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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김익렬의 미스테리(7)평화회담의 허구(비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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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비바람 작성일11-03-28 20:10 조회11,77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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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김익렬의 미스테리


1. 김익렬 중령

2. 김익렬의 4.3

3. 김익렬의 난투극

4. 김익렬 난투극의 비밀

5. 김익렬의 기고(寄稿)와 유고(遺稿)

6. ‘4.28 평화회담’은 없었다.

7. ‘평화회담’의 허구

8. 붉은 9연대

9. ‘평화’에 속은 대가(代價)

 

7. ‘평화회담’의 허구


 유고의 원본이었을 기고에서는 김달삼과의 만남을 ‘회견’으로 부르다가 유고에서 김익렬은 ‘평화회담’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둔갑시켰다. 실제로 ‘김달삼과의 휴전 약속’이라고 주장하는 ‘평화회담’이라고 할 만한 것의 존재에 대한 증거는 전혀 없다. 김익렬의 협상은 휴전을 약속하는 ‘평화회담’이라기보다는 의사를 타진하는 ‘회견’이나 단순한 ‘접촉’이었다.

 

 ‘평화회담’이라고 하는 것은 김익렬의 진술에서만 나타나고 있다. 김달삼과 만나 휴전과 투항을 약속받았다는 김익렬의 주장은 이 세상 어디에도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김익렬의 진술뿐이다. 그리고 김익렬의 협상에 관한 진술은 기고와 유고에서 통째로 번복되어져 신빙성이라고는 찾아볼 길이 없고, 김익렬의 별명은 ‘대포’로 불리고 있다.

 회담 당사자였던 인민유격대 측의 ‘투쟁보고서’에는 이렇게 쓰고 있다.


군책(軍責)과 김(金) 연대장과 면담하여 금반 구국항쟁의 정당성과 경찰의 불법성을 특히 인민(人民)과 국경(國警)을 이간시키려는 경찰의 모략 등에 의견의 일치를 보아 김(金) 연대장은 사건의 평화적 해결을 위하여 적극 노력하겠다고 약속하였음.1)


 인민해방군 측에서는 김익렬과 김달삼의 만남을 ‘면담하여’라는 문장으로 단순한 ‘면담’으로 기록하고 있다. 단순히 만나 단순하게 의견을 탐지하는 수준의 만남이라는 것이다.

 기고에서도 김익렬은 김달삼을 만난 후 상부에 보고한 내용에서 김익렬 스스로도 이렇게 쓰고 있다.


 이 사건의 평화로운 해결을 위하여 또한 유一한 방법이라는 것을 주장하였으나 나의 의견은 통과를 보지 못하고2)


 김익렬은 상부에 건의하여 주장했던 ‘의견’으로 표현하고 있다. 단지 제안이나 의견일 뿐, 어떤 구속력이나 효력을 지닌 ‘조약’이나 ‘회담’은 아니었다는 것을 스스로 자백하고 있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의견’이라는 것은 쓸 만하면 채택되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폐기되는 것이다. 김익렬의 ‘의견’이 채택되지 못했다는 것은 쓸 만한 것이 못되었다는 뜻이다.

 처음에는 김익렬 스스로 생각해도 ‘의견’을 나누는 ‘면담’ 수준이었던 만남에다가 김익렬은 세월의 이끼와 상상력과 욕심을 버무려 ‘평화회담’이라는 허깨비를 창조해 낸 것이었다.

 

 외형적으로 김익렬은 선무공작의 임무를 띠고 김달삼을 만난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러나 그 접촉은 항복 조건과 투항 날짜를 약속하는 ‘조약’이나 ‘회담’이기보다는 의사 타진과 단순한 의견 교환을 하는 ‘면담’ 수준이었다. 김익렬의 ‘대포’는 귀순 회담이라고 하지만 여타의 다른 문서에서는 다른 정황을 보여주고 있다.

 김익렬과 김달삼이 나눈 ‘의견’이라는 것은 폭도들의 귀순에 관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일종의 경비대와 유격대 간에 의기투합에 관한 것일 수도 있다.

 인민해방군의 ‘투쟁보고서’에는 김익렬과의 면담 내용을 이렇게 적고 있다.


‘금반 구국항쟁의 정당성과 경찰의 불법성을 특히 인민(人民)과 국경(國警)을 이간시키려는 경찰의 모략 등에 의견의 일치를 보아 사건의 평화적 해결을 위하여 적극 노력하겠다고 약속하였음.’3)


 여기에서는 폭도들의 귀순이나 무장 해제를 논의한 내용은 없고, 4.3진압이 인민(폭도)과 국경(경비대)을 이간질 시키려는 경찰의 모략이라는 것에 합의를 보았다는 것이다. 이 내용대로라면 김익렬은 설득하러 갔다가 오히려 설득 당한 셈이었다. 미스테리한 김익렬의 행적을 여실히 확인 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김익렬의 행동은 경비대와 유격대 간의 비밀 협정에 합의를 위하여 간 것으로 의심될 정도이다. 미군 문서에는 이와 비슷한 정황이 나오는 대목도 있다.


 ‘부산 경비대사령부 정보참모부의 일원이 1948년 4월 14일을 전후해 제주도의 좌익 무장대를 비밀리에 방문해 제주도의 좌익 무장대 사령관이라는 김장흥(원문에는 Kim, Jang Hung으로 표기돼 있으나 누구인지 분명치 않음: 역주)을 만나 좌익이 경찰만을 공격한다면 경비대는 좌익과 전투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협정을 맺고, 경비대는 좌익과 전투하지 않을 것이며, 좌익은 경비대를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는데 합의했다.’4)


  김봉현 김민주5)의 ‘무장투쟁사’6)에서도 ‘미군과 조병옥 따위는 오만무례하게도 그(김익렬)의 유효적인 해결책을 거절하여 나섰다’고 쓰고 있다. 4.3폭동의 주역이었던 당사자들도 '평화회담'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고 협상은 결렬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어디에서도 김익렬이 주장하는 ‘평화회담’의 실체와 효력을 찾아볼 길은 없다.

 그리고 인민해방군의 문서인 ‘투쟁보고서’에는 김익렬과 만났던 인민유격대의 속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김익렬이가) “인민군대표(人軍代表)와 회담하여야 하겠다고 사방으로 노력 중이니 이것을 교묘히 이용한다면 국경(國警 : 국방경비대)의 산(山) 토벌을 억제할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고,” (중략) “그 후 5․10 투쟁까지는 국경(國警)으로부터 아무런 공격도 없어 우리의 활동에는 크나큰 이익을 가져왔다.”7)


 여기에서는 인민해방군이 김익렬을 이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익렬은 김달삼과의 ‘면담’을 양껏 미화시켜 ‘평화회담’으로 과장하고, 폭도들이 단숨에 항복할 것처럼 확대시켜, 혼자서 제주도민의 구세주인양, 그리고 박해자인양 행세했지만 인민유격대 측에서는 김익렬과의 만남을 ‘평화회담’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들에게 김익렬은 ‘크나큰 이익’을 가져다주는 ‘쓸모 있는 바보’였을 뿐이었다. 김익렬은 김달삼에게 이용당하거나 협조하고 있었다.

 인민해방군의 문서인 '투쟁보고서'에는 인민해방군에게 물품을 지원한 김익렬의 행적도 등장한다.


 ㊁ 4월 중순 경 문(文)소위로부터 99식총 4정(挺), 오일균(吳一均) 대대장으로부터 카-빙     탄환 1,600발(發), 김익렬(金益烈) 연대장으로부터 카-빙 탄환 15발(發)을 각각 공급 받음.8)


 최고수뇌회의에서 조병옥이가 김익렬을 가리키며 ‘공산주의자 청년’이라고 지목했던 것은 터무니없는 모함은 아니었다. 치안총수였던 조병옥은 김익렬의 이러한 행적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을 확률이 높다. 최고수뇌회의에서 조병옥과 김익렬의 난투극은 김익렬의 미스테리에서 출발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 해석이다.

 1948년 5월 3일 뉴욕타임스에는 김익렬과 김달삼의 접촉을 의미하는 이런 기사가 실렸다.


 ‘부산에 주둔하는 해안경비대는 공산주의자들이 그 섬(제주도)에서 경찰의 투항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산주의자들은 5개항의 항복조건을 내걸었다. 모든 경찰무기의 압수, 경찰과 다른 방위세력의 처벌, 그리고 유엔의 5‧10선거의 취소에 대한 확약 등. 이러한 항복조건은 제주에 주둔하고 있는 해안경비대 장교에게 제시되었다. 공산주의자들은 그 장교에게 “만일 이러한 조건들이 귀측에 의하여 받아들여진다면 5월 2일에 작전을 중지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그 요구사항에 대하여 당국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9)


 신문의 기사는 ‘회담’이나 ‘회담 성사’가 아니라 오히려 인민유격대 측에서 경찰에 대해 ‘투항 요구’를 했다고 쓰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내건 항복조건들은 수용 불가능한 조건들이었다. 이것은 그들에게 휴전할 의향은 전혀 없었다는 뜻이었고, 폭동을 계속하겠다는 협박에 다름 아니었다. 이런 협박에 당국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고 밝힌 반면 김익렬의 유고에는 인민해방군과 협상이 채택되었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

 

 이것으로도 미군정의 상부기관에서도 두 사람의 만남을 회담으로 인정하기는커녕 단순히 서로의 의사를 타진하는 ‘접촉’ 수준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휴전이 성립되고 평화가 찾아왔다는 김익렬의 주장은 대체 어느 나라를 묘사했던 것일까. 김달삼과 귀순조약을 맺었다는 ‘평화회담’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오로지 김익렬의 유고에만 등장하는, 어디까지나 김익렬의 상상력의 산물이었다.

 

 맨스필드가 김익렬에게 협상에 관한 위임을 할 때, 맨스필드는 ‘서면으로 조인된 모든 약속의 이행은 미 군정장관 딘 장군이 책임진다’는 단서 조항을 달았었다. 그러나 김익렬과 김달삼과의 면담에서 ‘조인된 문서’는 없었다. 기고나 유고에서도 문서 조인에 관한 내용은 일체 언급되지 않는다. 이것은 당시의 면담 자체가 문서를 작성할 만한 수준의 ‘회담’은 아니었다는 반증이다. 단지 김익렬과 김달삼 사이에 ‘의견 교환’의 접촉이 있었고, 김익렬은 부대로 돌아와 맨스필드에게 ‘의견’을 제안했지만 통과되지 못했던 것뿐이었다. 즉 진압군 측에서 폭도들에게 지켜야 할 약속이나 의무 같은 것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김익렬은 이런 간단한 접촉을 국제신문에 기고했다가 30여 년 후에는 상상력과 ‘대포’를 가미하여 성공한 평화회담으로 격상시켰다. 그리고 본인은 구세주로 등극하려 했다. 김익렬의 주장대로 김익렬은 평화를 주창했는데 상부에서는 약속을 어기고 공격을 감행했다는 김익렬의 주장이 인정을 받으려면 김익렬은 김달삼과 조인된 “문서”를 내놨어야 했다. 그리고 남한 좌익들이 김익렬의 평화협정에 대한 존재를 주장하려면 역시나 ‘근거’를 내놓아야 한다.

 

 ‘평화회담’을 체결했다는 김익렬의 주장을 뒷받침해 주는 문서도 없고, 증언도 없고, 정황도 없다. 그 어떤 것도 없이 입으로만 외치는 김익렬의 ‘평화’는 사기극(詐欺劇)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김익렬과 제민일보와 4.3위원회는 공동정범의 사기범이다.

김익렬의 이런 황당한 유고를 이어받은 제민일보는 ‘4.3은 말한다’에서 존재하지도 않은 ‘4.28회담’을 바탕으로 휘황한 소설을 만들어내었다. 그리고 다음에는 ‘4.3위원회’10)가 제민일보를 이어받아 소설 같은 ‘진상보고서’11)를 찍어내었다.

 

 더욱이 ‘진상보고서’는 대한민국 국민의 혈세로 만들어졌으면서도 거짓과 왜곡으로 가득 차 있다. 4.3위원회는 진상규명을 한답시고 세계 구석구석의 문서를 뒤지면서도 눈 앞에 있는 김익렬의 ‘기고’의 존재에는 모른 체 했다. 극악무도한 위원회가 아닐 수 없다.

 

 4.3위원회는 김익렬 기고의 존재를 알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4.3위원회는 진상규명을 하면서 당시의 공문서, 언론의 기사, 외국의 문서 등 4.3에 관한 것은 샅샅이 긁어모았다. 4.3위원회가 국제신문에 대문짝만하게 그것도 3일 동안이나 연재된 김익렬의 기고를 몰랐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 그러나 김익렬의 기고는 그들에게 불편한 것이었다.

 

 기고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면 유고를 부정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그들이 유고에서 뽑아내어 공들여 쌓아 올렸던 4.28평화회담, 거기에서 파생된 ‘오라리 사건’의 논리, ‘제주도 메이데이’의 영화에 대한 주장 등, 그동안 좌익들이 쌓아올렸던 4.3의 붉은 성채와 우익들을 공격했던 좌익들의 빛나는 무기가 허망하게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목격해야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허상 위에서 춤췄던 자신들의 비참함에 차라리 부엉이 바위 위로 올라야 하기 때문이었다.

 

 공부에 게을렀던 학생들이 시험 시간에 앞자리 학생의 답안지를 베꼈다. 그러나 줄줄이 3명의 학생은 낙제를 했다. 제일 앞자리에 앉았던 학생의 답안지가 오답 투성이였기 때문이었다. 제일 앞자리가 김익렬이었고, 뒤에는 제민일보, 그 뒤에는 ‘4.3위원회’가 앉아 있었다. 김익렬은 현재 없지만 나머지 두 학생, 제민일보와 4.3위원회는 지금이라도 자기들이 배설해 놓았던 역사의 쓰레기 앞에서 책임을 통감해야 할 것이다. 


 

1)문창송 한라산은 알고있다. 78쪽

2) 김익렬 기고

3) 문창송 한라산은 알고있다. 49쪽

4) 제주4.3사건자료집8 미국자료편2 184쪽

5) 김봉현은 오현중학교 교사로서 민전 문화부장으로 3.2절사건에 연루되었다가 4.3직전(또는 직후)에 일본으로 밀항하였고, 김민주는 4.3폭동 때 인민해방군으로 활약하다가 후에 일본으로 밀항하였다. 두 사람은 일본에서 도피자들을 대상으로 증언을 채록하여 1963년에 일본에서 김봉현, 김민주 공저의 ‘제주도 인민들의 4.3무장투쟁사’를 공동으로 저술했다.

6) 제주도인민들의 4.3 무장투쟁사.

7) 문창송 한라산은 알고있다. 50쪽

8) 문창송 한라산은 알고있다. 80쪽

9) 제주4.3사건자료집11. 199쪽

10)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

11)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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