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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보고서=강준만의 책=북한논문은 3위1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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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1-04-12 19:26 조회14,40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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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보고서=강준만의 책=북한논문은 3위1체

                                (4.3 관련)



1948년 5월1일에 발생했다는 오라리 사건은 하찮은 사건이다. 그런데 이 하찮은 존재가 좌익들에는 매우 위대한 사건으로 취급되고 있다. 미군정과 토벌대를 모함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정부보고서, 강준만, 북한논문이 서로 베낀 것처럼 일치한다.


정부보고서는 2003년 10월 15일에 발간된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이고, 강준만의 책은 2002년 11월 16일에 발간된 “한국현대사산책”(인물과사상사)이고, 북한논문은 1991년 북한의 박설영이 쓴 “제주도인민의 4.3봉기와 반미애국 투쟁의 강화”(과학백과종합출판사가 발행한 ‘력사과학론문집’)라는 제목의 논문이다.  


이 3개의 책중 가장 먼저 나온 책은 북한책(1991)이다. 그 다음이 강준만의 책(2002)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온 책인 정부가 발간한 이른바 정부보고서(2003)이다. 이 3개의 책이 어떻게 닮았는지 아래에 정리해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강준만의 ‘한국현대사산책’과 박원순-김삼웅-강만길이 주도한 ‘정부보고서’는 북한의 박설영의 논문을 그대로 수용하여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이 3가지 책의 요지는 김익렬과 김달삼 사이에 4.28평화협상이 있었는데 미군과 그 앞잡이인 경찰이 이 협상이 마음에 들지 않아 이를 깨고 그 덤터기를 폭도들에 씌우려는 목적 하에, 토벌대가 폭도로 위장하여 마을을 불태워 놓고 이를 폭도의 소행으로 뒤집어씌웠으며, 경찰이 폭도로 가장하여 군과 미군을 공격한 후 이를 폭도들의 소행으로 조작하여 폭도와 토벌대 사이를 이간시킴으로써 협상이 깨졌다는 것이다.

평화를 찾을 수 있었는데 그 평화를 미군과 토벌대가 깼다는 주장인 것이다. 이런 주장을 하기 위해 하찮은 오라리 사건을 침소봉대한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4.28평화협상은 가공해 낸 주장이다. 있지도 않았고, 있을 수도 없는 것이었다. 



                      
북한 논문이 규정한 오라리 사건


4.3봉기발발당시 모슬포 주둔 국방경비대‘ 9련대와 군정경찰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갈등이 빚어져 점점 확대되었다. 경비대는 구성상 근로인민의 자제들이 많이 있었다. 그들은 인민무장봉기를 류혈로 탄압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고 현지경찰의 지원요청을 묵살하였다. 반면에 경찰 측은 이에 대해서 불만을 품었다. 또한 미군정은 경찰을 중시하면서 경비대와 경찰에 대한 보급수준에서 현저한 차이를 두었다. 경찰은 경비대란 자기들을 보조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것으로 인정했고 경비대쪽에서는 자신들이 보조적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이러한 갈등은 국방경비대 9련대장과 무장대 측사이의 협상을 둘러싸고 격화되다가 5월 5일 련대장 김익렬과 경무부장 조병옥 놈의 정면충돌로 폭발하고 그것은 미군정장관 딘이란 놈이 김익렬을 해임시킴으로써 경찰 쪽에 유리하게 기울어지게 되었다. 경찰의 지원요청에 응하지 않던 9련대는 무장대지휘부와 접촉하면서 주민들이 더 이상 다치지 않도록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자는 데 목적을 두고 무장대 측과 평화협상을 가지고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3가지 조건에 합의 하였다.


그러나 이것을 불만스럽게 생각한 미군정은 교활한 방법으로 이를 파탄시키기 위 한 음모를 꾸미었다. 미군정은 먼저 이 협상을 파탄시키기 위한 유언비어를 내돌리며 그들 사이에 이간을 조성시켰다. 이러한 때에 미군정장관 딘놈이 극비밀리에 제주도에 나타나 5월 1일 '오라리 방화사건'을 조작하고 그것을 무장대측이 평화협상을 먼저 파탄시키려고 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교활한 연극을 꾸미었다.


또한 군정장관 딘 놈은 5.3기습사건을 도발하여 '초토화 작전'의 구실을 더욱 교묘하게 조작하였다. 이에 대하여 정창국의 쓴 '육사졸업생'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더 큰 사건이 5월 3일에 발생했다. 하오 3시쯤  '반도' 200여명이 하산하여 제주비행장에 설치한 수용소에 귀순해오겠다 하여 9련대 병사 7명과 미군사병 2명이 미고문관 드루스 중위 인솔 하에 호송해오는데 무장대가 카빙총과 중기관총을 난사한 것이다. 귀순자 일부가 죽고 생존자는 다시 산으로 도망쳤다. 미군들이 반격해 무장대 5명을 사살했다. 부상된 무장대를 드루스 중위가 데려다 치료해주고 알아보았더니 그들은 제주경찰서(서장 문용재 )소속 이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교묘한 조작극으로 '국방경비대'와 인민무장대의 평화협상을 파탄시킨 딘놈은 제주도에서 이른바 수뇌회의를 소집하고 극악한 반동두목 조병옥을 시켜 김익렬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파면시키는 연극을 꾸며내고는 반동들을 내세워 제주도인민항쟁을 탄압말살하기 위한 초토화 작전에로 내몰았다. 



                         
강준만이 쓴 오라리 사건


2. 평화협상을 깬 '오라리 사건'


남로당 제주도당은 이미 48년 2월 신촌회의에서 무장투쟁을 결정하였다. 공격 대상은 경비대나 미군이 아닌, 경찰과 우익단체였다. 서북청년단, 대동청년단, 독촉국민회 등 우익 청년단체 중에서도 가장 많은 원성을 산 서청(서북청년단)이 주요 공격 목표였다. 그리하여 유격대를 결성하였는데, 3월 28일 현재 8개 읍면에 걸쳐 모두 320명이 편성되었다. 이들이 확보한 무기는 겨우 소총 27정, 권총 3정, 수류탄 25발, 연막탄 7발, 나머지는 죽창이었다.


경찰과 서청에 대한 도민의 분노를 잘 알고 있던 제주 주둔 경비대 제 9연대는 4월 3일의 무장대 습격사건을 도민과 경찰.서청 간의 충돌로 간주하였다. 그래서 출동에 주저하였다. 경찰은 경비대가 사태 진압에 적극 나서지 않자 경비대를 출동시키기 위해 스스로 산간마을에 불을 지른 후 무장대의 짓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경비대가 처음으로 토벌전에 나선 것은 4월 22일부터였다. 미군정의 지시에 따라 4월 28일 연대장 김익렬과 무장대 총책 김달삼 간의 평화협상이 열렸다. 두 사람은 네 시간에 걸친 협상 끝에 다음과 같은 3개항에 합의하였다.


첫째, 72시간 내에 전투를 완전히 중지하되 산발적으로 충돌이 있으면 연락 미달로 간주하고, 5일 이후의 전투는 배신행위로 본다. 둘째, 무장해제는 점차적으로 하되 약속을 위반하면 즉각 전투를 재개한다. 셋째, 무장해제와 하산이 원만히 이뤄지면 주모자들의 신변을 보장해준다. 또한 귀순자 수용소를 세우되 군이 직접 관리하고 경찰의 출입을 통제한다.


그러나 협상 사흘만인 5월 1일 우익 청년단이 제주읍 오라리 마을을 방화하는 세칭 '오라리 사건'이 벌어졌고, 5월 3일에는 미군이 경비대에게 총공격을 명령함으로써 협상이 깨지고 말았다. 이 사실을 모르고 평화협상에 따라 귀순의 성격을 띠고 산에서 내려오던 사람들이 정체불명의 자들로부터 총격을 받았다. 총격을 가한 자들은 경찰로 드러났다. 경비대의 취조 결과, 그들은 "상부의 지시에 의하여 폭도와 미군과 경비대 장병을 사살하여 폭도들의 귀순공작 진행을 방해하는 임무를 띤 특공대"라고 자백했다.


김익렬의 증언에 따르면, "경찰은 폭동진압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과오와 죄상을 은폐하기 위하여 오히려 폭동을 조장, 확대하려고 하였다. 경찰들은 폭도를 가장하여 민가를 방화하고는 폭도의 소행으로 선전하고 다녔고, 이렇게 되자 폭도들도 산에서 내려와 각 지서를 습격하여 중지되었던 전투가 다시 개시되었다."


오라리 사건에 대해선 미국이 그 배후에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무엇보다도 오라리 방화사건 현장이 미국 촬영반에 의해 공중과 땅에서 모두 촬영되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놀라운 사실이지만, 더욱 놀라운 건 그 기록영화는 폭도들이 방화를 저지른 것처럼 조작 편집되었다는 사실이다.


한국 현대사 산책 1940년대 편 -강준만 저- 2권 108~110쪽 그대로 인용



                 
정부 보고서가 정리한 오라리 사건


제주읍 중심에서 2키로 떨어진 오라리 연미마을에 우익청년 단원들이 대낮에 들이닥쳐 10여채의 민가를 태우면서 시작된 사건이다. 4월29일 대동청년단 부단장과 단원이 폭도에 납치되어 행방불명이 되었다. 4월30일 대청단원 부인2명이 폭도에 납치되어 1명은 맞아죽고 1명은 탈출했다.


5월1일 09시경 맞아죽은 부인에 대한 장례식이 있었다. 경찰3-4명 청년단원 30여명이 5세대의 민가 12채를 불태웠다. 13:00경 무장대 20명이 총과 죽창을 들고 청년들을 추격했다. 14:00경 경찰기동대가 2대의 트럭에 분승하여 마을로 진격, 주민1명이 사망했다.


경찰보고서는 불을 지른 것은 무장대의 소행이라고 규정했다. 이 방화 현장을 공중에서 촬영한 자료가 있다. 이렇게 긴박하게 발생한 사건을 미군이 공중에서 찍었다는 것은 미국이 이 방화 사건을 미리 계획한 것이다.


5월3일 미군정은 총공격으로 제주사건을 단시일 내에 끝내라고 경비대 총사령부에 명령했다. 이는 선무와 평화를 포기한 행위다. 이날  김익렬과 김달삼 사이의 평화협상에 따라 산에서 귀순해 내려오는 사람들이 정체불명의 집단으로부터 총격을 받았다.


김익렬에 의하면 그 총격을 가한 자를 잡고 보니 경찰이었다고 했다. 잡힌 경찰이 진술하기를 그는 상부지시에 의해 폭도와 미군과 경비대 장병을 사살하여 폭도의 귀순공작을 방해하라는 임무를 받은 특공대라고 자백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경찰들은 폭도를 가장해서 민가를 방화하고 이를 폭도의 소행으로 선전했다.


9연대장 김익렬 중령은 무장대측 김달삼과의 ‘4.28 협상’을 통해 평화적인 사태 해결에 합의했다. 그러나 이 평화협상은 우익청년단체에 의한 ‘오라리 방화사건’ 등으로 깨졌다.



          
필자가 여러 경로로 파악한 오리라 사건의 진실


1948년 4월 30일, 오라리 부락에 무장 폭도가 출현하여 대동청년단 요원의 부인 2명을 산에 끌고 가 1명은 살해하고 1명은 나무에 묶였다가 구사일생으로 탈출했다. 다음 날인 5월 1일, 피살자의 장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울분을 참지 못한 청년단원들이 입산한 폭도들의 가옥을 불태웠다. 당시 오라리에는 입산한 무장 폭도들이 꽤 많았고, 불을 지른 가옥은 5세대, 사랑채, 마굿간 등을 합쳐 12 채였다. 이 소식을 접한 폭도들이 또 마을에 출동하여 경찰관 모친 1명을 즉석에서 살해하고 돌아갔다.


2011.4.12.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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