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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의 애국운동에 동참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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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1-08-23 17:38 조회13,40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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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상-송두율에 속은 남편의 강요로 요덕수용소에 갇혀있는 신숙자 3모녀에 대한 인권운동 돕기  


인구 13만에 불과한 통영에서는 윤이상을 지키려는 빨갱이 세력들이 대거 유입해 있습니다. 윤이상파와 신숙자 파가 대립돼 있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처음 제기하고 어렵게 전시전들을 계속 열고 서명운동까지 벌이고 있는 사람은 통영현대교회 담임목사 방수열과 김미영씨입니다. 그리고 이 운동은 젊은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현재 4만여 명이 서명했다고 합니다. 서명인이 늘어나면 "빨갱이들에 속으면 이렇게 된다"는 사회적 경각심이 확산될 것입니다..


아래를 이용하여 많이 동참해주시기 바랍니다. 이 운동이 퍼지면 퍼질수록 빨갱이들에 대한 경각심이 확산될 것입니다. 

                                  

                        서명에 대거 동참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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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래에 첨부된 서명용지.hwp(신숙자 모녀 생사확인 요청 및 구출 탄원서)

다운 받으신 후에 서명을 받으시고 다음 주소로 보내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우)650-070

경남 통영시 동호동 171-15  통영현대교회

방수열 목사

전화 055)642-1004

폰번호 010-6299-9331   


http://cafe.daum.net/daughteroftongyeong


2) 서명하기 번거로우신 분들은

이름, 주소, 전화번호(핸드폰)를 적어서

이메일로 직접 보내 주십시오

soosin15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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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숙자 오혜원 오규원

신숙자 모녀 생사 확인 요청 및 구출탄원서

이 름

주              소

연락처

서명

 

 

 

 

 

 

 

 

 

 

 

 

 

 

 

 

 

 

 

 

 

 

 

 

 

 

 

 

 

 

 

 

 

 

 

 

 

 

 

 

 

 

 

 

 

 

 

 

 

 

 

 

 

 

 

 

 

 

 

 

 

 

 

 

 

 

 

 

 

 

 

 

 

 

 

 

 

 

 

 

통영의 딸 신숙자 모녀 구출 운동(다음카페: cafe.daum.net/daughteroftongyeong), 전화:055-642-1004, 010-6299-9331


 

                     오길남의 통한과 빨갱이들에 대한 경고


올해 고희를 맞은 오길남 박사는 오길남(1942)은 서울대학에서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1970년에 독일로 갔다. 1974년 독일에서 송두율 등과 함께 민주사회건설협의회(민건)를 만들어 반정부 활동을 시작했다. 송두율과는 부부끼리 절친한 사이가 됐다. 1980년 신군부가 집권하자 독일로 정치 망명을 했다. 그리고 유학 15년 만인 1985년에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공부하는 동안 동갑의 파독 간호원 신숙자(1942)를 만나 1972년에 실반지를 나눠 끼는 것으로 결혼식을 대신했고, 딸(혜원35, 규원32)을 두었다. 그는 박정희의 유신체제가 싫다며 반한단체에 가입하면서 북을 동경했고, 박사 논문도 마르크스에 대해 썼다.


박사학위는 땄지만 직업도 구하지 못했고, 설상가상으로 그의 부인이 아팠다. 그래서 독일에서 둥지를 틀고 있는 윤이상과 송두율의 포섭대상이 됐다.


"그 시점에 베를린에서 야채상을 하던 김종한과 송두율이 나를 유인했다. 송두율은 내게 '부산대 교수 하던 윤노빈도 북한 갔고, 법학자 고흥식, 이창균도 북으로 갔다. 당신이 기댈 데가 어디 있느냐. 집사람 건강도 좋지 않은데'라며 은근히 입북(入北)을 권했다."


“윤이상은 그에게 서신을 보내 박사 학위 취득을 축하한다. 이제 통일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라고 생각하는데 북으로 가서 그동안 배운 지식을 동포를 위해 써달라고 했다.”


이들의 간교한 감언이설에 그는 북한을 동경했고 그래서 아내의 간곡한 만류를 뿌리치고 1985년 아내와 두 딸까지 데리고 북으로 갔다.


"아내는 'TV에서 못 봤느냐. 거기가 어디라고 가려 하느냐'고 펄쩍 뛰었다. 내 황소고집으로 결국 아내 동의를 받아냈지만 아내는 '당신의 결정이 훗날 큰 불행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예언처럼 말했다."


북한에 가면 좋은 자리를 주겠다던 윤이상의 말과는 달리 그를 기다린 것은 대남간첩 훈련장이었다. 밀봉교육을 받은 것이다.


"12월 13일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는데 그 추운 날씨에 비쩍 마른 화동들이 색동저고리에 스타킹 차림으로 꽃을 건네더라. 그 순간 아내가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그 아이들에게서 우리 애들의 장래를 본 것이다. 가슴이 섬뜩했다."


3개월 뒤 그는 칠보산연락소 ‘구국의 소리’라는 대남방송 요원으로 배치됐다. '민영훈 교수'라는 가명으로 매일 13분씩 방송을 했다. 그를 통해 북한이 남한 내 지하방송이라고 우기던 '구국의 소리'와 '민중의 메아리'의 실체가 밝혀졌다. 그러던 어느 날 중앙당의 호출을 받았다. 그에게 임무가 하달됐다. "유럽으로 가 남한 유학생 2명을 포섭, 입북시켜라." 경제학자에서 대남방송 요원으로, 다시 공작원으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1986년 11월, 남한 유학생을 포섭해 입북시키라는 지령을 받고 나오던 중 코펜하겐 공항에서 탈출했다. 1986년 가족과 헤어질 때 신숙자는 “아이들을 공작원의 딸로 만들지 말라, 탈출하라” 이렇게 말했다. 그 후 독일에서 가족 송환 운동을 펼치다 실패하자 1992년 5월 자수해 귀국했다. 1992년부터 오길남은 여기에 살고 있지만 그가 억지로 끌고 간 3명의 가족들은 북한에서 가장 험악하다는 요덕 수용소에서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받고 있다.


이것이 조국을 배반한 데 대한 업보인 것이다. 오길남의 심적 고통이 이만 저만이 아닐 것이다. 그는 매일 술을 먹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다며 술로 살이 쪄 100kg이 넘는 체구에다 말도 어눌하게 할 정도로 몰락해 가고 있다. 다른 사람들에는 다 속아도 빨갱이한테 속으면 이처럼 인생이 절단난다. 그도 그이지만 북한에 있는 3모녀는 지금 죽었는지 살았는지, 얼마나 고통을 받고 있는지,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질 것이다. 헤어진 지 벌써 26년이 흘렀다.


윤이상이야 그런 인간이라 치부하지만, 서울대학을 나오고 독일에 가서 박사까지 한 사람이, 민주화가 좋고 유신이 싫다고 주장했던 지식인이, 아내의 동의 없이 그리고 어린 아이들의 운명에 대한 심각한 고려 없이 윤이상의 꼬임에 빠져 온 가족을 북으로 데려간 것은 참으로 저주받을 일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3천만의 안전을 위해 빨갱이들을 때려잡았다. 그것을 놓고 빨갱이들은 독재자라 했다. 오길남도 그랬다. 하지만 박정희를 독재자라고 생각한 오길남은 스스로 고집불통의 독재자가 되어 불과 3명에 불과한 자기 가족의 안전조차 지켜주지 못했다. 


 “나는 가족을 파멸로 이끈 바보였다. 나는 꿈에서 아내와 두 딸에게 호소한다. 짐승의 꼴이라도 좋으니 제발 살아만 있어달라, 나는 아내와 딸들에게 용서조차 구할 수 없는 사람이다.” 통한의 절규인 것이다.


바로 이런 것이 이른바 지식인들의 작태요, 어설픈 민주화 인간들의 작태인 것이다. 그는 이제 와서 가족을 구해달라고 탄원문을 썼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 귀를 기울일 사람은 별로 없었다. “지가 저질러놓은 일을 남더러 해결해 달라니!” “그게 조국을 배반한 죄 값이요 어설픈 지식인들의 말로다”  아마 이게 사람들의 솔직한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통영의 일부 사람들이 나섰다. 그의 처인 신숙자가 통영출신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부터다. 통영은 윤이상의 고향이기도 하고, 신숙자의 고향이기도 하다. 신숙자 3모녀에 대한 구명운동은 이들이 요덕수용소에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싹트기 시작했다.


 

2011.8.23.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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