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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의 배후 조종 없는 소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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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0-01-04 14:39 조회20,80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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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첩의 배후 조종 없는 소요는 없다


어느 사회에서든 불만세력은 있게 마련이다. 대남공작의 핵심은 기존의 불만을 부추기고, 불만의 표출 방법을 조직적으로 지도하여 민란으로 확대시킴으로써 북한의 군사적 개입을 정당화시키려는 것이다. 북한을 연구하는 사람 치고 이를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북한의 대남 사업소들은 수십 개에 이른다. 각 사업부는 입신출세, 생존경쟁, 충성도 경쟁 등의 다양한 동기를 가지고 경쟁적으로 대남사업을 벌이기 때문에 한국사회에 남파된 간첩 거물들은 호시탐탐 기회를 살피고, 기회를 만들어 사회소요를 획책해 왔다.


대한민국 역사는 대남공작 부서와 지하당 조직이 부추겨 일으킨 소요사태들의 연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모든 소요 사태 치고, 지하당 조직의 개입 없는 사태는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믿음이다. 심지어는 4.19 학생 시위를 직접 지도했다고 증언한 사람이 두 사람이나 된다. 한 사람은 1946년 대구폭동을 주도했던 간첩 이석이고 다른 사람은 1960년대에 남파하여 15년간 거물간첩으로 활약해온 김용규씨다. 김용규씨는 그의 대남공작 비화 “소리없는 전쟁”(1999. 원민) 81쪽에서 4.19를 이렇게 회상했다. "4.19 때에도 시위학생들이 가자 북으로! 만나자 판문점에서! 이런 구호를 외치며 왁시글거리지 않았습니까? 그 때도 제가 서울에 있으면서 학생시위를 지도했습니다"  

  

거물간첩 출신 김용규씨는 그의 저서“소리 없는 전쟁”에서 매우 강한 교훈을 일러주고 있다. 그는 호남출신 거물간첩이었으며, 15년간에 걸쳐 암약한 내용들을 실감 있게 정리했다. 우리에게 도움이 될 부분들만 아래와 같이 발췌-요약한다. 


“1970 및 1980년대에 걸친 모든 기간에 걸쳐 나라의 안보를 위태롭게 했던 갖가지 극렬사태가 바로 북쪽의 공작에 의해 야기된 필연적 결과라는 것은 의문의 여지도, 재론의 여지도 없는 것이다.”


“민주화는 1960년대부터 북이 남한의 불만세력을 선동하기 위해 사용한 위장용어였고, 남한의 민주화운동은 북의 지령이었으며 남한에의 민주정부 수립은 김일성의 목표였다. 4.19를 북한에서는 4.19민중항쟁으로 부르고 실패한 통일기회로 기억한다. 5.18을 북한에서는 5.18민중항쟁으로 부른다. 4.19도 5.18도 북의 공작에 의해 야기된 필연적 결과였다. 김대중은 북이 키웠고, 호남은 적화통일의 전략적 거점이었다.”

 

“4.19라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대남공작을 다시 본격화하기 시작한 1960년대초, 입불산 기슭의 독립초대소에는 온 연락부의 관심을 한 몸에 지니고 공작에 몰두하고 있던 한 사나이가 있었다. 남해의 이름 없는 섬에서 자라나 6.25때 의용군으로 월북, 지금은 남파 직전에 있는 공작원인 바로 나였다. 서해 남단에 자리 잡은 외딴 섬, 내가 외삼촌을 대상으로 공작구상에 착수한지도 어언 6개월이 흘렀다 . . ”통혁당의 서막”. “요정에서 낚은 대어”, 내가 다음으로 낚은 대어는 4.19 학생운동의 원류였던‘신진회’의 주 멤버였다(주: 고건, 류근일이 신진회 원조였음). 나는 나의 연고지에는 물론 무안, 목포, 영암, 해남, 완도 등지에 각계 인사 40여명을 포섭하여 조직을 확대하고.  . .지금(1962) 군사정권은 미국 놈들의 조종 아래 한일회담을 추진하고 있는데 막상 한일협정을 추진할 단계가 되면 각계각층 국민들이 완강하게 저항하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그 때를 대비하기 위해서도 학생, 지식인, 종교인들 속에 뿌리를 깊이 박아야 합니다. . 정태묵(통혁당 연루 간첩)이란 사람인데 그 사람 사상 하나만은 보증 수표거든, 남로당 활동도 하고 6.25때는 빨치산 투쟁을 하다가 체포됐는데 4.19 후에 목포 교도소에서 풀려나온 사람이야. 그래서 이제부터는 활동무대를 목포, 광주로 뻗어 나가야 한다는 겁니다”(56쪽).


“새벽에는 조깅하러 나온 것처럼 측근들을 데리고 나와 인사시키고, 낮에는 다방이나 중국 음식점에서, 저녁에는 포장마차에서 소주잔을 돌리며 사람을 소개시켰다. 그 중에는 대학교수, 박사도 있었고, 변호사, 언론인, 종교인, 그리고 초.중.고등학교 교사와 실업자들도 많았다. 그들 모두가 박정희 군사정권에 한을 품고 있는 호남출신으로, 남조선 혁명에 발 벗고 나설 수 있는 동조자들이었다”(57쪽).


“그 후 4개월에 걸쳐 통혁당 창당준비작업은 예상을 뒤엎고 매우 빠른 속도로 진척되었다. 호남에서는 각계각층의 저명인사들을 직업적 혁명가로 육성하여 지하당 조직을 확대해 나가느라 여념이 없었고, 서울에서는 김종태(호남출신, 통혁당 연루 간첩 우두머리, 사형)를 중심으로 서울대 출신들을 비롯해 학연 지연 관계로 연결된 엘리트 군단으로 통혁당의 조직적 골간을 형성하는 동시에 통혁당의 외곽조직으로 ‘학사주점’‘민족주의비교연구회’를 비롯한 각종 비합법. 반합법 군중단체를 조직, 확대하는 한편 기관지 [청맥]과 [혁명전선] 발간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이처럼 서울과 호남지역의 창단준비 공작이 빠른 속도로 추진됨에 따라 평양에서는 통혁당 강령 규약과 선언문 초안, 그리고 기관지 [청맥]에 실을 원고를 준비하느라 즐거운 비명이 그칠 사이 없었다.”


“1964..3.15.밤 12시, 서울과 호남에 창당준비위원회가 결성되고, 평양으로부터 당중안위원회 명의의 축전이 날아오고 조총련을 비롯한 수많은 해외단체 조직들에서 연대성을 표시하는 격려의 메시지가 날아왔다. 우리가 손을 대지 않아도 한일회담을 반대하는 데모는 이미 전국으로 확산되게 돼 있다. 지하당 조직 간에 주도권 싸움을 하지 마라. 지금 나서면 잡힌다. 알겄 냐”(64쪽).   


“전남도당 지도부는 최연도(통혁당 연루 간첩)와 정태묵을 각각 정조직과 후보조직의 책임자로 하여 광주, 목포, 여수 등 전략적 요충지대를 중심으로 세포조직을 깔아 나갔고. . . 다른 한편으로는 남조선의 모든 혁명 조직들을 북과 연계되지 않은 자생적 조직인 것처럼 잘 위장해야 한다는 전술 방침에 따라 김진락, 이문규가 각각 관장하는 별개의 체계로 민족해방전선과 조국해방전선을, 그리고 그 예하에 반합법 조직으로 ‘새문화연구회’, ‘청년문학가협회’, ‘60년대학사회’ 등 20여개의 부문별, 계층별 군중 단체들을 조직, 결속시키고 합법적 활동무대를 넓혀 나갔다. 그 중에서도 특히 65년4월 이문규의 발기로 설치 운영되었던‘학사주점’과‘60년 대학사회’는 전국 각 도시  각 대학에 뿌리를 박은 가장 큰 규모의 반합법조직으로서 통혁당의 저수지 역할을 담당하는데 손색이 없었다.”(67쪽).


“일제 식민지 통치 시기의 광주학생사건, 6.10 만세운동은 차치하고, 해방 후 6.25 이전까지만 해도 호남지역은 여순반란 사건과 지리산 빨치산 투쟁으로 이승만 독재정권을 전율케 했던 전통적으로 좌익 성향이 강한 지역이 아닌가! 1967년, 공화당과 신민당과의 치열한 싸움에서 통혁당 조직원들은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역전, 터미널, 사장 터 할 것 없이 찾아다니며‘이번 국회의원 선거는 목포가 죽느냐 사느냐 사활이 걸려있는 선거다. 목포시를 살리고 내가 살기위해서는 공화당을 낙선시켜야 한다’고 목이 터져라고 외쳤다.”(72쪽)


바로 이 대목이 매우 중요하다. 위에서 통혁당 간첩들이 1967년에 목포로 대거 내려가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국회의원 선거에 뛰어들어 선거운동을 한 것은 바로 김대중을 당선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1967년6월4일 오후2시 목포역전 광장에서 김대중은 이렇게 유세연설을 했다. "여러분 내 눈을 똑바로 보세요. 내 얼굴을 똑똑히 보십시오. 나는 내 장래에 대해서 큰 포부가 있습니다. 나는 돈 몇 푼 받아 가지고 내 장래를 망칠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내 꿈이 너무도 크기 때문에 더러운 돈 같은 것은 아무리 고통스럽고 괴로워도 안중에 없다는 것을 명백히 해둡니다 여러분." 거물간첩 출신인 김용규씨의 증언대로 김대중은 김일성이 키운 사람이라는 것이 실감나는 대목인 것이다. 다시 김용규씨의 증언들로 이어진다.   


“노동당 연락부의 각 공작팀에서는 서로 실적을 올리기 위한 치열 경쟁이 불붙기 시작했다. 저마다 앞을 다투어 공작선을 차지하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그 순번은 이미 공작준비 상태가 양호한 성적순으로 정해져 있었다”(74쪽).


“대학에도 못간 놈, 공부는 안 하고 무슨 권투선수가 되겠던 나의 친동생, 면사무소 말단 직원으로 있으면서 5.16 군사정권에 대해서는 남다른 적개심을 가지고 있는 나의 사촌 동생, 이들은 평양에 가서 뜨거운 포옹과 분에 넘치는 환대에 말할 수 없는 희열을 느끼면서부터 사상과 혁명적 열정이 극으로 넘쳤다. 4.19 때, 너는 중학생이었지? . .그 때 우리가 조금만 더 잘했으면 벌써 통일이 됐을 텐데, 그 좋은 기회를 놓쳤거든. . .그래서 지금 많은 애국 투사들이 제2의 4.19를 준비하고 있는데 너도 거기에 동참해서 한 몫 해야지. . ”(82-84쪽).


“혁명은 수백만 대중을 정치적으로 각성시키고 조직 동원할 수 있는 탁월한 영도예술을 필요로 하고, 또 혁명에는 노동자, 농민뿐만 아니라 학생, 정치인, 지식인, 종교인, 교수, 박사 등 광범한 계급 계층이 다 참가하게 되는데 그들을 의식화, 조직화하는 그 역할을 어떤 사람이 담당해야 하겠나”(98쪽).


“나도 4.19 때 학생 운동 해봤지만 그 때 얼마나 결렬했는지 아나? 5.16 쿠데타만 아니었다면 그 때 벌써 우리나라는 ‘민주화’가 열매를 맺고 통일의 문도 열렸을꺼야, 그런데 그 쿠데타를 막지 못했기 때문에 4.19의 열매가 군홧발에 짓밟히게 된 거지!(207쪽)”여기에서 민주화란 곧 공산통일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나쁜 놈들 같으니라고, 그 따위로 반공법에 걸려면 누군들 못 걸겠소? 김대중 선생까지 납치해 오더니 또 기승을 부리는 모양이로군! . . 정보부에서 알면 붙잡아가기밖에 더하겠습니까?  그게 무서워 입 다물고 있으면 언제 민주화가 되겠습니까? . . .참 존경스럽습니다. 목사님 같은 분들이 ‘민주화운동’을 이끌어 주셔야 할텐데요. . .민주화운동을 하는데 돈이 있어야 합니다. 집회 시위를 한번 하려 해도 움직이기만 하면 돈이 듭니다. . . 그러시면 일본에 계신 우리 은사님 한번 만나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 . 은사님이 뉘신데오? . . 김대중 선생하고도 막역한 사이인데 그 어른께서도 목사님 같은 분을 좋아 하십니다”(1972년의 대화, 215쪽).


“잠시 후, 은사로 가장한 보조공작원 김시학이 인자하면서도 위엄 있는 자세로 모습을 드러냈다. . . .이 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좋은 일 하시고 계시다는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김시학의 위엄 있는 풍채는 김 목사를 압도하고도 남았다”(221쪽).


“목사님도 아시겠지만 지난 68년도에 있었던 임자도 사건, 통혁당 사건들이 당시에 어떻게 발표되었습니까? 최영도, 김종태 그 사람들이 모두 북으로부터 수천만원씩 지원받지 않았습니까? . . 목사님 같이 저명하신 분이 나서신다면 저는 목사님 밑에서 적극 보필해 드리겠습니다. 저는 한 때 김대중 선생을 따라다니기도 했습니다”(224쪽).


“왜! 나라고 민주화운동 하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나? 유신체제에 환멸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다 해야지. . 민주화운동 하는데 타입이 어디 있어! 오늘도 흥사단 사무실에서 모임이 있었는데 백기완씨도 나오고 . .  이번 개헌청원 서명운동도 백기완씨, 장준하씨, 그리고 지학순 주교를 비롯해 내로라하는 재야인사들이 주도하고 있는데 . . .지금 김대중 선생 구출 투쟁위원회가 결성돼 가지고 활동을 개시했는데 처음부터 자금난에 부딪혔거든. . 그래서 집행부에서는 국내에서 대대적인 모금운동을 벌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조총련을 비롯한 해외교포단체에 지원요청도 하고. . .(247쪽)”


“대통령긴급조치4호가 선포되고 뒤이어 대대적인 검거선풍이 일어났다. 재야는 재야대로 핍박받는 민중이여 궐기하라! 지식인, 언론인, 종교인들이여 궐기하라! 등 민청학련 명의의 각종 전단을 뿌리며 저항에 나섰다(278쪽).  


“취기가 오르자 종수는 평양에서 감동을 받았던 예술영화 ‘4.19인민항쟁’의 주제가를 입속으로 불렀다”(281쪽).


“접선 장소에서 갑자기 국군 훈련이 이루어졌다. 접선을 하게 되면 모두가 위험에 걸려든다. 접선 상대는 이 사실도 모르고 접선장소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통신도 제대로 안 되었다. 다급해 지자 나는 접선을 무산시키기 위해 접선장소에 산불을 지르게 했다”(368-369쪽).


“민청학련사건 전모가 밝혀지면서 수사대상에 오른 인원수가 무려 천여 명이나 되는가 하면 군법회의에 송치된 대상만 해도 250여 명에 달했다. 이 사건은 학생뿐만 아니라 문인, 언론인, 종교인, 변호사 등 각계 인사들이 관련된 사상 최대의 대형사건으로 확대되었다”(289쪽).


“이런 저명인사들까지도 이미 북하고 선이 연결돼 있었습니까? 정말 꿈에도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 . .뭐 그 정도에 놀라는가. . 그보다 더 중요한 권력 핵심부에까지도 포진돼 있다는 사실을 알면 뒤로 벌렁 자빠지겠네!. . 형님 말씀 듣고 보니까 더욱 힘이 생깁니다. 이런 어마어마한 인사들이 . . 그럴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299족).


“검열해야 할 조직이 94개입니다. 그 중에는 발전소, 변전소, 철도, 체신, 방산업체, 군부대, 대학가, 종교, 언론, 문화, 예술 단체들입니다”(302쪽). 


“모든 조직들을 북과 연계되지 않고 현지에서 자생한 조직인 것처럼 철저히 위장하고 합법적 활동무대를 넓혀 나가야 한다. . .가장 좋은 실적을 보인 부분은 대학가의 교수집단이었다”(308쪽). 


“지하당 조직 건설을 위한 전략 전술적 방침에는 비합법 전술과 합법전술을 유기적으로 잘 결합해야 한다. 비합법 전술은 도둑고양이처럼 정체를 노출시키지 않고 비밀리에 한다는 점에서 안전성은 있지만 능률이 좋지 않다. 남조선 사회에 조성되는 정세를 시의 적절하게 이용하여 남조선 혁명을 더욱 촉진시키기 위해서는 합법적 활동을 넓혀가면서 공개적으로 활동무대를 넓혀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군중대회를 조작하고 군중단체를 조직해 나가야 한다. 우리에게 포섭된 교수가 교수 단체를 조직하고 지배하도록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그 교수로 하여금 여러 교수들과 개별적 접촉을 통해 친분을 넓혀나가게 하다가 큼직한 포로젝트를 맡겨주는 것이다. 공작자금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면 그 교수가 발언권을 높일 수 있다. 이는 수많은 학생들을 의식화. 조직화시키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312-313쪽).


“3억 원이라는 엄청난 부도를 낸 출판사 사장을 포섭하기 위한 첫 대화는 이러했다.‘우리나라는 영토가 좁고 자원이 부족한데다가 인구가 많으니까 일자리도 모자라지, 그런데도 고급 인력이 포화상태에 있거든. 그렇지 않나? 그런데 소득분배는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나. 얼마 안 되는 국민소득을 가지고 4천만 인구가 골고루 나눠 먹어도 시원치 않은데 권력을 쥐고 흔드는 위정자들과 정치한다는 사람들이 뭉청 잘라먹지, 재벌들과 관료들이 한몫씩 차지하지, 어디 그 뿐인가. 각종 브로커들과 사기꾼들이 뜯어가고 그 나머지를 4천만에게 나누어주니 선량한 백성들에게 돌아올 것이 뭐 있겠느냐 이 말이야 . . . 자네 같은 사람이 무엇을 해야 하겠는가? . . .군부독재를 뒤집어엎고 온 국민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민주정부를 수립하는 길이지. 이제 자네가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 길 뿐이야. 알겠어?’”(318-319).


“1974.4월 초, 김대중 납치사건을 주도했던 이후락이 해외에 나갔다가 귀국했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갑자기 이후락을 납치해 오라는 공작 임무가 부여됐다. . . 모의 훈련까지 하고 나서 특공조 30명이 공작선 2척에 분승하여 양자강 하구에 이르자 갑자기 작전중지 명령이 내려왔다. 이후락이 자취를 감추었기 때문이었다”(323-328쪽).


“1974.8.15 저녁 경희루 경축파티에서 라디오 폭파(무선원격조정)에 의해 박대통령을 암살하려 했지만 낮에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재일교포 문세광이 일을 그르쳐 육영수 여사와 여학생이 숨지게 하는 사고로 경희루 행사는 그대로 무산돼 버렸다”(325-326, 이 내용은 김일성의 비밀교시에도 명시돼 있음). 


“조직 검열을 해보니 30개의 조직에, 주체사상을 모독하는 불순분자가 100명이나 들어 있었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했다.‘인간은 자주성을 생명으로 하는 존재라고 하면서 왜 유일사상, 주체사상을 강요하는가’, ‘주체사상을 강요하는 그 자체가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작태가 아닌가’, ‘우리나라가 연합군에 의해 해방되었다는 건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인데 어째서 김일성의 항일 무장투쟁이 조국광복을 이룩한 결정적 요인이라고 하는가’, ‘청춘도 가정도 다 버리고 오직 혁명을 위해 평생을 바쳤던 남노당원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한 김일성을 어떻게 민족의 태양이라고 할 수 있는가’, ‘절대성, 무조건성을 강요하면서 어떻게 당내 민주주의를 말할 수 있는가’ 등등의 논리를 내세우며 당의 유일사상 체계에 반기를 들고 나섰다”(330-331쪽).  


“원주 치악산 기슭에 5만평 규모의 임야를 사 가지고 밀봉초대소(수련장)을 만들었다. 주변은 과수원으로 위장하고 외부와의 연계를 일체 차단한 채, 한번 교육을 받고 나온 수련생들도 다시 찾아올 수 없을 정도로 비밀단속을 철저히 했다. 1기에 5명씩이었다. 제1기에는 서울대, 한양대, 동아대, 조선대, 신학대에서 각기 1명씩 선발된 ‘학생회장 감’으로 모두 다 나무랄 데 없는 투사들이었다. 회장은 학생들의 손을 굳게 잡아주면서 조용히 입을 열었다.‘지금 우리 청년학생들은 유신독재를 반대하여 아주 잘 싸우고 있습니다. 전국이 반 박정희  투쟁의 도가니로 들끓고 있습니다. 어제도 고려대에서 1,500여명의 학생들이 성토대회를 가졌고, 4,000여 명의 이대생들은 결의문을 채택한 후 교내시위를 벌였습니다. 이러한 투쟁이 전국 각 대학에서 매일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대적투쟁전술에 정통한 학생운동 지도자가 부족하기 때문에 응분의 결실을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신독재를 까부수려면 우선 반공법, 국가보안법과 같은 악법을 철폐해야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현 위정자들이 철폐하지 않을 수 없도록 강한 타격을 안겨야 하는데 학생들은 대학단위로 산만하게 투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 .각 대학별로는 학생회를 장악해야 하고 전국의 대학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수 있는 하나의 유력한 조직으로 결속돼야 하며 후배들을 부단히 육성해야 합니다”(358-359).    


“그물에 걸린 대령 포섭작전 대성공, 나는 낚시를 좋아하는 나의 형인 대령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 군의 고위직만이 드나들 수 있는 통제구역인 구만리 발전소 저수지에 텐트를 치고 합법적 신분으로 귀빈대접을 받고 있는 동생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예비역 대령인 형에게 직장도 마련해 주었다. 형은 육사출신이었다. 형(정대령)은 너그럽게 돈을 쓰면서 군 인사들에 영향력을 발휘해 나갔다. 형이 평양행을 위해 출국준비를 하는 사이에도 당 지도부의 관심을 끄는 사건들이 수없이 나타났다. 민주회복국민회의창립, 백낙청 교수 파면, 오글 목사 추방에 이어 동아일보광고해약사태가 발생했다”(366-398쪽).


“특히 동아일보광고 해약사태는 남조선혁명에서 새 바람을 일으킬 수 있는 절호의 계기로 지하당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이번 사태를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중앙정보부에 차명타를 안길 수 있었다. 서빙고 아지트를 이용하여 남산 정보부를 사칭하기로 했다. 동아일보에 광고를 내는 광고주와 광고대행업자 수십 명을 데려다 고문하고 협박하여 동아일보에 예약된 광고 모두를 취소시켰다.‘당신 동아일보에 내고 있는 광고, 해약하라는 신호 받았소 못 받았소?’, 이렇게 중앙정보부를 사칭하여 음해공작을 벌이는 사이에 1975년 새해가 밝아왔다. 수십 명의 광고주들이 고문과 협박에 못 이겨 서약서에 도장을 찍고 나갔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고 동아일보광고해약사태는 결국 남산 정보부의 압력으로 인한 것이라는 소문이 떠돌았다. 지하당의 음해-모략 작전은 일대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 후 광고해약사태는 동아방송에도 확대됐다”(398-406쪽). 


“김일성은 대남공작 요원들과의 담화석상에서 이렇게 말했다.‘칠레에서의 아옌데의 경험은 선거를 통해서도 정권을 탈취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아옌데가 실패한 원인은 정권을 잡은 다음 너무 급진적으로 개혁을 서두르다가 역쿠테타를 당한 데 있다. . .지금 남조선에서는 김대중 납치사건으로 말미암아 민심이 기울어지고 있다. . .대남 공작은 프락치 공작에 그치지 말고 의석을 차지하는 공작으로 전환해야 한다. . 이제부터 검열된 학생 가운데 머리 좋고 똑똑한 아이들을 데모에 내몰지 말고 고시준비만 시켜라. . .요즘 남조선에서 가장 뚫고 들어가기 좋은 곳은 교회이다. . . ”(412쪽).


“그 후 노동당 연락부는 이 같은 교시에 따라 국회침투를 포함한 거물급 공작을 집요하게 벌여왔다. 1967년 국회의원 김규남 사건을 비롯하여 대통령 경호실장 비서로 잠입했던 김옥희 사건, 청와대 비서관으로 침투를 기도했던 박노수 사건 등은 대남사업이 이미 상층부를 향해 치닫고 있음을 증명해 준다”(413쪽)(주: 당시 공화당 국회의원이었던 김규남과 법학자인 박노수가 간첩으로 몰려 사형을 당했다)


“돌이켜 볼 때, 1970 및 1980년대 전 기간에 걸쳐 나라의 안보를 위태롭게 했던 갖가지 극렬사태가 바로 북쪽의 공작에 의해 야기된 필연적 결과라는 것은 의문의 여지도, 재론의 여지도 없는 것이다"(413쪽).


“그간 우리는 ‘민주화’의 구호를 들고‘해방구’를 운운하며 무장봉기를 기도했던 5.3사태(1987. 인천에서 발생, 6.10항쟁의 도화선-6.29선언으로 이어짐)도 보았고, 통일운동을 표방한 각종 행사장에 나부끼는 인공기와 김일성 부자의 초상화도 보았다. 속담에 손톱 곪는 건 알면서 염통 곪는 줄은 모른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가 이들의 위장된 통일운동을 식별해 보지 못한다면 엄청난 재앙을 맞게 될 것이다”(413-414쪽).


2010.1.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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