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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조사위 3.3년 조사내용에 대한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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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3-10-18 23:56 조회6,38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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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5.18 조사위 3.3년 조사내용에 대한 평가

 

목 차

조사사업의 프로필

 

조사 사업 태동의 발단

1) 5개월 방송

2) 광주의 반격

3) 5.18진상규명법 제정

2. 조사위 조사 일정

3. 예산 및 인력

4. 지휘부 구성

5. 송선태가 위원장이 되어서는 안되는 결정적 하자

6. 지휘부 활동의 객관성 문제

 

조사 결과

 

조사 과제

조사 결과

1) 조사 목적 불순

1단계 사술 : [보랏빛 호수] 말살작전

2단계 사술 : 1호 광수 조작 해내기

3단계 사술 : 지만원과 노담은 동일인이다

2) [북한군 개입 여부]에 대한 조사 사실상 포기

북한군이 오지 않았다는 판결 논리

(1) 1심 판결

(2) 2심에서의 피고인 주장

(3) 2심 판결

북한군 개입 42개 증거에 대한 조사 미루다 20239월에야 시작

광수가 진실이라는 점을 스스로 인정

5.18 주역은 북한 게릴라였다고 5.18 기념재단 상임이사가 법정증언

광주 천주교 정의 평화 위원회의 남북 내통행위를 5.18 위원회가 커버

알리바이 안 맞아도 광주인이 주장하면 무조건 광주 얼굴

3) [집단 발포]라는 괴담에 대한 조사

4) 헬기사격에 대하여

5) 공군 전투기 출격 대기설에 대하여

6) 광주 교도소 5회 습격 사건

7) 성폭행 사건

8) 사망자에 대한 사인 재분석

9) 기타

 

총 평

 

 

 

 

조사사업의 프로필

 

1. 조사사업 태동의 발단

 

1) 20131월부터 5월까지 5개월 동안의 방송 : 5.18은 북이 수행한 게릴라 작전이라는 요지

20089, 지만원이 [수사기록으로 본 12.125.18]이라는 제목으로 1,720여 쪽의 4부작 역사책을 발간했다. 5월 단체는 이 책이 5.18의 명예를훼손했다며 고소를 했다. 안양법원-서울고법-대법원이 연달아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 최종 판결은 2012.12.27.이었다. 대법원이 무죄를 확정한 사실은 사회에 이변으로 인식 됐다. 채널ATV조선이 지만원을 초대하여 내막을 물었다. 지만원은 1980521일에 발생한 상황만 간단히 소개했다.

 

1980.5.21. 군복, 경찰복 등을 입은 300여 명의 어깨 부대가 극비 중 극비 정보인 20사단 차량 이동 계획을 입수하고, 전날 밤에 고속도로 IC 근방에 장애물을 설치하고 매복해 있다가 정확히 계획대로 08시에 그 지점을 통과하자 몽둥이와 낫, 화염병으로 기습하여 사단장 지프차를 포함해 14대의 지프차를 탈취하고 그것을 몰고 이웃에 있는 자동차 군납 업체인 아시아 자동차 공장으로 가는데 사진에 나타나 있는 승차한 모습이 2차 대전의 롬멜장군이 이끄는 도깨비 부대 모습과 흡사했다. 09시에는 대형 버스 5대에 또 다른 300명이 합세하여 09시 아시아 자동차 공장에 600명이 집결했다. 이들은 출고조차 안 된 이태리 장갑차 4대와 군용 트럭 374대를 빼앗아 전남 지역 17개 시군에 위장돼 있는 44개 무기고를 불과 4시간 만에 털어 2개 연대를 무장할 수 있는 총기 5,403 정을 빼앗아 교도소에 수용돼 있는 2,700명을 해방시켜 폭동의 동력으로 사용하고자 야간 공격을 5회씩이나 감행했다. 8톤 트럭분의 TNT로 도청에 2,100발의 폭탄을 조립했다.

 

여기까지를 소개하자, 두 방송 공히 남녀 진행자들이 그것은 학생들이나 민간인들이 아니라 북한 특수군 입니다.“ 이런 해석을 했다. 이 후 두 방송은 서로 경쟁적으로 탈북자들과 전문가들을 초대해 5.18이 북한 특수군 소행이라는 내용으로 5개월 동안 방송했다.

 

2) 광주의 반격

광주와 민주당에 비상이 걸렸다. 이들은 두 개의 트랙으로 전선을 형성했다. 하나는 박근혜를 움직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만원의 입을 봉쇄하는 작전이었다. 방송이 한창 열기를 더해가고 있을 때 박근혜가 돌연히 끼어들어 방송국을 탄압했다. 양개 방송국에서 방송을 진행한 4명씩의 간부에게 감봉의 중징계를 내리고 직책에서 하차시켰으며 이제까지의 방송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라는 공고를 하게 했고, 사과를 하게 했다.

 

다른 한편, 광주에서는 광주시장 윤장현을 정점으로 하여 2013.5.24. 매머드 규모의 ‘5.18 역사 왜곡 대책 위원회를 결성했다. 5월 단체를 위시하여 338개 광주 단체들과 18명의 변호인단을 꾸려 5.18 역사를 폄훼하는 지만원 등에 대한 법적 조치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법적 조치가 바로 지만원을 2년 동안 감옥에 보내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5.18 역사 왜곡 대책 위원회5.18의 성역을 더 튼튼히 하기 위해 5.18 성역법 제정을 촉발시켰다.

 

3) 5.18 진상 규명법(5.18 재갈법) 제정

5.18 역사 왜곡 대책위원회는 민주당 등과 좌익 국회위원들을 동원하여 [북한군 침투 조작] 행위를 조사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나머지는 1988년 광주 특위로부터 연례행사 성격으로 이어져 온 발포 명령 등 5.18 진상규명 항목들을 포함하여 국가 차원에서 조사를 확실하게 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입법화를 추진했다.

 

2018.2.5. 법안을 기초하는 국방 분과 위원회가 열렸다. 그 전날 오후 6, 지만원은 국방위원회 위원장을 5분간 서서 만났다. 헬기로 국회에 도착한 김위원은 사무실에 오자마자 급히 약속장소로 떠나야 한다고 했다. 지만원은 [북한군 침투 조작 여부]라는 항목에 [북한군 개입 여부]라는 7자를 덧붙여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이종명 의원에게 설명을 해서 이종명 의원으로 하여금 7글자의 삽입을 발의하게 해달라고 했다. 이런 숨 막히는 과정을 통해 [북한군 개입 여부]가 제39항에 기재될 수 있었다. 이 법안은 2018.2.28. 국회 본회의를 통하여 2018.3.13.에 공포되었다. 이 후 이 법은 민주당에 의해 욕심껏 수정됐다. 무려 18회에 걸쳐 개정이 됐고, 18회의 개정 중 5.18을 폄훼하는 자에게 5년 이하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는 개정안이 2021.1.5.에 공포와 동시에 효력을 발생케 했다.

 

2. 조사위 조사 일정

 

조사위는 2020.5.11.부터 2023.8.31.까지 33개월 20일 동안 연구한 결과를 종합하여 6차 보고서를 썼고, 1226일 까지 조사를 마감하고 20245월에 최종 보고서를 발표할 예정에 있다. 6차 보고서는 A4177쪽 분량이다. 지만원은 이 177쪽에 대해 평가한다.

 

3. 예산 및 인력

 

조사위의 구성원은 74, 공무원 조직들로부터 파견을 받아 총 115명이 조사 활동에 임했다. 여기에 더해 자문 교수단 25, 법률 자문단 14명을 임명했다. 예산은 연평균 110억씩, 450억 규모인 것으로 추계된다. 하지만 보고서에는 예산의 구성 내역, 즉 무슨 목적에 어떤 비목으로 얼마씩 사용했다는 자료가 일체 없다.

 

4. 지휘부 구성

 

지휘부는 상임위원 3, 비상임위원 6명으로 구성되고, 이들이 의사결정을 한다. 비상임위원 6명은 근무하지 않고 월 1~2회 조사내용에 대해 브리핑을 받고 의견을 개진하고 가부 결정에 거수를 표하는 사람들이다. 조사 내용은 조사 1,2,3,4과가 분야별로 조사하여 제공한다. 각 과에는 별정직 공무원 자격을 가진 조사관이 13~15명 배정돼 있다.

 

상임위원 3명 중 1명은 장관급 대우를 받는 위원장, 차관급 대우를 받는 부위원장, 그리고 무임소 상임위원 1명이 있다. 위원장은 5.18을 폭동으로 기획한 공로로 유공자 대우를 받고 있는 송선태, 부위원장은 그 이전에 [5.18 광주에 북한군이 왔다고?]라는 비아냥조의 책을 쓴 안종철이다. 그런데 차별적으로 보이는 것은 부위원장이 사무처장 자리를 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무임소 상임위원은 육사를 나와 헌병 소장을 달았던 이종협인데, 사무처장 자리를 이종협에 주지 않고, 부위원장 안종철이 겸직하고 있는 것이다. 비 광주인인 이종협에게는 부위원장 자리도 주기 싫고, 사무처장 자리도 주기 싫었던 것이다. 이종협은 철저하게 들러리인 것이다. 사무처장은 조사 1,2,3,4과를 관장하는 자리다. 비상임위원 6명 중 4명은 광주 사람이고, 2명은 서울사람이다. 광주 사람은 김희송, 민병로, 서애련, 오승용이고 이들은 모두 5.18 성역화 조직의 임원들이다. 서울 사람은 판사 출신 차기환과 월간 조선 기자를 잠시 했던 이동욱이다.

 

5. 송선태가 위원장이 되어서는 안되는 결정적 하자

 

만일 위원장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되는 사람이 지휘하여 작성한 보고서가 있다면 그 보고서는 보고서 자격을 상실한다. 이 말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송선태에는 위원장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결격 사유가 있다. 두 가지다.

 

(1) 그는 계엄군법회의에서 2년 형을 선고받고, 5.18 유공자가 됐다. 유공자일 뿐만 아니라 5.18 성역화의 총 사령부인 ’5.18 기념재단상임이사 자리도 맡았었다. 5.18 성역화의 1등 공신이고, 5.18을 끝까지 성역화 해야만 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진상규명위원회의 수장이 되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는 코미디이고 국민을 우습게 보는 능멸 행위일 것이다.

 

(2)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판도라 상자, [자유노트]가 있다. 최근 일간지 스카이데일리가 그 존재와 내용을 처음으로 국민에 공개했다. 광주 운동권의 대부 윤한봉이 1980.5.11. 구술한 것을 송선태가 필기한 메모 책이다. 이 메모는 무기고를 털어 도청을 점령하고, 공공건물을 파괴하고, 학생을 동원하는 과정과 요령이 기재돼 있다. 5.18 발발 일주일 전에 송선태가 기록한 이 내용 그대로 5.18 작전이 수행됐다. [자유노트]5.18이 전두환 탄압에 항거하여 일어난 정당한 항쟁이 아니라 사전에 기획된 국가 전복 폭동이었다는 점을 명백하게 증명한다. 당시 계엄 당국은 이 [자유노트]를 뒤늦게 발견하여 그 죄를 송선태 등에 반영하지 못해 송선태는 겨우 2년 형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면 이 [자유노트] 내용을 송선태에 구술해 준 윤한봉은 누구인가? 그는 517일 이전에 이미 똥가방을 들고 이리 저리 가슴 졸이며 도망 다녔고 5.18 기간 내내 서울 등에서 숨어 있다가 미국으로 밀항했다. 윤한봉이 5.18 폭동을 [자유노트] 내용 그대로 기획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누구로부터 폭동의 구체적인 윤곽을 전해 듣고 광주의 운동권들에 전했을 것이다. 가장 집히는 대목이 간첩 손성모, 지금 북한에서 5.18을 현장 지휘한 영웅이라고 추앙 받는 간첩이다. 그 간첩이 운동권 대부인 윤한봉에 대략적인 계획을 알려주면서 학생 및 민간인 동원을 주문했을 것이다. 바로 광주 운동권이 세우지 않은 국가 전복 폭동 계획이 대학 3학년에 불과했던 송선태에 의해 기록됐다는 사실은 이 계획이 북한에 의해 세워졌다는 것을 매우 강하게 암시한다.

 

송선태는 5.18이 국가 전복 내란 사건이라는 사실을 이미 5.18 발발 일주일 전에 분명히 알았다. 그리고 실행에 참여했고, 이후 5.18 성역화 카르텔에 수장 역할도 수행했다. 이런 사람이, 이 모든 사실을 숨기고 위원회의 수장이 되어 4년 가까이 조사 활동을 총 지휘해 왔다는 것은 범죄행위일 것이다. 이는 고발의 대상이다. 위원장이 객관성을 잃었기 때문에 그가 지휘해서 작성한 보고서 역시 객관성을 인정받을 수 없을 것이다.

 

6. 지휘부 활동의 객관성 문제

 

객관성 문제가 가장 두드러지는 현상이 있다. 위원회가 출범하자마자 가장 먼저 지휘부 위원 9명이 단체로 광주 5.18 묘역과 망월동 묘역에 내려가 참배하고, 매년 초와 5.18일에 단체로 내려가 참배를 하였다는 사실이다. 5.18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객관적으로 진실을 밝히겠다고 구성된 국가 차원의 위원회가 5.18을 숭배하는 행사를 매년 2회 이상 했다는 것은 위원회의 정체를 명백하게 정의한 것이 된다. 조사위원회는 곧 5.18 성역화를 굳히기 위해 성역화 행위에 [대한민국]이라는 고무도장을 찍어주기 위한 위계의 조직이고, 북한의 불법 남침 전쟁 범죄를 은닉시켜 주기 위한 반국가 카르텔의 전위 조직이라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준 것이다.

 

위원회는 언론사 홈페이지에 광고를 실었다. 그 대가로 언론사에 금품을 제공했을 것이다. 5.18에 우호적인 기자들에게 취재의 기회를 제공하고, 감사패와 표창장도 주었다. 5.18 성역화에 도움이 되는 증언들을 얻어내기 위해 여러 차례에 걸쳐 광주 참전 군인들을 모집해 제주도에 데려갔다. 제보 캠페인을 벌인다는 명분 하에 수많은 언론사들에 광고를 주어 언론과의 유착 행태를 보였다.

 

5.18에의 북한군 개입 여부를 조사한다면서 북한군 개입 가능성을 주장한 진실화해위원회 김광동 위원장에 대한 공격도 했다. 5.18 위원회는 김광동 진실화해위원장의 5.18 발언에 대한 5.18 위원회의 입장을 보도 자료로 배포했고, 이에 따라 MBC가 김광동 위원장의 북한군 개입설을 사실 무근으로 일축했다는 보도 내용도 보고서에 실었다.

 

조사 결과

 

1. 조사과제

조사 과제는 직권으로 선정한 과제 21, 개인들이 조사해 달라고 신청한 사건이 138개다. 직권 조사 과제 21개 중 16개가 2023.8.31.6차 보고서에 실렸고, 5개 과제는 실리지 않았다. 6차 보고서에 실리지 않은 과제 5개는 모두 북한군 개입 여부에 관계되는 항목이다.

 

지만원이 [5.18 항소 이유서][5.18 작전 북이 수행한 결정적 증거 42]를 통해 제시한 북한군 개입 증거는 42개다. 그런데 5.18 위원회는 이 중 6개만 조사 항목에 포함시켰다. 그런데 이 6개 중 5개는 2023.8.31.6차 보고서 내용에 포함돼 있지 않다. 조사를 하지 않은 것이다. 조사 과제에는 반영 시켜놓고 지난 34개월 동안 조사하지 않은 과제는 탈북 광주 침투 주장(보랏빛 호수), 무기고 피습 사건, 간첩 손성모 등의 5.18 관련성, 20사단 차량 피탈 및 아시아 자동차 차량 피탈 사건, 청주 유골 및 연고대생 600명 위장 침투들이다.

 

21개 조사 과제는 아래와 같다. (보고서 30~31)

(1) 최초 발포자 집단 발포

(2) 민간인 사망 사건

(3) 민간인 집단 학살

(4) 행불자

(5) 계엄군에 의한 성폭력 사건

(6) 탈북 특수군 광주 침투 주장(보랏빛 호수)

(7) 무기고 피습 사건

(8) 공권력에 의한 민간인 상해 사건

(9) 암매장지 소재 파악 및 발굴 수습

(10) 헬기 사격 명령자와 시민 피해자

(11) 공군 전투기 출격 대기

(12) 송암동 및 효천역 부근 학살 사건

(13) 군과 경찰 측 피해

(14) 홍종수, 손성모의 민주화 운동 관련성

(15) 북한 특수군(일명 광수) 주장

(16) 광주 교도소 습격 사건

(17) 국가 공권력 남용 연행, 구금, 조사 과정에서의 인권 침해

(18) 20사단 차량 피탈 및 아시아 자동차 차량 피탈 사건

(19) 청주 유골 및 연고대생 600명 위장 침투

(20) 국가 권력에 의한 탄압 사건

(21) 군의 증거 왜곡, 은폐, 조작 사건

 

개인이 조사 의뢰한 138개 신청 사건에 대해서는 4개에 대해서 결정을 내렸고, 75개는 조사 중이고, 59개는 검토 중이라 한다.

 

2. 조사 결과

 

1) 조사 목적 불순

5.18 조사위는 무자격자인 송선태가 지휘하는 광주인 들의 집합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러하기에 국군의 상징인 공수부대를 국민 학살자요, 강간이나 일삼는 폭력배 집단으로 매도하고, 북한군 개입 사실을 은폐하고, 5.18을 보다 성역화 하고, 전두환을 야만의 상징으로 굳히기 하려는 사술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1단계 사술: [보랏빛 호수] 말살 작전

위원회 사술의 첫 단계는 지만원의 주장이 순전히 [보랏빛 호수]에 근거했기 때문에 [보랏빛 호수]만 무력화 시키면 지만원 주장을 간단히 희화화 시킬 수 있다는 시나리오에 의거한 음습한 공작이었다. 이 공작을 최일선에서 수행한 사람은 임명 과정이 수상했던 이동욱이었다. 1~2회만 연락을 받고 나와 거수기 역할을 하는 비상근 프리랜서가 조사관 이상으로 밤 12시까지 최 일선에서 공작 행위를 한 것이다. 이동욱은 조갑제 밑에서 일시 기자생활을 했고 또 그 이전에는 박근혜 캠프에서, 또 그 이전에는 김영사 편집부에서 일했었다. 8 사단에서 중사로 제대를 했고 임명 전에는 무직 상태에 있었다.

 

조갑제의 뒷배로 국힘당 나경원에 의해 비상임 위원으로 추천 됐지만 문재인은 그를 기각했다. 이후 다시 나경원이 추천하자 웬일인지 이때는 문재인이 수락했다. 재임명 과정이 수상했듯이 그는 수상한 공작을 주도했다. [보랏빛 호수]는 탈북자 정명운이 19세 때 인민군 중령(상좌) 문제심이 이끄는 광주 침투조 50명을 이끌고 내려왔을 때 문재심의 호위 역으로 침투 했던 과정을 일부 픽션화 하여 또 다른 탈북 작가 이주성이 엮은 책이다. 이동욱의 공작 목표는 [보랏빛 호수]의 내용이 모두 허위라는 것을 정명운과 이주성으로부터 자백 받는 것이었다.

 

20214월 야밤에, 이동욱은 [보랏빛 호수]의 주인공 정명운을 성남시 모텔로 불러내 무려 4시간에 걸쳐 작가 이주성에 구술한 책 내용 전체가 허위로 지어낸 것이라 자백하면 딸이 다니는 영상 분야 직장 생활을 계속 하게 해 주겠다고 회유했다. 자백 하지 않으면 남한에서의 생활이 괴로울 것이라고 협박했다. 그 결과 정명운은 5.18 조사위원회 사무실로 가서 자술서를 썼다. 이어서 2021414일 밤 10, 이동욱은 또 성남시 인투 모텔로 이주성 작가를 불러내 협박하고 회유했다. 하지만 이주성은 굴하지 않고 60분 여 동안 이어진 대화 내용을 모두 녹음 했다. 이 녹음 음성과 녹취록은 홈페이지 시스템 클럽에 기재돼 있다. 이 공작은 1년 동안에 걸쳐 이루어 졌다. 이 조사 과제는 직권으로 설정한 21개 과제 중 제 6번으로 지정된 우선순위 높은 과제였다. 우선순위가 가장 높게 책정된 과제는 집단 발포. 이렇게 우선순위가 높던 과제를 1년 동안 수행하였다면 당연히 6차 보고서에 조사 결과가 수록돼 있어야 했다. 그런데 매우 놀랍게도 정명운이 자백했다.“1년 동안의 노력이 보고서에 기재돼 있지 않은 것이다. 1년 동안 헛수고를 했다는 것을 자백한 것이다. 이는 5.18 조사위의 가장 추한 주홍글씨로 기억돼야 할 것이다. 조사위의 면면을 보면 연구 차원의 조사 능력이 없다. 그래서 그들에게 익숙한 사술과 공작에만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2단계 사술 : 1호 광수 조작해 내기

직권 조사 항목 제 15번에는 광수 문제가 선정돼 있다. 노숙자 담요는 만 3년에 걸쳐 모두 661명의 광수를 발굴해 냈다. 661명의 아이콘 광수는 단연 1호 광수다. 광주는 1호 광수가 광주인이라는 것을 조작해 내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 1호 광수는 눈에서 레이저 광선이 발산되고, 고도의 훈련 과정이 배어 있는 야무진 몸매와 자세를 갖고 있었다. 2015.5.5. 노숙자 담요가 가장 먼저 찾아낸 광수이기에 1호 광수로 불리는 것이다.

 

2010.5.17. 연합뉴스가 평양 노동자 회관에서 성대히 개최된 5.18, 30주년 기념 행사장 장면을 사진으로 공개했다. 그 로얄석 가운데에는 3명의 중년 남자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2015.5월 초, 그 가운데 앉아 있는 사람의 얼굴과 광주 시가를 누비던 레이저 광선의 남자가 똑같이 생겼다는 글이 일베에 올라왔다. 지만원은 별로 이 글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런데 새벽 이른 시각에 한 청년이 전화를 했다. 그 글은 허투루 넘기지 말라고 했다. 지만원은 홈페이지 시스템클럽에 얼굴을 분석하는 전문가가 있으면 나서 달라 부탁하고 일베의 글을 안내했다. 이에 노숙자 담요(이하 노담)가 나타나 왜 두 얼굴이 한 사람의 얼굴인지 쉽게 알 수 있도록 분석을 해주면서 그가 바로 북한에서 농업상(장관)을 지낸 김창식이라 했다. 이 분석 내용을 본 네티즌들이 환호하고 흥분했다. 2015.5.5.이었다.

 

1호 광수가 확산되고 연달아 2, 3∙∙∙ 8호 광수가 나타나자 광주 5월 단체들이 사술을 쓰기 시작했다. 광주는 2016년 이강갑이라는 광주인을 내세워 그가 1호 광수라 언론에 대서특필 하면서, 지만원이 이제까지 거짓말을 했다고 한동안 몰았다. 이에 노담은 어째서 이강갑이 1호 광수와 같지 않은지를 분석해 올렸다. 1호 광수 얼굴은 대추 방망이 같은데 이강갑 얼굴은 넓적한 떡판 얼굴이었다.

 

그 다음 영화 감독 강상우 팀이 나타나 4년 동안 광주와 전남 지역을 훑었다. 이강갑이 또 나타나 자기가 1호 광수라 했지만 강상우 감독은 그를 제쳤다. 당시 아버지가 막걸리 집을 했다는 딸 주옥이 강상우에게 나타났다. 당시 자기는 22세였고 1호 광수가 막걸리를 마시러 자주 왔다고 했다. 그는 7~8명의 다부진 넝마주이와 함께 다리 밑에서 천막을 치고 살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시민 대장이 되어 있기에 마실 것과 음식을 차 위로 올려주었는데, 시위가 끝나자 모두 자취를 감추었다고 증언했다. 여기까지만 보아도 북 특수군이 양아치로 위장해 광주 시가를 정찰했고, 작전을 했고, 북으로 사라졌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주옥의 스토리가 영화 [김군]의 테마 스토리다. 아버지가 이름을 물으니 그냥 [김군]이라고 불러 달라 했다 한다. 김창식의 인 것이다. 이 후 광주의 한 공원에는 1호 광수의 동상이 섰다.

 

다리 밑에서 사라졌다는 1호 광수가 최근 송선태의 공작에 의해 연속 2명이나 나타났다. 202254, 계엄군에 의해 즉결 처분 당해 죽었다는 19세의 김종철이 곧 나타나 자기가 1호 광수임을 선언할 것이라고 언론에 밝혔다. 그러더니 1주일 후인 512, 당시 20세인 상패 제조상 종업원이었던 차복환이 경찰 페퍼포그 차량에 잠깐 앉았다가 찍힌 사진이 1호 광수의 모습이라고 했다. 이는 거의 모든 언론사에 보도 됐다. 광주에서 찍힌 1호 광주의 씬(장면)은 총 7, 그런데 차복환은 오로지 1개 씬만 자기 것이라고 주장했다. 세기적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최근 스카이데일리가 어느 한 전문 의료인의 분석 결과를 보도했다. 차복환이 1호 광수가 될 수 없다는 의학적 분석이었다.

 

20225월이면 광수 조사를 시작한지 만 2년이 되는 시점이다. 조사위가 2년 동안 사술 공작을 하다가 실패한 것이다. 2년 동안 조사한 내용이라면 반드시 6차 보고서에 조사 결과를 기재돼 있어야 했다. 여기에서도 헛농사를 지은 것이다. 이 역시 5.18 위원회에 추가된 또 하나의 추잡한 주홍글씨로 기억돼야 할 것이다.

 

3단계 사술 : 지만원과 노담은 동일인이다.

위원회는 두 차례에 걸쳐 지만원이 노숙자 담요 행세를 했다고 조사 결과를 보고서에 썼다.

 

[1] 2023.5.16.에 발표한 내용 (6차 보고서 245)

지만원씨가 2016년 검찰 조사에서 3차례에 걸쳐서 자신이 노숙자 담요라는 필명을 사용하여 자신의 홈페이지에 글을 게시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확인 했습니다. ∙∙∙∙ 또한 법원이 노숙자 담요가 지만원과 독립된 제 3의 주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한 내용도 확인 했습니다. ∙∙∙∙

 

[2] 2023.8.31.에 발표한 보고서 내용 (6차 보고서 116)

지만원 재판 기록 214,035매를 입수하여 검찰 수사 내용과 법원의 판단을 분석 하였습니다. 그 결과 지만원의 핵심 근거 중 하나인 ’5.18 현장 사진 얼굴 분석을 실시한 일명 노숙자 담요가 지만원 본인일 수 있다는 정황을 포착해 현재 추가 조사를 진행 중입니다.“

 

이상으로 위원회는 완전한 허위 사실로 지만원의 명예를 훼손했다. 지만원은 이에 대해 송선태와 3과장인 이관형, 그리고 조사관인 신동욱을 상대로 고소를 할 것이다. 특히 검찰 조사 시 3차례에 걸쳐 지만원이 노숙자 담요의 필명을 사용했다고 진술했다는 것과 지만원이 곧 노숙자 담요라고 단정했다는 것은 명백한 허위다. 검찰 차료를 입수해 심층 조사를 했다면서 검찰 기록에 있을 수 없는 허위 내용을 ”3차례에 걸쳐라는 구체적 숫자까지 날조하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구체적인 진실로 믿게 한 모략 행위는 5.18 위원회가 사악하고 음습한 사기집단이라는 것을 웅변한다. 이상 세 가지 사술 공작 행위만 보아도 위원회가 얼마나 위험하고 사악하고 무모한 집단인지 충분히 인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후 보고서 내용은 읽을 가치조차 없을 만큼 부패해 있다.

 

2) [북한군 개입 여부]에 대한 조사, 사실상 포기

위원회는 지만원 재판 사건에 대한 수사 및 재판기록 4,035쪽을 입수하여 심층 분석 하였다는 문장을 광고문처럼 내세웠다. 그런데 내용이 없다. 4,035쪽 내용에는 아래와 같은 두 가지 내용이 있는데, 보고서에는 이 중요한 내용이 전혀 터치 돼 있지 않다.

 

북한군이 오지 않았다는 판결 논리

(1) 1심 판결 : 2013년 정홍원 국무총리가 ”5.18 민주화 운동에 북한군이 개입하지 않았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라는 발표를 했고, 2013년 국방부는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내용은 확인 할 수 없었다.“고 했다. 1980.5.9.자 미 CIA 보고서에는 북한은 한국의 정치 불안 상황을 빌미로 어떤 군사 행동도 취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발표했고, 1980.6.6.자 미 CIA 보고서에는 북한이 행동을 취하면 전두환을 돕는 것임을 북한이 직시하고 있다.“는 내용이 기재돼 있다. 또한 2016년 신동아에는 전두환의 발언이 있다. ”보안 사령관 때 북한군 침투 정보 보고를 전혀 받은 바 없다.“

5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북한군 개입은 없었다. 이 판결문을 쓴 판사는 광주일고 출신 김태호였다.

 

(2) 2심에서의 피고인(지만원) 주장 : 피고인은 북한군이 5.18을 주도했다는 데 대한 증거 42개를 10권의 책을 통해 찾아냈다. 북한군의 개입이 없었다는 판결을 내리려면 이 42개의 증거를 부정해야 한다. 1심이 근거로 내건 5개의 항을 가지고는 북한군 개입이 없었다는 것을 증빙할 수 없다. 2019.2.12.자 조선일보에는 국방부의 공식 입장이 기사화 되어 있다. ”북한군 개입설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고, 미래에 밝혀야 할 사안이다.“ 이 국방부의 새로운 입장을 보면 정홍원 총리의 발언과 김관진 국방부 장관 발언이 틀린 발언이었다.

2020.5.11. 미 국무부가 한국 정부에 이관한 122건에는 북한군 개입에 대한 생생한 표현들이 9개나 있다. 재판부는 2016.6월호를 내세우는 데 600명 투입이 금시초문이라는 전두환의 발언은 신동아 6월호 18쪽에 있다. 11쪽에는 ”12.12가 뭐더라라는 전두환 발언이 있다. 12.12라면 전두환이 사활을 걸고 주도한 사건인데 그것을 기억하지 못했다. 전두환의 건강에 이상이 있는 것이다. 이를 판단의 근거로 삼을 수는 없다.

 

(3) 2심 판결(김예영, 장윤선, 장성학) : 북한군이 오지 않았다는 판결을 하기 위해 1심이 제시한 5개 사항이 탄핵되자 2심은 궁색한 근거를 제시했다. ”5.18은 역사적으로 이미 민주화 운동으로 평가된 지 오래다. 3개의 특별법이 제정되어 유공자 대우를 해 오고 있으며 매년 기념행사를 하고 있다. 따라서 5.18에는 북한군이 개입할 수 없었다. 광주 현장 사진에 나타나 있는 얼굴은 모두 광주-전남 주민의 얼굴일 수밖에 없다. 광주의 누구라도 이 얼굴이 내 얼굴이라고 주장하면 알리바이에 관계없이 진실한 주장인 것으로 보아야 한다. “

 

북한군 개입 42개 증거에 대한 조사 미루다 20239월에야 시작

이제까지 5.18 조사위가 조사 대상으로 지정한 과제들은 대부분 1988년부터 거의 연례행사처럼 우려먹던 괴담카더라주장들에 대한 것이었다. 전두환이 발포 책임자다, 광주 작전 지휘자는 이희성이 아니라 황영시(참모차장)이었다. 전두환은 황영시를 통해 발포명령을 내렸다, 공수부대원이 대검으로 머리카락을 잘라냈다, 공수부대원이 담뱃불로 눈을 지졌다, 공수부대원들이 대열을 마구 이탈해 삼삼오오 몰려다니면서 광주 여성들을 강간했다, ∙∙∙∙ 이번 위원회의 보고서에도 이런 내용이 버젓이 등장해 있다.

 

좌익 대통령이 들어설 때마다 같은 괴담을 우려먹는 주인공들이 조사위원회다. 그런데 이번 위원회는 [북한군 개입]여부를 조사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것이 이번 조사위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조사를 왜 4년의 시한이 거의 다 소진된 시기에 시작하는가? 조사위의 제 3과 과장인 이관형과 조사관 신동욱이 여성 보조원과 함께 구치소를 찾아온 날은 2023824일과 927일이었다. 모두 합쳐 4시간 정도 조사를 했다. 1호 광수가 끼고 있었던 장갑은 면장갑이었는데 왜 석면 장갑이라 했는가? 북한은 5월이 되면 28개 도시 전체에 5.18을 기념한다고 주장하셨는데 북한은 4.19도 기념합니다. 4.19도 북한이 주도 했습니까? 이 기관총은 총열을 바꾸는 기관총이 아닙니다. 한국에 간첩이 많습니까? 물샐 틈 없이 광주를 포위했는데 어떻게 430구가 청주로 빠져나갈 수가 있습니까? 2006년 북한 대표단 145명이 광주에 왔을 때 그들이 광주 묘역을 참배한 것이 5.18에 북한이 개입했다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북 대표단이 현충원도 참배한 적이 있습니다. ∙∙∙∙ 이정도의 지엽적인 질문들이 있었다.

 

이런 질문에 대해 지만원은 아래와 같이 답변했다. 1호 광수의 핵심은 그 사진이 5.18의 아이콘 사진인데 그 엄청난 영웅이 광주에 있느냐 없느냐, 그렇게 다부지게 훈련된 몸매에 눈에서 레이저 광선이 나오는 사람이 광주의 양아치 모습이냐에 있다. 내 눈에는 그 장갑이 느슨하게 퍼져 있어서 석면 장갑으로 보였다. 북한의 각 군청에는 제 5과 라는 것이 있다더라, 간첩가족을 극진히 대우하는 과다. 김유송 등 탈북자들에 의하면 한국에 간첩이 전봇대만큼 많다 하더라. 황장엽도 5만 명이라 하지 않더냐. 4.19도 물론 북한이 했다. 194610월 대구 폭동은 배후 조종한 간첩이 이석이라는 자다. 북한 정보의 권위자였던 성대 이영명 교수가 쓴 [통일의 조건]에 쓰여 있다. 거물 간첩 김용규가 1999년 원민 출판사를 통해 펴낸 [소리 없는 전쟁]을 봐라. ’남한에서 발생한 크고 작은 모든 소요는 100% 북한 공작이라고 쓰여 있지 않느냐? 4.3, 여순 반란 사건 모두가 북이 배우 조종한 사건 아니냐? 물샐 틈 없다는 전방 철책선도 뚫려 노크 귀순자들이 여럿 있었다. 1996년의 강릉 사건도 민간인이 제보했다. 광주와 해안이 물샐 틈 없이 봉쇄 됐다는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은 군을 모르고 작전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42개 증거]107쪽 증거번호 20을 봐라. 광주 시립 공동묘지 작업자가 말하기를 자기 손을 거친 시체 수가 594명이라 했다. 이 자료는 다 5.18 연구 자료다. 광주에 남은 시체가 164, 이 중 12구는 신원 미상이다. 164430을 보태 봐라, 정확히 594구가 아니냐? 안영복이라는 60대 여성도 자기 남편이 5.27 새벽에 시체를 가득 실은 대형 트럭 여러 대가 시 외곽으로 달리는 것을 보았다 하지 않느냐? 청주시는 이 430구를 모두 화장 처리 했다고 발표 했다. 그런데 이는 세 가지 이유로 거짓말이다. 하나는 데일리메디 등 메디컬 뉴스다. 충북에는 화장터가 4개인데 그 4군데에서 2014년 화장한 무연고 유골이 18구뿐이다. 둘째, 무연고 유골이 발견되면 그 처리를 맡기기 위해 조달본부 나라장터에 장의업체 입찰 공고가 뜬다. 그런데 조달 본부 홈페이지에 430구에 대한 입찰공고가 없다. 셋째, 재판부에 사실조회 신청서를 냈다. 청주시에 430구에 대한 [화장 증명서]가 있는지, 처리를 어떻게 했는지에 대한 사실 확인을 요청한 것이다. [화장 증명서]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무판 위에 두꺼운 비닐에 싸여 군번처럼 일련번호가 쓰인 430구의 뼈는 한구씩 불투명 비닐에 털어 넣고 일련번호를 쓴 후 컨테이너 박스에 서가의 책처럼 정리돼 있는 사진이 있더라. 이 컨테이너 박스가 어디로 사라졌느냐? [42개 증거] 107~114쪽을 보면 과학적으로 설명되어 있다.

 

광수가 진실이라는 점을 스스로 인정

6차 보고서 114쪽에는 다음과 같은 기재가 있다.

얼굴 비교 분석 결과의 내용에 대해서는 육안으로 보이는 외관상 유사성을 지적하고 있을 뿐∙∙∙

반면 4,035쪽의 자료 중에는 지만원이 2020.10에 발간한 [무등산의 진달래 475송이]에 대한 출판 및 배포 금지 가처분 사건의 결정문이 있다. 4쪽에는 광주 현장 얼굴들을 북한 특수군 얼굴이라고 단정 하면서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로는 현장 사진 얼굴들과 비슷하게 생긴 북한군 간부들의 사진들을 나란히 기재한 것 외에 별다른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

재판부들이 다 같이 인정한 것은 비슷하게 생겼다.’는 점이다. 비슷하게 생겼다.’는 표현을 시스템적 시각에서 보면 두 사진이 동일인이라는 것이다. 이 세상 그 누구에게라도 얼굴 사진을 하나 내주면서 이와 비슷하게 생긴 얼굴을 찾아내라고 주문하면, 아무도 육안을 가지고는 비슷한 얼굴 사진을 찾아낼 수 없다. 그러나 컴퓨터, 얼굴인식 프로그램이 깔려 있는 고성능 컴퓨터는 즉각 찾아낸다. 중국에서는 5만 관객이 모인 콘서트홀에 설치되어 있는 CCTV가 수년 전의 경제 사범을 잡아냈고, 한 사람의 범인 얼굴만 찍히면 13억 인구 중 그 얼굴의 주인공을 3초 이내에 찾아낸다는 보도가 많이 있다. 은행 결제, 자동인출기 입출금, 버스, 지하철 승차, 음식점 식대를 모두 얼굴 하나로 결제 한다는 뉴스들이 매우 많다. 우리나라 신한은행도 2023.5.11.부터 얼굴로 입출금 결제를 한다. 신한은행 고객이 100만 명이라 가정할 때, 창구에 앉은 고객이 사진으로 촬영되면, 그 사진을 컴퓨터가 100만 고객 얼굴이 저장된 데이터베이스(DB)에서 일일이 대조한다. 그리고 컴퓨터가 DB에 있는 얼굴을 창구 직원에 비춰주면 창구 직원은 현재의 얼굴과 DB에 저장된 얼굴이 비슷하게 보인다는 것을 육안으로 확인한다. 따라서 컴퓨터만이 비슷한 얼굴을 찾아낼 수 있고, 컴퓨터가 찾아낸 비슷한 얼굴은 동일일인 것이다. 노담 역시 광주 현장 사진에서 얼굴 하나씩을 도려내 통일부가 저장한 북한 인물 사진 DB의 얼굴들과 일치하는 지를 컴퓨터로 하여금 찾아내게 한 것이다. 컴퓨터가 찾아낸 두 얼굴이 판사들 눈에 비슷하게 보인 것이다. 이는 동일인이라는 뜻이다. 판사나 5.18 위원회 조사관들이나 이러한 원리를 모르기 때문에 인권유린을 하고 있는 것이다.

 

5.18 주역은 북한 게릴라였다고 5.18 기념재단 상임이사가 법정증언

재판자료 4,035쪽에는 5.18 기념재단 상임이사가 ”5.18 주역은 북한 게릴라 부대라고 인정한 증언 내용이 들어 있다. 이는 북한군 개입을 넘어 5.18을 북한 게릴라가 주도했다는 데 대한 결정적 증거다. [42개 증거]142~150쪽에는 북한군의 모습일 수밖에 없는 17개의 현장 사진이 있다. 2017.10.12. 법정에서 지만원은 김양래 증인에게 17개 중 12개 사진을 보여주면서 여기 광주 현장 사진들이 있습니다. 단련된 몸매에 총기를 자유자재로 다루고, 총을 북한군 식으로 거꾸로 메고, 지휘체계가 확립돼 있고, 무전기를 들고, 유니폼을 입고, 총기와 수류탄의 기능 여부를 검사하고, TNT를 조립하고, 북한식 제식 동작을 하고, 비표식을 하고, 장갑차를 몰고, 중기관총으로 무장을 하고, 차량을 타이어로 요새화 하고 질주하는 등의 모습은 광주의 하층 계급 아이들이 흉내 낼 수 없는 군사 작전 동작들이 아닌가요?“ 하고 물었다. 이에 김양래는 전두환이 투입시킨 편의대(게릴라 부대)인지에 대해 새롭게 연구하고 있다. “고 답했다. 이는 사실상 5.18의 주역들이 북한 게릴라 부대였다는 것을 인정하는 증언이었다. 지만원의 이러한 해석에 대해 김양래는 자신의 법정 증언을 지만원이 왜곡해서 마치 김양래가 북한 특수군 개입을 주장하는 지만원에 동조하는 것처럼 짜깁기 했다고 고소했지만 서울 중앙지검은 2023.5.9. 발행한 불기소 결정서 [2023형제1120]에서 지만원은 김양래의 법정 증언을 왜곡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런 법정 증언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1,2심 판사들이 북한군 개입은 절대 없었다는 자의적 막가파식 판결을 내린 것이다.

광주 천주교 정의평화 위원회의 남북 내통행위를 5.18위원회가 커버

위원회는 6차 보고서 117쪽에서 광주 천주교 신부들이 1987년에 발행한 [5월 그날이 다시 오면]에 수록된 시체 사진들이 1982년 북한이 발행한 삐라 사진과 일치하더라도 1982년 삐라가 북한이 제작한 삐라라고 인정할 수 없다는 법원의 판결을 인용, 동조했다. 지만원은 1982년 북한이 공수부대를 모략하기 위해 삐라에 실은 으깨진 얼굴을 1987년 광주 신부들이 공수부대의 만행이라며 [5월 그날이 다시 오면] 이라는 화보집에 실었기 때문에 광주와 북한이 내통했다는 글을 썼다. 1982년 삐라가 북한이 제작한 것이라는 데 대한 증거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인쇄술이 낙후된 북한 인쇄술이며, 그 인쇄술은 지만원이 중앙정보부에서 근무하면서 많이 익숙해 있던 인쇄술이었다. 무엇보다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증거가 제시돼 있다. 삐라에는 으깨진 사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102글자의 글이 있다. ”광주 대학살 5,000여 명, 총기로 사살한 수 2,600여 명, 장갑차로 깔아 죽인 수 150여 명, 화장하여 죽인 수 920여 명, 대검으로 찌르고 개머리판으로 때려죽인 수 330여 명, 생매장하여 죽인 수 1,700여 명, 중경상자 수 14,000여 명“ 102자로 된 피해자 통계가 기재돼 있다. 이런 통계는 대한민국에 없다. 그런데 북한 조선 통일사1982년에 발행한 [주체의 기치따라 나아가는 남조선 인민들의 투쟁] 591쪽에 글자 한 자 다르지 않고 똑같은 102자의 글이 실려 있다. 이 삐라는 분명히 북한이 1982년에 발행한 책 내용 그대로를 가지고 낙후된 인쇄술로 발행한 것이다. 위원회가 획득했다는 4,035쪽의 재판 서류에는 이에 대한 답변이 문서로도 제출돼 있다. [5.18 답변서] 43쪽에도 삐라 사진과 위 북한 책 591쪽 사진이 나란히 기재돼 있다. 이렇게 명백한 사실을 놓고 위원회는 판결문을 공유했다. 대법원 판결과 피고인 주장을 저울의 양쪽 접시에 올려놓고 공정하게 조사 했다고 큰소리 쳐 놓고서는 뒤에서 사기를 친 것이다.

 

대법원장 김명수가 서울지방법원 판사들 거의 모두를 주사파로 채웠다고 한다. 언론들은 이러하기 때문에 이념사건, 노동사건, 정치 사건은 답이 정해져 있다고 보도 했다. 5.18 사건에 답이 정해져 있다는 것을 이 사건에서 적나라하게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5.18위원회 역시 객관성을 장황하게 강조하면서, 뒤로는 주사파 판사들의 판결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여 북한군도 오지 않았고, 그래서 현장 사진의 얼굴 모두가 광주 얼굴뿐이며, 광주 신부들이 북과 내통하지 않았다고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알리바이 안 맞아도 광주인이 주장하면 모두 광주 얼굴

지만원이 내놓은 661명의 광수 중 16명은 무조건 광주 시민의 얼굴이라는 판결을 인용하여 북한군 개입이 없었다고 보고서에 기재했다. 그러면 나머지 654명은 왜 나서지 않는 것인가? 지만원은 이 사건에 대해 재심 프로젝트를 시동할 것이다. 아래와 같은 명백한 허위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목포에 사는 90대 노파 김진순이 있다. 광주 변호사 단체는 이 노인을 광수로 내보냈다. 김진순의 아들 이용충은 1997년 대법원 판결문에 자동차를 타고 교도소를 공격하다가 사망 했고, 교도소를 공격한 행위는 불법한 것이기 때문에 계엄군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결했다. 그런데 이용충은 유공자다. 5.18 기념 사업회에는 사망자 각각에 대한 사연이 1쪽 분량으로 기재돼 있다. 김진순이 아들 이용충의 사망 사실을 통보받은 날은 1980.6.30.이다. 경찰서에서 아들의 유품과 사진을 유리관 속에 진열해 놓은 것을 보고 비로소 아들이 죽은 사실을 알게 됐다고 기록돼 있다. 그런데 광주 변호인단은 김진순으로 하여금 1980.5.23.에 도청 안에 진열돼 있는 관을 잡고 우는 여인이 김진순의 얼굴이라고 주장케 했다. 귀가 어둡고 말귀를 못알아 듣는 김진순은 법정에 출두하여 유리관“, ”경찰서라는 단어를 발음했다. 이 모든 자료들이 4,035쪽 서류에 다 제시돼 있다. 그런데 주사파 판사는 ”5.18에 북한군은 없다. 현장 사진 속 얼굴은 모두 광주 얼굴이다. 광주 시민이 현장 얼굴이 자기 얼굴이라고 주장하면 따질 것 없이 진실로 봐야 한다. “는 기상천외한 판결문으로 김진순의 주장이 옳다고 판결했고, 이 모든 기록을 보고 객관적으로 조사했다는 5.18 위원회 역시 판사의 판결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

 

해남에 사는 80대 여농군 심복례도 내세웠다. 이 노파 역시 말귀를 못 알아들어서 두 번씩이나 호출돼 출두했다. 광주 변호인단은 이 노파로 하여금 1980.5.23.에 관을 잡고 우는 여인이 심복례라고 주장하라고 시켰다. 법정에 나온 심복례는 사진이 무엇인지 전혀 몰랐다. 5.18 기념재단 홈페이지에는 심복례의 남편 김인태의 사망에 대한 사연이 기재돼 있다. 여기에는 해남에 사는 심복례가 해남 군청 직원으로부터 남편이 죽었다는 사실을 1980.5.29.에 통보 받고, 다음 날인 5.30에 망월동에 가매장된 악취 나는 남편의 시신을 처음 확인 했다고 기재돼 있다. 그런데 어떻게 5.23에 남편 관을 잡고 울 수 있다는 말인가?

 

광주의 떠벌이로 알려진 박남선은 중2로 중퇴하여 협박죄와 절도죄로 징역형과 벌금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그가 군법회의 검찰부에서 2차례에 걸쳐 진술한 피의자 신문 조서에는 1980.5.23. 14시 부터 적십자 병원에 있는 19구의 시체를 도청으로 옮기는 부역자였고, 525일 김종배의 요청으로 상황실장 역할을 하다가 52618시 경 수습위원장임 김창일을 권총으로 위협하여 내쫓고 김종배를 위원장으로 세우는데 공을 세웠다. 광주 변호인단은 그로 하여금 523일 도청 앞에서 한손에는 무전기, 다른 한 손에는 무거운 M16 유탄 발사기를 들고 훈련된 어깨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김인태를 도청 안으로 연행해 가는 71번 광수를 박남선 얼굴이라고 주장케 했다. 523일 그는 시체 운반 부역자였다. 노숙자 담요는 71번 광수를 황장엽으로 분석했다. 그런데 박남선의 주장이 코미디다. ”71번 광수는 박남선이어야 하는데, 지만원이 자기 얼굴이 붙어 있어야 할 71번 광수 몸뚱이에 황장엽과 비슷한 얼굴을 제작해 합성해 놓았다. “고 주장한 것이다. 당시 박남선은 25, 황장엽은 57세였다. 우선 나이테가 다르다. 황장엽의 얼굴과 71번 광수 얼굴에는 굶은 S자형 근육이 튀어나와 있지만 박남선의 얼굴은 애송이였다. 지만원은 그 71번 광수 사진이 조선일보 사진 DB 어느 위치에 있다는 것을 설명하여 보여주었다. 그 사진이 있는 위치를 찾아 들어가는 검색 경로까지 제시 하면서 그 사진은 변조된 사진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 그런데도 판사는 무조건 광주 시민이 주장하면 무조건 사실로 인정해야 한다. “는 인민군식, 점령군식 판결을 했다. 이 세 가지에 대한 판결만 해도 재심 사유가 된다.

 

5.18 위원회가 공정하게 조사를 했다면 이런 사실을 들추어냈어야 했다. 그런데 그들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사술 정신만 들어 있는 듯하다.

 

3) [집단 발포]라는 괴담에 대한 조사

집단 사격이라는 말은 성립할 수 있어도 집단 발포라는 말은 군사 용어에 없다. 어감 자체가 모략적 냄새를 풍긴다. 집단 발포라는 말은 1980521, 7공수와 11공수가 사수하던 전남도창 앞에서 시위대를 향해 전두환 명령에 의해 일제 사격을 가해 도청 앞을 피바다로 만들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는 괴담이다. 521일 광주 지역에서 24시간 동안 발생한 사망자 수는 총 61, 이 중 도청 앞에서 사망한 사람은 8명뿐이고 나머지 53명은 계엄군이 없는 장소에서 사망했다. 가장 많이 사망한 장소는 금남로였다. 옥상을 점령한 무장 괴한들이 금남로에 집결된 시민을 향해 하향 사격을 가해서 발생한 주검이 40여 구나 되었다.

 

차량 돌진으로 도청 앞 사격을 유도해 놓고, 그 총소리에 기대서 강철 비를 내린 것이다. 고도로 전문화 된 게릴라들의 모략 수법인 것이다. 이는 [결정적 증거 42] 157~161쪽에 증거번호 30으로 제시돼 있다. 8명 중 4명만 M16 총상을 입었고 나머지 4명은 칼에 찔리고 둔기에 맞아 사망했다. 4명은 계엄군과 무관하게 죽었다.

 

병사들의 사격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병사 개인이 자기 생명의 위험을 느낄 때 자기 방어 수단으로 발사하는 경우다. 이는 일반 헌법에도 정당방위 행위로 정당화 돼 있다. 광주에서 산발적으로 이루어진 사격은 100% 다 자위 수단의 발사였다. 또 다른 하나는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해 지휘관들의 명령에 의해 부대 단위로 사격을 하는 경우다. 이런 경우는 광주에서 전혀 없었다. 집단 발사가 있으려면 명령 계통으로 사격 명령이 내려와야 한다. 광주 현장에는 공수부대만 해도 10명의 중령급 대대장들이 있었다. 집단 사격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대대장에게 하달된 집단 사격 명령서가 있거나 구두 명령이 있어야 한다. 이것을 찾아내지 못하면 [집단 발포]는 군과 국가를 살인집단으로 몰아가려는 반국가적 괴담이다. 이번 6차 보고서에는 황당한 기재가 있다. 전두환이 계엄사령관인 이희성 몰래 참모 차장을 통해 발포 명령을 내렸다는 단서를 포착했다고 한다. 갈수록 해괴하고 무식하다.

 

4) 헬기 사격에 대하여

조사위는 500MD UH-1H, 코브라 헬기가 출격한 것까지는 사실에 확인 되지만 시민을 향해 발사 했다는 증거는 찾지 못했다고 썼다. 코브라 헬기는 20mm 발컨포 시스템을 장착하여 한번 버튼을 누르면 몇 백발씩 나가는데 위원회가 발견한 것은 조선대 뒷산 절토지에서 녹슨 훈련 탄두 1개인데, 이것이 코브라 사격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추후 조사할 것이라 한다. 참고로 발컨포에 견딜 건물은 드물다.

 

5) 공군 전투기 무장 출격 대기설에 대하여

20사단 모 장교로부터 군이 광주에 근접 사격(Air Strike)을 할 것이라는 내용으로 브리핑 하는 장면을 목격했다는 증언을 접수 했다고 한다. 20사단에 대공 포판(signal panel)’이 공급 됐다는 증언도 접수했다고 한다. 이는 포판(布板) 근처에 우군이 있으니 군중 사격을 하지 말라는 표식 판이다. 10전투 비행단, 15전투 비행단, 3훈련단을 확인했지만 뚜렷한 증거를 모두가 이치에 맞지 않는 괴담이다.

 

6) 광주 교도소 5회 습격 사건

이에 대해서는 대법원 검찰 군기관에 따라 내용이 상이하다. 당시 광주 교도소장의 증언에 의하면 광주 교도소 방어는 교도소장이 주도 했고, 이 과정에서 군의 지원을 받았다고 한다. 광주 교도소 부근 도로에 소규모 시민이 탄 차량 이동이 있었지만 이는 교도소를 공격하는 군사 작전은 아니었다고 판단 한다.

 

7) 성폭행 사건

위원회는 여성들의 직접, 간접적인 이야기는 많이 있지만 실상은 드러나지 않고 있다 했다. 단지 2018년 국무총리와 국방부 장관이 군의 성폭력에 대해 통렬히 반성한다.“는 사과가 있었다. 직접적인 피해자가 120명인 것으로 증언되고 있어 이를 연구용역으로 주었다.

 

8) 사망자에 대한 재분석

사망자에 대한 사인이 가장 철저하고 객관적으로 분석된 시기는 19806월 당시였다. 그 후 민주화 시기인 1995년에 변조됐고 43년이 지난 지금 또 사인을 재분석하겠다고 한다. 시체는 1980년에 땅 속에 묻혔는데 뼈를 파내서 분석하는 것도 아닌데 사인이 왜 달라지는가? 당시 당국에서는 뒷말을 없애기 위해 의사, 변호사, 시민 대표단들을 총 동원하여 협동 조사반을 꾸려 시체 검안을 하도록 했고 대부분의 유족들이 이를 수긍하고 시체를 인수해 갔다. 광주는 시체 장사로 먹고 사는 고장이다.

 

9) 기타

계엄군은 민간인만 나타나면 마구 학살하고, 집단 사격을 가했으며 시민을 연행감금하여 성희롱을 하고 담뱃불로 지지고, 대검을 꺼내 머리카락을 잘라 보이며 협박하고 조롱했다. 노인, 장애인, 미성년자를 가리지 않고 마구 살해했다. 증거는 없지만 증인들이 있다. 보고서에는 이런 잡스런 괴담들이 많이 기재돼 있다. 대검에는 날이 없다. 총구에 장착해 백병전에서 적을 찌르는 기능만 수행한다. 대검으로는 사과 껍질도 벗기기 못한다. 탄소강이기 때문에 날이 세워지지도 않는다. 대검으로 유방을 도려냈다, 대검으로 머리 껍질을 벗겨 냈다는 등의 유언비어는 1980년 한국 사회를 풍미 했다. 그런데 지금은 5.18 조사위가 대검으로 머리카락을 잘랐다는 괴담을 보고서에 담고 있다. 군을 기피한 사람들이나 이런 보고서를 쓸 수 있다.

 

총평

 

1. 송선태는 5.18유공자이고, 5.18이 국가 전복 폭동으로 기획돼 있다는 사실을 직접 [자유노트]에 기재할 정도로 알고 있으면서도 시위 폭동에 참여 했다. 5.18 성역화의 총 사령인 5.18 기념재단 상임이사도 연임했다. 이런 반국가 인물이, 이해 당사자가 450여억 원의 국가 예산을 사용한 5.18 위원회 수장으로 조사를 지휘했다는 사실은 날벼락보다 더 강한 충격을 줄 것이다. 여기에 더해 위원회는 광주인 일색으로 구성된 [광주 위원회]. 여기에서 발행한 보고서는 이 자체로 휴지에 불과하다. 여기에 하나 덧붙일 것이 있다. 상임위원 3, 직책도 3개다. 위원장, 부위원장, 사무처장이다. 그런데 광주 출신인 안종철이 부위원장과 사무처장 자리를 독차지하고, 서울 출신 이종협에는 아무런 직책을 주지 않았다. 문제는 이종협에도 있다. 한마디로 자기 밥그릇도 차지하지 못하는 바지에 만족해 왔다는 점이다. 봉급만 받아온 것이다.

 

2. 위원회는 450여억 원을 소비하면서도 이번 조사의 핵심인 북한군 개입 여부에 대한 조사를 하지 않았다. 반면 북한군 개입 조작여부에 대한 답을 내기 위해 지만원이 노숙자 담요의 대역을 해왔다는 기상천외한 발상을 했다. 지만원이 북한군 개입을 조작해 왔다는 것이다. 이런 사술을 가지고 42개 증거를 탄핵 한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 [결정적 증거 42]에 대한 조사를 하겠다며 지만원을 구치소로 찾아온 날이 2023.8.24.이었다. 그 다음은 927, 도합 4시간여의 대담 조사가 전부다. 42개 증거의 변죽도 건드리지 못했다. 아마 다급하면 주사파 판사의 판결문 ”5.18은 이미 사법적, 역사적 평가가 종결됐다. 따라서 북한군은 올 수 없었다.“이 구절을 내세울지도 모른다.

 

3. 위원회는 조사능력이 없다. 보고서를 보면 안다. 그래서 사술을 써서 한탕주의식 해결을 시도하면서 세월을 낭비했다. [보랏빛 호수]를 무력화 시키는데 1, [1호 광수]를 조작해 내는데 2, 도합 3년을 허송했다. 왜냐하면 [보랏빛 호수][1호 광수]에 대한 조사 결과가 6차 보고서에 실리지 않았기 떄문이다. 사술로 3년 동안을 날리고 예산을 날린 것이다.

 

4. 지만원이 노숙자 담요의 필명을 사용하면서 12역을 했다는 보고 내용에 대해 지만원은 고소를 할 것이다.

 

5. 여타의 과제들에 대한 새로운 발견은 보고서에 없다. 괴담만 잔뜩 긁어모은 괴담 잔치인 것으로 보인다. 5.18 위원회는 [괴담 채집 위원회]로 낙인 찍힐 것 같다.

 

6. 위원회는 월 1회 이상 공청회를 열겠다고 선언했지만 이제까지 공청회는 단 1회도 열리지 않았다. 조사 내용이 없어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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