한에 망명하여 줄곧 [사람 중심][인간 중심]으로 살짝 바꿔 남한의 지식인들에게 주체사상을 강론했다.

 

[진보]의 정의는 무엇인가? 김일성 주체사상에 눈을 뜨고 그것만이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태양이라는 사실을 깨우치고 이를 열심히 전파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진보]의 반대는 [보수반동], 북한은 남조선 역사를 [진보][보수반동] 사이의 [모순 투쟁] 역사로 정의한다. 남조선에서의 모든 소요와 폭동은 다 [진보]가 주도했다는 뜻이다.

 

[민주화운동]도 김일성이 지어낸 언어다. 사람에게는 세 개의 적이 있다. 남조선 인민을 노예로 통치하고 있는 미국, 사람의 고혈을 빨아먹고 사는 자본가 그리고 주체사상을 탄압하는 파쇼정부다. 사람(노동자 농민)이 사람답게 살려면 주체사상에 눈을 떠야 하는데 미국의 앞잡이인 남조선 파쇼정부가 이를 탄압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려면 미국과 자본가와 파쇼정부를 깨부숴야 하는데 이를 위한 [전투 행위]가 곧 [민주화운동]이라는 것이다. [반국가 폭동]을 열심히 벌이는 것이 [민주화운동]이라는 뜻이다.

 

남한의 빨갱이 폭동은 모두가 민주화운동

 

1980421, 강원도 사북탄광 광부 3,500여 명이 한 여성을 나체로 기둥에 묶어 놓고 47시간 동안이나 린치를 가하고 집단 성폭행을 하고 국부를 난자하는 등 제주 4.3에서의 공산 만행과 빼닮은 만행을 저질렀다. 그런데 이런 폭행을 주도한 이원갑과 신경은 2005민보상위로부터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았다. 이어서 2008423, 진실화해위는, 사북탄광 사건은 민주화운동이었는데 계엄사가 진압이라는 이름으로 가한 [인권침해 사건]이라며, 국가는 이들 폭동자들에게 사과하고 보상을 해주라고 권고했다. 바로 이 진실화해위의 위원장에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김광동 교수를 임명한 것이다.

 

1989년 부산 동의대에서 폭도들이 경찰 7명을 불에 태워 살해했다. 당시 이들 폭도는 무기징역형 등을 받았지만 김대중 정권은 이것이 민주화운동이라며, 가장 악랄했던 무기징역자에게 당시 화폐 6억 원을 배상케 했다. 군사정권에 부역한 경찰은 많이 죽일수록 민주화의 공로가 크다는 것이었다. 이런 민주화의 카테고리 속에 4.3이 있고 5.18이 있는 것이다.

 

백주 대낮에 눈뜨고 장기 도둑맞는 이유

 

저자는 이 책에서 5.18을 북괴가 주도한 게릴라전이었다고 믿을 수밖에 없는 42개 정황증거들을 모두 정리했다. 여기에 있는 42개의 증거들은 다른 증거나 다른 논리에 의해 부정될 수 있는 성격의 것들이 아니다. 성격상 이 42개 증거를 사실이 아니라고 뒤집을 사람 이 지구상에는 없다. 42개 증거를 뒤집지 못하면 5.18은 북괴가 저지른 소행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게 된다. 이렇게 정답이 나와 있는데도 불구하고 저자는 광주에 24천만 원의 배상금을 뜯겼고 2년의 실형을 선고 받아 놓고 있다. 눈 뜨고 장기를 탈취당한 것이다.

 

역사에 대한 원초적 진실은 이미 다 밝혀져 있다. 그런데 백주 대낮에 이렇게 확고부동한 진실이 왜 뒤집히는가? 눈을 뻔히 뜨고 있는데 어떻게 심장을 도려내 가고 콩팥과 간을 도려내 가는 것일까? 이렇게 눈을 뜨고 장기를 강탈당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살아가는 기술만 개발하고, 공적인 일에 무관심한 이기적인 국민들 때문이다. 철저한 무임승차자들이 빨갱이들을 키워주고 그들의 선동을 액면 그대로 수용하면서 그들이 깔아준 멍석에서 춤까지 추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연구를 방해하는 사람들

 

아무리 증거를 밝혀도 그 증거들을 읽고 분석해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자기의 자의적 생각만을 가지고 증거를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무시하는 것까지는 자유다. 하지만 언론의 공간, 집회 공간, 유튜브 공간에서 비논리적인 잣대를 그럴 듯하게 포장하여 20년 동안 연구한 내용을 뿌리부터 뒤흔드는 것은 논리 문제를 떠나 신사도에 대한 문제가 된다. 이들의 주장들을 4개로 요약하고 각각에 대한 반론을 제시한다. 여기까지가 저자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600명씩이나 되는 많은 집단이 어떻게 들키지 않고 광주에 올 수 있는가?

 

이는 조갑제가 퍼트린 선동 내용이다. 북괴군이 광주에 와서 작전을 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기도비닉(企圖秘匿)이다. 의도와 행위를 철저히 감춰야 하는 것이다. 북괴가 600명이나 되는 특수군을 남으로 보냈다는 것이 발각되면 그 600명은 단숨에 사살된다. 들키는 날에는 북괴가 졸지에 유엔에서 전범국으로 재판을 받게 된다. 이런 마당에 그 어느 바보가 600명이나 되는 귀한 특수군을 남의 눈에 뜨이라고 대규모로 행군시켜 보내겠는가? 참고로 북 특수군은 10세 이전의 나이에 데려다 살인 기계로 훈련시키고, 만능인간으로 훈련시켜 제조해낸 매우 귀한 자산이다. 한 사람의 특수군이 일반 병사 80명을 제압했다는 탈북자 증언도 있을 정도다.

 

196833명이 청와대로 침투한 김신조 부대의 경우를 살펴보자. 33명은 수가 소규모이었기에 철책선도 뚫었고,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청와대 외곽에까지 침투할 수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이 경찰관의 검문에 걸려 총소리를 내는 바람에 우리 군에 비상이 걸렸다. 그랬다 해도 전두환 중령이 조명탄 발사 시스템을 예비해놓지 않았다면 캄캄한 밤에 몇 명이 내려왔는지 몰랐을 것이다. 조명탄이 갑자가 하늘을 대낮 같이 밝혔기 때문에 30명을 조준 사격할 수 있었다.

 

만일 33명이 아니라 600명이었으면 어떠했을까? 철책선을 뚫지도 못했을 것이고, 청와대로 오기 전에 벌써 들켰을 것이다. 그 어느 바보가 공들여 양성한 귀한 자산을 600명 단위로 적지에 침투시키겠는가? 이런 발상을 하는 사람이나 이 말을 듣고 수긍하는 사람들은 군 복무를 하지 않은 사람들이거나 철책선을 구경해보지 못한 사람들일 것이다. 그럼 당치도 않은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무슨 이유로 하는 것일까? 바로 군의 사정을 모르는 국민, 상상력이 변변치 못한 국민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을 선동하려는 것이다.

 

저자는 소위로부터 대위에 이르기까지 무려 4년 동안 베트남에서 게릴라들과 전투를 했다. 이런 경험이 있기 때문에 5.18에 대한 국가기록과 북한기록 그리고 광주가 보관한 기록들에서 게릴라 냄새를 물씬 맡았던 것이다. 게릴라전은 전투요원들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6.25 전쟁에서 미군이 엄청난 희생을 치른 것은 민간 신분인 부녀자들과 노인과 아이들 때문이었다. 정규군은 아이들과 노인 부녀자들을 앞세우고 그 뒤에서 포복해 접근한다. 이런 아녀자들과 노인들을 향해 발사할 군인은 별로 없다. 앞장서서 접근하는 민간인들이 지뢰를 다 폭파시켜 준다. 피난민을 가장한 여인이 미군 후방으로 침투해 포병 사격을 미군부대로 유도했다. 따라서 남녀노소 민간부대는 게릴라 부대의 필수 편성 요소다. 노근리 사건이 이를 극적으로 잘 설명해 주고 있다.

 

1980년에도 북괴는 정확히 600명이라는 훈련된 군사조직만 보낸 것이 아니었다. 600명 말고도 1,000명 규모의 민간인들이 대거 내려왔다. 믿기 어렵겠지만, [유병현 회고록]에 의하면 당시 합참의장 유병현이 북괴에게 통로를 활짝 열어 주었다. 전남해역을 경비하던 부대를 모두 전북 변산반도 이북으로 재배치시킴으로써 전남해안을 모두 비워준 것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이런 반역행위는 6.25 직전에도 있었다. 6.25직전 적을 이롭게 하는 10가지 조치를 취해 그렇지 않아도 오합지졸이었던 한국군을 무장 해제시킨 사람이 있었다. 그 반역자가 누구일까? 군 선배들의 전언이나 당시의 정황을 분석해 보면 국방차관 장경근일 것이라는 가능성이 매우 높다.

 

북 특수군이 600명씩이나 왔느냐, 믿어지지가 않는다이렇게 말하는 사람에게 특수군 600명만 온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많은 숫자의 남녀노소, 김일성가의 로열패밀리까지 대규모 수송선을 타고 뻥 뚫린 해상을 유유히 통과해 광주에 대거 진입했다고 말해주면 그들은 수긍을 할까? 그러면 북괴로부터 들어온 민간인 규모는 얼마나 될까? 특수군 숫자가 600명이었다는 것은 남북한 4개 문서에 다 같이 드러나 있다. 그런데 북괴 민간인 숫자는 사진들에만 군중 단위로 나타나 있고 기록에는 없다. 이 단계에서는 합리적 추측이 동원될 수밖에 없다.

 

중요한 포인트 하나가 음미돼야 한다. 발각된 광수는 모두 661명이고, 이중에는 군인 광수가 겨우 90명 정도밖에 없다. 519일에 촬영된 현장 사진에는 주로 공수부대원이 곤봉을 휘두르는 장면들이 들어있다. 521일 사진에는 전투준비를 위해 무기를 챙겨주는 어깨들과   교도소 공격을 위해  트럭을 타고 출동하는 모습들이 담겨있다. 523일 촬영된 사진들에는 민간 집단이 총 동원되어 시체장사 등 대한민국을 살인마 정부로 모략하는 모습들이 담겨 있다. 523일은 북괴군 600명 대부분이 교도소 공격 과정에서 살해 된 이후다. 600 명에서 475명이 살해됐다면 살아있는 특수군은 125명이 되는 셈이다 이중 90명이 광수로 발각된 것이다. 그러면 661명의 광수 중에서 군인광수 90명을 빼면 571명인데 이 숫자가 민간 광수들인 것이다.

 

그런데 광주에 나타난 군중 중에서 광수로 발각된 사람은 40-50% 내외로 보인다. 그렇다면 광주에 온 북괴 민간인 규모는 1,000명 정도가 되지 아닐까 하는 계산이 선다. 광주에 나타난 북 특수군은 600, 이들은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 당한 직후부터 잠수함과 육로를 통해 소규모 단위로 침투해 아지트에 기거하면서 여관 등으로 집결했을 것이고, 또는 다리 밑에 천막을 치고 넝마주이 등으로 위장해 소규모로 정찰 활동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일단 교두보(공격을 위한 발판)를 확보한 후, 전남 해안을 장악했을 것이다. 그러고 이 장악된 해안을 통해 대규모 수송선이 1,000명 단위의 민간 그룹을 태우고 광주에 입성했을 것이다.

 

북한군이 어디로 와서 어디로 사라졌는지를 설명하지 못하면 그 600명은 광주에 오지 않은 것이 된다.

 

이 역시 조갑제가 유포한 말이다. 저자가 놀란 것은 2022216. 서울중앙지법 2심 판사의 선고 내용에 바로 조갑제가 퍼트린 이 내용이 들어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조갑제는 20211월 당시 국힘당 원내대표 나경원을 찾아가 지만원을 [5.18진상규명위원회] 상임위원으로 뽑지 말아달라는 로비를 폈다. 2013년 초 2개 종편방송이 “5.18은 북괴소행이라는 취지의 방송을 하자 조갑제가 나타났다. “북한군이 단 1명이라도 왔으면 내가 목숨을 내놓겠다며 찬물을 부었다. 이러했기에 조갑제가 판사에까지 접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제 논리 국면으로 들어가 보자. 조갑제의 이 말을 비유적으로 전환해 보자강도를 당한 시민이 강도를 당했다고 경찰에 신고했는데 경찰이 와서 "강도가 어디로 와서 어디로 도망갔습니까"하고 물었다. 시민은 "그건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히 강도는 당했다

 

이런 비유적 상황에 대해 조갑제는 어디로 와서 어디로 도망갔는지 모르면 당신은 강도당한 것이 아니다이렇게 주장하는 것이다. 만일 집주인이 “CCTV가 방에만 설치돼 있고, 진입로와 퇴출로에는 설치돼 있지 않아 증거가 없다. 여기에 방안에서 물건을 훔친 강도의 모습이 있다.” 이런 경우라면 강도를 당했다는 사실을 경찰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논리적 비유를 5.18에 적용해 보자. 저자에게는 북괴군이 들어온 통로와 나간 퇴로를 촬영한 사진들이 전혀 없다. 그런데 광주 현장을 촬영한 사진들은 수백 장 있다. 그 사진들을 보니 5.18은 광주시민의 단순한 시위가 아니라 무시무시한 군사작전이더라. 그리고 당시 계엄군의 상황일지, 그것들을 정리한 안기부 보고서, 그것을 또 정리한 검찰 보고서를 보니 600명 단위의 부대가 활동했고, 600명은 300명 단위로 부대 편성이 돼 있더라. 또 그 600명이라는 숫자는 북괴 당국이 발행한 2개의 대남공작 역사책에도 기재돼 있더라. 600명의 맥가이버 부대들 이외에 사진에 나타난 남녀노소 군중을 보니 규모로 보아 또 다른 1,000명 정도가 더 왔더라.

 

이는 저자와 노숙자담요의 전문적 판단과 영상분석의 결과다. 조갑제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 말이 없다. 201928, 국회공청회에서 국회가 조갑제에게 정식으로 공식 서한을 보냈다. 공청회에 나와서 공식 토론을 하라 권고한 것이다. 수많은 단체들이 조갑제에게 공개 토론을 주문했고, 저자 역시 그에게 편지를 보내 공개 토론하자 했다. 조갑제는 이 모두에 등하지 않았다. 앞에는 나서지 못하고 신사답지 못하게 뒤에서만 쏠고 다니는 것이다.

 

5.18을 북한이 저지른 것은 확실한데 600명이라는 숫자는 있을 수 없고, 고정간첩을 주기적으로 북으로 데려다가 전투훈련을 시켜 무기를 털고 무장공격을 한 것이다. 지만원이 광수를 주장하는 것은 커다란 실수이며, 이 실수는 나 전광훈이 5.18 진실을 널리 확산하는데 방해가 되고 있다.

 

이는 전광훈 목사가 하는 말이다. 고정간첩에는 남자도 여자도 있고, 노인들도 있다. 이들의 주목적은 무장전투가 아니라, 남한 내에 정보망을 확충하고 요인을 포섭하고, 전략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는 두뇌집단이지 전투집단이 아니다. 북괴가 간첩을 뽑을 때 머리 좋은 사람을 뽑지 무술 잘하는 사람을 뽑던가?

 

전광훈 목사는 북괴가 주기적으로 남한 고정간첩들을 북으로 데려가 군사훈련을 시켜 다시 파견한다는 말을 한다. 그래서 광수가 북으로부터 왔다는 저자의 연구 내용이 틀렸다는 것이다. 5.18을 북괴가 주도한 것까지는 맞는데, 그 병력 수가 600명이라는 것도 말이 안 되고, 600명이 북에서 왔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또 다른 1,000명 규모의 남녀노소에 대해서는 전광훈의 상상 밖 이야기다. 그가 간첩 무장론을 주장하는 유일한 근거는 ‘90이 넘은 전직 노인 간첩으로부터 들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정보특기의 장교였고, 국정원에서 간첩에 대한 교육을 4개월이나 받은 적이 있다. 경력도 없고, 학문적 배경이 없는 사람이 최소한의 예의도 없이 함부로 학자의 업적을 격하시키는 행위는 인격에 관한 문제이고, 교만에 관한 문제일 것이다.

 

1968년 김일성은 겨우 33명의 특수군을 청와대로 보냈다. 전광훈 목사의 말대로라면 그 33명을 남한의 고첩으로 구성하면 간단할 텐데, 왜 굳이 북한에 훈련시켜 놓은 특수군을 북으로부터 출발시켰는가? 그해 11월 김일성은 울진과 삼척으로 무장특수군 120명을 침투시켜서 금방 발각되게 했다. 전광훈 목사의 말대로라면 이들 120명 정도면 남한에 있는 고첩들에서 뽑아 조직할 수 있었는데 왜 멀리 북한에서 120명 단위로 보냈다가 들통나게 했는가?

 

19969월 강릉에는 상어급 잠수함을 타고 대령이 이끄는 특수군이 왔다. 잠수함이 좌초되는 바람에 대령 이하 11명이 스스로 총으로 자결을 했다. 전광훈의 말대로라면 남한 간첩들을 동원하면 될 일이었는데 왜 아까운 현역대령과 비싸게 훈련시킨 살인 기계들을 북에서 내려보냈는가?

 

이렇게 논리에도 어긋나고 현실과도 동떨어진 이야기를 수많은 군중을 향해, 방송을 통해 선동하고, 한 학자가 20년 동안 연구한 내용을 함부로 쓰레기 처럼 취급하는 것은 더구나 종교인으로서는 하지 말아야 할 금기사항이 아닐까? [광수]는 북괴군의 상징으로 역할해왔다. 꽤 많은 국민들이 저자의 연구내용을 빨리 신뢰하는 이유는 [광수]를 통해서다. [광수]가 무너지면 저자의 신뢰가 하루아침에 날아간다. 이는 저자의 목숨이 날아가는 것과 같은 것이다. 전광훈은 저자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661명의 광수 중에는 50명 이상에 달하는 탈북자들이 끼어 있다. 꽤 많은 탈북자들이 전광훈 캠프에 모여 있다. 저자는 공개적으로 그들을 위장한 간첩으로 의심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그들은 그들이 광수임을 적극 부인한다. 전광훈은 이들 위장 탈북자들을 대변하기 위해 저자와 저자의 연구내용을 짓밟고 있는 것이다.

 

지만원은 205.18을 연구했지만 나 전광훈은 40년 동안 5.18을 연구했다.

 

저자가 2002년부터 5.18을 연구한 것은 사실이다. 사실인 이유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총 14권의 5.18 저서를 시판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광훈이 40년 동안 5.18을 연구했다는 것에는 아무런 증거가 없다. 시판용 책자나 연구책자가 없는 것이다. 전광훈은 1956년생이다. 지금이 2022년이다. 지금부터 40년 전이라면 1982년이다. 그가 26세였을 때부터 5.18을 연구했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이는 논리적인 이야기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선동 목적을 위한 허풍에 불과하다.

 

            맺는 말

 

이로써 5.18에 대한 연구의 핵심인 42개 증거를 총정리한다. 아울러 저자의 연구를 방해하는 사람들 중 가장 대표적인 두 인물의 반격 내용에 대해 논리적 반론을 충분히 제기했다고 생각한다. 이로써 저자는 마지막으로 Q.E.D.의 마침표를 찍을까 한다.

 

 

2022.12.25.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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