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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전부(통일전선부)의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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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2-01-24 22:34 조회14,80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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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전부(통일전선부)의 프로필


아래 글은 통전부 출신인 장혜영이 월간조선 2005년 1월호를 통해 폭로한 장문의 내용에서 발췌 요약한 것이다. 이는 필자가 읽은 기본의 요약본보다 훨씬 가치가 있을 것이다. 필자는 오늘 많은 시간을 들여 내용을 요약했다. 그래도 내용이 많다.

                                                  통전부의 태동

통전부의 역사는 1946년부터 시작한다. 소련군은 8·15 광복 10일 만인 8월 24일 북한에 진주했다. 진주하자마자 소련군은 국가안전성 국제정보국 예하에 ‘소련군 정찰대 극동지부 북조선 파견대’를 조직하고 이어서 1946년에 한반도 전체의 공산화를 목적으로 ‘서울공작위원회’를 조직했다. 이것이 바로 대남공작부서의 원조다.

1948년 10월 10일 당 창건 후 김일성은 ‘서울공작위원회’를 ‘대남사업부’로 승격함과 동시에 이를 노동당 중앙위원회에 두었다. ‘대남사업부’는 철저한 은밀성을 보장하기 위해 중앙당 본 청사와 분리시켜 타구역에 설치했다. 중앙당 청사들은 평양시 중구역 창광동에 밀집돼 있지만, ‘대남사업부’는 모란봉구역 전승동에 별도 설치되어 ‘3호청사’로 불리고 있다.

1960년대까지는 상대적으로 안정된 체제와 경제적 우위를 바탕으로 무장기습에 의한 파괴·와해·교란 등 힘의 정책을 대남전의 기본으로 했지만, 1970년대부터는 장기전에 대처한 우회적 전략, 즉 사상·문화적 침투와 인물포섭, 심리전 등을 총괄하는 지능 위주의 전략을 택하고 있다.

이런 전략변화에 따라 종전의 수많은 조직들, 이를테면 ‘조국평화통일서기국’, ‘남조선문제연구소’, ‘평양주재 한국민주전선대표부’, ‘재북평화통일 촉진협의회’, ‘조총련결성준비위원회’ 등을 하나로 통합하고 여기에 101연락소, 26연락소, 813연락소, 310연락소 등을 신설하여 2,250명이 근무하는 거대 기구 ‘통전부’를 독립 부서로 설치하고 김정일이 직접 관장하게 되었다.

현재 노동당 안에 있는 대남공작부서만 해도 작전부, 대외연락부, 35호실, 통전부 이렇게 4개가 있고, 그것도 모자라 인민군 무력부 안에 정찰국을 두고 있다. 이들의 인원을 다 합치면 무려 3만여 명에 이른다. 이들이 남한을 흔들고 있는 것이다.

김정일은 이를 위장하기위해 1994년 5월 10일 통전부 산하에 ‘조선아태평화위원회’를 두고 그 위원장을 김용순으로 발표했지만 이는 사람도 없고 건물도 없는 유령기구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도끼사건’, 1983년 10월 9일의 ‘미얀마 아웅산 폭파’, 1987년 11월 29일의 ‘KAL-858기 폭파’, 1992년 10월 6일의 ‘남조선 노동당 사건’, 1996년 9월 15일의 ‘강릉해안 잠수함 침투’, 1998년 12월 17일의 ‘여수해안 간첩선 침투’, 1999년 6월 15일의 ‘서해 연평도 해상 교전’, 2002년 ‘서해교전’ 등은 통전부의 작품이다.

                   김대중은 수령님의 전사이고 386주사파는 통전국의 정규군

김대중은 통전부가 공작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기른 ‘수령님의 전사’이고, 386은 통전부의 흔들리지 않는 정규군이다. 이들은 통전부가 발산하는 수많은 종류의 인터넷, 동영상, 방송, 노동신문 등을 통해 내리는 명령에 절대 복종한다. 2000년 6월 김대중이 김정일의 리무진에 단독으로 오른행위는 김대중이 완전히 북의 전사라는 것을 웅변해준다. 정상회담 후 몇 개월 지나서부터 김용순, 임동욱, 안경호 같은 거물급들이 노골적으로 김대중을 ‘수령님의 전사’라고 불렀다. 수령에 대한 신격화가 절대적인 북한에서 중앙당 비서 부부장들이 적국의 괴수를 ‘수령님의 전사’라고 부를 수는 없다.

                         김대중의 전사화와 386 양성은 4.19의 산물

김대중의 이름은 이미 그가 한국의 민주투사로 인정받던 1970년대에 통전부의 문건에 올라 있었다. 북한이 인물 흡수의 필요성을 절박하게 느끼게 된 계기는 1960년 4·19 혁명이었다. 김일성은 그때 통일의 호기를 놓쳤다고 두고두고 후회하면서 4·19 혁명이 붉은 혁명으로 승화되지 못한 요인은 그것을 주도할 만한 적색인물과 그 중심의 지하당이 없었기 때문이라 평가하고 그 인물을 김대중으로 낙점한 것이다. 박정희가 암살된 후 김대중이 정권을 장악할 수 있는 정국조종 전술안도 보관되어 있다. 1974년 8월 15일 육영수 여사 암살사건은 바로 이 전술안의 첫 단계에 해당하는 작전이었다.

남북 정상회담 준비역을 맡았던 송호경에게 김정일은 『김대중이는 돈을 달라면 돈을 주게 돼 있고, 쌀을 달라면 쌀을 주게 돼 있는 사람이니 대화 상대라 생각지 말고 무조건 10억 달러를 내리 먹여!』 하고 지시했다.

            김대중이 당선되자 김정일 만세 부르고 안기부 해체 명령 내려

김대중 당선 시점에 김정일은 ‘안기부 해체’계획을 수립했다. 김정일은 대한민국을 마음대로 요리하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처럼 보였다. 김대중의 대선 당선이 확실해지자 김정일은 자기의 경사를 자축하듯 파티를 열었다. 여기서 그는 안기부 해체 문제부터 결속지으라고 큰 소리 쳤다. 김대중이 대통령 취임 연설을 준비하던 그 시간에 통전부는 이미 김정일의 지시대로 안기부 해체에 대한 구체적인 안을 작성한 상태였으며, 그로부터 1년도 채 안 된 1999년 2월경에는 안기부가 정말로 대북기능이 약화된 국정원으로 개조됐다.

김정일의 욕심은 이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국정원 개조발표와 함께 책상 위에 놓인 국정원 내부조직 구성 보고서를 받아든 김정일은 “이게 무슨 해체인가, 명칭만 바꾸었을 뿐이지 내부 조직이며 악질들이 그대로 들어 있지 않은가” 하고 보던 문건을 집어던졌다. 그리고 나서 즉시 통전부 제1부부장(통전부의 김정일 다음 자리) 임동욱을 불러 “안기부나 국정원이 뭐가 다르냐”며 “이것으로 끝내지 말고 계속 압력을 넣으라”고 지시하였다. 그때부터 「노동신문」은 국정원 규탄으로 지면을 채웠다.

“이런 반통일 모략기지, 동족탄압의 본산을 그대로 두고 대화요, 화해요, 교류요 하는 것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우리도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고 강하게 압박했다. 결국 김대중은 햇볕정책의 성과적 추진을 위한다며 자기 임기 내에 기어이 국정원의 대북기능을 변질시켰다.

                      강인덕 축출도 통전부가 김대중에 내린 명령

김대중 정권 초기 통일부 장관이었던 강인덕도 통전부가 몰아냈다. 당시 김정일은 강인덕이 이화여자대학교에서 한 특강에서 우리 체제를 악랄하게 헐뜯었다면서 “중앙정보부 대북담당 국장, 심리전 국장, 북한문제연구소 소장, 극동문제연구소 소장이라는 경력을 볼 때도 대단히 마음에 안 드는 놈이니 통일부 장관 자리에서 반드시 쫓아내야 한다”고 지시했다.

통전부는 즉각 3위1체 무기를 꺼내들었다. 3위1체란 다름 아닌 통전부, 김대중 정부, 그리고 한국 내 친북 및 좌파세력의 일심체를 의미했다. 북한은 우선 노동신문을 통해 강인덕에 대한 반대 입장을 거듭 천명했는데, 그 논조는 단순히 규탄이 아니라 명령 같은 것이었다.

그때의 노동신문 자료들을 역사의 산 증거로 여기에 그대로 옮긴다.(1999.5.3일, 5.5일, 5.7일, 5.10일, 내용은 생략)

최종적으로 김대중의 지시로 1999년 5월 24일 통일부 장관직에서 강인덕이 해임됐다. 그 시간에 김정일은 강원도에 있는 자기의 갈마초대소에서 통전부 간부들과 함께 강인덕 해임 작전을 자축하는 파티를 성대히 벌였다.

                          2002 대선 때 이회창 낙선에 총력 집중

3위1체 전략이 절정에 달했던 때는 2002년 대선 때였다. 김정일은 노무현이 당선돼야 김대중의 햇볕정책이 계승될 수 있다며, 한나라당 후보 이회창 낙선에 통전부 역량을 총 집중하라고 했다. 역시 그때도 노동신문이 앞장서서 한나라당 죽이기에 열을 올렸다.

“남조선의 각계각층 인민들은 미국의 앞잡이인 리회창 패당들과 같은 민족반역의 무리들을 미제침략자들과 한 바리에 실어 이 땅에서 통째로 들어내기 위한 반미, 반리회창투쟁을 더욱 과감히 벌려야 할 것이다”(2002.12.1일, 12.3일, 12.11일, 12.15일 노동신문 기사 생략)

                             통전부 최고 성공작은 386 주사파

김정일이 얼마나 대남전략에서 자신감을 가지고 욕심을 부렸는가 하는 것은 자기 제도권 밖에 있는 한국의 언론까지 통제하려고 한 사실에서도 잘 알 수 있다. ‘조·중·동 신문 안 보기 운동’을 한국 전역으로 넓히라 한총련에 지시했다. 하지만 조·중·동을 지켜준 것은 대한민국 국민들이었다.

오늘날에는 386이 김대중도 감히 더 이상 넘어설 수 없었던 체제까지 뒤집겠다고 팔을 걷고 나섰다. 아직도 전향하지 않은 그들의 낯익은 모습을 TV 화면으로 본다.

그들의 최고 성공작은 바로 386이다. 이날을 보자고 통전부가 수십 년 동안 한국 사회를 재단하며 그에 알맞은 자기 조직을 부단히 확장해 왔고, 마침내는 그 효력을 보는 것이다.

                               주사파 공작 공로자 비밀 표창

통전국의 정규군 386 주사파의 대상은 진취성이 강하고 지성욕구로 몸이 달아 있는 대학생들로 지목했다. 통전부는 조총련을 앞세워 일본에 나와 있는 유학생 사냥에 나섰다. 납치·회유·기만·협박의 방법으로 적색화한 그들의 임무는 한국 내에 주체사상을 전파시키고 동지를 획득하는 것이었다. 이들이 바로 386주사파들이다.

지금도 조국평화통일 서기국과 한국민족민주전선 중앙위원회 참사실에는 그 공작성과로 영웅칭호, 국기훈장 1급을 수여받은 사람들이 활동 중에 있다. 북한 공작금을 뿌려 가며 대학가에 침투하여 주사파를 결성한 초기 창시자들에 대한 ‘조국통일상’ ‘내신문건’에 김정일이 서명한 날은 1996년 2월 15일, 그 수훈식은 다음날인 2월 16일 통전부 본부 회의실에서 몇몇 주요 간부들 참석 하에 익명 발표식으로 진행됐다.

주사파의 활동에 통전부가 얼마나 의의를 부여했는지는 그들의 조직 확산을 지원하기 위해 대학생들에 대한 의식화·세뇌교육 목적으로 김정일이 「101연락소」라는 것을 만들도록 지시한 데서도 잘 알 수 있다.

평양시 중구역 연화1동 평양의학대학 앞에 건물을 두고 200여 명의 필진들로 구성된 이 연락소의 사명은 한국 작가 명의로 반독재·반미·김일성의 고려연방제식 통일을 주제로 한 소설·시를 창작하여 한국에 침투 및 보급시키는 것이다. 책의 내용으로 보나, 책 제작으로 보나 어느 면에서도 북한산이라고 의심이 안 되게 철저히 위장 창작된 시집과 소설책들은 젊은 대학생들로 하여금 자기들의 반정부 행위와 주체사상 신봉이 더는 비합법적인 운동이 아니라는 착각에 빠지게 했다.

평범한 대학생에서 민주투사로 성장한 책 속의 주인공을 닮고 싶다며 북한으로 밀입북해 노동당에 가입한 386 출신 한 성원은 이렇게 설명했다.

『386들은 아직도 그때의 대표적인 작품들인 「반항」, 「돌아보는 얼굴」, 「열흘 낮 열흘 밤」, 「통일은 언제 됩니까?」 등을 자자구구 외우고 있을 것이다』

통전부는 이렇게 소설과 시까지 대남심리전용으로 만들어 대학생들을 사상무장 시키는 데 이용했으며, 주사파는 반정부 전선을 노동자와 농민 속으로 확대하기 위해 대학생들을 노동현장으로 파견하기도 했다.

                    주사파 비밀 방북해 노동당 가입하고 「혈서 서약」

통전부는 한국내에 「반미결사대」, 「자주군인회」, 「통일결사대」, 「민족해방애국전선」, 「민주운동연합」 같은 비밀조직들을 구축하고 대남공작의 통일전선을 형성했다. 그 통일전선의 목표는 야당을 지지하여 김대중이 집권하면 국가보안법 철폐, 안기부 해체, 미군철수 등 북한의 적화통일에 장애가 될 수 있는 제도적 장애를 우선 제거하고 정치적 혼란, 친북여론 확산으로 합법·비합법 시민운동단체들을 규합하여 연공 정부의 기반을 확보한 다음 분열 50돌이 되는 1995년을 한반도의 공산화 통일 50돌로 만든다는 것이었다.

김정일은 한국내 지하당 당원들에게 투쟁의욕과 통일의욕을 자극시키기 위해 「누구는 서울시위원장, 누구는 충청도위원장」 하는 식으로 직위 분담을 하게하고, 김일성에게 자기의 대남공작 지도성과를 과시할 목적으로 그들이 노동당 입당 청원서, 충성의 맹세문, 칭송 글, 서약서 등을 작성하여 북한으로 들여보내도록 지시했다.

2002년 4월15일 평양 만수대 김일성 동상 뒤 조선혁명박물관에 새로 개관된 「동지관」 이라는 곳에는 그때 입수한 자료들과(이름은 삭제) 지하조직들이 사용했던 노동당 깃발, 김일성과 김정일 초상화가 전시되어 북한 주민들에게 한국 국민들이 김정일을 흠모한다는 선전용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어 통전부는 지하조직만이 아닌 합법적인 운동단체들도 친북, 좌경화하기 위하여 주사파가 「전대협」을 장악할 수 있도록 많은 공작금과 인적지원을 아끼지 않았는데, 그들을 정신적으로 지원한 것은 북한이 이전에 흡수했던 김대중과 같은 「민주투사」들이었다.

전대협의 지도적 위치를 차지한 「주사파」는 해외에 유학생 지부를 만들어 놓고 체계적으로 통전부의 지령과 공작금을 받았고, 비밀리에 북한을 방문하여 노동당에 가입하면서 김정일에게 충성의 선서까지 다졌다. 그렇게 평양까지 찾아와서 번호를 받은 붉은 당증과 혈서 서약서는 모두 15개였다. 대남담당 비서 김용순은 『김정일 탄생 60돌이 되는 2002년 2월16일까지는 통전부가 선물로 60명의 혈서 서약서를 만들어야 한다』고 간부들 앞에서 지시했다.

                             「서울에서의 구국의 소리방송」

통전부는 그 후 한국내 지하조직들을 종합적으로 통제관리하고 적화통일로 유도할 수 있는 유일적인 지령체계를 확립하기 위하여 평양시 대성구역 용흥동에 숨겨져 있는 소위 「서울에서의 구국의 소리방송」 운영을 더욱 강화했다.

150여 명으로 꾸려진 이 26연락소는 한국에 실존하는 방송국으로 위장한 연락소로서 아나운서의 방송언어와 한국식으로 현지화한 억양을 사용해 한국 주민들과 해외동포,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국 정부의 정책과 사회상을 왜곡하거나 허위날조 보도함으로써 소요 유발을 부추기고 민주화 운동이 통전부의 대남전략대로 심화되도록 심리전을 폈고, 때로는 지령을 내렸다.

방송의 다양화를 위해 26연락소는 한국대중가요를 전담하는 전자악단도 가지고 있다. 「칠보산」 명칭을 1998년에 「북극성」으로 바꾼 이 악단에서는 한국의 대중가요들을 통전부의 입맛에 맞게 가사들을 바꾸거나 운동권 노래들을 직접 창작하여 방송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노래들은 운동권 대학생들의 반정부 감정을 더욱 유발시키는 자극제가 되었다. 통전부가 왜곡한 노래 중의 하나인 「사랑의 미로」를 실례로 든다.

<그토록 다짐을 했건만/사랑은 알 수 없어요/민주 위해 목숨을 바친/그대를 나는 못 잊어/나의 작은 가슴에 심어준 사랑의 별/언제나 변함없이 영원히/그대의 원한 씻으려/투쟁에 나서리>

                                     인터넷으로 전환한 작전

통전부는 또한 성숙된 한국 정세에 맞는 대남공작의 입체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26연락소와 함께 813연락소, 310연락소를 최대한 가동시켰다. 평양시 중구역 연화동에 자리 잡고 있는 150여 명으로 조직된 813연락소는 통전부내 각종 기관지들과 인쇄물들을 만들고, 특히 한국 내 시민단체들과 여러 조직들이 현지에서 직접 작성한 격문, 삐라(전단)처럼 위장 제작하는 출판연락소이다.

한국적 실감을 보장하기 위해 김정일은 「고난의 행군」 시기 300만이 굶어 죽던 그 엄혹한 때에도 종이와 색감에 이르기까지 모든 자재를 일본에서 조총련선으로 수입해 오도록 하였다. 아마 거기에 든 비용만 쌀 수입에 돌렸어도 북한 주민들 10만 명은 굶어 죽지 않았을 것이다.

김정일은 『813연락소에 들어가는 당 자금이 적지 않다』며 『그러나 우리가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군사에 힘을 집중하는 것도 다 통일을 위한 것이니 그런 줄 알고 자재낭비가 없도록 하라』고 지시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한장 한장이 그대로 북한 주민들의 피와 목숨으로 바꾸어진 대남심리전용 삐라와 격문들은 「고난의 행군」 시기에도 김정일의 지시에 의해 정상적으로 생산되었다.

200명 규모의 310연락소는 813연락소 생산물들을 한국에 침투시킴으로써 그 모든 허위와 날조들이 기정사실처럼 느껴지도록 한국 국민들에게 혼란을 조성하고, 북한을 동경하는 조직들이 한국 사회에 널리 전파되어 자기들 곁에서 활동하는 것처럼 확대 조작했다.

「반미애국청년회」, 「이북 바로알기 운동회」, 「자주애국청년단체」, 「하나회」, 「백두-한라조직」, 「금강산 사랑모임」 등의 조직 명의로 된 통전부의 손길이 서울의 골목골목과 인터넷에서 지금도 끊어지지 않고 있음을 한국 국민들은 부디 잊지 말기 바란다.

이렇듯 통전부는 자유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한국 국민들의 순수한 열정으로부터 시작된 민주화 운동에 적극 가담하여, 내부에 이념적 「씨」를 박고 개별적 인물 혹은 단체를 체계적으로 키워 적화통일로 유도하기 위한 환경 마련에 시간과 지혜를 아끼지 않았다.

한국의 민주화 운동의 역사는 통전부 대남공작의 역사라고도 말할 수 있으며, 따라서 통전부를 고발한다면 종당엔 386 때문에 한국의 민주운동도 고발당하는 것이다.

한 민족 안에 서로 다른 양극이념의 두 체제가 대립되어 있는 한 일방적인 참민주주의란 있을 수 없다. 오늘날 한국이 이룩한 기적 같은 이 민주주의는 경제의 고도성장과 함께 아울러진 문명의 현상이고, 이 이상의 민주주의는 이념공세로 인한 자멸의 초대장에 불과하다. 북한이 적화통일 정책을 백지화하지 않는 한 한국이 국가보안법 철폐나 주적개념을 포기한다고 해서 절대로 세계 선진국 수준의 민주주의 국가가 될 수 없다. 그런 날을 앞당기기 위해서 우선 민주주의의 첫째 과녁을 북한 독재정권 붕괴로 조준해야 한다.

                                              조평통의 위장

평양시 중구역 오탄동에 「조평통」과 지붕을 같이 한 「한국민주전선중앙위원회」에 1960년대 초부터 한국내에 지하조직들을 구축, 남남갈등을 유발시키고 조정하여 온 모략의 능수 100여 명이 집결해 있다. 평양시 중구역 연화동에 기지를 둔 「남조선문제연구소」는 1950년대부터 오늘까지 150여 명의 학자들이 한국의 정치·경제·군사·문화·개별 인물들에 대해서까지 자료화하고 학술 차원에서 논문들을 작성하여 통전부의 대남정책을 이론적으로 돕고 있다.

이렇게 적화통일 의도의 모략기지를 튼튼히 꾸리고, 북한 통일정책을 대변한다는 합법적인 의미에서 통일외교의 명분으로 한국내 개별인물 혹은 단체들에 접근하여 대남공작을 활발히 벌이는 「조평통」에는 현재 700여 명의 한국 전문가들이 근무하고 있다.

한국에 군사정권이 유지될 때까지만 해도 통전부는 반독재·자주·연방제식 통일을 대남공작의 기본 주제로 내세웠다. 그러나 김대중 정권 이후부터는 소극적인 틀에서 해방되어 반미, 친북, 친김정일을 노골화하고 지금은 그 전략을 「우리 민족끼리」 실현하려고 하고 있다.

특히 6·15 남북 정상회담에서 햇볕정책이 원만하게 이어지자면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는 김대중의 설명 이후 김정일은 자신이 직접 나서서 예술단을 불러들이고 언론사 대표단을 초청하는 등 독재자로서는 어울리지 않는 쇼를 연출하기도 했다.

                                       386은 통전부의 정규군

지금 남조선 정세는 우리에게 매우 유리하게 조성돼 가고 있다. 이것을 안정적으로 지속 발전시키자면 노출 위험성이 큰 직접 침투를 줄이고 눈에 안 보이는 침투, 즉 통전부가 그동안 관리해 오던 대상들을 현지에서 첩자로 흡수하여 적극 활용하는 방법으로 대남공작을 가속화해야 한다.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시민단체 포섭이다. 그들을 이용하여 남조선내 국민정서를 더욱 친북화 시킴으로써 우리의 전략이 쉽게 먹혀 들어갈 수 있는 틈을 많이 마련해야 한다. 공작자금은 근심하지 말라

통전부는 자금문제도 훌륭하게 해결하고 있다. 한국에서 보내주는 모든 인도주의 물자들은 그대로 통전부 소유로 접수된다. 얼마 전에도 한국에서 보내준 비료 일부가 국경 연선(연선) 중국 농촌지역들에 은밀히 수출되었고, 옷·식료품·심지어 한국 가수가 보내준 생리대까지 외화상점에 내다팔아 공작자금으로 확보하고 있다.

조평통은 종교 세력이 강한 한국내 실정을 감안하여 통전부 교류과 소속으로 1990년대 초부터 불교도연맹, 기독교연맹, 천도교중앙위원회, 천주교위원회를 설립하고 평양시 몇 곳에 절·성당·교회를 만들어 놓았다. 이 성원들은 철저히 검열된 골수 노동당원들인 통전부 요원들로서 이들의 주된 임무는 종교인 흡수, 물자지원 청탁에 대한 전술안 연구이며 그와 함께 직업오염을 막는다는 의미에서 해당 담당 종교의 비과학성, 반동성 논문을 작성 발표하는 식으로 정신세척을 하고 있다. 때문에 명칭이 불교이고 기독교이지 통전부 내부에서는 엄격하게 1국, 2국으로 명명된다.

통전부는 한국내 친북세력 확장과 시민운동단체 포섭을 심화하기 위하여 민간급 차원에서 대화·교류를 주동적으로 제기하는 전술을 활용한다. 여기서 강조할 것은 한국은 순수한 민간인들로 구성되지만, 북한은 명실공히 통전부 요원들로 편성되어 대화하고 교류한다는 것이다.

실례로 2004년 6월 금강산에서 있었던 남북작가회담 때 김형수 민족문학작가회의 사무총장과 악수했던 북측 단장 장혜명은 조선작가동맹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아니라 작가로부터 「조평통」 부원, 101연락소 국장직을 거쳐 지금은 26연락소 대남문학창작국 담당 부소장을 하는 통전부의 핵심 요원이다.

                             통전부내에만도 한국 전문가 ,2550명

이들의 전문성에 의거하여 경제·군사·문화, 그 어느 것 할 것 없이 남북관계 문제는 100% 통전부가 자기의 대남전략 큰 그림 안에서 각본을 쓰고 연출한다. 그래서 통전부이고 그래서 분열이 유지되는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경제장관급회담이라면 경제적인 의미로, 군사장관급회담이라면 군사적인 의미로 천진하게 믿는 한국 정치인들이나 국민들은 불쌍할 만큼 순진하다.

그 일환으로 2003년 9월부터 26연락소가 운영하던 「서울에서의 구국의 소리 방송」을 잠정적으로 중지했다. 종전에 진행하던 전파방송의 단면성과 비진보성을 인정하고 인터넷 보급이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 실정에 맞는 대남선전용 동영상화로 이전하기 위해서이다.

대남영상물 제작의 작품성을 보장하기 위해 101연락소의 대남문학창작국을 26연락소로 옮기고 「북극성」 전자악단의 규모를 더 늘렸으며, 2004년 10월에는 김정일이 직접 그 첫 시제품을 검토하는 등 지금 통전부는 새로운 대남공작 차원의 인터넷 방송국 창설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이 내막도 모르고 한국 정부는 26연락소 「구국의 소리방송」 중단에 대해 2004년 6월 14일 북한 측의 요구대로 DMZ 대북방송을 철거하는 또 한 번의 밑지는 장사를 했다.


2012.1.2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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