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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만행에 대한 남북한 주장의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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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1-03-08 17:15 조회15,15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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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 만행에 대한 남북한 주장의 비교



                        조병옥 박사가 주장하는 유격대의 만행 실태

                                    (경향신문 1948년 6월9일자)


아래는 4.3시건 당시 미군정청 경무부장 보병옥 박사가 발표한 제주도 4.3폭동의 최초 단계의 양상이다.


4월 3일 폭동이 일어나자 1읍(邑) 12면(面)의 경찰지서가 빠짐없이 습격을 받았고 저지리, 청수리 등의 전 부락이 폭도의 방화로 전부 타버렸을 뿐만 아니라, 그 살상방법에 있어 잔인 무비하여


4월 18일 신촌서는 6순이 넘은 경찰관의 늙은 부모를 목을 잘라 죽인 후 수족을 다 절단하였으며 대동청년단 지부장의 임신 6개월 된 형수를 참혹히 타살하였고,


4월 20일에는 임신 중인 경찰관의 부인을 배를 갈라 죽였고,


4월 22일 모슬포에서는 경찰관의 노부친을 총살한 후 수족을 절단하였으며, 임신 7개월 된 경찰관의 누이를 산체로 매장하였고,


5월 19일 제주읍 도두리서는 대동청년단 간부로서 피살된 김용조의 처 김성희와 3세 된 장남을, 30여명의 폭도가 같은 동네 김승옥의  노모 김씨(60)와 누이 옥분(19), 김종삼의 처 이씨(50), 16세 된 부녀 김수년, 36세 된 김순애의 딸, 정방옥의 처와 장남, 20세 된 허연선의 딸, 그의 5세 어린이등 11명을, 역시 고희숙씨 집에 납치 감금하고 무수 난타한 후 눈노름이라는 산림지대에 끌고 가서 늙은이 젊은이 불문하고 50여명이 강제로 윤간을 하고 그리고도 부족하여 총과 죽창, 일본도 등으로 부녀의 젖, 배, 음부, 볼기 등을 함부로 찔러 미처 절명하기도 전에 땅에 생매장 하였는데, 그중 김성희 만이 구사일생으로 살아왔다.


그리고 폭도들은 식량을 얻기 위하여 부락민의 식량, 가축을 강탈함은 물론, 심지어 부녀에게 매음을 강요하여 자금을 조달하는 등 천인이 공노할 그 비인도적 만행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정도이다. 


제주도 4.3폭동에 이어 북한 공산당국은, 거의 전적으로 압록강 수력발전에 의존하고 있는 남한에의 송전(送電)을 48년 5월 14일 정오를 기해 일제히 단전하고 말았다. 그로 말미암아 남한의 공장은 전면 가동 중단되고 말았다. 공산 게릴라들은 파출소를 습격하고 학생들은 적색분자의 선동으로 툭하면 “동맹휴학”을 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유사 이래 처음으로 우리 손으로 뽑은 제주도를 제외한 국회의원 1백 99명 (이북의석 1백석의 자리는 비워 두었다)은 구조선총독부 자리에서 역사적인 개원식을 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조선을 소멸시키기 위한 공산당의 선동, 선전과 파괴 공작은 그칠 줄 몰랐다.  남조선 노동당(남로당)은 각급 세포조직을 통해 38이북에 “정통적인 조선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다든가, 북에는 수십만의 강력한 군대가 있어 국방력이 약한 남조선은 곧 해방된다는 등 루머를 퍼뜨렸다.  사실 이런 유의 루머는 공산당이 바라는 희망사항이며 어느 정도 사실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한 루머는 많은 사람들을 현혹, 불안하게 만들었다.


5.10 총선을 전후하여 공산당이 벌인 선거방해는 335개 경찰관서를 습격한 것을 비롯, 78명의 경찰관이 피습, 그중 64명이 희생되었고, 무고한 양민 570여명을 살상했다. 비싼 대가를 치른 사상초유의 선거였다.



                              북한이 주장하는 토벌대의 만행 실태


북한의 4.3사태 전문가 박설영은 1991년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가 펴낸 ‘력사과학론문집’ (129-192쪽)에 논문 “제주도인민의 4.3봉기와 반미애국투쟁의 강화”를 게재했다.


이 논문의 164-167쪽에는 “봉기한 인민들에 대한 미제와 괴뢰도당의 학살만행”이라는 중간제목 아래 토별에 나선 국방경비대, 경찰, 서북청년단의 만행을 아래와 같이 나열했다.   


5.10 단선날이 박두하자 원쑤들은 전도에 특별비상경계령을 내리고 종전의 수십 배에 달하는 무력을 동원하여 대토벌군을 조작(주: 조직)하였다. 1948년 5월 중순부터 놈들의 대규모 토벌작전이 진행되어 이르는 곳마다에서 엄청난 파괴와 피비린내 나는 살륙만행이 감행되었다. 학살만행의 총지휘자 괴뢰경무부장 조병욱 놈은 “대한민국을 위해서는 제주도 전토에 휘발유를 뿌려 거기에 불을 놓아 30만 도민을 한꺼번에 소멸케 하여야 한다”고 웨치면서 그 계획을 실천에 옮김으로써 만고에 씻을 수 없는 죄악을 저질렀다. 그리하여 날마다 증설된 류치장은 피검자로 차고 넘쳤고 감금장에는 신음소리가 처절하였으며 골목과 산야에는 피살자의 시체들이 쌓여졌다.


놈들의 학살만행은 1948년 4월말에 이어 5월 달에 와서 더욱 잔인하게 감행되였다. 5월 중순 한림면 상명리에 기어든 원쑤놈들은 20여명의 무고한 인민들을 집단 학살하였으며 하귀리에서는 200여명의 인민들을 끌어다 악착한 방법으로 학살하는 만행을 감행하였다. 그리고 적들은 저지리 일대에서 600여호의 민가를 일순간에 불사르고 많은 사람들을 죽이는 만행도 서슴없이 감행하였다.


6월 상순에 놈들은 남원면의 9개 리 인민들을 수많이 잡아다가 걸상에 달어놓고 가죽이 터지도록 때린 다음 끓는 물에 고추가루를 타서 입과 코로 퍼붓는 야수적 교문을 가하여 즉사시키거나 혼수상태에 빠지게 하고는 다시 끌고 가다가 도중에 사살하고 산골짜기에 내버렸다. 살인악당들은 그 후 여러 명의 애국적 인민들을 구좌면 종달리와 성산면 시흥리 중간지점에 끌어다가 목과 사지를 자르고 배를 갈라 5장 6부를 헤쳐내서 탕치는 정상인간의 사고를 가지고서는 상상할 수 없는 잔인한 행동을 감행하였다. 하도공회당에서는 아무런 죄도 없는 한 청년을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살해한 다음 생식기까지 잘라내고는 너털웃음을 짓는 야수그대로의 본색을 드러내었다.


놈들의 학살만행은 7월에도 계속되었다. 이달 초순에 애월면에 주둔한 토벌대 놈들은 애월리와 그 린접 부락 인민 80여 명을 비행장에 한 줄로 세워놓고 모조리 총살하였다. 이와 거의 같은 시기 산지항 시장터에서는 애국자 15명을 총살한 후 몸에 돌을 매달아 바다에 던지었다.


괴뢰군 14련대의 무장폭동 후 살인광들의 학살만행은 절정에 달하였다. 10월 하순 애월면 고내리에 기여든 살인마들은 부락사람들을 큰길에 강제로 모이게 하고는 100여명을 한 줄로 세워놓고 일제사격으로 무참히 집단학살하였다. 애월리에 기여든 놈들은 부락사람들을 강제로 모이게 하고 애국자 40여명을 가려 내여 ‘총으로 죽이는 것보다 배, 가슴. 머리, 눈들을 대창으로 찌르고 또 찌르고 손발을 자르고 목을 베고 온몸을 토막토막 잘라야 한다‘고 지껄이면서 그대로 악착하게 학살하였다.


1948년 11월 상순 놈들은 애월면 납읍에서 청년 27명을 암굴 속에 몰아넣고 입구를 돌과 흙으로 막아 질식시켜 죽이었으며 모슬포에서는 50여 명의 무고한 농어민들을 대정면 동일리 진개동 산옆 넓은 밭에 실어다 한 줄로 벌려 세워 달리게 하고는 마치 꿩사냥군이 사격 연습하듯이 카빙총으로 모조리 사살하였다.


이 시기 원쑤놈들은 리호리 주민들 모두를 리 오른쪽 큰 밭에 강제로 모이게 하고는 애국청년 수십 명을 추려내어 옷을 벗기고 곤봉, 총탁, 구두 발로 때리고 차는 등 폭행을 가하여 반죽음을 만든 다음 학살하였다. 그 후 또다시 이 리를 포위하고 애국적 인민 300여명을 비행장에 끌고 가서 구뎅이를 파게한 다음 그 앞에 몰아세우고 기관총으로 사격하여 집단사살하고 채 죽지 않은 사람은 그대로 생매장하는 인간도살 행위를 서슴없이 감행하였다.


놈들은 그 후 의귀, 수망, 한남, 봉흥 등 지역을 모두 불태워버리었는데 봉홍 지역을 불태울 때는 늙은이 내외가 살고 있는 집에 문을 닫아걸고 불을 질러 두 늙은이를 불태워 죽이였다. 구좌면 송당리에서는 부락사람들이 이놈들의 소개 책동을 거부하고 빨치산을 협력했다는 구실 밑에 30분 이내에 피하지 않으면 총살한다고 위협한 후 인민들이 이리저리 피한 다음에는 집 재산들을 략탈하고 그들에게 기관총을 란사하여 학살하였으며 농가에 휘발유를 뿌려 전체 부락을 불태우고 수십 명을 태워죽이었다.


11월 중순에 유격대의 모슬포 습격전을 방조하였다는 리유로 그곳의 죄 없는 인민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다가 전신이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때린 다음 그중 6명은 쇠꼬챙이를 달구어 손톱 발톱을 빼고 이마에 못을 박는 등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악착한 고문 끝에 우편국 앞 로상에서 천인공노할 만행을 감행하였다.


12월에 들어와서 놈들의 살인 만행은 더욱 대규모적으로 악착하게 감행되었다.   이 달 초순 안덕면 상천부락 피난민 20여명은 살인마들에게 붙잡혀 무참히 학살당하였다. 이때 놈들은 젖먹이 어린것을 업고 산으로 피난하는 녀인을 총으로 쏘아 죽이고 애기가 등에서 떨어지자 죽창으로 그의 온몸을 찌르고 또 죽이는 야수적 만행을 감행하였다. 놈들은 대정면 하호리에서 수많은 주민들을 가마 속에 집어넣고 배에 실어다 먼 바다에 나가 집단적으로 수장하는 만행도 서슴없이 감행하였다.


적들의 이러한 집단적인 학살만행은 대정, 서공, 도평, 외도, 내도, 안덕, 서광, 동관 등 이르는 곳마다에서 악착하게 감행되였다. 특히 놈들은 12월 중순 리호리에서 부락민 전체를 끌어내어 두 패로 갈라 세우고 서로 때리게 하고는 때리지 않는 사람은 공산주의자라고 하면서 장터에서 학살하였다. 또한 원쑤들은 도두리, 리호리와 그 주변부락 사람 약1,500여 명을 큰길 오른쪽에 끌어다 구뎅이를 파게하고는 몇 조로 묶어 구뎅이 앞에 세우고 기관총사격으로 쏴 죽이는 대살륙만행을 감행하였다. 그들의 시체는 산더미처럼 선혈은 내를 이루었다.


이리하여 1948년 말까지 수많은 애국적인민이 학살되고 200여개의 부락이 소각되었다. 1949년에 들어와서 놈들의 학살만행은 더욱 악랄하게 감행되었다. 이해 2월초에만도 놈들은 남원면 남원, 위미, 의귀 등 등 리들에서의 400여명 대 학살만행 과 조촌면 북촌리에서의 대중적 학살만행 그리고 구좌면 평대리에서 임신부를 끌어다 국부에 막대기를 찌르고 아랫배를 잘라 태아를 꺼내서 조리를 하는 등 야수적 만행들을 서슴없이 감행하였다.


이 시기 살인악당들의 인간살륙만행은 이밖에도 이르는 곳마다에서 감행되어 수많은 인민들을 학살하였다. 놈들의 살인 만행으로 하여 빚어진 손실은 1961년 4월 조선민주법률가협회를 비롯한 8개 단체가 폭로한 “전 세계에 고함”이라는 데서 밝힌 것처럼 남해의 아름다운 섬 제주도에서는 1948년부터 1950년 사이에 총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7만여 명이 학살당하였다.(제주도인민들의 4.3무장투쟁사 자료집 266페지).


                                                       소 감


2003년 12월 15일, 4.3특위 위원장인 고건 총리가 발행한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 578쪽에는 1947년 3월 1일부터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되는 순간까지 7년 7개월 동안의 무장폭동 기간 동안 “신고된 희생자 수”가 14,028명이었다고 밝혔다. 그런데 북한은 1948-50, 3년에 7만여 명이 희생되었다고 주장한다.


14,028명 중 토벌대에 의한 희생자가 78.1%(10.955), 무장대에 의한 희생자 수가 12.6%(1,764), 가해자가 누구인지 모르는 희상자가 9%(1,266)라 했다.


위 북한 박설영(논문의 169쪽 중간)은 4.3봉기를 “전체 도민 30만 명중 24만 명이 궐기한 대중적이고 전인민적인 항쟁”이었다고 기술했다. 


전국방군사연구소 선임연구원, 정석균이 쓴 “제주 4.3 사건의 진상” 중 ‘사건의 배경’에는 해방 직후 제주주민의 80%가 좌익이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것으로 보아 당시 제주도 주민의 80%가 좌익이라는 말은 대략 맞는 것 같다. 


제주인민군으로 불린 유격대는 불과 500명 미만이었지만 이들은 동네 좌익들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7년 7개월이나 공비활동을 하면서 경찰, 군인, 서북청년단원은  물론 이들의 가족,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이른바 반동분자(우익)들을 학살-숙청(무자비하게 죽이는 것)했다. 소수정예의 유격대와 그들을 돕는 이른바 동네 빨갱이들이 공조한 테러행위들이 얼마나 과격하고 거셌으면 군과 경찰이 대거(아직 규모를 파악하지 못했음) 제주도로 증파되어 7년 7개월 동안이나 토벌을 했겠는가?


‘80:20’이라는 제주도 주민의 좌우익별 분포는 4.3사건진상조사보고서의 가해자별 비율(대략 85:15)과 거의 일치한다. 국가편에 선 토벌대도 이른바 “빨갱이 사냥” 과정에서 일부 무고한 주민을 억울하게 희생시켰겠지만, 북한 편에 선 유격대 (제주빨치산)도 무고한 주민을 반동분자로 낙인찍어 무자비하게 살해-숙청했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누가 억울한 희생을 당했고, 누가 정당한 대가로 희생되었는지를 규명하는 일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통계에서 확실하게 드러나는 것은 제주도 주민의 좌우익 분포가 어림잡아 ‘80:20’이고 토벌대와 유격대가 희생시킨 비율이 어림잡아 ‘85:15’라는 것이다. 좌우익의 분포와 가해자별 분포가 거의 일치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대체적으로 토벌대는 좌익을 희생시켰고, 유격대는 우익을 희생시켰다는 것이다.

토벌대는 좌익인구 24만명 중 10,955명을 희생시켰다. 즉 좌익인구의 4.5%를 희생시킨 것이다. 반면 인민해방군(반란세력)은 우익인구 6만명 중 1,764명 즉 3%를 희생시켰다. 그리고 토별대와 인민해방군이 합세하여 1,266명을 희생시켰다. 토벌대 병력은 경찰, 국방경비대, 해안경지대,서북청년단, 대동청년단 등 그 구성이 다양하여 지휘체계가 일사불란하지 못한 데다가 그 수도 수만(아직 파악하지 못했음)인 반면 산속의 무장 유격대 수는 불과 500명 미만이지만 이른바 동네 빨갱이들로 구성된 자위대 그리고 동네의 80%에 해당하는 24만의 좌익들이 한데 어울려 일사불란한 지휘체계를 가지고 토벌군을 희생시켰고 동네의 우익들을 반동분자라 하여 숙청했다. 

그리고 무장한 유격대도 민간인 희생자로 분류되어 민간인 희생자 수에 포함돼 있지만, 경찰과 경비대의 희생자 수는 민간인 희생자 수에 포함되지 않았다. 국경과 경찰의 희생자 수는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북한이 쓴 4.3역사 논문이 열거한 토벌대의 만행은 광주에 나돌던 유언비어와 참으로 닮았다.      


“임신부를 끌어다 국부에 막대기를 찌르고 아랫배를 잘라 태아를 꺼내서 조리를 하는 등 야수적 만행들을 서슴없이 감행하였다.”


“수많은 주민들을 가마 속에 집어넣고 배에 실어다 먼 바다에 나가 집단적으로 수장하는 만행도 서슴없이 감행하였다.”


죽은 사람을 가마니 속에 집어넣고 먼 바다에까지 배를 타고 나가 수장을 했다는 것은 참으로 믿기 어렵다. 죽은 사람을 가마니 속에 묶어 먼 바다에까지 가져다 내버릴 정도의 수고를 할 경찰이나 국군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토벌대는 그렇게 한가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2011.3.8.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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