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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의 비대위 모습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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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1-12-30 18:21 조회13,59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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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라당의 비대위 모습을 보며!


“세계에서 가장 유능한 과학자들을 모아놓고 최고의 대접을 해주면서 ‘무엇이든 좋으니 가장 훌륭한 것을 만들어 달라’고 주문하면 100년이 가도 나는 것이 없다” 소니의 신화를 이룩한 아키오 모리타 회장의 말이다. 가지고 싶어 하는 제품이 무엇인지를 딱 부러지게 내놓고 성능 스펙을 내놓아야 한다.


위상이 발바닥까지 내려간 한나라당을 쇄신하라는 국민의 요구가 빗발쳤고, 한나라당은 이런 당을 살리기 위해 박근혜에 전권을 주었다, 애국국민들은 박근혜가 전국에 있는 제갈공명들을 뽑아 한나라당을 살리고 나아가 국가를 살리는 계기를 마련해 주기를 바랐다. 그 여망을 안고 박근혜가 10명으로 비상대책위를 구성했다. 4명은 한나라당 의원들이고 6명은 외부인이다.


당내에서 당연직으로 참여한 사람들은 1)황우여 원내대표 2) 이주영 정책위의장, 3) 주광덕 4) 김세연 의원이다. 외부에서 들어 온 사람들 6명중 필자의 눈에 띄는 인물들은 좌장격인 김종인(72), 이상돈 중앙법대 교수, 이준석(26) 그리고 조동성 서울대 경영학 교수다. 조동성 교수는 조용하고 신사적이며 독서를 많이 하는 참신한 서울대 교수로 알고 있다.


비대위는 2011년 12월 27일에 구성됐고, 박근혜는 비대위 이들 10명의 조직에  “한나라당을 살리는 것이면 무엇이든 좋으니 연구해 달라”는 정도의 주문을 암시적으로라도 주문했음 직하다. 소니의 모리타 회장이 지적한 대로 ‘아무 것도 나오지 않는 방향으로 극히 막연한 부탁’을 한 것이다.


이번 한나라당의 비대위 구성과정과 비대위 운영방식에는 박근혜의 능력이 적나라하게 나타나 있다. 경영이란 타인들의 지혜와 노력을 이용하여 일을 성취시키는 기술이다. 박근혜는 대한민국을 경영하는 최고의 자리를 탐내는 사람이다. 그런데 박근혜는 불과 10명의 두뇌들을 모집해 놓고 이른바 토의를 통해 지혜를 이끌어 낼 줄 모른다. 그냥 “좋은 생각 많이 내 주세요” 이 정도로 해놓고 자유방임을 허용했다.


이렇게 되면 보지 않아도 굿판이 벌어지고 줄초상이 나게 돼 있다. 아니나 다를까  12월 29일에 이르기까지 불과 3일 만에 이들은 한나라당에 많은 파열음을 내고 있다. 이런 식으로 비대위가 운영된다면 한나라당은 쇄신이 아니라 꽹과리 소리 요란한 무당집이 될 것이다. 현재까지 비대위에서 공적으로 나온 목소리는 없다. 오직 세 사람, 김종일, 이상돈, 이준석이 개별적으로 내는 소리만 나왔고, 그 개별적인 목소리에 할큄을 당한 이상득, 이재오, 정몽준, 안상수, 홍준표 등 현 정권의 실세들과 박근혜측 실세들이 무서운 반격을 가하고 있다.


비대위에는 크게 세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인선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주문자의 스펙이 없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른바 분임조(QCC) 내에서 토의를 통해 정제된 아이디어를 생산하는 데 대한 기본 개념과 리더십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이 정도의 지적이라면 서울대 경영학 전문교수인 조동성 박사도 잘 알고 있을텐데 이렇게 중요한 진단이 없는 것은 좀 이상해 보인다.     


                                                       인선의 문제


보도에 의하면 인선 과정도 박근혜가 핵심 측근 몇 명하고만 상의해 결정했다고 한다. 6명의 외인부대원 중에 비난의 가장 많은 인사는 최고령(72세)의 좌장인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다. 김종인은 민정당(11,12대)과 민자당(14대), 민주당(17대) 등 여야를 오가며 4번이나 비례대표(전국구) 의원을 지냈고, 노태우 시절에는 청와대 수석비서관과 보사부 장관을 지낸 경력이 있다. 최근에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정치적 멘토라고 알려졌다.

여기에 더해 김종인은 검은 돈을  받아 2년 6개월 수감된 전력이 있으며, 이때 자백을 받아낸 검사가 바로 홍준표라 한다. 전여옥 의원은 “김 전 수석은 1993년 동화은행에서 2억1,000만원을 받았다가 뇌물죄로 의원직을 상실하고 2년간 징역을 산 사람이다. 재벌 개혁을 얘기하면서 다 쓰러져가는 은행에서 돈을 받았다는 건 낯 뜨거운 범죄다. 김 전 수석은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을 시작으로 민정당, 민자당, 민주당 등 안 가본 당이 없다. 이런 사람에게 당 쇄신을 맡겨도 되느냐”며 직격탄을 날렸다. 여기에 또 더해 김종인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이었던 김정렴씨의 조카사위로 알려져 박근혜가  인맥으로 인선했다는 비판도 있다.


이상돈 교수는 이념문제로 비난 받고 있다. 천안함 폭침 사건과 관련해 북한의 소행보다 피로파괴 가능성에 무게를 싣는 주장을 폈던 것이다. 이에 대해 홍준표는  “우리가 조용환 헌법재판관 내정자를 반대하는 이유가 천안함 폭침사건에 대한 부정적 입장 때문인데 그걸 부정하는 사람을 비대위원으로 둬서 되겠느냐”며 반발했다.


26세의 나이로 화제를 모은 이준석 클라세스튜디오 대표에 대해서도 비판이 있다. 이 대표는 같은 미국 하버드대 선배인 무소속 강용석 의원과 트위터 상에서 입씨름을 벌였다. 보도에 의하면 이 대표는 자신과 강 의원이 쌍두마차라는 얘기가 있다는 한 네티즌의 글에 대해 “꼭지가 돈다”며 강 의원과 함께 거론되는 것 자체에 대한 불쾌감을 표시했다. 그러자 강 의원은 “이준석 대표의 학력 경력 군대가 잘 안 맞는다. 고교 2학년 때 카이스트에 진학하고 3학년 때 하버드대 4학년으로 편입해 1년 만에 졸업했다는 건데 거의 타블로(학력조작 의혹이 일었던 가수)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강용석 의원의 말이 맞다면 안철수에 버금가는 우화를 만드는 사람으로 보인다. 고2 때 카이스트에 입학해 3학년을 마치고 4학년 때는 하버드로 가서 1년만에 졸업을 하고 군대 생활도 마치고 회사 사장이 되어 지금 26세가 되어 있다? 우리 모두가 지금 안철수와 이준석이라는 두 귀신에 사로 잡혀 있는 게 아닌가 살을 꼬집어 보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이준석은 박근혜의 핵심 측근인 유승민의 친구 아들이라 한다.


이준석은 또 모 라디오 방송에 나와 박근혜를 향해 지적을 했는데 그 지적이 궤도를 이탈했다. "박 위원장이 넘어야 할 것들이 좀 있지 않느냐. 아무래도 전직 대통령의 따님이고 그래서 의혹이라든지 이런저런 이야기 나오는 것들이 있다. 국민이 아직 그것에 대해 해소가 안 됐다고 생각하는 부분들이 있는 것 같다" 박근혜가 해명해야 하는 것은 박정희 대통령은 아버지로 둔 것에 관한 것이 아니다. 뭘 아직 모르고 하는 말인 것이다. 


조현정 비트컴퓨터 대표는 서울 왕십리 지하철 민자역사 사업에 관여해 막대한 수익을 챙긴 것에 대해 일각에서 잡음이 새어 나오고 있다한다.


비대위의 유일한 여성인 이양희(성대교수)는 이철승(전 신민당 의원)의 딸이며, 김택기 전 의원과 이혼한 경력이 입 덤에 오르는 모양이다.


                                    비대위에서 3일간 쏟아져 나온 말들


비대위원들은 첫날부터 사람들을 공격했다. 인민재판을 한 것이다. 이상돈이 12월 29일 내놓은 말은 이렇다.

“현 정권의 공신이나 당 대표를 지낸 사람들이 ‘우리 책임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은 정치적 도의가 아니다. 그 사람들을 그대로 두고 쇄신을 하면 누가 믿겠는가”

정권 핵심인사에 대한 물갈이론이다.


김종인도 같은 날 금품수수 혐의로 보좌관이 구속된 이상득 의원을 겨냥하여 “본인이 적절히 처신하리라 본다”고 말해 정계은퇴를 압박했다.


이런 말들에 대해 반발하는 사람들이 없으면 그게 이상하다. 차기 총선 출마포기를 선언한 장제원 의원은 “한 분의 교수가 당에 들어와 칼을 휘두르면서 공천 운운하는 모습에 한나라당이 휘청거린다. 이게 개혁이냐. 오히려 개혁과 단합에 저해가 되는 것으로 박 비대위원장이 엄중 경고해야 한다”고 반발했다.


전여옥 의원도 김종인 비대위원을 겨냥해 “국민이 제일 싫어하는 게 돈 먹는 것인데 그런 전과자가 우리에게 쇄신 개혁하라는 게 말이 되느냐”며 대들었다.


 

"비대위원의 발언들은 분열을 좌초하는 것으로 결과적으로 당을 깨자는 것이다”


“비대위가 무슨 국보위냐. 정몽준 이재오 의원 다 나가고 박 비대위원장 혼자 다하겠다는 것이냐”


내분이 일자 박근혜가 진화에 나섰다. “개인 의견일 뿐이다."

하지만 일단 불이 붙은 내분은 그냥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의 분별없는 발언으로 박근혜의 입지는 매우 곤란하게 위축될 것이다. 그만큼 개혁에 대한 드라이브도 추진력을 잃게 될 것이다. 반대자들 사이에서는 정태근 김성식 의원처럼 탈당 대열에 합류해 박세일 전 의원이 주도하는 신당이나 중도 보수를 기치로 한 독자적 창당, 아니면 안철수 원장과 함께 새로운 중도를 표방하는 제3의 신당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고 있는 모양이다.

  

전술적으로, 낱개로 보면 김종인과 이상돈이 쏟아낸 말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는 첫날부터 비대위를 전쟁터로 만드는 참으로 졸렬한 말들이었다. 당하는 쪽은 식물들이란 말인가? 한나라당에 두 패를 짜서 전쟁이나 하려고 비대위를 만든 것은 아니지 않는가!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듯이 시작은 참으로 중요하다. 시작이 이 모양이면 비대위의 성과는 보나마나 노란 것이다.


                        박근혜는 지금부터 빨리 비대위 운영방식 달리해야 


필자가 해주고 싶은 조언들은 많다. 그러나 필자는 박근혜가 수용할 것으로 보지 않는다. 필자가 박근혜라면 대강 아래와 같이 할 것이다. 이마저 대한민국을 살리기 위해서 극히 일단의 생각이지만 조언해 보는 것이다.


1. 박근혜 자신이 대략적인 청사진의 윤곽을 만들어야 한다. 1) 한나라당의 이념과 목표 그리고 정책은 무엇인가? 2) 어떤 국가의 모습을 만들어 낼 것인가? 3) 의원의 자격기준은 무엇인가? 4) 국회의원의 의무, 예를 들면 모든 국회의원은 민생과 국가경영에 대한 법안을 매년 2개 이상 만들어야 한다는 등의 의무사항 5) 의원에 대한 매우 강력한 도덕기준은? . .


2. 비대위 토의는 절대 비공개로 해야 한다. 그리고 아주 짧은 시한을 정해놓고 그 시간 내에 비대위에서 공인된 최종안을 내놓아야 한다. 지금 중구난방으로 한 사람씩 말을 뱉는 것은 그야말로 웃기는 운영방식이다.


3. 처음 얼마동안 박근혜 자신이 토의를 이끌어야 한다. 모든 토의에는 토의의 주제와 토의를 이끄는 리더십이 매우 종요하다. 그리고 필자는 월남전 부대에 있을 때나 홍릉 연구소에 있을 때나, 처음 2-3주간 필자가 온 종일 참석하여 토의를 한다. 토의의 초점, 벗어나서는 안 되는 가이드라인, 지혜를 짜내고 이를 수렴하는 판단력과 리더십, 이런 것들을 정착시키기 위해서다. 


4.
토의의 결과는 토론진행자의 리더십과 창의력에 달려 있다. 아무리 바빠도 이런 교육을 하루 정도는 토의 전문가(기술자)로부터 받아야 할 것이다. 토의의 리더십, 아무에게나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니다. 참고로 토론 방법과 효과에 대한 필자의 생각을 담은 지난날의 글을 조금 소개한다.


                                                    토의의 비법


"판에 박힌 회의", "일방적으로 발표하고,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회의",  우리 한국인들이 익숙해져 있는 회의다. "타인들에게 잠재해 있는 창의력을 이끌어 내서 아이디어를 창출하거나, 문제를 발굴해 내거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내는 토의", 선진국들이 익숙해져 있는 회의다. 


토의의 충분조건은 두 가지로 구성된다. 하나는 토의 매너 및 센스이고 다른 하나는 리더의 "아이디어 브레이킹"(idea breaking) 능력이다. 토의 리더는 조련사다. 지루하지 않게, 늘어놓지 않게, 문제의 핵심을 향해 아이디어가 집중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토의 장소는 각자가 알고 있는 것을 발표하는 장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절실한 아이디어를 창안해 내는 장이다. 참여자들을 편안하게 해주고, 핵심에서 동떨어진 말은 차단하되 무안하지 않게 덮어주고, 때로는 지나치기 쉬운 말에도 관심을 집중시키고, 발표된 말에 아이디어를 보태는 식으로 아이디어의 질을 높여나가야 한다.


"센스를 발휘하라"고 말들을 하지만 어떻게 하는 것이 센스를 발휘하는 것인지 잘 모른다. 이에 대한 해답을 줄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다만 상황에 따라 훌륭한 센스가 무엇인지를 보여줄 수 있을 뿐이다. 이는 책으로 깨우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라 토의의 천재(?)가 발휘하는 훌륭한 센스를 관찰하고 음미함으로써 깨우칠 수 있는 성격의 것이다.


막막할 때, 아이디어를 내면 침체됐던 토의가 살아난다. 팀 리더는 "아이디어 브레이커"여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그런 능력을 가질 수 있는가? 이에 대한 매뉴얼은 없다. 이 역시 책으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 "토의 선생님"으로부터 직접 관찰하며 얻을 수 있는 훈련이다.


                           500개의 국가단위 위원회들이 낭비에 불과한 이유


정부에는 500개에 달하는 위원회들이 존재한다. 토의를 통해 좋은 아이디어를 달라는 뜻에서 설치된 것들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위원회가 생산성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이는 위원장의 토의 유도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토의를 통해 문제의 본질을 정의해 내고, 그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 위원들의 창의력을 이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딱딱한 분위기에서 형식적으로 각 참여자의 발언시간들을 통제하는 타임 키퍼(time-keeper)로서의 역할만 하고 있다.


지역에서 유명한 대학의 학장들을 위원장으로 위촉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들은 기업체 간부들보다 오히려 더 관료주의적인 성향이 있다. 대부분이 아이디어의 촉진자(facilitator)로 역할 하는 것이 아니라 지혜와 아이디어의 창출을 방해하는 방해자(obstructor)로 역할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총론들만 가지고 공방 하다가 헤어지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수 십 명의 위원들이 수십 시간을 보내고, 컨설팅 회사에게 수억 원씩의 과제비를 주어가면서 연구를 시키지만, 진행자의 토의진행 요령의 미숙으로 인해 성과를 얻지 못하는 것이다. 


                                         일본은 하는데 한국이 못하는 이유


일본의 유수한 기업들에는 우열을 가리지 못할 만큼의 토의문화들이 형성돼 있다. 하지만 책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경우는 도요타의 토의문화다. 도요타 자동차에는 사원이 4만명이라 한다. 이들로부터 연간 3백만 개의 아이디어가 나온다고 한다. 바로 토의능력 때문이다. 일본 QCC의 진원지는 도요타자동자이고, 도요타 QCC의 아버지는 통계학자인 가오루이시까와 박사였다. 그는 도요타의 1개 팀을 6개월간 훈련시켜 성공사례를 만들어 주었다. 일단 성공하고 나니 도요타는 성공사례가 되었고, 도요타에 심어준 가오루이시까와 박사의 토의 방법은 전국으로 확산돼 나갔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분임토의를 어떻게 시작했는가? 일본이 하나의 성공사례를 만들어 그 방법을 확산시킨 반면, 한국에서는 “분임토의가 좋다니 우리도 한번 해보자” 하는 식으로 CEO들이 명령을 내렸다.  분임토의에 대한 아무런 사전 지식이나 기술 없이 공문에 의해 “몇 월 며칠부터 동시에 실시할 것” 이런 식으로 출발했던 것이다. 이렇게 모범 사례 없이 시작한 분임토의는 감정싸움으로 변하고 때로는 화사불만에 대한 근로자들의 성토장이 돼 버렸던 것이다.


                                토의의 성패는 토의진행자에 달려 


필자가 근무했던 국방연구원에서 있었던 사례다. 미국의 모 대학에서 교수를 하고 있던 한국인 교수를 연구소로 유치한 적이 있었다. 연구소의 계급은 호봉이었고 새로 유치하는 교수에게도 호봉을 주어야 했다. 너무 높게 주면 기존의 간부들이 불평할 것이고, 너무 낮게 주면 유치학자를 서운하게 할 판이었다. 회의 진행자인 부원장이 8명의 간부를 불러 회의를 했다. 인사과에서 그의 경력을 기계적으로 해석해서 7.2호봉이라는 계급을 산출해냈다. 진행자는 시계방향으로 돌아가면서 각 간부의 의견을 말해달라고 했다.


맨 처음에 대답한 사람이 7호봉을 제안했다. 그러자 다음 사람들도 돌아가면서 ‘동감’을 표했다. 필자가 맨 나중에 앉아 있다가 7호봉을 제안한 간부와 동의를 표시한 간부들에게 “왜 7호봉이 적당하다고 생각합니까” 하고 물었다. 모두가 대답을 못했다. 단지 사사오입을 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사사오입을 하자고 간부회의를 소집했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회의의 형식은 나무랄 데 없는 민주주의 방식이었다. 그러나 그 회의의 질은 형편없는 것이었다. 


필자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 모이신 간부들은 오직 7.2 라는 숫자가 쓰인 종이 한 장 받아 쥐고 있을 뿐입니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토의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논리가 전개되고, 그 논리에 의해 각자는 자기의 마음을 정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정한 후에 각자의 의사결정 결과를 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에 대해 사회자는 이렇게 물었다. “그 말씀은 옳은 말씀인데 그러면 어떻게 해야 더 많은 정보가 도출되고 논리가 전개될 것인지 말씀 해주시겠습니까?” 


필자는 유치학자를 회의장에 불러 차를 함께 마시자고 했다.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엄청난 정보였다. 차를 마시면서 간단한 질문들을 한 후 그를 내보낸 후 필자가 양해를 얻어 칠판으로 나갔다. "자, 유치학자를 보셨지요. 유치학자와 견줄 만한 기존 연구원들의 이름을 열거해 보시기 바랍니다." 모두가 자기 휘하에 있는 한두 명씩의 이름을 거명했다. 그 이름들을 칠판에 써놓고 한사람씩 견주어 갔다. 누가 더 높고 낮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들이 백출됐다. 마지막에는 김 박사보다는 높고 이 박사보다는 낮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결국 그는 9호봉으로 결정되었다. 7호봉과 9호봉의 차이는 엄청난 것이었다. 필자의 회의진행 방법이 참석자들의 창의력을 유도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의 조직들에서 토의문화가 정착되지 못한 것은 순전히 진행자의 탓이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간부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도 해봤는데 안 되더군요, 일본과는 달리 한국문화에는 맞지 않습니다."



2011.12.30.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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