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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김익렬의 미스테리(4)난투극의 비밀(비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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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비바람 작성일11-03-24 21:29 조회12,75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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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익렬 중령

2. 김익렬의 4.3

3. 김익렬의 난투극

4. 김익렬 난투극의 비밀

5. 김익렬의 기고(寄稿)와 유고(遺稿)

6. ‘4.28 평화회담’은 없었다.

7. ‘평화회담’이 아니라 ‘면담’이었다

8. 붉은 9연대

9. ‘평화’에 속은 대가(代價)

 

 


4. 김익렬 난투극의 비밀


 최고수뇌회의에서 김익렬은 이성보다는 감정으로 행동했다. 그렇다면 최고위직의 주요 인사들을 모셔 놓고 그것도 국정을 논하는 중요한 자리에서 중차대한 문제들을 단 한방에 내팽겨 버릴 정도로 김익렬의 감정을 폭발하게 만든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유고를 살펴보면 가장 유력한 원인으로 보이는 것은 조병옥이가 김익렬의 아버지를 공산주의자로 몰아붙이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반적인 상식선에서 이 부분에 대한 의구심은 여러 방향으로 날개를 편다.

 아버지가 공산주의자로 공격 받았다고 해서, 국가와 민족의 주요대사를 논하는 그런 막중한 자리에서 과연 저렇게까지 개인적인 감정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의 문제였을까.

 

 조병옥 경무부장이 딘 장군에게 김익렬의 부친이 공산주의자라고 설명하자 딘 장군은 의심의 눈초리로 김익렬을 쳐다보고 맨스필드 대령도 의외라는 듯 김익렬을 쳐다보았다. 김익렬은 한순간에 공산주의자로 낙인찍힐 판이 되자 그래서 조병옥에게 달려들었다고 주장했다.  

 

과연 이 상황은 논리적으로 가능한 상황일까. 당시는 국보법의 시대도 아니었고, 빨갱이라면 치를 떨던 반공법(反共法)의 시대도 아니었다. 범죄자가 아닌 이상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만으로 죄악시 되던 시대는 아니었다. 그리고 딘 장군이나 맨스필드 같은 미군들의 뇌리에 공산주의자는 악마라는 의식이 자리 잡기에는 아직은 시대적으로 이른 시기였다. 더군다나 공산주의자 부친으로 인해 아들까지 의심한다는 사고방식은 합리적인 서구의 사고방식과는 거리가 먼 것임에 틀림없다. 조병옥의 그 한 마디 때문에 딘 장군과 맨스필드가, 신임 하던 진압사령관을 한순간에 의혹의 인물로 보게 된다는 설정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엔 상당히 어려운 점을 넘어서서 싸구려 코메디의 각본을 읽는 느낌까지 들게한다.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은 더 있다. 혼란이 벌어지는 와중에 딘 장군이 통역사에게 안재홍 씨와 송호성 장군이 김익렬에게 하는 말을 통역하라고 하자, 통역사는 두 사람이 김익렬에게 “너는 공산주의자이며 나쁜 놈”이라고 욕을 하고 있다며 터무니없는 통역을 했다고 김익렬이 주장하는 부분이다. 

 

 이 또한 미스테리가 아닐 수 없다. 통역사가 감히 거짓으로 통역을 했는지에 대한 의문은 당연히 상식적이다. 그리고 최고수뇌회의에서 여럿이 짜고 치는 것처럼 여러 명이 김익렬 혼자를 왕따로 만드는 상황은 과연 있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 또한 당연하게도 상식적이다. 그러나 김익렬의 주장에는 상식과 이성이 끼어들 여지가 없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들을 불러 일으켰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져보아야 한다. 조병옥은 김익렬을 공격하면서 과연 김익렬의 아버지를 거론 했는가라는 의문이다.

 

 조병옥은 독립운동가요 미국유학파로서 해방정국에서 뛰어난 통찰력으로 공산주의의 악마성을 꿰뚫고 있었던 몇 명 안 되는 선지자(先知者) 중의 한 명이었다. 조병옥은 전국에 들불처럼 번지는 좌익 폭동을 몸으로 막아야 했던 경찰의 총수로서, 4.3 진압의 최고 책임자이기도 했다. 진압의 책임자였다는 이유로 조병옥은 4.3에 관한 좌익들의 저서에서 민족반역자, 살인마로 지목되어 집중적인 공격을 받는 인물이기도 하면서, 대한민국의 건국에서는 좌익들의 극렬한 저항을 앞장서서 분쇄하여 국가의 초석을 놓았던 지대한 공로자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조병옥은 소신과 지성을 겸비한 인물이었다. 이런 인물이 한순간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하여 있지도 않은 아버지를 거론하며 거짓말로 인신공격을 하였다는 것은 상식적인 선에서 역시나 신뢰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조병옥은 남한의 치안을 책임진 경찰 총수로서 막강한 정보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존재하지도 않는 아버지라는 허술한 정보가 치안총수에게서 나왔다는 것에서도 김익렬의 주장은 신뢰도가 떨어지지만, 만약 조병옥이가 그런 주장을 했다면 김익렬로서는 반론을 제기하여 조병옥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면 상황을 역전을 시킬 천금 같은 호기를 잡은 셈이었다. 김익렬은 ‘진압과 회유의 길목’이었다는 최고수뇌회의에서 역사의 방향을 바꿀 수도 있었다. 그러나 김익렬은 그러지 않았다.

 

 상황이 일단락 된 후 딘 장군의 요청으로 조병옥은 다시 단상에 올라가 김익렬이가 공산주의자라는 설명을 했다. 여기서도 김익렬은 조병옥을 향해 욕설을 퍼붓는다. 회의장의 참석자들도 김익렬에게 조용히 할 것을 요구했지만 김익렬은 말을 듣지 않는다.

 이 상황의 의미는 무엇일까. 조병옥의 발언이 끝난 다음에 김익렬은 반론을 제기하면 될 터였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의 김익렬의 행동은 연설 방해 행위였다. 상황으로 보자면 김익렬이가 상당히 궁지에 몰려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따라서 이 상황에서 김익렬에게 중요한 것은 조병옥에 대한 반론보다는 조병옥의 발언 제지가 발등의 불이었음이 틀림없다.

 

 최고수뇌회의에서 김익렬이가 공산주의자로 공격 받은 것은 확실해 보인다. 물론 공격자는 조병옥이었고 조병옥의 주장에는 상당히 신빙성이 있었던 걸로 보인다. 딘 장군이 조병옥의 발언을 계속 듣고 싶어 했던 점, 통역사가 딘 장군에게 김익렬이가 공산주의자로 욕을 먹고 있다고 통역했던 점, 참석자들이 김익렬을 제지 시키며 조병옥의 발언을 듣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김익렬이가 공산주의자라는 조병옥의 주장은 최고수뇌회의에서 먹혀들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이런 상황은 참석자들이 ‘아버지가 공산주의자이기 때문에’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에 설득된 것이 아니라 이들이 수긍할 만한 다른 무엇인가가 있었다고 보여 지는 대목인 것이다. 김익렬은 그런 상황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김익렬의 돌출적인 깽판은 그런 상황을 탈출하기 위한 돌파구였다.

 

 유고에서 중요한 부분은 생략되었다. ‘김익렬은 공산주의자’라는 주장을 하면서 조병옥이가 들이대었던 논리나 증거는 유고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김익렬은 이 부분을 의도적으로 누락시킨 것으로 보여진다. 즉 누락된 이 부분은 유고를 읽을 후세 사람들에게서도 김익렬에게 불리한 증거로 작용할 것이라고 김익렬은 생각했을 것이다.

 

 김익렬 유고에는 왜곡과 거짓이 많은데다가 이처럼 불리한 것은 숨기고 유리한 것은 확대하는, 전형적인 침소봉대의 방식으로 쓰여진 글이다. 상식과 이성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많다. 조병옥이가 김익렬의 아버지를 거론했다는 부분은 특히 그렇다. 따라서 김익렬의 ‘아버지’ 부분은 김익렬의 ‘듣기 실수’이거나 ‘창작’이라고 해석하고 유고를 읽는다면 비상식이 난무하는 김익렬의 유고는 비로소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듣기 실수’라는 것은 당시 회의석상에서 딘 장군과의 대화는 영어로 통하고 있었기에, 조병옥이나 통역사도 딘 장군에게는 영어로 이야기했고 김익렬도 영어를 알아듣고 있었다. 여기에서 김익렬이가 잘못 듣고 해석하였을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김익렬을 공산주의자로 공격했던 ‘조병옥의 근거’는 무엇이었을까.

 

 당시의 회의 참석자들은 생존해 있지 않고, 당시 상황을 정확하게 증언해 줄 증언자들은 어디에도 없다. 김달삼과의 협상이나 조병옥과의 난투극은 어디에도 역사적 근거는 존재하고 있지 않으며, 오로지 김익렬의 주장에서 출발한 것들이다. 그러나 김익렬의 주장은 편파적이고 그의 유고에는 진실을 말하지 않는 것들이 많음을 알 수 있다. 지금 상황에서 ‘조병옥의 근거’를 찾아내는 것은 다른 자료가 나오기 전에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여기서는 상상력을 가미하여 추론(推論)해 본다.

 여기에서 도출되는 결론은 여러 가지 조건에 부합해야 한다. 딘 장군과 최고수뇌회의 참석자들에게 논리적으로 들릴 것, 신뢰하던 김익렬을 회의 참석자들이 단박에 의심할 정도의 사안일 것, 그러면서 김익렬을 단 한방에 궁지로 몰아넣을 것, 근거나 증거가 있어야 할 것, 후대의 제3자들이 듣기에도 합리적일 것, 김익렬이가 깽판을 벌이고 유고에서 은폐를 시도할 만 할 것, 등등의 조건을 충족시켜주는 증거나 상황이 존재하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조병옥의 근거’일 확률은 상당히 높다.

 

 이런 조건들을 충족시켜줄만한 유력한 재료가 존재하고 있다. 조병옥의 김익렬 비판 발언 중에 김익렬의 ‘아버지’를 지칭했다던 단어가 ‘father'가 아니고 'friend'는 아니었을까. 물론 friend를 father로 김익렬이가 잘못 들었을 가능성도 존재할 수 있다. 김익렬의 아버지가 공산주의자이기 때문에 김익렬이도 공산주의자라는 주장은 딘 장군과 맨스필드를 설득하기에는 논리가 허약하고, 후세의 독자들을 납득시키기에도 설득력은 빈약하다. 그러나 김익렬의 ’아버지‘가 아니라 김익렬의 ’친구‘였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그 문제의 친구가 바로 김달삼이었다면 상황은 더욱 확연해진다.

 

 김익렬과 김달삼은 일본 복지산 육군예비사관학교 동기생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김익렬은 그 사실을 철저히 숨기고 있었다. 심지어 인생 말년에 쓴 유고에도 김달삼과의 관계는 언급되지 않는다. 김익렬의 협상 당사자였던 인민해방군 사령관이 김익렬의 동기생이라는 사실은, 그리고 김익렬이가 그런 사실을 철저히 숨기고 있다가 회의석상에서 조병옥에 의해 폭로되었다면 김익렬이가 주장하는 협상이라는 것은 신뢰할 만한 것이 못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진압에 소극적이었던 김익렬의 태도도 의심받을 만한 상황에서 이적 행위로 간주되는 상황으로 연결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김익렬이가 언제 친구 김달삼의 존재를 인식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김익렬과 김달삼의 관계가 언급된 장창국의 저서 ‘육사 졸업생’은 1984년 1월에 초판된 것을 감안하면 김익렬은 생전에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유고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서 철저히 침묵하고 있다. ‘육사 졸업생’에서는 이렇게 나와있다.


그 때까지도 김중령은 김달삼이 학병 출신으로 일본 복지산(福知山) 육군예비사관학교를 나온 일본군 소위였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김중령도 복지산(福知山)학교를 나온 일본군 소위였다.1)


 1987년에 발표된 이산하의 4.3 장편시 ‘한라산’에도 두 사람의 관계가 언급되고 있다.

 

 김익렬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인민유격대 대장 김달삼과 대좌한/ 다음이었다. 그러나 김익렬은 김달삼을 보는 순간 또 한 번 깊은/ 충격을 받았다. 김달삼이 자기처럼 젊고 그 어느 미남배우보다/ 도 더 잘 생긴 얼굴이어서가 아니었다/ 분명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김익렬은 넋빠진 사람처럼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김달삼이 태어난 곳은 남제주군 대정면 영악리였다 그는 일본/ 에서 중학교를 거쳐 일본 복지산(福智山) 육군예비사관학교를/  졸업한일본군 소위였다 (중략)

 그런데/ 그 김달삼이와 김익렬은 바로 일본 복지산 예비육사 동기였던/ 것이다/ 나이도 둘 다 27살이었다/ 그러나 김달삼은 가명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김익렬이 제대로 기억을 못하는 것이었다/ 김달삼의 본명은 이승진이었다/ 한때의 친구가 이젠 적과 적이 되어/ 서로 절벽처럼 마주 보고 있었다2)


 참고로 ‘한라산’은 시라기보다는 평양방송의 대본과 비슷한 선동적인 글이다. 전형적인 극좌주의 시각에서 4.3을 바라보는 빨갱이의 주장으로, 이 글을 쓴 이산하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실형을 받았다.

 시인 고은이 펴낸 시집 ‘만인보20’에 실린 ‘장인 강문석’이라는 시에도 두 사람에 관한 대목이 등장한다.

 

 과연 그 장인에 그 사위/ 김달삼/ 본명 이승진/ 일본 예비 육군사관학교에서/ 하필 김익렬이 동기생이었다/ 김익렬은 제주도 9연대장/ 두 사람은 단 한 번 4.3사건 휴전 담판을 했다/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라고/ 고개 저으며/ 산에서 돌아온 김익렬은 생각했다3)


 역사의 진실은 송곳과 같아서 깊숙이 감추어도 언젠가는 허구의 벽을 뚫고 세상 밖으로 나오는 법이다. 김익렬이가 난투극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숨기고 싶었던 것은 친구 김달삼이 아니었을까. 상황으로나 논리적으로 보았을 때 ‘친구 김달삼’은 유력한 김익렬의 약점일 수 있었다. 그러나 김익렬 본인 스스로가 선무 작전에서 떳떳했다면 ‘친구 김달삼’은 부끄럽거나 불리한 존재는 아니었다. 군인으로서 공은 공이고 사는 사이기에 김익렬로서는 논리적으로 반박하고 결백을 주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김익렬은 최고수뇌회의에서 감정에 사로잡힌 나머지 반박다운 반박을 하지도 못했다.

 

 그리고 유고에서는 오만가지 사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끝끝내 동기생 김달삼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왜 그래야 했던 것일까. 장창국에게는 김달삼과의 관계를 밝혀놓고 유고에는 쓰지 못했던 것일까. 김익렬이가 인민해방군에 선물해 준 카빈 탄환 15발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최고수뇌회의에서 김익렬이가 빨갱이로 지목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김익렬에게는 숨기고자 하는 것, 떳떳하지 못했던 것들이 너무 많았다. 김익렬은 처음부터 끝까지 의문에 찬 존재였다. 도대체 김익렬은 김달삼과의 사이에 무슨 약속을 했었던 것일까. 아마도 이 수수께끼는 영원히 미궁 속에서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할 것이다.

 

 

P.S


‘김익렬의 미스테리’를 시스템클럽에 연재하면서 같은 고향인 시스템클럽의 독자 한 분으로부터 초대를 받았다. 필자의 집에서 10여 분 거리밖에 되지 않았다. 나이가 지긋하셔서 김 선생님이라 호칭했는데, 한 쪽 벽이 책으로 가득찬 방에서 그 분이 쓰신 4.3저서와 따스한 유자차 한 잔을 대접 받았다.


그리고 거기에서 재미있고 진귀한 물건을 구경하게 되었다. A4 한 장으로 된 문서였는데 거기에는 증언이라는 제목이 붙어있었고 본문 말미에는 날짜와 증언자의 싸인이 있었다.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증언자는 김익렬과 친구 사이였는데 서로가 은퇴한 80년대에 증언자의 사무실로 김익렬이가 자주 놀러 왔었다. 그때 김익렬은 김달삼의 회담 이야기를 하면서 현장에 가서 김달삼을 만나보니 동기생인 이승진(김달삼의 본명)이었다고 말했고, 다시 증언자는 문서 소장자인 김 선생님이 방문했을 때 이 이야기를 해주었고, 김 선생님은 역사적 사료로서 증거를 남길 가치가 있다는 판단에서 증언록을 작성하고 증언자의 싸인을 받아두었다는 것이었다.


문서의 내용대로라면 김익렬은 김달삼과 면담하는 자리에서 김달삼과 대면 즉시 동기생임을 알아보았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김익렬의 유고에는 거짓말이 더 늘어나게 되고, 유고의 독자들은 더욱 상상력의 날개를 펴야 한다.

김익렬의 정체는 갈수록 의문투성이다.



비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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