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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비> '제주도인민유격대 투쟁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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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1-02-14 17:23 조회16,25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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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구는 김달삼에 이어 공식명칭 ‘제주인민유격대사령관’이 되었고, 1949년 6월 7일, 경찰에 의해 사살됐다. 이때 그의 직속부하인 '양생돌'의 주머니로부터 극비 메모인 “제주도인민유격대투쟁보고서”<극비>가 발견되었으며 이 극비 보고서는 1948년 3월 15일부터 7월 24일까지 무려 4개월 10일간에 이르는 투쟁 상황을 자세하게 기록했다. 아래는 이 극비문서를 필자가 소화하여 알기 쉽게(readable) 통역한 것이다.


                              [제주도인민유격대 투쟁보고서]


1. 유격대를 조직하게 된 동기


1947년 3․1 및 3․10투쟁 이후 반동 경찰을 위시한 서청(서북청년회), 대청(대한청년회)의 잔인무도한 탄압이 이어졌다. 인민을 무조건 대량 검거하고 구타 및 고문 등이 이어진 것이다. 1948년 1월에 신촌사건을 전후하여 조천지서에서 김용철 동무, 모슬포 지서에서 양은하 동무가 고문으로 사망하는 등 인민에 대한 토벌 학살 정책이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단선-단정을 반대하고 UN 조사위원단을 격퇴하는 투쟁을 벌여야 하는 우리로서는 앞으로 인민의 피를 흘리는 투쟁을 예측하게 되었다.

3․1투쟁에 있어서의 각급 선전 및 행동대의 활동은 이후의 ‘자위대’ 조직의 기초가 되었으며 3․1투쟁 직후 전남도당(道黨)의 지시에 의하여 각 면의 조직부 즉 면당 직속의 자위대를 조직하게 되었으나 별로 진전을 보지 못했다. 이후의 사태가 갈수록 악화될 것임을 간파한 도상위(島常委)는
3월 15일 전남도(道) 파견 󰡒올구󰡓를 중심으로 회합을 개최하여 첫째 조직의 수호와 방어의 수단으로서, 둘째 단선-단정 반대 구국투쟁의 방법으로서 적당한 시기에 전도민(全島民)을 총궐기시키는 무장반격전을 기획하기로 결정했다.


3월 25일까지를 준비기간으로 하여 도상임(島常任) 특히 투위(鬪委)의 예하에 군위(軍委)를 조직하고, 투쟁에 필요한 자위대를 200명 정도로 조직하고, 보급, 무기획득, 선전 사업를 강화하기 위해 책임을 분담했으나, 예정 기간을 넘어 3월 28일 재차 회합을 가졌다. 준비 사업들에 대한 각자의 보고를 종합 검토한 결과, 4월 3일 오전 2시-4시를 기하여 별항의 전술에 따라 무장 반격전을 전개하기로 결정하였다.


2. 4.3투쟁을 위한 조직은 아래와 같이 비교적 단순했다. 이 단순한 조직을 가지고 4.3 투쟁을 벌였으나 4.3 투쟁 직후 제1차 조직정비가 있었고, 5.10투쟁 직후 제2차 조직정비가 있었고, 그 후 7월 15일에 이르기까지 제5차 조직정비가 이루어졌다. 4개월도 채 안 되는 기간에 조직이 다섯 차례나 정치된 것이다.


2. 유격대 조직

조직에 대한 패러다임과 특성을 설명하기 전에 우선 강조돼야 할 것은 4.3사건이 좌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경찰, 군, 서북청년단들에 의한 제주도민 탄압에 항거하여 일어선 단순한 저항이 아니라 처음부터 북과 연계된 전남도당으로부터 지령과 지도를 받아 5.10단선과 단정을 반대하고 유엔감시위원단을 축출하기 위해 게릴라 전술과 조직과 선전에 전문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는 공산주의자들이 기획하고 연출한 조직적인 무장-선전 투쟁이었다는 것이다.


가만히 있는 제주도 주민을 경찰이 못살게 괴롭힐 이유가 어디 있으며, 서북청년단이 대거 배를 타고 제주도까지 건너가 장기 체류하면서 가만히 있는 제주도 주민을 탄압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먼저 극비문서에 나타나 있는 4.3투쟁 직전의 조직은 아래와 같다.


제주도 섬 단위에 ‘島당투위’(제주도당투쟁위원회)가 있다. 도당특위에는 위원장, 조직부, 선전부, 군사부, 보급부로 구성돼 있다. 당시 제주도는 북제주군과 남제주군이 있었고, 북제주군에는 5개면, 남제주군에는 7개면이 있었다. ‘도당특위’는 직할부대로 ‘도특별경비대’(특경대)를 두었고, 각 면단위에는 ‘면투위’ 밑에 ‘유격대’와 ‘자위대’를 두었다.


유격대는 초기 총사령관 김달삼 휘하에 편입되어 기동하면서 싸우는 공비부대였고, 자위대는 마을에 위장하여 유격대와 군중을 연결하면서 마을에서 행패를 부리는 반동들을 극비에 처단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유격대와 자위대는 공히 소대-중대-대대로 편제되었고, 각 소대는 10명, 각 중대는 2개 소대로, 각 대대는 2개 중대로 편성했다.


유격대는 제주읍(濟州邑) 조천 애월 한림 대정 중문 남원 표선 등 8개면에 조직됐다.


초기의 유격대 총 인력은 100명, 자위대 인력은 200명, 사령관 김달삼 직속부대로 편성된 특경대(필자주: 우리의 본부사령)는 20명, 전체 320명이었고,
이들이 보유한 병비는 99식 소총 27 정, 권총 3정, 수류탄(다이너마이트) 25발, 연막탄 7발, 나머지는 죽창이었다.


4.3투쟁 직후에 제1차로 정비된 조직(조직개편)은 인력이 증가함에 따라 도-면 특위에 보급, 경리, 위생 등의 기능이 추가되었고, 면단위에 편성된 면투위에 유격대와 세포자위대를 두고 세포자위대 밑에 부락인민자위대를 편성했다.


제1차 조직개편에서는 전 유격대를 250명으로 정리했다. 실제로 4.3 투쟁에서는 유격대와 자위대와 공동으로 작전을 수행했고, 4.3투쟁 직후 유격대와 자위대는 다 같이 산 속에 들어가 공동생활을 하게 되었다. 산 속에 인력이 많아지다 보니 일상생활에 혼란이 발생하고, 보급 문제가 대두되어, 산 속에는 250만 남기고 나머지는 하산시켰다. 그러나 그 후 재차 병력 확충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신속의 인력을 400명 정도로 확충시켰다.


제2차 조직개편은 5.10투쟁 직전에 착수하여 직후에 완료했다. 엄격한 규율과 치밀한 기밀 확보 그리고 신속한 행동을 보장하기 위한 작전상의 필요에 의하여 각 면 투위 군사부 직속으로 편성돼 있던 유격대를 도사령부 직속으로 편성했다.

분대는 3명, 소대는 3개분대로 10명, 중대는 2개 소대로 23명, 대대는 2개 중대로 49명, 연대는 2개 대대로 110명으로 구성하였고, 도 사령부는 3개 연대로 370명으로 정했다. 이 370명 중에는 특무부 20명이 포함돼 있고, 특경은 해체하여 사령부 각 부문에 분산시켰다.


제3차 조직개편은 5월 말에 단행했다. 그 동기는 국경(국방경비대) 약 4,000명이 제주도에 투입되어 포위 및 토벌작전을 수행함에 따라 이들과의 충돌을 회피하고, 비합법적 활동을 강화하기 위해 인력을 370명에서 240명으로 대폭 삭감하게 되었다. 1분대를 5명으로, 1개 소대를 3개 분대 16명으로 편성했고, 이중 1개 분대는 취사 분대로 하였다.


제4차 조직개편은 6월 18일에 착수했다. 1개 지대(支隊)지대를 3소대로 편성하고, 1지대 인원수를 60명, 도사령부를 4개 지대로 간편 편제하고, 도사령부 26명을 포함 총계 266명으로 했다. 분대-소대-중대-대대-연대-사령부로 이어지는 6개 계단을 분대-소대-지대-사령부의 4개 계단으로 단순화한 것이다.


제5차 조직개편은 6월 18일부터 착수하여 7월 15일에 완료되었고, 이 극비보고서가 경찰 손에 입수된 7월 24일 현재의 조직은 제5차 조직개편에 의한 것이다. 도군사령부 밑에 4개 지대(30지대, 31지대, 43시대, 50지대)가 있고, 4개 지대 밑에 유격대(12개 소대, 총120명)와 특무대(12개 지역특무대 312명)가 있다. 사령부 및 지대는 3명으로 구성한다. 사령관 또는 지대장, 정치부원, 작전참모다.


각 지대에는 도사령부로부터 정치부원이 파견되어 나갔고, 이들은 의식화교육을 담당한다. 특무대는 면 단위로 편성되어 있다. 특무대는 각 지대의 정보과에 소속되어, 정보 수집, 개인 테러, 군 활동에 호응, 보급 활동을 한다. 특무대는 각 면과 각 부락에 주둔하고, 지대의 지도부, 통신대, 유격소대는 지대의 지도부 중심으로 밀집 생활한다.


제30지대는 56명으로 2개 특무대로 구성돼 있고, 읍가구(12명), 읍농촌(44명)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표현돼 있지만 읍가구와 읍농촌이 무슨 뜻인지는 알 수 없다. 제31지대는 3개 특무대 82명으로 구성돼 있고, 애월면(34명) 중문면(24명) 애월면(24명)을 담당한다. 제43지대는 3개 특무대 80명으로 구성되었고, 한림면(44명), 대정면(24명), 안덕면(12명)을 담당한다. 제50지대는 4개 특무대 96명으로 구성돼 있고, 조천면(24명), 구좌면(34명), 성산표선(24명), 남원면(12명)을 담당한다.


각 면에는 특무대장 1명과 연락원 수명을 둔다. 분대는 3명, 소대는 10명이며, 각 부락에 1~2명 정도의 특무대를 둔다. 특무대원은 세포로부터 제외한다.

보유병기는 M1 6정, 칼빈 19정, 99식 117정, 44식 4정, 30년식 2정 등 계 147정이고, 소총 탄환은 M1 1,396발, 칼빈 1,912발, 99식 3,711발, 44식 및 30년식 721발, 계 7,740발이다.


그 외 경기관총(일본제) 1정, 척탄통 2문(탄환 8발), 수류탄 43발, 다이너마이트 69발, 신호탄 2개, 군도 16개, 권총 6연발 1정, 8연발 6정, 10연발 1정, 계 8정 및 탄환 119발이 있고, 뇌관 103발, 지뢰 뇌관 8발, 야포탄환 4발 등이 있다. 4.3투쟁이 실패한 원인은 가장 중요한 수류탄 등을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3. 작전


1) 제1차 작전(3월 15일 이후 4월 2일까지의 약 18일간)

4․3(사건) 투쟁을 위한 조직 및 병기 준비 그리고 정보 수집 기간이었다. 적의 집중적인 탄압 속에서 극비리에 유격대(톱부대) 100명과 자위대(후속부대) 200명 계 300명과 무기 소총, 권총 합계 30정 확보에 성공하였으나 가장 중요한 수류탄과 휘발유탄을 구입 못하여 4․3 투쟁 실패의 결정적인 한 원인이 되었다.


2) 제2차 작전(4월 3일 이후 4월 20일까지의 약 18일간)

4월 3일 오전 2시-4시를 기하여 8․15 해방 이후 제주도 초유의 무장반격 투쟁을 전개했다. 제주도 반동의 아성인 제주읍, 성내(제주읍내) 특히 감찰청(監察廳)과 제1구서(第1區署) 분쇄를 국경(국방경비대)에 담당시키기로 하고, 이를 위해 성내에 20명의 학생 특무원을 연락병으로써 침입시키고 나머지 14개 지서에 400명을 배치하였으나 국경이 투쟁에 참가하지 않아 거점 분쇄는 실패했고, 계획된 14개 지서 중 12개 지서를 습격하는 데 성공했다.


국경이 무장투쟁에 불참한 사유는 이러했다. 국경 프락치를 만나러 갔던바 프락치 2명은 영창에 수감 중이었으므로 하는 수 없이 횡적으로 문상길 소위를 만나 본 결과 국경에는 문소위를 중심으로 하는 중앙 직속의 정통 조직과 고승옥 하사관을 중심으로 하는 제주 출신 프락치 등 이중 세포로 되어 있었다. 고승옥으로부터 앞으로 있을 무장 투쟁에 경비대를 동원하여 참가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지만 문상길 소위는 중앙으로부터 지시가 없어서 거절하였다는 대답이었다. 직접 재삼재사 동참을 요청하여 보았으나 여전히 중앙 지시가 없다고 거절하여 결국 국경 동원은 불가능하였고 따라서 거점 분쇄도 실패하였다.


습격한 지서는 12개, 외도 구엄 애월 한림 대정 남원 성산 세화 함덕 조천 삼양 화북이었고, 투쟁에 참가한 유격대 인력은 350명이었다.


전과는 다음과 같다.

경관 사망자 10명, 경관 부상자 4명, 경관가족 사망 3명, 경관 포로 1명, 반동 사망자 4명, 반동 부상자 3명, 반동가족 사망 3명, 반동가족 부상 1명, 반동 포로 4명, 서청 사망자 7명, 반동가옥 소각 2호(戶). 노획품으로는 군도 1 정, 카빈소총 7 정, 44식소총 1정, 공기총 1정이었다.

유격대의 사망자수는 4명.


3) 제3차 작전(4월 20일 이후 5.10선거일 직전까지)

조직을 정비-확대하고, 엄호투쟁을 전개하기 위하여 부락주둔을 개시하여 반동 숙청에 주력했다.


4) 제4차 작전(5.10부터 5월 26일까지)

각개격파 전술을 수행하기 위해 주력부대를 2개 그룹으로 편성했다. 5․10 당일에는 주로 남제주를 중심으로 각 부락을 공격하면서 투표보이코트전을 전개했다. 그 후 세력을 집결하여 함덕 지서, 저지 지서의 2개 지서를 습격하여 전소시켰다. 안덕 지서를 습격하여 경관 6명을 사살하고 퇴각했다.

대정에서 적 기동대차량 3대(약 60명)를 매복전으로 습격하여 경관 14명을 즉사케 했고, 특기할 것은 국경(국방경비대) 1개 소대가 대정 지서를 습격하여 경찰관 5명을 즉사케 한 후 산으로 탈출한 사실이다. 적의 심리를 서늘케 하는 대투쟁이 매일같이 전개됐고, 4․3투쟁 이후의 구국 유격전은 이 기간에 최고도로 앙양됐고, 최고의 전과를 보였다.


5) 제5차 작전(5월 27일부터 6월 18일까지)

약 4,000명에 이르는 국경과의 충돌을 회피함으로써 국경의 포위 토벌전을 수포로 돌아가게 하는 동시에 일면으로는 국경 내부의 충돌 특히 최고의 악질 반동인 박진경 연대장 암살과 국경요원들의 탈출공작을 추진했다. 우리 쪽의 피해도 상당했지만, 6월 18일 오전 3시경을 기하여 박진경 연대장이 암살되었고, 이는 적에게 결정적인 타격이었다. 6월 17일까지의 제4차 공격을 끝으로 국경은 산 공격을 단념했다. 이에 우리는 주로 중산촌 부락을 습격했고, 국경이 중산촌에서 퇴각했다. 이는 우리의 성공이었다.


6) 제6차 작전(6월 19일 이후 현재(48.7.24)

국경에서 철거(필자 주:후퇴)전술을 쓰기 시작하자 우리는 각처에 분산되어 있는 조직을 질적인 면에서 정비 강화하고, 정치부원으로 하여금 정치교육을 강화하고, 일상생활을 규칙적으로 하고 규율을 강화해왔다.

2011.2.1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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