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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보고서의 ‘중산간마을 초토화’ 주장은 가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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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1-04-04 19:27 조회14,99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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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보고서가 문제 삼은 ‘중산간마을 초토화’는 가짜


제주도에는 옛부터 해변에는 어촌이, 중산간지대(산의 중턱지대)에는 농촌이 형성돼 있었다. 정부보고서는 9연대가 중산간마을에 있는 3만여 채의 가옥들에 불을 질러 초토화했기 때문에 9연대장(송요찬)에게 책임을 묻는다고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거짓말이다.


이에 대한 사실을 몇 개의 자료를 종합하여 알아본다.


제주도무장폭도들은 주민들에게 공포심을 유발하기 위해 매우 잔인한 방법으로 학살행위를 저질렀다. 이를 토벌해야 하는 것은 국가의 임무요 의무이다. 원래 제주도에는 1946년 11월에 창설된 9연대가 있었다. 그리고 1948년 4.3사건이 발생할 때를 전후 하여 9연대의 연대장을 한 사람은 김익렬 중령, 당시 군 사회에서 3대 왕대포(허풍장이)로 통하는 사람이었다. 참고로 당시 군에는 3포가 있었는데 대포는 김익렬, 중포는 홍순용(2기), 소포는 신대성(3기)였다 한다.


김익렬은 남로당 중앙당이 9연대에 박아놓은 문상길 및 오일균 소령과 함께 김달삼을 지원하면서 김달삼에 놀아나다가 1948년 5월에 파면되었다. 제주도 사태가 악화되자 국방경비대는 1948년 5월 4일 수원에서 대대규모에 불과한 제11연대를 창설하여, 그 해 5월 15일에 제주도로 이동시켰다. 11연대 예하에는 9연대 및 5연대에 소속된 1개 대대씩을 두었고 연대장에는 국방경비대 사령부에 있던 박진경 중령을 임명했다.


하지만 9연대 내에 뿌리내린 남로당 세포조직에 의해, 토벌작전은 번번이 실패했다. 토벌작전에 적극적이었던 박진경 중령은 6월 18일 새벽 3시, 대령진급파티를 끝내고 잠들어 있던 사이에 문상길 소위-오일균 소령 등이 이끄는 9연대내의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사살됐다. 그리고 최경록 중령이 새로 임명됐다.


7월 24일, 국방경비대는 공산주의자들이 득실대는 11연대를 수원으로 복귀시키고 그 대신 제5연대의 1개 대대와 제6연대의 1개 대대 및 9연대 1개 대대를 가지고 새로운 9연대를 다시 편성하여 송요찬 중령을 연대장에 임명했다. 7월 24일부터 9연대가 제주도에 주둔하긴 했지만 실질적인 9연대 작전은 군정이 끝난 건국 기념일 이후인 9월부터 시작되었다.


급조된 나머지 정보능력이 부족한 9연대는 토끼몰이식 방법으로 1주일 동안 한라산을 뒤졌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 이유는 중산간마을에 피난해 있는 공비가족들과 동조자들이 농사를 지으면서 토벌대의 동향을 공비들에 알려주었기 때문이었다. 연대장은 토벌작전이 번번이 실패한 이후에야 주민과 공비를 분리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고, 이를 위해서는 두 가지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하나는 선무공작을 통해 귀순시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토벌대를 주민으로부터 격리시키는 작전이었다.


당시 중산간마을이 어떤 마을이었는지는 ‘4.3은 말한다’의 260-261쪽에 잘 나타나 있다. 이는 필자가 제주도 증언자들에 의해 파악한 내용과 일치했다.


“1948년 5월에 접어들면서 제주도 대부분의 마을에는 경찰대의 출동상황을 감시하는 보초병이 생겼다. 10대 소년들로 편성된 이 보초병은 마을의 어귀나 ‘오름’에 올라가 토벌대가 나타나면 이를 마을 사람들에 알렸다. 주민들은 이들을 빗개(Picket)로 불렀다. 이 말은 1930년대에도 민족해방투쟁을 전개해온 운동자들이 이미 사용했다. 식대와 함께 나팔수도 동원됐다. 토벌대가 출현하면 나팔을 먼저 불고, 주민들이 ‘오름’(언덕)을 쳐다보면 깃대가 움직였다. 깃대는 마을 사람들에게 피신해야 할 방향까지 알려주었다.”     

               

송요찬의 9연대는 농사짓는 주민들을 전부 하산시켜 해안가에 있는 피난민 수용소 또는 일가친척에 수용시키고, 의식주를 해결해 주었다. 하산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성분을 조사하여 좌익분자로 판별된 사람들을 사상적으로 계몽했고, 그 들 중 재주 있는 사람들을 뽑아 산으로 보내 그들의 동료들을 선무케 했다. 이러한 선무공작이 주효하여 공비가족들이 대거 하산하기 시작하여 수 천 명에 이르렀다.


하지만 무장공비들은 10월 1일, 소련 혁명기념일을 기하여 전도적으로 대규모 폭동을 일으켰다. 도순 및 오동리에 있는 경찰지서를 습격함과 동시에 도내 전 지역에서 습격, 약탈, 살상 등의 만행을 자행하여 이날 하루 동안에 550 여명의 인명피해를 입혔다. 이에 정부는 1948년 10월 8일, 긴급히 제주도에 계엄령을 선포했고 1948년 10월 11일 제주도 경비사령부를 설치했다.


제주도 경비사령부 창설 6일 만인 1948년 10월 17일 제9연대장 송요찬 중령은 “해안선으로부터 5㎞ 이외의 지점 및 산악 지대의 무허가 통행금지와 이를 위반할 시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폭도배로 인정하여 총살에 처할 것”이라는 포고문을 발표했다. 동시에 해군은 10월 18일에 함정 7척과 수병 203명을 동원해 모든 제주 해상과 해안을 즉각 차단했다. 


하지만 1948년 10월 19일 여순반란 사건이 발생하자 공비들이 더욱 고무되어 공세를 취했다. 이에 제9연대는 일부 병력 즉 이근양 중위가 지휘하는 제5중대를 여-순 반란군으로 위장시켜 조천지구에 상륙시키는 작전을 계획했다. 이들의 상륙을 환영하고 안내하는 공비들이 있을 것이라는 데 착안을 둔 계략이었다. 그런데 연대 하사관 1명이 공비 측 세포에게 이 극비의 작전계획을 알려주는 것을 우연히 도청하게 되었다. 연대장은 교환수를 체포하여 세포조직 80명을 일거에 검거했다.


1948년 11월이 되면서 무장공비의 만행과 습격이 가일층 강화됐다. 식량과 의류를 약탈하고 마을 전체를 불태우고 도주했으며, 토벌대를 유인하여 격멸하는 수법으로 많은 피해를 입혔다. 공비는 이덕구의 지휘 하에 한라산 밀림지대에 거점을 두고 집요하게 준동했지만, 12월에 들어서면서 유격대 병력이 불과 1개 대대 수준인 것으로 판단됐다. 이에 정부는 12월 31일부로 계엄령의 해제하겠다고 선포했다.


계엄령 해제가 미리 선포되고 그동안 9연대와 경찰의 효율적인 토벌작전이 있었음에도 공비의 활동이 의외로 끈질기게 이어지자 국방경비대는 1948년 12월 29일, 제주도 9연대와 대전에 있는 2연대를 교체시켰다. 연대장은 함병선 대령.


1948년 12월 29일 제주도로 이동해온 제2연대는 지형도 낯설고 공비에 대한 정보도 부족하여 많은 습격을 받게 되었다. 진눈깨비가 날리는 1949년 1월 1일 새벽에는 감히 제3대대를 포위하여 기습공격을 감행했고 여기에서 군은 7명이 희생자를 냈다. 2연대장은 1949년 1월 4일부터 한라산을 포위하여 수색을 했지만 지형 미숙으로 은거지 색출에 실패했다.


연대장은 동굴 속에서 비참한 생활을 하는 것을 목격한 후 민심을 수습하는 선무공작에 주력했다. 4.3사건이후 계속되는 토벌작전과 무장공비의 보복작전으로 중산간마을에 있는 가옥들은 공비가 태우고, 군경이 태우고 하는 과정에서 대부분 폐허가 되어 버렸다. 이를 놓고 정부보고서는 “9연대에 의한 초토화 작전”이라는 거짓말을 했다. 9연대의 마을 ‘초토화 작전’은 처음부터 없었다. 집을 잃은 주민들은 하나씩 둘씩 산중으로 들어가 굶주림과 불안에 떨며 겨우 생명을 유지하고 있었다.


2연대는 주민과 공비를 분리시키기 위해 갱생원(피난민 집단 수용소)을 설치하고 적극적인 선무활동을 벌였다. 그 결과 1,500여 명에 이르는 주민들이 전향했다. 이들에게는 구호품과 식량을 제공해 주었다. 연대는 면민대회를 열어 공비들의 만행을 박격포, 대전차포, 기관총, 로켓 등 신무기를 전시하여 위력을 과시함으로써 공비들은 절대로 토벌대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설득했다. 이를 본 주민들은 국군을 신뢰하게 되었고, 산에 남은 친척들을 하산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선 선무-후 토벌’로 양민을 보호하고 무장폭도들을 사실상 고사 전멸시킨 2연대장 함병선 대령에 대한 주민들의 칭송이 대단했다. 제주주민들은 2연대의 공적을 높이 찬양했고 기리기 위해 서귀포에 ‘함병선 대령의 공덕비’를 건립하고, 1949년 7월 7일에는 도민 전체의 이름으로 한라산에 ‘평정비’를 건립했다.


이런 사실들을 놓고 정부보고서와 좌파들은 1948년 11월 중순으로부터 1949년 3월까지 4개월 동안에 걸쳐 군정과 이승만의 지휘 하에 9연대장인 송요찬이 중산간마을에 있는 가옥 3만여 채를 초토화시켰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9연대는 1948년 12월 29일에 대전으로 이동했고, 같은 날에 대전에 있는 제2연대가 제주도로 이동해 왔다.


따라서 “1948년 11월 중순으로부터 1949년 3월 이르는 작전”은 주로 제2연대에 의해 수행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보고서는 이 기간에 발생한 작전이 9연대장의 책임이라고 규정했다. 정부보고서가 처삼촌 벌초하듯 대강 대강 만들어진 것이다. 또한 중산간마을이 불에 타고 파괴된 것은 무장공부와 토벌대의 공동작품이지 어느 한 편만의 작품이 아니다.


또한 불에 탄 중산간마을의 가옥 수가 3만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그 근거가 애매하다. 앞서 제주도의 모든 부락에 잠복해 있는 깃대(빗기) 부대가 공비와 마을을 연결해 주었듯이 중산간마을에 있는 농민 및 농민을 가장한 유격대 동조자들을 그대로 두고서는 공비토벌은 도저히 있을 수 없었다.


4.3사건은 남로당 제주도 전역에 깊은 뿌리를 내린 좌익분자들과 무장공비들의 반란으로 인해 유발됐으며, 이를 토벌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이자 임무인 것이다. 좌파들은 피해만을 부각시키고 있지만 가만히 있는 국가를 향해 총을 쏜 집단은 제주도 빨갱이 집단들인 것이다. 이들은 당연히 국가에 의해 희생됐어야 할 사람들이었다. 또한 제주도에는 무장대와 무장대에 협력한 주민들이 매우 많다. 이들 또한 대한민국을 보호하기 위해 당연히 희생됐어야 할 사람들이었지 억울한 사람들이 아니다.


지금 억울한 희생자로 계산돼 있는 숫자 14,00여 명 속에는 북한과 일본으로 간 사람들, 자기 수명을 누리다가 자연사 한 사람들, 수천에 이른다는 폭도들, 그리고 폭도에 협력한 사람들의 수가 매우 많을 것이다.   


그 어느 국가가 이런 빨갱이를 소탕하지 않겠는가? 1920-30년대에는 미국경찰도 극장 안에 들어가 영화를 관람하고 있는 빨갱이들을 질질 끌어내 차에 태워 갔다. 국가와 우익들을 얼마나 만만하게 보았으면 빨갱이들이 집단으로 나서서 ‘정부보고서’를 참칭하며 백주 대낮에 이 따위 왜곡행위를 저지르는가?

     


2011.4.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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