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만야전군을 왜 법인으로 만들지 않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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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2-04-26 00:21 조회12,32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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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만야전군을 왜 법인으로 만들지 않느냐?
500만야전군을 법인으로 만들면 기업들로부터도 성금을 받을 수 있고 정부로부터도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합니다. 많은 분들께서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실 것입니다. 저는 이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1) 애국운동을 하는데 정부지원금을 받아야 한다면 애국운동 할 필요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2) 큰 기업들은 꼴통으로 알려진 지만원에 절대로 성금을 안 하고 아름다운재단 같은 데나 할 것이다.
3) 자원봉사로는 정관을 만들 인물도 나서지 않는데 어찌 법인등록을 감당할 자원봉사자가 나타나겠느냐,
4) 지만원은 앞으로 몇 년 동안 일 할지 모른다. 2년? 3년? 그런데 법인을 설립해놓고 자금도 없는 상태에서 법인을 설립해 놓은 다음 지만원의 건강이 망가지면 그 뒷감당은 누가 하나.
5) 솔직히 저는 앞으로 2-3년 애국전선에서 근무한 후 쉬고 싶습니다.
금년 말까지만 브랜드 가치가 높은 500만야전군의 이름으로 3억정도의 자금을 사용하면 많은 효과가 있을 것으로 봅니다. 주로 전교조와 진보의 정체를 알리는 운동을 하고 싶습니다, 이번에 제가 낸 광고문으로 인해 많은 국민들이 진보가 빨갱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합니다. 전교조는 지금 6만 3천명, 일설에 의하면 한 전교조 교사가 100명 이상의 유권자를 끌어간다 합니다. 630만명!!
충분히 싸울 가치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수많은 반-전교조 책들이 나왔지만 이번에 제가 만든 책이 참으로 좋다 합니다.
저는 국민의 함성(시국진단)의 회계자료를 11년 동안 그대로 보관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오래 된 자료라 해도 지출항목에는 반드시 영수증철의 몇 책, 몇 페이지, 몇 번이라는 연결고리(Audit Trail)가 다 표시돼 있고, 통장에도 제 서명이 반드시 있습니다. 오래 돼서 추적이 불가능하다는 말은 안 되는 말입니다.
사실 저는 이 결산서들을 사회단체의 표본 모델로 남기고 싶습니다.
내일이라도 그 어느 우리 회원-전사님들께서 오시면 11년 전의 자료로부터 지금의 자료까지 아주 쉽게 추적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런 자료들을 후세를 위해 박물관에라도 전시하고 싶습니다. “투명성이라는 건 이런 것이다”
그래서 저는 의혹 있는 처리들에 대해 분노를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든 오셔서 송영인-구자갑이 해놓은 회계기록들을 구경하십시오. 지난 4개월 동안 송영인-구자갑이 해놓은 회계기록들을 보십시오. 그리고 좀 도와주십시오. 지난 4개월 동안 흩어지고 꼬인 자료들을 정리해주실 분을 찾습니다. 이대로는 외부 공인회계사를 초청할 수 없습니다. 이런 송영인-구자갑의 기록도 영원히 남기고 싶습니다.
이 나라에는 공분도 없고 각자 도생만 있습니까? 물론 제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제가 사무실을 송영인에 맡긴 상태에서 4명이 합쳤습니다. 저는 혼자였습니다. 어느 날부터 제가 사무실에 들어서자 모두가 저를 적대시하는 눈초리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탈북상좌 김유송은 물론 제 참모들도 그렇게 느꼈다 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구자갑-윤명원-소강절(광주)이 다 한편이 되어 법원에 ‘사실확인증’을 송영인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써서 제출까지 했습니다.
노년에 이 무슨 혼란입니까? 이제는 수많은 재판과 결별하고 싶습니다. 나이가 몇 살인지도 모르는 일면식도 없는 인간들로부터 당하는 고통에 제 자식과 가족들도 고통을 받습니다.
어떤 인간들은 제가 이룩한 성스러운 학위와 논문을 똥물에 넣고 짓밟습니다. 학위가 거져 얻어집니까? 미해군대학원은 미국의 그냥 학교가 아닙니다. 학비가 스탠포드나 버클리의 2.5배 입니다, 귀족학교입니다. 1인 1교수도 가능합니다. 실제로 저는 그걸 많이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군이 하급으로 취급받고 사관학교가 중상급으로 취급받습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해군사관학교가 전국 대학들 중에서 대부분 1등을 차지합니다.
미해군대학원 석사과정에서 4.0만점에 3.0이하를 하면 퇴학당합니다. 미해군대학원의 박사로 입학하려면 석사과정 성적이 3.8 이상이어야 합니다, 저는 문과에서 이과로 전향하면서 3.98을 했습니다. 석사는 경영학(문과) 박사는 수리공학(응용수학)을 했습니다.
저는 박사과정을 실패하면 태평양 상공에서 뛰어내린다는 각오를 했습니다. 졸업식에는 오직 지만원만이 영관을 누렸습니다. 석사는 300명 정도였지만 박사는 오직 지만원 혼자였습니다. 남가주의 죤스타인백 마을이라는 몬터레이, 그 지역의 교포들이 저에게 몰려들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저는 한국에 돌아와 군복무에만 열심했습니다.
저는 절대로 공치사를 하거나 자기자랑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미주통일신문에 가보면 참으로 가관입니다, 제가 이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인간이라는 글이 넘칩니다.
제 논문에는 이 세상에 없는 수학공식 2개가 있습니다, 정리가 6개 있고, 알고리즘이라는 게 1개 있습니다, 통상 수학 박사들은 알고리즘 정도면 충분히 통과됩니다. 제 논문은 제 교수의 말로 박사논문 중에 백만분의 1에 속한다 했습니다. 아무나 소화할 수 없는 아주 좁고 고급 공간에서의 공식이요 정리인 것입니다. 지금 누구나 미해군대학원에 가보십시오, 지만원은 천재요 전설적 인물인 것으로 회자돼 있을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 여기에 해보았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세계에서 가방끈이 긴 사람들 중 한사람인 제가 이 한국사회에서는 진흙탕에 짓밟히고 있기 때문에 하도 속상하여 넉두리를 합니다.
http://systemclub.net/library_2005.htm
2012.4.26. 지만원
http://www.systemclu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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